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코스트 20 / 시체 더미에서 잠과 투쟁
얼음장처럼 차가운 돌풍이 휘몰아쳤다.
그러나 모두는 조금도 멈추지 않고 행군을 계속했다.
친위대원들이 모두의 행군 속도를 간단없이 재촉했다.
“더 빨리, 이 돼지새끼들아! 이 더러운 개새끼들아!”
모두는 왜 빨리 가고 싶지 않겠는가? 행군과 같은 운동은 조금이나마
몸을 따뜻하게 해주니까. 혈관 속의 피도 더 잘 통했다.
모두는 원기가 회복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더 빨리, 이 더러운 개새끼들아!”
이제 모두는 행군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동인형처럼 달려가고 있었다. 친위대원들 역시 무기를 손에 든 채 뛰고 있었다. 모두는 마치 그들 앞에서 도망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칠흑의 밤, 때때로 밤의 어둠을 뚫고 폭음이 들려 왔다. 친위대원들은 행군을 따라오지 못하는 사람은 누구나 사살하라는 명령을 받고 있었다. 그들은 손가락으로 방아쇠를 당기는 즐거움을 버리지 못했다. 모두 가운데서 누구라도 1초만 멈추어도 날카로운 총성이 또 하나의 ‘더러운 개새끼’의 생명을 끝내주는 것이었다.
엘리위젤은 한쪽 발을 다른 쪽 발 앞에 기계적으로 내밀고 있었다. 무겁디무거운 해골 같은 육신을 끌고 갔다. 그 육신의 무게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그런 생각은 하지 않으려고 애를 썼지만, 자신이 육신과 나라는 두 개의 실체로 느껴지는 것을 어찌할 수가 없었다. 그것이 싫었다.
엘리위젤은 자신에게 거듭거듭 타일렀다.
‘생각하지 마라. 멈추지 마라. 뛰어라.’
가까이에서 달리던 사람들이 더러운 눈 속에 주저앉고는 했다. 그때마다 총성이 울렸다. 엘리위젤 곁에서는 잘만이라고 부르는 폴란드 출신의 소년이 행군하고 있었다. 그는 부나에서는 전기부품 창고의 일을 했었다. 사람들은 그가 항상 기도를 하거나 <탈무드>의 어떤 문제에 대해서 명상하는 것을 보고는 웃음거리로 삼았다.
그러나 그가 그렇게 하는 것은 매질 따위에 마음을 쓰지 않고 참혹한 현실에서 도피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었다. 그런 그가 갑자기 위경련을 일으킨 것이다.
“배가 아파.”
그가 엘리위젤에게 귀엣말을 했다. 그는 계속 뛸 수가 없었다. 잠시 쉬어야만 했다. 엘리위젤은 그에게 간청했다.
“잘만, 조금만 참아. 모두 모두 곧 멈추게 될 거야. 이런 식으로 세상 끝까지 뛰어갈 수는 없을 테니까.”
그러나 그는 계속 뛰면서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이 단추를 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울먹였다.
“더 이상 못 가겠어. 위장이 터지고 있어…….”
“참으려고 노력해봐, 잘만……. 노력해 봐…….”
“난 할 수가 없어…….”
그는 신음했다. 그의 바지가 흘러내렸다. 그와 함께 잘만은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그것이 엘리위젤이 그를 본 마지막 모습이었다. 그를 죽인 것이 친위대원이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왜냐하면 어느 누구도 그 사실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는 모두의 뒤를 따라오는 수천 명의 발길에 짓밟혀 죽었음에 틀림없다.
엘리위젤은 금방 그를 잊어버렸다. 그리고 다시 자신에 대해서 생각하기 시작했다. 상처를 입은 오른발의 통증 때문에 한 발자국 옮겨놓을 때마다 온몸이 떨렸다. ‘몇 야드만 더 가면,’하고 생각했다.
‘앞으로 몇 야드만 가면 끝장나고 말 것이다. 나는 풀썩 쓰러지게 될 것이다. 그러면 빨간 불꽃을 내뿜으며 총성이 한 방 울리겠지. 그러고는 끝장나는 것이다.’
죽음이 온몸을 칭칭 휘감으며 질식할 때까지 옥죄여 오고 있었다. 죽음은 엘리위젤에게 달라붙었고 그는 그것을 손으로 감지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죽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이제는 더 이상 살아 있지 않다는 생각이 사뭇 매혹하기 시작했다. 더 이상 생존하지 않는다는 것은 소름끼치는 발의 통증을 더 이상 느끼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죽으면 피로며 추위 따위는 그 어느 것도 전혀 느끼지 않게 되는 것이다. 대열에서 이탈하여 길가로 빠져나가는 일만 남아 있을 뿐…….
다만, 아버지의 존재만이 죽으려는 그의 행동에 제동을 걸고 있었다……. 아버지는 바로 그 옆에서 뛰어가고 있었다. 아버지는 숨이 차고 기진맥진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는 모습이었다. 엘리위젤에게는 스스로 목숨을 끊을 권리가 없었다. 엘리위젤이 없다면 아버지는 어떻게 될 것인가? 그는 아버지가 의지할 수 있는 단 하나의 핏줄이 아닌가.
지극히 짧은 순간에 불과했지만,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동안 발의 통증도 느끼지 못하고 달리고 있었다. 아니, 달리고 있다는 사실, 자신의 육신을 지닌 채 수천 명의 집단 속에 끼어 질주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도 의식하지 못한 가운데 계속 달라고 있었다.
다시 제 정신으로 돌아왔을 때, 엘리위젤은 보조를 늦추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늦출 방도가 없었다. 까딱 잘못했다가는 엄청난 파도 같은 인간의 물결이 덮쳐와 한 마리의 개미 새끼처럼 짓이겨 버리고 말 터였다.
어느 사이엔지 스르르 졸음이 쏟아져 왔다. 엘리위젤은 눈을 감은 채 졸면서 달려가기로 작정했다. 가끔 뒤쪽에서 누군가가 난폭하게 밀어붙일 때면 퍼뜩 눈을 뜨고는 했다. 어떤 사람은 또 이렇게 고함을 지르기도 했다.
“빨리 뛰어! 뛰고 싶지 않거든 다른 사람이나 지나가게 하라구.”
그러나 엘리위젤이 할 수 있는 것은 잠시 눈을 붙이는 일이 전부였다. 잠시 두 눈을 붙이고 온 세상이 끝나는 것을 보는 일, 온 생애를 꿈꾸어 보는 일, 그것이 전부일 뿐이었다.
길은 끝이 없었다. 달려도 달려도 끝이 없었다. 모두는 집단에 밀리고 맹목적인 운명에 끌려 무작정 달리고만 있었다. 친위대원들은 지치면 교대했다. 그러나 모두에게는 교대해 줄 사람도 없었다. 계속 달리고 있었지만 모두의 수족은 추위 때문에 마비되어 갔으며 목은 타는 듯했고 배가 고프고 숨이 차서 헐떡였다.
모두는 자연의 지배자임과 동시에 세계의 지배자들이었다. 모두는 모든 것을 깡그리 잊어버렸다. 죽음도, 피로도, 그리고 생리현상인 대소변의 일까지도 깡그리 잊어버렸다. 이 세상에서 혹한이나 굶주림보다 강하고, 총알이나 죽고 싶은 욕망보다 강한 사람들이 있다면, 유죄판결을 받고서 번호만을 지닌 채 들판을 방황하고 있는 모두들이 있을 뿐, 그밖에는 아무도 없었다. 이윽고, 잿빛 하늘에 샛별이 나타났다. 지평선 위로는 희미한 여명이 비쳤다. 모두는 모두 기진맥진해 있었다. 기력도 환상도 없었다. 사령관은 모두에게 발표하기를, 수용소를 출발한 이후 42마일을 행군해 왔다고 했다. 육체의 피로에는 한계가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모두는 그 한계를 넘어서 있었다. 다리는 모두도 모르게, 모두와는 아무 상관없이 기계적으로 움직이고 있을 뿐이었다.
모두는 어느 황폐한 마을을 지나갔다. 그 마을에는 사람의 그림자 하나 보이지 않았고 개 짖는 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집집마다 창문이 활짝 열린 채 텅 비어 있었다. 몇 사람이 대열에서 살짝 벗어나 황폐한 건물 속에 몸을 숨겼다.
그로부터 한 시간을 더 행군한 다음에야 쉬라는 명령이 내려졌다. 모두는 눈 속에 그대로 주저앉았다. 아버지가 엘리위젤을 붙잡고 흔들었다.
“여기서는 안 된다. 일어나거라. 조금만 더 가자. 저쪽에 창고가 하나 있다. 자, 어서 가자.”
엘리위젤에게는 일어설 기력도 의지도 없었다. 그렇지만 아버지의 말에 따랐다. 그 건물은 창고가 아니라 벽돌공장이었다. 지붕은 기울고 창문은 부서져 있었으며 벽은 온통 얼룩투성이였다. 그러나 안으로 들어가기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수백 명의 재소자들이 벌써부터 문간에 몰려와 있었기 때문이다.
모두는 겨우겨우 안으로 들어가는 데 성공했다. 그 안에도 눈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엘리위젤은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가 정말 피로감을 느낀 것은 바로 그때였다. 눈은 아주 부드럽고 따뜻한 융단 같았다. 엘리위젤은 이내 잠에 곯아 떨어졌다.
그렇게 얼마나 잤을까. 잠깐 잤는지, 한 시간을 잤는지 알 수 없었다. 눈을 떴을 때 차가운 손이 뺨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눈을 떠보았다.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지난밤 사이에 얼마나 늙어버렸는가! 몸은 완전히 찌그러져 오그라들고 있었다. 두 눈은 초점을 잃었고 입술은 바짝 말라붙어 있었다. 체력의 소모가 극도에 이르렀음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눈물과 눈에 젖은 목소리로 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엘리제르야, 졸음에 져서는 안 된다. 눈 속에서 잠을 자는 건 위험한 일이다. 영원히 잠들어버릴지도 모른단다. 자, 가자. 어서 일어나거라.”
일어나라고? 하지만 내가 어떻게 일어난단 말인가? 이 푹신한 침대에서 일어나라고? 그는 아버지의 말을 알아들을 수는 있었다. 그러나 그 말은 건물을 통째로 팔에 안고 일어서라는 것만큼이나 아무 의미가 없었다.
“얘야, 어서 가자…….”
엘리위젤은 이를 악물고 일어섰다. 아버지는 아들을 팔로 부축하고 건물 밖으로 나갔다. 들어올 때와 마찬가지로 나가는 일도 쉽지 않았다. 모두의 발부리에는 이리저리 마구 짓밟힌 채 죽어 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누구 하나 주의하는 사람이 없었다.
밖으로 나왔다. 얼음같이 차가운 바람이 안면에 몰아쳤다. 엘리위젤은 입술이 얼어붙지 않도록 계속 깨물었다. 주위에 있는 모든 것이 죽음의 춤을 추고 있었다. 그런 광경에 머리가 어지러웠다. 나무토막처럼 뻣뻣한 시체들이 널려 있는 어떤 공동묘지를 거닐고 있는 착각에 빠졌다. 거기에는 슬픔의 울음소리도, 신음 소리도 없었다. 다만 단말마의 고통을 침묵 속에서 견디고 있을 뿐이었다. 아무도 어느 누구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았다. 그들은 죽어야 하기 때문에 죽어 가는 것뿐이었다. 조금도 소란스럽지 않았다.
빳빳하게 얼어붙은 시체 하나하나에서 엘리위젤은 자신을 보았다. 얼마 후에는 그 시체들을 볼 수 없으리라. 그 역시 그들 중의 하나가 될 것이 빤한 노릇이었기 때문에. 그것은 시간문제였다.
“아버지, 가요. 그 창고로 가요…….”
아버지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버지 역시 시체들을 외면하고 있었다.
“아버지, 어서 가요. 거기가 더 낫겠어요. 서로 번갈아 가며 누울 수도 있을 테니까요. 제가 아버지를 돌봐드리고, 그 다음엔 아버지가 절 돌봐주신다면 둘이 다 잠에 떨어지는 일은 없을 거예요. 우린 서로 보살필 수 있어요.”
아버지도 그 의견에 따랐다. 모두는 살아 있는 사람들과 죽어있는 시체들을 밟으며 간신히 창고 속으로 다시 들어갔다. 모두는 거기에서 주저앉았다.
“얘야, 조금도 걱정할 것 없다. 어서 자거라, 넌 자도 돼. 내가 너를 지켜줄 테니까.”
“아니에요. 아버지가 먼저 주무세요. 어서요.”
아버지는 거절했다. 엘리위젤은 드러누워 조금만 자려고 했지만, 도저히 그럴 수는 없었다. 잠깐 잠을 자는 동안에 어떤 대가를 치르게 되리라는 것은 하나님이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마음속으로 잠을 잔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한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의 내부에서는 그 죽음에 저항하는 어떤 것이 있었다. 주위에서 죽음은 난폭하지 않게 조용히 이곳저곳으로 옮겨 다니고 있었다. 죽음은 잠자코 있는 사람들을 엄습하여 그들 속으로 들어가서는 그들의 생명을 조금씩 소멸시키는 것이었다. 가까운 곳에서, 어떤 사람이 자기 곁에서 잠들고 있는 자기의 형, 아니면 친구인지도 모를 사람을 깨우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그러나 끝내 깨우지 못하고 말았다. 그 역시 자기의 누울 순서에 따라 시체 옆에 누워 잠이 들고 마는 것이었다. 이제 그를 깨울 사람은 누구란 말인가? 엘리위젤은 팔을 뻗쳐 손으로 그를 흔들었다.
“일어나세요. 여기서 잠들면 안돼요…….”
그 사람은 반쯤 눈을 떴다.
“충고는 필요 없어.”
그가 기어드는 목소리로 말했다.
“난 지쳤어. 날 내버려둬. 상관하지 말구.”
아버지도 소리 없이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아버지는 모자로 얼굴을 덮고 있었으므로 그의 눈을 볼 수가 없었다.
“일어나세요.”
엘리위젤은 아버지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아버지는 깜짝 놀라 졸음에서 깨어났다.
아버지는 일어나 앉아서는 종잡을 수 없다는 듯이 어리둥절한 눈길로 주위를 살펴보았다.
그리고는 마치 자기가 처한 환경에 대하여 갑작스레
명세서라도 작성하기로 결심이라도 한 듯이,
그가 정확히 어떤 곳 어느 지점에 있으며, 그 이유가 무엇인지를 확인이라도 하는 듯
눈을 크게 뜨고 사방을 휘둘러보는 것이었다. 그런 다음 싱긋 미소를 지었다.
엘리위젤은 언제까지나 그 미소를 기억할 것이다.
아버지의 어디에서 그런 미소가 우러나온 것일까? 눈은 함박눈이 되어
편히 누워 있는 시체들 위에 소리 없이 쌓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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