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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랑소설 / 하필 허당에 빠진 국자 143-148

웃는곰 2025. 10. 8. 10:31

오늘은 추석날 - 8일 / 장땡에 광땡

 

회장이 아래층까지 다 둘러보고 난 다음 사무실로 들어가 말했다.

영감님, 고서는 얼마나 받으면 다 파시겠소?”

하필은 큰맘 먹고 황소 때려잡는 심정으로 크게 불렀다.

못 받아도 십억은 받어야지유.”

회장이 놀라서 물었다.

십억이오?”

 

하필은 내친 김에 크게 말했다가 움찔했다.

야아. 그런디 너무 비쌀까유우?”

 

회장이 놀란 것은 비싸서가 아니라 상상 외로 싸서 놀란 것이다.

그런데 하필은 너무 불렀나 싶어서 속으로 아차 하고 놀랐던 것이다.

회장이 넌지시 말했다.

십억은 너무하고 9억쯤 하면 길이 있을 것 같소.”

그려유우? 그럼 그렇게라도 하쥬. 누가 살 사람이라도 있을까유?”

장님한테는 거저 주신다면서요?”

 

장님이 그걸 사다 뭣에 쓰것시유. 내가 해본 소리쥬.”

장님이 책을 보든 말든 산다면 파시겠소?”

팔아야쥬.”

그러시면 책 살 사람을 소개할 테니 내일 서울로 오시오.”

서울 어딘지를 알아야 가지유우.”

여기 데리고 있는 허당씨를 따라 오시면 되지요.”

허당을유?”

 

모레까지 오시오. 오실 때 고서는 물론이고 전에 서점에서 가지고 있던 것

전부를 싣고 오시오. 그리고 돈하고 바꾸시오.”

정말유?”

그렇소. 약속 지키시오.”

 

회장은 그렇게 말하고 돌아가고 뒤에 남은 하필은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아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허허, 참 오랜만에 만난 은인이여. 옛날부터 내 책을 사가더니 또 사러 왔단 말인디…….

어떤 장님이 그렇게 큰돈을 주고 고물을 살까?

그 선상은 누구기에 그런 사람을 알고 있을까?’

 

하필이 허당을 불러 물었다.

지금 다녀간 회장이라는 분이 어디 사는지 아는 겨?”

.”

이층의 고서들을 모두 가지고 모레 오라는데 그래도 될까?”

그러시쥬.”

그 회장이라는 사람은 수십 년 동안 우리 서점에 들락거리던 사람이라 잘 알지만…….

사기꾼은 아닌 것 같은디…….”

사시꾼은 아니지유.”

자네가 뭘 안다고 그런 소릴 혀?”

두고 보시면 아실 거구먼유.”

 

다음날 이층에 있는 고서를 하루 종일 끌어내려 큰 트럭 두 대에 나누어 실었다.

하필이 차에 실린 책을 둘러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흐흐흐. 어떤 장님이 이 많은 책을 사려는지 모르지만

나야 돈만 받으면 장땡, 광땡 아닌가!’

 

다음 날 허당을 앞세우고 큰 트럭 두 대가 서울로 향해 달렸다.

트럭 두 대가 높은 빌딩 주차장에 들어가 멈추자

하필이 높은 빌딩을 올려다보며 허당한테 물었다.

허당, 여기가 어뎌?”

회장님이 계신 곳이지유.”

여기가 축구협회여?”

아니쥬. 회장님네 회사쥬.”

그게 무슨 말여?”

 

이때 어떻게 알았는지 여기저기서 경비원과 직원들이 몰려나와

차에서 책을 받아 건물 안으로 들여갔다.

경비실장이 허당한테 와서 경례까지 붙이며 인사를 했다.

책선생님 안녕하십니까!”

 

하필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이 사람들이 우티기 허당을 아는 겨?”

아무것도 아녀유.”

경비실장이 말했다.

두 분 정중히 모시라는 회장님 말씀이 계셨습니다. 가시지요.”

 

트럭 두 대에 실린 책이 순식간에 건물 안으로 사라지고 차는 돌아갔다.

하필이 어리둥절한 채 두 사람 뒤를 따랐다.

으리으리한 건물 안에 엘리베이터도 깔끔하고 윤이 반들반들 빛났다.

 

하필은 바보처럼 허당만 바라보고 뒤를 따랐다.

마침내 두 사람을 회장실로 안내한 경비실장이 돌아가고

여비서가 맞으며 인사를 깍듯이 했다.

어서 오세요. 회장님이 기다리십니다.”

 

허당은 자연스럽게 그 앞을 지나 회장실로 들어갔다.

두 사람이 들어서자 회장이 자리에서 일어서서 맞았다.

어서 오시오.”

 

하필이 기가 차서 굳은 자세로 회장을 보고 우물쭈물했다.

선상님이 축구회 회장이라고 하시더니?”

회장이 너그럽게 웃는 얼굴로 대답했다.

축구회 회장이면 어떻고 회사 회장이면 어떻습니까.

여기까지 오셨으니 반갑습니다.”

 

하필은 몸이 오그라드는 느낌이었다.

선상님이 아니시고 이런 큰 회사 사장, 아니 회장님이셨나유?”

뭐 그렇게 이상히 생각하실 것 없습니다.

저는 영감님과 소주 두 병에 오징어 뜯던 그 사람일 뿐입니다.”

 

하필이 주눅이 들어 수그리고 말했다.

남새스리 그런 말씀 마셔유. 난 쥐구녕으로라도 들어가고 싶구먼유.”

회장이 사투리로 웃으며 말했다.

우린 그런 사이가 아녀유. 오랜 소주 친구였잖유.”

참말 부끄럽네유. 이런 회장님인 줄 모르고

고서나 찾는 사람인 줄로만 생각했으니 말유.”

나는 영감님을 만나서 사람대접을 제대로 받았지유.”

?”

난 허세 부리는 걸 싫어하쥬.”

회장님은 고향이 어디래유?”

서울이쥬.”

그런디 충청도 사투리를 저보다 잘하시네유.”

한국에 살면서 한국 말 다 하는 게 맞잖유?”

그만 서울말로 하세유. 듣기 거북허니께유.”

 

회장은 다시 서울말로 대답했다.

. 우리 거래는 끝냈으니 책값 받으시오.”

벌써유?”

큰돈이라 들고 다니시면 안 되니 은행계좌로 이체할 테니 은행 번호나 대 주시오.”

은행이 아니라 우체국인디유. 여기 있어유.”

 

하필은 우체국 통장을 내놓았다. 회장이 비서한테 일렀다.

이 통장 가지고 경리국에 가서 내가 지시한 대로 이체하고 오세요.”

하필은 속으로 정말 9억을 준다는 말이 헛말이 아닐까 생각하며 눈을 감았다.

그렇다면 이건 꿈이 아닌가.

평생에 만져보지 못한 큰돈이니 말이다.

 

잠깐 사이에 비서가 다녀와 통장을 회장한테 올렸다. 회장은 들여다보고 말했다.

약속대로 전액 입금했습니다. , 확인해 보시지요.”

하필은 통장을 들여다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회장님 말씀만 믿으면 되지유.”

그래도 확인을 하셔야 합니다. 확인해 보세요.”

 

하필은 통장에 입금된 금액을 보고 벌렁 자빠질 듯 놀랐다.

9억이 아니라 10억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회장님, 혹시 잘못 되신 거 아닌가유?”

맞아요. 내가 깎지 않고 다 드린 거니 그리 아시고 내려가서 소주나 한잔 하십시다.”

 

이 말에 하필은 여간 놀란 게 아니었다.(계속)

 

* 여기까지 읽어주신 독자님 추석날 맞아 감사드립니다. 행복한 하루 즐겁게 보내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