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 사람 8 / 잠꾸러기 하이에나
나는 날마다 열차 한 칸 전체 좌석 71석 중 가장 먼저 차에 오른다. 자리에 앉아 누가 내 옆에 오려나 기다리는 것도 재미있는 습관이 되었다.
오늘은 문이 열리고 승객들이 주르르 들어왔다. 앞에서 열 명쯤은 아가씨들이었는데 모두가 미인들이었다. 어디서 그렇게 예쁜 아가씨들이 많이 모여 올까? 내 옆자리에 그 예쁜 여자들 가운데 누군가가 와서 앉을 테지 하고 기대감으로 차 있는데 줄을 서서 들어오는 아가씨들 맨 끝에 하이에나같이 뒤숭숭한 차림의 사람이 어슬렁거리고 따랐다.
나는 속으로 ‘저 사람만은 옆자리에 오지 말라! 아가씨들 가운데 안 예뻐도 좋으니 제발 아가씨가 와 다오’하고 빌었다. 그런데 실망스럽게도 아가씨들이 모두 지나가고 마지막에 따라오던 시커먼 하이에나가 내 옆에 오자마자 털썩!
이크! 하필이면 왜 왜?
차는 출발했고 하이에나는 앉자마자 배를 쑥 내밀고 다리를 쩍 벌리고 앉더니 어딘가에 전화를 시끄럽게 해대면서 나를 힐끔거렸다. 나는 참담한 심정으로 창밖으로 눈길을 던지고 침묵.
다행인 것은 그에게 담배 냄새와 향수 냄새가 안 나서 좋았다. 자리에 앉은 지 10분도 안 되어 꾸벅거리더니 머리를 내 어깨에 얹었다. 나는 뿌리칠 수가 없어 그의 베개가 된 채 어깨를 내주고 생각에 잠겼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사람인지 몰라도 20분이지만 한자리에서 만났으니 70억분의 1의 인연이 아닌가 하고 나는 피식 미소를 지었다.
거칠게 생긴 하이에나, 무슨 잠이 그렇게 빨리 드는지 신기하기도 했다. 어쩌면 고된 일을 하다가 어디론가 급한 일로 가는 모양이다.
머리도 헝클어지고 허름한 점퍼에 흙이 묻은 신발을 보니 측은한 생각마저 들었다,
첫인상이 하이에나 같다는 선입견을 떨치고 고되게 살아가는 한 나그네 인생을 떠올렸다. 나도 그 중의 하나가 아닌가 생각하며 쓸어보니 그 사람은 나보다 한참 아래로 보였다.
좋다, 편히 주무시라. 내 아우도 그대쯤 될 테니 아우로 알고 20분은 어깨를 내줄 테니 좋은 꿈이나 꾸시라.
짧은 20분은 금방 지나가고 “이번 역은 수원입니다. 왼쪽 문으로 안녕히 가십시오.” 방송.
나는 어깨를 빼고 일어섰고 하이에나는 눈을 감은 채 길을 열어주었다. 피차 인사도 없이 그렇게 그는 어디론가 가고 나는 나대로 20분 인연은 안녕이다.(2021.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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