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 사람 161 / 겸양이 안겨준 고역
경로석은 대개 만원인데 특히 금요일은 초만원이다.
신길역에서 천안행 급행열차에 올라 보니 경로석이 완전히 경로당이었다.
젊은이들 쪽으로 갈 수도 없고 결국 노인들 틈에 끼어 탔는데
바로 앞에 6세 정도 어린이가 엄마 손에 잡혀 서서 가고 있었다.
나는 그 아이를 내려다보며 생각했다.
요렇게 어린 아이가 서 있는데 아무도 자리 양보를 안 하는 것은,
아니 못하는 것은 다들 늙은이들이라
서서 갈 자신이 없어서 손자 같은 아이가 있어도 자리 양보를 못하는 것이다.
그런데 몇 정거장 가서 바로 내 앞에 영감이 내렸다.
순간 아이와 내가 누가 자리에 앉아야 하나 생각했다.
경로석에 노인과 어린 아이가 있을 경우 누가 더 위일까?
나이만 따질 것인가 인정을 가릴 것인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바로 내 앞이라 내가 앉아도 될 것이지만 나는 아이를 불러다 앉혔다.
그리고 몇 4거장을 가다 아이가 내렸다.
순서로 보면 그 자리는 내가 앉아도 좋을 것이지만
바로 옆에 나보다 더 힘들어 보이는 노인이 있었다.
내가 앉아서 가기보다 자리를 향보하는 편이 좋겠다 생각하고
그분한테 앉으시라고 권했다.
얌전하게 생긴 그분은 아니라고 자기는 서서 가야 한다고 사양했다.
그렇게 자리 하나를 두고 피차 허리를 굽신거리 사양하는 사이
둘 사이를 젊은 여자가 잽싸게 파고 들어와 날름 앉았다.
우리 두 사람은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기가 되었다.
65세를 잣 넘었을 것 같은 젊은 할머니도 아닌 아줌마가 떡하니 앉더니
스마트폰을 켜고 당당하게 자기도 앉을 자격이 있다는 듯이 태연했다.
그때 바로 옆에 앉은 할배가 여자를 노엽고 원망하는 눈으로 째려보았다.
그 눈에서 나는 그분의 마음을 읽었다.
“여보세요, 여기는 당신 자리가 아니오. 저분들 자리요
양심 없이 쥐새끼처럼 파고들어 이게 무슨 짓이오.
당장 일어나요. 앞 사람이 안 보이시오?”
그러는 눈빛이었다.
그러면서도 차마 입을 못 열고 원망의 눈을 떴고
나도 상대 노인도 머죽하니 양보하던 말도 잃은 채
시선을 창밖으로 보내고 말았다.
나는 그 옆 노인이 불쾌한 눈으로 옆에 앉은 여자를
흘겨보는 것을 보는 순간 꼭 하고 싶은 말을 차마 하지 못하는
안타까워하는 빛을 보며 그 점이 바로 한국인의 점잖은 겸양기질이라고 생각했다.
나도 노인도 서서 앉을 자리가 날까 했지만
수원역에 토착하도록 자리가 나지 않았다.
꼬박 45분을 서서 와 나는 차에서 내렸지만 자리 겸양을 차리다가
자리 빼앗긴 노인은 어디까지 가는지 모르지만 앞으로도
그렇게 서서 가실 것을 생각하니 걱정이 되었다.
얌체 아줌마한테 한 마디 “젊은 분 앞에 계신 분하테 자리 양보 좀 하시면 안 될까요?" 하고 싶었으나
끝내 못하고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하는 여자를 원망스럽게 보다가 내렸다.
서울서 이사한 후 3년만에 수원까지 서서 온 것은 처음이다.
서서 왔더니 다리가 뻐근했다.
내가 그런데 나보다 위인 것 같은 그분은 어디까지 가시는지 모르지만
얼마나 피곤하시었을까.
겸손히 자리 양보를 하다가 엉뚱하게 60대 여자한테
자리 빼앗긴 것이 그저 거시기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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