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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코스트 7 / 화장장 불구덩이 앞에서

웃는곰 2026. 6. 15. 19:53

홀로코스트 7 / 화장장 불구덩이 앞에서

 

저 너머 저기 굴뚝이 보이지? 보이겠지! 그리고 불꽃도 보이지?

저 너머, 저기가 너희들을 데리고 갈 곳이야.

저 너머, 거기는 너희들의 무덤이라구.

그걸 아직도 몰랐나? 이 바보 같은 놈들아, 그래 아무것도 몰랐단 말이야?

너희들은 화장되는 거야. 지글지글 튀겨져서, 나중에는 재가 되어 날아간단 말이다!”

 

모두가 그것을 보았다. 악담자의 분노는 발작적으로 변하고 있었다.

모두는 꼼짝하지 않은 채 돌처럼 굳어졌다.

이게 악몽이 아닐까? 상상할 수도 없는 악몽 아닌가 말이다.”

주위에서 나직이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모두는 뭔가 해야 해. 우리 자신을 죽어 가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어!

짐승처럼 학살을 당할 수야 없지. 반란을 일으켜야 해!”

그들 가운데 건장한 체격의 젊은이가 몇 사람 있었다.

 

그들은 칼을 지니고 있었다. 그들은 무장한 감시병들에게 운명을 맡기고 행동을 취하자고 선동했다.

한 젊은이가 외쳤다.

아우슈비츠의 존재를 세상에 알립시다! 아직 도망칠 수 있는 시간이 남은 모든 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알려야 합니다.”

그러나 나이 든 사람들은 자기 자식들에게 어리석은 행동은 하지 말라고 간곡히 타일렀다.

너는 목에 칼이 들어오더라도 절대로 신앙을 잃어서는 안 된다. 그것이 우리 현인들의 가르침이기 때문이야…….”

 

반란의 바람은 슬그머니 가라앉았고 광장을 향한 행진은 계속되었다. 광장의 중앙에는 그 악명 높은 멩겔레 박사가 서 있었다(그는 전형적인 친위대 장교로, 잔혹한 얼굴에 비지성적인 인상을 주었으며 외알 안경을 걸치고 있었다). 그는 지휘봉을 들고 다른 장교들의 사이에 서 있었다. 그는 지휘봉을 오른쪽 왼쪽으로 쉴 새 없이 흔들어댔다.

엘리위젤은 이미 그의 앞에 와 있었다.

넌 몇 살이지?”

그는 마치 아버지 같은 어조로 물었다.

열여덟 살입니다.”

엘리위젤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건강한가?”

.”

직업은?”

학생이었다고 말해야 할까 하다가 대답했다.

 

농부입니다.”

엘리위젤은 자기 귀로 자기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그 대화는 몇 초도 걸리지 않았다.

그러나 그 순간이 영겁처럼 느껴졌다. 그의 지휘봉이 왼쪽으로 움직였다.

엘리위젤은 반 발자국 앞으로 나섰다.

우선 그들이 아버지를 어느 쪽으로 보내는지, 그것을 보기 위해서였다.

만일 아버지가 오른쪽으로 간다면 아버지를 따라 그쪽으로 갈 작정이었다.

지휘봉은 아버지에게도 역시 왼쪽으로 가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 순간 엘리위젤의 가슴을 짓누르던 중압감이 씻은 듯이 사라졌다.

왼쪽과 오른쪽 중, 어느 쪽이 더 좋은지도 모르고 있었다.

어느 쪽이 감옥으로 가는 길이고 어느 쪽이 화장장으로 가는 길인지 모르지만

그 순간은 행복감을 느꼈다. 아버지 곁에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행렬은 계속해서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재소자 한 사람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만족해?”

그렇소.”

누군가가 대답했다.

불쌍한 놈들, 너희들은 지금 화장장으로 가고 있는 거야.”

그는 진실을 말하는 것 같았다. 앞의 멀지 않은 배수구 같은 곳에서 거대한 불꽃이 치솟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무엇인가를 태우고 있었다.

 

화물 트럭 한 대가 그 구덩이 쪽으로 다가가더니 싣고 온 어린이들을 내려놓았다. 갓난아이들이었다. 두 눈에 똑똑히 보였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기들은 눈 깜짝할 새에 불길에 휩싸여 지글지글 타며 불꽃이 되어 연기로 사라졌다. 그 장면을 본 뒤로 모두는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잠이 눈에서 도망가 버리고 말았다. 엘리위젤이 가고 있는 곳은 바로 그곳이었다. 거기에서 조금 더 간 곳에 성인용 큰 구덩이가 있었다. 엘리위젤은 얼굴을 꼬집어보았다.

아직 살아 있는 것일까?’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어떻게 그렇게 어린이를 불태워 죽일 수 있단 말인가? 어떻게 세상이 그런 사실 앞에서 침묵할 수 있단 말인가? 아니다, 이 같은 일은 어느 것도 사실일 수가 없다. 그것은 하나의 악몽이리라…….

이건 꿈이다. 나는 놀란 가슴을 두근거리며 악몽에서 깨어나, 내가 침대에서 읽던 책 속에 파묻혀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 순간 아버지의 목소리가 그의 꿈을 깨뜨렸다.

이건 치욕이야! 네가 네 어미와 함께 가지 못한 건 여간한 치욕이 아니구나. 나는 네 또래의 아이들이 여러 명 제 어미들을 따라 함께 가는 걸 보았다.”

아버지의 음성은 슬픔에 떨고 있었다. 엘리위젤은 아버지가 저들이 하려는 끔찍한 짓을 차마 보고 싶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자기의 외아들이 불에 타 죽는 광경을 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엘리위젤의 이마는 식은땀으로 젖어 있었다. 그러나 저들이 자기 같은 나이의 소년들을 불태워 죽이리라고는 믿지 않으려 애썼다.

아무리 그래도 인간성이 그런 야만성을 보이지는 않을 거예요.”

인간성? 인간성은 우리와 아무 상관이 없다. 여기서는 무엇이든 허용되니까. 무슨 일이든지 가능하다. 저런 끔찍한 화장까지도…….”

 

아버지는 목이 메어 있었다.

아버지, 만일 그렇다면 저는 이렇게 기다리고 싶지 않아요. 저기 저 전기철조망으로 뛰어들고 말겠어요. 불길 속에서 천천히 타죽는 것보다 나을 테니까요.”

아버지는 대꾸를 하지 않았다. 그는 울고 있었다. 그의 몸은 경련을 일으키듯 떨고 있었다.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울고 있었다. 누군가가 사자(死者)를 위한 기도인 카디쉬(Kaddish)’를 암송하기 시작했다.

유대민족의 긴 역사를 통해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위해 사자를 위한 기도를 암송했던 일이 전에도 과연 있었는지 없었는지에 대해서 알 길이 없다.

“Yitgadal veyitkadach shmé rada…….

하나님의 이름이 복되고 찬미 받으소서…….”

 

아버지가 이렇게 암송했다. 그 순간, 엘리위젤은 처음으로, 내부에서 반항심이 일어나는 것을 느꼈다.

왜 내가 하나님의 이름을 찬미해야 한단 말인가? 지금 우주의 영원한 주인이며 전능하고 두려운 하나님은 침묵만을 지키고 있다. 그런데, 내가 무엇 때문에 그에게 감사를 드려야 한단 말인가?’

 

행진은 계속되었다. 모두는 지옥의 열기를 뿜어내고 있는 구덩이로 한 발 한 발 다가서고 있었다.

마침내 이십 보 정도가 남아 있었다. 엘리위젤은 스스로 죽음을 택한다면 바로 이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구덩이로부터 겨우 15보 앞에 와 있었다.

엘리위젤은 아버지가 자기 이빨이 맞부딪치는 소리를 들을까봐 입술을 깨물었다.

앞으로 10, 8, 7, 마치 자신의 장례식에서 영구를 따르듯 천천히 행진해 나아갔다.

4. 3! 구덩이와 불길이 바로 눈앞에 있었다.

 

엘리위젤은 몸에 남아 있는 힘을 모두 모았다. 행렬에서 뛰쳐나가 전기철조망에 스스로 몸을 던지기 위해서였다. 엘리위젤은 마음속으로 아버지와 전 우주의 만물에게 작별을 고했다. 입에서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기도문이 스스로 속삭이듯 흘러 나왔다.

하나님의 이름이 복되고 찬미 받으소서…….

그의 가슴은 터질 것만 같았다. 최후의 순간이 왔다. 그는 죽음의 사자와 정면으로 마주보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구덩이로부터 두 걸음 거리에 이르렀을 때,

왼쪽으로 돌아가!”

하는 명령이 떨어졌다. 그리하여 엘리위젤은 아버지와 막사로 들어가게 되었다. 엘리위젤은 아버지 손을 꼭 붙잡았다. 아버지가 말했다.

 

넌 열차 안에서 만났던 마담 쉐크터를 기억하고 있겠지?”

결코 그 날 밤은, 수용소에서의 첫날밤을 잊을 수 없었다.

인생을 하나의 길고 긴 밤으로 바꾸어, 일곱 번 저주받고 일곱 번 봉인(封印)되게 한 그 날 밤을.

그 고요하고 푸른 하늘 아래 똘똘 감긴 연기의 소용돌이로 변해 흘러간

어린이들의 작은 얼굴과 몸은 잊을 수 없는 것이다.

신앙을 영원히 소멸시켜 버린 그 불길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결코 살고 싶은 욕망을 영원히 앗아가 버린 그 날 밤의 침묵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엘리위젤은 영혼을 살해하고 꿈을 먼지로 만들어버린 그 순간들을 잊을 수가 없었다.

사 하나님만큼 오래오래 살게 된다 하더라도 잊을 수 없는 충격이고 아픔이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