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 사람 162 / 안타까운 22분 / 영등포역에서 수원역까지
오늘은 3월 17일 15시 무궁화호 부산행 3호차 31번석.
영등포역에서 차에 오르며 오늘은 누가 기다릴까 하고
내 좌석으로 다가갔다. 내 31석에 여자 승객이 타고 무엇을 먹고 있었는데
앞에는 무슨 짐을 수북하게 쌓아 놓고 앉았다가
뭉그적거리며 32번으로 옮겼다.
무슨 짐이 그리 많은지 좌석 앞 망에도 이것저것 담았던 것을 꺼내어
자기 무릎위에 한 아름 안고 앉았다.
옆으로 힐끗 보니 서양 아가씨였다.
코가 뾰족하고 눈이 동그란데 코에는 금박이(?) 장식되어 반짝거렸다.
키는 작은 편이지만 동양사람 같지가 않았다.
유럽인 같은데 어느 나라 사람일까? 궁금해졌다.
아가씨는 오면서 먹던 빵을 마저 먹고 스마트 폰을 들여다보았다.
옆사람 가운데 일본, 중국, 방그라데시, 미국, 독일, 만주 사람을 만난 생각을 하며
어느 나라 사람인가 궁금하여 말을 걸었다.
“아가씨는 미국 사람인가요?”
생각보다 친절하게 한 마디로 대답했다.
“네팔.”
그러며 나를 바라보았다.
얼굴은 귀엽게 생겼는데 주근깨가 많았다. 내가 또 물었다.
“어디까지 가시나요?”
아가씨는 내 말을 못 알아듣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다 대답했다.
“부산.”
그리고 나한테 물었다.
그래서 수원까지 간다고 하니 알았다는 듯 고개를 까딱하고
스마트폰으로 시선을 돌렸다.
나는 속으로 네팔이라니 한글은 알까? 하고 또 물었다.
“한글 아시나?”
“한글 조금 알아. 요. 배웠는데 몰라. 요.”
“우리말 잘 하네.”
“안녕하세요. 감사해요 말아. 요.”
“한국 책 읽을 수 있어?”
“나 동아대학 다녀. 요.”
“그래? 그럼 이 책 한번 읽어 볼래?”
“울타리를 내보였다. 그랬더니 머리말을 띄엄띄엄 읽는데 곧잘 소리를 내었다.”
“우리나라에 언제 왔나?”
그랬더니 스마트폰을 열고 빠른 속도로 문자를 쳐서 내밀었다.
폰에 금방 한글이 떠올라 답이 나왔다.
“1년 되었어요.”
그러면서 알파벳을 눌러 보여주었다.
아가씨가 알파벳으로 치는데 글자가 금방 한글 우리말로 번역되어 물었다.
“선생님은 무엇을 하는 누구세요?”
그러면서 폰을 나한테 넘겨주었다.
나는 한글 문자판에다
‘나는 출판사를 하는 사람’이라고 쳐서 보여주고 울타리를 가리켰다.
화면이 바로 영문자로 바뀌었다.
아가씨가 읽고 또 영문자를 누르는데 바로바로 우리말로 환원되었다.
“이 책 저를 주시는 거예요?”
“그래요. 한글을 배우고 있으니 이 책을 보면서 우리 말 배워요.”
“선생님이 책 쓰는 사장이에요?”
“동화도 쓰고 출판도 하는 사람이야.”
“동화작가예요?”
“응. 동화책 읽어보았나? 네팔 사람이라고 했지?”
“예. 네팔이에요.”
내가 장난을 했다. 아가씨 팔을 잡아당기며 말했다.
“이게 네팔이야. 네 팔 알아?”
“네팔 우리나라예요.”
나는 내 팔을 가리키며 말하고, 또 아가씨 팔을 당기며 말했다.
“이거는 내 팔이고, 네 팔은 네팔이야.”
“네팔 내팔?”
그러면서 무슨 말인지 모르지만 재미있다는 갸웃거리며 웃었다.
내가 문자로 그 이름을 물었다.
그런데 대답을 듣기도 전에 수원역입니다 하는 방송에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가씨가 자기 이름을 대주었다.
그 소리를 나는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슝? 뭐 어쩌고 하며 자리를 뜨자 아가씨가 놀란 듯 문자를 써 보였다.
“지금 내리시는 거예요?”
“응!” 하고 대답하자 문자를 또 보여주었다.
“안타까워요. 꼭 내리셔요?”
나도 실은 너무 빨리 와서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더 이상 인사도 할 시간이 없었다. 차가 곧 떠날 태세라 한 마디
“잘가” 하고 등을 돌렸고 아가씨는 아쉬워하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며 고개를 숙였다.
신기하게 네팔말로 치면 우리말로 바뀌는 문자판을 처음 보았다.
나라가 다르고 나이 차가 있어도 정을 주고받는 마음에는
그것이 상관없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아쉬운 마음으로 하차하여
차가 떠나는 것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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