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사슴 아기사슴 / 원고 116매/2013년 10월25
1. 잡혀온 아기사슴
사냥꾼이 깊은 산속을 누비다가 새끼 사슴 한 마리를 발견하고 살금살금 다가가 붙잡았습니다.
아기 사슴은 아무것도 모르고 사냥꾼의 품에 안겨 꼬박꼬박 졸면서 사냥꾼의 집까지 왔습니다.
아기 사슴을 본 사냥꾼 아들이 좋아서 물었습니다.
“아빠, 이거 강아지야?”
“강아지가 아니고 사슴이란다.”
“아기사슴이야?”
“그래 아기사슴이다. 너하고 놀라고 데리고 왔다.”
“이름이 뭔데?”
아빠 사냥꾼은 잠시 생각하다가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네 이름이 윤수이니까 윤숙이라고 지어 주어야겠다.”
“윤숙이? 내가 서윤수니까 서윤숙이야?”
“하하하, 녀석, 성까지 줄래?”
이렇게 하여 윤수는 아기 사슴을 날마다 안고 다니고 잘 때도 안고 자고 밥 먹을 때도 우유도 주고 사과와 고구마도 주었습니다.
입이 뾰족하고 눈이 반짝반짝하는 아기사슴은 아무것이나 주는 대로 잘 받아먹었습니다.
윤수가 밖으로 나가자 아기사슴도 따라 나가고 집으로 돌아올 때도 따라 들어왔습니다. 그것을 본 엄마가 말했습니다.
“저것이 달아나지 않고 따라오네!”
윤수가 아기사슴을 안고 방으로 들어가자 엄마가 또 중얼거렸습니다.
“어쩌자고 달아나지 않고 저 애를 졸졸 따라다니는 거야?”
밖에서 들어오던 아빠가 그 소리를 듣고 물었습니다.
“당신 무슨 소리를 그렇게 중얼거리고 있소?”
“윤수하고 새끼 사슴이 밖에 나가서 놀다가 돌아와서 하는 말이에요.”
“윤수가 사슴새끼를 데리고 밖으로 나갔었단 말이오?”
“그렇다니까요.”
“목에다 줄도 안 매고 말이오?”
“그래요.”
“저런! 달아나면 어떡하려고 그냥 돌아다닌단 말이오. 저 애가 강아지인 줄 아나?”
“참 신기하기도 하네요. 난 달아날 것으로 생각했는데 윤수만 졸졸 따라 다니지 뭐에요.”
“허허 큰일 날 일이야. 목에다 끈을 매어주어야겠어.”
“그럴 것 없어요. 사슴은 윤수가 어미인 줄 아나 봐요.”
“그래도 산짐승이라 달아날 거요.”
“달아나면 버려두어요. 저 어린 것이 엄마를 잃어버렸으니 보고 싶지 않겠어요.”
“내가 어떻게 잡아온 건데 그런 말을 하오?”
“큰 사슴을 잡아왔다면 그런 생각 안 할 거예요. 저 어린 것이 아직 젖도 떼지 못했을 텐데…….”
“허허, 별소리를 다하고 있소.”
“별소리가 아니에요. 사람이나 짐승이나 새끼를 둔 어미의 마음은 같은 거예요. 어미가 얼마나 걱정이 되고 슬프겠어요. 아무리 사냥을 좋아해도 어린 것들은 산에서 어미 품에서 자라게 두어야 했어요.”
“당신은 천사라 그런지 몰라도 나는 산짐승 잡는 것보다 즐거운 일은 없소.”
“윤수하고 더 정들기 전에 산으로 돌려보내요.”
“동물이나 사람이나 정들면 그런대로 어울려 살게 마련이오. 윤수가 얼마나 좋아하오.”
“그렇지만…….”
2. 말 듣는 아기사슴
엄마는 아기사슴을 귀여워하면서도 어미사슴한테 보내고 싶어 했습니다. 그러나 외아들 귀염둥이 윤수는 아기사슴하고 뒹굴며 하루 종일 깔깔거리고 재미있게 놀았습니다.
윤수가 아기사슴 꼬리를 잡자 아기사슴은 팔짝 뛰어 저쪽으로 달아나 고개를 갸웃거리며 윤수를 바라보았습니다.
“윤숙아, 이리 와.”
아기사슴은 윤수가 팔을 벌리고 부르자 쪼르르 다가와 윤수 무릎에 올랐습니다. 윤수는 아기사슴의 뾰족한 입에다 뽀뽀를 해주며 말했습니다.
“윤숙아, 나 좋아?”
놀랍게도 아기사슴이 고개를 까딱까딱했습니다.
“어? 너 내 말 알아듣는 거야?”
아기사슴은 또 머리를 까딱 하고 눈을 깜박했습니다.
“엄마, 이리 와 봐.”
엄마가 보고 물었습니다.
“왜? 무슨 일 있니?”
“윤숙이가 내 말을 알아들어.”
“사슴이 사람 말을 알아듣는다고?”
“내가 이리 와 했더니 왔어.”
“그래? 어디 나도 한번 불러 볼까?”
엄마가 부엌 쪽으로 가서 불러 보았습니다.
“윤숙아, 이리 와 봐.”
정말 아기사슴은 엄마한테 쪼르르 달려갔습니다.
“엄마! 내 말이 맞지? 그렇지?”
“그런 것 같다. 신기하게도”
엄마는 사랑이 가득한 얼굴로 아들을 바라보았습니다.
“엄마, 윤숙이하고 나가서 놀다 올게.”
“그래라. 너무 멀리 가지 마.”
엄마는 아무 생각도 없이 아기사슴과 아들이 밖으로 나가는 것을 허락했습니다.
윤수는 신이 나서 아기사슴을 안고 뒷동산으로 갔습니다. 잔디밭에서 달리기도 하고 뒹굴면서 신나게 놀다가 돌아왔습니다. 아기사슴은 강아지처럼 윤수 뒤를 졸졸 따라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마침 아빠가 그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시며 소리쳤습니다.
“윤수야, 너 또 그냥 나갔다 온 거냐?”
“왜, 아빠?”
“사슴 목에 끈도 매지 않고 나갔다가 달아나면 어떡하려고 그냥 나간 거야?”
이때 엄마가 말했습니다.
“저 사슴은 달아나지 않아요. 윤수 말을 얼마나 잘 알아듣는데요.”
“허허 당신이 더 문제야. 사슴이 무슨 말을 알아듣는다는 거야?”
“정말이에요. 한 번 말을 해 보세요.”
윤수가 사슴을 보고 말했습니다.
“윤숙아, 아빠한테 달려가 봐.”
참 신기합니다. 정말 알아들을까 하고 바라보는데 아기사슴이 아빠 앞으로 쪼르르 달려갔습니다. 아빠가 깜짝 놀라 반짝 안아 올리며 말했습니다.
“허허, 이게 정말로 알아듣는 거 아닌가?”
엄마가 재미있다는 듯 손짓을 하며 말했습니다.
“윤숙아, 나한테 와 봐.”
아빠가 바닥에다 내려놓자 아기사슴은 깡충깡충 귀엽게 엄마한테 달려갔습니다. 엄마가 반짝 들어 안아주며 말했습니다.
“요 조그만 게 어떻게 우리말을 알아들을까요?”
“글쎄 말이오. 아무 소리나 나면 달려가는 건 아닐까?”
“그런 것 같지 않아요. 밖에 나갔다가 돌아오는 것을 보면 꼭 강아지 같아요.”
“그것 참 신기하군. 그래도 산짐승이라 달아날 수도 있으니 목에 끈을 매어야겠소.”
그리고 아빠는 목에다 끈을 매었습니다. 아기사슴은 끈을 매어놓자 몸부림을 치면서 끈을 물어뜯었습니다. 그렇지만 끈이 질겨서 끊어지지 않았습니다. 아빠가 말했습니다.
“윤수야, 앞으로 나갈 때는 꼭 끈을 잡고 다녀라 알았지?”
“…….”
“왜 대답이 없어?”
“난 싫어. 나도 같이 목에다 끈을 매 줘 아빠.”
“넌 안 돼.”
“난 끈으로 매주지 않으면 집에서 달아날 거야.”
“저 녀석이!”
윤수는 아기사슴 목에 매어 있는 끈이 싫었습니다. 그래서 속으로 말했습니다.
‘아빠 몰래 풀어줄 거야. 그리고 놀러 나갈 거야.’
그리고 며칠 지나서 윤수는 아기사슴을 데리고 들로 나갔습니다.
3. 달아난 사슴
아기사슴과 놀러 나간 윤수가 해가 지도록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걱정이 된 엄마가 뒷동산으로 윤수를 찾아 올라갔습니다.
“윤수야아! 윤수야아!”
큰소리로 불러도 대답이 없었습니다. 한쪽을 보니 윤수가 큰 나무 아래서 머리를 무릎 사이에 박은 채 꼼짝도 않고 있었습니다. 깜짝 놀란 엄마가 다가갔습니다.
“윤수야, 왜 이러고 있어?”
“…….”
“윤숙이, 아니, 새끼 사슴은 어디 있니?”
“달아났어.”
“뭐야? 달아나?”
“아빠한테 혼나겠지?”
“괜찮아, 가자.”
“싫어 더 기다려 볼 거야.”
“기다려도 안 온다. 빨리 가자.”
윤수는 엄마 손을 잡고 집으로 오면서 마음이 괴로웠습니다. 아빠가 아시면 얼마나 화를 내실까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엄마, 아빠한테 혼나겠지?”
“걱정 마. 사슴을 붙들어온 아빠가 잘못이지 네 잘못은 아니야.”
“그럴까?”
“산에서 어미사슴하고 잘 노는 아기사슴을 잡아온 아빠가 더 나쁜 거야.”
“그렇지? 새끼 사슴이 아빠한테 잡혀 와서 엄마사슴이 얼마나 보고 싶었겠어.”
“그러니까 넌 걱정할 것 없어.”
이렇게 달래며 아들을 집으로 데리고 오는 엄마 마음도 걱정이 앞을 가리고 있었습니다. 새끼 사슴을 잡아온 날 윤수 아빠가 얼마나 좋아했던가. 그런데 그것이 달아났으니 걱정이 안 될 수 없습니다.
집에는 아빠가 퇴근하여 돌아와 있었고 할머니까지 나와 계셨습니다. 할머니는 하루 종일 뒷방에서 책만 보시고 아기사슴에 대하여는 관심을 갖지 않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윤수가 너무 늦게까지 돌아오지 않아 나와 계신 것입니다. 엄마와 윤수가 사슴도 안 데리고 오는 것을 보고 아빠가 물었습니다.
“새끼 사슴은 어떻게 하고 너만 돌아오는 거냐?”
엄마가 얼른 대답했습니다.
“제가 산으로 돌려보냈어요.”
“뭐요? 그것을 돌려보냈다고?”
“그래요.”
“아아니! 그게 얼마짜리인 줄 알고 하는 소리요?”
“얼마가 문제인가요? 걔도 어미가 보고 싶지 않았겠어요?”
“허허, 별소리를 다하오. 그건 동물이란 말이오.”
“동물이고 사람이고 어미와 자식 사이는 같은 거예요.”
“그렇다고 그 아까운 것을 내보냈단 말이오?”
윤수는 엄마가 고맙기도 하지만 엄마가 거짓말을 하다가 아빠한테 꾸중당하는 것이 마음이 졸아들었습니다. 그래서 엄마가 그런 것이 아니라고 말하려는데 할머니가 먼저 끼어들었습니다.
“그만들 해라. 어미가 잘한 게야.”
아빠가 눈을 크게 뜨고 할머니를 바라보았습니다.
“이게 가만히 있을 일이에요?”
“어미 말이 맞다. 동물이라도 제 어미 보고 싶은 것은 사람이나 짐승이나 마찬가지야. 난 집에서 키우는 동물도 싫어하지만 산짐승은 더 싫었다. 잘 내보냈어.”
아빠는 기가 차다는 듯 말했습니다.
“어머니!”
“왜 불러?”
“부르는 게 아니에요.”
“그럼 왜 어머니 소리를 하는 거냐? 어머니 하고 부르기 싫으면 내 이름이나 불러라. 내 이름은 박순자야! 호호호.”
할머니가 웃으시자 아빠도 기가 차다는 듯 얼굴을 돌리고 웃었습니다.
윤수는 할머니 이름이 박순자라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할머니 이름이 박순자야? 하하하하.”
아빠가 화난 척하고 윤수를 꾸짖었습니다.
“웃음이 나오냐? 바보야, 그래서 내가 끈을 단단히 매어 주지 않았냐?”
“아빠, 죄송해요.”
아빠가 웃으며 엄마를 바라보았습니다.
“당신이 내보냈다니 가서 데려오시구려.”
윤수가 얼른 받아 말했습니다.
“아빠, 그게 아니고오요. 내가 놓친 거예요오.”
아빠가 웃음을 눈에 가득 담고 말했습니다.
“나도 알고 있다. 너를 위해서 엄마가 그랬을 거라는 건 알고 있었어.”
엄마가 아빠한테 고맙다고 했습니다. 할머니도 웃으시며 말했습니다.
“잘들 했다. 사슴인가 뭔가는 잘 내보냈어. 난 동물을 싫어하니까.”
윤수가 할머니 품에 안기며 말했습니다.
“할머니는 사람만 좋아?”
“그래, 너같이 귀여운 아이가 좋다.”
아빠는 섭섭한 듯 아들 들으라는 듯 중얼거리며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바보가 따로 없어…… 내가 바보지.”
4. 귀신보다 무서운 사람
산속으로 달아난 아기사슴은 엄마가 있는 숲속에다 대고 소리쳤습니다.
끽끽끽 깩깨깩깨애!
끼끽!
아기사슴이 온 것을 안 엄마 사슴이 끽끽 하고 대답했습니다. 엄마 사슴을 만난 아기사슴은 엄마 품에 안겼습니다.
“엄마, 많이 보고 싶었어? 끽끽!”
“나도 너 많이 보고 싶었다. 널 잃어버리고 날마다 울었어.”
“엄마, 정말 내가 그렇게 보고 싶었어? 끽끼끽!”
“그래, 그 동안 어디 가서 어떻게 지내다 온 거냐?”
“사람들과 놀다 왔어.”
“그 무서운 사람들과 놀다 오다니 그게 무슨 소리냐? 널 잡아간 건 사냥꾼이었어.”
“알아, 그 아저씨 아들 이름이 윤수라는데 그 애하고 날마다 재미있게 놀았어.”
“위험한 짓을 하고 왔구나. 어디 다친 데는 없고?”
“다칠 일이 있어야지. 엄마, 사람들이 내 이름도 지어 주었다.”
“이름이 무슨 소용이 있다고 그런 것까지 지어주니?”
“사람들은 다 이름이 따로 있어. 윤수 할머니는 박순자라는데 그 할머니 아주 무서운 사람이었어. 그래도 자기 이름 부르고 깔깔 웃었어. 그리고 그 식구들도 모두 따라 웃었어.”
“네가 이렇게 돌아와서 다행이다. 사람들이 얼마나 무서운지 귀신이 있다는 소리는 들어도 볼 수 없지만 귀신보다 더 무서운 건 사람이다. 앞으로 사람 조심해야 한다.”
“아니야, 엄마는 사람이 얼마나 좋은지 몰라서 하는 소리야.”
“넌 어려서 아무것도 몰라. 우리 할아버지도 사람이 잡아갔고 우리 사촌 언니도 사람이 잡아갔어. 사람들은 우리 뿔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옆집 할아버지 사슴도 뿔이 좋다고 잡아갔다.”
“사람들은 엄마 생각보다 착해. 나한테 맛있는 것도 주고 잘 때도 따듯한 방에서 같이 자고 얼마나 귀여워해 주었는데.”
“사람들은 동물 새끼는 잘 자라게 도와주시만 다 자라고 나면 잡아먹던지 우리 같은 사슴들은 뿔을 강제로 잘라 먹는다고 하더라.”
“엄마, 나는 뿔이 없는데 어때?”
“아빠가 걱정이지. 아빠 뿔은 얼마나 멋지냐?”
“맞아 아빠 뿔은 정말 크고 멋져.”
이때 아빠 사슴이 돌아왔습니다.
“너 어디 갔다 돌아온 거냐? 컥컥!!”
아기사슴은 바빠 가슴을 파고들며 귀여운 소리로 말했습니다.
“아빠아, 아빠도 나 보고 싶었어어엉?”
“보고 싶기만 게 아니다. 너를 찾으려고 온 산을 다 돌아다녔다. 어딜 갔다 온 거냐?”
“사람들하고 놀다 왔어.”
“뭐? 뭐라고 ? 사람들하고 놀았다고? 칵칵칵카아!”
“아빠, 왜 그렇게 놀라는 거야?”
“사람들이 귀신보다 무섭다는 걸 몰라서 그랬구나!”
“사람들은 아주 좋아.”
“다시는 그런 말 하지 마라.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귀신이야. 특히 우리 사슴들한테 사람들은 귀신보다 더 무섭다.”
“아니야, 아빠.”
“너 다시는 사람 따라 가지 마, 알았지?”
“난 윤수하고 놀러 갈 거야.”
“윤수가 누구냐?”
엄마 사슴이 끼어들어 설명했습니다.
“사람한테 잡혀갔던 저것이 윤수라는 아이와 친구가 되었대요. 윤숙이라는 이름까지 사람들이 지어주었다는구려.”
“윤숙이? 그게 무슨 소리야?”
아기사슴이 말했습니다.
“사람들은 모두가 이름을 부르는데 나는 서윤숙이라고 이름을 지어 주었어.”
“서윤숙?”
“난 이제 윤수한테 가야 해.”
엄마 아빠 사슴이 깜짝 놀라 앞발을 번쩍 들고 소리쳤습니다.
“끼아깍깎! 컥컥컥어어어 크악!”
5. 좋은 사람들
아기사슴은 자리를 떠나면서 말했습니다.
“엄마, 아빠 안녕! 또 올게에!”
아빠 사슴이 큰소리로 말렸습니다.
“어디를 간다는 거야? 가면 안 돼.”
엄마사슴이 따라오면서 소리쳤습니다.
“윤숙아아! 네 이름도 불러 줄게 가지 마!”
아기사슴은 달려가며 대답했습니다.
“걱정 마, 다시 올게, 기다려 엄마.”
“안 된다, 가면 위험해!”
“염려 마 엄마, 사람들은 좋아!”
“그래도 안 된다 돌아와!”
그러는 동안 아기사슴은 언덕을 넘었습니다. 아빠사슴이 걱정스런 눈으로 말했습니다.
“안 되겠어. 우리가 따라가 봅시다.”
아빠사슴과 엄마사슴은 아기사슴을 따라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해가 질 무렵에 아기사슴은 산 아래 외딴집 울타리 구멍으로 들어갔습니다. 언덕 아래는 큰 마을이 있고 아기사슴이 들어간 집은 동네에서 떨어져 있었습니다.
엄마사슴과 아빠사슴은 집안으로 들어갈 수 없어서 울타리 밖 숲속에 숨어서 아기사슴을 지켜보았습니다.
아기사슴이 마당에 들어서서 소리를 질렀습니다.
“끼에끽 끼끼!”
아기사슴 소리를 들은 윤수가 문을 열고 후닥닥 뛰어나왔습니다.
“윤숙아, 어디 갔다 왔어?”
그리고 안방에다 대고 외쳤습니다.
“엄마 윤숙이가 왔어!”
“뭐야? 사슴이 돌아왔다고?”
윤수 엄마 아빠는 물론 할머니까지 나왔습니다.
윤수가 아기사슴을 품에 안고 얼굴을 비벼대고 있었습니다. 엄마도 반가운 얼굴로 아기사슴 등을 쓰다듬었습니다.
“귀여운 것이 어딜 갔다 왔어. 이놈아, 멀리 달아나라고 했는데 왜 돌아온 거야?”
아기사슴이 찍끼끽 하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소리를 듣기만 할 뿐 무슨 말인지를 모릅니다. 그러나 밖에서 다 듣고 있는 엄마사슴과 아빠사슴은 알아듣고 있었습니다. 아기사슴이 한 소리는 ‘난 사람들이 좋아서 돌아왔어요.’하는 것이었습니다.
윤수 아빠가 싱글거리며 한 마디 했습니다.
“잘 왔다. 잘 왔어. 빨리 커라 그래야 새끼도 낳고 제 값을 받지.”
이때 할머니가 한 마디 했습니다.
“불쌍한 것이 잡혀왔다가 달아났기에 잘했다 했는데 어쩌자고 돌아오는 거야. 저 어린 것이 사람 무서운 걸 모르는 모양이군. 쯔쯔.”
밖에서 다 듣고 있는 엄마사슴이 작은 소리로 아빠사슴한테 말했습니다.
“사람들이 친절하고 착한 것 같아요.”
“그런 것 같아. 사람이 난 무서워했는데…… 저 주인 아주머니 말하는 걸 들어보니 우리 아기를 돌려보내고 싶어 하는 것 같지 않아?”
“맞아요. 할머니도 사람이 무서운 걸 모르느냐고 하는 말은 우리 짐승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하는 말 같아요.”
“그래, 우리가 사람들을 너무 오해하고 있었던 것 같아.”
이때 윤수 엄마가 먹을거리를 가지고 아기사슴한테 주면서 말했습니다.
“어디서 굶지는 않았는지 모르겠구나. 배가 홀쭉한 걸 보니 배가 많이 고플 것 같다. 이거나 먼저 먹어라.”
할머니는 건넌방으로 들어가고 윤수 아빠는 안방으로 들어갔습니다. 윤수는 좋아서 아기사슴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우유와 과일을 먹여주었습니다. 아기사슴은 배가 많이 고팠던 듯 맛있게 먹었습니다.
엄마사슴이 중얼거렸습니다.
“나도 배가 고픈데…….”
아빠사슴도 배가 고팠지만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아기사슴이 맛있게 먹는 것을 보니 갑자기 배는 고팠지만 마음은 기뻤습니다. 엄마사슴이 말했습니다.
“사람이 무섭다고 생각했는데 이 집 식구들은 그렇지 않을 것 같아요. 우리 아기한테 저렇게 맛있는 것도 주고…….”
“다행이야. 우리는 아무것도 먹이지 못했는데 저렇게 사람이 먹을 것을 주니 내가 먹는 것보다 기쁘오.”
“그렇지요? 나도 배는 고프지만 우리 아기가 사람의 사랑을 받고 먹을거리를 먹고 있으니 기뻐요.”
“이제 우리는 돌아갑시다. 그리고 내일 또 와 봅시다.”
그렇게 하고 돌아간 사슴 부부는 다음 날 저녁에 다시 아기사슴이 있는 집 울타리 밖 숲속에 숨어서 귀를 기울였습니다.
6.
5. 사슴 부부의 결심
아기사슴이 윤수하고 이야기하는 소리가 났습니다.
“윤숙아, 오늘은 배 안 고프지?”
아기사슴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습니다.
“끽끽.”
“그렇다고?”
“끽끽.”
“알았다. 이제부터는 아무 데도 가지 마, 알았지?”
아기사슴은 안 나간다고 대답해습니다. 그러나 윤수는 그 말을 알아듣지 못하지만 눈빛으로 알았습니다. 그러나 밖에 숨어서 듣는 사슴 부부는 다 듣고 있었습니다.
윤수가 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너는 언제 뿔이 나오냐? 그림책에서 본 사슴뿔은 참 예쁜데.”
아기사슴은 또 대답했지만 윤수는 무슨 소리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밖에서 듣고 있는 아빠 사슴이 엄마 사슴을 쿡쿡 찌르면서 속삭였습니다.
“히히히, 저 아이는 암사슴은 뿔이 나지 않는다는 걸 모르는 모양이야.”
“그래서 사람이지요. 호호호.”
윤수 목소리가 또 들렸습니다.
“윤숙아, 사람들이 무섭지?”
“쭈주, 아니. 난 사람들이 좋아.”
윤수는 아기사슴이 입술을 놀리며 내는 소리를 알아듣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이 좋다고? 사람들은 무슨 동물이든지 달아나면 잡아먹기도 하고 해치지만 배가 고프든가 위험한 일을 당했을 때 사람 품으로 들며 살려달라고 하면 절대 안 잡아먹는다. 넌 그것 몰랐지?”
“몰랐어.”
“사냥꾼이 새를 잡으려고 총을 겨누다가도 그 새가 날아서 포수 품으로 날아들면 잡지 않고 오히려 보호해 준다는 것도 모르지?”
“사람들은 참 좋은가 봐. 짐승은 서로 잡아먹는데…….”
“너는 우리 아빠한테 잡혀 왔지만 네가 나갔다가 돌아왔기 때문에 우리 식구들은 너를 이제 믿는다. 알겠니?”
“내가 더 어리니까 너한테 오빠라고 부를게, 좋지?”
“그래, 오빠라고 해.”
“우리 엄마 아빠가 이리로 들어와도 괜찮을까?”
“제 발로 온다면 식구들은 아주 좋아할 거다.”
“정말?”
“그렇지만 너의 엄마 아빠가 오겠니?”
“내가 가서 데려오지.”
“안 돼, 또 나가면 위험해. 너를 엄마 아빠가 안 보내주면 난 안 돼.”
이런 소리를 밖에서 듣던 아빠사슴이 말했습니다.
“정말 우리 발로 들어가도 괜찮을까?”
“저 아이 말을 어떻게 믿어요.”
“저 아이 말이 맞을 것 같아. 우리 이렇게 숨어 있지 말고 우리 발로 저 집 대문을 열고 들어가자.”
“호랑이보다 무서운 사람들 집으로 들어간다는 건 위험한 짓이에요.”
“우리 아기가 저기 있는데…….”
엄마 사슴은 대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밤이 깊었습니다. 방에 불도 꺼지고 아기사슴은 이제 자는 것 같았습니다.
밤이 가고 날이 밝아오고 있었습니다. 엄마 사슴이 말했습니다.
“우리 아기를 위해서 우리 발로 들어가요. 주인아저씨가 아침에 대문을 열면 그 앞에 무릎을 꿇고 들어가요.”
“그럴까?”
“어차피 우리 아기가 이 집에 잡혀 있는데 가만히 있을 수도 없잖아요?”
“그래, 한번 죽으면 죽더라도 우리 발로 들어가 보자.”
날이 환히 밝아오자 주인아저씨가 맨 먼저 일어나 대문을 활짝 열었습니다. 대문 앞에 두 마리 사슴이 앞다리를 꺾고 넙죽 앉은 것을 보고 깜짝 놀라 소리쳤습니다.
“이놈들! 이놈들!”
그 소리에 부엌에서 아침을 짓던 윤수 엄마가 내다보고 물었습니다.
“무슨 소리예요? 누구를 보고 그러세요?”
사슴 두 마리가 엎드려 있는 것을 본 윤수 엄마도 놀라 멈춰 섰습니다.
밖이 소란한 것을 안 할머니도 내다보시고 그 사이에 윤수도 일어나 대문을 바라보았습니다.
“아니! 저건?”
6. 나를 잡아먹을까?
눈 깜짝할 새에 두 마리 사슴이 마당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문틈으로 내다보던 아기사슴이 달려 나가 엄마사슴 품에 안겼습니다.
“엄마!”
“아가!”
아기사슴과 엄마사슴이 부둥켜안고 좋아서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 모습을 본 할머니가 말했습니다.
“저것들이 새끼를 찾아 왔구나.”
윤수네 가족이 모두 둘러섰습니다. 윤수 엄마도 감격스러워 말했습니다.
“저 어미가 제 새끼를 찾아 위험도 무릅쓰고 우리 집까지 왔네요. 새끼가 얼마나 보고 싶으면 왔을까!”
윤수 아빠도 놀랍다는 듯 바라보다가 할머니를 향해 말했습니다.
“자식 사랑은 동물이나 사람이나 조금도 다를 게 없는 것 같아요. 어머니.”
“그렇구나. 저것들이 사람 무서운 것을 알 텐데도 위험을 무릅쓰고 왔어.”
엄마가 말했습니다.
“새도 총을 겨눈 포수 품으로 날아들면 안 잡는다는데 저렇게 제 발로 왔으니 어쩌지요?”
할머니가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우리 집에 경사가 났구나. 식구가 늘었어. 저 녀석들을 위해 잔치를 벌여야겠다. 애비야, 안 그러냐?”
아빠도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어쨌든 귀한 손님들이 왔으니 대접을 해야 하겠지요.”
엄마가 고개를 갸웃하고 말했습니다.
“무얼 가지고 대접을 해야 하나……?”
“저것들은 풀을 좋아하니까 배추와 무를 주면 되겠지.”
아빠는 그렇게 말하면서 어제 뽑아다 놓은 배추와 무를 한 아름 안아다 주었습니다. 아기사슴과 어미 사슴은 그것을 맛있게 먹었습니다.
아빠가 윤수룰 바라보고 말했습니다.
“네 친구가 더 늘어났구나. 저것들을 내보야 할까? 아니면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
“아빠, 빈 외양간 있잖아. 거기서 살게 해 줘.”
“음, 그것도 좋겠다만 달아나지 않을까?”
할머니가 손을 저으셨습니다.
“제 발로 들어온 짐승은 절대 달아나지 않는다. 외양간에 소도 없으니 거기서 살게 하고 소가 먹던 것들을 먹여라.”
그리하여 사슴부부는 외양간에 살고 아기사슴은 낮에는 어미들과 놀고 잘 때는 윤수 방에서 잤습니다. 그렇게 하여 부부사슴은 외양간에서 안고 자며 긴 겨울을 났습니다.
아기사슴도 이제는 제법 어미만큼 컸습니다. 봄이 되자 어미사슴이 배가 불러왔습니다. 그것을 본 아빠는 좋아서 싱글벙글했습니다.
“저것들이 또 새끼를 낳을 것 같잖은가? 하하하하.”
마을 사람들도 사슴 가족이 몰려와 산다는 소문을 듣고 수시로 찾아와 구경을 했습니다. 사슴 세 마리는 집안에서 나가지 않고 윤수를 따라다니든지 저희들끼리 뒹굴고 놀았습니다.
“참 신기한 일이야, 저것들이 무섭지도 않은가?”
보는 사람마다 한 마디씩 하고 지나가며 신기해했습니다.
완전한 봄이 왔습니다. 들에는 풀이 파랗게 돋아나고 살구꽃나무 복숭아나무에는 분홍꽃이 피어 향기를 날리고 뒷동산에서는 새들이 맑은 소리로 어쩌고저쩌고 수다를 떨어댔습니다. 새들은 사슴가족 이야기를 늘어놓기도 했습니다.
“별일이야, 산속에 살던 사슴이 윤수네 집으로 들어왔대 짹짹!”
“사람들이 얼마나 무서운 줄을 모르는 바보들이지, 쭈쭈쭉!”
“이 바보들아, 달아나! 이제 산에는 먹을 것도 많고 밤에 춥지도 않아. 짹짹짹.”
엄마사슴은 그 말을 다 알아듣습니다. 그러나 대꾸를 하지 않고 아빠사슴한테만 말했습니다.
“저것들이 입만 살아서 짹짹거려요. 안 그래요?”
“사람이 아무리 무서워도 우리가 사람을 사랑하면 사람도 우리를 사랑하다는 것을 모르는 바보들이지.”
아빠사슴이 이렇게 말하다가 걱정스러운 듯 다른 말을 했습니다.
“요새 할머니가 방에서 안 나오시는데 웬일일까?”
“며칠 전에 저 아래 동네 한의원 아저씨가 왔다 가면서 하는 말을 들었어요.”
“무슨 말?”
“할머니가 병이 나셨는데 오래 묵은 산삼과 사슴뿔을 달여서 잡수시면 낫는다고 하시면서…….”
“그러면서 뭐라고 하셨어?”
“사슴뿔이야 수사슴이 집안에 있으니 그 뿔을 쓰면 될 거라고…….”
“그럼 나를 잡아먹는다는 거야?”
“…….”
“내 뿔만 드리면 될까?”
“모르겠어요.”
“뿔만 가지고 약이 된다면 뿔은 드릴 수 있는데.”
“어떻게?”
“봄이 되었으니 나는 뿔을 갈아야 하잖아. 어차피 뿔은 봄에 떨어져 나가는 거니까 그거라도 쓸 수 있으면 좋겠는데.”
“그렇겠네요. 그럼 산삼은 어디서 구하지요?”
“산삼?”
8. 감동의 사랑
“산삼이라면 호랑이 바위굴 앞에 우리가 해마다 뜯어먹던 거 있잖아.”
“아, 거기 있는 그 산삼?”
“거기 가서 우리 산삼 잎도 따 먹고 산삼도 한 뿌리 캐 옵시다.”
“그래요, 그 삼밭은 아무도 모르는 곳이니까 지금은 잎이 많이 자랐을 거예요.”
이렇게 이야기를 나눈 다음 날 밤 수사슴은 외양간 구석 기둥 사이에다 뿔을 대고 밀었습니다. 뿔 갈이를 할 때가 된 수사슴 뿔이 뚝 떨어져 틈 사이에 깊이 박혔습니다.
사슴부부는 산삼을 캐러 가기 전에 할머니 방 앞으로 갔습니다. 방안에서는 할머니를 걱정하는 윤수 아빠 엄마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어머니 기운 내세요.”
할머니는 가느다란 소리로 말했습니다.
“그만 가서 자거라.”
“어머니가 이렇게 편찮으신데 어떻게 우리가 편히 잡니까.”
“난 이제 다 살아서 죽어도 괜찮다.”
윤수 엄마 목소리였습니다.
“남들 보세요. 다들 여든 아흔 살까지도 정정하게 살고 있는데 지금 돌아가시면 안 되어요.”
“네가 고생이 너무 많다.”
윤수 아빠 목소리입니다.
“어머니 한의사가 그랬습니다. 사슴뿔과 산삼을 구하여 달여 드리면 벌떡 일어나신다고 했어요.”
“그 귀한 것을 어떻게 구하겠느냐?”
“사슴한테는 안됐지만 집에 있는 사슴뿔을 쓰고 산삼은 제가 무슨 수를 쓰든지 구해 오겠습니다.”
“나 살자고 사슴을 다쳐서는 안 된다. 사슴은 한참 젊은 것들이야. 새끼도 데리고 있다.”
“그렇지만 그 뿔을 얻자면 어쩔 수 없지 않아요?”
“안 된다. 그것들도 이제 우리 식구야. 늙은이 하나 살자고 못된 짓을 해서는 안 된다.”
“어머니, 염려 마세요, 적당히 뿔만 조금 잘라 쓰겠습니다. 다행히 그것들이 제 발로 들어와서…….”
“난 그것들 다치는 꼴은 못 본다. 그 뿔로 지은 약은 안 먹는다. 그것을 순한 눈을 보아라. 어디 한 군데 꼬집을 데가 있더냐. 못된 사람보다 백 배 나은 것들이다. 수컷이 없어지면 암컷과 새끼는 얼마나 슬프겠어?”
“어머니는 젊어서부터 너무 착해서 탈입니다. 목숨이 위태로운데 보약을 마다하시니 답답합니다.”
사슴부부는 할머니의 고운 마음씨에 감동하여 눈물을 흘리며 자리를 떠났습니다. 그리고 담 구멍으로 빠져나가 산속을 향해 달리면서 수사슴이 말했습니다.
“빨리 산삼을 캐다가 할머니를 드려야지.”
암사슴도 달리면서 말했습니다.
“할머니 말씀을 들으니 너무 고마워서 눈물이 났어요.”
“나도 그랬어. 참 착한 할머니야.”
“그렇게 착한 사람들을 우리가 바보처럼 너무 무서워하고 살았어요.”
“그랬지. 우리가 바보였어.”
사슴 부부는 밤새도록 달려 산속으로 가고 아침이 밝았습니다.
윤수 아빠가 일어나 외양간이 비어 있는 것을 보고 소리쳤습니다.
“아아니! 이놈들 어디로 간 거야?”
엄마도 나와 보고 놀라서 말했습니다.
“이것들이 우리가 어제 밤에 어머니와 말하는 소리를 듣고 달아난 게 아닐까요?”
“그런 것 같소. 못된 놈들 겨우내 먹여주고 재워줬더니 달아나! 윤수야!”
윤수가 방문을 열고 나오자 아빠가 더 큰소리로 말했습니다.
“새끼 사슴 있지?”
“응. 있어.”
“당장 이 끈으로 모가지를 매라.”
“왜, 아빠?”
“그 어미가 달아났어. 그놈도 따라갈지 모른다. 단장에 목에 끈을 매!”
9. 산삼과 사슴뿔
사슴 부부는 밤새도록 깊은 산속 호랑이 바위굴을 향해 달렸습니다. 날이 밝아오는 새벽에 굴 앞에 도착했습니다. 새벽이슬을 맞은 산삼이 야들야들하고 파란 얼굴로 햇살을 받고 반짝거렸습니다.
사슴이 뜯어 먹기 좋을 만큼 잎이 피어 있었습니다. 암사슴이 생글거리며 종알거렸습니다.
“올해도 요것들은 뜯어 먹기 좋게 자랐네!”
수사슴도 좋아서 입을 딱 벌리고 웃었습니다.
“하하하, 그러게 말이야. 우리가 해마다 이렇게 산삼 잎을 따먹고 살아서 건강한 것을 사람들은 모르고 있겠지. 산속의 약초들은 다 우리 밥이 아닌가. 산삼아, 우리가 왔다!”
사슴부부는 오래 묵은 산삼 두 포기를 각각 나누어 잎과 줄기를 뜯어 먹고 앞발로 땅을 후벼 파기 시작했습니다. 산삼은 굵고 뿌리가 깊었습니다. 부부사슴은 한낮이 되도록 열심히 땅을 파고 산삼 두 뿌리를 캐냈습니다. 수사슴이 번쩍 들고 말했습니다.
“야아! 크고 좋다!”
“산삼이 이렇게 클 줄은 몰랐어요. 늦기 전에 빨리 돌아가요.”
사슴 부부는 산삼을 하나씩 입에 물고 산속을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한편 사슴 부부가 달아났다고 화가 난 윤수 아빠는 아기사슴 목에다 끈을 묶고 기둥에다 매어 놓았습니다.
“이놈도 달아나기 쉬우니 잘 지켜라. 짐승은 믿을 것이 못 돼! 겨우내 먹여 살렸더니 배신을 해!?”
엄마가 말했습니다.
“여보, 그렇게 생각하지 마세요. 여름이 가까웠으니 걔네들은 풀어주어도 되어요.”
“풀어주다니?”
“잘 달아났어요. 그것들이 여기 있으면 당신이 가만 두겠어요?”
“가만 두지 어쩌겠소? 암놈이 새끼도 가졌던데, 새끼만 낳아주어도 우리는…….”
“사람들은 돈만 생각해서 탈이에요.”
“사슴이 새끼 하나만 낳아주어도 얼마겠소? 겨울 동안 먹여준 값은 나왔을 것 아니오?”
“사랑을 베풀었으면 그것으로 만족해야지 그 대가를 바라는 건 사랑이 아니에요.”
“당신은 그렇게 생각하지만 제 발로 굴러들어온 복이 달아났는데 누군들 섭섭해 하지 않겠소. 이럴 줄 알았으면 그놈 뿔이나 뚝 떼어 둘 걸 그랬소. 그러면 어머니 약이라도 지어 드리지.”
“그 애들이 잘 달아났지. 사람 믿고 살았다가는…….”
“그런 소리 그만 해요. 나는 달아난 놈들 때문에 속이 상해 견딜 수가 없는데…….”
목에 끈이 매이고 기둥에 묶인 아기사슴은 답답하여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윤수를 보고 말했습니다.
“아이, 답답해 나 좀 풀어 줘.”
“알았어. 우리 아빠 안 보실 때 풀어 줄게.”
“사람들은 나를 못 믿나 봐.”
“너를 못 믿는 게 아니라 너의 엄마 아빠가 달아나서 그러시는 거야.”
“우리 엄마 아빠는 어디로 갔을까?”
“달아난 거야.”
“나만 두고? 난 보고 싶은데…….”
하루가 다 가고 해가 서산에 걸렸습니다. 노을 속으로 술 취한 사람처럼 빨간 얼굴을 한 해가 스르르 내려앉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멀리 산모퉁이에 사슴 부부가 나타나 달려오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본 윤수 아빠가 좋아서 소리를 질렀습니다.
“아아니! 저 녀석들이 돌아오고 있지 않아?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그 소리에 윤수 엄마도 바라보며 중얼거렸습니다.
“어쩜! 멀리 달아나지 않고 왜 도로 오는 거야, 바보 같은 것들…….”
아빠가 엄마한테 눈을 흘겼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요? 저 놈들이 돌아오고 있는데!”
“호랑이굴로 돌아오니까 하는 말이지요.”
“내가 호랑이오?”
“호랑이가 따로 있나요? 해로우면 호랑이지.”
아빠가 가까이 오는 사슴 부부를 보고 실망한 듯 중얼거렸습니다.
“저놈들이 뿔은 어쩌고 맨머리로 오고 있어?”
“뿔이 없다고요?”
“수사슴이 달고 다니던 뿔이 안 보여서 하는 소리요.”
엄마도 자세히 보고 말했습니다.
“정말 뿔이 없네! 그런데 입에는 무얼 물고 있잖아요?”
“글쎄, 저게 뭘까?”
그러는 동안 사슴 부부가 발앞에 왔습니다. 사슴이 물고 온 산삼을 윤수 아빠 앞에 내려놓자 놀란 소리로 물었습니다.
“이게 뭐냐?”
윤수 엄마가 자세히 들여다보고 말했습니다.
“산삼 같아요. 산삼!”
“산삼? 맞는 것 같소. 그런데 이놈들이 뿔은 어떻게 하고 이런 것만 구해왔을까? 어머니 약에 쓰자면 뿔도 있어야 하는데…….”
“뿔은 산에서 떼어 버리고 왔나 봐요.”
“허허, 산삼이 있으면 사슴뿔도 있어야 하는데 이것만 있으면 뭘 하나? 낭패로다, 낭패야!”
10. 의심이 많은 건 욕심이 많기 때문이다
산삼을 내놓은 사슴 부부는 기둥에 매여 있는 새끼 사슴한테로 갔습니다.
줄에 매인 아기사슴이 슬픈 목소리로 엄마를 불렀습니다.
“엄마, 아아!”
“이게 어떻게 된 거냐? 누가 이렇게 너를 매어 놓았어?”
“윤수 아빠가.”
“왜?”
“엄마 아빠가 밤에 달아났다고…….”
“그랬구나. 사람들은 의심이 많고 짐승들을 믿지 못하는 것 같아.”
“사람들은 왜 그렇게 의심이 많을까?”
엄마사슴이 말했습니다.
“의심이 많은 건 욕심이 많기 때문이야.”
“욕심이 많으면 의심이 많아지나?”
아기사슴이 묻는 말에 엄마사슴이 대답했습니다.
“그래, 욕심은 의심에서 나오는 거야.”
“그럼, 의심은 욕심 아들이야?”
아빠사슴이 웃으며 끼어들었습니다.
“하하하, 네가 제법 생각도 할 줄 아는구나. 그래, 바로 욕심은 의심의 아들이다. 귀여운 것, 이리와 안아주마.”
“아빠가 와야 해. 난…….”
“그렇구나. 내가 가마.”
엄마사슴과 아빠사슴이 아기사슴을 꼬옥 안아주었습니다.
아빠사슴이 말했습니다.
“사람들이 우리를 못 믿기 때문에 우리도 사람을 믿을 수가 없어.”
“그래서 사람하고 짐승이 다르고 멀어지는 거예요.”
이때 윤수 아빠가 기다란 끈을 가지고 오면서 말했습니다.
“안 되겠어, 저 놈들을 다 매 놓아야지.”
윤수 엄마가 말렸습니다.
“그러시면 안 돼요. 저 애들이 제 발로 와서 제 발로 나가서 산삼까지 캐왔는데 그래도 못 믿어서 묶어요?”
“당신은 사람편이야 짐승편이야? 저 놈들이 또 달아나면 어쩌려고?”
윤수 엄마가 믿음을 가지고 말했습니다.
“안 달아나요. 오히려 묶어놓으면 자유를 위해 도망쳐요.”
엄마사슴이 사람들을 향해 말했습니다.
“아줌마 말씀이 맞아요. 우리를 자유롭게 두고 믿어주시면 우리도 사람을 믿고 달아나지 않아요.”
그러나 사람들은 엄마사슴이 하는 말을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아빠사슴이 말했습니다.
“사람들은 참 답답해. 우리는 사람 말을 다 알아듣는데 우리말을 한 마디도 못 알아들으면서 우리보다 잘난 척은 더 한다니까.”
“그래서 사람이지요. 사람이 우리처럼 동물의 말을 다 알아들으면 뭐라고 하는지 알아요?”
“뭐라고 해?”
“그런 사람을 사람들은 귀신이라고 해요.”
“하하하, 귀신? 그럼 우리는 귀신의 귀신 아닌가? 우리야 새소리도 알아듣고 사람 소리도 알아듣고 벌레 소리도 다 알아듣지 않는가, 하하하 내가 귀신이다.”
윤수 아빠는 끈을 버리고 사슴을 우리 안으로 몰아넣었습니다.
“이 놈들, 주인아줌마 말 듣고 믿어주기로 한다. 우리 안으로 들어가!”
우리 안으로 들어가던 엄마사슴이 갑자기 아주 큰 소리를 치면서 사람을 바라보았습니다.
“끽끽끽!”
윤수 아빠가 물었습니다.
“이 놈이 왜 이래?”
11. 비운 마음 맑은 마음
엄마사슴이 한쪽 구석을 입으로 비집고 그 속에 박혀있는 아빠사슴 뿔을 물고 당겼습니다. 그것을 본 윤수 아빠가 놀라 눈을 크게 떴습니다.
“아아니! 그건 사슴뿔이 아니냐?”
그리고 부엌에다 대고 소리쳤습니다.
“여보오! 이리 와 보오. 빨리!”
“왜 그러세요?”
“저기, 사슴뿔이오. 사슴뿔!”
“네?”
윤수 엄마가 달려와 놀란 소리로 말했습니다.
“정말 사슴뿔이네요. 사슴뿔이야!”
이때 엄마사슴이 물고 있던 뿔을 윤수 엄마한테 내밀었습니다. 윤수 엄마는 그것을 받아들었습니다.
“놀랍기도 해라. 사슴이 뿔을 떼어 거기다 숨겨두고 갔었나 봐요.”
“맞소. 저 놈들이 미련하긴 해도 우리말을 어느 정도 알아듣는 모양이오. 우리가 어머니 약에 뿔과 인삼이 좋다고 한 말을 듣고 뿔을 떼어 놓고 산삼까지 캐온 것 같소.”
“그래요, 어머님 보약을 해 드리라고 뿔도 떼고 산삼까지 캐온 거예요.”
“이렇게 고마울 수가 있나! 말 못하는 것들이 생각은 우리보다 깊구려.”
이렇게 하여 할머니는 산삼과 사슴뿔로 지은 약을 잡수시고 병이 나아 자리를 털고 일어나셨습니다.
해가 따듯하게 내리는 평화로운 오후 뜰에 나오신 할머니가 손짓으로 사슴을 불렀습니다.
“귀여운 것들, 이리 오너라.”
아기사슴이 앞에 오고 어미 사슴이 나란히 와서 앞다리를 접고 할머니 무릎 아래 엎드렸습니다. 할머니가 아기사슴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습니다.
“고맙다. 너희들 덕분에 내가 다시 살아났어. 무엇으로 너희들에게 은혜를 갚아야 좋을지 모르겠구나.”
아빠사슴이 말했습니다.
“할머니, 우리는 할머니 은혜로 이렇게 잘 지내고 있습니다. 이제야 사람을 믿을 수 있게 되었어요.”
“언제는 너희들이 사람을 믿지 못했더냐?”
“사람들이 우리를 못 믿는데 우리가 어떻게 사람을 믿습니까.”
“그렇구나. 나부터도 그랬어. 짐승을 깔보고 위험한 상대로만 생각했었다.”
“우리가 가장 무서워하는 건 사람입니다.”
“그렇지, 참 무서운 게 사람인지도 몰라. 지금은 사람도 사람을 무서워하는 세상이니…….”
이때 윤수가 다가왔습니다.
“할머니 뭐해?”
“얘들하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할머니가 사슴 말을 알아들어?”
“알아듣지.”
“어떻게?”
“사람은 나이가 들면 짐승이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 있단다.”
“거짓말, 엄마 아빠는 못 알아듣는데.”
“더 늙어 봐야지……. 동물이나 사람이나 소리를 내어 말을 주고받는 것은 때가 차지 않았기 때문이다. 동물도 나이가 들면 사람을 닮고 사람도 나이가 들면 짐승 마음을 닮는단다.”
“그게 무슨 말이야, 너무 어려워.”
“꼭 소리를 내서 말을 주고받는 것이 아니라 눈으로 마음으로 이야기를 하는 거야.”
윤수가 깜짝 놀라면서 물었습니다.
“어? 할머니 그걸 어떻게 알았어?”
“넌 또 무슨 말을 하는 게냐?”
“난 아기사슴하고 벌써부터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그러냐? 네가 영이 맑았구나.”
“영이 뭐야? 그런 말은 몰라.”
“마음에 때가 묻지 않았을 때와 마음에서 욕심을 다 내버리고 비었을 때 말보다 마음으로 말할 수 있는 거란다.”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은데?”
“네가 앞으로도 동물하고도 말할 수 있도록 마음에 때를 묻히지 않고 자랐으면 좋겠다.”
할머니의 말을 다 알아듣는 엄마사슴과 아빠사슴은 고개를 끄덕이며 할머니를 존경하는 눈으로 바라보았습니다.
윤수 아빠는 할머니가 건강해지시자 좋아서 사슴가족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목에 끈도 매지 않고 마음대로 집안에서 뛰어 놀게 하였습니다.
윤수 엄마는 사슴들에게 먹이를 주면서 말했습니다.
“우리 집이 싫어서 나가고 싶을 때는 언제든지 밤에 나가지 말고 낮에 나가라. 사람이나 짐승이나 밤에 나가면 도망쳤다고 미워하지만 낮에 나가면 도망이 아니라 사랑을 받고 미움을 받지 않는다.” 끝
달아난 사슴
엄마 만난 사슴
사람냄새
냉담한 할머니 병이 나시다
산삼 캐러 간 사슴들
산삼 용 먹고 병이 난 할머니의 사랑
사슴가족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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