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필 허당에 빠진 국자 41-50
그 말에 허당은 겸손했다.
“없시유. 저는 이름마냥 허당인디유.”
“그렇지? 허당은 허당일뿐이지?”
“야.”
“책 열 권 묶어 놨어. 들고 나가 나누어주고 와.”
허당은 책을 들고 정거장에 나가서 차 기다리는 사람을 만나 나누어주고
책 좋아하는 사람들이 내미는 돈을 받아들고 막 도착한 차에서 내리는 영감 앞으로 갔다.
“많이 시장하고 대간하시쥬?”
“그려. 배도 고프고 대간혀.”
(주: 나는 군생활을 하면서 경상도 전우한테는 경상도 사투리를 익혔고 전라도 충청도 전우들한테는 거기 사투리도 익혔음. 지금 쓰는 충정도 사투리는 대전 문화동 토박이라는 김정웅 상병이 자기 고향말만 하여 그와 10개월 정도 지내며 충청도말을 많이 알게 되어 쓰다가 ‘대간하다’는 말을 써야겠는데 생각이 안 나서 며칠 동안 기억을 되새김질하다가 오늘 겨우 찾아서 씀)
허당이 친절하게 말했다.
“저기 먹어보고 맛없으면 돈 안내도 되는 돼지국밥 잘하는 집이 있는디 가 보실래유?”
“뭔 소리여? 그게 정말여?”
“그렇대니께유.”
“그럼 가 봐야지. 공짜라는디.”
허당이 손님을 모실 때는 그렇게 하여 사람 마음을 끌었다.
손님마다 공짜로 먹을 수 있다는 말에 혹하여 순순히 따른다.
오늘도 공짜 유혹으로 손님을 국자네 가게로 모셔갔다.
국자가 간절히 기다리던 허당이 손님까지 모시고 오자 반가워서 어쩔 줄을 몰라 방방거렸다.
“어서와! 기둘렸어. 오늘도 손님 모시고 온겨?”
“야. 손님이 맛나게 잡숫도록 국밥 특별히 말아드리셔유.”
“알았어. 아주 맛나게 차려 드릴겨.”
국자가 특별히 맛난 상을 차렸다.
손님이 먹으면서 생각했다.
‘이렇게 맛있는 국밥은 생전 첨이여. 이런 것을 공짜로 먹으면 도둑이지.
총각이 우직하고 보기보다는 남다른 인품이 보인단 말여.
그런디 우쩌다 이런 일을 헌댜?’
그러면서 혹시 이 집 아들이 아닌가 하여 물었다.
“주인장, 이 총각이 이 집 아들이슈?”
국자가 기다렸다는 듯이 신이 나서 대답했다.
“야, 우리 아들이유. 잘생겼쥬?”
“아들 하나 참 잘 두셨소. 나한티 과년한 딸이 하나 있는디
사위 삼았으면 좋것는디 우리 사둔 맺읍시다. 하하하.”
국자는 가속으로 펄쩍 뛰었다.
“늦었시유. 벌써 정한 짝이 있는디 우짜쥬?”
“그렇담 할 수 없쥬. 내 맴에 딱 들어서 해본 소리니께.
이 총각이 음슥 맛이 읎으면 거저라고 했지만 맛이 좋아서 값을 치러야겠소.”
손님은 음식 값을 내고 흡족하여 금이빨을 드러내고 웃으면서 떠났다.
손님이 나가자 국자가 허당을 품에 안듯 다가앉으며 말했다.
“허당 총각, 내 아들이라고 한 말 틀렸어?”
“틀렸쥬. 왜 거짓말을 하신대유?”
“거짓말이 아녀. 허당 총각은 내 아들 삼고 사위 삼을겨.”
“그런 농담 마셔유.”
“왜? 싫어어?”
“남은 남이쥬.”
“남두 합치면 가족이지 별거 있댜?”
“그런 말씀은…….”
“알았어. 오늘은 우리 화단에 꽃씨나 좀 놔줘. 꽃씨는 여럿 사다 놨으니께.”
“알았슈.”
허당은 국자네 집 화단을 갈고 꽃씨를 놓아주고 책 곳간으로 갔다.
하필이는 허당이 돈을 가지고 오기를 기다리고
하우는 좋은 소식을 알려주려고 기다리고 있었다.
하필이면 하필이가 먼저 보고 ‘어서와 수고했어어’ 하고 돈을 받았다.
하우는 반가워서 웃음꽃이 되어 말했다.
“허당 씨. 좋은 소식 있어요.”
“무슨 소식이…….”
하우가 A4용지를 내밀면서 설명했다.
“지난번에 홀로코스트를 납품했더니 부산에 있는 큰 서점에서 연락이 왔어요. 이것 좀 보세요.”
허당이 들여다보고 빙그레 웃었다.
“아주 좋은 소식이네유, 하우두유두!”
“하우두유두? 호호호.”
한쪽에서 책을 뒤지다 말고 하필이 다가오며 물었다.
“뭐간디 지들끼리 웃는댜?”
허당이 주문서를 내밀며 설명했다.
“아주 좋은 소식이유. 우리 곳간에 다 있는 책들이구먼유.”
하필이 물었다.
“다 있는지 읎는지 우티기 안댜?”
“창고 안에 있는 책은 거진 다 알 수 있어유.”
하우가 반기는 소리로 물었다.
“정말 그 책들이 다 있어요?”
“주문서에 있는 열세 종 가운데 몇 개만 모르겠고 다른 건 다 알아유.”
“당장 이층으로 올라가서 책을 찾아봐요.”
하우가 계단을 앞서 올라가려고 하자 하필이 솔찬히 큰 소리를 쳤다.
“넌 가만 있어! 여기 있던지 집에 가!”
하우가 반발하는 소리를 했다.
“아빠, 내가 받아온 주문선데 왜 그래?”
“넌 씰데없이 실실거리고 웃고, 허당 씨, 허당 씨 허는 소리 듣기 싫어!”
하필은 딸이 허당이한테 하는 짓이 못마땅해서
어떻게든지 떼어놓을 심산이었다.
그러나 하우는 정반대였다.
“난 허당 씨하고 책 다 찾을 거야.”
허당은 못 들은 체하고 이층으로 올라갔고 하우도 따라 올랐다.
하필은 닭 쫓던 개마냥 멍하니 서서 중얼거렸다.
“이걸 유짠댜. 저것들을 그냥 두면 안 되는디.”
심 봤다아!
허당은 하우가 뒤따라 올라오는 것이 여간 기쁘지 않았다.
하우만 보면 가슴이 뜨거워지고 자다가도 웃는 얼굴이 눈에 삼삼허고
꾀꼬리 같은 목소리는 귀에 박혀 가슴을 녹였다.
뽀얀 볼, 동그란 이마, 맑고 생글한 눈, 고르고 하얀 치아, 꽃잎보다 예쁘게 웃는 입술,
쪽 뻗은 다리 허리, 어디 하나 흠잡을 데 없는 몸매가 보기만 해도 황홀했다.
허당은 혼자 있을 때는 하우한테 무슨 말인가 끝없이 하고 싶은데
막상 만나면 아무 생각도 안 나고 입도 들러붙어
가슴 가득 야릇한 감정만 출렁거렸다.
하우가 이층에 오르자 책 곳간은 온통 전깃불이 밝혀진 듯
허당 가슴은 환하게 열리고 기쁨으로 가득 찼다.
하우는 허당의 그런 속도 모르는 듯 철없는 아이처럼 웃기도 잘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조잘거리며 한쪽 귀퉁이로 가 소리쳐 불렀다.
“허당 씨 빨리 이리 와 봐요.”
허당은 씨 소리만 들어도 가슴이 설레었다.
“뭐쥬?”
“여기 우리가 찾는 톨스토이 인생독본이 있어요,”
“얼마나 되는대유?”
“와 보세요. 아주 많아요.”
허당은 다가가 둘러보고 놀라 입이 딸 벌어졌다.
“이 책이 다 뭐여? 천 권도 넘겠는대유.”
“그렇지요? 이 책 서점협회서 있는 대로 다 구하라고 했어요.
전국 도서관과 도서실에 비치한다고요.”
허당이 헛소리를 쳤다.
“원더풀, 하우두유두!”
“왜 여기서 하우두유두예요?”
“기분이 좋아서 나도 모르게 나오네유.”
“고마워요. 허당 씨가 하우두유두 하시는 말이 재미있게 들려요.”
이때 아무래도 이층에서 너무 오래 걸리는 것 같다고 생각한 하필이
이것들을 가만 둘 수 없지 하곤 따라 올라서 꾸짖었다.
“뭣들 하는 겨? 책은 안 찾고 시시덕거리면 돈이 생겨?”
하우가 대답했다.
“누가 시시덕거려 아빠. 우리들이 그 책을 찾았다고요. 책이요.”
허당도 한 마디 했다.
“심 봤어유, 하우두유두! 하하하.”
“뭘 봤다고? 이것들이 무슨 소릴 허는 겨. 무슨 심을 봤다는 겨?”
하우가 대답했다.
“심 봤어 아빠.”
“느이들이 뭔 소릴 하는겨? 심을 봤다니.”
허당이 대답했다.
“산삼 캐는 사람들이 산삼을 만나면 좋아서 외치는 소리여유.”
하필이 생각을 굴리다가 하나 더 물었다.
“자네가 우리 딸을 하우 뭐 어쩌고 하는디 그건 뭔 소려?”
“하우두유두여유,”
“그게 뭔 소리냐고?”
하우가 대답했다.
“나를 허당 씨가 너무 좋아한다고 하는 소리야.”
“뭣이? 넌 그런 소리 듣고도 아무렇지도 않어?”
“난 좋아.”
“안 되겠다. 너 다시는 곳간에 오지 마.
뭐든지 할 말은 나한테 집에서 혀! 허당은 헛바지여어"
허당은 하필이 하는 소리를 듣고 실망했다.
아무리 하우를 혼자 좋아해도 어른이 반대하면 별수가 없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자 갑자기 전등 꺼진 뒷방처럼 맘이 휑하고 어두웠다.
주문서에 있는 책을 다 찾아야 하는데 김이 빠져서 더 이상 찾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슬그머니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하우가 그 뒷모습을 보고 안쓰러운 표정을 지었다.
딸의 표정을 눈치 챈 하필이 무슨 말이라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우야, 넌 내 말이 을매나 간절한 맴에서 나온 말인지 알지?”
“뭐가?”
“내가 네 맴 짐작은 허지만 그건 아녀.”
“뭐가 아니야?”
“저 허당허고 너는 절대 안 어울리는 처지여. 사람을 제대로 봐야지.
넌 여고 나와서 좋은 직장을 나가는디 허당은 헛바지여.”
“아빠가 허당을 얼마나 아는데?”
“척 보면 몰러. 하는 일 없이 떠돌아다니는 인물 아닌가베.”
“왜 할 일이 없어. 이 곳간에서 일하고 있는데.”
“여긴 허당 일터가 아녀. 그냥 왔다갔다 떠돌다가 마땅한 자리가 없으니께
빌붙어서 심부름이나 하는…….”
하우가 야무지게 말했다.
“날마다 20만 원씩 벌어오는 사람인데 아빠는 공짜로 사람 부려먹을 거야?”
“언제 내가 돈 벌어오라고 했나. 지가 가서 이 사람 저 사람한티
책 나눠주다가 주는 돈 받아오는 것인디.”
하우가 당차게 말했다.
“한 달 동안 날마다 20만 원씩 팔아오면 6백만 원을 벌어오는데
그걸 아빠 혼자 다 챙길 거야?”
“글씨, 생각은 안 해 봤지만 네 말 듣고 본께 간단히 넘길 일은 아닌 거 같구먼.”
“그 사람하고 반씩 나누어야 해.”
“뭐, 뭐라구? 반이면 3백만 원을 내주라고?”
“그래야지. 욕심을 너무 부리면 복이 달아난대요.”
“그 말은 맞지만 내 듣기엔 거시기하구먼.”
“그럼 낼부터 나오지 말라고 해.
싫은 사람을 공짜로 부려먹으려고 잡고 있으면 욕심이야.”
하필은 딸이 하는 소리에 말이 막혀 어물거렸다.
“공짜로 부려먹은 건 아녀. 지가 기어 들어와서 하는 짓이지.”
“복이 굴러들어온 걸 알아야 해 아빠.”
“그건 그려. 지 발로 기어 들어왔으니께.
내가 깊이 생각혀 허당이 섭섭지 않게 할 테니께 더 그 야긴 하지 마.”
이때 국자가 찾아왔다.
“부녀간에 뭔 이야길 그리 잼나게 한댜?”
하필이 대답했다.
“잼난 게 아녀. 저것이 허당이 편만 들어서.”
국자가 귀를 바짝 세우고 물었다.
“하우가 허당이 편만 들다니 뭔 소려?”
하우가 대답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아빠가 사람을 거저 부려먹는 것 같아서…….”
국자가 물었다.
“거저 부려먹다니 그게 뭔 소려?”
하필이 입을 막았다.
“다 그런게 있어. 아무 것도 묻지 마.”
국자가 찾아온 뜻을 말했다.
“허당이 가꿔 논 우리집 화단에 꽃이 한창 피어
벌 나비가 꼬여들고 볼만 혀.
허당이 총각한티 보러 가자고 하러 왔는디.”
하필이 물었다.
“아아니, 언제 허당이 그 집 화단꺼정 가꾸어 주었다는 겨?”
국자 대답.
“한참 됐지. 그런데 이 총각이 어딜 간겨?”
“몰라 집으로 간 모양여. 국자가 허당을 솔찬히 좋아하는 거 아닌가베?”
국자가 웃어가며 대답했다.
“좋아할 수밖에 읎지. 인물 그만허면 쓸만허고
맴씨 너그럽고 꽃밭 가꾸는 솜씨는 또 을마나 좋은디 안 좋아허것슈?”
하필이 기가 막히다는 눈으로 대답했다.
“국자도 눈에 콩깍지가 끼었구먼.
그 미루나무마냥 기다린 물건이 어디가 그리 좋다는 겨?”
국자 대답.
“그려, 난 눈에 콩깍지가 끼었어.
사람 좋것다 날마다 손님 모시고 와서
밥도 거저 먹는 법이 없이 경우 밝고…….” (계속 5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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