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방/수필

호박꽃과 대화

웃는곰 2026. 3. 23. 16:52

나는 존경하는 선생님께 오늘 이런 편지를 썼다.

쓰고 보니 생활속에서 한 교훈을 터득했다.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저는 길가 화단에다 호박씨를 심었습니다 

수십 포기가 와르르 돋아서 기대를 하고 길렀는데 

이것들이 모두 숫놈들인지 호박이 안 열리는 겁니다.

 

 오늘 아침에 나오면서 호박을 들여다보았습니다. 

덩굴은 무성하고 그 사이로 노란 꽃이 아우성을 치고 피어 

입을  벌리고

개미가 들어가 장난질을 치는데도 하하하 바보처럼 웃는 겁니다.

 

어째서 암꽃은 안 피고 너희만 아우성이냐 하고 들여다 보니

호박꽃이 벙글거리며 대답했습니다.

 

"주인님, 너무 서운해 하지 마세요. 우리가 주인님을 위하여 숫놈들만 피었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냐? 내가 기다리는 건 암꽃이고 호박인데 호박 하나도 안 달고 이게 뭐냐?"

"주인님 실망하실 것 없습니다. 우리들 웃는 얼굴로 만족하십시오."

"암꽃이 보고 싶다. 호박은 언제 열릴 거냐? "

"만약 우리가 호박을 주렁주렁 달고 있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러면 얼마나 좋겠느냐?"

 

"주인님은 우리의 깊은 속을 모르십니다.

호박이 주렁주렁 매달리면 우리를 보면서 고민에 빠지실 겁니다."

"그게 무슨 소리냐?"

"길 가는 사람마다 군침을 삼킬 것이고요,

한 사람이 하나를 따가면 주인님은 한 번 기분이 나빠지실 거고요

그러다가 두개, 세개, 다섯 개 다 따가면

주인님은 가슴에 멍이 들고  슬퍼지실 것입니다."

"그래도 하나라도 열렸어야지. 나는 남들이 따 가도 가슴 아파하지 않는다."

"거짓말 마세요 주인님, 말로는 그러시지만 아까운 것을 빼앗기시면

가슴에는 용서보다 미움이 차는 법입니다."

 

요것들 봐라 나를 놀리며 충고하네?

"허허, 그렇구나. 잘했다. 꽃만 흐드러지게 피어

나를 보고 웃어다오. 꽃이나 보고 웃자. 하하하."

 

숫꽃만 핀 호박덩굴을 보면서 이런 이야기를 나누고 보니

호박 안 달린 것도 다행인가 싶습니다.

호박이 달리고 자라면 맘속에 욕심도 같이 자랄 것이

빤하지 않습니까.

호박한테 걸었던 기대가 무너지는 줄 알았더니

의외로 이렇게 나를 마음속에다 아름다운 호박을 가꾸어

주었습니다.

 

세상 만사는 마음 먹기 달렸다고 했는데

호박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보니

맘속에 기대도 욕심도 사라졌습니다.

모든 일은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편하게 하는 것이

잘 사는 지혜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