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방/소설

홀로코스트 16 / 하나님 보고만 계시렵니까?

웃는곰 2026. 6. 25. 20:04

홀로코스트 16 / 하나님 보고만 계시렵니까?

 

여름이 끝나가고 있었다.

유대력으로는 한 해가 거의 저물고 있었다. 저주받은 그 해의 마지막 날인

로쉬 하샤나’(Rosh Hashanah)의 저녁에는, 수용소 전체 재소자들의

심리상태와 마찬가지로 사뭇 긴장되고 있었다. 모든 것을 무시한다 해도

이날만은 다른 날과는 달랐다. 한 해의 마지막 날. 마지막이라는

낱말은 아주 이상하게 들렸다. 만일 그것이 정말 마지막 날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모두는 저녁 식사로 아주 걸쭉한 수프를 배식 받았다.

그러나 누구 하나 입을 대지 않았다. 모두는 기도가 끝날 때까지 기다리고 싶었다.

전기철조망으로 둘러쳐진 집합장에는 침묵하는 수천 명의 유대인들이 상처받은 표정으로 모여들었다.

밤이 다가오고 있었다. 모든 막사로부터 재소자들이 무리를 지어 모여들었다.

그 기세는 마치 갑자기 시간과 공간을 정복하여 그것들을 자신들의 의지로

굴복시킬 수 있다는 것을 과시하는 것 같았다. 엘리위젤은 분노했다.

 

나의 하나님, 당신은 무엇입니까? 당신에게 저들의 신앙과 저들의

분노와 저들의 반항심을 나타내고 있는 저 고통 받는 무리에 대해 당신은 무엇입니까?

이 모든 와해와 부패 앞에서 우주만물의 주인 당신의 전지전능함은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무엇 때문에 아직도 저들의 병든 마음과 육신에 고통을 주십니까?’

만 명의 재소자들과 함께 내무반장들, 간수들, 죽음의 관리들이

그 엄숙한 예배에 참여하기 위하여 모였다.

 

하나님을 찬미할지어다…….”

사제의 목소리가 간신히 들려 왔다. 처음에는 그것이 바람 소리 같았다.

하나님의 이름을 찬미할지어다!”

수천 명의 목소리가 감사기도를 되풀이했다.

수천 명의 사람들이 폭풍우 앞의 나무처럼 땅에 엎드렸다.

하나님의 이름을 찬미할지어다!”

왜 하나님을 찬미해야 한단 말인가? 하나님은 수천 명의 어린이들을 구덩이 속에 던져 넣어 불태워 죽이지 않았는가? 하나님은 주일과 축일에도 밤낮으로 여섯 개의 화장장에서 화장을 계속하게 하지 않았는가? 하나님은 그 전능한 힘으로 아우슈비츠와 비르케나우와 부나, 그리고 그 밖의 수많은 살인공장들을 창설하지 않았는가? 그런데도 어떻게 하나님께 그렇게 말할 수 있단 말인가?

여러 민족 가운데서 우리를 선택하시어 밤낮으로 고문을 당하게 하시고, 우리의 아버지, 우리의 어머니, 우리의 형제들이 화장장에서 최후를 마치는 광경을 보게 하신, 영원한 우주의 주이신 하나님을 찬미합시다. 우리를 선택하시어 당신의 제단을 위해서 학살당하게 하신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찬양합시다.”

 

 

사제자의 목소리는 점점 높아지고 있었다. 그러나 목소리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전체 회중의 눈물과 흐느낌과 탄식 속에 묻혀버리는 것이었다.

모든 땅과 우주 만물은 하나님의 것!”

사제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그가 한 말의 뜻을 찾아낼 힘이 없다는 듯 간간이 말을 중단했으며, 그 가락이 목안에 잠겨 버리곤 했다.

엘리위젤은 이렇게 생각했다.

그렇다. 인간이야말로 하나님보다 훨씬 강하고 위대하다. 하나님, 당신은 아담과 이브에게 속임을 당했을 때 그들을 낙원에서 추방했다. 노아의 세대가 당신을 불쾌하게 했을 때, 당신은 그들을 홍수로 다스렸다. 소돔이 당신의 눈에 들지 않게 되자, 당신은 불과 유황비를 내렸다. 그러나 이 사람들, 당신이 배신한 이 사람들, 당신이 고문당하고, 학살당하고, 독가스를 마시고서 불에 타 죽게 내버려둔 이 사람들, 이 사람들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들은 지금 당신에게 기도를 하고 있다! 그들은 지금 당신의 이름을 찬미하고 있다!’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의 전지전능함을 찬미하도다!”

옛날에는 새해 아침이, 새해의 첫날이 인생을 지배했었다. 자기의 범죄가 하나님을 슬프게 한 것을 알고 그의 용서를 간구했었다. 옛날에 행동 하나하나에 세계의 구원이 달려 있다고 굳게 믿었었다. 그러나 지금은 간청하기를 포기해야 했다.

더 이상 슬픔에만 잠겨 있을 수 없었다. 모두는 원고였고 하나님은 피고였다. 거기에는 사랑도 자비도 없었다. 다른 어떤 것보다도 재가 되기만을 기다렸다.

 

그런 속에서 엘리위젤은 하나님보다도 그 인생이 그토록 오랫동안 매달렸던 하나님보다도 스스로가 훨씬 강력함을 느꼈다. 기도에 열중하는 회중이 마치 낯선 사람들처럼 보였고 그들 사이에 자기가 서 있다고 느꼈다.

예배는 사자(死者)를 위한 기도인 카디쉬’(Kaddish)를 바침으로써 끝났다. 회중은 모두 그들의 양친들, 그들의 자식들, 그들의 형제들, 그리고 그들 자신을 위한 카디쉬를 바쳤다.

모두는 오랫동안 집합장에 모여 있었다. 어느 누구도 감히 그 신기루의 망상 속에서 빠져나가지 못했다. 취침시간이 되어서야 재소자들은 천천히 각자의 막사로 발길을 돌렸다. 엘리위젤은 그들이 서로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하고 인사하는 소리를 들었다.

엘리위젤은 아버지를 찾으러 달려갔다. 그렇게 달려가며 더 이상 하나님의 축복을 믿지 않으면서 아버지에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인사를 할 수 있을까 망설여졌다.

 

 

아버지는 무거운 짐이라도 지고 있는 듯이 두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머리를 숙인 채 벽에 기대 있었다. 엘리위젤은 아버지에게 다가가 손을 잡고 거기에 입을 맞추었다. 그 손등에 눈물이 한 방울 떨어졌다. 누구의 눈물일까? 아버지의 눈물? 아니면 아들의 눈물? 부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때처럼 우리 부자가 그토록 명료하게 서로를 이해한 적은 일찍이 한 번도 없었다.

벨 소리가 울리며 모두를 현실로 돌아가도록 다그쳤다. 취침시간이 된 것이다. 모두는 현실로 돌아왔다. 엘리위젤은 자기에게 기울고 있는 아버지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그 늙고 깡마른 얼굴에서 어떤 미소 같은 것, 적어도 그와 비슷한 어떤 것을 찾아보려고 애썼다. 그러나 아무것도 없었다. 어떤 표정의 그림자 하나 비치지 않았다. 아버지는 다만 지쳐 있었을 뿐이었다.

 

욤 키푸르(Yom Kippur). ‘속죄의 날이 왔다.

모두는 단식을 해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로 격렬한 토론이 벌어졌다. 지금 단식을 한다는 건 보다 확실하고 보다 빠른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하기야 모두는 이곳에 끌려온 이래 1년 내내 단식을 하는 것이나 같았다. 1365일이 욤 키푸르, 속죄의 날이었다.

 

그러나 반대 의견 측에서는, 단식을 한다는 것이 위험스럽다는 그 이유 때문에라도 단식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이 철조망이 쳐진 지옥에서도 하나님을 찬미하는 노래를 부를 수 있다는 것을 하나님에게 보여드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엘리위젤은 단식을 하지 않았다. 주된 이유는 단식을 반대하는 아버지를 즐겁게 하기 위해서였지만 한 걸음 더 나아가서는 단식을 해야 할 하등의 이유를 찾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는 더 이상 하나님의 침묵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수프 사발을 들이마시는 자신의 태도 속에서도 하나님에 대한 반항과 항의의 뜻을 숨기지 않았다.

그리고 딱딱한 빵 조각을 조금씩 뜯어먹었다. 그러나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엄청난 공허감이 밀려들었다.

 

친위대원들은 모두에게 근사한 새해 선물을 주었다.

막 작업장에서 돌아왔을 때 수용소 정문을 들어서자마자, 모두는 뭔가 평소와는 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점호시간도 평상시처럼 오래 걸리지 않았다. 저녁 수프가 아주 빠른 속도로 배식되었고 모두는 눈 깜짝할 사이에 그것을 먹어치웠다.

엘리위젤은 이제 아버지와 같은 막사에 있지 않았다. 다른 작업반으로 옮겨져, 하루에 열두 시간 동안씩 무거운 돌덩이들을 이곳저곳으로 운반해야 했다. 새 막사의 내무반장은 독일계 유대인으로 조그만 키에 날카로운 눈을 갖고 있었다. 그는 그 날 저녁, 모두에게 식사를 마친 다음에는 아무도 밖에 나가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리고 얼마 안 되어, ‘추려낸다는 무서운 말이 막사 안팎에 나돌기 시작했다.

 

모두는 그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알고 있었다. 친위대원 한 사람이 모두를 자세히 검사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에게 허약한 사람으로 보이면 화장장으로 보낼 후보자의 수첩에 번호가 적히게 되는 것이다. 모두는 그렇게 추려진 사람들을 회교도라고 불렀다.

저녁 수프를 먹고 난 다음, 모두는 침대 사이사이에 모였다.고참 재소자들이 말했다.

 

당신들은 이렇게 늦게 이곳으로 오게 되어 운이 좋은 게요. 2년 전에 비하면 오늘의 이 수용소는 천국이나 다름없으니까요. 그 당시 이 부나는 진짜 지옥이었죠. 물도 없고 담요도 없을 뿐만 아니라 빵과 수프도 형편없이 적었지요. 모두는 밤마다 영하의 강추위 속에서 거의 알몸으로 잠을 잤어요. 날마다 시체가 수백 구씩 쌓이고, 일은 일대로 고됐어요.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천국이라구요, 간수들은 매일 재소자를 몇 명씩 죽이라는 명령을 받았기 때문에, 일주일마다 추려내기가 실시되었어요. 무자비하게 추려냈지요……. 정말이지, 당신들은 운이 좋은 편이라구요.”

 

그만요! 조용히 좀 해요! 그런 이야기는 내일이나 다른 기회에도 얼마든지 할 수 있을 테니 그만 해두세요.”

엘리위젤이 이렇게 말하자 그들은 왁자지껄 웃음을 터뜨렸다. 역시 그들은 고참들이었다.

겁이 나는 모양이지? 우리 역시 처음에는 겁이 났었지. 그 당시에는 겁나는 일이 하도 많았으니까.”

 

노인들은 사냥꾼들에게 쫓긴 듯이 한쪽 구석에 꼼짝하지 않고 말없이 박혀 있었다.

그들 가운데 어떤 한 사람은 기도를 하고 있었다.

한 시간 동안의 유예. 그 한 시간이 지나면 모두는 사형,

또는 집행유예의 판결을 알게 될 것이었다. 엘리위젤은 갑자기 아버지는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이 났다.

아버지는 어떻게 무사할 수 있을까? 나이도 많으시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