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 사람 5 / 담배 피는 오골계
나는 시간관념이 강해서 서울역 무궁화호 1호 칸에 가장 먼저 오른다.
내 자리 31번 석은 날마다 가슴을 열고 나를 반긴다.
바로 옆 32번 석엔 누가 오실까 하고 기다려본다.
그러면서도 멧돼지만 오지 말았으면 하고 빈다.
그런데 오늘은 바로 32번 석에 60은 되어 보이는 새까만 옷에
새까만 얼굴의 오골계같이 왜소한 사람이 오더니 좌석에 날름 앉았다.
마음으로는 ‘반갑습니다 어서오세요’ 하고 싶은데 날마다 그게 안 된다.
내 맘이 그만큼 깡마른 이유일 거다.
열차가 서울역을 31분에 떠나면 10분 만에 영등포역에 토착한다.
그리고 영등포역에서 3분 정차 뒤 20분을 달리면 수원역이다.
그러니 옆 사람과 나의 동행은 서울서 만나면 30분, 영등포서 만나면 20분이다.
그 60대하고는 30분을 동석해야 하는데! 아이구! 맙소사!
그 사람이 앉자마마 우리 좌석은 담배냄새가 진동했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게 담배냄새다.
마스크를 썼는데도 냄새가 파고들어 괴롭기 시작했다.
나는 얼굴을 창밖으로 돌렸지만 얄미운 냄새가 돌린 얼굴도 무시하고
콧속으로 파고들었다. 만석이라 다른 좌석으로 갈 데도 없었다.
한참 괴롬을 당하며 ‘하나님 나 좀 살려주세요.
숨이 막혀 죽을 지경입니다’ 하고 있을 때 40대 후반으로 보이는
여자 승객이 다가와 자기가 32번 석이라면서 자리를 내달라고 했다.
그러나 60대sms 화를 벌컥 냈다.
“와 내 자리를 내달라카는교?”
“이 자리는 제 자리라예, 비워 주이소.”
두 사람이 다 경상도다.
자리를 비워 달라 못 한다 약 5분간 실랑이를 했다.
시끄럽고 답답하여 내가 끼어들었다.
“미안하지만 두 분 차표를 봅시다.”
두 사람이 내민 표를 보고 나는 ‘아이고, 살았다’ 하고 쾌재를 불렀다.
60대 영감 표는 2호자 32번 석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솔로몬 판결을 했다.
“어른께서 잘못 타셨습니다. 2호 칸으로 가세요.”
영감이 하는 소리.
“무신 놈의 표가 이랬다 저랬다카노, 에이 더러버서.”
그러면서 자리를 떴다. 얌전하게 생긴 여승객이 자리에 앉으면서
나한테 고맙다고 눈인사를 했다. 그리고 물었다.
“선생님예, 어디까지 가십니꺼?”
“수원입니다.”
“선생님이 가만히 계셨으면 오늘 시껍할 뻔했심니더.”
“압니다. 어디까지 가시나요?”
“대구갑니더.”
“네. 여행중에 읽을 책은 가지고 계신가요?”
“난 책 안 좋아합니더. 스마트폰이 책보다 얼마나 좋십니꺼.”
“그래도 책도 보셔야 합니다. 제가 책 선물해 드릴게 한번 읽어 보세요.”
그러면서 내가 내는 <울타리>를 내밀었다.
“이 책 거저 저신다고예?”
“예, 그 대신 다 읽어 보시고 다른 책도 구하여 읽으세요.”
“고맙십니더. 저도 학생 시절에는 독서를 좋아했는데 우찌다 보이 책하고 멀어졌십니더.”
“다들 그렇습니다. 전자문명이 출판문화를 무너뜨렸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은 뭐 하는 분이십니꺼?”
“저요?”
이때 방송이 나왔다. 수원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왼쪽입니다.
나는 대답을 못하고 안녕히 하고 인사하고 일어섰고 부인은 내 뒤에 대고
“고맙십니더. 주신 책 꼭 읽겠십니더.” 했다.
나는 그 말이 고마워서 한 번 더 바라보고 인사를 하고 차에서 내렸다.
사람들이 대개 책보다 스마트폰이 좋다고 하면서도 있으면 읽는다.
한국인은 모두가 지식인이기 때문에 책을 멀리하는 것 같지만
실은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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