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방/소설

홀로코스트 10 / 아버지의 거짓말

웃는곰 2026. 6. 18. 20:15

홀로코스트 10 / 아버지의 거짓말

 

첫인상으로는 비르케나우보다는 나아 보였다.

목조 막사 대신에 콘크리트 2층 건물이 늘어서 있었다.

그리고 여기저기에 조그만 정원도 가꾸어져 있었다.

모두는 재소자들을 수용하는 구역 중의 한 곳으로 끌려가 입구 옆 땅바닥에 앉았다.

또 다른 기다림이 시작된 것이다.

이따금 그들 중에서 한 사람씩 안으로 들어가게 했다. 그것은 샤워를 시키기 위해서였는데,

이 수용소 안에서는 모든 건물 안으로 들어갈 때마다 샤워를 시키는 것이

하나의 필수적인 절차였다.

 

한 건물에서 다른 건물로 간단히 지나갈 때도 그때마다

하루에도 몇 번이고 목욕을 하게 되어 있었다.

뜨거운 물로 목욕을 하고 나온 사람은 밤공기 속에서 떨면서 기다려야 했는데

옷을 다른 건물에 벗어놓고 왔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다른 옷을 배급받게 되어 있었다.

한밤중이 되자 뛰라는 명령을 받았다. 간수들이 또 고함을 질러댔다.

더 빨리! 빨리 뛰면 뛸수록 빨리 잠자리에 들 수 있다.”

몇 분 동안의 미친 듯 질주한 끝에 또 다른 구역의 막사 앞에 당도했다.

담당 감시자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젊은 폴란드 사람으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모두는 지쳐 있었지만 꾹 참고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동지 여러분, 여러분은 아우슈비츠 집단수용소에 와 있습니다.

여러분 앞에는 긴 고난의 길이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용기를 잃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이미 선택이라는 가장 큰 위험을 모면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낙담하지 말고 힘을 내십시오. 우리 모두 자유의 날을 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삶에 믿음을 가지십시오. 무엇보다도 믿음이 중요합니다. 절망하지 마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죽음을 면하게 될 것입니다. 지옥은 영원히 계속되지 않습니다. 이제 여러분에게 간청을­아니, 충고를 하겠습니다. 여러분은 동지애를 잊지 마십시오. 모두는 모두가 형제이며 우리 모두가 똑같은 운명의 시련을 겪고 있습니다. 우리의 머리 위에는 똑같은 연기가 감돌고 있습니다. 서로 도웁시다. 그것만이 우리가 살아남는 방법입니다. 이상으로 충분히 말씀드렸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지쳐 있겠지만 내 말을 들어주십시오. 여러분은 지금 17동에 수용돼 있습니다. 나는 여기에서 질서유지 책임을 맡고 있습니다. 어느 누구에게나 불만이 있는 분은 누구든지 나를 찾아주십시오. 이상입니다. 이제 잠을 자도 좋습니다. 침대 하나에 두 사람씩 자야 합니다. 편히 주무십시오.”

 

 

처음으로 인간적인 말을 들었다. 모두는 침대로 올라가자마자 깊은 잠에 곯아 떨어졌다.

다음날 아침, ‘고참재소자들은 지금까지와는 달랐다. 그들은 야만스럽게 대하지 않았다. 모두는 세면장으로 갔고 새 옷도 지급 받았으며 블랙 커피도 대접받았다.

아침 열 시쯤, 청소를 하러 막사 밖으로 나왔다. 바깥에는 햇볕이 따사로웠다. 모두가 사기는 많이 회복되어 있었다. 잠을 잘 잔 덕분이었다. 친구끼리 만나 몇 마디 말도 주고받았다. 이미 사라진 사람들에 대한 것만 말고는, 모든 것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체적인 의견으로는 전쟁이 끝나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정오쯤이 되어 수프가 배식되었다. 모두가 걸쭉한 수프를 한 그릇씩 먹었다. 엘리위젤은 배가 고팠지만, 심하게 두통이 일어 수프에 입을 대지 못했다. 그는 아직도 언제나처럼 버릇없는 아이였던 것이다. 아버지가 대신 수프 그릇을 싹 비웠다.

막사의 그늘 속에서 짧으나마 낮잠을 즐겼다. 그 친위대 장교도 저 진흙탕 막사의 바닥에 틀림없이 누워 있을 터였다. 아우슈비츠는 실제로 휴식의 장소였다…….

 

오후에 모두는 줄을 서서 정렬했다. 재소자 세 명이 책상 하나와 몇 가지 의료 기구를 가지고 왔다. 왼팔의 옷소매를 걷고 한 사람씩 책상 앞을 지나갔다. 고참들은 손에 바늘을 들고 왼팔에 번호를 새겨 주었다. 엘리위젤은 A­7713번이었다. 그 이후부터 그는 다른 이름을 갖지 못했다.

해질 녘에 점호가 있었다. 각 작업장에 나갔던 재소자들이 돌아왔다. 문 옆에서는 악대가 군대행진곡을 연주하고 있었다. 수만 명의 재소자들은 친위대원들이 그들의 번호를 확인하는 동안 줄을 서 있었다.

점호가 끝난 다음, 그들은 막사에서 흩어져 나와 최근에 호송되어 온 사람들 가운데에 혹시 친구나 친척, 이웃들이 있나 없나 찾아다녔다.

 

며칠이 지났다. 아침에는 블랙커피가 나오고 정오에는 수프가 나왔다. 셋째 날이 되었을 때부터 엘리위젤은 어떤 종류의 수프건 게걸스럽게 먹어치웠다. 오후 6시에 점호가 있고 빵과 그밖의 것이 배식되었다. 모두는 9시에 취침했다.

아우슈비츠에 온 지 8일째가 되었다. 그 날 점호 때였다. 점호의 종료를 알리는 벨 소리만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뜻밖에도 어떤 사람이 행렬 사이를 지나면서 묻는 소리를 들었다.

여러분 가운데 혹시 시게트에서 온 엘리 위젤이란 사람 없습니까?”

엘리위젤을 찾고 있는 상대는 주름살이 많은 얼굴에 안경을 낀 조그만 사람이었다. 아버지가 대답했다.

내가 시게트에서 온 위젤이오.”

 

 

그 키 작은 사람은 눈을 가늘게 뜨고 한참 동안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아저씨는 저를 알아보시지 못하는군요저를 못 알아보시는군요. 저는 아저씨의 친척입니다. 슈타인이라고 해요. 저를 벌써 잊으셨습니까? 슈타인이라고요! 앤트워프의 슈타인. 저는 라이젤의 남편이고 아저씨 부인이 라이젤의 아주머니가 되시지요. 아주머니께서는 종종 우리에게 편지를 보내셨어요. 아주 많은 편지였지요!”

그러나 아버지는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아버지는 항상 유대인 사회의 공공업무에 바빴으므로 집안일에 대해서는 모르는 것이 많았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항상 바깥일에 정신을 두었었다. 언젠가 사촌 한 사람이 시게트로 찾아온 적이 있었다. 그녀는 머무는 동안 여러 차례 아버지랑 함께 식사를 했는데도, 아버지는 2주일이 지난 후에야 처음으로 그녀가 와 있다는 것을 알았을 정도였다. 그러니, 슈타인을 알아볼 리가 없었다.

엘리위젤은 즉시 그를 알 수 있었다. 그녀의 아내 라이젤을, 그녀가 벨기에로 이사 가기 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가 말을 이었다.

저는 1942년에 추방되었어요. 아저씨가 살던 곳의 유대인들이 이곳으로 호송되어 왔다는 소식을 듣고 이렇게 찾아왔지요. 저는 아저씨가 라이젤과 제 어린 자식의 소식을 알고 계시리라고 생각했거든요. 아내와 자식은 제가 추방당할 때 엔트워프에 남아 있었어요.”

 

 

엘리위젤은 그들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1940년 이후, 어머니는 그들에게서 단 한 장의 편지도 받지 못했었다. 그러나 거짓말을 했다.

맞아요, 어머니는 그들에게서 소식을 듣고 계셨어요. 라이젤도 잘 있고 아이도 잘 있다더군요.”

그는 기뻐서 눈물을 흘렸다. 그는 우리와 함께 더 있으면서 기쁜 소식을 실컷 듣고 싶어 했지만, 그때 친위대원 한 명이 다가왔으므로 떠나야만 했다. 그는 돌아가면서, 내일 다시 오겠다고 큰소리로 말했다.

점호의 종료를 알리는 벨이 울렸다. 모두는 저녁식사로 주는 빵과 마가린을 받으러 갔다. 엘리위젤은 배가 너무 고팠으므로 음식을 배급받자마자 즉석에서 먹어치웠다.

아버지가 말했다.

 

음식을 그렇게 한꺼번에 먹어버리면 안 된다. 내일은 사정이 다를지도 모르니까.”

그러나 아버지의 충고는 너무 늦었다. 그의 손에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아버지는 아직 음식을 들기도 전이었다. 아버지가 말했다.

난 배가 고프지 않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