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방/동화

좋은 친구

웃는곰 2015. 7. 27. 12:07

친 구

찐빵장수

알았어? 낼까지야!”

…….”

왜 말이 없어? 알았느냐고? , 낼이야!”

좁쌀영감이 빽빽거리는 소리를 지르고 나가면서 문을 쾅 닫았습니다. 찬바람이 확 밀어들었는가 싶은 순간 누군가가 쑥 들어섰습니다.

낼까지라니? 그게 무슨 소리야?”

찐빵 가게 주인 덕구는 갑자기 나타난 친구 문식이 묻는 말에 어물거렸습니다.

아무것도 아니야, 아무것도.”

무슨 소리야? 아무것도 아니라면서 낼까지라는데 왜 대답을 못했어?”

그런 게 있어.”

그런 게 뭐냐고?”

덕구는 엉뚱한 말로 대답을 피했습니다.

지금 막 쪄낸 찐빵이 따듯하다. 하나 먹어 볼래?”

하나 주려면 그만 둬. 삼천 원어치라면 몰라도.”

삼천 원이 뭐야? 친구지간에.”

너는 땅 파다 장사하는 거냐? 그러면 거저 주든지.”

알았어. 삼천 원어치에 덤 두 개 더 준다.”

덤도 싫다. 무슨 일인지 말하면 덤도 받겠지만 아니면 안 먹어.”

너한테 할 말은 아니야.”

네가 내 친구 맞아?”

물론, 친구지.”

친구지간에 비밀을 숨기는 건 배신이다. 알간?”

미안해, 창피한 말을 해서 친구까지 괴롭힐 건 없잖아.”

나 빵 안 먹어. 너하고 나 사이에 말 못할 비밀이 무엇이 있어서 그래?”

덕구가 말했습니다.

아무리 친구라도 고민까지 나누는 건 못할 일이야.”

친구니까 고민도 나누는 거다. 그것도 모른단 말이냐?”

행복은 나누어 가져도 좋지만 고민은 나누어 가질 수 없는 거야. 더구나 친구끼리는.”

넌 돼지 같은 인간이야. 친구가 친구의 고민을 나누어 갖는 것이 진정한 친구라는 걸 모른다면 말이야.”

그런 건 이상이고 이론일 뿐이야.”

이론이고 삼론이고 들어 보자. 솔직히 네가 사업에 망하고도 나한테 한 마디도 하지 않았던 건 매우 섭섭한 일이었어. 만약 내가 네 사정을 일찍이 알았더라면 네가 망하는 걸 보고만 있을 나냐?”

너를 내가 잘 알기 때문에 너 모르게 문을 닫았던 것뿐이야.”

네가 사업체를 넘기고 이 콧구멍만한 찐빵 가게를 차리는 걸 보고 놀랐다. 고생하여 세운 그 큰 공장을 엉뚱한 사람한테 빼앗기고 이런 빵가게를 차릴 줄은 몰랐어. 그렇지만 너의 그 용기만은 인정한다.”

부끄럽다.”

이때 덕구 아들 문식이 들어오면서 인사했습니다.

아빠, 학교 다녀왔어요.”

그래, 잘 다녀왔어?”

그러면서 친구를 가리켰습니다.

이 아저씨는 아빠 친구시다. 인사 드려라.”

문식이 배꼽인사를 했습니다.

아저씨 안녕하세요?”

그래, 인사도 잘하고 얼굴도 잘생겼구나. 아빠를 닮은 것 같다.”

감사합니다.”

몇 살이냐?”

여덟 살이에요.”

그러면 알만한 건 다 알겠구나.”

무슨 말씀인데요?”

너의 아빠가 왜 갑자기 찐빵가게를…….”

덕구가 말을 막았습니다.

문식아, 어른들 이야기하는데 오래 있으면 안 된다.”

아들 문식이 겸손히 대답했습니다.

, 아빠. 집에 갈게요.”

그러나 친구 준태가 하던 말을 마저 하려고 했습니다.

이 사람아, 나 이야기 아직 안 끝났어. 왜 애는…….”

덕구가 말을 막고 대답했습니다.

알았어. 다 말해 줄게 기다려. 문식아, 어서 집으로 가거라.”

아들을 돌려보내고 입을 열었습니다.

이 사람아, 애들이 뭘 안다고 그런 말을 하려고 해?”

여덟 살이면 알 건 다 알아. 자네가 말을 하지 않으니까 애한테라도 알고 싶어서 그랬다.”

알았어. 말해 줄게.”

이자에 찌부러진 인생

덕구가 마지못해 친구 문식 앞에 모든 것을 털어놓았습니다.

내가 사기를 당하여 회사를 남의 손에 넘기고 얼마나 억울했는지 죽을 생각까지 했다네. 그런데 아내가 자살은 죄라고 하면서 죽을 용기가 있으면 사는 날까지 살아보자고 하더군.”

…….”

덕구가 반은 중얼거리는 소리로 말을 이었습니다.

고향에서 같이 자란 친구가 주식을 하면 큰돈을 벌 수 있다면서 공장을 담보로 은행에서 돈을 빌려 주식에 투자하자는 거였어. 그러면 은행 돈을 금방 돌려 갚고도 남는다는 거였지. 주식투자는 자기가 잘 아니까 믿고 맡기라는 거였지. 그러면 백 퍼센트 성공한다는 것이었어.”

그래서 은행 돈을 썼군?”

그 친구가 하자는 대로 했는데 주식이 벼락같이 떨어져 은행 이자를 못 내고 허둥지둥하다가 공장을 경매당하고 살던 집도 경매당하는 등 내 재산은 한 푼도 안 남기고 다 팔아도 은행 돈을 다 갚을 수가 없었네.”

고향 친구는 어떻게 되었는가?”

그렇게 해 놓고 행방불명이 되었어. 송충이는 솔잎만 먹어야 하는데 욕심을 부리다가 이 꼴이 되었다네.”

그런 사정이 있었으면 나한테 지원을 요청하지 왜 가만히 있었나?”

고향 친구도 그 지경인데 타향에서 오다가다 만난 자네한테 무슨 면목으로 입을 열겠는가.”

그래서 이 꼴이 되었네그려. 고향 친구만 친구고 타향 친구는 아무것도 아니란 말이군. 그래도 이런 가게를 차릴 수 있었으니 불행 중 다행이 아닌가.”

하지만 늑대를 피하려다 호랑이를 만난 꼴이 되었다네.”

그건 또 무슨 소린가. 집은 어디인가?”

그런 건 묻지 말게.”

부인도 나와서 일을 거들면 좋을 텐데 어째서 자네 혼자 이러고 있는가?”

아내는 식당에 나가서 일하여 몇 푼씩 받아오지만…….”

대강 알겠네. 아까 내가 들어올 때 영감이 하던 소리는 무슨 소린가?”

집도 절도 없는 신세가 되자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어떤 분의 소개로 그 영감을 만났네. 그리고 차용증을 써주고 천만 원을 빌려 이 가게와 사글세방을 얻었다네.”

그 영감은 무얼 하는 사람인데?”

아주 비싼 돈놀이를 하는 사람이더군. 사람들이 좁쌀영감이라고 하는 사람인데…….”

그런 영감이 무얼 믿고 자네한테 돈을 꾸어 주었는가?”

내가 쓴 차용증에 나를 소개한 분이 보증을 서 주셨다네.”

참 고마운 분이었군. 장사는 잘 되었나?”

이 가게 세가 매월 칠십만 원이고 우리 사는 집 사글세가 삼십만 원이라 백만 원이 고정으로 나가네. 아내는 식당 일을 해주고 그 돈 갚기에 바쁘고 그 영감한테 갚을 이자가 한 달에 사십만 원인데 나는 삼 년 동안 이자를 갚아 왔다네. 그러다 보니 원금보다 더 많은 이자를 갚고도 원금은 살아 있지 않은가. 그래서 이자를 좀 낮추어 달라고 하니까 원금을 한꺼번에 갚으라는 거야. 사정이 어렵다고 하자 이 가게를 내놓던지 보증 선 분한테 가서 받겠다는 걸세. 그러면 어떻게 되겠는가. 이자 무서운 걸 절실히 느끼고 있다네.”

그 돈을 내일까지 갚으라고 그렇게 소리를 치고 갔나?”

그렇다네. 보증 서준 분한테 가면 어쩌겠나. 당장 이 가게를 내놓고 보증금이라도 돌려주는 수밖에 없네.”

그런 사정이면서도 자네가 나를 무시하고 살았는가?”

아니야, 난 자네를 무시한 적이 없네. 자네한테만은 부끄러운 꼴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였어. 자네가 부자라는 걸 내가 왜 모르겠나. 친할수록 돈 거래는 안 하는 것이 우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일세.”

알았네. 난 자네한테 크게 실망했어. 내가 자네 처지였다면 그렇지 않았을 거야. 당장 도움을 줄 수 있는 친구를 외면하고 돈놀이나 하는 노랭이 영감을 찾아가 비싼 이자를 내가며 고생했다는 것이 기분 나쁘네. 나는 자네한테 배신감을 느끼고 있어.”

미안하이.”

그런 자네가 내 친구라니 우린 친구도 적도 아니야. 자게를 내놓든 어떻게 살든 내가 상관할 바 아니니 앞으로 우리 친구 그만 하세. 너무 서운해서 빵 값만 갚고 가겠네. 친구를 그렇게 버리는 게 아니야. 지금까지 그랬듯이 다시는 날 찾지 말게.”

친구 준태가 화난 얼굴로 삼천 원을 탁자에 놓고 바람처럼 나가며 돌아보지도 않았습니다. 당황한 덕구는 따라 나서다가 발을 멈추었습니다. 화난 친구가 얼마나 빨리 달아나는지 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미안하다. 준태, 미안, 미안…….”

 

다음 날입니다.

좋은 친구 3 / 비밀

덕구네 찐빵집으로 들어가는 골몰 길 입구에 이상하게 생긴 검은 차 한 대가 서 있었습니다. 승용차도 아니고 트럭도 아닌데 앞에 세 사람씩 여섯 명이 탈 수 있는 고급 칸과 뒤에 짐을 실을 수 있는 칸이 붙은 차입니다.

아침 일찍부터 와 있는 차 안에는 덕구의 친구 준태가 타고 있었습니다. 준태는 지나가는 사람을 유심히 보고 있다가 한 사람을 눈여겨보고 차에서 내렸습니다. 그리고 그 앞으로 다가가 겸손히 인사를 했습니다.

어른님, 실례합니다.”

영감이 놀란 눈을 뜨고 물었습니다.

누구시오?”

말씀 좀 여쭈어 보겠습니다.”

무슨 말을 하려는 게요?”

잠깐 이쪽에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영감은 경계하는 눈으로 물었습니다.

내가 왜 그리 가오?”

저는 나쁜 사람이 아닙니다. 잠깐 말씀만 드리겠습니다.”

무슨 말인지 여기서 하시오.”

저 골목 안에 있는 덕구찐빵집을 아시지요?”

그렇소만. 댁은 뉘시오?”

자세한 말씀은 차에 들어가서 드리지요. 제 차 안이 편합니다.”

노인은 더 경계했습니다.

누군지도 모르면서 왜 차에까지 올라가자는 게요?”

그러면 여기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덕구찐빵집의 덕구 친구입니다.”

그렇다면 덕구찐빵집으로 가서 이야기합시다.”

아닙니다. 덕구한테 비밀로 드릴 말씀이 있어서 그럽니다.”

무슨 말인지 해 보시오. 나 바쁜 사람이니까.”

제 말씀 오해하지 말고 들어 주세요.”

해 보시오.”

저는 강남 네거리 10층 빌딩 주인입니다.”

그렇다면 누구신가. 그 빌딩 주인은 나도 아는 사이였는데……. 혹시 3년 전에 돌아가신 이상연 씨의 아드님이신가?”

, 맞습니다. 제가…….”

이름을 들어서 알고는 있었지만 몰랐소. 이 늙은이한테 무슨 할 말이 있소?”

조용한 데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제야 영감이 경계하지 않고 말했습니다.

차로 올라갑시다. 누군지 알았으니 좋소.”

차에 올라 준태가 정식으로 인사를 드렸습니다.

저는 이준태라고 합니다.”

나는 박두병이오.”

박선생님이시군요.”

선생은 무슨 선생, 그냥 박할배라고 부르시게. 무슨 말인지 들어 보세.”

, 어른님께서 비밀로 하고 도와주십시오.”

내가 뭘 도와줄 게 있나?”

찐빵집 덕구는 제가 가장 믿고 좋아하는 친구입니다.”

그 사람 몇 년 동안 지켜보았지만 사람은 진국인 것 같았어.”

그 친구 같은 사람 흔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제가 한 가지 생각을 했습니다. 그 친구가 어른님께 자금을 빌려서 빵집을 차린 것 같은데 그런 것 같지 않습니까?”

그런 것 같네만.”

그 친구가 어른님께 빌린 돈을 제가 갚아드리려고 합니다.”

그게 무슨 소린가?”

오늘도 좋고 언제든 어른님께서 빌려준 돈을 받아 주신다면 갚아드리겠습니다.”

그렇게 큰돈을 그냥 거저 갚아준다고?”

, 좋은 친구를 사는데 돈이 아깝겠습니까?”

허허, 별일이야. 세상 살다가 친구를 돈으로 사겠다는 사람도 보다니, 이 늙은이하고 농담하자는 건 아닌가?”

어찌 어른님한테 농담을 합니까? 대신 차용증은 저를 주셔야 합니다.”

내가 차용증 받았다는 건 어떻게 아시었나?”

들어서 알았습니다. 그러니 저한테 차용증을 돌려주시면 당장에 돈을 돌려드리겠습니다. 그 대신 제 친구한테는 절대 비밀로 하시기 바랍니다.”

이런 이야기는 옛날이야기에나 있는 미담인데, 허허, 그 친구가 그렇게 좋은가? 기막히군!”

친구한테 빌려주신 돈을 받으시고 그 친구한테는 가셔서 차용증을 잃어버렸다고 거짓말을 해 주십시오. 그리고 언제든 그것을 찾을 때 다시 올 테니 그 동안 이자만은 정확히 정기적금을 부어 두라고 하십시오.”

노인은 금니를 번쩍이며 입을 크게 벌리고 웃었습니다.

하하하, 이런 일도 있다니, 만화책에서도 보지 못한 미담 아닌가, 하하하. 준태라고 했지? 그 맘씨가 너무 고마워서 내가 그렇게 하겠네. 내가 80이 되도록 차용증 먼저 내준 역사가 없는데 오늘은 믿고 넘겨보겠네. , 이것 받고 돈 돌려주게.”

아닙니다. 돈 먼저 받으신 다음에 주셔도 됩니다.”

아니야, 난 한 번 믿으면 끝가지 믿는 사람이야. 받아. 그 대신 돈 받고 나서 덕구한테 자네가 하라고 한 대로 거짓말을 해 두겠네. 그러면 앞으로 삼년 뒤에는 이자로 천만 원이 넘을 게 아닌가. 나도 그 돈 떼어도 억울할 건 없어. 본전은 다 뺐으니까. 하하하.”

노인은 까치소리같이 높은 목소리로 웃다가 한 마디 덧붙였습니다.

내가 거짓말 하는 김에 더 큰 거짓말도 해 두겠네. 3년이 넘도록 내가 차용증을 못 찾으면 빌려준 돈은 물론 이자로 모은 적금도 안 받겠다고 말이야. 어떤가? 하하하, 오래 살다 보니 이렇게 좋은 친구를 둔 사람도 있군. 덕구가 부럽구먼, 하하하.”

고맙습니다.”

고마울 거 없어. 자네 같은 사람을 보니 세상을 믿어도 될 것 같구먼. 난 이자놀이를 하고 살면서 믿을 사람 없는 세상이라고만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어. 당장에 가서 덕구한테 말하고 오겠네.”

무슨 말씀을 하시려고 그러십니까?”

거짓말을 하라면서? 차용증을 잃어버려서 돈을 달랄 수 없으니 차용증 찾아가지고 올 때까지는 이자를 꼬박꼬박 삼년 정기적금으로 들어 두라고 하면 안 되겠나? 하하하.”

영감은 신이 난 듯 덕구찐빵 가게로 갔습니다.

덕구 있나?”

일찍이 나타난 영감을 보고 덕구가 놀란 눈으로 인사를 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일찍 나오셨습니다.”

돈 받는 일은 지체하면 안 돼. 내가 어제 자네한테 오늘이라고 한 말 기억하지?”

 

좋은 친구 4 / 사년 뒤에 봄세

, 기억하고 있습니다.”

준비가 되었나?”

…….”

왜 말이 없어?”

죄송합니다. 며칠만 참아주시면…….”

내가 몇 날 며칠을 기다려주면 되겠는가?”

…….”

정 그렇다면 나도 솔직히 말하겠네. 나는 집에 두었던 차용증을 잃어버렸다네. 어디다 두었는지 생각이 나지 않는 거야. 그래서 말인데 내가 그것을 찾으면 올 테니 내가 찾을 때까지는 나한테 줄 이자를 정기적금으로 부어 두시게. 알겠는가?”

?”

왜 내 말이 안 들리는가? 차용증을 어디 두었는지 몰라서 그러니까 내가 찾을 때까지는 이자를 나한테 내지 말고 은행에 적금을 부으라는 말이야. 그리고 만약 내가 그것을 찾지 못하여 삼년이 지나도 안 오거든 빌린 돈은 없는 것으로 하고 갚지 말게. 그리고 적금 부은 것도 다 자네가 쓰게. 난 차용증이 없으니 할 말도 없어. 알겠는가?”

아무리 그래도 종이 한 장이 없다고 빌린 돈을 안 갚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차용증을 안 가지고 오시더라도 저는 약속대로 다 갚겠습니다.”

그런가? 고맙네. 그렇다면 이자를 낮추어 줌세. 한 달에 얼마나 낮추어 주면 되겠는가?”

고맙습니다. 십만 원만 내려 주십시오.”

삼십만 원으로 하자고?”

죄송합니다.”

좋아, 자네가 차용증이 없어도 인정해 준다니 이십만 원으로 하겠네. 그 대신 사년 동안 이십만 원씩 적금을 부어 두었다가 원금하고 같이 돌려주기 바라네. 그러면 되겠나?”

고맙습니다. 그렇게 해주신다면 약속을 지키겠습니다.”

알았네. 난 가겠네.”

그냥 가시면 어떡합니까.”

사 년 뒤에 봄세.”

영감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났습니다.

따라 나오던 덕구는 한동안 멍하니 섰다가 빵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것을 멀리서 지켜보는 준태 앞으로 영감이 다가왔습니다.

자네 덕에 나도 이제 마음 곱게 먹고 살아야겠네.”

감사합니다. 댁까지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아니야, 늙으면 걸어야 해. 하릴없는 늙은이가 바쁠 것 없어. 자네나 잘 가고 덕구 친구 많이 도와주게나. 참 고마운 친구야. 부럽네.”

영감이 휘적휘적 골목길로 들어갔습니다. 준태는 생각한 것이 있어서 차를 몰고 덕구 아들이 다니는 초등학교로 갔습니다.

교무실로 들어가 앞자리에 앉은 여선생님한테 물었습니다.

교장선생님을 만나고 싶은데 뵈올 수 있을까요?”

무슨 일로 오셨는지요?”

제게 사정이 좀 있어서…….”

선생님은 일어서서 준태를 교장실로 안내했습니다. 교장 선생님은 마침 책을 읽고 있었습니다.

교장선생님, 손님이 오셨습니다.”

안내한 선생님의 말을 들은 교장선생님이 자리에서 일어섰습니다.

어서 오세요. 이리 앉으시지요.”

응접세트 앞에 앉자 안내했던 선생님이 친절하게도 차까지 내오셨습니다. 교장선생님이 물었습니다.

무슨 일로 오셨는지요?”

긴히 드릴 말씀이 있어서 왔습니다.”

차드시며 천천히 말씀하지시오.”

제가 드릴 말씀은……. 아이들 간식은 어떻게 하고 계신지 알고 싶습니다.”

열한 시에 빵과 우유를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산 문제로 중단해야 할 지경입니다. 계속해야 할는지 말지 고심하고 있습니다.”

그러시군요. 제 말씀을 이상하게 생각지 마시고 들어주시지요.”

말씀하세요.”

앞으로 아이들 간식 문제는 제가 해결해 드리겠습니다.”

?”

그 대신 보통 빵이 아닌 찐빵으로 했으면 합니다만.”

찐빵이라면 좋지만 그건 더 비쌉니다. 예산 절감을 하자면…….”

비싸도 상관없습니다. 교장선생님께서 도와주시면 되겠습니다.”

제가 뭘 도와드릴 것이 있나요?”

이 학교에 박문식이라는 아이가 있습니다.”

, 압니다. 그 아이는 공부를 잘합니다.”

그 아이 가정 사정도 아시는지요?”

, . 그 아이 아버지가 찐빵가게를 한다고 하는 것 같던데…….”

그 사람이 제 친구입니다. 사업에 실패하여 그 노릇을 하고 있지만 건실한 사람입니다. 그 친구를 돕기 위하여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아무한테도 저를 밝히지 말고 어떤 사람이 간식비를 감당한다고만 하고 제 친구네 가게 찐빵을 납품받아 주십시오.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기는 한데 오백 명이나 되는 아이들이 먹는 빵을 대자면 구멍가게 가지고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학교에서 받아주시기만 하면 충분히 납품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앞으로 몇 달 뒤부터는 예산 관계상 누군가가 도움을 주슨 대로 받기로 했다고만 해 주십시오. 그리고 제 친구한테 공장을 넓히면 학교에서 간식을 받아주겠다고만 하시면 모든 것은 제가 해결해 놓겠습니다.”

그렇게 하신다면 고맙지요.”

제 친구를 불러서 앞으로 6개월 뒤부터 날마다 빵과 우유를 납품해 달라고만 하여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그런데 선생은 뉘신지요?”

저는 네거리 백화점 빌딩 주인입니다. 부탁드립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저와의 비밀은 지켜주셔야 합니다. 이런 사실을 알면 그 친구는 교장선생님의 청을 거절할 것입니다.”

알겠습니다.”

좋은 친구 5 / 날개 달린 찐빵

약속한 교장선생님이 덕구찐빵집을 찾아갔습니다. 교장선생님이 오실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한 덕구가 어쩔 줄을 몰라 했습니다.

교장선생님께서 이런 누추한 곳까지 오시다니 황송합니다. 무슨 일인지하실 말씀이 있으시면 저를 부르시지요.”

날마다 바쁘게 일하는 분을 한가한 사람이 오라 가라하면 되겠습니까. 편안한 마음으로 제 말씀을 들으시지요.”

무슨 말씀이신지요?”

우리 학교에서 주던 간식을 예산 관계로 못 주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까?”

앞으로 6개월까지는 되겠는데 그 다음부터가 문제입니다.”

덕구는 교장 선생님이 도와 달라고 오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넉넉하면 좋을 텐데 그렇지 못…….”

그런 말씀만으로도 족합니다. 어떤 후원자가 간식 비용을 감당하겠다고 하면서 일반 빵보다 찐빵을 주게 해 달라고 했습니다. 우리 학교 학부모 중에는 찐빵 집을 하는 분은 부형님뿐이라 상담을 하고자 왔습니다.”

누군지 몰라도 참 고마운 분이시군요.”

고맙지요. 부형님께서 그것을 납품해 주지 않겠습니까?”

저는 안 됩니다. 기술도 부족하고 이런 구멍가게에서 오백 명이나 되는 아이들한테 무슨 수로 물량을 댑니까?”

저도 걱정이 좀 되기는 했습니다만…….”

다른 곳에 알아보시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기왕이면 우리 학교 학부모님이 납품하게 하고 싶습니다.”

말씀은 고맙지만 저는 해당이 되지 않습니다.”

앞으로 6개월의 시간이 있습니다. 생각해 보시지요.”

저한테는 6개월이 아니라 4년이 걸려도 그럴 능력이 없습니다.”

좋은 기회라 찾아뵈었는데 유감스럽게 되었습니다. 가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이렇게 하여 교장선생님은 아무 소득 없이 돌아오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 준태가 교장실을 찾았습니다.

어떻게 되셨습니까?”

자기 처지를 잘 알고 과욕을 부리지 않는 분 같았습니다.”

그렇습니다. 그 친구는 욕심이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좋아합니다.”

그럼 어떻게 할까요? 그분 말대로 다른 업자를 알아보아야 할까요?”

아닙니다. 다른 업자를 도울 생각은 없습니다. 어렵지만 한번만 더 다녀오십시오.”

그야 어렵지 않습니다만.”

다시 가시거든 공장을 차리고 본격적으로 찐빵을 만들 수 있는 자금을 먼저 대준다고 해 주십시오.”

그렇게 할까요?”

교장선생님은 머뭇거리다가 말했습니다.

공장을 차리고 원료를 사들이고 사람을 더 써야 하는데, 그러자면 공장도 지어야 하고……. 아주 큰돈이 들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습니다.”

들어도 해야지요.”

교장선생은 또 머뭇거리다가 한 가지 제안을 했습니다.

요새는 인구가 줄어서 학생 수도 많이 줄었습니다. 우리 학교가 예전에는 천오백 명의 학생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 반도 안 됩니다. 그래서 교실이 많이 비어 있습니다.”

…….”

후문 길 쪽으로 학교 건물 하나가 비어 있습니다. 학교 쪽에 담을 치고 그 후문 옆 교실 두서너 개쯤 비워서 공장으로 만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만.”

그렇습니까? 그러면 좋겠습니다.”

제가 교육구청에 건의를 해 보겠습니다. 교장이라도 학교 건물을 제 맘대로는 할 수 없으니까요. 학교 사정을 보고하고 학생들에게 좋은 간식을 무상으로 제공할 수 있다는 취지를 알리면 위에서도 허락할 것입니다.”

그렇게 해 보시지요. 그러면 저는 공장 차리는 자금을 먼저 내놓고 적극 협조하겠습니다. 부탁입니다, 어디까지나 그 친구한테 저를 알려서는 안 됩니다.”

알겠습니다. 잘 되면 6개월도 안 걸리고 해결될 것 같습니다.”

이렇게 모든 일은 착착 진행되어 학교 후문 교실이 찐빵공장으로 바뀌었습니다. 덕구찐빵 사장이 된 덕구는 누군지 모를 후원자의 도움에 감사하고 교장 선생님께 감사하며 아주 크고 맛있는 찐빵을 만들 결심을 했습니다.

그 동안은 시장에서 아무 밀가루나 싼 것을 사다가 썼고 앙꼬 팥도 외국에서 들여온 수입품을 썼지만 대형 공장을 운영하면서는 국산 밀을 방앗간에서 직접 빻아다 쓰고 팥도 국산 팥만 넉넉히 썼습니다.

아이들이 간식으로 빵을 나누어 주자 크다고 좋아했지만 색깔이 누렇다고 안 먹는 아이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얼마 안 가서 선생님들과 학부형들이 진짜 좋은 찐빵을 알게 되었고 모두가 좋아했습니다.

그뿐 아니라 인근 주민들도 덕구찐빵을 사겠다고 줄을 섰습니다. 소문은 발 없이도 잘 돌아다닙니다.

다른 학교에서도 납품해 달라는 청이 들어오는가 하면 네거리 백화점에서도 찐빵코너를 만들어 놓고 납품을 요청했습니다. 백화점에 찐빵코너가 생기자마자 사람들이 개미떼처럼 몰려들어 하루치가 순식간에 바닥이 났습니다.

네거리 백화점 주인 준태는 덕구찐빵이 잘 팔리자 속으로 좋아서 날마다 벙글거렸습니다. 찐빵이 유명해지자 손님들이 찐빵을 사러 오는 통에 백화점 장사도 잘되었습니다.

마음씨 고운 덕구는 아내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근처 빵집이 우리 때문에 장사가 안 된다고 말이 많아요. 우리는 잘되지만 다른 사람들이 피해를 입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시오?”

저도 걱정을 했어요. 그렇다고 오는 손님을 못 오게 할 수도 없고…….”

아내의 말에 덕구는 이렇게 결정을 했습니다.

앞으로는 하루 생산량을 줄여야 되겠소. 학교에 오백 개하고 백화점에 삼백 개, 그리고 여기서 이백 개를 합하여 천 개만 만듭시다.”

그게 좋겠어요. 우리 잘살자고 남들한테 피해를 주어서는 안 되지요.”

그리고 곧바로 생산량을 줄였습니다. 하루에 2천 개씩 나가던 수량을 줄이자 사가려는 사람들 사이에 다툼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덕구는 정량만 만들어 내고 더 이상 욕심을 부리지 않았습니다.

이 년 만에 덕구는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것을 보고 준태는 자기 사업인 양 즐거워하며 학교에 간식 제공을 계속했습니다.

부자가 된 덕구가 교장선생님을 만나 한 가지 제안을 했습니다.

좋은 친구 6 / 차용증보다 신용이 먼저

교장 선생님 고맙습니다. 제가 이리 오기 전에는 사글셋방을 살았지만 선생님 은혜로 지금은 집도 사고 사업도 잘 되어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 동안 누구신지 모르지만 학교 간식비를 제공하신 분의 은혜도 잊지 않겠습니다.”

모두가 부형님이 성실하여 받은 보응이지요.”

모두가 교장선생님의 은덕입니다. 말씀드리기 조심스럽습니다만 이제 저도 학생들한테 간식거리를 제공할 만큼 좋아졌으니 간식은 앞으로는 제가 맡도록 해주십시오. 그리고 그 동안 도와주신 분한테는 고맙다고 전해주시고 이제 다른 사람이 뒤를 잇게 되었다고 해 주십시오.”

그건 좀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분이 그런 제안을 받아들일 분이 아니십니다.”

어떤 분이신데 그럴까요? 저를 살려주신 분이시라 만나서 은혜를 갚아야 할 분이 아니신가요?”

그렇기는 하지요. 그분은 부형님과 우리 학교에 큰 힘이 되어 주신 분입니다.”

그분이 뉘신지 말씀해 주시면…….”

그 청만은 들어드릴 수가 없습니다. 미안합니다.”

그러시면 더 여쭙지 않겠습니다. 그분의 짐을 제가 반이라고 나누어 질 수 있는지 그것이나 상의해 보시지요.”

그런 분이 아니십니다. 아무 생각 마시고 지금 하시는 일에만 전념해 주십시오. 저는 직원회의가 있어서…….”

교장 선생님은 이렇게 말하면서 자리를 떴습니다.

덕구는 학교에서 나와 좁쌀영감을 찾아갔습니다. 영감은 여전히 꼬장꼬장한 모습으로 자기 건물 관리사무실에서 까치소리처럼 빽빽대는 음성으로 누군가와 전화를 하고 있었습니다.

내일까지 원금 돌려오라고! 이 사람아, 이자도 제대로 안 보낸 것이 몇 달째야? 뭐야? 이자가 높다고?”

덕구가 들어서자 영감은 전화를 급히 끊고 금니를 번쩍거리며 자리에서 일어섰습니다.

아아니, 박사장이 웬 일이신가?”

그간 평안하셨습니까?”

그럭저럭 살고 있네만, 무슨 바람이 불어서 예까지 오셨나? 듣자 하니 요새 덕구찐방이 날개가 돋혀서 사고 싶어도 못 산다는 소문이던데 어떤가?”

소문이 그런 것뿐이지요.”

다 듣고 있었네. 다른 사람들한테 피해를 안 주려고 하루에 천 개밖에 안 만든다면서?”

아닙니다.”

그런데 왜 그런 소문이 떠도나? 다른 사람들은 그런 빵을 만들려고 해도 못 만든다는 말도 들리던데 무슨 재주로 그렇게 좋은 빵을 만드는가?”

좋은 자료를 쓰고 아낌없는 정성을 담을 뿐이지요.”

참 좋은 말일세, 좋은 자료에 정성을 담는다? 하하하. 좋은 말이야.”

영감님, 제가 약속한 사년이 아니라 이년 만이지만 빌렸던 돈을 갚으러 왔습니다.”

영감은 눈을 번쩍 떴습니다.

뭐라고?”

빌려주셨던 돈과 이자를 갚으려고 왔습니다.”

이 사람아, 내가 차용증을 잃어버려서 찾을 때까지 기다리라고 하지 않았던가?”

차용증이 무엇이 그리 중요합니까. 그런 것 없어도 신용이라는 것이 있지 않습니까? 저는 차용증보다 신용을 더 믿습니다.”

자네는 그런지 몰라도 나는 달라. 만약 누군가가 내가 잃어버린 차용증을 주워가지고 박사장한테 돈을 내놓으라고 하면 어떻게 하겠는가?”

그럴 리는 없습니다. 거래 은행 계좌를 알려주시면 오늘이라도 입금해 드리겠습니다.”

그건 안 될 말일세. 난 그렇게는 못해.”

왜 그러십니까? 갚는다는데…….”

돈을 떼이더라도 차용증 없이는 못 받네. 어디 가서 자네가 그것을 찾아가지고 온다면 모를까.”

그러지 마시고 은행 계좌나 알려주십시오.”

안 된다니까.”

그러시면 내일 현금을 찾아가지고 오겠습니다.”

이 사람아, 안 된다면 안 되는 줄 알아. 난 못해!”

영감은 약간 화가 난 목소리였습니다.

내일 다시 오겠습니다.”

영감이 까치소리를 냈습니다.

오지 마!”

 

 

좋은 친구 7 / 닫힌 입엔 열쇠도 없다

다음 날 덕구가 돈 보따리를 들고 좁쌀영감을 찾아갔습니다. 눈앞에 돈다발을 펴놓자 영감이 당황한 소리로 거칠게 말했습니다.

이 돈 가지고 가서 차용증을 사오시게.”

?”

난 그 차용증을 찾지 못하면 절대로 받을 수 없네.”

차용증이 무슨 소용입니까? 신용과 돈이 더 중요하지요. 받으세요.”

아닐세. 받아도 사년 뒤에 받을 테니 가지고 가서 기다리게.”

이자도 깎지 않고 예전처럼 한 달에 사심만 원씩 계산했습니다.”

좁쌀영감은 더 단호히 거절했습니다.

이자고 뭐고 필요 없어. 도로 가져갔다가 사년 뒤에 보자 하지 않았는가. 난 급한 일이 있어서 나가 봐야 하네.”

영감은 일어나 휭하니 나가고 말았습니다. 덕구는 돈을 그대로 두고 나올 수도 없어서 도로 싸들고 나와 은행으로 갔습니다.

별일 다 보겠네. 돈이라면 독약도 마실 어른이 어찌 된 일인가? 참 이상해…….’

덕구는 교장선생님한테 거절당하고 돈을 갚겠다는데 그마저 영감한테 거절당하고 나니 제 정신이 아니었습니다.

내가 꿈을 꾸는 건가? 꿈인가 생시인가? 이럴 수가, 허허허허.’

덕구는 세상에 태어나 이런 경험은 처음입니다. 거절을 당하고 허전해지는 순간 갑자기 잊었던 준태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자기한테 상의 한번 안 했다고 화가 나서 돌아가 연락이 없는 친구입니다. 그런데 왜 갑자기 그 친구 생각이 나는지 몰라 친구를 찾아갔습니다.

그렇게 화가 나서 떠났던 준태가 덕구를 보자 반가워했습니다.

오랜 만일세. 덕구.”

그래, 오랜 만이야. 잘 지냈나?”

덕구찐빵이 그렇게 유명하다면서?”

유명하기는, 그런 소문 들었으면 시식하러 한번 왔어야지.”

자네가 너무 괘씸해서 안 갔지. 하지만 덕구찐빵 덕에 우리 백화점 장사가 잘 된다고 하더군.”

덕구가 웃으며 물었습니다.

그런가? 백화점에서 무슨 찐빵을 파느냐고 반대한 사람이 자네가 아니었던가?”

나야 입점한 사람들이 하는 일이라 상관없지만 폼으로 해본 소리였지. 아무튼 자네 찐빵이 손님을 끌어 모아 우리 백화점이 덕을 크게 보고 있는 건 사실이야. 그러나 자네가 괘씸해서 한번 틀어진 화가 쉽게 안 풀려서 가 보지도 않고 연락도 안 했네. 미안하이. 그런데 오늘은 웬일로 여기까지 왔는가?”

친구 준태는 얼굴 색 하나 변하지 않고 태연하게 아무것도 모르는 양 딴소리를 쳤습니다. 그러면서 속으로 웃었습니다.

사랑하는 덕구야, 네가 잘 살게 되어 고맙다. 이렇게 조금만 도와주면 팔자가 바뀌는 건데 어째서 나한테 말 한 마디 않고 고생을 했어, 이 사람아. 자네가 잘 사니 내가 이렇게 기쁘지 않은가. 흐흐흐.’

친구 속을 모르는 덕구는 찾아온 이야기를 했습니다.

난 오늘 아주 이상한 일만 당하고 왔어.”

무슨 일인데?”

나를 도와주신 교장선생님한테 이제부터는 학생들 간식을 내가 대겠다고 말씀드렸더니 절대 안 된다는 거야. 그래서 나도 이렇게 살만하게 되었으니 누군지 모르지만 급식 후원자 분의 부담을 반만이라도 덜어드리려고 했는데 안 된다는 거야. 그래서 그 고마운 분을 만나게만 해 달라고 해도 그마저 안 된다고 하시는 거였네. 그리고 또…….”

?”

이상한 일이야, 참 이해가 안 간단 말이야. 그 노랭이 돈벌레 영감이 전혀 달라졌어. 내가 전에 비싼 이자를 쓰고 있다고 하지 않았나?”

그랬지. 갚은 이자가 원금보다 많다는 말 기억하지.”

그 영감이 말일세, 허허허.”

? 이자를 더 높이자고 하던가?”

아니, 그게 아니고……. 영감이 내가 써준 차용증을 잃어버렸다는구먼.”

그래서?”

그래서 차용증을 찾을 때까지는 돈을 받을 수 없다는 거야. 그래서 이자 받으러 오지 않을 테니 이자를 적금으로 부었다가 사 년 뒤에 갚으라는 거야. 만약 차용증을 못 찾으면 받기를 포기하겠다면서 나 보고 잃어버린 차용증을 사오라는 걸세. 그걸 내가 어떻게 찾겠나, 하하하.”

그야 당연하지, 차용증 없이 어떻게 원금이나 이자를 받을 수 있는가.”

이 사람아, 그 따위 종이쪽지가 무엇이 그리 대단한가. 꾼 건 꾼 거고 갚을 건 갚아야지. 그게 신용 아닌가.”

자네는 그래서 큰 부자가 못 되는 거야. 겨우 밥술이나 먹게 되니까 별짓을 다 했구먼.”

난 부자보다 남 신세 안 지고 착하게 사는 사람이 되고 싶을 뿐일세.”

그 마음을 보고 하나님이 자네를 도우시는 거야.”

자네도 그런 말 할 줄 아는가?”

?”

하나님이고 부처고 다 소용없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랬지. 하나님 팔아 헌금 모아 제 맘대로 쓰는 부자 목사한테 불만이 있고 산속에 앉아 입만 가지고 신도들 시주받아 어디다 쓰는지도 알 수 없는 주지승한테 돈 바치는 것이 불만이니까.”

그분들은 다 자선에 쓰는 거라네.”

난 모르겠네. 자네 같은 사람은 하나님과 친하게 지내니까 그런 변명을 해 주고 있겠지만.”

이 사람아. 이제 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으니 하나님하고 친하게 살아 보게. 그래야 나하고 같이 천국에 가서도 안 떨어지고 살지 않겠나.”

난 죽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해. 하늘나라고 극락이고 다 안 믿어. 믿을 수 있는 건 자네 같은 샌님하고 돈뿐이야. 내가 믿을 수 있는 건 돈하고 자네뿐이라니까, 하하하.”

거짓말 말게, 정말 친구라면 내가 가는 곳에 같이 가야지, 나도 친한 친구가 어떻게 되는지도 모르면서 나만 천당 가서 되겠는가? 지옥이라도 같이 가는 수밖에.”

내가 지옥으로 가면 거기까지 따라오겠는가?”

좋은 친구 8 / 내가 네 하나님이다 흐흐

지옥이 얼마나 무서운 곳인데 거길 따라 가겠나. 난 어떤 일이 있어도 자네를 데리고 천국으로 가야지.”

하하하, 고맙네. 하지만 어림없는 소리는 말게. 나는 누가 뭐라고 해도 하나님도 부처님도 안 믿네. 다만 자네가 믿는 하나님이 정말 자네를 잘 살게 해주는지 그것이나 두고 보려네.”

자네 입으로 지금 하나님이 나를 도우셔서 이렇게 잘 살게 되었다고 말하지 않았는가?”

준태는 속으로 웃었습니다.

그랬지, 그렇고말고. 내가 자네를 도와준 하나님이 아닌가. 내가 자네 하나님이라고. 흐흐흐.’

친구 속을 모르는 덕구는 이왕 입을 연 김에 전도를 하려고 했습니다.

친구야, 세상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 은혜로 사는 거야. 그 은혜를 알고 감사하며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기 능력으로 산다고 교만하게 사는 사람이 있어. 성경에 가장 큰 죄가 뭐라고 했는지 아는가?”

그런 건 유치원생도 다 아는 문제야. 대답해 볼까?”

말해 보게.”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거짓말 하지 말라, 남의 아내나 여종이나 아무것이든 탐내지 마라. 이것이 내가 동의하는 인생 오계명이지. 어때 이만하면 백점 아닌가.”

어디서 그런 걸 배웠나?”

교인들이 하는 말이고 불자들이 하는 소리 아닌가. 다 좋은 말이지. 귀 두었다 무엇에 쓰나, 그럴 때 쓰는 거지.”

그 말 말고 다른 말은 없던가?”

글쎄,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고 용서하는 하나님이라네. 자네가 말한 모든 것이 세상 죄지만 하나님은 그런 죄를 지은 자가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엎드리면 다 용서해 주신다네.”

바람을 피우고 살인한 죄까지도 용서한다고?”

물론, 죄를 짓고 숨기고 살면 용서하지 않으시지만 하나님 앞에 죄를 고백하고 회개하면 용서한다는 말일세.”

하나님은 참 편리한 하나님이로군. 죄짓고 용서를 빌면 좋다, 좋다 용서하마 한단 말이지?”

그렇다니까. 그러나 그런 죄보다 큰 죄가 있다네. 그 죄만은 하나님이 용서하지 않는 죄라네.”

인색하고 무서운 하나님이로군.”

무서운 하나님이지, 자식 사랑하는 아버지 치고 무섭지 않은 아버지가 어디 있는가. 자식이 죄를 지으면 매를 들고 바로잡아 주는 것이 아버지 아닌가.”

그건 사람 이야기고. 하나님과 사람은 다르지 않은가.”

하나님은 사람과 똑같이 질투도 하고 벌도 주신다네. 자식이 살인을 하고 도둑질을 하고 나서도 아버지한테 다시는 안 그러겠다고 빌면 아버지는 어떻게 하는가. 아무리 죄가 밉고 자식이 미워도 끝내는 다시 그러지 말라고 용서하는 것이 아버지 아닌가?”

그렇지.”

그런데 아무리 자기가 낳은 자식이라도 아버지가 용서하지 못하는 죄가 하나 있네.”

아버지로서 용서 못할 죄가 무엇이 있는가?”

그게 바로 하나님과 아버지가 똑같은 점이라네.”

허허, 이 사람 나를 데리고 말장난 하자는 건가?”

만약 자네 아들이 죄를 지어 용서를 다 해 주었더니 그 자식이 고맙다는 말은 안 하고 난 당신과 모르는 사이요, 난 당신을 아버지로 인정할 수 없소. 난 아버지도 없는 사람이오.’한다면 자네는 어떻게 하겠는가?”

그런 자식이 내 자식이라면 아무리 잘나고 재주가 뛰어나도 몽둥이로 때리고 집에서 내쫓을 것일세.”

그럴 때도 내 자식이네 하고 안아주고 용서해야 하지 않을까?”

자식이 제 아비를 부정하는 놈을 가만 둘 수 있나. 당장에 나가서 거지가 되어 길바닥에서 죽더라도 난 용서하지 않을 것일세.”

바로 그거야.”

그거라니?”

하나님 맘을 그래도 모르겠나?”

허허, 이 사람 나한테 전도하려고 최면 거나?”

그런 최면에 걸리는 사람은 행운아일세.”

그만 두고 다른 이야기나 함세.”

그러지, 한 마디만 더 하고…….”

무슨 말을 하려고? 예수쟁이는 언제나 말이 많아서 탈이야.”

아무리 말이 많아도 허튼 소리는 안 하지.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모든 죄는 다 용서할 수 있는데 나를 부인하는 사람은 내 자식이 아니므로 죄 지은 자나 안 지은 자나 아무리 선한 일을 했다고 자랑해도 지옥 불에 던져 버리리라 하였네. 즉 죄 중에 하나님을 믿지 않는 죄가 가장 크다고 하였네.”

준태는 속으로 비웃었습니다.

그렇게 잘 믿는 너를 하나님은 어째서 그 꼴로 버려두었단 말이냐. 내가 안 도와주었으면 지금도 좁쌀 노랭이 영감한테 이자를 바치고 근근이 살고 있을걸. 내가 도와준 것도 하나님이 도와준 거라고? 인생은 다 태어났다가 죽어서 없어지는 거야. 살았을 때 즐기고 신나게 살다 가는 거다, 이 친구야. 하나님이 어디 있어? 네 하나님은 바로 나라니까, 흐흐흐.’

순진한 덕구는 친구가 이제 제대로 알아들었나 보다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친구 준태는 엉뚱한 소리를 했습니다.

친구 덕에 좋은 설교 잘 들었네. 아무리 그래도 나한테는 안 먹혀들지. 내가 누군가. 돈과 자네 같은 샌님 외는 안 믿는다니까. 설교는 오늘로 족하니 다음부터는 설교할 생각은 말고 세상 이야기나 함세.”

내가 벽에다 대고 지껄였는가, 귀에다 대고 말했는가?”

벽은 아니야. 재미있는 말말 듣는 귀인데 재미없는 나팔을 분 자네가 바보짓을 한 것이지. 미안하네.”

미안할 건 없어. 난 자네가 고마울 뿐이니까.”

고맙다고, 무엇이?”

내가 할 말 다 할 때까지 기다려 주었고 자네 백화점에 찐빵코너가 생겨도 눈감아 주었으니까.”

그건 자네를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백화점에 찐빵 사러 오는 손님이 많아져서 그런 것뿐이야.”

아무튼 고마워. 난 돌아가겠네. 좋은 소식 있으면 불러주게.”

알았어, 좋은 소식 전할 때까지 사업 잘하고 잘 지내게.”

친구와 헤어져 돌아오면서 덕구는 결심을 했습니다.

저 친구 고집은 꺾을 사람도 없지만 전도도 안 통하는 사람이다. 제 멋대로 사는 사람이니 하나님한테 맡길 수밖에 없다. 그의 구원을 위해 백화점에서 들어오는 수입의 십일조를 이준태라는 이름으로 하리라. 그러면 하나님도 도우시겠지.’

이런 결심을 하고 백화점에서 들어오는 한 달 수입의 십일조를 이준태 이름으로 하나님께 바치기 시작했습니다. 남의 이름으로 십일조 하는 것을 안 아내가 웃으며 말했습니다.

별일 다 보네요. 십일조는 자기 믿음으로 자기가 해야지 남이 해 주는 법이 어디 있어요?”

별일이라고?”

별일이지요.”

하나님도 별일을 이해하여 주실 거야.”

호호호, 세상에 남의 이름으로 십일조 바치는 사람이 있다니, 하나님도 웃으실 거예요.”

내게 가장 친한 친구인데 천당까지 데리고 가려면 어쩔 수 없잖소?”

글쎄요. 하나님이 인정해 주실까요?”

인정해 주실 줄 믿소.”

그 친구한테 무슨 덕을 그렇게 많이 보셨수?”

그 백화점에서 우리 찐빵을 팔게 하는 것만도 굉장한 혜택이오. 백화점에서 고급 빵 파는 것은 보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일리가 있긴 한데 아이들 소꿉장난 같지 않아요?”

믿음은 어린 아이 같아야 한다고 하였소.”

말로는 당신을 당할 수 없어요. 잘해 보시우.”

이렇게 일 년이 지난 어느 날 덕구는 급한 전화 한 통을 받았습니다.

좋은 친구 9 / 위기에 처한 친구

누구라고요?”

전화 받으시는 분이 박덕구씨 맞습니까?”

그렇습니다만.”

여기 청산시에 있는 청산병원입니다. 이준태씨를 아시지요?”

, 압니다. 댁은 누구십니까?”

저는 청산시 경찰서 조문수 경사입니다.”

이준태씨한테 무슨 일이 있습니까?”

매우 위독합니다. 빨리 좀 와 주시지요.”

위독하다고요? 무슨 일입니까? 알겠습니다.”

덕구는 갑자기 가슴이 두근거리고 불안했습니다. 급한 마음에 아무 것도 생각지 못하고 청산시로 달려갔습니다. 병원 응급실 병상에 준태가 누워 있고 경찰이 지켜보는 가운데 의사가 치료를 하고 있었습니다.

덕구가 허둥거리고 들어서자 경찰이 물었습니다.

박덕구씨이신가요?”

그렇습니다. 어찌 된 일입니까?”

등산을 하다가 낭떠러지에서 떨어져 쓰러져 있는 것을 시민이 신고하여 급히 이 병원으로 옮겼습니다. 피를 많이 흘려서 위험한 상태입니다.”

정신 상태는 어떤가요?”

의식이 없습니다. 조금만 늦었어도 큰일 날 뻔했습니다. 정신은 돌아오지 않았지만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의사가 물었습니다.

친구분이신가요?”

그렇습니다.”

가족은 없습니까?”

가족이 있습니다만 가족과는 연락이 없어서…….”

가족한테 알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알려야지요, 그런데 어떻게 저의 연락처를 아셨습니까?”

경찰이 친구의 작은 가방을 보이면서 말했습니다.

이 가방 안에 책이 하나 있고 알 수 없는 차용증이 책갈피에 들어 있었습니다. 보시지요.”

덕구는 가방을 받아 들고 책을 꺼내어 펴보았습니다. 책갈피에 있는 낯익은 종이를 펴보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아니! 이건?’

그건 좁쌀영감한테 써 주었던 차용증이었습니다. 그 차용증 뒤에는 준태의 글씨로 이렇게 씌어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안 도와주면 내가 도우마. 덕구야, 힘내라.>

덕구는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차용증이 어떻게 네 손에 있는 거냐? 네가 나를 돕기 위해 이걸 가지고 있었구나.’

경찰은 차용증에 씌어 있는 덕구의 주소와 전화번호를 보고 연락한 것이었습니다. 경찰이 물었습니다.

이 사람과 박덕구씨는 어떤 관계이십니까?”

친구입니다.”

친구끼리 돈 거래가 있으셨습니까?”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이 사람이 박덕구씨의 차용증을 가지고 있지요?”

경찰은 수상하여 물었습니다. 차용증 가진 사람이 위험한 처지에 있는데 박덕구라는 사람이 채무자라면 아무리 친구라도 믿을 수 없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저도 확실히 모르겠습니다만 이 친구한테 돈을 빌리고 써 준 것은 아닙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요?”

이 사람은 저를 끔찍이 아껴주는 사람입니다. 짐작으로는 제가 돈 빌린 사람한테 시달리는 것을 보고 저 몰래 돈을 갚고 이것을 돌려받은 것 같습니다.”

이렇게 말하고 보니 좁쌀영감이 돈을 안 받겠다고 하는 것이나 차용증을 잃어버렸다고 한 것이 모두 그냥 한 소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때 의사라 급히 말했습니다.

환자가 매우 위험합니다. 지체할 시간이 없습니다. 피를 너무 많이 흘렸고 떨어진 충격으로 갈비뼈가 부러졌는데 수술을 하자면 수혈을 해야 합니다.”

덕구가 물었습니다.

병원에 수혈할 피가 없습니까?”

있지만 이 환자의 혈액은 알에치 투라 수혈할 수가 없습니다.”

전에도 방송을 하여 같은 혈액 소유자를 구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제가 비용은 댈 테니 방송국에 연락해 보시면 안 되겠습니까?”

여기는 외진 바닷가라 어디서 찾는다 해도 시간이 문제입니다. 앞으로 열 시간을 견디지 못할 것 같습니다.”

좋은 친구 10 / 검은 그림자

덕구는 눈앞이 캄캄한 중에 언뜻 생각이 나서 말했습니다.

제 피를 수혈해 주실 수 없을까요? 저는 오형입니다만.”

확실합니까?”

초등학교 때 선생님 그러셨습니다.”

이 환자는 혈액이 특수해서 오형이라 하더라도 수혈이 가능할는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오형은 아무한테나 줄 수는 있지만 다른 혈액은 받을 수 없다고 들었습니다.”

그건 그렇습니다만……. 아직 제가 이런 경험을 해 보지 않아서 어떨는지 모르겠습니다. 수혈을 하다가 안 맞으면 생명에…….”

어차피 시간이 없는데 가만히 두고 죽는 것을 보느니 제 피라도 주어 보고 싶습니다. 안 맞아서 죽더라도 해 보시지요.”

의사는 한동안 망설이다가 곁에 있는 경찰관한테 물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맞는 혈액형을 만나지 못하면 죽을 수밖에 없지 않아요? 그럴 바에는 이 친구 분의 피라도 해 보시는 것이 어떨는지…….”

잘못되어 의료사고라도 나면…….”

경찰이 박덕구한테 정색을 하고 물었습니다.

박선생, 진심으로 하시는 말씀이십니까?”

. 진심입니다. 내 친구를 살릴 수만 있다면 모슨 짓이든 하겠습니다.”

의사가 말했습니다.

수혈 중에 본인도 위험할 수 있습니다. 이 자술서에 이름과 서명을 해 주십시오.”

덕구는 의사가 내놓는 서류에 서슴없이 이름을 쓰고 사인을 했습니다.

이렇게 하면 됩니까?”

그러시면 혈액형 검사를 한 번 더 확인하겠습니다. 오형을 확인해야 합니다.”

좋습니다.”

그렇게 하여 혈액형 검사를 다시 한 의사가 말했습니다.

오형이 맞습니다.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시고 결정하십시오.”

더 이상 생각할 것 없습니다. 수혈할 수 있게 해 주세요.”

마침내 병원 원장을 비롯하여 전문의 여러 명이 둘러선 가운데 덕구와 준태는 두 침대에 나란히 누웠습니다. 준태는 죽은 사람처럼 창백한 얼굴에 숨만 겨우 쉬고 있었습니다.

주사 바늘이 따끔하고 찌르는 순간부터 덕구의 피가 준태의 몸으로 흘러들었습니다. 준태한테 별 일이 없어야 하는데 하는 걱정이 스치고 지나가고 어느 순간 덕구는 잠이 들었습니다.

완전히 의식을 잃고 숨만 쉬는 준태는 꿈길을 헤매었습니다.

깊은 산속에 혼자 누워 있는데 누군가가 툭 쳤습니다. 누구야? 하고 눈을 떠 보았습니다. 새까만 외투를 걸치고 시커먼 얼굴에 눈은 있는데 눈동자가 없는 그림자 같은 사람 형상이 소리쳤습니다.

일어나 이놈아!”

준태는 벌떡 일어서서 대답했습니다.

넌 누구냐?”

이놈이! 너라니? 내가 누군 줄 모르느냐?”

준태는 잠깐 생각했습니다.

이 물건은 동화책에서 읽어 본 저승사자같이 생겼는데……?’

그 형상은 시커먼 얼굴을 들이대고 히죽히죽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나를 알고 있으면서 누구냐고 묻다니 건방진 놈. 날 따라 와!”

검은 그림자가 앞을 가면서 명령했습니다.

어디로 가는 거냐?”

지옥으로 간다.”

지옥이라고?”

네 놈이 갈 데가 어디 있느냐? 천당 갈 일을 하고 왔으면 내가 오지도 않았다.”

뭐라고?”

너 같은 놈은 지옥으로 가는 거다. 알겠느냐?”

나는 한평생 악한 일은 한 적이 없다. 착하게 살아 온 내가 지옥을 가다니? 나를 놀리는 거냐?”

이런 건방진 놈, 말이 많다!”

그러면서 발로 한쪽 다리를 차는데 얼마나 아픈지 그 자리에 푹 고꾸라지며 소리쳤습니다.

아아. !”

시커먼 그림자가 냉랭한 소리로 말했습니다.

이놈이 죽는 소리를 쳐? 한 번 더 차기 전에 입 다물어!”

검은 그림자가 성큼성큼 걸어가며 소리쳤습니다.

빨리 따라오지 못해?”

, .”

겁먹은 준태는 한쪽 다리를 절뚝거리며 그 뒤를 따랐습니다.

좋은 친구 11 / 심판대 앞에서

시커먼 저승사자는 바람처럼 빠르게 달려가면서 소리쳤습니다.

빨리 따라와, 이놈아!”

준태는 절름절름 그 뒤를 따랐습니다. 사방이 컴컴하고 으스스한 골짜기를 지나 하루 종일 달려 한 곳에 도착했습니다. 멀리 빛이 보이는가 싶었는데 갑자기 앞이 환하게 밝아지면서 높은 보좌가 앞을 가로막았습니다. 보좌는 눈이 부셔서 바로 볼 수가 없었습니다.

시커먼 사자가 준태한테 명령했습니다.

이놈아, 무릎 꿇고 큰절을 올려라.”

준태는 아무 말 못하고 그 앞에 무릎을 꿇고 큰절을 올렸습니다. 빛이 쏟아지는 높은 중심에서 우렁우렁 천둥 같은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고개를 들라 아!”

준태는 고개를 들고 올려다보았습니다. 빛이 너무 강하여 말하는 이의 얼굴은 볼 수 없고 다만 빛만 보았습니다. 빛 가운데서 소리가 났습니다.

왼편을 보아라.”

왼편을 보다가 눈을 감았습니다. 거기는 엄청나게 큰 화덕에서 무서운 불덩어리가 이글거리고 타는데 한 사람이 던져지자 순식간에 지글지글 기름덩어리로 활활 타다가 연기로 사라졌습니다.

빛 가운데서 또 소리가 들렸습니다.

오른쪽을 보아라.”

그쪽은 넓고 아름다운 길이 멀리 파란 하늘 밑으로 뻗어 있었습니다. 그 길로 하얀 차림의 천사가 정결한 사람을 앞세우고 가고 있었습니다.

아아! 저기가 천당인가 보다.’

이런 생각을 하는데 빛 가운데서 묻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넌 어디로 가고 싶으냐? 왼쪽이냐 오른쪽이냐?”

준태는 감히 입을 열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속으로 대답했습니다.

오른쪽 파란 하늘이 보이는 곳으로 가고 싶습니다.’

빛 가운데서 천둥소리 같은 웃음소리가 터졌습니다.

하하하하! 그래도 지옥으로 가고 싶지는 않은 모양이로구나. 대답하라. 저 천사가 가는 길로 가고 싶으냐 아니면 불속으로 들어가고 싶으냐?”

…….”

대답을 못하고 있자 빛 가운데서 소리가 들렸습니다.

대답은 나중에 듣겠다. 지금 새로 들어온 자를 끌어오너라.”

시커먼 사자가 한 노인을 끌고 왔습니다. 준태는 그 노인을 보는 순간 눈을 감고 말았습니다.

, 아니! 저 영감이!’

좁쌀영감이 사자한테 잡혀온 것입니다. 빛 가운데서 천둥 같은 음성이 떨어졌습니다.

여봐라. 너는 88년 동안 세상에서 어떤 일을 하였느냐?”

좁쌀영감은 감히 입을 열지 못했습니다. 대답이 없자 빛 가운데서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저 늙은이 장부를 가져오너라.”

사자가 장부를 빛 가운데로 올렸습니다. 장부를 받은 다음 빛 가운데서 묻는 말이 떨어졌습니다.

너는 큰돈을 가지고 살았구나. 이렇게 많은 돈을 가지고 무슨 일을 하였느냐?”

좁쌀영감은 말을 못하고 엎드려 벌벌 떨기만 했습니다.

네가 무슨 일을 했는지 대답하라. 다음 잡혀온 사람을 데려오너라.”

준태는 그 사람을 보고 더 놀랐습니다. 고등학교 선생을 하고 대학 교수를 하다가 국회의원이 되어 좋은 일을 많이 하여 존경받던 사람입니다. 그런 어른이 검은 사자한테 끌려온 것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준태는 하얀 천사가 데리고 온 사람은 밝고 파란 하늘이 있는 길로 가고 시커먼 사자가 데리고 온 사람은 지옥불 앞 심판대로 온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때문에 그 사람 생각을 더했습니다.

나는 세상에서 아무 일도 한 것이 없어서 여기까지 끌려왔지만 저 훌륭한 어른은 왜 끌려왔단 말인가?’

빛 가운데서 큰소리가 들렸습니다.

너는 세상에서 어떤 일을 하였느냐?”

국회의원으로 빈밀 구제와 나라의 발전을 위하여 몸 바쳐 일했습니다.”

그러하냐? 저 사람의 기록부를 가져 오너라.”

사자가 기록부를 올렸습니다. 그것을 보고 빛 가운데서 큰 웃음소리가 터졌습니다.

하하하하, 좋은 일은 참 많이 하였구나. 그런 네가 어째서 이리로 왔느냐?”

모르겠습니다.”

그러냐? 기다려라. 새로 끌려온 사람을 보자.”

검은 사자가 목에 십자가를 달고 목사 가운을 입은 사람을 데리고 왔습니다. 빛 가운데서 우렁찬 소리가 물었습니다.

넌 무슨 일을 하다가 왔느냐?”

저는 세상에서 하나님을 위하여 많은 선교를 하고 큰 교회를 세우고 봉사를 하였습니다.”

그렇게 훌륭한 일을 많이 한 네가 어째서 이리로 왔느냐?”

그러면서 검은 사자를 꾸짖었습니다.

여봐라! 어찌하여 네가 이런 실수를 하였느냐? 이 사람은 세상이 존경하는 목사가 아니더냐?”

사자가 대답했습니다.

이 자는 목사 가운을 입고 하나님 이름을 팔면서 온갖 악행을 하다가 독약을 마시고 잡혀 왔습니다. 사람들 앞에서는 거룩하고 깨끗한 척하면서 강도보다 무서운 음모를 꾸몄고 혼자 있을 때는 하나님을 비웃었습니다.”

빛 가운데서 은근한 소리가 나왔습니다.

저 사자가 한 말이 사실이냐?”

아닙니다. 저는 남에게 피해를 전혀 준 사실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좋은 일을 한 사람이 여기까지 왔으니 억울한 것 같다. 네 이야기는 나중에 듣겠다. 새로 끌려온 사람을 앞에 세워라.”

준태는 새로 온 사람을 보고 또 놀랐습니다. 그 사람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녀였습니다.

영화나 텔레비전에서만 보던 천사 같이 예쁜 여자가 어째서 여기까지 왔을까?’

빛 가운데서 묻는 소리가 쏟아졌습니다.

천사보다 예쁜 네가 어찌하여 여기까지 왔느냐?”

저는 바로 제 앞에 온 목사라는 사람한테 독약을 먹인 죄로 잡혀왔습니다.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여기는 용서받을 사람이 들어오는 곳이 아니다. 용서는 독약을 먹이기 전에 했어야 한다. 너는 이 사람을 확실히 아느냐?”

압니다.”

저 사람은 어떤 사람이었더냐?”

이때 목사가 눈에 불을 켜고 소리쳤습니다.

네가? 네가 나한테 독약을 먹였다고? 네가 감히 그럴 수…….”

이때 검은 사자가 호통을 치면서 목사의 어깨를 내리쳤습니다.

이놈아, 여기가 어딘 줄 알고 주둥아리를 놀리느냐?”

목사는 아악 소리를 지르며 어깨 한쪽과 얼굴이 일그러졌습니다.

빛 가운데서 여자를 꾸짖는 호통이 떨어졌습니다.

어째서 네가 선한 사람한테 독약을 먹였느냐?”

좋은 친구 12 / 지옥 불속으로 사라진 사람들

여자가 대답했습니다.

저 사람은 양의 얼굴을 한 늑대이고 옥을 걸어놓고 돌을 파는 장사꾼보다도 더 나쁜 악마입니다.”

이 소리에 목사라는 자가 눈을 허옇게 치뜨고 소리쳤습니다.

저저, …….”

얼굴이 보기 흉하게 찌르러진 목사의 말을 사자가 가로막았습니다.

넌 입 다물어!”

여자가 말을 계속했습니다.

제가 음식집에서 식사를 하는데 옆방에서 저 사람이 자기 친구와 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목사는 일그러진 눈을 부릅떴습니다. 여자가 말을 계속했습니다.

그 날 저 사람의 친구가 물었습니다. ‘, 너 진짜 목사 맞냐?’ 하니까 장사 중에 입만 가지고 잘 되는 장사는 하나님을 파는 장사밖에 없다. 내가 언제 하나님 믿고 목사 짓 하는 줄 아냐? 잘 먹고 대접받고 잘 살자니까 하는 짓이지. 솔직히 하나님이 있는지 없는지 누가 아냐? 하나님 이 없다는 사람을 만나면 술 마시고 어울리고 하나님이 있다고 믿는 사람들한테는 하나님이 바로 당신 머리에, 가슴과 손발에 있다고 하면서 기도해 주고 사랑해 주는 척하면 세금도 안 내는 눈먼 돈이 줄줄이 들어온다.’ 하자 그 친구가 나도 목사가 되어 돈 좀 벌어볼까?’ 하니 이 짓도 아무나 하는 줄 아냐? 공부를 해야지, 성경을 달달 외워야 하고 기도는 청산유수로 해야 한다. 진짜 하나님 잘 믿는 사람들 앞에서 어물어물하다가는 국물도 없다고 하하하하.’ 이러는 것입니다. 나는 저런 사람은 세상에 빨리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독약을 먹이고 살인범이 되어 사형을 당하고 잡혀 왔습니다.”

빛 가운데서 묻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듣거라, 목사. 저 여자가 한 말이 사실이냐?”

아닙니다. 저는 진짜 목사입니다. 저 여자가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다.”

빛 가운데서 검은 사자한테 명령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여봐라, 저 자의 영상기록을 켜 보아라.”

그러자 그 가짜 목사의 행실이 드러났습니다. 여자가 말한 것보다 더 나쁜 짓을 많이 저질렀습니다. 빛 가운데서 벼락같은 소리가 터졌습니다.

이래도 거짓말이란 말이냐?”

용서해 주십시오. 저는 가짜로 목사 행세는 하였지만 많은 사람들한테 하나님을 전도하고…….”

변명이 채 끝나기도 전에 빛 가운데서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저 자를 지옥 불에 던져라!”

검은 사자가 달려들어 그를 불속으로 던졌습니다.

아아!”

그는 비명을 지르며 불속으로 들어가 지글지글 타다가 사라졌습니다. 빛 가운데서 다음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국회의원을 자냈다는 너한테 묻겠다. 너는 내가 몇 번씩 불렀다. 소리를 못 들었느냐?”

못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줄 알면 제가 하나님을 모른다고 하겠습니까. 저는 한 번도 그런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억울합니다.”

억울하냐?”

, 억울합니다.”

너한테 영주라는 가난한 친구를 통하여 내가 몇 번씩 불렀다. 그때 무어라고 했느냐? 하나님이 있다면 너같이 가난하게 살면서 교회 잘 다니는 사람을 왜 가만 두시느냐?고 하다. 그때 친구가 한 말이 기억나지 않느냐? 하나님을 돈이나 나누어 주는 대상으로 알아서는 안 된다. 내가 가난한 것은 내 잘못이지 하나님 잘못이 아니다. 하나님은 아버지로 부르고 믿는 사람은 버리지 않으신다. 세상에서 아무리 착한 일을 많이 해도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만큼 큰 죄는 없다고 했다. ‘내 말 허수로 듣지 말아다오하는 친구의 말을 듣지 못했더냐?”

들었습니다. 이제라도 믿지 않은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

용서받을 사람은 여기까지 오지 않는다. 용서받지 못할 이 죄인을 불속으로 던져라!”

명령이 떨어지자 세상에서 권위를 자랑하던 모습도 간 곳 없이 활활 타는 불꽃에 녹아버리고 연기로 사라졌습니다. 그것을 지켜본 좁쌀영감이 자기 차례가 오자 벌벌 떨면서 무릎으로 기어 빛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이 늙은이를 용서해 주십시오. 다시는 죄 짓지 않고 살…….”

그러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의 피를 빨아먹던 거머리 같은 이 죄인을 불속으로 던져라!”

그 한 마디에 좁쌀영감은 가을 낙엽처럼 불속으로 던져져 활활 타는 불길로 사라졌습니다. 이윽고 준태의 차례가 왔습니다. 준태는 입술이 바짝바짝 타고 말려들고 전신이 오르라져 숨도 쉴 수 없었습니다.

이준태, 다가오라!”

좋은 친구 13 / 지옥에서 받은 봉투

활활 타는 지옥 불의 뜨거운 바람이 확확 불어와 얼굴을 달구었습니다.

저 불속으로 던져지면 내 인생은 끝나는 게 아닌가.’

준태는 그런 생각을 하며 눈을 감았습니다. 그 순간 빛 속에서 큰 소리가 들렸습니다.

고개를 들라!”

잔뜩 오므라진 목을 빼고 올려보던 준태는 깜짝 놀랐습니다. 빛 가운데 좁쌀영감한테 덕구가 써준 차용증이 또렷이 보였습니다.

빛 속에서 음성이 들렸습니다.

이것을 아느냐?”

, .”

네가 이것을 왜 가지고 있었느냐?”

그건…….”

네가 훔친 것이냐?”

아니옵니다.”

어째서 이걸 품에 안고 다녔느냐?”

아무한테도 보여주지 않으려고 그랬습니다.”

네 딴에는 친구를 위하여 착한 일을 한다고 한 것이었더냐?”

그런 건 아니고…….”

친구 빚을 갚아주고 도와주었으니 여기서 용서받을 줄 생각하느냐?”

아닙니다. 죽을 결심은 되어 있습니다.”

그래야지. 네가 아무리 좋은 일을 했어도 넌 죽어야 한다. 알겠느냐?”

네에에…….”

빛 가운데서 이상한 봉투 하나가 날아와 준태 앞에 떨어졌습니다.

그 봉투를 본 적이 있느냐?”

없습니다.”

봉투에 무슨 글자가 씌어 있느냐?”

제 이름과…….”

네 이름이 맞거든 봉투를 품에 안아라.”

준태는 명령대로 봉투를 안았습니다.

너는 죽어야 마땅하나 그 봉투가 너를 지옥에서 구하였다. 지옥 불에 떨어지면 몸뚱이는 재로 사라져도 고통스런 영혼은 뜨거운 불속에서 영원히 몸부림을 치며 이를 갈아야 하느니라.”

준태는 감히 물었습니다.

하나님, 저도 모르는 이 봉투는 무엇입니까?”

네가 좋은 친구를 두었기에 지옥 불에 떨어지지 않는 것이니라. 네가 친구의 차용증을 아무도 모르게 가지고 있듯이 네 친구는 자기 소득의 십일조를 너도 모르게 네 이름으로 바치면서 너를 위해 기도했느니라. 세상에서 친구를 위해 남의 이름으로 십일조를 바친 사람은 하나도 없었느니라. 나도 감탄할 만한 네 친구의 기도가 너를 구하였느니라.”

그리고 곧 명령했습니다.

지옥 불에 던지지 않는 대신 너를 한 필의 말로 만들겠다. 다짐하여 묻는다. 말이 되고 싶으냐? 불속으로 던져주기를 바라느냐?”

준태는 활활 타는 불꽃이 무서웠습니다.

말이 되겠습니다.”

말이 된 뒤에는 주인한테 함부로 하면 안 되느니라. 주인이 너보다 못난 사람이라도 겸손해야 하고 항상 주인님이라고 불러야 한다. 알겠느냐?”

명심하겠습니다.”

네 주인이 올 때까지 기다리도록 하라. 네 주인한테는 반말을 해서도 안 되고 명령을 거역해서도 안 된다. 언제나 주인을 등에 태우고 다니며 순종하여야 하느니라. 그렇지 않으면 너는 불속으로 던져질 것이다.”

명심하겠사옵니다.”

네가 친구를 위하여 좋은 일을 하고도 천당으로 못 가고 이리로 온 이유를 알겠느냐?”

알겠사옵니다.”

말하여 보라.”

친구가 저한테 말했습니다. 세상에서 아무리 큰 죄를 지어도 하나님 앞에 회개하면 하나님은 용서해 주시지만 하나님을 믿지 않는 죄는 용서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도 친구 말을 무시했더냐?”

죄송하옵니다.”

네 죄를 알았으니 주인한테 충성하도록 하라.”

준태는 어느새 커다란 말이 되어 네 발로 서서 주인이 오기를 기다렸습니다.

아아! 내가 말이 되었다. 내 주인은 어떤 분이실까?’

준태는 말이 되어 긴 목을 빼어 숙이고 코로 흙냄새를 맡으며 주인이 오기를 기다렸습니다. 얼마 안 되어 하얀 천사가 한 사람을 인도하여 오고 있었습니다. 천사가 가까이 이르렀을 때 준태는 크게 놀랐습니다. 덕구가 천사의 안내를 받고 환하게 웃으며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 덕구가, 덕구가!’

좋은 친구 14 / 말이 된 준태와 주인이 된 덕구

빛 가운데서 말씀이 들렸습니다.

네 주인이 저기 오느니라.”

준태는 우물우물 중얼거렸습니다.

저 사람은 제 친구입니다.”

빛 가운데서 호통이 터졌습니다.

이런 건방진 놈, 무슨 소리를 지껄이느냐? 나는 이미 네 주인한테 너를 팔았느니라. 저 주인이 사지 않았다면 너는 이미 지옥 불쏘시개가 되었을 것이니라. 저는 네 주인일 뿐 친구가 아니니라. 주인한테 반말을 한다든가 불경한 마음을 품으면 즉시 잡아다 불에 던져버릴 것이니라. 알겠느냐? 천지 창조 이래 나한테 종을 사간 사람은 오직 하나, 저 주인이 처음이고 마지막이다. 네가 품고 있는 봉투는 주인이 나한테 돈을 갚은 증표니라.”

말씀 명심하겠사옵니다.”

그 사이에 덕구가 천사의 인도를 받고 가까이 왔습니다. 천사가 말했습니다.

이 말은 그대 것이오. 천국에서 말을 탈 수 있는 존재는 오직 그대뿐이고 그대의 말은 죽음에서 구원받은 행운의 말이오.”

그러면서 말한테 일렀습니다.

너는 주인의 말에 순종하고 겸손해야 한다. 알겠느냐?”

준태가 대답했습니다.

예에, 명심하고 모시겠습니다.”

그러면서 덕구 앞에 허리를 낮추고 타기를 기다렸습니다. 덕구는 아무 것도 모르는 듯 말을 쓰다듬으며 말했습니다.

말이 잘생기고 좋습니다. 세상에서 이렇게 좋은 말은 못 보았습니다.”

천사가 대답했습니다.

주인이신 그대가 좋아하니 다행이오. 말을 타고 나를 따르시오.”

천사는 날개를 쫙 펴더니 날았습니다. 말은 벌떡 일어나 천사가 가는 대로 따랐습니다. 말이 된 준태는 친구를 등에 업고 달리는 것이 한없이 기뻤습니다.

주인님, 고맙습니다. 내가 지옥 불에 던져지지 않고 이렇게 주인님을 모시고 다니게 하여주시니 고맙습니다. 이제 주인님은 내 친구가 아니라 주인이십니다.”

덕구는 천국에 들어서서 보이는 아름다운 풍경에 정신이 팔려서 말이 하는 소리를 듣지 못했습니다. 말이 된 준태도 천사가 가는 쪽을 향해 달리면서 휘황찬란한 천국 풍경에 홀렸습니다.

! 이렇게 아름다운 세계가 있었구나! 해도 달도 없는데 어찌 이리도 맑고 밝은가. 바람결에 스미는 이 향기는 장미향보다 달콤하다. 향기에 젖으니 날아갈 듯 가볍다.’

덕구도 말이 된 준태도 똑같이 같은 생각을 했습니다. 지평선 아득히 넓은 초원과 사방에 흐드러진 꽃이 모두 방글거리는 모습은 어떤 그림보다 아름다웠습니다. 준태는 달리면서 감사했습니다.

주인님, 고맙습니다. 비록 말이 되어 친구를 주인으로 모셨지만 이 아름다운 천국을 볼 수 있으니 영광입니다. 주인님은 어질고 하나님을 잘 믿으시더니 이런 복을 받으셨습니다. 일찍이 나한테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이 가장 큰 죄라고 하신 말씀을 비웃은 제가 아닙니까. 이렇게 살아 있는 것만도 고맙습니다.’

얼마를 달리다 보니 앞에 가던 천사가 사라졌습니다. 말은 한 자리에 멈춰 서서 천사를 찾았습니다.

주인님, 천사가 안 보입니다. 투투 후후!”

이렇게 말했지만 덕구는 들은 체도 않았습니다. 사방을 둘러보는 중에 아득히 멀리서 분홍빛이 환히 비쳐오는 것이 보였습니다. 거기서 비단결 같은 아름다운 합창 소리가 은은히 들려왔습니다.

주인님, 저 노래 소리가 들리십니까. 참 아름답습니다. 꽃과 향기가 가득한 분홍빛 속에서 들려오는 노래는 향기보다 곱습니다. 아아! 후후후.”

주인 덕구는 말이 후후거리자 생각했습니다.

이 놈도 아름다운 향기 속에서 고운 노래를 들으니 기분이 좋은 모양이로구나.’

덕구가 말 등을 쓰다듬으며 말했습니다.

너도 기분이 좋으냐?”

말은 날아갈 듯한 기분으로 대답했습니다.

그렇고 말고요 주인님, 주인님을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투루루루 후후훗.”

덕구는 후후대는 소리에 말도 기뻐하는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네가 말은 못해도 후후거리는 소리를 나는 안다. 그렇게 기분이 좋으냐?”

후후후후, 말씀만도 고맙습니다, 주인님. 투루투루, 후후훗.”

이때 멀리서 들려오던 노래 소리와 환한 빛이 가까이 이르렀습니다. 말이 배를 깔고 넓죽 절하는 몸짓을 했습니다. 덕구는 말에서 내려 다가오는 합창단을 맞았습니다.

좋은 친구 15 / 천사들의 환영 합창

친구를 구원하고 말을 타고 오는 이여

지옥 갈 죄수가 구원 받아 말이 되어

친구를 등 업고 싱글벙글 오는구나

말을 타고 오는 이여 군원 받은 천사여

 

셀 수 없이 많은 합창대원이 눈같이 빛나는 하얀 옷을 입고 분홍 꽃구름 무대를 타고 바람에 실려 오며 고운 목소리로 이렇게 노래를 불렀습니다. 합창대원은 모두가 꽃처럼 아름답고 성결해 보였습니다.

덕구가 말에서 합창대를 향해 내려 큰절을 올렸습니다. 가장 높고 화려한 자리에서 천사가 다가와 손을 잡고 일으켰습니다.

어서 오너라. 나의 제자여!”

! 주님. 감사합니다.”

너는 세상에서 특별나게 좋은 일을 한 바는 없지만 네 믿음이 너를 구하였다. 친구까지 살렸으니 얼마나 귀하냐. 오늘은 환영 합창대의 노래를 들으며 천국에 입성하라.”

합창대 노래 소리가 온 하늘을 덮고 아름답게 퍼져나갔습니다. 그리고 노래 소리가 흘러가는 멀리 합창대도 따라 떠나고 푸른 조원에는 말과 덕구만 남았습니다. 말 준태가 말했습니다.

주인님, 어디로 모실까요? 투루툴 투투?”

덕구는 들은 체도 않고 사방을 두리번거리더니 말에 올라 합창대가 가고 있는 쪽으로 몰았습니다. 합창대는 초원을 지나 넓은 사막을 구름기둥처럼 둥둥 떠가고 사막은 아득히 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말 준태는 힘차게 부지런히 달렸지만 모래바닥에서 제대로 뛸 수가 없었습니다. 마침내 합창대도 안 보이고 노래 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합창대가 떠난 사막 중심을 향해 가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얼마나 갔는지 목이 마르고 힘이 빠져서 더 이상 갈 수 없어서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바로 옆에 그물망이 쳐 있고 그 안에 맑은 생수가 철철 넘쳤습니다.

주인님, 오아시스입니다. 맑은 물이 철철 넘칩니다. 아아, 목말라. 투투툴툴.”

아무리 소리쳐도 덕구는 들은 체도 않고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습니다. 덕구는 말이 투툴거리는 소리만 들리기 때문입니다.

주인님, 물 좀 마시게 해 주세요, 네네?”

그러나 덕구는 대답도 않고 망 사이를 뚫고 들어가 맑은 물을 두 손으로 가득가득 떠서 혼자만 쭈룩쭈룩 마셨습니다. 그것을 본 말 준태는 목이 더 말랐습니다.

주인님, 주인님. 저도 물 좀 주세요.”

주인 덕구는 물을 실컷 마시고 말을 돌아보았습니다.

주인님, 저도 물 좀 주세유우! 투투툴툴 투르르!”

덕구가 돌아보고 물었습니다.

너도 목이 마르다는 소리냐?”

, . 주인님 목이 말라 죽을 지경입니다. 투투툴!”

덕구가 물가로 가서 두 손에다 물을 가득히 담아가지고 그물망 사이로 내밀었습니다. 준태는 손바닥의 물을 핥아 마시며 말했습니다.

주인님, 한 번 만 더 떠나 주세요, 투투툴툴!”

덕구는 다시 들어가 물을 두 손에 가득히 담아와 말한테 먹였습니다.

주인님,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덕구는 계속하여 물을 퍼다 준태 입에다 넣어 주었습니다. 말은 그제야 정신이 들었습니다.

주인님, 고맙습니다. 이 은혜 영원히 잊지 않습니다. 주인님이 가시는 곳이면 어디든지 모시고 다니겠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순간 덕구는 말한테 물을 퍼 주다가 지쳐서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그물망 안으로 들어갈 수 없는 말은 애가 탔습니다.

주인님, 정신 차리세요. 주인님, 주인님.”

좋은 친구 16 / 하나님과 거래는 돈으로 못 갚아

말이 된 준태는 주인이 쓰러져 있는 모습을 보고 눈물까지 흘리며 애절하게 부르짖었습니다.

주인님! 그러시면 안 됩니다. 정신 차리세요! 일어나세요. 주인님!”

그래도 주인 덕구는 꼼짝 않았습니다. 준태는 다시 있는 힘을 다해 크게 소리쳤습니다.

주인님! 주인니임!!”

그러면서 눈을 번쩍 떴습니다. 앞에 예쁘고 하얀 천사가 이마에 부드러운 손을 얹으며 물었습니다.

정신이 드시나요?”

아주 부드럽고 친절할 목소리였습니다. 준태는 다시 눈을 감고 생각했습니다.

이게 어찌 된 거야, 사막에서 여자 목소리가……?’

이어서 누군가가 몸을 조심스럽게 만지며 손을 잡고 물었습니다.

제 말이 들립니까? 들리면 손가락을 움직여 보세요.”

준태는 손가락을 움직였습니다. 그 사람이 기쁜 소리를 질렀습니다.

됐습니다! 정신이 돌아왔습니다. 살았습니다.”

준태는 눈을 뜨고 보았습니다. 주변에 하얀 가운의 의사들이 둘러서서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준태가 지친 목소리로 물었습니다.

여기가 어딥니까?”

병원입니다. 정신이 드십니까?”

……, 그런데 왜 제가 여기 있지요?”

차차 아시게 됩니다. 말을 많이 하시는 건 좋지 않습니다. 안정을 취하십시오.”

그리고 모두들 자리를 떠났고 간호사 한 사람만 남았습니다. 간호사가 말했습니다.

아직은 말을 많아 하시면 안 되고 움직이셔도 안 됩니다.”

?”

지금 수혈 중이십니다. 정신이 드셨으니 수혈도 끝낼 될 것입니다.”

수혈이라고요?”

심하게 다쳐서 수혈을 하면서 수술을 받으셨어요.”

준태는 갑자기 자기 혈액형이 생각났습니다.

나는 특수 혈액형이라 아무 혈액이나 받을 수 없다고 들었는데 누가 수혈을……?’

그러면서 자기 몸과 연결되어 있는 건너편 사람을 건너다보았습니다. 옆모습으로 보아 덕구같이 생각되어 물었습니다.

저 분 이름이 어떻게 되시나요?”

박덕구씨라고 합니다.”

박덕구씨라고요?”

친구 사이라고 했어요.”

덕구는 잠이 든 듯 꼼짝 않았습니다. 준태가 혼잣말로 중얼거렸습니다.

이럴 수가, 이럴 수가…….”

그렇게 시간이 가고 수혈이 끝났습니다. 준태는 침대에 누운 채 아직도 눈을 감고 누워 있는 덕구를 바라보았습니다.

덕구, 덕구. 아니 나를 구한 주인님…….”

한동안 시간이 흐르고 덕구도 자리에서 깨어났습니다. 살아난 준태를 보고 감격하여 눈물을 지으면서 말했습니다.

준태, 고맙다. 살아나서 고마워. 고마워!”

준태는 더 감동되어 말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마음속 깊이서 울어나는 소리를 했습니다.

주인님, 저를 구해 주시어 감사합니다.”

덕구가 놀라서 물었습니다.

준태, 무슨 농담을 하는가? 내가 왜 주인이야. 나 덕구라고. 자네 친구 박덕구.”

압니다. 주인님.”

이 사람아, 농담할 때가 아니야. 여기는 병원이라고.”

다 압니다, 주인님.”

주인? 누가 주인이라는 거야? 농담 그만 해.”

아닙니다. 주인님 고맙습니다.”

허허, 이 사람이 기력이 없어서 헛소리를 하는군. 그러지 말고 잠시 안정을 취하는 게 좋겠어.”

아닙니다. 헛소리가 아닙니다. 주인님.”

이렇게 말하면서 몸을 일으켜 절을 하려는 자세를 취했습니다. 보고 있던 간호사가 말렸습니다.

아직 몸을 움직이시면 안 됩니다. 조심하세요.”

그러나 준태는 정색을 하고 눈물까지 흘리면서 애원하듯 말했습니다.

주인님, 제가 진심으로 절을 올립니다.”

간호사가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말했습니다.

친구 분끼리 농담도 이상하게 하시네요, 호호호.”

준태가 정색을 하고 말했습니다.

농담이 아닙니다. 저는 친구를 주인으로 모시게 된 것이 한없이 기쁠 뿐입니다.”

덕구가 더 어이없어 꾸짖듯 말했습니다.

이봐, 친구. 그만하면 됐어. 농담은 그만 하고 좀 쉬게.”

주인님, 농담이 아닙니다. 나는 주인님의 친구가 아닙니다.”

친구가 아니면 뭔가?”

말입니다.”

이 대답에 간호사도 웃고 덕구도 웃어댔습니다.

? 자네가 말이라고? 하하하.”

그러나 준태는 조금도 변함없이 정중하게 대답했습니다.

주인님, 하나님한테 저를 사셨으니 저는 주인님을 모시는 말입니다.”

덕구가 또 웃었습니다.

살아난 게 그렇게도 기쁜가? 농담을 해도 지나치군. 그게 무슨 농담인가 하하하.”

그리고 덕구가 정색을 하고 말했습니다.

내가 하나님한테 자네를 산 것이 아니라 자네가 나를 좁쌀영감한테 사주어서 고마우이.”

그건 무슨 말씀이십니까, 주인님.”

덕구는 품에 품고 있던 차용증을 내보였습니다.

내가 자네를 주인으로 모시는 것이 옳아. 나를 빚쟁이 손에서 구하여주지 않았는가. 정말 고마우이.”

아닙니다. 그까짓 차용증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사람끼리의 거래는 빚만 갚으면 되지만 하나님과 거래는 돈으로 갚지 못합니다.”

허허 점점 이상한 소리를 하는군. 수술이 잘못 되지 않았는지 알아보아야겠네.”

아닙니다, 주인님. 수술은 아주 잘 된 것 같습니다. 저는 아무 이상이 없습니다.”

아무 이상 없다면서 왜 자꾸 헛소리를 치는가?”

제 말씀을 들어보시지요, 주인님.”

좋은 친구 17 / 참 좋은 친구십니다 하하하

덕구가 말렸습니다.

제발 주인님이라고 하지 말고 친구로 말하세.”

저도 주인님께 알아보고 싶은 게 하나 있습니다.”

무엇이든 말해 보게.”

전에 말씀하셨지요? 세상에서 어떤 죄를 지어도 회개하고 용서를 빌면 하나님이 다 용서하시는데 하나님을 믿지 않는 죄만은 용서가 없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랬지, 그게 어떻다는 거야?”

저는 하나님을 만나보았습니다. 주인님께서 하나님한테 저를 사셨다는 걸 알았습니다.”

이 친구 점점 이상한 소리만 하는구먼. 난 하나님한테 아무것도 한 것이 없었어.”

저는 오늘부터 교회에 나가서 하나님을 열심히 믿으면서 주인님을 돕겠습니다.”

교회에 나간다는 말은 반갑지만 죽었다 산 사람이 무슨 하나님을 만나고 어쩌고 할 수 있나. 농담도 적당히 하게.”

아닙니다, 주인님.”

자꾸 주인님 주인님하면 나도 자네한테 주인님이라고 부르겠네.”

준태가 손을 저었습니다.

그건 절대 안 됩니다. 주인님.”

나도 좁쌀영감한테 자네가 사 간 것을 알았으니 주인님이라고 하겠네.”

그런 말씀은 절대 안 됩니다. 주인님.”

내가 왜 주인인가?”

제가 말이 되어 목이 말라 죽을 것 같을 때 주인님이 두 손에다 물을 담아다 먹여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살아났습니다.”

꿈을 꾸었군. 내가 언제 물을 먹여주었는가?”

이때 간호사가 끼어들었습니다.

그 말씀은 맞는 것 같습니다. 하마터면 생명을 잃을 뻔했는데 마침 수혈을 해 주어 살아나셨으니 말한테 물을 먹여준 것과 같지 않아요.”

덕구가 알아들었다는 듯 말했습니다.

그 정도라면 친구간에 아무것도 아닌데 주인으로 모신다는 말이 되는가. 고맙다고 한 마디 하면 되는 거지.”

 

그로부터 한 달 뒤 병원에서 퇴원한 준태가 덕구를 만났습니다.

주인님, 이제 저도 교회에 나가서 하나님께 용서를 빌겠습니다.”

아직도 주인님인가? 제발 그만 하게.”

아닙니다. 한번 주인은 영원히 주인이십니다.”

그렇다면 좋아. 나도 자네를 주인님이라고 부르겠네.”

그건 절대 안 됩니다. 좁쌀영감한테 돈 주고 돌려받은 차용증과 주인님이 하나님한테서 저를 산 것은 엄격히 다릅니다. 주인님.”

덕구는 준태를 이해할 수 없어서 또 물었습니다.

자네는 나를 주인이라고 하면서 나는 자네를 친구로 부르라는 건가?”

아닙니다. 친구가 아닙니다. 종입니다. 말입니다.”

말이라는 소리에 덕구는 또 웃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하하하, ? 타고 다니는 말이라고?”

, 주인님을 태우고 다니는 말입니다.”

정말 그런가?”

그러합니다. 제 등을 타시지요.”

준태는 정중히 엎드려 등을 돌려댔습니다. 덕구는 기가 막혀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

주인님, 타십시오.”

농담이 심하군. 친구.”

농담도 아니고 친구도 아닙니다. 주인님.”

나 보고 어째라는 건가?”

저을 타고 교회로 가십시오.”

하하하, 사람들이 보면 얼마나 웃겠나. 이건 장난도 아니고…….”

장난이 아닙니다. 주인님.”

준태는 겸손하고 장난기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덕구도 마음을 정했습니다.

자네가 주인님이라고 하면 나는 친구님 하고 부르겠네.”

님자는 안 달아도 됩니다.”

이게 어찌 된 일이야? 진짜 같잖아?”

진짜입니다. 주인님.”

덕구도 이제 친구님이라고 부르기로 했습니다.

친구님, 이러지 말고 일어나 나하고 하나님한테 갑시다.”

, 주인님.”

교회 가는 것을 그렇게 거부하던 준태가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교회에 따라오고 겸손했습니다. 교회 문안에 헌금꽂이 봉투함이 보였습니다. 덕구가 봉투 두 개를 뽑아들었습니다. 그것을 보는 순간 준태가 달려들어 봉투 하나를 잡았습니다.

주인님, 이 봉투는 이 봉투는…….”

왜 그러는가? 친구님.”

바로 그 봉투입니다. 주인님.”

그 봉투라니?”

하나님이 저한테 보여주신 봉투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덕구는 친구가 크게 다쳐서 정신 이상이 된 것이 아닌가 걱정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이 봉투를 어찌 아신단 말인가?”

주인님이 이 봉투로 하나님한테 저를 사셨습니다.”

허허, 친구님. 이러지 마시게.”

아닙니다. 주인님.”

친구님…….”

주인님, 저는 하나님께 팔린 것을 지금 확실히 알았습니다. 누가 뭐래도 저는 주인님 말입니다.”

친구님, 나도 이미 좁쌀영감한테 사셨으니……

아닙니다, 그것과 이것은 다릅니다. 주인님.”

두 사람이 주고받는 소리를 들은 목사님이 다가와 한마디 했습니다.

두 분이 농담을 아주 재미있게 하십니다. 날씨가 너무 더워서 그러시는 거지요? 참 좋은 친구십니다, 하하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