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문이 자자헌디 그걸 모르면 사람이 아녀.”
“허허, 큰일 났구먼.”
“그게 뭔 소랴. 하필이가 왜 큰일이랴?”
“내가 그 소릴 들으니께 기가 차구먼.”
“직업도 가지가지 많은디 왜 하필 책장살 한댜?”
“하필 하필 하지 마. 남새스러우니께.”
“그렇구먼, 하필이면 하필이 앞에서 그 소리가 이름인 줄 깜박혔구먼.”
“국자는 또 어떻고, 하필이면 누가 국자라고 이름을 지어주었는지 모르지만……,
뭐냐, 요새 우리 가게 뒷골목에 국자 이름 같은
국자돼지국밥집이 생겼는디 장사가 엄청 잘된댜.”
“국자, 국자 허지 마. 그 국밥집이 내 집이니께.”
“뭣이? 그 주인이 국자라는 겨?”
“왜 그리 놀란댜? 우리 집에 못 와 봤구먼.”
“나는 그런 고급 음식 먹을 처지가 못뎌……,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은 들었지만 코앞에 국자가 있는 줄은 몰랐구먼.”
“내가 왜 코앞에 있댜? 하필이 뒤통수에 있는디.”
이때 허당이 시간표를 알아가지고 오다가 그 소리를 듣고 물었다.
“뭔 국자가 코앞과 뒤통수에 있대유?”
하필이 묻자 그 어른이 대답했다.
“이봐 젊은이, 어른 이름 함부로 부르면 안 된다는 것도 몰러?”
“내가 언제 어른 이름 불렀나유? 국자가 앞뒤에 있다는 소리가 궁금혀서 물었쥬.”
아주머니가 허당한테 물었다.
“차 시간은 알아봤슈?”
“야. 바로 있대유. 가시쥬, 제가 차까지 짐 들어다 태워 드릴게유.”
“고마워서 우짠댜 총각.”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하필이 국자한테 물었다.
“이 사람은 누구여?”
“나두 몰러. 오산 다녀와서 책방 한번 가 볼겨.”
차가 떠났다. 그 어른이 허당을 잡고 물었다.
“총각은 어디 사는 누구랴?”
“저기 파란 대문집 사는 허당이유.”
“허당? 어른 놀리나?”
“아녀유. 성은 허가이고 이름은 당이라 다들 허당이라고 불르쥬.”
“허당이라. 내 이름보단 낫구먼.”
그러자 허당이 물었다.
“하필이면 왜……?”
하필이 노여운 얼굴로 말했다.
“뭐라구? 허허, 이 사람, 언제 내 이름까지 알았던 겨?”
허당이 이상하다는 듯 갸웃거렸다.
“어르신 이름이 뭔디유?”
“알면서 물어?”
“모르는듀.”
“금방 하필이라고 안 혔어?”
“하필이 허당보다 좋은 이름 같어서 허는 소리였는디 왜 그러슈?”
“앞으로 하필이라는 말은 허지 마.”
“아저씨가 뭔디 남이 말도 못허게 한대유?
“그런 게 있어. 어디 나가는 데라도 있는 겨?”
“없슈.”
“없으면 나 좀 도와 줄려나?”
“그러쥬. 뭘 도와드릴까유?”
“날 따라와 봐.”
“알았슈. 아저씬 뭘 하시는듀?”
“와 보면 알아.”
하필이 부지런히 앞질러 걷는데 허당이 껑충껑충 따랐다.
하필이 커다란 건물 안으로 들어가며 말했다.
“여기가 내 사업장이여.”
둘러보니 문 앞에서부터 마당과 큰 창고 같은 지붕 아래
추녀 끝까지 책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허당이 입을 딱 벌리고 감탄했다.
“와아아! 이게 다 뭐랴유?”
하필이 대답했다.
“책이지 뭐여.”
허당이 놀라 지껼였다.
“뭔 책이 이렇게 만텨유?”
“이렇게 많은 책 첨 보지?”
“야. 이게 다 어디서 난 거유?”
“줏어왔어.”
“어디서유?”
“출판사에서 그냥 가져가라는 겨.”
“출판사는 흙 파먹고 사나유.”
“그건 나도 몰러. 예서제서 책 가져가라는 출판사가 한둘이 아녀.”
“그럼 이게 서점인가유 책방인가유?”
“그게 그거여. 요새 스마트폰인지 뭔지 도깨비 같은 것이
사람들을 물고 늘어져서 다들 거기 붙어서 택을 안 읽는다는겨
책방들이 장사가 안 뒤야서 다 문을 닫으면서
나한테 가져가라고 혀서 그냥 실어온 겨.”
“남들이 안 된다는 책을 잔뜩 뫄두면 누가 사간대유?”
“사가는 사람이 있으면 좋을 텐디 책이 아깝고 욕심이 나서
예서제서 주는 대로 받아다 쌓아놨더니 골치여.”
“골치 아픈 짓은 왜 했대유?”
“나두 몰러, 버린다기에 공짜라 좋아서 다 가져다 모았는디.”
허당이 전체를 둘러보고 생각했다.
‘안 팔린다고 문 닫는 서점이 있고 사람들도 책을 안 보고
스마트 폰에만 대가리를 처박고,
그러다가 오는 사람 가는 사람 부딪치는 세상인디…….’
허당이 물었다.
“주인어른 이렇게 하면 우떨까유?”
“뭐얼?”
“쌓아두고 썩히는 거라면 좋은 일이나 하쥬.”
“뭔 생각이 있어?”
“나헌테 책 열 권만 주실래유?”
“열권 아니라 백 권도 가져가. 그 대신 저쪽에 있는 책을
다락방에 들여놓고 맘에 드는 놈으로 아무 것이나 맘껏 골라 가져가.”
“알았슈.”
허당은 주인이 하라는 대로 다 해놓고 책을 골랐다.
모두 새 책이고 표지 그림도 다 예뻤다.
그 중에 동화책과 처세술과 시집, 소설책,
수필집 이것저것 골라 열 권을 들고 나섰다.
하필이 물었다.
“어딜 가?”
기달류. 후딱 다녀올 테니께유.”
허당은 책을 안고 정거장으로 달려갔다.
대합실에서 차를 기다리는 사람을 둘러보다가 점잖고
착하게 보이는 신사 앞으로 갔다.
“어른님, 차 기다리시는데 지루하시쥬?”
“예. 차가 너무 오래 안 오네요.”
“그러시면 이 책 가운데 하나만 골르슈.”
“사라고요?”
“아뉴, 책 팔러 온 게 아니규. 차 기둘리다가 심심하거나
지루혀 하는 분들한테 차가 올 때까지 잠깐 보시라고
빌려드리는 거유. 보시가다 차가 오거든 돌려주고 가세유.”
“고맙소. 그렇지 않아도 핸드폰을 두고 나왔더니 지루했는데.”
신사분이 책을 받아 들고 들여다보았다.
두 사람이 나누는 소리를 들은 옆에 아줌마가 한 마디 했다.
“정말 차 기다릴 동안만 보다가 가라고 빌려주시는 건가요?”
“야. 아주머니도 드릴까유?”
“그래요. 그 동화책 「행복을 파는 할아버지」를 빌려주세요.”
그 소리에 또 옆에 아가씨가 수줍게 다가오더니
시집을 손짓하며 물었다.
“저도 그 시집 좀 빌려주실래요?”
“고마워유. 얼른 읽어 보세유.”
이 사람 저사람 공짜로 빌려준다니까 열 권이 금방 나가고 없는데
다른 사람들이 또 빌려달라는 거였다.
그러나 책이 더 없어서 미안하다고 굽실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 사이에 차가 왔다.
신사가 보던 책을 중단할 수 없게 되자 돌려주지 않고 말했다.
“미안합니다. 내가 보던 것을 마저 봐야겠어요.
이 책 얼마나 드리면 될까요?”
“그러시면 그냥 가져가세유.”
“아니지요. 귀한 것을 그냥 가져갈 수는 없지요.
차가 와서 급하니 이거라도 받고…….”
신사가 만 원짜리를 쥐어주고 차에 올랐다.
그 뒤를 이어 동화책을 보던 아주머니가 급히 말했다.
“이렇게 좋은 동화책은 우리 손자가 봐야 해요.
저도 사갈게요. 책값이 얼만가요?”
“거저유. 가져가세유,”
“책은 거저 가져가는 거 아니에요.
만원만 드릴게요. 이해해 주세요.”
뒤이어 아가씨가 시집을 들고 말했다.
“아저씨 이 시집 얼마예요?”
“거저여유. 거저.”
“거저가 어딨어요. 만원만 드릴게요. 괜찮지요?”
“너무 많츄 아가씨!”
또 다른 사람이 차에 오르면서 아무 말 없이 책을 들고 가면서 만원을 내밀었다.
책 열 권이 잠깐 사이에 다 나가고 주먹에는 만 원짜리
돈만 열 장이 잡혀 있었다.
허당은 돈을 추려 들고 말했다.
“세상에 거저는 없는겨. 사람들이 책을 이렇게 좋아하는디 왜 책방이 안 된다는겨?”
허당은 책 곳간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하필이 앞에 돈을 내밀었다.
“이거 받으슈.”
“이게 뭐랴?”
“돈이쥬.”
“책은 어쩌고?”
“다 나눠 줬쥬.”
“그게 뭔 소려? 자네가 나한테 책값을 준다는 말여?”
“지가 무슨 돈이 있어서 사나유.”
“그럼 이건 뭐여?”
“돈이쥬.”
“책은 우째고?”
“다 나눠 줬쥬.”
“자네 이름 허당이 맞지?”
“야.”
“우쨌던 돈이 생겼으니께 점심이나 거하게 먹지.”
두 사람은 뒷골목의 유명한 국자돼지국밥집으로 갔다.
국자돼지국밥집은 생각보다 넓고 좋았다.
하필이 들어서서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씨부렁거렸다.
“아따, 국자 출세했구먼. 이렇게 큰 식당 주인이 아닌가베.”
허당도 입을 다물지 못했다.
“국자라더니 국자가 쉴 새가 없것구먼…….”
이때 국자가 다가오면서 반가워했다.
“어서와 반갑구먼. 하필이, 이 사람을 어떻게 여기까지 델려 왔댜?”
하필이 당당하게 한마디 했다.
“난 손님으로 온 건게 하필 하필 하지 말어.”
국자가 허당한테 인사를 곁들여 이름을 물었다.
“총각, 아침에 고마웠슈. 그런디 이름이 우찌 되나유?”
“허당이어유.”
"허당이 뭐여. 날 놀리는 거여?"
'문학방 > 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명랑소설 / 하필 허당에 빠진 국자 31-40 (1) | 2025.09.18 |
|---|---|
| 명랑소설 / 허당에 빠진 국자 21-30 (1) | 2025.09.17 |
| 명랑소설 / 허당에 빠진 국자 1-10 (2) | 2025.09.15 |
| 허당에 빠진 국자 74-100 / 나 잉어 낚았다 (6) | 2025.08.28 |
| 안데르센 고향의 비밀함 5 / 한국에도 동화작가 있나요? (2) | 2025.08.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