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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랑소설 / 하필 허당에 빠진 국자 171-176

웃는곰 2025. 10. 12. 09:43

이때 순찰을 돌고 온 김씨가 허당을 보고 반색했다.

책선생님 반갑습니다. 다시는 못 뵐 줄 알았는데…….”

회장님께서 보자고 하셔서 왔지유.”

 

허당은 책이 든 가방을 들고 회장실로 들어갔다.

비서도 반가워하고 회장님은 더 반가워했다.

어서 오시오. 허선생.”

고마워유 회장님. 헌책방 할아버지열 권 가지고 왔어유. 받으시지유.”

고맙소. 우리 앉아서 이야기 좀 합시다.”

저는 금방 가야 하는디유.”

알았어요. 금방 가게 해 드릴 테니 잠깐만 쉬었다 가요.

그리고 책값도 미리 준비했으니 받으시고요.”

 

회장님은 매우 친절하고 세심한 분이었다.

봉투를 미리 준비했다가 주시는 사려 깊은 분이었다.

허당은 회장님을 만날 때마다 가식 없는 순수한 인간 냄새가 좋다고 생각했다.

 

그 자리에서 봉투를 열어보고 속에 십만 원짜리 두 장이

들어 있는 것을 보고 한 장을 꺼내어 내밀었다.

회장님, 이 책은 정가가 만 원이어유. 거저 드려도 아깝지 않은디

이렇게 더 받을 수는 없지유. 도루 받으세유.”

허선생은 장사꾼은 못 될 것 같소.”

 

회장은 도로 받으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이 사람은 정체가 뭘까? 연구 대상이야.

심리학을 전공한 사람이 곳간에서 막일을 하다니, 보통 같진 않은데?’

허당이 물었다.

회장님께 뭘 좀 여쭈어 봐도 될까유?”

그러시오. 뭐든지.”

이 동화책을 어디다 쓰시려고 그렇게 많이 사시나유?”

차차 말씀드릴 테니 날마다 열 권씩 꼭꼭 가지고 오시면 고맙겠어요.”

한꺼번에 백 권을 가져다드리면 안 될까유?”

그건 안 됩니다. 날마다 오시기 어렵다면 내가 하루에 한 번씩 책 곳간으로 가지요.”

아녀유. 그럴 순 없쥬. 지가 날마다 올게유. 오늘은 이만 가 볼게유,”

그래요, 내일 봅시다.”

 

허당은 허당대로 회장의 속내가 궁금하고 회장은 회장대로 허당이

어떤 인물인지 궁금했다.

허당이 경비실에 나타나자 경비실장이 다가와 물었다.

회장님하고 형씨하고는 어떤 사이십니까?”

아무 사이도 아녀유.”

그것 참 이상하단 말입니다. 회사 사장도 전무도 회장실에 함부로 들락거리지 못하는데

형씨는 제집 드나들듯 하시니…….”

 

허당은 들은 체도 않고 딴 소리를 했다.

제가 드린 책은 꼭꼭 읽어보시는 거쥬?”

그럼요, 언제든지 읽었나 안 읽었나 시험해 보시지요.”

알았어유. 낼 다시 올게유,”

 

허당은 그 길로 떠나 버스 편으로 돌아와 책 곳간으로 곧장 갔다.

하필이 돌아오는 허당한테 물었다.

회장님 만나서 뭔 말을 혔어?”

암말도 안 혔구먼유. 이 책값이나 받으시유

 

하필이 봉투를 열어보고 좋아서 입이 쩍 벌어졌다.

책값을 솔찬히 받었구먼. 날마다 이렇게 주신다는 겨?”

.”

오늘 하우 오기 전에 꼬부랑글씨 주문서를 찾아 놔야겠어.”

 

이렇게 말해 놓고 하필은 하우가 도서관에서 받아온 책값

백 만 원과 십만 원을 들고 우체국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허당 통장에 삼만 원을 넣고 나머지는 자기 통장에 입금하고 좋아서

엉덩이춤을 추며 국자네 집으로 갔다.

 

싱글벙글한 하필을 본 국자가 물었다.

요새 뭐 좋은 일이 있는겨?”

있어.”

뭐간디?”

하우가 말여. 요새 신랑감을 보았다지 뭐여.”

그려? 잘됐네. 신랑감은 뭐 허는 사람이랴?”

몰러. 신랑감이 넷이나 생겼는디 그 중 하나를 찍었다는 겨.”

 

딸 자랑 딸 험담

 

국자가 부럽다는 듯 말했다.

넷씩이나 있는 가운데 하나를 골랐다니 을마나 난놈이것어.”

하필이 눈웃음까지 질질 흘리며 자랑했다.

그렇것지? 두고 보면 알것지만두.”

 

밸이 뒤틀린 국자가 자기 딸 험담을 했다.

우리 윤달이년은 날마다 건달 같은 것들하고만 어울리고

내 맴에 딱 드는 허당은 개 닭 보듯 항게 속상혀.”

 

하필이 위로한다고 하는 말.

갸가 인물값을 하는 겨. 그런 미녀가 허당 같은 보잘 것 없는 인물이

눈에 차기나 허것어? 국자가 잘 달래 봐.”

 

국자도 숨긴 맘을 털어 놓았다.

인물이야 하우가 잘 빠졌지. 게다가 얌전허고 직장 잘 댕기고 을마나 예뻐.

윤달이년은 미장원엘 나간다,

무엇인지 모를 이상헌 곳을 싸돌아다니며

돈 한 푼 못 벌어오면서 날마다 손을 벌리고

큰소릴 쳐대서 미워 죽것어. 허당이라도 좋아헌다면 고맙것는디…….”

하필이 웃으며 말했다.

나 대포 한잔만 줘. 후딱 마시고 가 봐야 혀.”

 

국자는 잽싸게 왕대포 한 잔을 퍼왔고 하필은 단숨에 쭉 들이켜고

곳간으로 돌아왔다.

아래층에서 듣자 하니 이층에서 하우하고 허당이 깨 볶는 소리를 해댔다.

이럴 때 기분이 상하면 참지를 못한다.

이층에서 뭣들 하는 겨?”

 

하우가 내려다보고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아빠가 기분이 업 될 땐 국자 아줌마한테 가시는 게 재미있다고 웃었어.”

하필이 딸의 요상한 말에 막혔다.

뭐여? 내가 기분이를 업는다구?”

아빠가 기분이 좋으시면 국자 아줌마네 가신다는 말이야.”

그려. 기분 좋아서 국자한티 가서 네 자랑을 째지게 혔지.”

무슨 자랑을 했어어?”

네가 신람감을 넷이나 봤다는디 거기서 젤 잘난 놈을 하나 찍었다니

을마나 잘난 놈이겠느냐고 자랑을 했지.”

 

잘 했어, 아빠.”

그려? 언제나 낚시에 걸린 잉언가 금붕언갈 잡아채 올겨?”

기다려. 낚시 줄이 안 끊어지면 잡혀올 거야.”

난중에 꼬옥 데려올 거지?"

 

그리고 놓지 않고 말로 눌렀다. 

"허당은 책 다 골렀으면 가봐.”

.”

 

허당이 약간 시무룩한 소리로 대답하자

하우가 힘내라는 한 마디를 했다.

오빠. 내 맘 알지?”

 

허당은 역시 울적한 얼굴이었다.

그런 속이 어떤 것인지 하우는 짐작하고 있었다.

그러나 하필은 딴 생각으로 이상해서 물었다.

허당이 뭘 안다는 겨? 허당이를 오빠라고 부르지 마.

오빠가 무신 오빠여, 허당이지.”

 

허당이 축 처진 뒷모습으로 돌아가고 하루가 갔다.

오늘도 헌책방 할아버지열 권과 귀 밝은 임금님세 권을 챙겨들고

회장네 회사 정문을 들어섰다.

김씨가 반갑게 반겼다.

아이고 책 선생님 오셨네요.”

, 안녕하셨쥬?”

, 주신 헌책방 할아버지잘 받았습니다.”

실장님이 주셨쥬?”

.”

회장님 뵙고 나와서 다시 뵙쥬.”

 

허당은 성큼성큼 걸어 회장실로 들어갔다.

회장님 안녕하세유?”

안녕했지요. 우선 책 먼저 봅시다.”

회장이 약속한 책 열 권을 받아들고 낯선 동화책이 하나 끼어 있어서 물었다.

이건 무슨 책인가요?”

덤이지유.”

그래요? 귀 밝은 임금님이라……. 궁금한데?”

 

회장님을 뵐 때마다 그 임금님 생각이 나서유.”

그래요? 내 생각이 나는 책이라니 차차 읽어 보겠소.”

회장님, 헌책방 할아버지는 날마다 무엇에 쓰시나유?”

그게 그렇게 궁금하시오? 나는 허선생 속이 궁금하오.”

지는 속에 아무것도 든 게 없는 허당일 뿐이쥬.

지는 회장님 속이 궁금한대유.”(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