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에서 내려 집으로 가자면 시장통을 지난다.
시장 입구에 아주 작은 과일가게가 있었다.
아무도 안 사가는지 과일은 날마다 늘지도 줄지도 않는다
앞에는 청년들이 가게를 크게 차리고
싸다고 왕왕 외쳐대는데
그 가게에는 할머니 넷이 나란히 앉아
과일을 들여다보고 이야기꽃을 피운다
노인들이 나란히 앉아 바라보아서인지
사람들이 잘 접근하지 않는 것 같다
나도 거의 날마다 지나다니지만 한 번도 과일을 사지 않았다.
그런데 요새 한창 나오는 살구를
빨갛고 작은 바구니에 소복소복 담아 놓고
2000원이라고 써 붙였다.
나는 어려서 살구나무 아래서 자랐다.
살구 추억이 많아 살구만 보면 그냥 못 지나가고
들여다보고 사고 싶어 한다.
언제 그 살구들은 어디서 따왔는지 모두 새끼 살구인데
노란 녀석도 있고 빨갛게 화장한 녀석도 있고
고운 얼굴들인데 밤톨만큼 작은 것들이다.
신기하고 재미있어 보이기에 다가갔다.
노인 넷이 아주 반가워하면서 일어서서 구경하고 사 가란다
한 할머니가 두 바구니에 삼천 원에 드릴게요
하시고 바라보았다.
할머니가 지금은 주름진 얼굴이지만
옛날에는 저 살구처럼 작고 고운 얼굴이었겠지
이런 생각을 하며 피식 웃었다.
내가 웃자 노인들이 좋아서
조르르 둘러섰다.
내가 구경만 하고 가면 울 것 같은 얼굴이었다.
한 노인한테 삼천 원을 내놓았다.
할머니 둘이 한 사람은 비닐봉지를 벌리고
한 사람은 담아주고 두 노인은 좋아서
주름진 얼굴에 웃음을 골마다 꽃처럼 피웠다
내가 살구 봉투를 받아들자 가까이 있는
노인이 내 등을 두드려주며 고마워요 요마워, 하고.
그것은 두고두고 먹으면 익을수록 맛이 난다우 했다.
나는 초등학생처럼 등을 두드려주는 노인이
고마워서 거기 있는 것을 다 사주고 싶었다.
그러나 갈 길이 멀고 산 것만도 100개는 넘을
양이라 무거워서 더 살 수가 없었다.
노인들이 살구 두 바구니를 삼천 원에 깎아 팔고
그렇게 좋아하는데 어떻게 하면
더 좋아하게 해드릴 수 있을까 생각하며 돌아섰다.
살구는 내 추억의 향수이고
노인들은 내 추억 속의 햇 살구였다.
'문학방 >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옆 사람 169 / 염소야 잘 가라 (0) | 2026.04.04 |
|---|---|
| 옆 사람 168 / 돌부처만도 못한 인물들이 (0) | 2026.04.03 |
| 백번 들어도 좋은 이야기 54 / 천재 가문의 천재 이우 (0) | 2026.03.31 |
| 옆 사람 166 / 겸손한 거짓말 (0) | 2026.03.31 |
| 되돌아본 옆 사람 3 / 불쾌한 멧돼지 (0) | 2026.03.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