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코스트 12 / 동성연애자들의 친절
수용소는 마치 전염병이 휩쓸고 간 곳처럼 텅 비고 죽은 듯 적막했다.
옷을 잘 입은 재소자 몇 사람이 막사 사이를 거닐고 있을 뿐이었다.
그들은 늘 그랬던 것처럼 먼저 샤워를 해야 했다.
수용소 소장을 샤워장에서 맞았다. 그
는 건장하고 단단한 체격의 사나이로 황소처럼 살찐 목과 두툼한 입술에 곱슬머리를 하고 있었다.
그는 친절해 보였고 가끔 감청색의 눈에 웃음을 지었다.
일행 가운데 10세에서 12세 사이의 어린이들이 몇 명 있었다.
소장이 이들에게 관심을 보이며, 그들에게 먹을 것을 갖다 주라고 부하들에게 명령했다.
모두는 새 옷을 지급 받은 후에 두 개의 천막에 나뉘어 수용되었다.
거기에서 각각 작업반으로 편성된 후에야 막사의 건물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 날도 저녁이 되어서야 낮 동안에 작업장에 나가 있던 작업반이 돌아왔다.
점호가 끝난 후에 새로운 정보를 얻기 위해 낯익은 얼굴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고참 재소자들에게 어느 작업반이 제일 좋고, 어느 막사에 들어가야 편한가를 물어 보기도 했다.
재소자들의 일치된 의견은 이러했다.
“부나는 아주 좋은 수용소이다. 여러분이 견딜 만할 곳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건설 작업반에 편성되지 않는 것이다.”
그들은 마치 작업반의 선택이 자기 손에 달려 있다는 투로 말했다. 천막의 반장은 독일 사람이었다.
그는 자객을 닮은 얼굴과 살찐 입술에, 손은 늑대의 발톱과 흡사했다.
그는 살이 너무 쪄서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했다. 그러나 그 역시 소장과 마찬가지로 어린이들을 좋아했다.
그는 천막에 들어오자마자 어린이들에게 빵이며 수프며 마가린을 갖다 주었다(그러나 사실은 순수한 애정에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그곳 동성연애자들 사이에서 어린이가 거래되고 있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았다).
반장이 큰소리로 알려주었다.
“여러분은 이곳 검역소에서 3일간 머문 다음 일을 하게 될 것이다. 내일은 건강진단을 받는다.”
험상궂은 얼굴에 불량배의 눈초리를 가진 소년 조수 하나가 엘리위젤한테 다가왔다.
“너, 좋은 반에 들고 싶지?”
“물론이야. 하지만 난 아버지와 함께 있고 싶어.”
“좋아. 그렇게 해줄 수 있어. 그 대신 난 네 신발을 갖고 싶다. 물론 다른 신발을 주겠어.”
엘리위젤은 거절했다. 신발은 그가 지닌 재산의 전부이기 때문이었다.
“너에게 남은 빵과 마가린을 주겠어.”
그러나 그는 신발에 들인 눈독을 거두지 않았다. 그래도 엘리위젤은 끝내 신발을 양보하지 않았다(나중에 그 신발을 똑같은 수법에 빼앗기고 만다. 교환조건이었지만 아무것도 받지 못한 채).
건강진단은 아침 이른 시각에 바깥에서, 긴 의자에 앉은 세 사람의 의사 앞에서 실시되었다. 첫 번째 의사는 전혀 몸을 진찰하지 않았다. 그는 다만 질문하는 것으로 끝냈다.
“너 건강하지?”
누가 감히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다음 차례인 치과의사는 아주 양심적인 사람으로 보였다. 그는 입을 크게 벌리라고 했다. 사실은 그가 찾고 있던 것은 충치가 아니라 금니였다. 금니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누구나 그의 번호가 명단에 기록되었다. 엘리위젤은 금 치관이 한 개 있었다.
첫 사흘은 재빨리 지나갔다. 그러나 4일째 되는 날 새벽에 전원이 천막 앞에 정렬해 있었다. 그때 간수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마음에 드는 사람들을 고르기 시작했다.
“너……. 너……. 너, 그리고 너…….”
마치 상품이나 가축을 고르듯이, 그들은 손가락으로 사람을 가리켰다. 그들은 젊은 간수를 따라갔다. 그는 수용소 정문 근처의 첫 막사 입구 앞에 세웠다. 그곳은 관현악대의 막사였다. 그가 명령했다.
“들어가!”
다들 놀랐다. 음악과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인가?
악대는 언제나 똑같은 군대행진곡을 연주했다. 수십 개의 작업반이 행진곡에 발을 맞추어 작업장을 향해 출발했다. 각 작업반의 간수들이 구령을 붙였다.
“왼발, 오른발, 왼발, 오른발…….”
친위대 장교들이 펜과 종이를 들고 작업장으로 나가는 사람들의 숫자를 세었다. 악대는 마지막 작업반이 지나갈 때까지 똑같은 행진곡을 반복해서 연주했다. 이윽고 악장의 지휘봉과 함께 연주가 멈추었다. 간수가 고함을 질렀다.
“5열로 정렬!”
모두는 행진곡도 없이 발을 맞추어 수용소를 떠났다. 그러나 귓전에는 아직도 행진곡이 들리고 있었다.
“왼발, 오른발, 왼발, 오른발…….”
옆에서 걷고 있는 악사들에게 말을 걸었다. 악사들과 더불어 5열로 정렬해서 행진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거의가 유대인이었다. 줄리에크는 폴란드 출신으로 안경을 끼고 있었으며 창백한 얼굴에 냉소적인 미소를 짓고 있었고, 네덜란드 출신으로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인 루이스는 베토벤을 연주하지 못하게 한다고 해서 불평이 대단했다.
유대인에게는 독일 음악을 연주하는 것이 허용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밖에 활달한 성격의 한스는 젊은 베를린 시민이었으며 십장인 프라네크는 폴란드 사람으로 바르샤바의 대학생이었다.
줄리에크가 엘리위젤에게 말했다.
“모두는 이곳에서 멀리 않는 전기부품 창고에서 일한다. 우리가 하는 일은 조금도 힘들거나 위험하지는 않아. 하지만 간수인 이데크가 가끔 광기를 발작하기 때문에 골치야. 그럴 때는 그를 피하는 것이 상책이지.”
한스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넌 참 운이 좋은 거다. 좋은 반에 떨어진 거야.”
십여 분 후에 창고 앞에 당도했다. 독일인 ‘고참’ 군속 한 사람이 맞으러 나왔다. 그는 상인이 누더기 지폐를 받을 때에 짓는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악사들의 말은 맞았다. 일은 힘들지 않았다. 땅바닥에 앉아 나사못이나 전구, 그 밖의 자잘한 전기부품들을 헤아려야 했다. 간수는 하는 일의 중요성을 장황하게 늘어놓으면서, 일을 게을리 하는 사람은 그가 알아서 처리하겠다며 으름장을 놓았다. 새로 만난 동료들은 엘리위젤을 안심시켰다.
“겁낼 없어. ‘고참’의 눈치를 보느라 저렇게 말할 수밖에 없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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