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당이 대답했다.
“제가요, 어저께 기분이 나빠서 하우 씨가 묻는 말에 대답을 안 했는디…….”
하필은 성질이 난 듯 닦달했다.
“뭔 소릴 허는 겨? 하우가 뭘 물었깐디?”
하우가 대답했다.
“내가 국자 아줌마네 가서 뭘 먹었느냐고 물었는데 대답을 안 해서 그런 거야.”
하필이 반가워서 속마음을 털어 놓았다.
“그려? 국자가 쟈를 을마나 좋아하는지 모르니께
뭐든 아주 맛난 거 먹였것지.
그러니 대답하기 거시기해서 그랬을 겨.
쟈도 국자 딸이 예쁘니께 눈독들일만 혀.”
하필이는 기회만 있으면 하우가 허당한테 마음을 주지 않게 하려고
아무 말이나 해댔다.
그 속을 빤히 들여다보고 있는 하우는 다른 말을 했다.
“허당 씨, 이 주문서 오늘 다 찾아 놓아야 해요. 아셨죠?”
“찾는 데까지 찾아 봐야쥬. 요새같이 책이 안 팔리는 마당에 이런 주문서는 롯또지유.”
“호호호, 로또, 맞아요. 로또예요.”
허당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주문서를 가지고 이층으로 올랐다.
그 뒤를 하우가 따라 가려 하자 하필이 잡았다.
“야야, 너 철읎이 굴지 마. 남자라고 다 남자가 아녀.
남자 소심혀. 허당이 같은 사람은 국자 딸과 어울리는 사이여.”
“알았어 아빠. 아무 염려 마셔. 내가 누군데!”
그 말에 하필이 만족했다.
“그려. 그래서 너는 내 딸여. 너만 믿으면 되쟈?”
“알았어. 일은 부려먹으면서 왜 그렇게 이상한 소리를 많이 해 아빠.”
“부려먹은 건 아녀. 지가 좋아서 하는 일이니께.
허지만 나도 생각이 따로 있어서 부려먹을 만큼 부려먹을 겨.”
하필은 그러면서 허당 앞으로 아무도 모르게 따로 떼어놓은 돈을 세어 보았다.
한 달 동안 그 앞으로 모아 놓은 것이 2백만 원이 넘었다.
그래서 저금통장을 하나 만들 생각으로 허당한테 이런 말을 했다.
“허당이, 나허고 일한 날짜도 솔찬히 지났는디 내가 허당이 못 믿어서 허는 말이 아니니께 들어 줘.
주민등록허고 도장을 좀 줘야 것어. 허당이 본명은 맞지?”
“알았시유. 내 주민증하고 도장이 여기 있응게 확인할 거 있으면 자세히 보고 돌려주세유.”
“알았어. 내일까지만 내가 보관했다 줄 겨. 괜찮지?”
“야. 언제든지 가지고 계셔도 되어유. 날 못 믿겠으면 그냥 가지고 계셔유.”
“아녀. 못 믿어서 그런 건 아니니께 섭히 생각은 마.”
“알았시유.”
허당은 주문서에 있는 책을 찾아 한쪽에다 모아 놓고 생각했다.
‘이상한 일여. 이 고서는 누가 찾는 겨?
그 신사분이 이런 책을 또 구해 달라고 했는디 내일도 하나 끼워들고 나가 봐야 것지.’
도서관에서는 책을 이렇게 많이 주문하는데
서점들은 왜 장사가 안 된다고 책을 다 버리는지 알 수가 없었다.
서점뿐만이 아니다. 출판사에서는 똑같은 책을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다 실어가라는 거다. 그래서 책 곳간에는 똑같은 책들이 수두룩하다.
한쪽 구석에 처박아 놓은 고서더미는 엿장수도 안 가져갈 물건들이다.
그 중에 하나를 주었더니 신사분이 큰돈을 서슴지 않고 내주었다.
내일도 그분이 그렇게 돈을 줄까 생각하고 열 권을 묶는 속에
고서 하나를 끼워 넣고 퇴근했다.
다음날 아침 허당이 나타나자 하필이 진지하게 말했다.
“허당이, 정거장에 가서 책을 거저 주고 오다가 말인디.
낯 모르는 사람이 책을 어디서 그렇게 가져오느냐고 묻거든 대답하지 마.”
“왜유?”
“그건 하우가 나헌티 한 말여. 둿 땜인지 갸한테 물어봐.”
“알았시유. 정거장 가서 책 나누어 주고 올게유.
그리고 배고픈 손님 만나면 국자돼지국밥집으로 모셔드리고 올게유.”
“그려, 잘 생각혔어. 국자가 아주 좋아할 겨. 국자는 자네를 아주 좋아하니께.”
하필은 허당이 국자네 집에 가서 얼씬거리는 걸 좋아했다.
그래야 하우하고 떼어놓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였다.
버스 정거장에는 어제 그 신사분이 먼저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어서 오시게. 반갑네.”
“어제는 고마웠어유.”
“내가 부탁한 책 가져왔나?”
“예, 여기 이거유.”
“음. 고맙소. 오늘은 돈이 모자라서 30만 원만 주어야겠는데 괜찮겠소?”
“고맙지유. 그냥 가져가셔도 괜찮어유.”
신사는 돈을 건네주고 물었다.
“어디서 이런 책을 가지고 오시나?”
“그냥유.”
“이런 책이 많이 있소?”
“야.”
“그 책방을 한번 가 봐도 되겠소?”
“그건 안 되쥬. 거긴 책방이 아뉴.”
“책방도 아니면서 어떻게 날마다 이렇게 많은 책을 가지고 나오시오?”
이때 차에서 지팡이를 짚은 영감이 내렸다.
허당은 부지런히 따라가 인사를 했다.
“할아버지 대간하시쥬?”
“그려, 난 차멀미를 혀서 고생이 심혔어.
그런디 자넨 누군데 인사꺼지 하는겨?”
“저는 정거장에서 차 기둘리는 사람들한티 책을 나누어주고
시장하신 분들은 싸고 맛있는 식당으로 안내해 주는 사람이지유.”
“어디 그런 식당이 있는겨?”
“예, 절 따라 오시쥬.”
허당이 이렇게 말하고 신사분 앞을 지나가며 인사를 깍듯이 했다.
“고마워유. 편히 가셔유.”
신사는 점잖게 말했다.
“고맙소, 내일 또 봅시다.”
허당은 인사를 하고 돌아서며 속으로 생각했다.
‘저 신사분은 누구실까? 알 수 없는 분이 무엇에 쓰려고
그 고물 책을 돈을 주고 사가는 것일까?’
허당은 노인을 모시고 국자네 식당으로 갔다.
국자는 손님보다 허당이 예뻐서 싱글벙글 웃으며 상을 정성껏 차렸다.
손님은 허기진 배를 국밥으로 채우고 나갈 땐 4500원 짜리 국밥이지만
거스름돈을 안 받고 5000원을 주고 나가며 만족해했다.
허당은 손님이 가는 길까지 안내해주고 책 곳간으로 부지런히 갔다.
그리고 39만 원을 하필한테 내놓고 말했다.(계속)
'문학방 > 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명랑소설 / 하필 허당에 빠진 국자 76-80 (0) | 2025.09.25 |
|---|---|
| 명랑소설 / 하필 허당에 빠진 국자 71- 75 (3) | 2025.09.24 |
| 명랑소설 / 하필 허당에 빠진 국자 61-65 (0) | 2025.09.22 |
| 명랑소설 / 하필 허당에 빠진 국자 51-60/ (1) | 2025.09.21 |
| 명랑소설 / 하필 허당에 빠진 국자 41-50 (0) | 2025.09.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