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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코스트 23 / 아들도 몰라보는 지친 아버지

웃는곰 2026. 7. 2. 09:22

홀로코스트 23 / 아들도 몰라보는 지친 아버지

 

수용소 정문에는 친위대 장교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수용자 인원을 파악했다. 재소자가 집합장에 모였다. 명령이 확성기를 통해 들려 왔다.

“5열로 정렬하라!” “백 명씩 서라” “5보 앞으로!”

엘리위젤은 아버지의 손을 꼭 붙잡고 있었다.

지금껏 그랬던 것처럼 아버지를 잃을까봐 두려웠기 때문이다.

바로 가까운 곳에 화장장의 굴뚝이 높이 치솟아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이미 아무런 인상도 주지 못했으며 관심을 조금도 끌지 못했다.

 

부켄발트의 붙박이 재소자 한 사람이 와서, 먼저 샤워를 한 후에야 막사로 들어갈 수 있다고 모두에게 알려주었다.

엘리위젤은 더운 물로 목욕을 한다는 생각만으로도 황홀했다.

아버지는 말없이 조용했다. 다만 곁에서 힘겹게 숨을 쉬고 있었다.

아버지, 조금만 더 참으시면 돼요. 우리는 곧 편히 침대 위에 눕게 돼요. 편히 쉬실 수 있어요…….”

 

아버지는 대꾸하지 않았다. 엘리위젤 자신도 기진한 상태였으므로 아버지의 침묵에 대해서 무관심했다.

엘리위젤의 유일한 소망은 빨리 더운 물로 목욕을 한 다음에 침대에 눕는 것이었다.

그러나 샤워장 안으로 들어가기가 여간 어렵지 않았다.

벌써 수백 명의 인파가 몰려와 북적거렸기 때문이다. 간수들이 질서를 잡느라 좌충우돌 방망이를 휘둘렀지만 별 성과가 없었다. 안으로 밀고 들어갈 힘조차 없는 다른 사람들은 눈 속에 주저앉아버렸다. 아버지도 주저앉고 싶어 신음소리를 냈다.

더 견딜 수가 없다. 이제 마지막이야. 난 여기서 죽을 거야.”

아버지는 눈 더미 쪽으로 아들을 끌고 갔다. 눈 더미 속에는 사람의 형체들과 누더기가 된 담요자락이 널려 있었다.

날 내버려 둬.”

 

아버지가 이렇게 말고 숨을 고른 다음

더 이상 견딜 수가 없구나. 제발 이 애비를 봐다오. 모두가 목욕을 하러 갈 수 있을 때까지 난 여기서 기다리겠다. 넌 여기 와서 나를 찾도록 해라.”

엘리위젤은 너무 분해서 왈칵 울음이 터질 것만 같았다. 그토록 많은 고통, 그토록 많은 역경을 이겨내고 여기까지 와서 아버지를 죽게 둘 수는 없었다. 더운 물로 목욕을 하고 침대에 편히 드러누울 수 있게 된 지금 아버지를 죽게 버려 둘 수 있겠는가?

아버지!”

 

엘리위젤은 크게 외쳤다.

아버지! 일어나세요! 아버지는 지금 자살하려고 하시는 거예요.”

엘리위젤은 아버지의 팔을 붙잡았다. 아버지는 계속 신음소리를 냈다.

얘야, 그렇게 소리 지르지 말아라. 이 늙은 애비를 불쌍하게 여겨다오. 여기서 쉬게 내버려 둬. 잠시만, 난 너무 피곤해. 힘이 하나도 없다…….”

아버지는 허약하고 겁 많고 상처 입기 쉬운 어린아이가 되어 있었다.

아버지, 여기 계시면 안 돼요.”

 

엘리위젤은 사방에 흩어져 있는 시체들을 가리켰다. 그들 역시 여기서 쉬고 싶어 이러다가 시체가 되고 만 것이다.

얘야, 나도 보고 있다. 똑똑히 보고 있어. 그들을 자게 놔두렴. 저들은 눈을 붙인 지가 너무 오래 됐어. 그들은 너무 지친거야. 지쳤어…….”

아버지의 음성은 부드러웠다. 엘리위젤은 바람을 맞받으며 고함을 질렀다.

저들은 다시는 깨어나지 못해요! 절대로요! 그래도 모르시겠어요?”

입씨름은 오랫동안 계속되었다. 그러는 동안 입씨름을 벌이고 있는 상대는 아버지가 아니라, 아버지가 이미 선택한 죽음과 더불어 입씨름을 벌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사이렌이 울렸다. 공습경보였다. 수용소 안의 모든 불이 꺼졌다. 간수들이 모두를 막사 안으로 몰아넣었다. 순식간에 집합장에는 한 사람도 남아 있지 않았다. 모두는 얼음장 같은 바람을 맞으며 밖에 오래 있지 않게 된 것이 기쁠 따름이었다. 모두는 막사로 들자마자 두꺼운 널빤지 위에 주저앉았다. 침대는 여러 층으로 되어 있었다. 입구 쪽에 수프를 끓이고 있는 커다란 솥이 있었지만 누구도 거기에 관심이 없었다. , 그것만이 모두 모두의 간절한 소망이었다.

 

엘리위젤이 잠에서 깨어났을 때는 한낮이었다. 우선 아버지의 행방이 궁금했다. 공습경보가 울렸을 때는 아버지 걱정을 까맣게 잊고 군중을 따라 갔었다. 아버지가 죽음의 문턱에서 기진맥진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순간적으로 아버지를 내버려두고 말았던 것이다.

아버지를 찾으러 나서는 순간 마음속에는 이런 생각이 문득 떠올랐다.

아버지를 찾지 말자! 아버지라는 무거운 부담만 지지 않는다면 나는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 모든 힘을 기울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해서만 걱정을 해도 될 테니까

 

그러나 다음 순간, 이런 생각을 떠올린 자신이 부끄럽기 짝이 없었다. 영원히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몇 시간 동안을 헤맸지만 아버지의 행방은 묘연했다. 엘리위젤이 다시 막사로 돌아왔을 때, 블랙커피가 제공되고 있었다.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고 더러는 다투기도 했다.

그때 애처롭게 간청하는 듯한 가냘픈 음성이 등 뒤에서 들렸다.

내 아들……. 엘리제르야. 커피 한 방울만 내게로 가져오너라…….”

엘리위젤은 아버지한테 달려갔다.

 

아버지! 한참 찾았어요, 어디 계셨어요? 주무셨나요?……. 좀 어떠세요?”

아버지의 몸은 열이 나서 불덩이 같았다. 엘리위젤은 야수처럼 사람들을 헤치고 커피 솥까지 달려갔다. 요행히도 커피 한 잔을 가지고 돌아올 수 있었다. 그는 한 모금만 홀짝 마시고는 아버지에게 건넸다. 그때, 아버지가 커피를 마시면서 두 눈에 나타냈던 감사의 빛을 영영 잊을 수 없다. 그것은 동물이 사람에게 보내는 감사의 눈빛이었다.

 

뜨거운 물 한 모금을 마시게 한 것이 아버지에게는 아들의 모든 어린 시절을 통해 그때까지 아버지를 만족하게 한 것보다 더 큰 만족을 주었으리라.

아버지는 납빛이 된 채 덜덜 떨면서 널빤지 위에 누웠다. 입술은 창백하고 메말라 있었다. 그러나 아버지 곁에 오래 머물 수가 없었다. 청소를 하기 위해 환자를 제외한 나머지 재소자들은 모두 밖으로 나가라는 명령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모두는 바깥에서 다섯 시간 동안을 기다렸다. 그 사이에 수프가 배식되었다. 다시 막사로 돌아가는 것이 허용되자마자 엘리위젤은 아버지에게로 달려갔다.

 

무엇을 좀 잡수셨어요?”

아니.”

왜요?”

아무것도 주지 않았어……. 모두 병이 들었으니 어차피 죽게 될 것이기 때문에 음식을 낭비하는 건 아깝다고 말하더구나. 난 이제 더 이상 견딜 수가 없다.”

엘리위젤은 남겨 두었던 수프를 아버지에게 드렸다. 그러나 마음은 무거웠다.

아버지에게 드리고 싶지 않은 수프를 드리고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 역시 엘리아후 랍비의 아들보다 조금도 나을 것이 없기는 했지만, 그래도 그 시험을 이겨냈다.

아버지는 하루하루 쇠약해 갔다. 눈빛은 점점 흐려지고 얼굴은 시든 나뭇잎처럼 파리해졌다. 부켄발트에 도착한 지 3일째 되는 날, 모든 재소자들은 샤워장에 가야 했다. 환자들까지도 맨 마지막으로 목욕을 해야 했다.

 

목욕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모두는 바깥에서 오랫동안 기다려야 했다. 막사의 청소가 그때까지 끝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때, 아버지가 저만치에 있는 것을 보고 달려갔다.

그러나 아버지는 유령처럼 아들 곁을 그냥 지나가는 것이었다.

발걸음을 멈추거나 아들을 쳐다보지도 않고 지나쳤다.

엘리위젤은 아버지를 불렀다.

그러나 돌아보지도 않았다. 아버지를 뒤쫓았다.

아버지, 지금 어디로 달려가세요?”

아버지는 잠깐 아들을 바라보았다.

그 눈길은 멍하게 환상에 젖어 있었다.

얼굴도 다른 사람이었다.

그것도 잠시일 뿐, 아버지는 다시 달려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