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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코스트 13 / 금이빨을 빼려는 자들

웃는곰 2026. 6. 21. 10:14

홀로코스트 13 / 금이빨을 빼려는 자들

 

거기에는 폴란드 민간인도 상당수 있었으며 프랑스 여자도 몇 사람 끼어 있었다.

그녀들은 악사들에게 우정에 찬 눈길을 던지고 있었다.

십장인 프라네크가 나를 한쪽 구석에 있게 했다.

자살 행위는 하지 말아라. 서두를 필요도 없어.

다만 친위대원들이 들이닥칠 때만 조심하면 되는 거야.”

엘리위젤이 말했다.

부탁드리고 싶은데요……. 전 아버지 곁에 있고 싶어요.”

좋아. 아버지도 네 곁에서 함께 일하게 해주지.”

 

운 좋게 그들 작업반에는 요시와 티비라는 형제인 두 소년이 소속되어 있었다.

체코 출신인 그들의 부모는 이미 비르케나우에서 죽음을 당했다. 그들 형제는 육체와 영혼을 의지하고 살았다.

엘리위젤은 그 형제와 곧 친구가 되었다.

들은 시오니즘 청소년 단체에 가입한 적이 있었으므로 유대인의 노래를 많이 알고 있었다.

그래서 종종 요단강의 고요한 물과 예루살렘의 장엄한 신성(神聖)

환기시켜 주는 곡조를 콧노래로 흥얼거리곤 했다.

 

또 때로는 팔레스티나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들의 양친도 엘리위젤의 양친과 마찬가지로 용기가 부족한 탓으로 피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있었는데도 가산을 정리하고 외국으로 이주할 기회를 놓치고 말았었다.

모두는 해방이 될 때까지 살아남아 있을 수 있다면, 단 하루라도 유럽 땅에 머물지 않기로 결심했다.

하이파로 떠나는 첫 배를 타리라고 결심했다.

여전히 밀교의 몽상에 심취해 있는 아키바 드루머는 말하기를,

성경 속에 있는 한 구절을 수리학(數理學)의 이론에 따라 해석해 보건대 앞으로

몇 주일 안에 그들은 구출되리라는 예언이 가능하다고 했다.

 

모두는 천막에서 악사들의 막사로 옮겨졌다. 담요 한 장과 세면기 하나,

그리고 비누도 한 개씩 얻을 수 있었다. 내무반장은 독일계 유대인이었다.

유대인 밑에 있는 것이 좋았다. 그의 이름은 알폰스였다. 그는 젊은 사람이었으나 얼굴이 유별나게 늙어 보였다. 그는 자기의 담당 막사를 위해 거의 헌신적으로 노력했다. 가능할 때에는 자유보다는 여분의 수프 한 그릇 더 얻어먹기를 꿈꾸고 있는 젊은이나 허약자, 그리고 모두를 위해 수프 끓이는 솥을 하나 더 마련해 주기도 했다.

 

어느 날, 창고에서 막 돌아왔을 때, 막사의 사무원이 엘리위젤을 불렀다.

“A7713!”

접니다.”

식사 후에 치과의사한테 가야 한다.”

저는 이에 이상이 없는데요.”

식사 후, 잊지 말도록.”

 

엘리위젤은 병원 막사로 갔다. 병원 문 앞에는 20여 명의 재소자가 줄을 지어 기다리고 있었다. 얼마 안 되어 그곳에 불려온 이유를 알았다. 금니를 빼기 위해서였다.

체코 출신의 유대인인 치과의사는 송장 같은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그가 그의 입을 벌릴 때, 그 안에서는 누렇게 썩은 충치들의 소름끼치는 모습이 보였다. 엘리위젤은 의자에 앉아 공손하게 물었다.

선생님, 무얼 하시려는 건가요?”

그는 무뚝뚝하게 대꾸했다.

네 치관을 빼려는 것이야.”

엘리위젤은 순간적으로 몸이 불편한 척하기로 꾀를 부렸다.

 

 

선생님, 며칠만 기다려 주시면 안 될까요? 몸이 아주 좋지 않아서요. 몸에 열이 있고…….”

그는 눈살을 찌푸리고 잠깐 생각하더니 엘리위젤의 맥박을 짚어 보았다.

좋아, 좀 낫거든 나한테 와. 하지만 내가 너를 부를 때까지 기다리지 마!”

엘리위젤은 일주일 후에 그를 찾아갔다. 그리고 지난번과 같은 핑계를 댔다. 몸에 조금도 차도가 없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조금도 놀라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그가 믿는지, 안 믿는지 알 수가 없었다. 다만 그는 다시 오기로 한 약속을 지켜준 것이 기쁜 모양이었다. 그는 또 한 번의 기회를 주었다.

엘리위젤의 방문이 있은 후 며칠 만에 치과의원은 폐쇄되고, 담당 의사는 감옥에 수감되었다. 그는 교수형을 받았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그는 재소자들의 금니를 사적인 거래에 이용했다는 일방적인 혐의를 받았다는 것이다. 엘리위젤은 그에게 조금도 동정심을 느끼지 않았다.

 

엘리위젤은 그런 사태가 일어난 것을 기쁘게 생각하기까지 했다. 어쨌든 금 치관을 잃지 않은 것이다. 금 치관으로 어느 날이든 무엇과 유용하게 바꿀 수도 있는 것이다. 빵을 얻거나 생명을 구하는 데 필요한 것이다. 모두는 이제 매일 먹는 수프 접시와 곰팡내 나는 굳은 빵 외에는 그 어떤 것에 대해서도 거의 관심이 없었다. 빵과 수프, 그것이 인생 전부였다. 수감자는 모두 하나의 살덩어리였다. 아니, 그만도 못한 하나의 굶주린 위장(胃腸)에 불과했는지도 모른다. 위장만은 시간의 흐름을 알고 있으니까.

 

창고에서 일할 때 엘리위젤은 가끔 한 프랑스 처녀를 만났다. 그러나 말이 통하지 않았으므로 의견을 주고받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거기서 아리안 사람으로 통하고 있었지만 보기에 유대인 같았다. 그녀는 강제노동자로 추방된 처지였다.

어느 날 이데크가 광기의 발작을 일으켰는데, 그때 엘리위젤이 방해물이 되었었다. 그는 마치 야수처럼 엘리위젤에게 달려들어 가슴을 치고 머리를 쥐어박으며 땅바닥에 내동댕이쳤다가는 위로 던져 올리기도 했다. 그의 주먹세례는 더욱 격렬해져서 엘리위젤은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고 말았다.

엘리위젤이 고통을 참으며 차마 비명을 지를 수 없어 입술을 깨물고 있노라니까, 이데크는 그것이 오히려 무언의 반항으로 보였는지 더욱 심하게 두들겨 팼다.

 

그러다가 갑자기 그의 광기가 가라앉았다. 그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엘리위젤이 제자리로 가게 내버려 두었다. 그것은 마치, 우리 두 사람이 어떤 연극에 참여하여 제각기 맡은 역할을 해내고 퇴장하는 것 같았다.

엘리위젤은 다리를 질질 끌며 할당 구역인 구석자리로 갔다. 온몸이 쑤시고 아팠다. 그때 피 묻은 이마를 닦아주는 누군가의 차가운 손길을 느꼈다. 예의 프랑스 처녀였다. 그녀는 슬픈 미소를 지어 보이며 엘리위젤의 손에 빵 한 조각을 슬쩍 쥐어주었다. 그녀는 잠자코 엘리위젤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그녀가 뭔가 말하고 싶으면서도 두려움 때문에 말문이 막혀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한참 동안 그러고 있더니, 이윽고 안색을 활짝 펴며 거의 완벽한 독일말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입술을 꼭 다물고 참아라, 꼬마야. 울지 마. 훗날을 위해 너의 분노와 증오를 고이 간직하는 거야. 그 날은 반드시 올 거야. 하지만 지금은……. 기다려야 해. 이를 악물고 기다리는 거야.”

엘리위젤은 놀랐다. 그리고 더는 아무 말도 자지 못한 채 헤어졌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엘리위젤은 지하철 구내에서 신문을 읽고 있었다. 그의 맞은편에 까만 머리에 꿈꾸는 듯한 눈을 가진 아주 아름다운 한 여자가 앉아 있었다. 그는 어디선가 그런 눈동자를 본 기억이 났다. 바로 그 처녀였다. 엘리위젤이 다가갔다.

나를 아시겠습니까?”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는데요.”

“1944년에, 당신은 독일의 부나에 계시지 않았습니까?”

. 그런데요?”

당신은 그때 전기부품 창고에서 일하고 있었고…….”

, 맞아요…….”

그녀는 약간 당황한 채 잠시 침묵한 다음 더듬거렸다.

잠깐만요……. 기억이 나요.”

수용소의 간수 이데크, 어린 유대 소년, 당신의 친절한 말…….”

 

두 사람은 지하철을 나와 커피숍 테라스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리고 그 날 저녁 내내 지난 일을 회상했다. 엘리위젤은 헤어지기 전에 그녀에게 말했다.

한 가지 질문을 해도 되겠어요?”

짐작이 가지만, 물어 보세요.”

 

짐작이 간다고요?”

내가 유대인이 아니냐는 거겠죠? 맞아요. 나도 유대인이에요. 신앙이 깊은 집안에서 태어났어요. 프랑스가 독일 점령군의 치하에 있는 동안, 나는 가짜 신분증을 구해 가지고 아리안 사람으로 행세했어요. 그 때문에 강제노동자 대열에 끼이게 되었던 거예요. 그리고 독일로 추방될 때 수용소를 탈출했어요. 그 당시 작업장에서는 내가 독일 말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아무도 몰랐어요. 아마 당신은 그 점이 미심쩍었겠지만요. 사실, 당신에게 몇 마디 한 것도 여간 위험한 일이 아니었어요. 하지만 난 당신이 배반할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았어요…….”

 

이데크의 발작은 또 한 번 있었다. 그것은 독일군의 감시를 받으며 열차에 디젤 엔진들을 싣고 있을 때였다. 그때 이데크의 신경은 극도로 날카로운 상태였다. 그는 안간힘을 써서 자제하고 있다가 마침내 폭발하고 말았다. 이번에는 엘리위젤의 아버지가 그 희생자였다. 이데크가 고래고래 고함을 질러댔다.

이 게으름뱅이 늙은 악마야! 네놈이 이 일을 망쳐놓겠다는 거야 뭐야?”

그러면서 그는 쇠막대기로 아버지를 구타하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처음에는 웅크린 자세로 맞고 있다가, 벼락을 맞고 꺾이는 나무토막처럼 허리가 꺾이며 땅바닥에 나뒹굴고 말았다.

 

엘리위젤은 자기 아버지가 그렇게 되는 광경을 꼼짝하지 않고 지켜보았다. 끝까지 가만히 있었다. 그때 아버지에 대한 걱정보다는 자신이 두들겨 맞지 않기 위해 무사히 도망갈 수 있는 방법을 궁리하고 있었다. 그때 그는 간수에 대해서가 아니라, 아버지에게 어떤 분노를 느끼고 있었다.

이데크가 발작을 일으킬 때, 피신하지 못한 아버지에 대해서 화가 났다. 집단수용소 생활이 그를 그렇게 만들어버린 것이다.

악대의 십장인 프라네크가 어느 날 엘리위젤의 입안에 금 치관이 있다는 것을 알아 차렸다.

꼬마야, 네 금 치관을 내게 다오.”

엘리위젤은 치관이 없으면 음식을 먹을 수 없기 때문에 그것을 줄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그들이 먹을 것을 많이 주는 것도 아니잖아?”

 

엘리위젤은 다른 핑계를 댔다. 치관은 이미 건강진단 때 명단에 올라 있으므로 그것이 없어진다면 당신이나 나나 곤란을 겪게 될 것이라고 말해 주었다.

치관을 나에게 주지 않으면, 너는 더 많은 대가를 치르게 될 거다.”

이 동정심 많고 이해심이 많던 젊은이는 어느새 전혀 다른 사람으로 돌변해 있었다. 그의 눈빛은 욕망으로 번뜩였다. 엘리위젤은 아버지께 의견을 물어 보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럼, 아버지한테 물어 봐. 그리고 내일까지는 대답해 주어야해.”

그 사실을 아버지에게 이야기하자 아버지는 금세 안색이 창백해졌다. 그러고는 한참 있다가 말했다.

얘야, 그건 안 돼. 그걸 주면 안 돼.”

안 주면 빼앗아 갈 거예요!”

감히 그러지는 못할 게다.”

 

그러나 프라네크는 엘리위젤의 약점을 알고 있었다. 그는 그 약점을 이용했다. 엘리위젤의 아버지는 군대 생활을 한 경험이 없었다. 그래서 행군할 때는 발을 제대로 맞추지 못했다.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이동할 때면 언제나 구령에 정확하게 발을 맞추어 행군하게 되어 있었다. 이때가 바로 프라네크가 아버지를 괴롭히고 야만적인 구타를 가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왼발, 오른발, 주먹 한 방! 왼발, 오른발, 방망이 한 대!

엘리위젤은 아버지한테 행군교습을 실시하여 구령에 맞추어 발걸음을 옮기는 방법을 가르치기로 했다. 그래서 시간 날 때마다 막사 앞에서 연습을 했다.

 

엘리위젤이 왼발, 오른발!” 하고 구령을 하면 아버지가 거기에 따라 걸음을 옮겼다. 재소자들이 두 사람을 보고 웃어댔다.

저 꼬마 장교님께서 늙은 친구에게 행군법을 가르치는 꼴 좀 보게. 이봐, 장군! 그 늙은이에게서 교습 대가로 빵을 많이 받나?”

그러나 아버지의 진도는 별 효과가 없었다. 프라네크의 주먹세례가 여전히 계속되었다.

아직도 발을 맞추지 못한단 말야? 이 게으름뱅이 늙은 놈아!”

 

이런 장면이 2주일 동안 되풀이되었다. 엘리위젤은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다.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엘리위젤이 그에게 굴복하는 날이 왔을 때, 프라네크는 야만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알고 있었지. 내가 이기리라는 걸 알고 있었다구. 더 늦기 전에 굴복하기를 잘한 거야. 나를 기다리게 한 대가로 넌 빵 배급을 한번 거르게 될 거야. 그 빵은 너의 치관을 뽑아주는 수고조로 나의 친구인 바르샤바 출신의 유명한 치과의사에게 주게 되어 있으니까.”

뭐라고요? 내 빵을 내 치관을 뽑는데 주어요?”

프라네크는 이빨을 하얗게 드러내 보이며 비웃었다.

그럼, 어떻게 하면 좋겠니? 내 주먹으로 네 이빨을 부셔놓을까?”

 

그 날 저녁, 바르샤바 출신의 치과의사가 세면장에서 녹슨 숟가락 하나로 엘리위젤의 치관을 뽑아냈다.

그 후로 프라네크는 친절해졌다. 가끔 그는 여분의 수프를 주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도 오래 가지 못했다. 2주일 후에 폴란드 사람들은 모두 다른 수용소로 옮겨졌기 때문이다. 엘리위젤은 그렇게 무참하게 치관을 빼앗기고 말았다.

 

그들 폴란드 사람들이 떠나기 며칠 전에 또 하나 새로운 경험을 했다.

어느 일요일 아침이었다. 그 날 모든 작업반은 일하러 나갈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그 이데크가 막사 안에 머물러 있지 못하게 했다. 모두는 창고로 가야만 했다. 이런 갑작스런 작업열(作業熱)에 모두는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이데크는 창고에 도착하여 모두를 프라네크에게 인계하면서 주의를 주었다.

네 마음대로 해. 하지만 무엇이든 시켜야 한다. 그렇지 않을 땐 나한테 문책을 당할 줄 알아.”

그는 그 한 마디를 남겨 놓고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