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필 허당에 빠진 국자 51-60
국자가 하우를 향해 물었다.
“하우야, 네 생각은 어떠냐? 허당이 이름이 허당이라 그렇지
속은 허당이 아녀. 너도 그렇게 보이쟈?”
하필이 펄쩍 뛰며 가로막았다.
“뭔 소릴 하는 겨? 하우가 우티기 그런 애를 좋아한다는 겨?”
“하기는 그려, 하우가 그런 사람 눈에나 차것어?
좋은 직장에서 잘나고 잘사는 사람들만 보고 사는디.”
하필이 흡족해서 대답했다.
“그려, 말은 바르게 잘 혔어. 우리 하우가 그런 허당 같은 사람이 눈에나 차것어.”
국자가 한 술 더 떴다.
“허당은 우리집 꽃밭 지기나 시켰으면 좋겠는디
이 책 곳간에 와서 어정거리니 내가 달라고 할 수도 없구.
날마다 정거장서 손님 모시고 오는 건 또 을마나 귀여운지 몰러.”
하필이 그 소리는 맘에 안 드는 듯했다.
“그런 소린 마. 걘 날마다 정거장에서 책을 열 권씩 나누어 주고 오는
우리 복덩어리여. 하우하고 시시덕거리지만 않으면 좋것지만.”
국자가 좀 섭한 듯 돌아서며 말했다.
“그 허당 총각 낼 오거든 우리 화단에 꽃이 한창이라구 보러 오란다고 혀. 부탁여.”
다음 날 아침 허당이 책 곳간으로 들어서자 하필이 물었다.
“이봐 허당, 자네 국밥집 화단 아는 겨?”
“그게 무슨 말씀이래유?”
“그 집 꽃밭인가 뭔가를 봐준 겨?”
“야.”
하필이 무언가 마뜩찮은 얼굴로 한 마디 던졌다.
“가 봐아. 국자가 꽃구경 오라고 허고 갔어.”
“알았슈. 정거장에 먼저 갔다가 책 나누어주고 가 볼래유.”
“그려, 가서 그 집 윤달이도 있응게 같이 잘혀 봐.”
하필이는 어떻게든지 하우하고 허당이 가까이 못하게 하려고 수를 쓰는 중이었다.
허당도 그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할 수만 있으면 하우하고 멀리 하겠다고 다짐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생각할수록 하우를 좋아하는 맘이 더 간절해지고 가슴이 저렸다.
사랑의 상처는 사랑으로 치료한다는 말을 들어서 아는 허당은
차라리 하우를 잊기 위해 억지로라도 윤달이를
마음에 담으려고도 생각도 해보았다.
그렇지만 그게 쉽지 않았다.
허당은 정거장에 다녀와 하필한테 돈을 건네고 국자네 집 대문을 들어서
화단이 있는 담 곁으로 가다가 걸음을 딱 멈췄다.
언제 왔는지 윤달이가 꽃구경을 하고 있었다.
억지로라도 윤달이한테 마음을 주고
하우를 잊으려는 생각으로 마음을 다졌다.
하우 아버지는 노골적으로 딸과 떼어놓으려고 하는데
윤달이 엄마 국자는 정반대였다. 어떻게든지
허당이를 윤달이 짝으로 만들고 싶어 안달이 난 터였다.
그러나 솔직히 허당의 가슴에는 윤달이가 들어올 자리는 없었다.
허당의 가슴에는 하우가 똬리를 틀고 있었고
언제든 하우의 자리는 비워 두었다.
윤달이가 장미처럼 화사하고 예쁘긴 하지만 허당이 가슴 속에 피어 있는
백일홍 같은 하우는 밀어낼 수 없었다.
그래도 허당은 유달이를 억지로 가슴에 담아보려고 윤달이를 향해 말을 건넸다.
“꽃구경 하는 겨? 꽃들이 다 이쁘지?”
꽃에 홀려 있던 윤달이 깜짝 놀라 외마디 소리를 질렀다.
“소리도 없이 남의 집엔 왜 들어왔어?”
이때 국자가 들어오다가 그 소리를 들었다.
“윤달이 뭔 소릴 그리 혀?”
윤달이 기분 나쁘다는 얼굴로 대답했다.
바람난 여자 같은 장미
“저 사람 왜 남의 집을 소리도 없이 들어와?”
“너 이 화단 누가 가꾼 줄 알기나 혀?”
“내가 알께 뭐야.”
“이 화단 허당 총각이 갈고 씨 뿌리고 가꾼 거여.”
“그래서 어쩌라고?”
“그게 말이라고 혀? 고마운 사람한티 할 소려?”
“몰라!”
윤달이 그 한 마디를 남기고 말벌보다 빠르게 달아났다.
국자가 안타까운 얼굴로 말했다.
“허당 총각, 섭히 생각 마아. 저것이 겉으로는 저래도 속은 엉큼혀.”
“괜찮어유.”
“그렇지이? 내 말이 맞다는 거 아녀?”
“알았슈. 가게나 나가 보셔유. 난 꽃에 해충이 있는지 살펴볼게유.”
“그려, 갈 때 가게에서 국 한 그릇 허구 가 잉?”
국자가 떠나자 화단 앞에 놓인 멍텅구리 의자에 앉아
꽃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허당은 백일홍을 보고 하우 생각을 했다.
꽃들이 너무 많아 이름을 다 알 순 없었지만
담을 타고 웃는 뜨거운 장미와
새빨간 얼굴로 웃는 백일홍이 눈을 끌었다.
장미는 요란하게 향기를 날리며 거만을 떠는 윤달이 같고
백일홍은 다소곳이 수줍게 웃는 하우 같았다.
하우는 마음을 끌어당기는 강렬한 흡인력을 가진 자석 같다고 생각했다.
벌과 나비는 쉴 새 없이 꽃 사이를 날고 지나가는 실바람이
꽃들과 춤을 추다 향기를 묻힌 채 달아난다.
화단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평화가 고여 있고
하우가 백일홍이 되어 허당 가슴으로 안겨들었다.
꽃이 하우 얼굴로 보였다가 지워지고 보이지 않게 가슴에
그리움의 보금자리를 틀었다.
그러다가 머리를 저었다.
‘아니야, 이러면 안 되는 거여. 부모가 반대하는데 내가 왜 엉뚱한 생각을 품는겨?’
그러다가 또 생각했다.
‘윤달이 같은 장미는 잠깐 바람난 여자처럼 향기를 날리다가
바로 시들어 버리면 떨어진 꽃잎이 지저분하지…….
하우 같은 백일홍은 립스틱을 칠한 듯 곱고 오래 가다가 마지막엔
제 모습 하나도 흩트리지 않고 한창 때 모습 그대로 첫 서리가 내리면
하얗게 은빛 꽃으로 태어나지.
하우는 백일홍 윤달은 장미…….’
허당은 꽃을 보아도 하우로 보이고
가슴에서 지우려고 하면 할수록 그리움이 가슴에 뭉쳤다.
화단을 나선 허당은 책 곳간으로 발길을 돌렸다.
발길을 그리로 돌리면서 모질게 다짐했다.
‘내가 하우를 가까이 하면 부녀 사이만 나쁘게 만들어 놓는 거여.
하우는 내 상대가 아닌 별이여. 나 혼자만 좋아하고 바라보는 별.
그것이면 되는 겨. 하우하고는 웃지도 말고, 말도 섞지 말아야 혀.’
이렇게 다짐하며 책 곳간에 들어서자
하우가 기다렸다는 듯이 다가와 기쁜 소식을 전했다.
“허당 씨, 어디 갔다 이제 와요? 내가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르지요?”
“…….”
“왜 말이 없어? 골났어요?”
“…….”
“하우드유드!”
“…….”
하우가 A4지를 내밀었다.
“허당 씨. 이것 보실래요?”
허당은 주문서를 훑어보았다. 각종 주문 도서명이 가득했다.
소리를 치고 싶게 기뻤지만 조개 입으로 재갈을 채웠다.
하우가 책 곳간 안으로 들어가며 말했다.
“내가 주문서에 있는 책들을 다 찾았는데 여기 이 책은 어디 있는지 모르겠어요.”
허당은 그 책이 이층 꼭대기 윗간에 있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아무 말 없이 이층으로 올라갔다.
뒤를 하우가 따라 올라오며 꾀꼬리 소리로 말했다.
“허당 씨이, 하우하고 말하지 않기로 했어요?”
“…….”
“좋아요. 그렇게 말하기 싫으면 하지 말아요. 기다릴게요.
그 대신 내가 하는 이야기는 다 들어야 해요. 알았지요?”
명랑하고 귀엽고 예쁜 하우를 보면 한번 꽉 끌어안고 싶은데
그 마음은 속에서만 활활 타고 꺼지지 않는 화산이었다.
‘하필 영감이 그렇게 싫어하는데…….’
허당이 왜 갑자기 무뚝뚝해졌는지를 모르는 하우는 어떻게든지
허당이 말하게 하려고 스마트 폰에 떠있는 유머를 이렇게 읽었다.
웃음의 비밀
누구나 행복한 삶으로 역전할 수 있다.
길을 가는 사람에게 묻는다.
“혹시 사는 이유 아세요? 행복하기 위해서?”
바보처럼 다시 한 번 물어본다.
“가장 원하는 게 뭐예요?”
돌아온 대답.
“아따, 행복이라니까 그러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의 키워드는 아마도 행복일 것이다.
그러나 행복은 볼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다.
하는 일마다 꼬이기만 하는 어떤 사람이 터프하게 행복을 불러본다.
“야, 행복! 이 빤질이 녀석, 왜 나만 살금살금 비켜가는 거냐?”
최첨단 마이크로 목청 높여 불러 봐도 행복은 무소식.
고성능 현미경으로 하루 종일 째려보아도 행복은 나타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분명히 느낀다. 충분히 촉감한다.
붉은 와인처럼 섹시하게
우리를 도취시키는 행복의 입술
하얀 구름처럼 포근하게 우리를 껴안아주는 행복의 심장…….
“여기 행복 한 접시만 주세요!”
“이 주소로 행복 1킬로그램만 배달해 주세요!”
“여보세요, 나에게 당신의 행복 5분만 꿔줄래요?”
제아무리 가까운 친구, 부모, 부부 사이라도 이런 말은 할 수 없다.
그래서 행복은 매혹적인 것. 살 수도 없고 팔 수도 없는 비매품,
뛰어난 과학자가 아니어도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생산해낼 수 있는 자가 발명품이다.
당신의 삶이 고통스러울수록 힘든 일이 많을수록
행복 발명가가 될 확률은 높다.
인생 역전에 도전할 기회가 많다.
불평불만하고 살기엔 시간이 너무 아깝다.
과감하게 뜯어 고쳐 인생을 신장개업하자.
절망을 희망으로 그래서 행복한 삶으로 인생 역전하자!
--- 당신의 인생을 역전시켜라 중에서 ---
하우는 이렇게 읽고 허당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러나 이렇게까지 해도 허당은 허당이었다.
“허당 씨, 내가 읽은 문자 재미있지 않아요?”
“…….”
“허당 씨, 여기 행복 한 접시만 주세요.”
허당은 그 말이 재미있어 네에 하고 싶었지만
굳은 결심에 못질을 했다.
‘참자. 참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의 것이라고 했다.
이렇게 인생을 배우는 거다.’
하우가 카카오 톡 구절을 또 끌어들였다.
“여보세요, 나에게 당신의 행복 5분만 꿔줄래요?”
허당은 5분만 꾸어주는 게 아니라 자기 인생 전부를 남김없이 주고 싶었다.
그러나 입에 재갈을 채웠다.
마음씨 고운 하우는 여전히 다른 문자를 되뇌며 예쁜 소리만 했다.
“야, 행복! 이 빤질이 녀석, 왜 나만 살금살금 비켜가는 거냐?……
허당 씨, 정말 빤질이가 되신 거예요?”
“…….”
“허당 씨, 나 화내고 싶어. 받아주실래요?”
허당은 속으로 대답했다.
‘하우두유두, 아무리 화내도 내 가슴엔 다 받아 줄 자리가 있어요.’
그러나 마음에 숨은 비밀은 병뚜껑에 갇힌 90도도 넘는 독주가 되었다.
하우한테는 참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며
하우가 들고 있는 주문서를 받아들고 책을 찾으러 자리를 떴다.
하우는 순진한 아기처럼 재미있다는 듯 재잘거리며 뒤를 따랐다.
“허당 씨, 그 책이 있는 데를 다 아신다고요?”
허당은 대답이 없고 아래층에서 하필이가 외치는 소리만 올라왔다.
“저것들이 뭣들 하는 겨? 아직도 안 내려오고 뭘 혀?”
하우가 대답했다.
“주문서에 있는 책 찾고 있어.”
“그만 찾고 빨리 내려와.”
하우가 돌아서서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등 뒤에서 바라보는 허당의 가슴은 불꽃이 꺼지는 기분이었다.
혼자 주문서에 있는 책을 다 찾아 정리하여 내려다놓고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입을 꼭 다문 결심은 성공이지만 가슴 밑바닥에 뻥 뚫린 구멍,
허당은 무엇으로도 채울 길 없는 쓰라린 구덩이였다.
‘꼭 그래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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