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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랑소설 / 하필 허당에 빠진 국자 81-85

웃는곰 2025. 9. 26. 09:57

감사합니다. 그럼 그 말씀만 믿고 돌아가겠습니다.”

신사는 곱게 돌아갔다.

곳간에 허당하고 둘이만 남자 하필이 한걱정을 했다.

 

하우가 아무도 모르게 허랬는디 저 사람이 알았으니 우티겨.”

알았어유. 내게 한 가지 생각이 있어유.”

뭔 생각이랴?”

내일 지나고 말씀드릴 게유.”

 

다음 날 아침 허당은 책 열 권을 들고 정거장으로 나갔다.

역시 신사는 일찍이 나와 있다가 인사까지 먼저 했다.

젊은이, 어제 실례가 많았습니다.”

아니여유, 이제부터는 선상님이 여기서 기다리실 것 없어유.

우리 곳간을 아셨으니 비밀로 허실 줄 믿고 그 대신 선상님 계신 곳을 알려주세유.

제가 책을 직접 갖고 가서 드릴 게유.”

그러시면 내가 편하긴 하지만 국밥집 아드님이 불편하시지 않겠어요.”

 

허당은 국밥집 아드님이라는 말에 기분이 뒤집혔지만 참고 말했다.

제가 드리는 말씀대로 하시지 않으면

이제부터 그런 책을 가지고 나오지 않을 거구먼유.”

정 그러시다면 그렇게 하시지요. 날마다 서울 이 버스 종점에서 기다릴 테니

미안하지만 이 차를 타고 오시지요. 차비는 제가 부담하겠습니다.”

 

그럴 것 없어유. 날마다 오십만 원씩 주시는데 차비는 제가 부담해야쥬.

낼부턴 이 차를 타고 갈 테니께 서울서 만나시쥬.”

좋습니다. 그럼 내일부터는 서울 버스 터미널서 만나기로 하시지요.”

 

그렇게 약속하고 다음 날 허당은 고서를 들고 버스를 탔다.

차가 터미널에 도착, 허당이 내리자 신사가 기다리고 있다가

돈 봉투를 급히 건네고 책을 받아들자마자 어디론가 부지런히 달려갔다.

허당은 그가 어디로 가는지 궁금하여 뒤를 밟았다.

그 사람은 커피숍이 아닌 다방이라는 간판이 붙은 뒷골목 다방으로 들어갔다.

허당은 살금살금 내부를 살폈다.

 

다방은 아주 옛날 구식 다방이었다.

네 사람 앉는 자리에 높은 등받이 칸막이가 막고 있어서

뒤쪽에 앉으면 앞쪽 사람이 안 보이는 음산한 분위기였다.

신사가 한쪽 자리에 앉자마자 머리가 하얗고 점잖게 생긴

노신사가 들어와 마주앉았다.

그 틈에 허당은 가까운 자리를 차지하고 신사와 등을 대고 앉았다.

 

노신사는 앉자마자 물었다.

오늘도 하나 구해 왔는가?”

신사가 굽실거리며 대답했다.

, 아주 귀한 보물을 구해 왔습니다.”

그런가. 수고했네. 어디 보자, 참 귀한 보물이야, 하하하.”

 

노신사가 흡족한 웃음을 흘리며 책값을 건네자 신사가 새로운 제안을 했다.

회장님, 지금까지는 건당 백만 원씩 주셨지만 제가 이 책을 구하기 위해

온 천지를 헤매다 보면 비용도 많이 들고 힘도 듭니다.

이제부터는 오십만 원만 올려주시지요.”

 

백 오십 만원씩 달라는 말씀이신가?”

, 그것도 공짜가 아닙니까. 지금 세상을 다 뒤져도 그런 책은 더 이상 못 구합니다.”

그건 그렇지만……. 내가 그 고서점을 몽땅 사려고 10억을 따로 준비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서점 주인이 문을 닫고 책을 다 내다 버렸다는데

어디다 버렸는지 알아야 찾지.

참 아까운 보물을 잃었어.

그래도 임자가 날마다 구해 오니 다행이긴 한데 이제부터는

150은 너무하고 권당 130만 원으로 하세.”

 

회장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니…….”

고마우이. 130만 원 받게. 내일 이 자리에서 또 봄세.”

노신사가 자리를 뜨면서 돈을 건네자 신사는 허리를 90도도 넘게 굽실거리며 인사를 했다.

안녕히 가십시오. 회장님, 내일 뵙겠습니다.”

 

신사는 기분이 좋아서 휘파람까지 불며 다방에서 나갔다.

허당도 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책 곳간으로 돌아왔다.

갑자기 어디로 가서 안 보이던 허당이 돌아오자 하필이 물었다.

어딜 말도 읎시 갔다 오는 겨?”

최송해유. 책값 받으셔유.”

 

하필은 돈만 주면 헤헤거리고 좋아했다.

허허허, 그려 자네가 젤여. 오늘도 59만 원이지?”

.”

 

하필은 돈이 생기는 대로 날마다 우체국에 가서 예금을 했다.

통장에 동그라미가 줄줄이 달라붙는 것을 보는 재미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백만 원이 들어올 때 그렇게 좋았는데 이제 오백만 원에 동그라미가 하나 더 붙었다.

오천 만원이다! 흐흐흐, 속으로는 춤을 추고 싶게 좋지만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실실거렸다.

 

허당은 흐트러진 책들을 정리하면서도 눈은 문쪽을 떠나지 못했다.

퇴근하여 돌아오는 하우가 머리를 뒤로 말아 올려 묶고

사뿐사뿐 걸어오는 모습이 보고 싶어서였다.

그러다가 하필이 눈에 띄면 벼락을 맞아야 한다.

하필이 아무리 그래도 허당 마음속까지는 모를 것이니

그리워하고 기다리는 비밀을 들킬 염려는 없다.

해가 질 녘에서야 하우가 들어서며 꾀꼬리 소리로 하필한테 물었다.

 

아빠, 허당 씨는 어디 갔어?”

허당이 이층에서 내려다보다가 잽싸게 자릴 옮겼다.

딸이 허당을 먼저 찾는 것이 불만스러운 하필이 벌레 씹은 소릴 했다.

넌 허당만 보여? 날마다 허당 허당하다가 허당에 빠지면 나오지도 못혀.”

호호호. 아빠는. 난 벌써 허당에 빠졌어.”

 

뭔 소릴 그렇게 하는겨? 애비한테 농담을 혀?”

농담도 재미있잖아 아빠.”

오늘도 주문서 많이 들어온 겨?”

일 잘하는 허당 씨한테 먼저 알려줄 거야.”

 

허우가 상냥하게 웃으며 아양을 떨자 하필은 손가락으로 이층을 가리켰다.

올라가 봐. 시시덕거리지 말고. 허당은 허당이여.”

허우가 이층으로 올라와 허당 앞에 주문서를 내보였다.

허당 씨. 우리 부자 될 거 같아요.”

 

허당이 주문서를 받아 들고 빙긋이 웃었다. 그 책들이 모두 곳간 안에 있기 때문이었다.

주문 폭주네유. 하우두유두!”

아임 투 하우두유두!”

허우도 따라 한 마디 따라 하고 깔깔 웃었다.

 

아래층에서 그 소리를 듣고 하필이 꽥 소리를 질렀다.

하우 허우 허지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