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파는 할아버지
웃는곰 심혁창 지음
도서출판 한글
목 차
1. 은빛 자전거 / 3
2. 행복의 선물 / 10
3. 선물속의 비밀 / 15
4. 차버린 복 / 18
5. 복돌이 / 22
6. 약속 / 24
7. 행복한 가족 / 27
8. 비밀을 안 지키는 벌 / 29
9. 빈 상자 / 34
10. 황금상자 / 36
11 붕어빵 속의 금반지 / 40
1. 은빛 자전거
민석이네 학교는 마을에서 십리나 떨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학교 길에는 십리고개가 있습니다.
그 고개를 넘어 다니는 아이들은 언제나 신나고 즐거웠습니다.
학교가 끝나고 아이들이 고갯길을 재잘거리며 가고 있을 때 샛길에서 커다란 포장마차 하나가 나타나 고갯길로 들어섰습니다.
아이들이 신기하다는 듯 달려가 보았습니다.
빨간 포장마차에는 하얀 글씨가 크게 씌어 있었습니다.
<행복을 팝니다.>
한 아이가 손가락질을 하며 깔깔거렸습니다.
“야야, 저것 좀 봐. 행복을 판대 하하하하”
또 다른 아이도 말했습니다.
“행복을 팔러 다니지 말고 자기나 갖지 남한테 판다고? 히히히”
키다리 성수가 포장마차를 한 바퀴 빙 돌면서 지껄였습니다.
“행복을 팔러 다니는 할아버지가 다 있어 허허허허”
민석이도 가까이 가서 포장마차를 끌고 가는 할아버지를 보았습니다.
할아버지는 얼굴에 주름살이 거미줄처럼 얼기설기하고 이마에서는 땀이 비 맞은 사람처럼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할아버지는 민석이를 보시자 벙긋이 웃어보였습니다.
민석이는 할아버지가 불쌍해서 가까이 가서 말했습니다.
“할아버지, 힘드시지요? 밀어드릴까요?”
“아니다 괜찮다.”
“힘들어 보이셔요. 제가 밀어드릴게요.”
민석이 가방을 등에 멘 채 뒤에서 밀었습니다.
다른 아이들은 본 척도 않고 앞으로 가며 재재거리고 한 아이가 민석이를 향해 소리쳤습니다.
“민석아 빨리 와 뭘 해?”
“너희들 먼저 가, 난 천천히 갈 거야.”
그 아이가 더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민석아. 네가 밀어주지 않아도 괜찮아. 행복을 팔러 다니는 할아버지가 뭐 그래? 남한테 팔 행복이 있으면 할아버지나 가지시라고 해!”
할아버지는 아무 말도 않고 앞에서 끌고 민석이는 뒤에서 밀었습니다. 민석이도 이마에 땀이 흘렀습니다. 할아버지가 말했습니다.
“네 동무들 따라 빨리 가거라. 나 혼자도 된다.”
“아니에요, 제가 밀어드리면 힘이 조금 덜 드실 거예요.”
“그야 덜 들지, 고맙다.”
“밀어드리는 걸 좋아하시니 제가 더 고마워요 할아버지.”
“그러냐? 넌 이름이 무엇이냐?”
“김민석이에요. 우리 할아버지는 저한테 남들이 힘들어 할 때는 도와 줄 힘이 있을 때 도와주라고 하셨어요.”
“그래? 너의 할아버지는 아주 좋은 손자를 두셨구나.”
“제가 좋은 손자가 아니고요 제가 훌륭한 할아버지를 모신 거예요.”
“호오! 어린 것이 말하는 게 제법 어른 같구나. 할아버지는 뭘 하는 분이시냐?”
“동화 작가시래요.”
“동화 작가, 참 좋은 분이로구나. 나도 동화작가 되고 싶었지만 못 되었단다.”
“우리 할아버지는 언제나 힘이 있을 때 남을 도와야 한다고 하셨어요. 힘이 있을 때는 거만하기 쉽다고 하셨거든요.”
“그렇지 힘이 있을 때는 나도 거만했었다. 힘 있을 때 남을 도울 줄 알아야 그게 사람이야.”
이렇게 이야기하며 고개를 다 올라왔습니다. 다른 아이들은 저 멀리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할아버지가 땀을 닦으시며 말했습니다.
“네 동무들이 멀리 가고 있구나. 넌 어떻게 하겠느냐?”
“뛰어가면 따라갈 수 있어요.”
“그럴 것 없다. 내가 파는 행복을 너한테 하나 주마.”
“네? 거저요?”
“거저가 아니다. 네가 나한테 수고해 주지 않았느냐? 네 땀 값이다.”
할아버지는 빨간 포장마차 안에서 은빛 자전거 하나를 꺼내셨습니다.
“이걸 타고 가거라. 그러면 동무들을 금방 따라 갈 거다.”
“이렇게 비싼 걸 주신다고요?”
“이거 얼마 안 간다. 행복을 파는 가게에서는 거저도 주는 물건이야.”
“네?”
“놀랄 것 없어. 나는 비탈길이라 천천히 가도 편히 간다. 넌 자전거를 타거라. 이 담에 보자.”
민석이는 자전거를 타 보았습니다. 아주 좋은 자전거였습니다.
“할아버지 고맙습니다. 저희 집은 저 동네 맨 끝집이에요. 필요하시면 자전거 찾으러 오세요.‘
“그러마, 어서 가거라.”
민석이는 자전거를 타고 신나게 달려 순식간에 아이들 앞을 달렸습니다. 아이들이 보고 물었습니다.
“민석아, 너 자전거 어디서 났어?”
“응, 행복을 파는 할아버지가 주신 거야.”
“정말?”
“정말이야. 봐 멋지지?”
자전거는 은빛이 눈부시게 반짝반짝 빛났습니다. 아이들은 보두 부러워하며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뒤에 오던 빨간 포장마차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 다음 날입니다. 아이들이 어제처럼 재잘거리며 걸어가고 있는데 샛길에서 어제의 그 빨간 포장마차가 나타났습니다. 아이들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야! 행복을 파는 할아버지가 나타났다 아아, 아아!”
아이들은 우르르 달려들어 할아버지 포장마차를 밀었습니다. 할아버지가 싱글벙글 웃으며 물었습니다.
“고맙다, 녀석들아, 오늘은 웬 일이냐?”
별명이 올챙이가 말했습니다.
“다 아시면서 뭘 물으세요?”
“알다니, 뭘 안다는 게야?”
“히히히히, 그걸 말로 해야 하나요?”
할아버지가 민석이를 보고 물었습니다.
“저 아이들이 뭘 안다는 거냐?”
2. 행복의 선물
키다리 성수가 가로막고 대답했습니다.
“할아버지 자전거 또 있으시지요?”
“있으면 사고 싶어서 묻는 거냐?”
“다 아시잖아요. 영차영차.”
올챙이 달호가 까부는 소리로 말했습니다.
“할아버지, 저 고개 위까지 밀어드리면 뭐 있는 거지요?”
“있기는 뭐가 있다는 거냐? 아무것도 없다.”
“할아버지, 팔다 남은 행복이 있잖아요. 아무거나 주세요.”
“알았다. 아무것이나 달라고 했으니 아무것이나 주마.”
아이들은 신이 나서 영차영차 외치며 밀었습니다. 행복을 파는 포장마차는 웃음소리로 행복이 넘쳤습니다.
고개 위에 도착한 할아버지가 말했습니다.
“약속한 대로 선물을 줄 테니 받아가거라.”
할아버지는 비닐로 싼 책을 한 권씩 나누어 주었습니다. 책에는 성경전서라고 씌어 있었습니다.
키다리 성수가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습니다.
“이건 싫어요. 우리 집은 불교를 믿어서 성경책을 가지고 가면 안 돼요.”
맹물 종구도 성경을 보자 도로 내밀었습니다.
“우리 집은 교회 다니는 것 반대해요.”
종구도 도로 내밀었습니다.
아이들은 할아버지한테 인사도 안 하고 심드렁해진 채 저만큼 걸어갔습니다.
할아버지가 민석이한테 주시며 말했습니다.
“다들 싫다고 하니 너나 가져가거라.”
민석이는 자전거에다 성경책 네 권을 싣고 집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할아버지, 아버지, 엄마, 누나한테 성경책을 하나씩 나누어 주었습니다.
할아버지가 좋아하시면서 사랑방으로 가셨습니다. 엄마 아빠도 새 성경이라 좋다면서 안방으로 갔습니다. 누나도 생글생글 웃으며 건넌방으로 갔습니다.
민석이는 기분이 너무 좋았습니다. 새 성경을 얻었으니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민석이가 성경책을 싼 비닐 껍데기를 뜯으려는 순간 누나 방에서 “엄마아!” 하는 놀란 소리가 터져 나왔습니다.
민석이는 놀라서 누나 방으로 갔습니다. 할아버지와 엄마 아빠도 놀라서 누나가 있는 방으로 모였습니다.
“무슨 일이냐? 왜 그렇게 놀란 소리를 질러?”
온 식구 눈이 한곳으로 모였습니다. 누나가 성경책을 펴들고 말했습니다.
“이것 좀 보세요, 이거요.”
“그게 뭐냐?”
3. 선물속의 비밀
성경책 한복판에 황금 목걸이가 들어 있었습니다. 아주 비싸게 보이는데 끝에는 다이아몬드까지 달려 있었습니다.
“어디 보자 진짜인지 가짜인지…….”
민석 엄마는 의심이 나는 듯 그것을 받아들고 들여다보다가 놀랍다는 듯 말했습니다.
“금도 아이아몬드도 다 진짜다.”
할아버지가 조심스럽게 말씀하습니다.
“무언가 잘못 된 것 같구나. 잘 보관했다가 그 책을 준 사람한테 돌려주도록 하자.”
할아버지는 그렇게 말씀하시고 사랑방으로 가서 민석이가 준 성경책을 펼쳤습니다.
책표지 양쪽에 오만 원짜리 돈이 들어 있었습니다.
“아니! 이게 또 뭐야? 돈 아니야?”
할아버지는 놀라 밖으로 나와 민석이를 불렀습니다.
“민석아, 너한테 성경책을 주신 분이 누구였더냐?”
이때 안방으로 들어가 성경책을 열어본 엄마 아빠도 놀라 밖으로 나와 민석이를 불렀습니다.
“민석아, 민석아!”
할아버지와 엄마 아빠가 민석이한테 왔습니다.
“이 책 준 사람이 누구냐?”
“왜요?”
엄마는 종이 한 장을 들고 말했습니다.
“책 속에 백만 원짜리 수표가 들어 있다.”
누나도 나왔습니다. 온 가족이 둘러섰습니다. 아빠가 말했습니다.
“이게 어찌 된 일이냐? 성경책에 수표가 있고 목걸이가 있고…….”
아빠는 할아버지를 바라보고 물었습니다.
“혹시 아버님 책에도 뭐가 있던가요?”
“그래, 내 책에도 돈이 백만 원이나 들어 있더구나. 무엇이 잘못된 모양이다. 민석이한테 성경책을 준 사람을 찾아서 모두 돌려주도록 하자.”
“네, 그래야겠습니다. 민석아, 그 사람이 어디로 갔는지 알겠니?”
“몰라요. 우리들이 학교에서 돌아올 때 길에서 잠깐 만난 할아버지였어요.”
“할아버지라고?”
“네, 얼굴이 쪼글쪼글하고 새까만 할아버지였어요.”
할아버지가 말씀했습니다.
“그 노인을 내일 내가 만나 보아야겠다. 민석이 학교에서 오는 시간에 나가서 돌려주어야 한다.”
온 가족이 그렇게 하기로 했습니다.
이때 옆집 순이 할아버지가 민석이네 가족이 하는 말을 담 너머에서 다 들었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그걸 호박이 넝쿨째 굴러들어왔다는 거야. 내가 받을 테니 다들 나한테 줌세. 하하하하”
다음날입니다. 순이 할아버지가 온 동네에 소문을 내서 마을 사람들이 모두 민석이네 집으로 모여들었습니다. 성수, 달호, 종구도 끼여 있었습니다.
달호 아버지가 말했습니다.
“그 중에 하나는 달호 것이었다는데 어떤 것인지 아나?”
종구 아버지도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우리 종구도 하나를 받았다가 민석이를 주었다는데 그 말이 맞냐?”
4. 차버린 복
민석이가 대답했습니다.
“종구도 성수, 달호도 성경책을 받았다가 싫다고 할아버지한테 돌려드렸어요. 그랬는데 할아버지가 내 자전거에 실어주시면서 너나 다 가지라고 했어요.”
성수 아버지가 아들에게 물었습니다.
“민석이 말이 정말이냐?”
“네, 우리 집은 불교를 믿기 때문에 성경책은 싫다고 돌려드렸어요. 그랬더니 그 할아버지가 모두 민석이나 가지라고 했어요.”
종구 아버지도 한 마디 했습니다.
“그게 사실이라면 우린 할 말 없는 거지, 안 그런가?”
“그렇지, 성수가 민석이한테 직접 주었다면 모르지만…….”
민석이 할아버지가 말했습니다.
“이거 참 이상한 일이오. 그 노인이 실수를 한 것 같소. 돈이 든 성경책을 그냥 나누어 줄 리가 있겠소?”
민석이 아빠가 말했습니다.
“제가 오늘 아이들이 만났다는 십리고개에 가서 기다렸다가 노인을 만나 돌려드려야겠습니다.”
성수 아버지가 말렸습니다.
“제 발로 굴러들어온 복을 왜 버리나? 자네가 싫으면 나나 줌세.”
그 외에도 동네 사람이 웅성거렸습니다. 노인에게 돌려주어야 한다는 등 들어온 복을 내치는 게 아니라는 둥……. 이장이 말했습니다.
“공짜로 생긴 것이니 동네 위하여 쓰는 것이 어떻겠나?”
민석이 아빠가 대답했습니다.
“노인을 만나보고 결정하겠습니다. 노인이 일부러 준 것인지 실수인지 알아보고 실수가 아니라면 동네를 위하여 내놓겠습니다.”
그날 오후입니다. 십리고갯길에 동네 사람들이 다 모여서 빨간 포장마차가 나타나기를 기다렸습니다.
오후 세 시에 그 포장마차가 나타났습니다. 사람들이 달려가 포장마차를 앞뒤에서 밀고 끌고 잠깐 사이에 고갯마루에 올랐습니다. 포장마차 할아버지가 마을 사람들을 돌아보며 물었습니다.
“누구신데 이렇게들 오셔서 저를 도와주십니까?”
민석이가 대답했습니다.
“할아버지, 저예요.”
“음, 김민석!”
“할아버지, 그런데요…….”
이때 민석이 할아버지가 나서서 말했습니다.
“노인장, 보아하니 나하고 비슷한 연배인 것 같소. 하도 이상해서 오늘 이렇게 나왔다오.”
“무엇이 이상합니까?”
“어제 아이들한테 성경책을 나누어 주셨지요?”
“예, 맞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다 싫다고 돌려주기에 민석이나 가지라고 다 주었습니다. 무슨 실수라도 있습니까?”
“그게 아니고요. 그 성경책 속에 귀한 것들이 들어 있었습니다. 성경책이야 받겠지만 거기서 나온 돈이며 목걸이는 받을 수가 없습니다. 혹시 실수로 그렇게 넣어두었던 건 아니신지요?”
“아니지요. 제가 평소에 착한 아이들을 만나면 주려고 준비해 두고 있던 물건입니다. 제가 바로 행복을 파는 늙은이가 아닙니까?”
“행복을 파신다면 응당히 돈을 받고 파셔야지 공짜로 주시면서 팔았다고 하면 되겠습니까?”
“허허허, 물건을 사고팔 때 꼭 돈으로 계산해야 한다는 법은 없지요, 그런 생각이 잘못이오. 나는 민석이한테 자전거 값을 받았고 어제는 또 성경책을 주어도 될 만큼 값을 받았답니다.”
민석이 아버지가 아들을 바라보았습니다.
“네가 무엇을 드렸느냐?”
“아무것도 안 드렸어요.”
“할아버지는 받았다고 하시지 않느냐?”
행복을 파는 할아버지가 대답했습니다.
“며칠 전에 다른 아이들이 다 먼저 가고 민석이만 남아서 내 포장마차를 밀어 주었습니다. 그렇게 수고한 값으로 자전거를 준 것입니다. 그리고 어제는 저 아이들이 모두 달려들어 밀었기 때문에 선물을 주었더니 안 받아서 매우 섭섭했습니다.”
5. 복돌이
민석 할아버지가 말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되신 거로군요, 책은 받겠지만 돈과 수표는 돌려드리고 싶습니다. 받으시지요.”
“아닙니다. 당연히 그것은 민석이 것입니다. 민석이를 위해 쓰도록 하십시오.”
할아버지는 아주 기쁜 얼굴로 민석이를 보고 벙긋 웃더니 마을 사람들에게 말했습니다.
“여러분, 오늘은 또 내가 여러분의 신세를 졌습니다. 이 포장마차 안에는 아주 무거운 짐이 실려 있어서 오늘은 어떻게 여기까지 올라오나 걱정을 했는데 마침 여러분의 도움으로 쉽게 왔습니다. 제가 작은 선물을 하나씩 드리겠습니다.”
할아버지가 무언지 묵직한 것이 든 상자를 하나씩 나누어 주었습니다. 누군가가 속삭이듯 말했습니다.
“금덩어리인가 봐. 이렇게 무거운 걸 보면 말야.”
“누가 아니래, 나도 그런 생각이 드는걸.”
행복을 파는 할아버지가 말했습니다.
“민석이도 받고 동무들도 와서 받거라.”
행복을 파는 할아버지는 웃음이 가득한 얼굴로 모두에게 나누어 주고 나서 말했습니다.
“여기서는 뚜껑을 열지 말고 집에 가서 가족이 둘러앉아 열어보시기 바랍니다. 그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아무한테도 말하면 안 됩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 통 안에 있는 부탁의 말씀대로 꼭 하셔야 합니다. 그것을 지키지 않으면 크게 실망할 것입니다.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내가 다시 여기 올 때까지는 각 가정의 비밀입니다.”
종구가 물었습니다.
“할아버지는 언제 오시는데요?”
“앞으로 일 년 후에 오늘 올 테니 기다려라.”
할아버지는 포장마차를 끌고 멀리 떠나고 마을 사람들은 안 보일 때까지 손을 저었습니다.
민석이네 가족이 모두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민석이 할아버지와 아빠, 민석이 것까지 상자가 세 개입니다. 민석이가 말했습니다.
“할아버지, 이 안에 무엇이 들어 있을까요? 제 것을 먼저 열어볼까요?”
“아니다, 이 할아버지 것을 먼저 열어 보자.”
할아버지가 상자 뚜껑을 열어 보았습니다.
“아니, 이게 뭐냐?”
6. 약속
상자 속에는 상자에 딱 들어맞는 돌이 들어 있고 돌 위에 이런 쪽지가 있었습니다.
{나는 복돌입니다. 나를 가져가는 분은 누구든지 나와 약속을 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이 통에는 누구에게나 똑같은 약속의 말이 들어 있습니다. 첫째, 하루에 한 번씩 좋은 일을 하고 나를 쓰다듬어 주세요. 둘째, 나한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남한테 절대로 말하지 마세요. 셋째, 거짓말로 나를 속이지 마세요.}
할아버지는 상자 뚜껑을 가만히 닫으시면서 말했습니다.
“으음, 다들 자기 것을 가지고 가서 열어 보거라. 너희들 것도 나와 같은 약속의 글이 들어 있을 것이니 그리 믿고. 나는 이제부터 이 쪽지에 있는 대로 할 생각이다. 너희도 그렇게 하거라.”
한편 달호네 집에서는 실망한 소리가 터져 나왔습니다.
“이게 뭐야? 하도 무거워서 황금덩어리라도 들어 있는 줄 알고 끙끙대며 들고 왔는데 돌덩이가 뭐냐! 늙은이가 사람을 놀리고 있어.”
그리고 거기 들어 있는 종이쪽지를 한번 훑어보고 자세히 읽어보지도 않고 꾸겨서 던졌습니다. 그리고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달호야, 갖다 버려라. 이따위 돌이라면 우리 집에도 얼마든지 있다.”
달호도 실망하여 돌을 가지고 밖으로 나와 울타리 밑에 처박았습니다. 달호 아버지는 혼잣말로 중얼거렸습니다.
“뭐야? 하루에 한 번씩 좋은 일을 하고 쓰다듬어 주라고? 내가 좋은 일을 했는지 안 했는지 돌이 무얼 알아.”
그렇게 하여 달호네 복돌이는 비가 오고 바람이 멋대로 불어치는 담 밑에 먼지를 뒤집어쓰고 한 해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키다리 성수네 집에서는 가족 회의가 열렸습니다. 키다리 성수가 아버지를 보고 말했습니다.
“아버지는 날마다 좋은 일을 하셔야 해요.”
“일 년 내 한 번도 못하는 착한 일을 어떻게 날마다 한단 말이냐. 너나 해 보거라.”
“네, 저는 열심히 할 거예요.”
그 날부터 성수는 무슨 일을 해야 착한 일인지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그 전 같으면 안 하던 일을 하고 돌아와 복돌이를 쓰다듬으면서 말했습니다.
“복돌아, 오늘 나는 길에서 이웃집 개가 싸놓은 똥을 치웠다. 그것도 착한 일이지?”
다음날도 성수는 무슨 일로 좋은 일을 할까 찾고 있는데 길 잃은 할머니가 계셨습니다. 그래서 할머니한테 길을 안내해 드렸습니다. 그리고 복돌이한테 말하려고 상자 뚜껑을 열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생겼습니다.
“어? 이게 어떻게 된 거야?”
7. 행복한 가족
한편 종구는 아버지한테 말했습니다.
“아빠, 누가 더 착한 일을 많이 하는지 내기 하실래요?”
“그래라, 너는 네 복돌이가 있으니 네 것을 가지고 하고 나는 내 것을 가지고 하마.”
이렇게 하여 종구는 착한 일을 찾아 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또 한편 민석이네 집에서도 복돌이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누나가 말했습니다.
“내가 착한 일을 하면 어떤 복돌이를 쓰다듬어 줄까요?”
민석이 대답했습니다.
“물론 내 복돌이를 쓰다듬어 주어야지, 안 그래요 아빠?”
“그것도 좋은 일이다. 착한 일을 하고, 네 것 한 번 쓰다듬어 주고 내 것 한 번 쓰다듬어주면 두 배로 착한 일을 하는 게 되겠구나.”
곁에서 할머니도 가만히 계시지 않았습니다.
“그런 일이라면 우리도 끼어야 하지 않겠니? 그 이상한 할아버지가 준 상자에는 또 어떤 신기한 일이 있을지 아니?”
그렇게 하여 할머니는 민석이를 돕기로 하고 엄마는 할아버지를 돕기로 했습니다. 아빠도 한 마디 했습니다.
“나도 착한 일을 하면 복돌이를 쓰다듬어 주어야겠지?”
할아버지가 웃으시면서 대답했습니다.
“암, 너도 그렇게 하거라.”
“네 알겠습니다.”
민석이네는 온 가족이 이렇게 즐거운 이야기로 하루를 보내고 다음 날부터 착한 일을 찾아 하기 시작했습니다.
8. 비밀을 안 지키는 벌
민석은 학교에서 아이들이 하기 싫어하는 변소 청소를 하고 돌아왔습니다.
“복돌아, 오늘 난 다른 아이들이 싫어하는 변소청소를 했다. 잘했지?”
그리고 복돌이를 쓰다듬어 주었습니다. 그 다음 날은 엄마가 누나를 보고 가게에 가서 휴지를 사오라고 하셨는데 누나가 가기 싫어했습니다.
“엄마, 제가 사올게요.”
민석이는 야호오! 하고 신이 나서 가게를 다녀왔습니다. 그리고 복돌이를 쓰다듬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딱딱한 복돌이가 부드럽게 느껴지며 줄어들었습니다. 돌이 줄어드는 것이 너무 이상해서 아빠한테 말하려다가 멈추었습니다.
‘아무리 친한 사람하고도 말하지 말라’
이런 생각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복돌이뿐만 아니라 아빠도 착한 일을 하고 쓰다듬을 때 돌이 조금씩 줄어드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상하다고 말하려는데,
‘아무리 친한 사람하고도 말하지 말라’
이렇게 약속한 종이쪽지 생각이 나서 입을 다물고 말았습니다. 할아버지도 착한 일을 하고 쓰다듬었고 날마다 돌이 줄어드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럴 때마다 할아버지 마음에도,
‘아무리 친한 사람하고도 말하지 말라’
하는 말이 떠올라 입을 꼭 다물었습니다.
봄이 지나고 여름이 가고, 가을이 가고, 겨울이 가고 새봄이 왔습니다.
민석이의 복돌이는 구슬만큼 작아졌습니다. 할아버지는 돌이 사과만큼 작아진 것을 알면서도 입을 열지 않았습니다.
민석 아빠도 돌이 줄어들어서 참외만큼 작아진 것을 알았지만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날마다 더 좋은 일을 찾으면서 이상한 일이야 하고 생각하면서 행복을 파는 할아버지가 온다는 날만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더 이상한 일이 생겼습니다. 달호 아버지는 술을 먹고 들어올 때마다 담 밑에 굴려놓은 복돌이를 툭툭 차면서 주정을 했습니다.
“오늘도 한잔 했다. 네 놈한테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냐?”
그런데 어느 날 상자가 쩍 갈라지고 안에서 돌이 불쑥 나왔습니다. 그럴 때마다 달호도 한 번씩 차보고 웃고 재미있어 했습니다. 돌은 발에 차일 때마자 커졌습니다. 그것이 신기한 달호는 발로 차면서 일 년을 보냈습니다.
한편 종구 아버지는 착한 일을 하고 쓰다듬다가 돌이 줄어드는 것을 알고 신기한 일이라고 외치면서 마을 사람들을 모아 놓고 돌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입니다. 분명히 줄어들었던 돌이 상자에 원래 모양대로 꽉 찬 채 그대로 있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구경하러 왔다가 속았다는 얼굴로 돌아가면서 한 마디씩 했습니다.
“싱거운 사람 같으니라구. 바쁜 사람 불러 놓고 놀려?”
이런 소리를 하면서 눈을 흘기고 돌아갔습니다. 이상한 일입니다. 분명히 손이 쑥 들어갈 만큼 줄어들었었는데 다른 사람들이 보자 도로 커졌습니다.
그 다음 날 좋은 일을 하고 자랑하며 복돌이를 쓰다듬었습니다. 복돌이는 그 말을 듣자 어제보다 더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이번에는 틀림없이 동네 사람들이 보고 내 말을 믿어줄 거다 생각하고 동네 사람들을 불렀습니다.
동네 사람들이 모여들어 보았을 때는 돌이 도로 어제처럼 커져서 상자를 꽉 채웠습니다. 구경 왔다가 화가 난 뒷집영감이 꾸짖었습니다.
“이 사람아, 그게 무슨 짓이야? 돌을 두고 사람을 놀려?”
다른 사람도 어이없다는 듯 손을 머리 위에 뱅뱅 돌리면서 말했습니다.
“허허. 저 사람 이렇게 된 거 아니야? 돌이 줄어든다니! 될 소리를 해야지 쯔쯔쯔.”
종구 아버지는 기가 막혀서 착한 일이고 뭐고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우연히 착한 일을 하나 하게 되어 상자를 열고 복돌이를 쓰다듬으며 자랑했지만 복돌이는 꿈쩍도 않았습니다. 그대로 있을 뿐 자라지도 줄어들지도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종구는 아버지와 달랐습니다. 착한 일을 하고 돌을 쓰다듬을 때마다 줄어드는 것을 알았지만 행복을 파는 할아버지가 올 때까지는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종구 아버지는 아들이 가지고 있는 돌이 어떻게 변했는지 궁금증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종구야, 네 돌은 잘 있느냐?”
“네, 잘 있어요.”
“조금도 변하지 않았느냐?”
“네.”
“그럼 너는 착한 일을 한 번도 안 했다는 말이지?”
“네.”
“넌 나만도 못하구나. 내 자식이니 별수 있겠니? 다 그렇겠지.”
종구는 그래도 아무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행복을 파는 할아버지가 나타나는 날입니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십리 고개로 나갔습니다. 오후 세 시가 되자 빨간 포장마차가 나타났습니다.
9. 빈 상자
“야! 할아버지가 나타났다.”
“빨간 포장마차다!”
아이 어른이 모두 손을 저으며 빨간 포장마차를 끌고 오는 할아버지한테로 몰려갔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서로 먼저 밀고 당기고 아우성을 쳤습니다. 고갯마루에 도착하자 할아버지가 말했습니다.
“고맙습니다. 그간 모두 평안하셨지요?”
민석이 할아버지가 대답했습니다.
“그렇소. 다들 잘 지냈소만 영감님도 평안하시었소?”
“저는 늘 잘 지냅니다. 민석아, 너도 많이 컸구나, 잘 지냈느냐?”
“예, 할아버지, 보고 싶었어요.”
“나도 네가 보고 싶었다.”
행복을 파는 할아버지는 사람들을 돌아보며 말했습니다.
“오늘 약속한 대로 다들 오셨군요. 제가 천천히 고개를 내려가는 동안 여러분은 앞질러 가서 작년에 드린 상자를 들고 나오십시오. 제가 해 드릴 일이 있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우르르 달려가 집에 두었던 돌 상자를 들고 나왔습니다. 모두가 상자를 가지고 나왔는데 달호와 달호 아버지는 빈손으로 나왔습니다. 행복을 파는 할아버지가 물었습니다.
“어째서 댁은 빈손입니까?”
달호 아버지가 달호를 바라보며 네가 대신 대답하거라 하는 눈짓을 했습니다. 달호가 대답했습니다.
“저희 집에 가져간 상자는 터졌습니다.”
“터져? 어째서?”
할아버지가 눈을 둥그렇게 뜨고 물었습니다.
“아버지하고 제가 발로 찼더니 상자가 터지고 돌이 커다란 바위로 변했습니다.”
“그랬구나. 어쩔 수 없지…….”
할아버지는 실망한 눈으로 바라보다 다른 사람에게 눈길을 돌렸습니다.
“댁은 어떠시오? 이리 가져와 보시오.”
동네에서 가장 가난한 과부 아줌마가 상자를 내밀었습니다. 상자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할아버지가 물었습니다.
“돌은 어디 두고 빈 상자요?”
10. 황금상자
아주머니는 주저하다가 대답했습니다.
“돌이 작아지더니 찾아도 안 보입니다. 이상한 일도 다 있습니다. 죄송합니다.”
할아버지는 흐뭇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민석이를 향해 입을 열었습니다.
“네 것도 좀 보자.”
민석이가 상자를 내놓았습니다. 상자 안에는 구슬보다 작은 돌이 또르르 굴렀습니다.
“음, 좋은 일을 많이 했구나.”
할아버지는 앞에 있는 사람부터 상자를 열어 보라고 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반쯤 줄어든 돌이 들어 있고 어떤 사람은 약간 틈이 나 있을 뿐 별로 줄어든 것 같지 않았습니다. 종구 아버지도 내놓았습니다. 할아버지가 보시고 말했습니다.
“참을성이 없으셨구려. 어떤 일이 있어도 비밀을 함부로 말하지 말라고 일렀는데 말이오.”
그 다음에 종구 것을 보시자 그 안에는 반으로 줄어든 돌이 있었습니다.
“너는 애썼구나.”
할아버지는 빈손으로 서 있는 달호와 달호 아버지한테 꾸짖는 소리로 말했습니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 아닌가. 둘 중에 누구라도 약속을 지켰어야지. 그 귀한 돌을 발로 차고 밖에다 굴렸으니 그만한 벌을 받아 마땅할 것이오.”
할아버지는 모두 둘러보고 나서 포장마차를 열자 해가 기울어 가는 마을에 갑자기 휘황찬란한 빛이 그 안에서 쏟아져 나왔습니다.
“아아아아아! 앗!”
사람들은 손으로 눈을 가리고 뒤로 물러났습니다. 빨간 포장마차 안에는 황금 궤짝이 있고 그 속에 모래알 같은 노란 빛이 영롱한 황금 가루가 가득 차 있었습니다.
할아버지는 마을에서 가장 가난하게 사는 과부 아주머니를 불렀습니다.
“이리 오시오. 그간 남모르게 착한 일을 많이 하셨구려. 그 상자를 이리 내시오. 내가 상자 가득히 황금으로 채워 드리겠소. 이 정도면 그 동안 쌓은 덕에 보답이 될 것이오, 앞으로 부자가 되어 편히 사시오.”
상자 안에 돌이 없어진 것은 아무도 모르게 좋은 일을 많이 했다는 증거입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비어 있는 상자에 황금을 가득히 채워주는 것입니다.
할아버지는 그 다음에 민석이를 불렀습니다.
“너도 좋은 일을 많이 했구나. 그만하면 너도 복 받을 일을 한 거야. 이리 내라. 그 돌 자리만 빼놓고 황금을 채워주마.”
그 다음 사람들에게 돌이 든 상자에 황금을 퍼 담아 주었습니다.
모두가 착한 일을 한 만큼만 황금을 받았지만 착한 일을 하지 않은 달호와 줄어든 돌을 자랑하다가 돌이 도로 자란 종구 아버지는 아무 것도 받을 수가 없었습니다.
할아버지는 모두에게 황금을 나누어 준 다음 까맣고 쭈글쭈글한 얼굴로 사람들을 둘러보았습니다. 이때 사람들은 한 목소리로 놀란 소리를 질렀습니다.
“아아앗!”
그리고 뒤로 물러섰습니다. 그렇게 못 생긴 할아버지가 갑자기 황금빛으로 빛나는 아름다운 얼굴로 변했습니다.
할아버지는 기쁨에 넘쳐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저 과부 아주머니처럼 세상에서 착한 일을 하고도 숨기는 분을 찾아 수십 년을 돌아다녔소. 그러나 어디서도 빈 상자를 들고 오는 사람은 만나지 못하였소. 저 아주머니의 고운 마음씨를 본받으시오. 내가 다시 올 때는 이 마을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살기 좋은 부자 마을이 되어 있어야 하오. 그리고 모두가 착한 마음으로 서로 돕고 살아야 하오. 그렇게 살았는지 아닌지는 내가 다시 와서 보면 알게 될 것이오. 한 집도 이 동네를 떠나서도 안 되고 가난해서도 안 되오. 삼 년 후에 다시 봅시다.”
행복을 파는 할아버지는 포장마차를 끌고 노을이 황금빛으로 깔린 들길로 아득히 사라졌습니다.
11. 붕어빵 속의 금반지
행복을 파는 할아버지는 재산을 물려줄 사람을 찾고 있었습니다.
언제부터인지 부자 할아버지네 집 근처에는 붕어빵 가게를 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할아버지는 그를 찾아가 말을 건네었습니다.
“미안하지만 이 가게를 하루만 빌리면 안 되겠소? 그러시면 댁이 하루 버는 만큼의 돈을 드리리다.”
“무얼 하시려고요?”
“그건 묻지 말고 붕어빵 재료와 사용료를 얼마나 드리면 되겠는지 말씀하시오.”
“십만 원만 주시면…….”
“그럼 그렇게 하기로 하고 지금 자리를 바꾸어 봅시다.”
붕어빵 장수는 십만 원을 받아 들고 신이 나서 자리를 내어주었습니다. 할아버지는 붕어빵틀 앞에 이렇게 써 붙였습니다.
<열두 살 된 아이들한테는 빵을 거저 줍니다>
써 붙인 것을 보고 지나가던 동네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들었습니다.
“할아버지, 정말 거저 주시는 거예요?”
“열두 살이냐?”
“네, 열두 살이에요.”
갑자기 아이들이 줄을 섰습니다. 할아버지는 빵을 만들어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아이들은 붕어빵을 받아들고 저희끼리 낄낄거리며 달아났습니다. 어떤 아이는 다 먹고 또 와서 받아들고 달아났습니다.
그런데 한 아이가 줄 끝에 섰다가 차례가 돌아오자 붕어빵을 받아들고 인사를 했습니다.
“할아버지, 고맙습니다.”
“오냐, 고맙다고 인사하는 아이는 너밖에 없구나. 상으로 하나 더 주마.”
“할아버지, 고맙습니다. 우리 엄마도 붕어빵을 좋아하시지만 돈이 없어서 못 사 잡수셨어요.”
“그러냐? 그럼 하나 더 줄 테니 엄마께 가져다 드려라.”
그 아이는 또 배꼽 인사를 했습니다.
“할아버지 정말정말 고맙습니다.”
동네 아이들이 몇 번씩 받아가면서도 고맙다는 인사를 하는 아이는 없었습니다. 그래도 할아버지는 벙글벙글 웃으시면서 아이들에게 붕어빵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한 시간쯤 지나서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빵을 가지고 갔던 아이가 엄마와 함께 왔습니다.
아이 엄마가 할아버지한테 겸손히 인사를 했습니다.
“할아버지, 고맙습니다. 살기가 어려워서 이런 빵 한번 제대로 사먹지 못했는데 오늘 거저 주셨다면서 아이가 빵을 가지고 왔습니다.”
할아버지는 웃으며 물었습니다.
“맛이 괜찮던가요?”
“네, 아주 맛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드릴 말씀이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무슨 말씀인가요?”
“우리 아이가 가지고 온 붕어빵 속에서 금반지가 나왔습니다.”
“그래요? 그럴 리가 없는데요.”
“아니에요. 이걸 보시지요. 금반지가 맞습니다.”
“허허, 그렇습니까?”
이때 붕어빵 가게 주인이 왔다가 할아버지와 아이 엄마가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할아버지가 주인한테 물었습니다.
“이게 웬 금반지입니까?”
붕어빵 가게 아저씨는 눈을 부라리며 금반지를 빼앗았습니다.
“아, 이건 우리 마누라 것입니다. 이리 주십시오.”
“그렇습니까? 그럼 댁이 주인이시구려 가져가시지요.”
행복을 파는 할아버지는 금반지를 붕어빵 아저씨한테 넘겨주었습니다. 그러자 아이 엄마가 말했습니다.
“아저씨는 혼자 사시면서……”
붕어빵 아저씨는 눈을 부릅뜨고 소리쳤습니다.
“무슨 소리를 하시오? 내가 왜 마누라가 없어요!”
“지난봄에 돌아가셨잖아요.”
행복을 파는 할아버지가 말렸습니다.
“알았습니다. 그만 하시지요. 어차피 그 금반지는 내 것이 아니니 누가 가진들 어떻습니까.”
할아버지는 아주 기분이 좋은 얼굴로 아이 엄마에게 말했습니다.
“참 고마운 분들입니다. 빵 속에 있는 반지야 누가 가지면 어떻습니까. 안 그래요? 주인 양반. 오늘은 이만 하고 가게를 돌려드리겠습니다.”
할아버지는 붕어빵 장수에게 이렇게 말하고 아이의 손을 잡았습니다.
“너의 집이 어디냐? 한 번 가 보아도 되겠느냐?”
아이 엄마가 펄쩍 뛰었습니다.
“안 됩니다. 저희 집은 너무 누추하여 보여드릴 수가 없습니다.”
“괜찮습니다. 내가 하루 종일 빵을 나누어 주었지만 고맙다는 인사는 이 아이 하나한테서밖에 못 받았습니다. 인사 받은 값으로 가 보자는 것입니다. 가시지요.”
이렇게 하여 할아버지는 아이 손을 잡고 언덕 위에 있는 작고 허름한 집으로 갔습니다. 좁은 방에는 성경책과 찬송가 책, 그리고 아이 교과서가 전부였습니다.
“교회에 다니시나 보지요?”
“네.”
“아이가 공부는 잘 합니까?”
“반에서 일등을 하지만 머리가 커 갈수록 걱정이 앞질러 커갑니다.”
“왜요?”
“중학교를 가고 고등학교를 가자면 학비 댈 걱정에 눈앞이 캄캄합니다.”
“그렇습니까? 아이가 인사성이 바르고 영리해 보입니다. 아이 아버지는 안 계신가요?”
“예, 혼자 아들과 둘이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이한테 무엇에든지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하고 인사하는 법을 가르쳐 왔습니다. 요새 아이들 감사할 줄 모르고 길에서도 어른들 앞을 함부로 가로질러 가는 등 우리 어렸을 때는 감히 생각도 못한 일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저질러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 아이만은 공부는 못 시켜도 예의만은 돈 안 드는 일이니 단단히 가르치고 있습니다.”
행복을 파는 할아버지는 감격했습니다. 비로소 자기 재산을 물려주어도 좋을 사람들을 만난 것입니다.
그 날 할아버지는 아이와 그 엄마를 데리고 자기 집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붕어빵 속의 금반지는 제가 넣었습니다. 인사성 바르고 감사할 줄 아는 아이를 찾으려고 미리 준비해 두었던 것이지요.”
아이 엄마는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떴습니다.
“그럼, 그 반지를 붕어빵 아저씨가 갖도록 가만 두실 거예요?”
“그 반지 하나가 뭐 그리 대단합니까. 그 사람은 금반지에 눈이 어두웠던 것이지요. 황금 앞에서는 다 그런 것 아닌가요. 그것 하나 주고 이렇게 훌륭한 엄마와 아이를 만났으니 얼마나 좋습니까. 앞으로 이 집에서 아무 걱정 말고 함께 지냅시다, 하하하하.”
행복을 파는 할아버지는 정직한 아이 손을 잡고 사랑이 가득한 눈빛을 보냈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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