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큰 딸한테 이년아 소리가 그리 쉽게 나와?
국자가 감동적인 말을 했다.
“잘 왔어. 보고 싶었는디. 이렇게 와중게 내 사람 가텨어.”
“…….”
“요새 책 곳간에 좋은 일이 많은가벼.
책이 날마다 한 차씩 나가는 걸 본게 허당도 기분 좋찮여?”
“…….”
“왜 말이 없능겨? 국밥 맛이 없능겨?”
“……”
허당은 무슨 말이고 하고 싶지 않아서
국밥만 먹고 일어서면서 돈을 내놓았다.
국자가 돈을 받지 않으려 했다.
“왜 이려. 국밥은 내가 쏜겨. 돈을 내면 내가 섭혀.”
이때 마침 윤달이가 밖에서 돌아오다 식당 안에서 벌어지는 장면을 보았다.
윤달이 눈에 허당은 찬밥이었다.
멋도 낼 줄 모르고 촌놈 그대로에 사투리도 못 버리고 달고 다니고,
뭐 하나 맘에 드는 것이 없는 터라 돈 안 받겠다는 엄마한테 소릴 질렀다.
“엄마! 공짜 손님은 안 돼!”
국자가 기분이 상했지만 허당을 보아 참았다.
“공짜가 아녀. 우리 꽃밭 가꾸어주고 도와준 값이여.”
“그런 건 돈으로 주어야지 국밥으로 때우려고?”
“야가 참 모르는 소릴 혀쌌네.”
이때 허당이 돈을 식탁에 놓고 나갔다.
국자는 민망하고 씅이 나서 모녀만 남자 화를 버럭 냈다.
“이년아, 똑똑한 척 그만허구 정신 차려.
사람은 허당 같은 사람이 제대로 된 인물여.
너 돌아댕기며 어울리는 것들 하나도 제대로 된 인간이 아녀!”
“엄마가 뭘 안다고 그래?”
“사람은 오래 살다 보면 진득한 인물과 헛바람 든 이물이 보이는 겨.”
“그런데 다 큰 딸한테 이년아 소리가 그리 쉽게 나와?”
“내 속이 터져서 나한티 한 욕이여.”
“엄마하고는 수준이 안 맞아. 엄마는 허당 수준밖에 안 되니까 다 그렇고 그렇지 뭐.”
윤달이 뾰로통해서 나갔다.
만나보고 딱지 놓지는 마
허당은 책 곳간으로 돌아와 사무실 앞을 지나다
하우 목소리가 나서 잠깐 발을 멈췄다.
하우 목소리였다.
“아빠, 그렇게 좋아?”
“그려, 이렇게 기쁘기는 첨이여.”
“뭐가 그렇게 기뻐?”
“네가 신랑감을 정했다는 말보다 기쁜 일이 뭐간디?”
“그게 그렇게 좋은 거야?”
“그려, 빨리 갸 데불고 와봐아. 내가 한번 봐야잖어.”
“기다려. 만나보고 딱지 놓지는 마, 알았지?”
“네가 좋다는디 내가 그러진 못하지.”
“그런데 허당 씨는 어디 갔어?”
“넌 우째서 허당이라고 안 허고 씨자를 꼭꼭 붙이는 겨?”
“내 맘. 어디 심부름 보냈어, 아빠?”
“국자네 집으로 가는 걸 보았는디, 갸는 국자 사윗감이여.
윤달이가 예쁘니께 보고 싶어서 갔것지.”
“아빠는 허당 씨가 국자 아줌마 사위가 되면 좋겠어?”
“좋지. 일은 나한테 공짜로 해주고 장가는 국자네 집으로 갈 거 아닌가베?”
“아빠는 사람 보는 눈이 없어.”
“뭔 소려?”
이때 허당이 문 앞에서 인기척을 했다.
“저 왔어유.”
하우가 문을 활짝 열고 반겼다.
“오빠, 어디 갔다 와?”
“저기.”
“저기가 어디야?”
“점심 먹고…….”
“점심만 먹고 온 거야?”
“그건 왜 묻는겨?”
“궁금해서. 오늘 책 주문 많이 왔어.”
“알았어. 빨리 찾아 놓고 갈게.”
허당이 이층으로 오르자 하우도 뒤 따라 올라 물었다.
“윤달이도 보고 왔어?”
“응.”
“무슨 이야기 나누고 왔어?”
“아무 말도 안 혔어. 갸는…….”
“윤달이가 그렇게 좋아?”
“관심 없어.”
헌책방 할아버지
“그러면서 왜 자꾸 가?”
“자꾸 가진 않지. 오늘 첨 갔는데 왜 그건 자꾸 물어?”
“몰라, 허박사!”
허당은 하우가 화난 것을 알았다.
마음에 들면 오빠라고 부르고 맘에 안 들면
허박사라고 놀리겠다고 한 말이 떠올랐다.
그래서 무슨 말인가 하려는데 누가 왔는지
하필이 소란스럽게 인사하는 소리가 들렸다.
“어서 오세유. 귀한 걸음 하셨네유.”
그러다가 이층에 대고 소리쳤다.
“허당, 빨리 내려와 봐.”
허당이 서울 회장님이 오신 것을 알고 잽싸게 내려와 인사를 했다.
“회장님이 우짠 일이시래유?”
“허당 선생을 보고 싶어서 왔소.”
“야아? 절 보시려구유?”
“그렀소.”
이때 하우도 내려와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누구신가 이 미인은?”
하필이 나서서 소개했다.
“제 여식이지유.”
그리고 하우한테 일렀다.
“서울 큰 회사 회장님이셔. 인사 올려.”
하우가 납신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이렇게 찾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누추하지만 사무실로 드시지요.”
“고마워요. 이렇게 스마트한 아가씨가 인사를 하시니 사무실로 들겠습니다.”
사무실은 하필이 쓰는 책상 하나에 긴 의자가 둘러 있는 군인 막사 같은
소박한 구조였다.
회장이 한쪽에 앉으면서 허당한테 물었다.
“내가 오래 머물 시간이 없어서 물어보겠소.
지난번에 나한테 준 「헌책방 할아버지」라는 책이 얼마나 있나요?”
“그 책 많지유. 대강 1천부는 넘을 거여유.”
“그럼 됐습니다. 미안하지만 내일부터 날마다 그 책을 10권씩 가지고
우리 회사에 오실 수 있겠습니까?”
“회장님이 그렇게 하라고 하시면 해야지유.
우리 곳간에 그 동화책 말고도 동화책이 엄청 많어유.”
“그래요? 다른 책 이야기는 나중에 하기로 하고
내가 그 책을 찾는 이유를 말씀해 드리지요.
내가 고서를 사들이고 박물관을 만들겠다는 뜻은 바로
그 동화의 이야기 속의 헌책방 할아버지와 같은 것이지요.
어쩌면 이 곳간의 하필 어른이 이야기의 주인공 같기도 하고요.”
하필이 듣고 귀가 솔깃하여 수다를 늘어지게 떨었다.
“회장님! 바로 그렇습니다유. 제가 합정동에서 고서방을 허면서
고서와 골동품이며 고서, 서찰, 그림을 사 모은 건 바로
새로운 것만 좋아허다가 조상대대로 내려오는 귀한 보물을 버리는
젊은이들을 보면서 안타까워서 그랬던 것이쥬.
그리고 회장님이 수수한 차림으로 오셔서 말동무도 해주시고 혀서
나같이 시시한 분으로 알았는데 알고 보니 나 같은 건 감히 마주앉을 처지도 아닌 것이었지유,
그간 아무 말이나 혔던 건 용서해주시유.”
“아닙니다. 용서는 제가 빌어야지요.
영감님과 스스럼없이 말하고 시시덕거리며 순박한 인간관계를 가지고
어울린 그때가 좋았습니다. 앞으로도 그렇게 사십시다.”
이 기업 회장님은 겸손하고 가식 없이
수수한 인간성을 보여주는 점이 매력적이고 허당 마음과 같았다.
회장이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 일어서며 허당한테 말했다.
“허선생을 내가 좋아하게 된 이유를 아시겠소?”
“모르지유,”
“차차 말해 드리겠소. 내일 책 가지고 꼭 올라오시오.”
“야.”
다음날 허당은 「헌책방 할아버지」 열두 권을 챙겨들고 서울로 갔다.
자주 다니는 길이라 능숙하게 건물 앞에 이르렀다.
경비실장이 먼저 보고 달려와 인사를 했다.
“형씨, 또 만나서 반갑습니다. 회장님 만나러 오셨지요?”
“야.”
“제가 앞장서서 안내하겠습니다.”
“그럴 것 없어유. 저 혼자 갈 테니 이 책이나 받으세유.”
“감사합니다. 또 좋은 책을 가져오셨습니까?”
“야. 먼저 읽어 보시고 아이들 주세유.”
이때 순찰을 돌고 온 김씨가 보고 반색을 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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