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우가 바닷가를 멀리 걸어가며 이야기하자고 했지만
허당은 따르지 않고 말했다.
“너무 늦게 돌아가면 아저씨헌티 지청구 맞어.
바다 구경했으니 그만 돌아가.”
허당은 하우한테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처럼 태연했지만
속은 하우하고 마음껏 뒹굴며 놀고 싶었다.
그렇지만 둘 사이를 떼어놓으려는 하필의 마음을 알기 때문에
하우 맘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했다.
결국 하우는 허당이 돌아가자는 고집을 못 이기고
바다를 떠나 책 곳간으로 돌아왔다.
그렇지 않아도 하필은 허당과 하우가 차를 같이 타고 가게 한 것을 후회하고 있던 터였다.
두 사람이 무사히 돌아온 것을 보고 하필이 물었다.
“책 납품은 잘 하고 온 겨?”
“야.”
허당이 수그리고 대답하자 하우는 골이 난 얼굴로 말했다.
“나 오빠하고 같이 안 다닐 거야.”
하필은 그 소리가 은근히 마음에 들었다.
“왜 그려? 뭐 허당이 허튼 수작이라도 한 겨? 그런건 아니지?”
“다음서부터는 주문 책이 많을 땐 아빠하고 같이 갈 거야.”
“그건 안 돼야. 난 무거운 책 못 들어날러.”
하우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래야 다음에도 허당하고 같이 차타고 놀러 갈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즐거운 하루가 간 다음 날,
허당은 고서 두 권과 동화 「헌책방 할아버지」를 봉투에 담고
「키다리 바보 삼촌」 두 권을 챙겨 들고 서울로 갔다.
큰 빌딩 앞에 나타나자 경비실장이 달려왔다.
“이제 오시오? 기다렸소.”
“뭔 일 있나유?”
“뭔 일은 뭐, 동화책을 가져왔나 해서지요.”
“동화책이 그렇게 좋아유?”
“말도 마소. 우리 애들이 동화책을 가져다주었더니 얼마나 좋아하는지 몰라요.”
“그려유?”
“애들이 동화가 아주 재미있다고 또 가져오라는구려.”
“알았시유. 많이 가져다 드릴게유.”
허당이 똑같은 동화책 두 권을 내주자 실장이 물었다.
“오늘도 똑같은 책이오? 김씨는 이런 책 별로 좋아하지 않던데.
김씨한테 내가 전해 주라고요?”
“그러시면 하나는 제가 직접 드리지유.”
국자 사윗감
“아니오. 내가 전해 줄 테니 회장님한테나 먼저 가시오.”
허당은 경비원 안내도 안 받고 혼자서 회장실을 찾아갔다.
회장은 이미 기다리고 있었다.
“회장님 안녕하세유?”
“야. 반가워유, 하하하.”
“회장님 내 흉내 내시면 안 되시쥬. 웃으시는 소리는 듣기 좋네유.”
“그렇습니까. 책을 봅시다.”
회장은 고서 두 권에 「헌책방 할아버지」를 보더니
흡족하여 또 웃으며 말했다.
“고맙소. 이 동화책은 어디서 나셨소?”
“우리 책 곳간에 수두룩허쥬.”
“그래요? 동화책 읽어본 지가 오십 년은 넘은 것 같은데,
좋은 책을 또 주시어 고맙소.”
그렇게 하여 허당은 오늘도 백만 원짜리 두 장을 들고 회장실을 나왔다.
마침 그 앞을 지나던 김씨가 보고 반가워했다.
“책선생 고맙소. 어제 주신 동화책 참 재있게 읽었습니다.
아름다운 비밀을 하나씩 만들어 가지고 산다는 것이
참 아름답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유? 아름다운 비밀을 가슴에 품고 살면
날마다 웃음이 얼굴에서 새나오지유.”
“웃음이 샌다고요?”
“야. 아름다운 비밀은 웃음을 물고 오고
말 못할 고민은 얼굴에 그늘이 지지유.”
“맞는 말씀입니다. 오늘도 만나 뵈어서 반가웠습니다.”
“오늘 드릴 책은 실장님헌티 맡겼으니께 받아가시유.”
“고마워요. 오늘 다 읽고 감상문도 써 드리지요.”
“그러면 더 좋지유.”
그렇게 몇 마디 남기고 허당은 곧장 서울을 떠나 책 곳간으로 돌아왔다.
곳간 입구에 들어서니 사무실에서 국자와 하필이 소리가 들렸다.
“하필이 잘 생각혔어. 하우하고 허당이는 안 맞어.
허당이는 우리집사람이여. 우리 윤달이 짝으로는 안성맞춤이여.”
하필이 듣던 중 반갑다는 듯이 장단을 맞추었다.
“그려, 허당이는 딱 국자 사윗감이여.
그만하면 윤달이허고 잘 맞을 거구먼.”
국자가 신이 나서 말했다.
“그렇지? 난 허당이 너무너무 좋아뿌렀어.
날마다 손님 데불고 오지 화단도 잘 가꾸어주고 을매나 존지 몰러.”
“잘 구실러 사위 삼아 봐. 괜찮은 애니께.”
허당이 말없이 이층으로 올라갔다.
발소리를 들은 하필이 나서서 물었다.
“허당이 벌써 댕겨온 겨? 거기 주문서 받아 놓았어.”
국자가 허당이한테 손짓을 하며 인사했다.
“우리 허당 총각. 나 가아. 일 잘혀어!”
허당은 기가 막혔다.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김칫국 먼저 마신다는 말이
이럴 때 맞는 말이라고 생각하고 피식 웃었다.
얼마 안 있다 하우가 퇴근하여 오자마자 이층으로 올랐다.
“오빠, 좋은 소식이야!”
딸이 앞의 아버지는 보지도 않고 이층으로 오르면서
하는 소리에 하필이 노기가 불끈 차올랐다.
“하우야, 넌 우째 애비는 안 보이는 겨?”
“아빠도 보이지만 오빠가 더 보고 싶은데.”
하필은 속에 숯불이 떨어진 듯 뒤집혔다.
그렇게 둘이 어울리는 걸 막는데도 하우가 눈치도 없이 구는 것이
이만저만한 불만이 아니었다.
“하우, 사무실로 와봐!”
노기 찬 소리를 알면서도 태연히 사무실로 들어선 하우가
철부지 소리를 했다.
“아빠, 뭐 급한 일야?”
“너, 내가 몇 번이나 일렀어?”
“뭘?”
“너허구 허당이허구는 안 어울리는 사람이여.
아무나 좋아하고 시시덕거리면 안 된다구 했잔여!”
“주문서 책을 척척 찾아내고 아빠가 모르는 꼬부랑글씨도 다 찾는
허당 씨 기분도 맞추어주어야 할 거 아냐?”
“그 말은 맞지만.”
하우가 토라진 듯 쏘았다.
“내가 언제 허당 오빠한테 결혼이라도 하자고 했어?”(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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