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방/수필

옆 사람 167 / 살구와 할머니들

웃는곰 2026. 4. 1. 10:23

 

지하철에서 내려 집으로 가자면 시장통을 지난다.

시장 입구에 아주 작은 과일가게가 있었다.

아무도 안 사가는지 과일은 날마다 늘지도 줄지도 않는다

 

앞에는 청년들이 가게를 크게 차리고

싸다고 왕왕 외쳐대는데

그 가게에는 할머니 넷이 나란히 앉아

과일을 들여다보고 이야기꽃을 피운다

 

노인들이 나란히 앉아 바라보아서인지

사람들이 잘 접근하지 않는 것 같다

나도 거의 날마다 지나다니지만 한 번도 과일을 사지 않았다.

그런데 요새 한창 나오는 살구를

빨갛고 작은 바구니에 소복소복 담아 놓고

2000원이라고 써 붙였다.

 

나는 어려서 살구나무 아래서 자랐다.

살구 추억이 많아 살구만 보면 그냥 못 지나가고

들여다보고 사고 싶어 한다.

 

언제 그 살구들은 어디서 따왔는지 모두 새끼 살구인데

노란 녀석도 있고 빨갛게 화장한 녀석도 있고

고운 얼굴들인데 밤톨만큼 작은 것들이다.

신기하고 재미있어 보이기에 다가갔다.

노인 넷이 아주 반가워하면서 일어서서 구경하고 사 가란다

 

한 할머니가 두 바구니에 삼천 원에 드릴게요

하시고 바라보았다.

할머니가 지금은 주름진 얼굴이지만

옛날에는 저 살구처럼 작고 고운 얼굴이었겠지

이런 생각을 하며 피식 웃었다.

 

내가 웃자 노인들이 좋아서

조르르 둘러섰다.

내가 구경만 하고 가면 울 것 같은 얼굴이었다.

 

한 노인한테 삼천 원을 내놓았다.

할머니 둘이 한 사람은 비닐봉지를 벌리고

한 사람은 담아주고 두 노인은 좋아서

주름진 얼굴에 웃음을 골마다 꽃처럼 피웠다

 

내가 살구 봉투를 받아들자 가까이 있는

노인이 내 등을 두드려주며 고마워요 요마워, 하고.

그것은 두고두고 먹으면 익을수록 맛이 난다우 했다.

 

나는 초등학생처럼 등을 두드려주는 노인이

고마워서 거기 있는 것을 다 사주고 싶었다.

그러나 갈 길이 멀고 산 것만도 100개는 넘을

양이라 무거워서 더 살 수가 없었다.

노인들이 살구 두 바구니를 삼천 원에 깎아 팔고

그렇게 좋아하는데 어떻게 하면

더 좋아하게 해드릴 수 있을까 생각하며 돌아섰다.

 

살구는 내 추억의 향수이고

노인들은 내 추억 속의 햇 살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