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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 사람 166 / 겸손한 거짓말

웃는곰 2026. 3. 31. 19:26

옆 사람 166 / 겸손한 거짓말

 

교회 시간이 바쁜데 지하철 엘리베이터에서

한 노인과 함께 타고 올라와 보니

대로에 비가 주룩주룩 쏟아지고 있었다.

 

80은 되어 보이는 노인인데 엘리베이터

현관에서 주춤거렸다.

나는 우산을 펼쳐들었다.

그런데 노인은 빗속으로 그냥 가려는 거였다.

내가 가까이 다가가 우산을 받치며 물었다.

 

어디까지 가십니까?”

갈현동까지 갑니다.”

그렇게 먼 데를 어떻게 가시려고 이러십니까?”

 

버스 정거장도 보이지 않는 곳이었다.

내가 교회는 늦더라도 이 분을 모셔다 드려야겠다고

생각하고 말했다.

저하고 같이 가시지요. 제가 우산을 받쳐드리겠습니다.”

아닙니다. 저 우산 있습니다.”

우산이 있으시면 쓰셔야지요.”

가방에 들어 있어서 꺼내기 귀찮아서 그럽니다.

제 걱정은 마시고 앞서 가십시오.”

그럼 현관으로 가서 가방을 여세요.”

나는 그분을 현관으로 데리고 갔다.

노인은 굳이 나 보고 먼저 가라는 거였다.

가방에 있는 우산을 꺼내어 쓰겠다면서 정중히 인사를 했다.

친절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저는 가방에서 우산을 꺼내어 쓰겠습니다.”

 

나는 그분 말만 믿고 우산을 혼자 쓴 채

인사를 나누고 빗속을 걸었다.

한참 가다가 어디쯤 우산을 쓰고 오실까 하고

돌아보았더니 그 노인은 빗속을 우산도 없이

부지런히 걸어 골목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다시 따라갈까 생각했지만 이미 노인은

비를 쪼록 맞아서 우산을 받쳐 주어도

소용이 없게 되어 있었다.

 

나는 멍하니 바라보다가 교회로 가면서 생각했다.

노인께서 남의 신세 지기 싫어서 거짓말을 한 것이다.

그 말을 믿은 내가 어리석었지.

그러나 노인은 보기와는 달리 목소리가

차분하고 점잖았다.

겸손이 거짓말을 한 것이다.

겸손한 거짓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