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방/수필

옆 사람 99 / 그 사람은 아니 오고

웃는곰 2026. 3. 12. 20:39

** 이 글은 이미 오래 전에 올렸던 것인데 독자들이 올린 글 가운데 여러분이 답글을 올려서 나는 찾아가 다시 읽어 보았습니다.

참 재미있는 체험담이었는데 벌써 오랜 전 이야기지만 기다리던 그 사람이 보고 싶어지네요.

지금도 나는 15시 발 부산행 3호칸 31석을 예매하고 차를 탑니다.

다만 전에는 서울역에서 먼저 올라 오늘은 누가 오려나 기다렸는데 지금은 사무실을 이사하여

영등포 역에서  3호차 31번석을 타면서 오늘은 누가 와서 기다릴까 하지요.

그런데 좌석을 놓칠 때가 있어요. 내일은 39번석입니다 

내일은 또 누가 먼저 와서 나를 기다려줄는지?

이왕이면 핸섬한 청년이나 고운 아가씨가 기다려 주면 좋으련만.   

 

옆 사람 99 / 그 사람은 아니 오고

******************************************

내가 참 나도 이해 못할 만큼 이상하다.

지난주일 날마다 옆 자리에서 만나던 그 박부사장이라는 사람이 귀찮게 여겨졌었는데 11일 월요일에 차에 올라 23번석에 앉았으니 그 사람이 기다려졌다.

 

영등포역에서 타는 사람이라 옆에 빈자리는 그 사람 자리라 그가 올라와 웃으며 인사하고 앉을 줄 알았는데 이게 뭐야?

 

몸집이 탱크 같은 사람이 곰처럼 어슬렁거리고 와서 내 곁에 펑 소리가 나게 주저앉는 게 아닌가.

나는 실망했다. 갑자기 권태를 느끼던 사람이 보고 싶어졌다.

 

그 사람은 날렵하고 핸섬한 사람인데 이 사람은 누룩 돼지 곰을 연상케 하여 첫인상이 나빴다. 그는 앉은 평수가 커서 내 자리까지 밀고 앉아 다리를 쩍 벌리고 킁킁거리는 것이 영 불만스러웠다.

 

그래도 어쩔 수 없이 수원까지는 가야 한다. 그 뚱뚱이는 어디로 가는지 궁금하지도 않았고 말도 나누기 싫어 내릴 때까지 돌하루방처럼 앉아 쳐다보지도 않고 입도 열지 않았다.

 

다음날 화요일. 오늘은 그 박부사장이 오겠지 하고 차에 올라 내 자리로 다가가 보니 어떤 사람이 먼저 23번 석에 앉아 있었다. 새끼 원숭이같이 왜소하고 쭈그리고 앉은 형상이 종잇장 구겨놓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인상이었다.

 

감히 남의 자리에 먼저 와서 앉아 있다니! 이 놈! 비키렷다. 하는 심정으로 내 핸드폰을 내밀자 그가 발딱 일어섰다. 그리고 내가 23번 석에 앉자마자 종이 승차표를 내밀면서 24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하도 오종종하게 생겨서 이게 어느 나라 사람이야? 하고 생각하다가 물었다.

한국 사람이오?”

!”

어디까지 가시오?”

그랬더니 두 팔로 펼쳐 들어야 할 만큼 커다란 우리나라 전국 지도를 펴 보이며 대전을 가리켰다.

대전까지 가시오?”

!”

그러더니 지도에서 충주를 또 가리켰다.

충주로 간다는 말이오?”

!”

중국사람 같아서 다시 물었다.

한국사람 맞소?”

!”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아 시선을 창밖으로 돌렸다. 그런데 이 원숭이가 갑자기 꽤액! 하고 소리를 지르더니 머리를 앞좌석에다 박고 한동안 부동자세를 취하다가 또 큰 소리로 와앙! 하고 몸을 비틀고 일어섰다 앉았다 웅크리고 쥐처럼 끽끽거렸다.

 

그리고 손바닥만 한 노랗게 색이 바랜 열차 시간표를 들여다보더니 나 보고 뭐라고 하는데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어서 모른다고 손짓을 하고 말았다.

 

이 사람 별짓을 다했다. 금방 잠든 척하고 머리를 등받이에 대고 눈을 감고 있다가 다리를 이리저리 꼬다가 달달달 떨기도 하고.

 

마치 일곱 살 먹은 아이가 쉬지 않고 뛰어다니듯 온갖 짓을 다하는 것 같았다. 이상한 사람도 다 보았네 하고 외면한 채 수원역에 도착했다. 내가 자리에서 일어서자 발딱 일어나 통로에서 길을 열어주고 배꼽인사까지 하기에 나도 인사를 했다.

잘 가시오.”

그리고 차에서 내려 에스컬레이터를 탔다. 그런데 대전으로 간다던 사람이 어느새 차에서 내려 옆 계단을 퉁퉁거리고 올라가는 사람들 사이에 끼어 나를 앞서 부지런히 올라가는 게 아닌가.

 

저 사람이 왜 그럴까? 도대체 대전으로 간다는 사람이 정체가 뭐야?’

다 올라가 보니 그는 넓은 역 광장 한가운데를 부지런히 걸어갔다. 나는 더 이상 그를 바라보지 않고 내 갈 길로 가면서 생각했다.

 

내가 도깨비에 홀렸나? 저게 사람은 맞나? 묻는 말에 네네만 했으니 중국사람 같기도 한데?’

 

그렇게 화요일이 지나고 수요일엔 여자보다 예쁘게 생긴 녀석과 같이 앉았고 목요일에도 기다리는 사람은 아니 오고 영감이 앉았다가 수원서 내려 앞서 가고, 금요일에도 기다리는 그 사람은 아니 오고 아주 귀엽게 생긴 뚱뚱이 아가씨가 뒤룩거리며 오더니 24번석에 앉아 외투를 벗어 무릎에 둘둘 말고 스마트 폰에 빠졌는데 체구보다 통통하고 예쁜 얼굴이었다.

 

그 아가씨한테도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다만 월요일부터 기다리던 박부사장이라는 사람이 오늘도 아니 오니 무슨 일로 아니 오실까? 병이 났나? 출장을 갔나? 궁금하고 걱정도 되었다.

 

겨우 2주일간 날마다 곁에 앉아 참새처럼 이야기를 해주던 사람이 좀 귀찮게도 느껴졌었는데 일주일 동안 나타나지 않으니 기다려졌다. 그렇게 며칠간 만난 사람이지만 정이 들어 보고 싶어진 것이다. 그래서 내 마음 나도 모른다는 거다.

 

변덕스럽게 좋아했다 싫어했다 하다가 원숭이 같은 사람, 돼지 같은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권태니 어쩌니 하던 마음은 어디 가고 그 가냘프고 친절한 사람이 기다려지는 거다.

 

나도 참 얌체 같은 인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사람 다음 주일에는 나타나겠지.

다시 만나면 참 반가울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