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 사람 10 / 이래도 모르겠소?
부산행 무궁화 1221호 1호칸.
나는 매일 똑같은 시간 17시 17분에 차에 오른다.
차 문을 열고 들어서서 두 번째 좌석 앞을 막 지나는데 누가 내 바지를 꽉 잡았다.
나는 누가 이래? 하고 발을 뛰려는데 또 꽉 잡고 놓지 않았다.
나는 기분이 상한 채 누가 이러나 하고 내려다보았다.
새까만 개똥모자에 마스크를 한 사람이 올려다보는데 날카로운
눈빛만 보일 뿐 누군지 알 수가 없었다.
나는 약간 불쾌한 감정으로 물었다.
“왜 이러시오?”
그러나 그 사람은 아무 대답 없이 내 바지자락을 잡아당겼다. 아무리 보아도 모르는 사람인데 시비를 거는 것이었다. 눈을 맞추고 살펴보면서 물었다.
“누구시오?”
그제야 한 마디
“나요.”
“나라니요?”
“나 모르겠소?”
“글쎄요.”
“이래도 모르겠소?”
그러면서 마스크를 벗었다. 그 얼굴을 보고 나는 깜짝 놀랐다.
“아니, 어떻게 이 차를 타셨나요?”
“날 그렇게 못 알아보시다니. 나는 한눈에 누구라는 걸 알아봤는데.”
“참 오랜만입니다. 어디를 가시나요?”
“나 대전으로 이사 갔어요. 아들이 거기서 목회를 하기 때문에.”
“그러셨군요.”
상대를 알아보았고 서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한 5분 나누고 나는 내 자리 31번 석으로 갔다. 그분은 8번 통로 쪽 좌석앉아 나를 만나셨는데 차가 출발하자 그분은 자리에서 일어나 21번석 창가로 갔다. 그리고 잠깐 사이에 차는 수원역에 도착했고 나는 졸고 있는 분을 깨워 편히 가시라는 인사를 하고 내렸다.
무슨 이야기든 더 하고 싶은 것도 많은데 꿈결이듯 만난 그분은 기다란 꼬리를 단 열차에 실려 대전으로 떠났다. 차가 사라지는 것을 바라보자니 아쉬운 마음이 들어 쉽게 돌아서지지 않고 끌려갔다. 집으로 오면서 이런 후회를 했다.
“가방 속에 많이 있는 사탕과 <울타리>를 드렸어야 하는데 왜 그 생각이 지금서야 나나. 뭔가 드리고 싶었는데 겨우 마음도 못다 드렸으니 섭섭하다.”
그러면서 이런 생각도 했다. 옛날 신작로 길로 걸어서 서울서 떠나 수원을 지나 대전까지 가는 친구라면 가다가 우리 집에서 들러 뭐라도 좀 먹고 마시고 가라고 잡을 수도 있는데 세상이 바뀌어 기계 속에서 만나 기계가 하는 대로 살다 보니 인간 정은 기계가 빼앗아가고 인간미는 날로 멀어지는구나 하는 생각.
그분은 왜 바로 입구에 앉아 나를 잡았을까? 자기 자리는 21번 안쪽인데 그것도 이상하다. 내가 그 차를 탄다는 말이 정말인가 확인하고 싶어서 나보다 먼저 와서 나를 기다렸던 것일까?
내가 거짓말로 옆 사람 이야기를 쓰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의심해서 그러셨을까?
근 20년간 한국크리스천문학가협회에서 함께 봉사하고 정을 나누신 분이지만 전직이 형사였기 때문에 그런 연극도 해 보셨는지도 모른다.
남성적인 베이스 톤으로 시낭송을 멋지게 하시고 경주에서 내 사진을 찍어주시던 친절하신 분.
장로님.
바로 이상인 장로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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