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6-80 / 아무나 지 아들이여?
국자는 윤달이를 한 대 쥐어박고 싶은 걸 억지로 참고
돌아서서 가게로 나오고 말았다.
그리고 중얼거렸다.
“허당 총각이 내 눈에는 선비로 보이는디
윤달이 눈에는
무엇이 씌워서 꺼벙이로만 보일까.”
허당은 돌아가면서 생각했다.
“왜 우울할 때마다 하우 생각이 날까?
윤달이는 꼭 잠깐 피어 요란하게 향기를 날리다 지는 장미 같은데,
하우는 조용히 곱게 피어 벌 나비를 모으고
한 여름 노래하는 백일홍 같아
내 맘이 백일홍 꽃속에 파묻히고 싶은데…….
그렇지만 아무래도 나는 하필 어른을 보아서라도
허우를 가까이 하면 안 되는디.”
미행자
다음날도 허당은 고서 한 권과 다른 책 아홉 권을 묶어 들고 정거장으로 나갔다.
맨 먼저 눈에 띄는 사람이 그 신사였다.
허당이 먼저 인사했다.
“선상님 안녕하세유?”
“반가워요. 이렇게 날마다 만나서 좋고 내가 좋아하는 책을 가지고 오시니 고맙고 더 좋소.”
신사는 허당이 내미는 고서를 받아들고 흡족한 얼굴로 봉투를 건네주었다.
“이게 뭐여유?”
“오십만 원이오.”
“책을 거저 드려도 되는디 날마다 돈 받기가 그러네유.”
“그렇지 않아요. 내가 찾는 책을 구해다 주시는 것만도 고마운데
거저 받을 수가 있나요.
난 갈 데가 있어서 먼저 저쪽으로 가겠소.”
“안녕히 가세유.”
오늘도 사람들한테 받은 돈 9만원을 봉투에 같이 넣고
차에서 내린 할머니를 부축해 드리면서 말했다.
“차타고 다니시기 대간하시쥬?”
“그려, 젊어서는 안 그렸는디 나도 다 살았나벼.
총각은 누간디 이렇게 늙은이를 도와주시나?”
“시장도 하시지유?”
“그려, 배도 고프고 맥도 빠져서 속이 든든할 걸 먹고 싶은데
어디 좋은 식당이 있댜?”
“네. 제가 안내해 드릴게유.
바로 조 뒷골목에 돼지국밥집이 있는디 아주 잘해유.”
“그려, 아무데고 좋은 데가 있으면 앞장 서.”
허당이 할머니를 부축하고 국자네 식당으로 가는 뒤를 신사가 뒤를 밟고 있었다.
신사는 식당 밖에 숨어서 허당이 나가기를 기다렸다.
그러다가 신사는 허당이 나가자마자 바로 식당 안으로 들어가
국밥을 시켜 먹으면서 국자한테 물었다.
“저기 노인하고 나간 총각은 누군가요?”
“내 아들이쥬.”
“그렇습니까? 훌륭한 아들을 두셨습니다. 아들은 무엇을 하시나요?”
“아침나절은 책 곳간에서 일하고 낮에는 정거장서 손님을 모시고 오쥬.”
“그렇게 훌륭한 아드님을 두셔서 행복하시겠습니다.
그 책 곳간은 먼 데 있습니까?”
“아녀유. 바로 이 뒷골목 안에 허름한 창고가 있는데
거기 책이 겁나게 많어유.”
“그렇습니까? 책 구경 한번 해도 될까요?”
“그러슈. 내가 앞장 설 테니 따라오슈.”
국자가 곳간으로 들어서며 소리쳤다.
“하필 씨, 내가 손님 모시고 왔어어.”
하필이 내다보고 깜짝 놀라 멈췄다가 물었다.
“누구신데 여기꺼정 오셨대유?”
신사가 정중히 인사를 했다.
“네, 근처에 유명한 서점이 있다기에 한번 들렀습니다.”
“여긴 서점이 아녀유. 우리는 책 안 팔어유.”
신사가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사방에 책이 엄청 많습니다. 한번 둘러 봐도 될까요?”
이때 국자가 나섰다.
“손님이 보자고 하시는데 어서 보여드려어.
그래야 책을 사실 거 아녀.”
하필이 마뜩찮은 얼굴로 받았다.
“여긴 서점이 아닌게 다시는 아무나 델구 오지 마.”
이때 이층에서 주문받은 책을 찾던 허당이 내려다보고
깜짝 놀라 신사한테 물었다.
“여기는 어떻게 알고 오셨대유?”
신사가 대답했다.
“반갑습니다. 여기서 일하시는 분이셨군요.
식당에서 식사를 하다가 이 아주머니가 자기 아들이 여기서 일한다며
안내해 주시어서 구경 왔습니다.
책이 정말 엄청 많습니다.”
하필이 국자한테 눈을 흘기며 말했다.
“아무나 지 아들이여? 국밥집은 가서 장사나 혀.”
그 말에 국자가 일그러진 얼굴로 인사도 없이 팽 돌아갔다.
하필이 신사한테 말했다.
“오셨응게 사무실에서 차나 한잔 하고 가슈.”
사무실이래야 아무것도 갖추어지지 않은 베니아 판으로 얽은
칸막이 안으로 들어갔다.
차는 보리차였다.
그것을 한잔 내놓으면서 부탁했다.
“선상님, 여기는 아무도 모르는 곳여유.
우리가 책을 좋아혀서 여기저기서 버리는 책을 받아다 둔 것이쥬.
다시는 오시지도 말고 여기 책 곳간이 있다는 말도 허지 말어유.”
“알겠습니다. 말씀대로 하지요.
이왕 왔으니 한번만 둘러나 보고 가게 해 주십시오.”
곁에서 경계의 눈으로 지켜보던 허당이 대답했다.
“둘러보실 것 없어유. 내가 날마다 한 권씩 내갈 테니 그리 아셔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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