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가 파랗게 굳었다 85-90
다음 날 허당은 정거장에서 책 나누어주기를 마치고
서울행 버스를 탔다.
버스가 고속도로를 달리는 동안 생각했다.
‘그 신사가 어제는 백삼십만 원에 책을 팔고 나한테는 오십만 원을 준 거다.
더 받았으면 나한테도 더 주어야 하지 않아. 오늘도 오십만 원만 주면…….’
버스가 터미널에 도착하고 차에서 내리자 신사가 반갑게 맞이했다.
“고맙소. 약속을 잘 지켜주어 고맙소.”
허당이 책을 건네기 전에 입을 열었다.
“선상님, 이제부터는 책을 가지고 올 수가 없는데 우짜지유?”
“왜 무슨 일이 있습니까?”
“야, 우리 책 곳간 주인이 그렇게 귀헌 책을
오십만 원밖에 못 받아오려면 그만 가져가라네유.”
신사가 놀란 소리를 했다.
“네에? 그러면 얼마를 받아오라시나요?”
“적어도 한 권당 150만 원은 받아야 헌다네유.”
신사가 파랗게 굳었다.
“그, 그 말이 정말입니까?”
“야아.”
“그건 말도 안 됩니다. 그런 고물을 오십만 원씩 주는 것도
내 주머니를 털어서 드리는 건데…….”
허당은 신사가 거짓말하는 것을 알면서도 시치미를 뚝 떼고 대답했다.
“그러시겠쥬. 나라도 그런 책 만 원에도 안 사겠구먼유.
그런데 우리 곳간 주인은 책에 대하여 빠꿈이라고 소문이 날 정도로
책을 잘 알고 있어서 고서를 나한테 주면서
백만 원이 넘는 보물을 그냥 거저 주는 거다 하셨거든유.”
“일단 오늘은 전처럼 드릴 테니 오십만 원만 받으시고 주인어른한테 잘 말씀드리세요.”
“야.”
신사는 책을 받아들고 역시 어제 그 다방으로 갔다.
허당도 능숙하게 뒤를 밟아 어제처럼 신사와 등을 대고 뒤에 앉아
두 사람이 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신사가 노신사한테 말했다.
“회장님, 아무래도 찾으시는 고서는 더 이상 구하기가 힘들어졌습니다.
고서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돈맛을 알고 권당
삼백만 원을 달라고 합니다. 제가 무슨 재주로…….”
“그건 너무하는 것 같은데 생각해 보십시다.
혹시 선생께서 욕심을 부려 보자는 것은 아니겠지요?
자, 오늘 것은 특별히 150만원을 쳐주겠소.”
그렇게 하고 두 사람은 다방에서 나갔고 신사는 신사대로 어디론가 갔다.
허당은 노신사가 어디로 가는 누구인지를 알아볼 심사로 그 뒤를 밟았다.
노신사는 바로 가까이 있는 높고 큰 빌딩 안으로 들어갔다.
빌딩 경비원들이 두 줄로 서서 노신사를 향해 일제히 허리를 굽히고 경의를 표했다.
대단한 지위를 가진 사람 같았다.
허당이 문 앞에서 어정거리자 경비원이 다가와 물었다.
“어디를 찾으십니까?”
“길을 찾는 게 아니구유. 지금 막 들어가신 노신사분이 누구신지 궁금혀서…….”
“그 어른은 우리 회사 회장님이십니다.”
“그렇게 높은 분이신 줄 몰랐구먼유. 내일 다시 찾아올게유.”
“뭐 꼭 전해드릴 말씀이 있으신가요?”
“아녀유. 내일 와서 뵐 게유.”
허당은 돌아서서 빙긋이 웃으며 버스 터미널로 향했다.
돌아와 책 곳간으로 들어서자 허우가 기다리고 있었다.
“어디를 갔다 와요, 허당 씨.”
“서울 좀 다녀 왔쥬.”
“서울은 왜요?”
“좋은 일이 생겨서 날마다 한 번씩 다녀올 거구먼유.”
“무슨 일인데요?”
“좋은 일이니께 묻지 말어유.”
하필이 이층에서 내려다보고 물었다.
“책값은 받아온 겨?”
“야.”
“빨리 올라와 주문서에 있는 책 좀 찾아봐.
꼬부랑글씨로 된 주문서는 뭐가 뭔지 모르것어.”
“어른께서 모르는 걸 제가 아남유?”
“허긴 그려, 허당이 뭘 알것어. 묻는 내가 바보지.”
허당이 이층으로 올라가 주문서를 들고 찾았다.
영어로 된 것이라 하필이뿐 아니라 하우도 제대로 찾지 못하고 있던 터였다.
허당이 이리저리 누비고 다니며 책을 뽑았다.
신기한 생각을 한 허우가 물었다.
“허당 씨, 정말 다 알고 찾는 거예요?”
“야,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네유. 다행히 주문서에 있는 책들이 다 있어유.”
허우는 허당이 자기보다 실력이 월등한 인물이라는 걸 느꼈다.
그 순간 갑자기 허당 씨라고 부르면 안 될 것이라는 생각도 들어서
호칭을 오빠로 하기로 했다.
“오빠!”
허당이 두리번거리며 물었다.
“누가 왔나유?”
“호호호, 그 사람이 왔어요.”
허당이 또 두리번거렸다.
“어디 있는대유? 아무것도 안 보이는구먼유.”
허우가 손가락으로 허당을 가리키며 깔깔거렸다.
“호호호, 여기 있잖아요. 내 손가락 끝에.”
허당은 다시 뒤를 돌아보았지만 아무도 안 보여서 물었다.
“누가 있어유. 아무도 안 보이는대유.”
하우가 허당 눈을 찍듯이 가리키며 선언했다.
“이제부터 허당 씨라고 부르지 않기로 했어요.
허당 오빠, 아니 그냥 오빠라고 부를 거예요.”
허당이 놀라서 물었다.(계속 91-95)
'문학방 > 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명랑소설 / 하필 허당에 빠진 국자 96-100 (1) | 2025.09.29 |
|---|---|
| 명랑소설 / 하필 허당에 빠진 국자 91-95 (0) | 2025.09.28 |
| 명랑소설 / 하필 허당에 빠진 국자 81-85 (0) | 2025.09.26 |
| 명랑소설 / 하필 허당에 빠진 국자 76-80 (0) | 2025.09.25 |
| 명랑소설 / 하필 허당에 빠진 국자 71- 75 (3) | 2025.09.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