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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코스트 4 / 끌려가는 사람들

웃는곰 2026. 6. 12. 20:24

홀로코스트 4 / 끌려가는 사람들

이윽고 오후 한 시가 되자 출발신호가 떨어졌다. 그러자 기쁨이 일었다.

그렇다, 그건 기쁨이었다. 아마 그들은 찌는 듯한 무더위에 땀을 쏟으며 길 한복판에서 짐 꾸러미에 섞여 앉아 있는 것보다 더 괴로운 고통을 하나님이 주시지는 않으리라고 생각했으리라.

어떤 고통도 그보다는 나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은 버림받은 거리들, 죽은 듯 텅 빈 집들, 정원들, 묘비들을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고 여행길에 올랐다.

 

그들은 등에 짐을 하나씩 짊어지고 있었다. 그들의 모든 눈은 넘치는 눈물로 흥건했다. 행렬은 천천히 무겁게 게토의 정문을 향해 움직여 갔다.

엘리위젤은 보도 위에 우뚝 선 채 한 발짝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때 수염을 말끔히 깎은 랍비가 허리는 구부정하고 등에 짐을 진 채 그 앞을 지나가고 있었다.

 

그가 추방자의 행렬에 끼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지금 벌어지고 있는 장면이 비현실적이라는 느낌을 더해 주었다. 그 장면은 어떤 이야기책에서, 바빌론에서 죄수나 스페인의 종교재판을 묘사한 어떤 역사소설에서 찢어낸 한 페이지와 흡사했다.

그들은 한 사람씩 한 사람씩 엘리위젤 앞을 지나갔다. 선생님들, 친구들, 그밖에도 평소 무서워했던 사람들, 한때 비웃었던 사람들, 여러 해 동안 함께 살았던 모든 사람들이 앞을 지나가고 있었다. 그들은 몰락한 몰골로 고향집과 어린 시절의 꿈을 버려둔 채 얻어맞은 개처럼 주눅이 들어 그들의 짐과 생명을 이끌고 지나가고 있었다.

 

 

그들은 엘리위젤이 서 있는 쪽은 한 번도 거들떠보지 않고 지나갔다. 바라보는 엘리위젤을 부러워하고 있었음이 틀림없었다. 행렬은 거리의 저쪽 모퉁이에서 사라졌다. 몇 걸음만 더 가면 게토의 울타리를 완전히 벗어나게 될 것이다.

추방자들이 모두 떠나버린 거리는 갑자기 파장 거리와 흡사했다. 갖가지 물건들이 널려 있었다. 여행가방, 손가방, 서류가방, , 접시, 지폐, 종이, 빛바랜 초상화 등등.

이 모든 물건은 추방자들이 가지고 가려고 생각했던 것이었지만 결국 뒤에 버려진 것이었다. 그것들은 이제 아무런 값어치도 없었다. 모든 곳의 모든 방들이 활짝 열려 있었다. 모든 출입문과 모든 창문이 허공을 향해 입을 크게 벌린 채 개방되어 있었다.

모든 것이 누구에게나 마음대로였고 주인이 없었다. 그것은 아무나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그것은 활짝 열린 무덤이었다. 따가운 여름 해살만 대지를 내리쬐고 있었다.

 

엘리위젤 가족은 그 날 하루를 단식으로 지냈다. 그러나 배고픈 줄을 몰랐다. 모두가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아버지는 추방자들을 게토의 출입구에까지 전송했다. 그들은 먼저 큰 회당을 통과해야 했다. 거기에서 그들은 잠시 동안 멈추어 금이나 은, 기타 값나가는 물건을 소지했는지의 여부를 조사받아야 했다. 그때 여기저기에서 날카로운 고함소리와 곤봉으로 구타하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가 떠날 순서는 언젠가요?”

엘리위젤은 아버지한테 물었다.

 

우린 모레 떠난다. 적어도, 적어도 사태가 변하지 않는 한 말이다.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한…….”

그들은 유대인들을 어디로 데려가는 것일까? 아직 아무도 그것을 모르고 있을까? 아니다, 알고 있으면서도 비밀이 철저히 지켜지고 있었던 것이다.

밤이 되었다. 그 날 저녁은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아버지가 말했다.

얘들아, 잘 자거라. 모레 화요일까지는 아무 일도 없을 게다.”

월요일은 여름날의 작은 구름 조각처럼, 새벽녘의 꿈결처럼 지나갔다. 짐을 꾸리고 빵과 과자를 굽기에 바빴으므로 다른 일은 생각할 새도 없었다. 더욱이 포고문도 이미 교부받은 뒤였다.

 

그 날 저녁, 어머니는 아주 일찍 잠자리에 들게 하면서 힘을 내라고 타일렀다. 그것이 엘리위젤이 집에서 보낸 마지막 밤이었다. 엘리위젤은 새벽에 일어났다. 추방되기 전에 기도할 시간을 갖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더 일찍 일어나 새로운 소식을 얻으려고 밖으로 나갔다. 아버지는 여덟 시경에 돌아왔다. 좋은 소식이 있었다. 오늘 마을을 떠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었다. 그 대신 작은 게토로 옮겨가서 마지막 호송순서를 기다리게 되어 있다고 했다. 결국 맨 마지막으로 떠나게 되었던 것이다. 오전 아홉 시, 지난 일요일에 일어났던 일이 이 날도 그대로 재현되었다. 경찰이 곤봉을 휘두르며 고함을 질러댔다.

 

 

유대인은 모두 밖으로 나와!”

모두는 벌써 준비가 되어 있었다. 내가 제일 먼저 집을 나섰다. 부모님의 얼굴을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울음을 터뜨리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모두는 이틀 전 먼저 추방되었던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길의 한복판에 앉아서 기다렸다. 그 날과 똑같은 무더위와 똑같은 갈증을 느끼고 견뎌내야만 했다. 그러나 우리에게 물을 가져다 줄 사람은 이제 아무도 없었다.

나는 우리 집을 바라보았다. 나는 그 집에서 여러 해 동안 하느님을 찾았으며, 거기에서 구제주의 도래를 빨리 보기 위해 단식했으며, 거기에서 내 인생이 장차 어떻게 될 것인가를 상상했었다. 그러나 나는 슬픔을 거의 느끼지 않았다. 나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일어서! 번호!”

 

 

일어섰다, 번호를 붙였다, 앉았다, 다시 일어섰다, 같은 자리에서 같은 동작이 한 차례 되풀이되었다. 아니, 끝없이 되풀이되었다. 모두는 어서 데려다 주기를 조바심 속에서 기다렸다. 대체 그들은 무엇을 기다리는 것일까? 마침내 명령이 떨어졌다.

앞으로 갓!”

아버지는 울었다. 아버지가 우는 것을 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나는 아버지가 울 수 있다는 것을 한 번도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굳은 표정으로 깊은 생각에 잠긴 채 말 한마디 없이 걸어가고 있었다. 나는 막내 누이 치포라를 바라보았다. 금발머리를 멋지게 빗어 넘기고 팔에 빨간 코트를 걸쳐든 그 애는 일곱 살 난 어린 소녀였다. 그 애가 등에 지고 있는 짐 꾸러미는 그 애에게는 너무나 무거웠다. 그 애는 이를 깨물었다. 그 애도 이제는 투정을 부려보아야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있었다. 경찰이 계속 곤봉을 휘둘러댔다.

더 빨리!”

나에게는 힘이 남아 있지 않았다. 그러나 여행은 이제 막 시작이었다. 나는 너무나 허약했다…….

 

 

더 빨리! 더 빨리! 계속 걸으라구, 이 게으름뱅이 돼지야!”

헝가리 경찰은 계속 으르렁거렸다. 내가 그들을 증오하기 시작한 것은 바로 그 순간부터였다. 나의 이 증오심은 오늘날까지도 나와 그들 사이에 하나의 고리로 남아 있다. 그들은 우리의 첫 번째 압제자였다. 그들은 우리가 처음으로 만난 지옥과 죽음의 얼굴이었다.

모두는 뛰라는 명령을 받았다. 모두는 구보로 전진해 나갔다. 우리가 그처럼 강하리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겠는가? 우리의 동포이나 유대인이 아닌 주민들이 창문 뒤에서, 혹은 덧문 뒤에서 우리들이 지나가는 모습을 내다보고 있었다. 마침내 모두는 목적지에 도착했다. 모두는 땅바닥에 가방을 내던지며 그 자리에 쓰러졌다.

 

 

오 하느님, 우주의 주님, 우리를 불쌍히…….”

은 게토. 3일 전만 해도 그곳에는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그들은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물건의 주인들이었다. 그들은 추방된 것이었다. 모두는 이미 그들을 완전히 망각하고 있었다.

 

그곳의 무질서는 큰 게토보다 훨씬 더했다. 그 점으로 미루어 보아 그들은 예기치 못하고 있다가 갑자기 추방당한 것이 분명했다. 나는 아저씨 가족이 살았던 방으로 가보았다. 식탁 위에는 반쯤 먹다 남은 수프 그릇이 그대로 있었으며, 오븐에 넣으려고 준비한 파이도 그대로 방치되어 있었다. 마룻바닥에는 책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아저씨는 그 책들을 가지고 가려고 했던 것일까?

모두는 그곳에 자리를 잡았다.(그런 곳에 자리를 잡다니!) 나는 땔감을 구하러 밖으로 나갔다. 내가 구해 온 땔감으로 누나들이 불을 피웠다. 어머니는 피로를 무릅쓰고 식구들이 먹을 음식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모두는 계속 가야 한다. 앞으로도 계속 가야 한다구.”

어머니는 이렇게 되풀이 말했다.

화물차에 실려 가는 사람들

사람들의 사기는 그렇게 나쁜 편은 아니었다. 그리하여 모두는 새로운 환경에 어렵지 않게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길거리에서 낙관적인 대화를 나눌 정도까지 되었다.

독일 놈들은 우리까지 추방할 시간적 여유는 없을 거야……. 이미 추방된 사람들에게는 참 유감스러운 일이야. 하지만 이제는 그런 일이 다시는 없을 거야. 아마 놈들은 전쟁이 끝날 때까지 우리를 이 형편없이 누추한 곳에 살도록 내버려 두게 될 거야.”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다. 게토에는 보초도 없었다. 누구나 마음대로 들고 날 수 있었다.

옛날 엘리위젤의 점원이었던 마르타가 나타났다. 그녀는 아주 서럽게 울면서 말했다.

제가 살고 있는 마을로 가세요. 그곳에 가면 주인님이 안전하게 피할 수 있는 거처를 제공할 수 있어요.”

그러나 엘리위젤 아버지는 그녀의 간청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너희들이나 가고 싶으면 가거라. 나는 여기서 너희 어머니와 아기와 함께 남겠다…….”

아버지는 삼남매를 보고 이렇게 말했고 당연히 그들도 부모와 헤어질 수 없었다.

 

밤이 되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기도를 하지 않았다. 그래서 밤은 빨리도 지나갔다. 오직 별들만 세상을 사로잡는 불빛이었다. 앞으로 어느 날 그 불빛이 죽는다면, 하늘에는 죽은 별들, 죽은 눈들 외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으리라.

잠자리로 들어가는 것, 추방당한 사람들이 사용했던 잠자리로 들어가 휴식을 취하고 기운을 회복하는 것 외에는 할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새벽이 되자 우울했던 감정은 말끔히 가셨다. 마치 휴일을 맞은 듯한 기분을 맛보았다.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다.

누가 알아? 어쩌면 우리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우리가 추방되고 있는지도 모르니까 말이야. 여기에선 전선이 멀지 않아. 아마 모두는 곧 총소리를 듣게 될 거야. 그렇게 되면 일반시민은 모두 소개(疏開)될 것이고…….”

어쩌면 그들은 우리가 게릴라를 도울까봐 두려워서 이런 짓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지…….”

내가 보기에 이 추방사업 전체가 하나의 희극일 것 같아. 웃지 말라구. 정말 그렇다니까. 독일 놈들은 단지

우리가 가진 보석을 빼앗으려는 수작일 거야. 놈들은 우리가 모든 걸 땅에 묻었다는 사실을 알고는 우리를 다 쫓아내고 그것을 찾아내려고 눈이 빨갈 거야. 도둑질을 하려면 주인이 휴가증일 때가 쉽지 않겠어…….”

휴가중이라니!

 

아무도 믿지 않는 이러한 낙관적인 이야기는 시간을 보내는 데는 도움이 되었다. 그곳에 살고 있던 며칠간은 평화로운 가운데 이렇게 즐겁게 지나갔다. 사람들은 서로서로 전보다 더 호의적으로 대했다. 이제 부유하고 가난하고, 사회적 지위 가 높고 낮은 문제는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아직 모두의 운명이 어떻게 될는지 아무도 모르고 있다는 것과 모두가 똑같은 운명을 선고받은 처지라는 사실이었다.

 

휴일인 토요일이 축출의 날로 선택되었다. 지난밤에는 전통적인 금요일 저녁의 성찬을 들었다. 빵과 포도주에 관습적인 감사기도를 올린 후 말 한 마디 없이 그것들을 모두 먹어치웠다. 엘리위젤 식구도 마지막으로 식탁에 둘러앉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 날 밤은 모두 마음속에 떠오르는 갖가지 생각과 추억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새벽이 되어 떠날 준비를 하고 거리에 모였다. 이번에는 헝가리 경찰이 한 사람도 눈에 띄지 않았다. 유대인 평의회와 맺은 합의에 따라, 평의회 자체에서 호송을 맡기로 했던 것이다. 행렬은 마을에서 제일 큰 회당을 향하여 나아갔다. 마을은 텅 빈 것 같았다.

회당은 수화물과 눈물로 혼잡을 이룬 거대한 역과 흡사했다. 제단은 부서지고 휘장들은 찢겨 떨어지고 벽은 벗겨져 있었다. 회당 안은 너무 많은 사람들로 차서 거의 숨을 쉴 수 없을 정도였다. 모두는 거기서 공포의 24시간을 보냈다.

남자들은 1층에, 여자들은 2층에 수용되었다. 그 날은 토요일이어서 마치 예배에 참석하기 위해 거기에 온 것만 같았다. 아무도 밖으로 나갈 수 없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한쪽 구석에서 용변을 보기도 했다.

 

다음날 아침, 모두는 역으로 행진해 갔다. 거기에는 가축을 싣는 화물열차가 기다리고 있었다.

헝가리 경찰이 화물열차에 태웠다. 한 칸에 80명씩 배정했다. 화차마다 빵 몇 덩어리와 물 몇 통이 배당되었다.

그들은 창문이 흔들거리지 않는지를 일일이 점검한 후에 모든 화차를 봉해 버렸다. 각 화차에는 책임자가 한 사람씩 지명되었다. 한 사람이라도 탈출할 경우 그 사람은 총살을 당하게 되어 있었다.

플랫폼에는 게슈타포 장교 두 사람이 미소를 지으며 한가롭게 거닐고 있었다. 모든 일이 치밀하게 계획되었으며, 모든 일이 계획대로 착착 진행되고 있었다.

 

이윽고 호각 소리가 한 차례 허공을 갈랐다. 열차 바퀴가 움직이기 시작하여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는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계속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