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방

옆 사람 2 / 노인들의 겸손

웃는곰 2024. 1. 8. 19:44

옆 사람 2 / 노인들의 겸손

 

하루에도 몇 번씩 타는 전철에서 이런 저런 모양을 보지만 너무 그런 이야기만 쓰는 것 같아서 안 쓰려 했는데 어쩔 수 없이 이번 한번만 더 쓰기로 한다.

전철 가운데 자리는 젊은이들이 주로 앉는 자리다. 경로석이 만원이라 노인들 넷이 가운데 자리 손잡이에 줄줄이 매달렸다. 앞에는 젊은이들 일곱이 당당하게 앉아 있고.

누가 좀 자리를 양보하지 않을까 하고 멀리서 바라보았지만 아무도 자리를 양보하지 않았다. 얼마쯤 가다가 가운데 앉은 젊은이가 자리를 비우고 내렸다. 그 자리는 당연히 앞에 선 영감이 앉는 것이 상식인데 그가 앉지 않고 옆에 사람에게 말했다.

이리 앉으시지요.”

아닙니다. 가까이 계신 분이 앉으십시오.”

아닙니다. 저는 예순 여덟밖에 안 됩니다.”

동갑이십니다. 그냥 앉으십시오.”

먼저 사람이 옆 사람을 향해 말했다.

저보다 연상으로 보이시는데 앉으시지요.”

아닙니다. 저는 일흔밖에 안 됩니다.”

그리고 더 옆에 어른을 향해 말했다.

아무래도 연장이신 것 같은데 이리로 앉으시지요.”

그 분이 웃으며 자리로 가서 앉으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저는 일흔 넷입니다. 나이만 먹어서 죄송합니다.”

나는 그들의 대화를 들으며 참 아름다운 마음씨를 가진 분들이로구나 생각하며 기뻐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작은 분노가 가슴 바닥에서 일어나는 것을 느꼈다.

노인들이 그렇게 자리를 양보하고 있는데 양쪽에 셋씩 여섯 명의 젊은이들이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그 장면을 구경하듯 바라고 있었다는 점 때문이다. 만약 내가 그 자리에 있었더라면 나는 노인들의 그 모습을 빤히 바라볼 자신이 없었다.

나는 젊은이들에게 소리치고 싶었다.

이 사람들아 일어나! 여기가 경로석이 아니라도 부모 같고 할아버지 같은 분들이 이래야 되겠니? 양심도 없는 것들!”

부산에 가서 보니 버스에 이런 표어가 있었다.

나는 젊었거늘 서서 간들 어떠리.

경로석이 생긴 이후로 젊은이들이 노인에게 자리 양보를 하지 않고

왜 경로석 두고 여기 와서 기웃거리느냐

고 항의하는 것 같아 젊은이들 앞으로 가지 못한다.

그리고 경로석에는 노인들이

너도 늙었다고 여기까지 왔어?’

할 것만 같아 텅 빈 자리가 아니면 아음 놓고 가서 앉기가 불편하다. 아직 나는 경로석에 편히 앉을 자격도 없지만 젊은이들 곁으로 가기에는 너무 늦었다는 애매함을 느낀다.

노인들의 겸손|작성자 웃는곰

'문학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옆 사람 6 / 빈자리와 동행인  (1) 2024.01.09
옆 사람 5 / 담배 피는 오골계  (1) 2024.01.09
옆 사람 4 / 아름다운 동승자  (2) 2024.01.09
옆 좌석 / 3 멧돼지  (1) 2024.01.08
옆 사람 1 / 돈과 인생  (0) 2024.0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