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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 좌석 / 3 멧돼지

웃는곰 2024. 1. 8. 19:47

옆 좌석 / 3 멧돼지

 

나는 하루 일을 마치고 퇴근하면 서울역으로 나가 무궁화호 1호칸 31번 석에 앉는다.

내 자리에 앉는 순간부터 나는 마음이 편안하고 기분이 좋아진다. 그렇게 날마다 30분씩 수원까지 쉬지 않고 한 번에 쌩쌩 달리는 동안 나는 스트레스와 피로가 풀리고 기분이 좋아진다. 이게 바로 힐링이라는 것인가 보다.

그것도 모르는 친구들은 나를 보고 피로하겠다, 고생한다고 위로한다. 그러나 나를 따라 한번 씽씽 달려보면 내 기분을 알 것이다. 그렇게 30분의 쾌속 주행 속에 나는 남모를 즐거움을 누리는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문제가 생겼다. 처음에는 못 느꼈는데 날이 갈수록 내 옆 32번 좌석에 누가 와서 앉느냐에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31번 석은 창 쪽이다. 그래서 나는 그 자리에 고정적으로 티켓을 예매하여 앉는다. 하루는 창문을 열고 기분 좋게 앉았는데 옆자리에 멧돼지처럼 두리두리한 몸집에 헝클어진 머리며 우락부락한 얼굴이 흉하게 생긴 사내가 머리를 들이밀며 기차표를 내 앞에 쑥 내밀었다.

자기가 창쪽이라는 것 같아 내가 티켓을 보여주었더니 무서운 얼굴로 쿵하고 의자가 들썩이도록 앉았다. 그리고 바로 벌떡 일어나 배를 쑥 내밀고 내가 열어놓은 커튼을 확 잡아당겨 닫아놓고 제 자리에 앉아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나는 순간 매우 불쾌했다. 그러나 그 사내가 하도 험상궂고 무섭게 생겨서 찍소리도 못하고 얌전히 앉아 들고 있는 책에 눈길을 던졌다. 30분이면 내릴 것이니 기분 상하지만 30분만 참자 하고 감정을 가라앉혔다.

그 사람은 몸을 비틀기도 하고 머리를 벅벅 긁기도 하고 쩝쩝거리며 몸부림을 치는 것이었다. 나는 속으로 똥 묻은 돼지우리에 갇혔구나 하고 참자, 참자 견디었다. 이윽고 수원역이라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그 소리를 듣자마나 그 사내가 벌떡 일어서며 내 길을 열어주었다. 내가 자리를 비우자마자 그 사내는 31번 석에 냉큼 앉아 등에 진 보따리를 32번 석에 풀어놓았다.

누군가가 창가 쪽 티켓을 들고 온다면 어떨까 생각하며 차에서 내렸다. 그런 일이 있고 난 다음날부터 내 옆자리에 누가 와서 앉느냐에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옆 좌석에 누가 와서 앉느냐가 나의 하루 기분을 결정지어 주는 주인공이 되는 것이다. 짧은 시간이지만 어떤 사람과 앉느냐를 놓고 30분 이야기 몇 가지를 정리해 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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