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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코스트 14 / 음탕한 비밀

웃는곰 2026. 6. 23. 09:21

홀로코스트 14 / 음탕한 비밀

 

모두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쭈그리고 앉아 있기에 싫증이 나서, 모두는 창고 어슬렁거리면서,

혹시 군속들이 남기고 갔을지도 모르는 빵 조각을 찾기도 했다.

엘리위젤이 건물의 뒤쪽까지 갔을 때, 문 옆의 작은 방에서 무슨 소리가 들렸다.

 

가까이 가보니, 이데크가 반쯤 벌거벗은 폴란드 처녀와 매트리스 위에 누워 있는 것이 보였다.

그제야 이데크가 무엇 때문에 모두를 수용소 안에 있지 못하게 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는 그녀와 단둘이 노닥거리기 위해서 백여 명의 재소자들을 밖으로 내쫓았던 것이다!

너무나 우스꽝스러운 일이었다.

이데크가 벌떡 일어났다. 그는 사방을 두리번거리다가 엘리위젤을 발견했다.

그 사이에 여자는 허겁지겁 젖가슴을 가렸다. 엘리위젤은 도망치고 싶었다.

그러나 두 다리가 땅바닥에 붙어서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었다.

이데크가 어느새 곁으로 와 멱살을 움켜잡았다.

그는 음성을 낮추어 말했다.

 

이 새끼, 기다려라. 작업장을 이탈하면 어떤 대가를 치르는지 네놈에게 보여줄 테니까.

네놈은 곧 대가를 치르게 될 거다. 허지만 지금은 네 자리로 돌아가.”

이데크는 보통 작업이 끝나는 시간보다 반시간 빠르게 재소자들을 집합시키고 점호를 취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무도 몰랐다. 이 시간에, 그것도 낮에 벌써 점호를 취하다니! 그러나 엘리위젤은 알고 있었다. 그는 짧게 훈시를 했다.

일반 재소자에게는 다른 사람의 일에 관여할 권리가 없다.

그런데 여러분 가운데 한 사람은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 그러므로 나는 지금 그에게 분명한 사실을 가르쳐 주기로 했다.”

엘리위젤은 등줄기에 땀이 났다.

 

“A-7713!”

엘리위젤은 앞으로 나갔다.

상자를 가져와!”

그의 명령에 재소자들이 상자를 하나 가져왔다.

그 위에 누워! 엎드리란 말이야!”

엘리위젤은 엎드렸다. 그리고 채찍으로 때리는 소리 이외에는 아무것도 의식할 수 없었다.

하나……. …….”

그는 숫자를 헤아렸다.

 

그는 일부러 간격을 두고 천천히 채찍질을 가했다. 처음 몇 대는 정말 아팠다. 그리고 그가 숫자를 헤아리는 소리도 들을 수 있었다.

……. 열하나…….”

그의 목소리가 착 가라앉은 것 같고, 두꺼운 벽의 저쪽에서 들려오는 것 같았다.

스물셋…….”

두 대 남았군, 하고 엘리위젤은 반쯤 의식을 잃은 채 생각했다. 그는 시간을 길게 잡았다.

스물넷……. 스물다섯!”

채찍질이 끝났다. 그러나 엘리위젤은 이미 실신해 있었으므로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찬물을 한 양동이 뒤집어쓰고서야 의식이 들었다.

 

엘리위젤은 아직도 상자 위에 엎어져 있었다. 그리고 희미하게나마 주위가 젖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때 누군가 고함을 지르는 소리가 들렸다. 엘리위젤은 그것이 이데크의 고함이라고 생각했다.

일어서!!”

엘리위젤은 일어나려고 움직여 보았지만 몸이 상자에 다시 달라붙는 느낌을 받았다.

일어낫!”

그가 더욱 큰 소리로 외쳤다.

엘리위젤이 그에게 대답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러나 그는 아무리 애를 써도 입을 열 수가 없었다. 이데크의 명령을 받고 두 재소자가 엘리위젤을 일으켜 그 앞으로 데리고 갔다.

나를 똑바로 봐!”

 

엘리위젤은 그에게 얼굴을 돌렸으나 보이지 않았다. 다만 아버지를 생각하고 있었다. 아마 아버지는 자기보다도 더 고통스러워하고 있으리라.

이데크가 싸늘한 어조로 말했다.

내 말 잘 들어, 이 못된 새끼야! 이건 너의 호기심에 대한 대가야. 앞으로 만일 네가 본 것을 발설할 경우엔 뜨거운 맛을 다섯 번 더 보여주겠다. 내 말 알아들었나?”

엘리위젤은 머리를 한 번, 아니 열 번이나 끄덕였다. 아니 끊임없이 끄덕였다.

마치 언제까지나 그치지 않고 라고만 대답하기로 결심이라도 한 것처럼.

 

어느 일요일. 그 날은 엘리위젤의 아버지를 포함하여 반은 작업장에 나가고, 엘리위젤을 포함한 반은 막사에 남아 있었다. 막사에 남은 모두는 모처럼의 기회를 십분 이용하여 아침 늦게까지 침대에 누워 있었다.

 

그런데 10시쯤 사이렌이 울렸다. 공습경보였다. 내무반장들이 몰려와 모두 막사 안에 모이게 하고 친위대원들은 방공호 속으로 대피했다. 경보가 울리는 동안에는 보초들이 망대의 초소를 비우고, 철조망 울타리에 흐르는 전류도 끊겼으므로 탈출하기가 비교적 용이했다. 그 때문에 친위대원들은 막사 밖으로 나오는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사살하라는 명령을 받고 있었다.

 

몇 분 사이에 수용소는 풍랑 치는 바다에 뜬 조각배처럼 되었다. 길 위에 살아 움직이는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취사장 근처에는 뜨거운 수프가 반쯤 담긴 채 흐르고 있는 커다란 솥이 두 개 버려져 있었으며, 길 한가운데도 그것을 지키는 사람이 없었다.

수백 개의 눈이 무럭무럭 김이 나는 수프가 든 솥을 바라보며 식욕의 불꽃을 튀기고 있었다. 그것은 백 마리 늑대가 두 마리의 양, 주위엔 한 사람의 양치기도 없는 두 마리의 양을 노리고 있는 장면 같았다. 버려진 채 수프가 끓고 있는 두 개의 솥, 그것은 하늘이 내린 선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누가 감히 그것을 향해 달려갈 수 있을까!

공포가 굶주림보다 강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때, 37번 막사의 문이 갑자기 소리 없이 열리는 것이 보였다. 그와 함께 한 사람이 밖으로 나와 큰솥이 있는 곳을 향하여 벌레처럼 기어갔다.

 

수백 개의 눈길이 그의 일거일동을 따라갔다. 수백 명이 그와 함께 무릎을 자갈에 긁혀 가며 기어가고 있었다. 모든 사람의 심장이 떨리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부러움으로 떨리고 있었다. 그 사람은 감히 도전하고 있었던 것이다.

마침내 그 사람이 첫 번째 솥에 당도하자 모든 사람의 심장이 사뭇 뜀박질을 했다. 그는 성공한 것이다. 질투심이 활활 타오르며 모두를 지푸라기처럼 불태웠다. 모두는 그 사람에 대해서 조금도 탄복할 생각은 없었다. 불쌍한 영웅, 수프 한 그릇 때문에 자살행위를 하다니! 모두는 마음속으로 그를 죽이고 있었다.

 

솥 옆에 이르러 한동안 사지를 쭉 펴고 엎드려 있던 그 사람은 솥의 가장자리에 닿기 위해 몸을 일으키려고 안간힘을 썼다. 허약 때문인지, 아니면 공포 때문인지 그는 중도에서 잠깐 멈추었다. 마지막 남은 힘을 모으기 위해서 기를 쓰고 있음이 분명했다. 마침내 그는 솥 언저리 위로 몸을 끌어올리는데 성공했다. 그는 잠깐 동안 수프 속에 비친 자신의 유령 같은 몰골을 들여다보는 모양이었다. 그러더니 뚜렷한 이유도 없이 갑자기 무서운 비명을 질렀다. 그것은 지금껏 들어본 적이 없는 숨넘어가는 소리였다. 이어서 그는 입을 딱 벌리고 아직도 김이 무럭무럭 나고 있는 수프 속에 머리를 들이밀었다. 모두는 더 이상 격렬한 분노를 참지 못하고 일제히 뛰쳐나갔다. 모두는 얼굴이 온통 수프 국물에 덮인 그를 끌어내어 땅바닥에 눕혔다. 그는 솥 옆에서 몇 초 동안 몸을 비틀어댔다. 그러고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그때 비행기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와 거의 동시에 막사들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누군가 소리를 질렀다.

부나를 폭격하고 있다!”

엘리위젤은 아버지를 생각했다. 그러나 우선 기뻤다. 수용소의 모든 시설물이 불타고 있는 광경을 본다는 것그것은 얼마나 통쾌한 복수인가! 모두는 독일군이 여러 곳의 전선에서 패퇴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왔지만, 그 이야기를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몰랐었다. 그런데 그 이야기가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모두는 조금도 무섭지 않았다. 그러나 만일 막사 위에 폭탄이 한 개라도 떨어진다면, 그것만으로도 그 자리에서 수백 명의 희생자가 생길 것이다. 그래도 모두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아무튼 그런 종류의 죽음은 두렵지 않았다. 떨어져 폭발하는 폭탄마다 모두에게 기쁨을 안겨 주었고, 삶에 대한 새로운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공습은 한 시간 이상 계속되었다. 공습이 열 시간 동안 열 번만 계속되었더라면……. 별안간 주위는 다시 고요해졌다. 미국 비행기의 마지막 소리가 바람에 실려 멀리 사라졌다. 모두는 다시 무덤 속으로 돌아와 있는 자신들을 발견했다. 거대한 검은 연기 한 줄기가 지평선 위로 치솟고 있었다. 사이렌이 다시 한 번 울리기 시작했다. 공습경보가 해제된 것이다.

 

모두들 막사 밖으로 나왔다. 모두는 불과 연기로 오염된 공기를 마시고 있었지만, 눈은 희망으로 빛나고 있었다. 수용소의 중앙에 위치한 집합장 부근에 폭탄이 하나 떨어졌지만 폭발하지 않았다. 모두는 그것을 수용소 밖으로 들어내야 했다.

수용소 소장과 보좌관들이 간수장들을 데리고 막사 사이의 통로를 따라 순시했다.

그의 얼굴에는 공포의 기색의 완연하게 나타나 있었다.

 

유일한 희생자, 수프로 얼굴이 더럽혀진 그 사람의 시체는 수용소의 한복판에 누워 있었다.

수프 솥은 취사장 안으로 운반되었다. 친위대원들도 망대의 초소에 있는 기관총 뒤로 돌아갔다. 막간은 끝난 것이다.

한 시간쯤 후에 작업에 나갔던 재소자들이 평상시와 같이 발을 맞추어 돌아왔다. 엘리위젤은 아버지의 모습을 보자 기뻤다. 아버지가 말했다.

건물 여러 채가 납작해져 버렸단다. 하지만 창고는 아무 피해도 입지 않았다.”

오후에, 모두는 잔해를 치우기 위해 유쾌한 기분으로 나섰다.

 

일주일 후, 모두는 작업장에서 돌아오는 길에 수용소 중앙에 있는 집합장에 까만 교수대가 하나 세워져 있는 것을 보았다.

모두는 점호가 끝날 때까지는 수프를 배식하지 않는다는 얘기를 들었다.

보통 때보다 배식시간을 늦춘 것이다. 이 명령은 다른 날보다 더 엄중하게 내려졌다.

그래서 이상한 소문이 퍼져 나갔다.

탈모!”

수용소 소장이 별안간 고함을 질렀다.

만 개의 모자가 동시에 벗겨졌다.

착모!”

만 개의 모자가 번개처럼 머리 위로 다시 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