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필이 하는 말에 허당이 대답
“이렇게 책을 많이 모으시는 이유가 뭔지 궁금해서유?”
“있지이….”
“뭔대유?”
“던 묻지 마.”
“아저씨는 영어는 잘 모르는 것 같은디 한문은 많이 아시는데 맞지유?”
“난 어려서 핵교는 못 다니고 글방에서 한문을 좀 배웠지.
그리고 서울 가서 고서점 점원을 하면서 고서며 서화며 골동품이
어떤 것인지 허고 감정허는 공부를 어깨너머로 좀 했지.”
“그러셨군유.”
하필이 다짐했다.
“앞으로 더는 그런 거 묻지 마.”
“야.”
이때 하우가 퇴근하여 돌아왔다. 하우는 허당만 보면 좋아서 어린애같이 굴었다.
“오빠. 서울 잘 다녀왔어?”
“…….”
허당이 민망해서 대답을 못했다.
아버지와 같이 있는 것을 알면 아버지한테 먼저 인사를 해야 하는데
오빠를 찾기 때문이었다.
역시 하필은 섭섭한 생각이 든 것이다.
“넌 오빠만 보이는 겨?”
“아빠도 보여.”
“그럼 오빠 그만 찾고 집으로 가 봐.”
하우가 허당을 좋아하는 것이 맘에 들지 않아
둘을 떼어놓기 위해 한 소리였다.
그러나 하우는 엉뚱한 소리를 했다.
“오빠, 오늘 주문서가 더 많이 들어왔어. 나하고 책 찾자.”
하필은 주문서 이야기만 나오면 목이 쏙 들어간다.
심술이 나도 어쩔 수 없이 한 마디 했다.
“책 찾는 대로 시시덕거리지 말고 곧장 집으로 가.”
“알았어. 아빠.”
하우는 밝은 얼굴로 책을 찾으러 이층으로 올랐다.
허당도 따라 올라가 책을 찾았다.
하필은 부아가 났다.
이럴 때는 국자네 국밥집에 가서 술이나 한잔 하는 게 약이었다.
그 길로 국자네 식당으로 가서 소주 한 병을 시켰다.
마침 식당이 조용한 중이라 국자가 곁에 와 앉아 말동무가 되어 주었다.
“요새 장사가 잘되는 것 가텨. 허당이가 복덩이지이?”
“모르는 소리 말어.”
“그렇게 맘에 안 드는겨?”
“아무리 생각혀도 우리 하우 짝은 아녀. 그런디 그것들이 내 맴을 몰러.”
“맞어. 하우한티는 안 맞지. 그러게 허당은 우리 집 사람이라니께.
윤달이가 좀 삐딱혀서 거시기 허지만…….”
“윤달이는 날이 갈수록 예뻐지고 몸매가 나드먼.”
“그렇지? 고것이 날 닮아서 몸매 하나는 끝내준다니께.”
하필이 한 마디로 국자를 깨뜨렸다.
“국자 몸매 닮으문 안 되지.”
“뭔 소려?”
“그냥 해본 소려. 그런 몸매로 자랑하면 안 되니께.”
“다 제 눈에 앵경여. 하필이 눈이 눈인가? 있으나마나지.”
“그려, 난 눈이 있으나마나여.”
국자가 욕심을 부렸다.
“허당을 우리 식당으로 데려오면 안 될까?”
하필이 펄쩍 뛰었다.
“그 씨도 안 먹을 소리 허지 마.”
“맘에 안 든다면서?”
“그런 소리 마. 술맛 떨어지니께.”
하필은 허당이 책하고 돈을 바꾸어 오는 재주 때문에 버릴 수가 없었다.
하필은 곧 자리를 떠 곳간으로 갔다.
이층에서는 둘이 깨 볶는 소리가 흘러내렸다.
그 소리에 부아가 치밀었지만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귀를 기울여 보았다.
둘이는 어느 책에 있는 문장인지를 찾아서 읽고 글을 주고받으면서 낄낄거리는 것이었다.
하필이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자리를 떴다.
“느덜이 아무리 그려도 허당이여. 하우는 내 딸여.
아무나한티 줄줄 알고. 어림도 없지.”
하필은 집으로 가면서 허당이 한 말을 곱씹었다.
‘고서를 돈하고 바꾸어주는 사람이 우리 곳간을 보고 싶단다고? 우짜지?’
그리고 다음 날 아침이다.
하필이 허당한테 물었다.
“그 고서를 돈허고 바꾸어 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여?”
“저도 몰르쥬. 큰 회장인 것만 알쥬.”
“우티기 그런 사람을 알게 된 겨?”
“그건 비밀이지유.”
“비밀?”
“야.”
“허당허고 나 사이에 비밀이라니 그게 될 말여?”
“왜 자꾸 물으시쥬? 그 분 한번 오시라고 할까유?”
“내가 말여. 허당이 바꾸어오는 고서를 거저로 주고 있다는 건 알어?”
“거저유?”
“그려, 누군가가 나만큼이나 고서에 대한 안목이 있는 거 같은디…….”
“아저씨가 고서의 가치를 알고 계셨나유?”
“알고 있으니께 하는 말여.”
“그럼 그 회장님도 고서 가치를 알고 있는 거 아닌가유?”
“그래서 그 사람한티만은 우리 곳간을 보여주고 싶은디.”
“그래유?”
“그려. 오늘 가거들랑 한번 오시라고 혀. 오실 때는 혼자만 와야 한다고 혀.”
“알았슈.”
허당은 예쁜 하우하고 한 차를 몰고 가서
일찍이 도서관에 책 납품을 하고 서울로 향했다.
몇 차례 다닌 길이라 능숙하게 빌딩 앞에 도착했다.
역시 경비실장이 먼저 나와 인사를 했다.
“책 선생님 어서오십시오.”
“난 선생이 아니라니께유.”
“아닙니다. 제가 반성 많이 했습니다.”
“무슨 반성유?”
“사람은 거짓말을 하면 수치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난 무식혀서 무슨 말씀인지 못 알아듣겠는디유.”
“왜 이러시오 책 선생. 오늘은 어제 주신 책 진짜 다 읽었습니다. 물어보시지요.”
“그려유? 할머니는 집에 어떤 동물들을 보호했나유?”
“토끼, 늑대, 곰, 호랑이지요.”
“호랑이는 왜 도망쳐 왔나유?”
“포수가 따라와서지요. 맞지요 책 선생?”
“고마워유. 책을 두고 거짓말 하면 안 되는 거여유.”
“미안합니다. 책선생. 회장실로 제가 모시겠습니다.”
경비실장은 앞장서서 회장실까지 안내했다.
마침 회장이 나오다가 경비실장이 안내하는 걸 보고 칭찬했다.
“오, 박실장 친절도 하시오. 귀빈이 오실 때는 그래야지, 하하하.”
허당은 귀한 대우를 받으며 회장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고서를 넘겨주며 물었다.
“회장님, 이런 책을 그렇게 큰돈을 주고 구하시는 속내가 있으신가유?”
“있지요. 그 서고 주인은 어떤 분이시오?”
“몰르쥬. 한문은 조금 아시는 거 같었지유.”
“그분을 만나보면 좋겠는데 말씀드려 보셨나요?”
“야.”(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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