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방/소설

명랑소설 / 허당에 빠진 국자 1-10

웃는곰 2025. 9. 15. 20:00

바보가 만든 바보

삼십이나 된 허당은 밥만 먹으면 버스 정류장으로 나간다

그 또래에 친구들은 장가도 가고 자식도 낳고 직장도 다니는데

허당은 날마다 헛발 짓만 하고 다닌다.

 

양천 허씨에 외자 이름을 짓다 보니 넓은 마당처럼 잘되라고 마당 당()이라고

할아버지가 지어 주셨다

허당은 매일 아침나절은 시외버스 정류장에 나가 어슬렁거린다

그러다가 맨 먼저 차 타러 나온 사람을 만나면 인사를 한다.

안녕하슈?”

 

낯선 사람의 인사를 받은 사람이 어리둥절하다가 마지못해 인사를 받는다.

.”

어딜 가신대유?”

서울 갑니다.”

서울은 왜 가슈우?”

아들네 집에 갑니다.”

아들이 몇이나 되슈?”

삼형제가 있는데 큰아들이 서울 살아서…….”

아들은 지금 몇 살이나 되슈?”

서른 살입니다.”

 

나하고 동갑이네유.”

그런가요?”

아들이 잘해 주나유?”

잘해줍니다효자지요.”

지금 세상에 효자가 어딨슈다 허당이쥬.”

?”

 

효자라면서 아버지가 앉아서 ‘아들아 내려오너라’ 

하시면 될 것을 거꾸로 아들을 보러 먼 길을 가신다규?”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요.”

다 허당이쥬.”

허당이 뭐요?”

내 이름이쥬.”

이 분이 왜 이러시나?”

다 허당이쥬허당.”

허당?”

허당이쥬.”

 

허당 허당 하지마시오.”

왜 그러슈허당이 뭐 잘못 됐나유?”

허허허당이라더니 허당이로군.”

그 사람은 기가 막혀서 차에 오르며 비웃는 소리 한 마디를 던졌다.

허당!”

허당이 손까지 저으며 인사를 했다.

허당 어른안녕히 가슈!”

차에 오른 사람이 혼잣말을 했다.

허허내가 원!”

옆에 동석한 사람이 인사를 했다.

허당 어른이렇게 한자리에 앉게 되어 반갑습니다.”

내가 허당이라고요?”

죄송합니다허당어른.”

 

허허 내가 허당이 아니고요.”

압니다다 들어서 압니다아드님이 인사하는 소릴 다 들었습니다허당 어른.”

허허 내가 허당이 아니라니까요.”

괜찮습니다허당이면 어떻고 천당이면 어떻습니까

부끄러워할 것 없으십니다이름이 좀 이상하기는 하지만 허씨들은 원래 외자 이름을 짓다 보니 별 이름을 다 짓지요.”

 

나를 정말 허가로 아시오?”

그렇지요허가 없이 세상에 되는 일 있나요?”

난 허가가 아니라 장가요.”

장가도 허가 없이는 못 갑니다

허가야 말로 세상에서 가장 좋은 성이지요.”

허허세상에 이런 허당이 있나.”

부끄러워할 것 없으십니다허당어른.”

허당은 좀 모자라는 데가 있는 듯하지만 사람이 착해서 잘 웃고

아무나 붙잡고 인사도 잘하는 별난 사람이다

오늘도 정거장에서 어슬렁거리다가 보따리를 들고이고 오는 아주머니를 발견했다.

 

아줌니무거우시쥬?”

그건 왜 묻는댜도와주려우?”

도와드려야쥬.”

아이고 고맙기도 혀라.”

아주머니가 이고 있던 보따리를 내맡겼다

생각보다 무거웠다허당은 허리가 휘청한 채 물었다.

 

이 무거운 걸 우티기 이고 오셨대유?”

그려서 목이 빠지는 줄 알았구먼.”

이런 걸 이셨는데 목이 안 들어가고 빠진다규?”

그 말이 그 말여.”

어디꺼정 가시는대유?”

오산까지 가는디 버스가 몇 시에 있는지 알 수가 없당게.”

내 금방 차 시간 알아보고 올튜기달리슈.”

허당이 부지런히 안내판 앞으로 가 버스 시간표를 보고 돌아와 보니

어떤 분하고 아주머니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아주머니가 큰소리로,

하필하필이를 여기서 만날 줄 누가 알았댜.”

그분도 반가운 듯 인사를 했다.

 

참말이구먼국자를 예서 만날 줄 몰랐구먼.”

아주머니가 물었다.

하필이여긴 우티기 왔댜?”

저기 골목에서 책방을 햐아나?”

그려요새 책이 안 팔린다는디 책방 혀서 뭘 먹고 산댜흙 파먹고 사는겨?”

그 사람이 눈을 번쩍 뜨고 물었다.

그런 걸 우티기 안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