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코스트 17 / 아버지의 유산
막사 내무반장은 1933년 이래 한 번도 집단수용소 밖으로 나가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는 이미 모든 도살장들을, 모든 살인공장들을 거쳐온 사람이었다. 아홉 시쯤 되었을 때 그가 재소자 한복판에 자리를 잡고 우뚝 섰다.
“차렷!”
즉시 침묵이 흘렀다.
“내가 지금부터 하는 말을 잘 들어라.”
모두는 그의 목소리가 떨리는 것을 처음 들었다.
“조금 있으면 추려내기가 시작될 것이다. 여러분은 모두 옷을 홀랑 벗어야 한다.
그리고 한 사람씩 친위대 의사 앞으로 가는 것이다.
나는 여러분이 모두 무사하게 통과되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러분 각자가 좋은 운수를 잡도록 스스로 노력해야 한다.
다음 방으로 들어가기 전에 혈색이 좋아 보이도록 어떤 방법으로든
운동을 좀 하는 게 좋을 것이다. 천천히 걷지 말고 뛰어라!
악마에게 쫓기는 사람처럼 뛰어라! 친위대원을 바라보지 말고 뛰어라! 앞만 바라보고 뛰어라!”
그는 잠시 말을 끊었다가, 다시 덧붙였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겁을 먹지 않는 것이다!”
그의 이 한 마디는 기꺼이 따르고 싶은 충고였다. 모두는 옷을 벗어 침대 위에 놓았다. 그 날 저녁에는 어느 누가 옷을 훔쳐갈 위험 따위는 조금도 없었다.
작업반을 옮겨 온 티비와 요시가 다가와 말했다.
“우리, 함께 있도록 하자. 그러면 모두는 더 강해질 테니까.”
요시는 무엇인가 나직이 잇새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기도를 하고 있었음에 틀림없었다. 요시가 신자라는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오히려 항상 그와는 정반대로 생각해 왔었다. 티비는 아주 창백한 모습으로 말이 없었다. 모든 재소자들이 발가벗은 채 침대 사이사이에 웅크리고 섰다. 최후의 심판대에 나선 인간의 모습이 바로 이럴 것이리라.
“그들이 오고 있다!”
비르케나우에서 접수했던 저 악명 높은 멩겔레 박사가 친위대 장교 세 사람에게 둘러싸인 채 서 있었다. 내무반장이 미소를 지으려 애쓰는 표정으로 모두에게 물었다.
“준비 됐나?”
모두는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친위대 의사들도 준비가 되어 있었다. 멩겔레 박사는 번호가 기록되어 있는 명단을 손에 들고 있었다. 그는 내무반장에게 신호를 보냈다.
“시작하지!”
마치 놀이를 시작하기라도 하는 듯이!
맨 먼저 들어간 사람은 막사의 ‘관리’들이었다. 물론 그들은 내무반장들, 간수들, 십장들로 완전무결한 신체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그 다음부터가 일반 재소자들의 순서였다. 맹겔레 박사는 재소자들을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자세히 검사했다. 그는 가끔 번호를 적기도 했다. 엘리위젤의 머릿속은 오로지 한 가지 생각으로 꽉 차 있었다. 번호가 적히도록 해서는 안 된다, 번호가 쓰인 왼팔을 보여주어서는 안 된다.
이윽고 엘리위젤 앞에는 티비와 요시뿐이었다. 그들은 무사히 통과되었다. 엘리위젤은 맹겔레가 그들의 번호를 적지 않는 것을 눈여겨보았다. 누군가 등을 밀었다. 마침내 엘리위젤의 순서가 온 것이다. 그는 뒤돌아보지 않고 달렸다. 머릿속에는 주마등처럼 같은 생각이 스치고 있었다.
‘너는 너무 말랐어, 너는 허약해, 너는 너무 말랐어, 너는 화장로에 들어가게 될 거야…….’
달음질은 마치 무한히 계속되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마치 여러 해 동안 달려온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너는 너무 말랐어, 너는 너무 허약해…….’
마침내 그는 반대편 쪽에 당도했다. 기진맥진한 상태였다. 겨우 숨을 돌린 다음에야 요시와 티비에게 물었다.
“나, 적혔지?”
“아니.”
요시가 대답했다. 그는 미소를 지으며 덧붙였다.
“어떻든 그는 너의 번호를 적을 수 없었을 거야. 넌 너무나 빨리 뛰었거든…….”
엘리위젤은 활짝 웃었다. 기뻤다. 그에게 입을 맞추고 싶을 정도로 기뻤다. 그 순간, 다른 일에야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번호가 적히지 않은 것만으로도 만족했다.
번호가 적힌 사람들은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은 채 따로 떨어져 서 있었다. 몇 사람은 소리 없이 흐느끼고 있었다.
친위대 장교들은 돌아갔다. 내무반장이 심신이 피로한 얼굴로 나타났다.
“모든 것이 아주 잘 되었다. 어느 누구도 아무 일이 없을 것이다.”
그는 다시 미소를 지으려고 애썼다. 그때 초라하고 깡마른 유대인 하나가 떨리는 음성으로 애타게 물었다.
“하지만……. 하지만, 고참님, 그들은 나를 적어 갔습니다!”
내무반장의 화가 폭발했다. 반장의 말을 믿으려 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는 것 때문이었다.
“지금 뭐라고 했지? 내가 거짓말을 했다는 거야? 다시 한 번 말해 주겠는데, 너에겐 아무 일도 없어! 다른 어느 누구에게도! 넌 지금 스스로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는 거야, 이 바보야!”
벨이 울렸다. 그것은 수용소 전역에서 추려내기가 완료되었다는 신호였다.
엘리위젤은 있는 힘을 다하여 37번 막사로 달려갔다. 도중에서 아버지를 만났다. 아버지도 아들을 찾아오는 길이었다.
“어때? 통과됐니?”
“예, 아버진요?”
“나도.”
그제야 주자는 안도의 숨을 내쉴 수 있었다. 아버지는 빵 한 개를 선물로 가지고 왔다. 그 빵은 작업장에서 주은 고무조각과 바꾼 것으로 그 고무조각은 구두 한 짝에 밑창을 댈 수 있을 정도였다고 했다.
다시 벨이 울렸다. 벌써 취침시간이 된 것이다. 부자는 헤어져야 했다. 모든 것이 벨소리에 의해 통제되었다. 벨소리가 갖가지 명령을 내렸고 재소자는 거기에 기계적으로 복종했다. 그 벨소리가 싫었다. 그래서 그는 보다 나은 세상을 꿈꿀 때마다 벨이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밖에 없었다.
며칠이 지났다. 모두는 벌써 추려낸 일을 잊어버리고 있었다. 모두는 평소와 같이 작업장으로 나가 무거운 돌멩이를 열차에 싣는 일을 계속했다. 한 가지 달라진 것이 있다면, 식사가 훨씬 형편없어졌다는 것이었다.
모두는 여느 날과 같이 먼동이 트기 전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블랙커피와 빵을 받아먹었다. 평소와 같이 작업장으로 막 출발하려는데 내무반장이 달려왔다.
“잠깐, 조용히들 해! 명단을 가지고 왔으니 여러분에게 읽어주겠다. 내가 부르는 번호를 가진 사람은 오늘 아침에 작업장에 나가지 말고 수용소 안에서 대기해 주기 바란다.”
그러고는 부드러운 음성으로 10여 명의 번호를 불렀다. 모두는 알아차렸다. 그 번호들은 추려낼 때 적힌 번호였다. 멩겔레 박사는 잊어버리지 않았던 것이다.
내무반장은 자기 방으로 발길을 돌렸다. 호명 재소자 열 명이 그의 옷을 붙잡고 늘어지며 그를 둘러쌌다.
“우리를 구해 주십시오. 당신이 약속하지 않았습니까……. 우리는 작업장에 나가고 싶습니다. 일하기에 충분할 만큼 건강하다구요. 우리는 훌륭한 일꾼입니다. 할 수 있어요, 하겠어요.”
반장은 그들을 진정시키려고 애를 썼다. 수용소 안에서 대기하라는 것은 별다른 뜻이 있는 것이 아니며, 어떤 비극적인 운명을 뜻하는 것도 아니라고 설명하면서 그들을 안심시키려고 했다.
“나 역시 날마다 수용소 안에 남아 있지만, 이렇게 아무 일도 없지 않아?”
그는 이렇게 덧붙였지만 그의 논리는 설득력이 약했다. 그는 이미 모든 걸 알고 있었다. 그는 더 이상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곧 벨이 울렸다.
“정렬!”
이제, 작업이 힘들다는 것 따위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되도록 막사로부터, 죽음의 도가니로부터, 그리고 지옥의 중심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일이었다.
엘리위젤은 아버지가 달려오는 것을 보았다. 그 모습을 보다가 갑자기 공포에 휩싸였다.
“웬일이세요?”
아버지는 숨이 차서 제대로 말을 잇지 못했다.
“나도……. 나도……. 수용소에 남아 있으라고 하는구나!”
그들은 아버지가 눈치 채지 못하는 사이에 아버지의 번호를 적었던 것이다.
“그럼 어떻게 될까요?”
엘리위젤은 괴로워하며 물었다. 그러나 오히려 아버지 쪽에서 아들을 안심시키려고 했다.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다. 모면한 기회는 있을 게야. 오늘 또 한 번 추려내는 일이 있단다……. 마지막으로 추려낸다는구나.”
엘리위젤은 잠자코 있었다. 아버지는 시간이 없다고 생각하고 빠르게 말했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 듯했다. 그래서 점점 말의 두서가 없어지고 목까지 메었다. 아버지는 아들이 곧 돌아가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아버지는 홀로, 오로지 홀로 외롭게 수용소 안에 남아 있어야 했던 것이다.
“자, 이 칼을 받으렴.”
그리고 이어 말했다.
“내겐 더 이상 필요 없는 물건이지만 너에겐 필요한 게야. 그리고 이 숟가락도 받으렴. 하지만 팔아먹어선 안 된다. 어서 받아! 내가 너에게 주는 것이니 받으라니까!”
그것은 일종의 유산이었다.
“아버지, 그런 말씀은 마세요.”
엘리위젤은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만 같았다.
“그런 말씀은 절대로 듣고 싶지 않아요. 숟가락과 칼은 그냥 가지고 계세요. 제게 필요한 만큼이나 아버지께도 필요한 물건이니까요. 오늘 저녁 일이 끝난 후에 우리는 다시 만나게 될 거예요.”
아버지는 절망에 싸인 지친 눈길로 아들을 바라보며 내민 물건을 거두지 않았다.
“이건 너한테 부탁하는 거다. 어서 받아라. 얘야, 아비 말을 듣거라. 시간이 없어. 이 아비의 부탁대로 하렴.”
이때 막사 간수가 출발해야 한다고 고함을 질렀다. 작업반은 수용소 정문을 향하여 출발했다. 왼발, 오른발! 엘리위젤은 입술을 깨물었다. 아버지는 벽에 등을 기대고 막사 옆에 서 있었다. 그러더니 엘리위젤을 따라잡기 위해 뛰어오기 시작했다. 아마 무엇인가 하고 싶은 말을 잊었던 모양이었다.
그러나 모두는 너무나 빠르게 행군하고 있었다.
왼발, 오른발!
모두는 벌써 정문에 당도해 있었다. 친위대원들이 귀가 멍멍하게 울리고 있는 군악대 소리에 대항이라도 하듯이 큰소리로 인원 파악을 했다. 그리고 모두가 밖으로 나왔다.
아버지 생각에 엘리위젤은 온종일 몽유병자처럼 배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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