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 같은 게 좋아
하필은 이층으로 올라가 책을 찾고
허당은 아래층 구석에서 책을 찾는데 하우가 마실 것을 들고 왔다.
“아빠, 시원한 거 드시고 하세요.”
허당이 구석에서 나와 하우가 들고 온 쟁반을 받아들었다.
하우가 상냥하게 말했다.
“허당 씨 고마워요.”
“고맙기는유. 이렇게 마실 걸 가져오시는 하우유두가 고맙쥬.”
“호호호 하우유두요?”
“제가 잘못 했나유?”
“아니에요. 재미있어요. 허당 씨”
이때 이층에서 내려오던 하필이가 두 사람이 웃어가며
이야기하는 것을 보고 소리쳤다.
“뭣들 하는 겨? 넌 마실 거 가져왔으면 거기 두고 가.”
하우가 웃으며 대답했다.
“아빠, 허당 씨가 아주 재미있어요.”
“뭔 소릴 하는 겨? 허당은 허당이여. 빨리 돌아가.”
딸 하우는 다른 말을 했다.
“아빠, 책은 찾았어요?”
“그놈이 어디 처백혔는지 안 보여서...... 넌 상관 말고 가기나 혀.”
“안 갈 거예요. 나도 책을 찾아볼래요.”
하필이 허당을 돌아보며 말했다.
“자네는 물 한잔 마셨으면 이층으로 올라가 봐.”
“알았시유. 어른이 안 오셔서 물을 먼저 마실 수가 없잔유.”
그러면서 허당이 물 한 컵을 꿀꺽꿀꺽 마시고
하우를 힐끔 보고 이층으로 올라갔다.
하필이 딸한테 일렀다.
“다 큰 것이 아무나허고 시시덕거리면 못 쓰는 겨.”
“누가 시시덕거렸어?”
“내가 다 보았응게 허깨비 허당하고 웃고 어쩌고 하면 안 돠.”
“왜?”
“저 키다리 허당은 가까이 할 물건이 아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인물이니께 그리 알더라고.”
“난 좋은데에?”
“헛소리 마. 바보 같은 꺼벙이 워디가 좋다는 겨?”
“난 바보 같은 게 좋은걸.”
“아따, 별소릴 다 혀네. 그런 말 두 번 다시 허지 마.”
허당이 이층으로 올라가다 하우를 힐끗 돌아보았다.
하우도 바라보다가 눈길이 마주쳤다.
허당은 갑자기 가슴이 뛰고 괜히 기뻤다.
‘참 내 맴 나도 모르겠구먼. 왜 가슴이 뛴댜?’
하우가 따라 올라오면서 말했다.
“허당 씨, 나하고 같이 찾아 봐요.”
허당은 하우가 씨자를 붙여 부르는 소리가
가슴에 꽃 못처럼 꽂혔다.
그러나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이층 구석으로 들어가 책을 찾았다.
그 뒤를 따라오며 하우가 콧노래까지 불렀다.
허당은 하우의 예쁜 목소리를 들으니 얼마나 기쁜지
책들이 모두 꽃처럼 보였다.
하우가 한쪽 책 더미를 들추며 말했다.
“허당 씨, 여기 좀 보세요. 그런 책 종류가 이쪽에 몰려 있어요.”
허당이 그리로 가서 책을 뒤지는데 언제 왔는지
주인 하필이 다가오며 소리쳤다.
“우야, 너 집에 가랬더니 거기서 뭘 혀?”
“책 찾고 있잖아.”
“다 필요 없응게 빨리 집으로 가. 그 책 안 팔아.”
하필이 화난 얼굴로 정색을 했다.
그 서슬에 하우가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허당은 옆에서 웃어주고 같이 책 찾던 하우가 사라지자
갑자기 책 곳간이 전기 나간 집처럼 앞이 컴컴하고
허전하고 마음에 그늘이 드리워졌다.
다음 날 어제 하우가 들여다보던 자리로 가서 책을 찾았다.
책 몇 덩어리를 이리저리 옮기다 홀로코스트를 찾았다.
거기 그 책이 300권도 넘게 있었다.
너무 기뻐서 하우두유두 하고 소리쳤다.
아래층에서 책을 찾던 주인 하필이 올려다보며 물었다.
“뭔 소려? 왜 하우는 부르는 겨?”
“안 불렀는대유.”
“내가 똑똑히 들었는디 딴청여?”
“아녀유, 책을 찾아 기뻐서 소리쳤어유.”
“괜히 우리 하우 맴에 두지 마.”
“알았어유.”
하필은 엉뚱했다.
“책 찾았으면 오늘도 이것저것 골라 열 권 가지고 정거장에나 다녀와.”
“야.”
허당은 전처럼 책 열 권을 들고 나가서 차 기다리는 사람들한테 즐겁게 나누어주고
손에 만 원짜리 열 장을 추려 들고 차에서 내리는 사람을 눈여겨보았다.
차에서 내린 한 영감이 배가 몹시 고파 보였다.
그래서 다가가 물었다.
“많이 시장하시쥬?”
“그려. 차에 시달리다 보니 허기졌어.”
“그러시면 저기 아주 돼지국밥 잘하는 집이 있는디유. 거기로 모셔 드릴까유?”
“그려, 돼지국밥이라면 내가 좋아하는 음슥여, 어딘지 가 봐.”
허당은 그 영감님을 모시고 국자네 돼지국밥집으로 갔다.
“아줌마. 손님 오셨어유. 잘혀 드려유.”
국자가 반가워하며 대답했다.
“아이고 고마워라. 우티기 손님까지 모시고 왔댜?
손님 잠깐만 기듈리슈. 금방 국말아 올릴게유.”
손님이 배를 채우고 만족해서 말했다.
“이렇게 음슥 잘하는 집이 여기 있는 줄 몰랐구먼.
날마다 친구들도 데리고 와서 먹어야겠구먼. 총각 고마워. 잘 먹고 가아.”
이렇게 하여 허당은 하루에 두 번 책을 나누어주러 다니며
십만 원씩 물어들이고 차가 도착하면 시장해 보이는 사람을 따라가
국자네 돼지국밥집으로 안내하여 날마다 국자네 손님이 늘어났다.
국자는 허당이 맘에 들어서 사위로 삼고 싶었다.
그래서 손님이 오면 국밥을 말아 겸상도 차려주고 손님 밥값만 받았다.
그러나 허당은 공밥을 안 먹는다고 자기 밥값을 따로 치렀다.
그게 또 맘에 든 국자는 딸을 주고 싶어서 하루는 두 사람을 같은 시간에 만나게 만들었다.
남잔 거북이 같어야 혀
국자 딸 이름은 윤달이다.
그 아비는 윤군불이고 윤달에 낳았다고 유달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국자는 딸이 돌아올 때를 맞추어 허당한테 한 가지 부탁을 했다.
“허총각, 우리 집에 화단을 좀 고쳐야겠는디
그것 좀 둘러보고 저녁은 우리 집에서 먹으면 안 될까아?
“그러쥬. 집이 어딘디유?”
“바로 이 뒷집이여. 나허구 잠깐 다녀오자고.”
국자는 허당을 데리고 자기 집으로 가
담장을 끼고 돌아가며 다섯 평쯤 되는 화단을 가리켰다.
“여기가 볕도 잘 들고 좋은디 손을 보지 않아서 엉망인디
총각이 머리 좀 써봐아.”
“알았슈. 생각해 볼게유.”
“고맙구먼 총각. 빨리 가게로 돌아가십시다.”
두 사람이 국밥집에 들어서니 윤달이 먼저 와 있었다.
국자가 딸을 소개하려고 하는데 윤달이 팩 돌아섰다.
국자가 물었다.
“윤달아, 왜 그려어?”
“엄마, 이 사람 아는 사람이야?”
“그런디 왜 사람 민망허게 그려어?”
유달이 달아나며 소리쳤다.
“묻지 마!”
국자가 민망해서 억지웃음으로 말했다.
“총각 미안혀. 저것이 아직 철이 안 나서 그려. 이해혀 응?”
“알았시유.”
허당은 속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윤달인지 수달인지 마음에 들지도 않았고
그 순간 하우 생각이 떠올랐다.
곳간에 있으려니 하고 찾아보니 허우가 보이지 않아 허전했다.
한편 국자는 저녁에 딸을 앉혀놓고 닦달했다.
“아까 그게 뭐여?”
윤달이 눈을 흘기며 한 마디.
“뭘?”
“그 총각 앞에서 그게 뭐여? 민망허고 남새시럽게시리.”
“난 그런 사람 밥맛이야. 키만 기다랗고
내 취향이 아냐. 그런 사람 엮는 거 싫어. 엄마는 뭘 몰라.”
“네가 뭘 안다는겨? 사내들이란 얼굴로 속사람은 모르는 겨.
나 봐아. 느 애비 인물이 출중하여 내가 눈이 멀어서
서방 삼았지만 후회가 이만저만이 아녀.
나허고 혼인하고 너 하나 낳아놓고 이 여자 저 여자 꿰차고 돌아다니다가
어디 가서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알 길이 없고
나 혼자 고생한 걸 생각하면 이가 갈려.
너만큼은 나같이 되면 안 돼야. 사내는 거북이처럼 생겨야 하는 겨.”
윤달이 바락 화를 냈다.
“거북이고 두더지고 다 싫어. 하루를 살아도 내 눈에 찬 남자 아니면 시집 안 가!”
“이년아, 정신 차려. 여자는 남자 인물 뜯어먹고 사는 게 아녀.”
“왜 욕까지 해?”
“너무 답답혀서 그려. 저 허총각 외모보다는 보통 사람이 아녀.
보기보다 무언가 숨겨둔 허당이 있는 것 같은 인물이여.”
“허당? 허당에 뭘 숨겨, 허당은 빈구덩이야.”
“너 애미 말 안 듣고 그럴 겨어?”
“내 인생은 내가 알아서 살 거야. 엄마가 뭘 알아. 간섭하지 마!”
한 마디도 지지 않고 윤달은 스마트 폰을 챙겨들고
제 방으로 들어가 문을 잠갔다.
다음 날 국자는 허당한테 딸이 서운케 한 짓을 이해해 달라고 하려고
책 곳간으로 갔다.
그런데 허당은 안 보이고 하필이 혼자 책을 정리하고 있었다.
“곳간 주인, 뭘 혀?”
“보면서 물어?”
“허 총각은 어디 갔댜?”
“오늘은 안 나왔구먼.”
“뭔 일일까아?”
“나도 몰러. 때 되면 오것지.”
국자는 돌아가면서 생각했다.
‘이 숙맥이 윤달이한테 채였다고 생각하고 실망하여
집에서 나오지도 않은 거여.
윤달이 신랑감으로는 딱인디. 우짜면 조텨.’
하필은 눈이 빠지게 허당이 오기를 기다렸다.
날마다 책 들고 나가면 10만 원씩 두 번이나 물어들이던 일꾼이 안 나오니
사람보다 돈이 더 기다려졌다.
묵묵히 종일 기다렸는데 허당은 오지 않고 하우가 퇴근해 들어와 두리번거리며 물었다.
“아빠, 허당 씨는 왜 안 보여?”
“넌 멀대같은 허당만 찾고 애빈 안 보이는 겨?”
“허당 씨는 어디 갔어?”
“안 나왔어. 그런디 넌 우째서 허당이라고 하면 될 걸 씨자까지 붙이는 겨?”
“허당 씨는 아빠도 좋아하지 않아?”
“내가 좋아하는 것허구 네가 좋아하는 것이…….”
하필이 마지막 말을 하지 않은 것은 둘이 사랑하는 것
아니냐는 말을 하게 되어서였다.
“아빠, 그 사람 어디 있느냐고?”
“그 사람 어쩌고 하지 마. 허당허고 너허고는 하늘 땅 차이니께.”
“허당 씨가 들으면 좋아할 소식이 있는데.”
“뭔디? 내가 알면 안 되는 일여?”
“아빠는 더 좋아하는 소식이야.”
“뭐간디?”
“허당 씨한테 먼저 말할 거야.”
“자꾸 허당 허당 하지 마. 난 싫은게.”
“그럼 내보내. 싫은 사람 데리고 살 필요 없잖아?”
사실 하필이 눈에 허당은 자기 딸하고는 전혀 안 어울리는 바보라고
생각하는 터라 둘이 어울리는 것을 막으려고 했지만
날마다 책 들고 나가면 돈하고 바꾸어 오는 인물이라 내쫓을 수가 없었다.
하필 자신은 리어카에 책을 잔뜩 싣고 나가 공짜로 준대도 받아가는 사람이 없었는데
허당은 돈하고 바꾸어 오는 것이 신기하기 때문이다.
하필은 정거장에 책 싣고 나갔다가 실망하고 돌아온 뒤로는
정거장 쪽은 바라보기도 싫었다.
다음날 국자가 또 와서
허당을 찾았다. 그러나 이 숙맥이 나오지 않았다.
국자는 실망하여 돌아가며 생각했다.
‘그 숙맥 같은 것이 윤달이년 한 마디에 실망하여 책 곳간에도 안 나오는겨.
날마다 정거장에서 손님도 잘 모시고 왔는디 그런 것도 끊기고…….
마음이 그렇게 여리고 착한 사람이여.’
하필이는 그 나름대로 이런 생각을 했다.
‘우리 딸 하우를 가까이 하지 못하게 하여 실망하여 안 나오는 모양인디
어쩔 수 없지. 아무리 그려도 내 딸 짝으로 삼을 수는 없는겨.’
그렇게 하필과 국자가 기다리기를 일주일이 넘던 어느 날 허당이 나타났다.
하필이 반가워서 물었다.
“워째서 메칠씩이나 빠졌댜?”
“야, 제가 뭘 연구하는 단체가 있는디 거기서 지가 주제발표를 하느라고 서울 좀 다녀왔쥬.”
“뭐간디 허당이 그런 것도 한다는 겨?”
“인간의 공짜심리와 욕심연구 분석이라는 주제로 발표했쥬.”
“허당이 그런 것도 하는 사람이여?”
“야.”
“난 뭔 소린지 모르 것지만 허당이 머리에 든 건 쬐금 있는가 봐.” (계속) 독자님, 스토리가 재미 없시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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