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 사람 11 / 왕눈이와 새우눈
차 창가 31번 내 자리 옆으로 여자 둘이 왔다.
하나는 내 옆에 하나는 건너편 통로에 앉았다.
두 여자가 통로 건너 마주보며 수다를 떨었다.
서울역서 차가 떠날 때까지 10분이 넘도록 다른
사람들 생각도 않고 수다를 계속하는데 지켜보자니 안타까웠다.
바로 옆자리 여자는 늘씬한 키에 눈도 시원하고 예뻤는데
건너편 여자는 키도 작고 눈도 새우눈. 왕눈이와 새우 눈이 엄청 친한 사이
같았는데 통로에 건너 마주앉아 이야기를 하자니 얼마나 불편할까
나는 배려하는 마음으로 자리에 일어서며 말했다.
“두 분이 여기 나란히 앉아서 이야기하시지요. 제가 건너 자리에 앉을게요.”
옆의 왕눈이 예쁜 여자가 겸손히 그러시지 말라고 했다.
그러나 건너편 새우눈이 발딱 일어서며 반겼다.
“고마워요 아저씨. 제가 그 자리로 갈게요.”
새우눈은 날쌔게 자리를 떴고 나는 그 자리로 가서 앉았다.
그리고 그들이 머리를 맞대고 이야기하는 것을 보고 그렇게 할
말이 많은 사람들이 왜 밖에서 못다 하고 여기까지 와서 할까 대단히
중요한 이야기 같지도 않은데 하고 머리를 돌렸다.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차에서 내릴 때가 다 되어 내가 일어나며 <울타리> 하나를 들고 물었다.
“두 분 중 어떤 분이 책을 좋아하시나요?”
하자 왕눈이 예쁜 여자가 금방 “저요”하고 대답했다. 그런데 새우눈 정떨어지는 한 마디.
“요새 책 보는 사람 있나요?”
심드렁하게 말하는 소리에 약간 실망했지만 웃으면서 가지고 있던
울타리를 왕눈이 미인한테 주었다. 그랬더니 새우눈이 불만스런 한 마디.
“누군 주고 난 안 주나요?”
“책 안 읽으신다면서요?”
“책은 안 읽어도 주시면 안 되나요? 한 권 더 없어요?”
나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앞으로 책하고 친해지세요. 하나 더 있습니다.”
책을 건네주고 자리를 떴다. 왕눈이 미인은 자리에서 일어서서 인사를
깍듯이 하는데 새우눈은 내 자리 31번석 창가에 앉아 밖을 내다보고 딴 사람이 되어 있었다.
요새 책 보는 사람 있나요 하던 새우눈,
책은 안 읽어도 욕심은 있어서 갖고 싶었던 거다.
괘씸한 생각도 들었지만 책도 품고 있으면 목마를 때 물을 마시듯
무료한 시간이 있을 때는 읽으리라 생각하며 예쁜 왕눈이와 눈을 맞추고 웃으며 차에서 내렸다.
왕눈이 같은 여자라면 부산까지라도 가고 싶지만 새우 눈하고는
한 정거장도 같이 가고 싶지 않았다. 인생 부부 사이도 그러리라.
50년을 살아도 헤어지고 싶지 않게 즐거운 부부가 있고
결혼 첫날부터 삶이 지루한 사람이 있으리라.
결혼하고 지금까지 미우니 고우니 하면서도 웃는 날이 더 많게
지낸 부부는 하나님이 맺어준 한 몸이고 행복한 반려자인 것이다.
* 내가 쓰는 이 글을 기다리는 당신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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