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따 호랑이
할머니가 밭에서 일을 하는데 어디선가 아기 고양이 신음 소리가 들렸습니다.
“야아옹, 야아오옹.”
숨이 넘어가는 듯 아주 작고 슬픈 소리였습니다.
“이게 무슨 소리야?”
할머니는 소리 나는 쪽으로 다가갔습니다.
풀밭에 아주 작은 고양이 새끼가 까불어져 있었습니다. 얼마나 못 먹었는지 배가 등에 착 달라붙어 있었습니다. 할머니는 고양이를 두 손으로 감싸들고 말했습니다.
“어쩌다 여기 와서 이러고 있니? 얼마나 굶었으면 배가 등가죽에 붙었을까. 불쌍하기도 하지.”
할머니는 마시려고 가져온 우유병을 열어 고양이 입에다 대주었습니다. 배고픈 고양이는 우유를 맛있게 받아먹었습니다.
“불쌍한 것 딱하기도 하지. 우리 집에 가서 살자.”
할머니는 고양이를 안고 집으로 와서 새끼들이 줄줄이 붙은 개 순만이한테 주며 말했습니다.
“순만아, 미안하지만 새끼 하나 더 길러주어야겠다. 어쩌겠니 이것도 살자고 태어나 나를 만났으니 네가 젖 좀 먹여다오.”
엄마 개 순만이는 순한 눈으로 껌벅거리며 알았다는 듯 고양이 앞에 젖을 내밀었습니다. 고양이는 우유 먹은 지 얼마 안 되는데 금방 젖을 또 빨았습니다. 어미 개는 고양이 등을 혀로 핥아주었습니다
이때 밖에서 뒹굴고 뛰놀던 강아지들이 우르르 몰려왔습니다. 그리고 고양이를 보자 신기한 듯 어미 개에게 물었습니다.
“엄마, 얘는 누구야?”
“주인 할머니가 데려오셨다. 너희들한테 동생이 생겼으니 잘 데리고 놀아라.”
이때 할머니가 오셨습니다.
“컹컹아” 하고 불렀습니다. 맏이가 “컹컹” 하고 대답했습니다.
할머니는 또 “멍멍이” 하고 둘째를 불렀습니다. 둘째는 “멍멍”하고 대답했습니다.
셋째가 할머니보다 먼저 “망망”하고 짖었습니다. 할머니는 망망이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말했습니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귀염 받는 건 제 할 나름이야. 요것은 미리 알고 망망하네. 다음은 누구지?”
막내이며 누나 눌눌이가 “눌눌 눌눌” 하고 할머니한테 안겼습니다. 할머니는 눌눌이를 안아주며 말했습니다.
“넌 사람보다도 애교 있고 영리해. 알았지? 오늘 고양이 동생을 하나 더 얻어다 놓았다. 잘 데리고 놀아라.”
눌눌이는 고양이를 들여다보며 중얼거렸습니다.
“넌 이름이 뭐야? 어린 것이 수염이 다 있고, 고양이는 고양인데 이상해.”
고양이는 동그란 눈을 뜨고 눌눌이를 바라보며 대답했습니다.
“누나 안녕? 난 이름 없어.”
“그럼 내가 이름 지어 줄까?”
2. 불쌍한 왕따
눌눌이가 이름을 지어 주었습니다.
“넌 놀놀이라고 해, 알았지?”
“놀놀이? 알았어.”
“놀놀아, 넌 나한테 누나라고 불러야 해. 불러 봐.”
“누우나 누나 이름은 없어?”
“난 눌눌이야. 넌 놀놀이고 난 눌눌이 알았지?”
“알았어.”
이때 셋째 망망이가 끼어들었습니다.
“이 쪼그만 게 뭐하고 있는 거야. 이리와 봐. 넌 나보다 몇 배나 작은 장난감 같다. 장난감 인형, 아니 아니지 장난감 고양이? 아니야 호돌이?”
눌눌이가 말을 막았습니다.
“오빠, 얘는 놀놀이야. 내가 놀놀이라고 이름 지어 주었어. 그리고 얘는 장난감이 아니야. 내 동생이라구.”
“알았다. 누나 소리 들어서 좋겠다.”
강아지 사남매와 눌눌이는 밖으로 나갔습니다. 컹컹이가 껑충껑충 뛰어가고 그 뒤를 멍멍이가 깡충깡충, 또 그 뒤를 망망이가 팔딱팔딱 그리고 눌눌이가 놀놀이를 데리고 따랐습니다.
동네 아이들이 따라오면서 소리쳤습니다.
“강아지다! 잡아라!”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강아지를 하나씩 잡았습니다. 그리고 모두 예쁘다고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얼굴에 비비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고양이 놀놀이를 잡은 아이는 울상이었습니다.
“뭐 이런 것도 다 있어. 강아지가 아니야.”
다른 아이가 들여다보며 말했습니다.
“그건 고양이야 고양이.”
또 다른 아이가 말했습니다.
“고양이 같은데 무섭게 생겼다. 버려!”
놀놀이를 잡은 아이가 안고 있다가 땅으로 던졌습니다. 고양이놀놀이는 사쁜히 땅에 내렸습니다.
아이들은 강아지를 안고 좋아하면서 방앗간 옆 짚더미로 달려갔습니다. 놀놀이도 아이들을 따라 갔습니다. 한 아이가 고양이를 돌아보며 소리쳤습니다.
“넌 오지 마! 보기 싫어!”
이때 아이들이 강아지를 내려놓고 서로 엉겨 붙어 씨름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사이에 눌눌이가 달려와 놀놀이를 핥아주며 말했습니다.
“놀놀아 나하고 놀자.”
수캉아지 세 마리는 저희들끼리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장난을 치고 아이들도 강아지들처럼 뛰어 놀았습니다. 그러나 눌눌이는 놀놀이를 데리고 동네 골목길을 돌아다니며 구경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해가 기울어서야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어미 개는 놀놀이에게 젖을 먼저 물렸습니다. 놀놀이는 젖을 열심히 빨았습니다.
다음 날도 강아지들은 방앗간 옆으로 갔습니다. 그러나 고양이 놀놀이는 가지 않고 집에 있었습니다. 그것을 본 주인 할머니가 물었습니다.
“넌 왜 안 나가고 집에만 있느냐?”
놀놀이가 대답했습니다.
“할머니, 저는 동네 애들이 못 생겼다고 안 놀아 주어요.”
“그러냐? 알았다.”
할머니는 방에 들어가시더니 아주 예쁘게 생긴 강아지 얼굴 씌우개를 만들어 놀놀이에게 씌워 주었습니다. 놀놀이가 쓴 것을 보자 눌눌이도 그런 모자를 만들어 달라고 졸랐습니다.
할머니는 놀놀이 것과 똑같은 것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어미개는 그것을 보고 귀엽다고 핥아주었습니다.
예쁜 얼굴 씌우개를 쓴 두 마리가 나가자 동네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하나씩 안아주고 사랑해 주었습니다.
고양이 놀놀이는 아이들의 사랑을 받고 주인 할머니의 보살핌으로 건강하게 자랐습니다.
3. 킹카 왕따
하루가 다르게 몸집이 부쩍부쩍 커지는 고양이 놀놀이는 맏이 컹컹이보다 더 컸습니다. 어느새 컹컹이도 강아지가 아니라 개가 되었습니다. 모두가 어미 개만큼 자라서 강아지라고 부르지 않았습니다.
컹컹이 떼들이 달려 나가면 사람들이 전에는 강아지라고 귀여워했는데 이젠 개떼라고 하면서 전처럼 귀여워해 주지도 않았습니다.
그뿐 아니라 사람들은 얼굴 가리개를 한 놀놀이를 보고 대장개라고 불렀습니다.
컹컹이는 기분이 나빴지만 놀놀이를 당할 힘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놀놀이는 저보다 허리도 굵고 튼튼하고 머리도 눈도 아주 컸습니다. 그리고 발도 제 발보다 두 배는 컸습니다.
할머니는 이렇게 무럭무럭 자라는 놀놀이한테 아주 예쁜 머리 씌우개를 크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말했습니다.
“생쥐같이 작던 것이 이렇게 컸구나. 이제 너도 다 큰 거야. 다른 개들보다 두 배는 더 컸어.”
어느새 다른 형들은 막내 놀놀이와 놀지 않고 저희들끼리 놀러 다녔습니다. 그러나 누나 눌눌이는 동생이 저보다 훨씬 큰 것을 자랑스럽게 여겼습니다.
놀놀이도 누나가 자기를 사랑해 주는 것을 알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누나 내 등에 타 볼래?”
“허리 다쳐.”
“아니야 타 봐. 괜찮아.”
“그럼 한번 타 본다. 얏!”
눌눌이가 놀놀이 등에 올랐습니다.
“누나 꽉 잡아 한번 달려 볼게.”
놀놀이는 눌눌이를 업고 힘차게 동네 한 바퀴를 돌았습니다. 다른 개형들이 바라보고 부러워했습니다.
“나도 한번 타 봤으면.”
마을 아이들은 놀놀이가 달려가는 것을 보며 재미있다고 웃어댔습니다. 그러나 컹컹이는 기분이 안 좋았습니다.
‘제 까짓게 힘이 세다고 뽐내?’
저녁에 집에 돌아왔을 때 컹컹이가 놀놀이를 불렀습니다.
“넌 형들이 무섭지도 않으냐?”
놀놀이는 순하게 대답했습니다.
“왜 그래요 형님.”
“사람들 보는 데서 그것도 누나를 업고 돌아다녀?”
“……”
맏이 컹컹이가 다 큰 암캐가 된 동생 눌눌이를 꾸짖었습니다.
“너도 이제는 강아지가 아니야. 다 큰 개라고. 그런데 동생 등을 타고 다니며 헤헤거려?”
“오빠는 무슨 소리야? 놀놀이가 얼마나 힘이 좋은지 알아? 오빠보다 훨씬 힘이 세다고.”
맏이 컹컹이가 화를 냈습니다.
“너희들 안 되겠어. 둘 다 앞발 들고 서!”
놀놀이가 큰 배를 쑥 내밀고 주걱같이 넓적한 발을 높이 들고 섰습니다. 그리고 빌었습니다.
“큰형님 잘못했습니다. 앞으로는 조심하겠습니다.”
“너도 앞발 들고 서!”
아직도 눈치만 살피던 막내 눌눌이도 앞발을 들고 서며 물었습니다.
“언제까지 이렇게 있어야 해?”
“내가 그만 할 때까지.”
놀놀이는 바위처럼 큰 몸을 세우고 꿈쩍 않는데 눌눌이는 발을 들었다 엎어지고 또 일어섰다가 엎어졌습니다.
“오빠 너무해, 난 일어설 수가 없어. 오빠도 해 봐.”
이때 작은오빠 멍멍이가 히히거리며 일어나 앞발을 들고 서 보았습니다. 그러나 바로 설 수가 없었습니다.
“형, 이건 너무 해. 나도 설 수가 없는데 동생들 보고 서 있으라는 건 무리야. 우릴 사람인 줄 알아?”
4. 벌서는 왕따
“뭐라고? 우리가 사람만도 못하단 말이냐?”
“형이 해 봐.”
이때 놀놀이가 말했습니다.
“형님 잘못 했습니다. 제가 눌눌이 누나 몫까지 벌 설 테니 누나한테는 벌주지 마세요.”
눌눌이가 좋아서 말했습니다.
“큰오빠 다시는 안 그럴게 용서해.”
맏이 컹컹이가 놀놀이한테 말했습니다.
“너 이제 힘 자랑하지 않을 거지?”
“네 형님.”
“그만 내려.”
“고맙습니다 형님.”
놀놀이는 앞발을 내렸습니다.
다음 날입니다.
둘째 형 멍멍이가 놀놀이를 불러냈습니다.
“야, 너 나하고 어디 가자.”
“어디요?”
“그건 묻지 말고 따라와 봐.”
멍멍이는 앞서서 언덕으로 갔습니다.
“여기서는 아무도 못 본다. 너 나 좀 업고 달려 봐.”
“형님한테 들키면 벌서요.”
“괜찮아, 형도 여기는 몰라.”
“알았어. 딱 한번만이야.”
“알았어. 빨리 엎드려 봐.”
놀놀이는 넓죽 엎드려 멍멍이를 태우고 산비탈을 달렸습니다. 얼마나 잘 달리는지 고속버스보다 빨랐습니다.
둘이는 산 고개를 몇 개나 넘고 들을 지나 여러 동네를 구경하고 돌아왔습니다. 저녁이 되자 모두 모였습니다. 둘째 멍멍이에게 맏형이 물었습니다.
“너희들 어디를 갔다 온 거야?”
멍멍이가 대답했습니다.
“형, 나 어디 갔었는지 알아?”
“어디냐?”
“저 산 너머 마을에 아주 예쁜 암캐가 있거든. 그게 신랑감을 찾으며 시집가고 싶어하더라구. 형하고 잘 어울릴 거 같던데 히히히.”
맏이는 화난 얼굴을 웃는 얼굴로 바뀌었습니다.
“그래? 흐흐흐흐 내가 이제 장가를 가도 될까? 놀놀이도 보았니?”
“네. 형님.”
“알았다. 늦었으니 자고 낼 보자.”
다음 날 아침입니다. 동생들이 다 나간 다음 맏형 컹컹이가 놀놀이를 조용히 불렀습니다.
“놀놀아, 너 어제 갔던 동네 알지?”
“네, 알아요.”
“나하고 한 번 가 볼래?”
“네.”
컹컹이와 놀놀이는 나란히 걸어서 동네를 벗어났습니다. 아무도 안 보는 곳에 이르자 컹컹이가 점잖게 말했습니다.
“야, 이거 체면은 아니지만 너 나도 업고 달릴 수 있겠냐?”
“그럼요.”
“내가 어제 보니 너 힘 좋더라. 둘째를 업고 달리는데 내가 따라 잡으려고 했지만……”
“형님이 보셨다구요?”
“보았지. 저녁에 벌을 세우려고 했는데 시집가고 싶어하는 개가 있는 동네를 안다는 말에 눈 감아 주었다.”
맏형 컹컹이는 한쪽 눈을 찡긋해 보였습니다.
“형님 고맙습니다.”
“야. 비밀이야. 알았지? 나를 업고 어제처럼 달려 봐.”
“네, 형님 제 등에 타세요.”
“고맙다. 그럼 신세 좀 지자.”
“꽉 잡으세요. 시속 백 킬로로 달립니다.”
“그건 너무 빠르다. 내가 운전하는 대로 가라. 시속 60길로로!”
“알았습니다. 시속 백 킬로로 달리다 떨어지면 아주 위험합니다. 잘 생각하셨어요.”
“알았다.”
컹컹이는 순식간에 암캐가 사는 동네로 들어갔습니다. 놀놀이가 헝님을 내려주고 말했습니다.
“저는 여기 있을 테니 형님이 동네에 들어가 색시 감을 찾아 보세요.”
“알았다. 넌 여기서 기다려라.”
컹컹이가 혼자 동네에 들어서자 온 동네 수캐들이 길을 막았습니다.
“넌 누구냐?”
“난 이 동네에 장가들러 왔다.”
“뭐라고? 이게 어디서 굴러들어온 뼈다귀 같은 것이 감히!”
가장 큰 개가 와락 달려들었습니다. 컹컹이가 목덜미를 물려 이리저리 휘둘리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본 놀놀이가 크게 화가 나서 소리쳤습니다.
“어어, 어흥 어흥! 꽈아악!”
“이크 이게 무슨 소리야.”
갑자기 동네 개들이 놀라 사방으로 흩어지고 컹컹이를 물고 흔들던 개도 꼬리를 내리고 어디론가 달아났습니다.
그 소리에 컹컹이도 정신이 빠져나가는 것 같아 어디로 가서 숨을까 하는데 저쪽에서 놀놀이가 오고 있었습니다.
“형님, 저 여기 있어요.”
“야, 너 무슨 소리 못 들었어?”
5. 왕따 어흥이
놀놀이가 물었습니다.
“형님 그게 무슨 소리요?”
컹컹이는 머리를 저으며 겁에 질린 얼굴로 말했습니다.
“우리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소리였다.”
“무슨 소린데요?”
“그건 말로 못 해. 천둥소리보다 더 무서운 소리야. 정신이 빠져나갔어.”
“나는 아무 소리도 못 들었는데 이상하네. 형님 저쪽에 예쁜 암캐가 숨어 있어요. 가 보세요.”
“알았다. 저것이 내 짝 같다. 넌 마을 밖에 가서 기다려라.”
컹컹이가 암캐 곁으로 다가갔습니다. 암캐는 컹컹이를 데리고 마을 깊이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밤이 되어도 컹컹이는 오지 않았습니다. 다음 날 아침까지 기다려도 컹컹이는 오지 않아 놀놀이 혼자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집에서는 할머니도 어미 개 왕왕이도 잠을 못 자고 기다렸습니다. 놀놀이가 혼자 오는 것을 본 둘째 멍멍이가 말했습니다.
“너 형님 장가들이고 혼자 오는구나. 히히히히.”
“형님, 그게 무슨 소리요?”
“다 그런 거야. 짝 만나면 집을 떠나는 게 개야.”
“네?”
할머니도 이상한 소리를 했습니다.
“그 놈이 이제 장가 갈 때가 된 거지. 제 짝 찾아간 거야. 기다릴 것 없다. 어디든 가서 새끼 많이 낳고 잘 살면 되지.”
놀놀이는 이상해서 엄마 개에게 물었습니다.
“엄마, 큰형님은 안 오실까요?”
“안 온다. 개는 한번 나가면 집 같은 건 잊어버린다.”
“형님이 동네에 들어갔을 때 그 마을 개들이 덤벼들어 형님을 물고 흔들었어요.”
“그랬구나, 그래서?”
“내가 멀리서 보다가 화가 나서 큰소리로 너희들 가만 안 둔다! 하고 외쳤지요. 그랬더니 온 동네 개들이 다 달아나고 형님은 나를 보고 오면서 말했어요. 너 무슨 소리 못 들었니? 하는 거예요. 히히히.”
“왜 웃냐?”
“내가 지른 소리를 내가 왜 못 듣겠어요.”
“어떻게 소리를 질렀기에?”
“한번 해 볼까요?”
“해 봐라.”
놀놀이는 어제처럼 화난 소리를 질렀습니다.
“어어 어흐흥! 꽉아악!”
소리를 들은 어미개가 갑자기 몸을 오그리고 벌벌 떨었습니다.
“엄마, 왜 그래? 엄마.”
놀놀이가 놀라 어미 개에게 달려들었습니다.
“아아 아니다 아니야, 다가오지 마.”
“왜 그래 엄마?”
어미 개는 벌벌 떨면서 앞발을 저었습니다.
“가만히 있어, 가만히 너 그대로 있어.”
놀놀이는 더욱 엄마 개 가까이 머리를 대고 보았습니다. 어미 개가 겁먹은 소리로 대답했습니다.
“넌 놀놀이가 아니야, 아니야.”
“왜 그래요 엄마?”
“넌 어흥이야 어흥이!”
“난 엄마 아들 놀놀이 할 거야. 엄마, 그러지 마.”
“넌, 넌 강아지도 아니고 개도 아니야.”
“엄마 왜 그래? 난 엄마가 기른 아들 개야.”
“넌 이제부터 어흥이다.”
“알았어, 어흥이 할게, 개가 아니라고만 하지 마 엄마.”
“알았다.”
어미 개는 떨기를 멈추고 놀놀한테 다가와 등을 핥아 주었습니다. 그렇지만 어흥 소리에 놀란 가슴은 아직도 뛰었습니다.
6. 난 엄마 아들 개야
어미 개를 바라보며 어흥이가 다짐했습니다.
“엄마, 내가 어흥이라고 해도 나는 엄마 아들 개야. 맞지?”
“그래 너는 개다, 내 새끼다.”
어흥이로 이름을 바꾼 놀놀이가 어미 개 품에 안겼습니다. 그러나 몸집이 너무 커서 겨우 머리만 어미 개 가슴에 묻었습니다. 어미 개는 제가 고양이인 줄 알고 젖을 먹여 키운 게 호랑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개가 가장 무서워하는 동물이 호랑이입니다. 호랑이는 사람들도 무서워하는 동물입니다. 어미 개는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키운 고양이 새끼가 무서운 호랑이일 줄은 몰랐어. 그런 줄 알았으면 젖을 먹이지 않는 건데…… 그렇지만 자식이라고 개 노릇을 하니 어쩌면 좋아.’
어흥이가 부리부리한 눈을 뜨고 말했습니다.
“엄마. 나 오늘 놀러 갔다 와도 돼?”
“어디를 가려고?”
이때 멍멍이가 듣고 끼어들었습니다.
“야, 놀놀이, 너 혼자 갈 거냐?”
“형, 나 이제부터 놀놀이가 아니야. 엄마가 이름 새로 지어주었어.”
“뭐라고?”
“어흥이.”
“어흥이가 뭐냐? 어흥 어흥.”
“놀놀이보다 난 더 좋아. 엄마가 지어 주었으니까.”
“좋다, 나도 너를 어흥이라고 부르지. 어흥 어흥 어째 개 짖는 소리가 아니라 무시무시한데. 컹컹 멍멍 망망 눌눌이가 더 좋은데 말야. 너 어디 갈 거야? 나도 같이 가자.”
“그래 형도 같이 가.”
어흥이는 멍멍이와 함께 동네를 벗어났습니다. 멍멍이가 말했습니다.
“나 태워줄래?”
“알았어, 형.”
어흫이는 멍멍이가 바라는 대로 등에 태우고 먼 동네로 갔습니다. 거기서 멍멍이는 좋아하는 암캐를 만나 컹컹이 형처럼 어디로 가 버리고 오지 않았습니다.
어흥이는 밤길을 걸었습니다. 달도 없고 캄캄한 밤이었지만 눈을 크게 뜨고 앞을 보면 길이 환히 보였습니다. 마치 전등불을 켜고 가는 것처럼 잘 보였습니다.
마을 가까이 왔을 때 저쪽에서 엄마 개와 주인 할머니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어흥이 눈에서 번쩍번쩍 빛이 나는 것을 본 할머니가 놀라 어미 개에게 말했습니다.
“얘야, 저 빛은 호랑이 눈빛이다. 돌아가자.”
어미 개는 그것이 어흥이라고 생각하고 크게 불렀습니다.
“어흥아! 어흥아!”
어흥이는 엄마 소리를 듣고 기뻐서 달려왔습니다.
“엄마 저 왔어요. 어흥이에요. 어흥!”
주인 할머니는 그 소리에 놀라 벌벌 떨었습니다. 어미 개가 말했습니다.
“주인님 염려 마세요. 제 아들 어흥이 맞아요.”
“네 아들이지만 그 소리가 난 무섭다.”
“염려 마세요. 저 애는 껍데기는 호랑이지만 속은 제 아들 개예요.”
어흥이가 다가와 말했습니다.
“엄마, 늦어서 미안해요. 주인 할머니도 나오셨어요?”
“멍멍이는 어쩌고 너 혼자냐?”
“큰형님처럼 암캐를 만나서 어디로 가고 안 옵니다.”
주인 할머니가 말했습니다.
“개나 사람이나 짝 만나면 부모 버리고 떠나는 건 같지. 암캐 짝을 만나 갔으니 기다릴 것 없다. 그 애는 안 온다.”
어흥이가 배를 넓죽 깔고 말했습니다.
“할머니, 엄마, 제 등에 타세요. 제가 모시고 갈게요.”
할머니가 손을 저었습니다.
“아니다 그냥 가자.”
“할머니, 저 힘이 얼마나 센지 한번 알아보세요. 타 보세요.”
어미 개가 말했습니다.
“할머니, 그렇게 하시지요.”
할머니는 겁을 잔뜩 먹고 어흥이 등에 올랐습니다. 어미 개도 함께 올랐습니다. 어흥이는 벌떡 일어나 천천히 걸어 집으로 돌아오며 말했습니다.
“할머니, 이제부터는 들에 가실 때나 장에 가실 때 저하고 같이 가세요. 제가 태워드릴게요.”
“고맙긴 하지만 그럴 수 있겠냐.”
7. 집 나간 어흥이
다음 날입니다.
눌눌이가 엄마 개한테 불만스럽게 말했습니다.
“엄마, 난 어흥이하고 같이 살기 싫어.”
“왜 무서워서 그러냐?”
“무섭긴 뭐가 무서워. 그까짓 게.”
“그런데 왜?”
“나도 이제 시집가고 싶단 말야.”
“그렇구나, 너도 이제 다 컸지. 그런데 어흥이가 어째서?”
“다른 개들이 그러는데 어흥이 동생이 무서워서 나하고 짝 하기 싫다는 거야.”
“그런 일이 있구나. 너희들이야 동생이니까 안 무섭지만 다른 동무들은 무서워할 거다.”
“엄마, 난 집을 나갈 거야. 건너 마을에 마음에 드는 짝이 있어.”
이때 망망이도 끼어들었습니다.
“엄마 나도야, 나도 장가가 가고 실은데 어흥이 때문에 다른 애들을 사귈 수가 없어.”
어미 개는 걱정스럽게 말했습니다.
“어쩌면 좋으냐?”
눌눌이가 말했습니다.
“어흥이를 내보내든지 우리가 나가든지 해야 할 거야.”
망망이도 거들었습니다.
“엄마 그렇게 해요. 어흥이를 내보내요.”
“안 된다. 어흥이는 껍데기만 호랑이지 속은 개다. 내보내면 다른 동물한테 물려죽을 거야.”
눌눌이가 말했습니다.
“그럼 우리가 나갈게요.”
이렇게 말하는 소리를 어흥이가 멀리서 듣고 있었습니다. 어흥이는 개보다 귀가 밝아서 아주 먼 데서 하는 이야기도 들을 수가 있습니다. 어미 개가 말했습니다.
“너희들은 나가서도 살 수 있지만 어흥이는 위험하다.”
망망이가 말했습니다.
“엄마는 우리 보고 나가도 좋다는 말이지?”
“좋다는 말은 아니지만……”
“알았어요. 어차피 우리는 짝을 만나면 엄마 곁을 떠나야 하는 거니까 우리가 나갈게요.”
어흥이는 엄마가 걱정해 주는 것이 너무 고마워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엄마, 고마워. 형과 누나가 한꺼번에 나가면 엄마는 얼마나 슬프겠어. 내가 나가는 게 좋겠어.’
어흥이는 밤중에 살그머니 집을 나갔습니다.
8. 개가 사람을 닮아
어흥이가 나가서 없는 것도 모르는 망망이과 눌눌이는 아침 일찍 마을을 떠나 먼 마을로 짝을 찾아 갔습니다.
할머니는 하룻밤 사이에 어흥이도 다른 새끼 개들도 없어진 것을 알고 마음 아파하며 어미 개에게 말했습니다.
“애들이 한꺼번에 다 집을 나가니 너무 허전하다. 네가 나가서 누구든 찾아오너라.”
“네, 할머니.”
어미 개는 어흥이와 새끼 남매를 찾아 길을 떠났습니다. 낯선 동네로 새끼를 찾아가는 어미 개를 어흥이가 산 속에 숨어서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한 동네로 어미 개가 들어가자 그 마을의 커다란 개들이 몰려나와 공격을 했습니다.
“이 늙은 것이 감히 어디를 들어오는 거야. 너 같은 건 우리 동네에 못 들어와 왕왕왕!”
“어디서 굴러오는 똥개야. 못 보던 것이? 컹컹컹칵칵!”
순식간에 동네 개들이 달려들어 어미 개를 물고 흔들어댔습니다. 그것을 보고 화가 난 어흥이가 마을을 향해 달려가며 소리쳤습니다.
“어흥! 어어흥흥!”
어흥이 소리에 놀란 개들이 갑자기 모두 꼬리를 내리고 이리저리 달아나 숨었습니다.
어미 개는 그만 지쳐서 털썩 주저앉았습니다. 그 사이에 어흥이가 다가와 말했습니다.
“엄마, 어흥이가 왔어요.”
어미 개는 눈이 번쩍 띄었습니다.
“어흥이냐?”
“네, 엄마 다친 데는 없어요?”
“괜찮다. 넌 어디 있다가 나타난 거냐?”
“엄마가 어디로 가는지 지켜보고 있었어요.”
어흥이는 어미 개 앞에 넓죽 엎드렸습니다.
“제 등에 타세요. 집으로 갈게요.”
“아니다, 나도 걸어갈 수 있어.”
“여기서 우리 동네까지 가자면 멀어요. 제가 금방 모시고 갈게요.”
어미 개는 어흥이 등에 올랐습니다. 어흥이는 신이 나게 잘려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할머니는 어흥이를 보자 반가워서 달려들어 목을 끌어안고 기뻐했습니다.
“네가 왔구나 내 새끼. 네가 왔어 고맙다.”
“할머니 저는 사람이 아니에요. 개예요.”
“안다 알아, 그래도 넌 개도 아니고 사람도 아니지만 사람보다 낫고 개보다 낫다.”
“할머니 고맙습니다. 저는 할머니가 생명의 은인이신걸요.”
“나한테 그렇게 말하지 말고 어미 개한테 고맙다고 해라. 어미 개가 젖을 안 주었으면 넌 벌써 죽었다.”
“두 분 감사합니다.”
어흥이는 할머니와 어미 개 앞에서 두 발을 높이 들었다 넓죽 엎드려 절을 했습니다.
어미개가 말했습니다.
“너의 누나도 형도 다 나갔다. 이제 남은 건 나하고 너하고 둘뿐이다. 할머니 은혜를 정성껏 갚아드려야 한다.”
“알았어요. 엄마 난 엄마하고 할머니한테 잘 해드릴 자신 있어요. 그런데 눌눌이 누나하고 망망이 형은 정말 안 돌아올까요?”
“안 온다. 옛날에는 짝을 찾아 나간 개들이 새끼를 낳으면 데리고 와서 어미 개한테 인사도 했는데 지금은 사람을 닮아서 한 번 나가면 안 온다.”
“사람을 닮아요?”
“사람도 옛날에는 부모 모시기에 정성을 다하여 효자가 많았다. 자기 자식보다 부모를 더 잘 모시었는데 지금은 사람들이 무서워졌어. 부모보다는 저밖에 모르고 제 짝과 새끼들만 알고 부모 생각은 하지 않는 사람이 아주 많아졌다. 이러다가는 사람이나 우리 개나 똑같아지겠다. 개는 새끼가 어미를 문다든가 죽이는 일은 절대 없다. 그런데 사람 가운데는 아주 무서운 자식이 있어서 부모를 학대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차마 말을 못하겠다. 넌 모르는 게 좋아.”
그 날부터 어흥이는 할머니 방에서 자고 어미 개는 마루에서 잤습니다. 할머니가 어미 개도 같이 방에서 자자고 했지만 어미 개는 밖에서 자는 것이 편하다고 고집을 부렸습니다.
어흥이는 할머니와 함께 자면서 궁금한 것이 있어서 물었습니다.
“할머니 무엇이든 물어 봐도 돼요?”
9. 상속법
“모르는 것만 빼도 다 물어 보거라.”
“할머니는 왜 혼자 살아요?”
“그게 궁금하냐?”
“네. 제가 여기 온 지도 벌써 삼년이 넘었는데 할머니를 찾아오는 사람은 동네 사람들뿐이었어요. 그런데 요새는 동네 사람마저도 오지 않아요. 왜 그래요?”
할머니는 한참 동안 대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어흥이가 새끼 때는 동네 사람들도 고양이인 줄 알았는데 차츰 자라고 보니 호랑이라는 것을 알고는 무서워서 오지도 않고 밤에는 문을 걸어 잠그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알고 있는 할머니는 대답을 망설였습니다.
“나한테는 아들 삼형제와 딸 형제가 있는데 그 아이들이 모두 짝을 찾아 나간 뒤로는 안 온단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재산을 유산 상속법대로 오남매한테 똑같이 나누어주고 간 것이 문제였다. 큰아들은 유산을 똑같이 나누어 가졌는데 내가 왜 어머니를 모시느냐고 안 오고 동생들은 큰형이 있는데 왜 우리가 모시느냐고 안 온단다. 그런 법이 만들어져 사람들을 버려 놓았다. 예전에는 큰아들한테 재산을 더 주어 큰아들이 부모를 모시고 집안의 큰일에 책임을 졌는데 법이 바뀐 뒤부터는 형제간에도 사이가 나빠졌고 사람들은 돈만 좋아하고 점점 악해지고 있단다. 세상이 돈만 좋아하는 병이 들어서 이 모양이란다.”
어흥이는 그제야 한 가지 이해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개가 사람을 닮았다고 하시는 건가요?”
“그렇단다. 개도 이제 옛날 개가 아니다.”
“저도요?”
“넌 빼놓고 호호호호. 넌 개가 아니야.”
“아니에요, 저는 개입니다요.”
“그래 알았다.”
할머니는 어흥이를 쓰다듬어 주시며 귀여워해 주었습니다.
“할머니 저는 내일부터 할머니를 도와드릴 거예요.”
“고맙다.”
다음 날 아침 갑자기 동네 아줌마가 할머니네 집 대문을 두드렸습니다.
“할머니! 할머니!”
할머니가 대문을 열고 물었습니다.
“무슨 일이 있소?”
“우리 아이가 갑자기 병이 나서 죽게 생겼어요.”
“그게 무슨 소리요?”
“읍내 병원을 가야 하는데 할머니네 리어카 좀 빌려 주세요.”
“그건 왜?”
“거기다 태워가지고 병원으로 가야 하겠어요. 도와주세요.”
“급한데 언제 그렇게 갈까?”
이때 어흥이가 다가와 말했습니다.
“할머니 제가 도와드리면 안 될까요?”
“네가 어떻게?”
“그 아이와 할머니 아주머니를 등에 태우고 제가 달려가겠습니다.”
“그렇게 세 사람씩이나 태우고?”
“네, 자신 있어요.”
“그럼 한번 이 애 신세를 져 봅시다.”
아주머니는 그 말에 놀라 입도 열지 못했습니다. 할머니는 앞장서서 아주머니 집으로 갔습니다. 어흥이도 그 뒤를 따라갔습니다. 그리고 어흥이가 마당에 넓죽 엎드리며 말했습니다.
“아이를 데리고 제 등에 오르시지요.”
급한 사정이라 아주머니는 병난 아이를 안고 등에 올랐고 할머니도 올랐습니다. 어흥이가 일어서며 말했습니다.
“제 등을 꽉 잡으셔요. 빠른 걸음으로 걷겠습니다.”
어흥이는 사람보다 빠르고 안전하게 몸을 날려 순식간에 읍내 병원으로 갔습니다. 아주머니는 아이를 안고 병원 안으로 들어가고 어흥이와 할머니는 병원 마당에서 기다렸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병원을 찾아 왔다가 어흥이를 보고 겁이 나서 돌아가고 한동안 조용했습니다. 그래서 아이는 의사의 치료를 충분히 받고 나왔습니다.
아주머니가 할머니한테 고맙다고 인사를 했습니다.
“할머니 고마워요. 조금만 늦었더라면 큰일 날 뻔했답니다.”
“나한테 고맙다고 하지 말고 우리 어흥이한테 고맙다고 하시구려.”
아주머니는 어흥이를 향해 말했습니다.
“고맙다, 고마워. 네가 아니었으면 우리 아이가 죽을 뻔했다. 너한테 무엇으로 은혜를 갚지?”
“저는 무엇이든 할머니가 기뻐하시는 일은 다 할 거예요. 은혜는 할머니한테 갚으세요.”
“보기보다는 마음씨가 사람보다 곱구나.”
어흥이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을 보고 매우 기뻤습니다.
다음 날 어흥이는 졸고 있는 어미 개만 보고 있자니 답답하여 동네 개들이 노는 곳으로 갔습니다.
“얘들아 나도 같이 놀자아.”
장난질을 치고 놀던 동네 개들이 갑자기 꼬리를 내리고 달아났습니다. 어흥이는 그 중에 가장 크고 잘 생긴 개를 따라갔습니다.
10. 형님
어흥이 소리를 들은 대장 개도 달아나다 보니 어흥이가 제 뒤를 따라오고 있지 않겠어요.
대장 개는 급한 나머지 옆집 아궁이속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어흥이가 바짝 따라와 아궁이 앞에 서서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습니다.
대장 개는 네 다리를 후들후들 떨며 아궁이 속에서 내다보았습니다.
“앗! 저 눈빛!”
어흥이 눈에서는 야수 호랑이의 무서운 빛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대장 개는 그 앞에 납작 엎드려 빌었습니다.
“호, 호, 호랑이님 제, 제발제발 살려주십시오.”
어흥이가 웅웅 울리는 소리로 대답했습니다.
“호랑이라니? 그 무슨 소리인가?”
“아, 아닙니다. 범님, 범님이십니다.”
“허허 범은 또 무슨 소리인가?”
“아, 아니, 왕중 왕이십니다. 살려만 주십시오.”
“내가 언제 잡아먹기라도 한다고 했느냐?”
대장 개는 앞발을 내밀고 싹싹 빌었습니다.
“아, 아닙니다. 아닙니다. 저는 두려울 뿐입니다.”
어흥이가 대장 개 앞발을 덥석 잡았습니다. 그 바람에 대장 개는 까무러칠 정도로 놀라 발을 뺐습니다. 그러나 어흥이 발에 잡힌 발을 뺄 수가 없었습니다.
‘아! 나는 이제 죽는구나. 호랑이밥이 되고 마는구나.’
대장 개는 정신이 빠져나갈 만큼 무서워서 벌벌 떨었습니다.
“호왕님 범왕님 살려만 주십시오.”
“허허 내가 언제 살려주지 않는다고 했느냐?”
“그게 아니고 아니고……”
“거기 있지 말고 나와라.”
대장 개는 배를 바닥에 질질 끌고 다 죽어가는 모습으로 기어 나왔습니다.
“겔겔, 헤헤, 헤헤.”
어흥이가 말했습니다.
“형님, 미안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겁먹을 것 없습니다. 편히 일어서시지요.”
“네? 저를 보고 형님이라고요?”
“네, 형님. 앞으로 많이 도와주세요.”
대장 개는 지금 무슨 말을 듣고 있는 것인지 정신이 없었습니다.
“저를 보고 형님이라고 하셨습니까?”
“그렇습니다. 형님.”
“아니야, 아니야 그게 아니야 아니지……”
“저는 어려서부터 형님이 이 동네 대장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것도 아셨다고요?”
“네, 제가 엄마 젖을 먹고 있을 때 대장님은 아주 큰 몸집이었습니다.”
“나도 어려서는 고양이가 개 젖을 먹고 큰다는 말은 들었지만 호랑이님이신 줄 몰랐습니다.”
“저는 호랑이가 아닙니다. 저는 우리 엄마 젖을 먹고 자란 놀놀이 강아지입니다.”
“그래도 난 호랑이님이 무섭습니다.”
“나를 호랑이라고 하지 마십시오. 나는 개입니다.”
“그래. 그래. 개라고 부를 테니 나 좀 놓아주시게.”
“알았습니다. 앞으로 저도 동네 개들과 어울려 놀게 해 주세요.”
“알았어. 알았으니 이제 나 가게 해줘.”
“그럼 내일 형님들이 노는 마당으로 가겠습니다.”
“알았어. 그렇게 해.”
대장 개는 꼬리를 내리고 바람보다 빠르게 달아났습니다.
어흥이가 집으로 돌아오자 어미 개가 걱정스런 얼굴로 말했습니다.
11. 의리 있는 개들
“어흥아 큰일 났어.”
“엄마, 무슨 일 있어요?”
“너 때문에 동네 사람들이 회의를 했다는구나.”
“무슨 회를 했는데요?”
“네가 전에는 집에만 있더니 이제 동네 개를 따라다니며 괴롭힌다고 너를 동네에서 내보내든지 없애 버려야 한다는 거야.”
“이제부터는 집에만 있을까요?”
“집에만 있기도 답답하겠지. 내가 사람들한테 잘 말해 보마. 걱정 말고 있어.”
“네, 엄마.”
다음 날 아침입니다. 동네 개들이 어흥이네 집 앞에 모여들었습니다. 할머니가 걱정스럽게 말했습니다.
“어흥아. 넌 집안에 가만히 있어라. 동네 개들이 어쩌자고 다 모였는지 알 수가 없구나.”
이때 밖에서 개들이 합창하듯 큰소리로 불렀습니다.
“호랑이 형님! 범님 나오십시오!”
할머니가 놀라 어흥이를 바라보았습니다.
“이상도 하다 동네 개들이 너를 형님이라고 부르는 것 같다. 무슨 꿍꿍이속이지?”
“아무것도 아닐 거예요. 제가 나가 볼게요.”
“조심해라. 아무리 네가 힘이 좋아도 저렇게 많은 개들이 대들면 못 당한다.”
“염려 마세요. 그래도 제가 만나 보겠습니다.”
곁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어미 개가 나섰습니다.
“어흥아, 아무래도 내가 먼저 저 애들을 만보고 나서 네가 나가는 게 좋을 것 같다.”
할머니도 그게 좋겠다고 했습니다. 어미 개는 이미 늙어서 할머니보다 더 힘이 없는 걸음으로 나갔습니다. 그리고 엄한 얼굴로 물었습니다.
“무슨 일들이 있어서 이렇게 몰려온 것이냐?”
대장 개가 나서서 말했습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어흥이를 도와주러 왔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냐? 어흥이를 어떻게 도와준다는 거야?”
“동네 사람들이 어흥이를 마을에서 내쫓던지 아니면 잡아 죽이자고 회를 하고 있습니다.”
“뭐라고?”
“그래서 우리가 어흥이를 도우려고 합니다.”
“너희들이 무슨 힘이 있어서 동네 사람들이 하는 일을 못하게 하겠다는 거냐?”
“먼저 어흥이를 만나게 해 주십시오.”
어미 개는 어흥이를 불렀습니다.
“어흥아 나와 보아라.”
어흥이가 대문 앞에 큰 얼굴을 쑥 내밀자 온 동네 개가 넓죽 엎드려 절을 하고 무릎을 꿇었습니다.
할머니도 어미 개도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너희들 이게 무슨 짓이냐?”
이때 대장 개가 일어서서 말했습니다.
“나는 어제 어흥이가 우리를 해치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온 동네 개들을 모아 놓고 어흥이는 마음씨가 우리보다 착한 범님이라는 것을 설명해 주었고 앞으로 모두가 어흥이를 형님으로 모시고 잘 지내자고 하였습니다. 모두 찬성을 하여 이렇게 모인 것입니다.”
이때 모든 개들이 입을 모아 소리쳤습니다.
“범 형님 앞으로 잘 모시겠습니다. 허락해 주십시오.”
어흥이는 부리부리한 눈으로 개들을 하나하나 바라보며 대답했습니다.
“나는 여러분과 같이 엄마 개의 젖을 먹고 자란 개입니다. 나를 범님이라고 부르지 말고 어흥이 형이라고 부르든지 어흥아 하고 부르시오. 나는 어제 여러분의 대장님을 형님으로 모셨습니다.”
어흥이는 번쩍번쩍한 큰 눈을 대장 개에게 돌렸습니다.
“형님 제 말이 맞지요?”
대장 개는 계면쩍어하면서도 부하 개들 앞이라 짐짓 당당하게 말했습니다.
12. 어흥이 만세
“여기 오기 전에 내가 너희들한테 말했지만 어흥이 말이 맞다. 어제 나는 어흥
이와 형제가 되기로 약속했다. 솔직히 말하면 내가 힘으로는 어흥이를 당할 수 없다. 그러나 어흥이보다 내 나이가 더 많다는 것을 알고 형으로 삼겠다 하여 그렇게 하기로 하였다. 그러니 모두들 어흥이를 왕따시키지 말고 친형처럼 모시기 바란다. 알겠느냐?”
“멍멍, 망망, 컹컹, 멍멍멍, 야호! 빙고!”
개들이 모두 좋아서 앞발을 높이 들고 만세를 불렀습니다.
이때 동네 사람들이 어흥이를 처치하기 위해 몰려왔습니다. 이장이 할머니를 만나 말했습니다.
“할머니, 미안하지만 집에 있는 동물을 내보내든지 없애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모여 있는 개들을 둘러보며 말을 이었습니다.
“보십시오. 개들까지 이렇게 몰려와 데모를 하지 않습니까? 오늘 어떤 일이 있어도 처리하도록 도와주십시오. 온 동네 사람들이 저 놈이 무서워서 밤이면 바깥출입도 못하고 있습니다.”
할머니는 침착하게 대답했습니다.
“너무 염려하실 것 없어요. 이 애는 내가 기른 개입니다. 허물만 개가 아니지 속은 어느 개보다 착하고 순합니다.”
“속이야 어떻든 껍데기가 저렇게 생긴 것이 문제 아닙니까. 그리고 착하다고는 하지만 눈을 보십시오. 무서워서 제대로 바라볼 수도 없습니다. 저렇게 위엄이 서려 있지 않습니까.”
어흥이는 곁에서 다 듣고 있었지만 모르는 척하고 땅만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할머니는 단호히 대답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어흥이한테 고맙다고 해야 할 거예요. 어흥이 덕을 보고 있으면서 그런 소리를 합니까?”
“어흥이가 저 동물 이름입니까? 저 동물이 무슨 덕을 베풀었습니까?”
“어흥이는 내가 지어준 이름이오. 여러분은 요 몇 년 전만 해도 밤마다 산짐승의 피해를 얼마나 보았습니까? 멧돼지가 내려와 고구마를 파먹고 노루며 고라니가 콩밭을 헤집고 산토기는 채마밭을 망쳐놓아 얼마나 속상해 하였습니까.”
“그게 저 동물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저 애가 들로 다니기도 하고 우리집 개들이 있을 때는 산을 돌아다니며 산짐승이 내려오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몇 년 동안 여러분은 멧돼지 피해를 보지 않았고 인삼밭을 노리던 도둑들도 이 애가 있다는 것을 알고부터는 접근을 못했어요. 최근에 농사 피해 보신 댁이 있나요?”
동네 사람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이장도 더 할 말을 잃었습니다.
“그 말씀은 맞는 것 같습니다. 다른 동네는 멧돼지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하는데 우리 동네는 벌써 4년째 아무 일이 없었습니다. 그것이 저 어흥이 덕인 줄은 몰랐습니다. 할머니 미안합니다.”
이때 개들이 좋아서 모두 앞발을 높이 들고 목을 빼어 만세를 불렀습니다.
“어흥이 형님 만세! 만세 만세……”
개들을 따라 마을 청년도 따라 만세를 부르며 소리쳤습니다.
“어흥이 고맙다. 은혜를 매로 갚을 뻔했다. 고맙다.”
갑자기 한 노인이 어흥이 앞에 꿇어앉으며 한 마디 했습니다.
“옛날부터 호랑이는 영물이라고 하였소. 호랑이님 미안하오. 우리를 용서하오.”
할머니는 기뻐서 어흥이를 보며 말했습니다.
“오늘은 너한테 가장 기쁜 날이다. 오늘 우리 집에서 너를 위해 큰 잔치를 벌여야겠다.”
할머니는 마을 사람들에게 저녁 대접을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어흥이한테 돼지고기를 사러 시장에 가자고 했습니다. 그러나 어흥이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저는 장에 가지 않겠습니다.”
“왜?”
13. 장유유서
할머니는 실망했습니다. 지금까지 할머니 말을 어흥이가 거역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노여워서 그러느냐?”
“아닙니다.”
“그런데 왜 장에는 안 가겠다는 거야?”
“돼지는 제가 준비하겠습니다.”
“네가?”
“네. 할머니는 다른 것이나 준비하시고 제가 올 때까지 기다리세요.”
어흥이는 대장 개에게 말했습니다.
“형님, 저 좀 도와주시지요.”
“내가 도움이 된다면 무엇이든지 들어주지.”
“그럼, 저 아우들과 함께 가시지요.”
어흥이가 앞장서서 달려가자 동네 개들이 우르르 몰려갔습니다. 어흥이는 높은 산 아래 멈춰 서서 대장 개에게 말했습니다.
“제가 여기서 저 숲속을 향해 소리를 지를 테니 저 아우들은 여기저기서 산짐승을 몰라고 하시지요.”
“알았다. 한 번 해 보자.”
이때 어흥이가 입을 딱 벌리고 큰 소리를 질렀습니다.
“어어흥 어흥흥 꽉아악!!”
갑자기 산속에 우렁찬 호랑이 소리가 퍼져나가자 나뭇잎들마저 파르르 떨었습니다. 그리고 여기저기 숨었던 토끼, 노루, 고란이가 달아나기 시작하고 숲 속에 숨었던 커다란 멧돼지도 뒤룩거리며 달아나고 있었습니다.
어흥이가 대장 개에게 말했습니다.
“형님, 저 돼지를 따라가 이쪽으로 몰고 오세요.”
“알았다.”
대장 개가 달려가자 멧돼지가 어흥이쪽으로 돌아섰다가 어흥이를 보자 얼어붙은 듯 그 자리에 머리를 박고 꼼짝 못했습니다.
그것을 대장 개가 다른 개들과 힘을 합해 잡아끌고 왔습니다. 돼지는 어흥이를 보는 순간 놀라서 죽은 것입니다. 어흥이 넙죽 엎드리며 말했습니다.
“형님, 이 돼지를 제 등에 얹어 주십시오.”
“어떡하려고?”
“집으로 가져가려면 형님이나 아우들은 못 듭니다.”
대장 개는 다른 개들과 함께 돼지를 어흥이 등에 올렸습니다. 어흥이는 벌떡 일어나 쿵쿵 소리가 나게 걸었습니다. 대장 개를 비롯하여 힘깨나 쓴다는 다른 개들도 어흥이의 늠름한 모습을 보면서 감탄했습니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는 말이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인 것 같다.”
“대장 형님, 저렇게 대단한 호랑이가 형님이라고 부르시다니 형님, 존경합니다.”
“힘으로야 내가 어찌 당하겠느냐? 저 아우는 호랑이지만 장유유서(長幼有序)를 아는 거다. 우리 개들한테는 그런 것이 없지. 그저 힘만 세면 어른 노릇을 하니까. 어쩌면 사람들도 우리를 닮아 가는지도 모른다.”
“형님, 사람들이 그 말을 들으면 섭섭해 할 것입니다. 우리가 누구 덕에 먹고 삽니까?”
“저런 힘을 가지고도 제 도리를 지키는 모습이 부럽지도 않으냐? 요새 사람들은 장유유서보다 재력 순위가 우선이다.”
“윤리를 모르는 개가 된 것이 부끄럽습니다. 형님.”
“나도 그렇다. 사람들이 우리를 닮으면 안 되는데……”
잠깐 사이에 어흥이와 동네 개들이 줄을 이어 할머니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할머니는 어흥이 등에 얹힌 멧돼지를 보고 놀라 물었습니다.
“그게 뭐냐?”
“오늘 잔치하시라고 잡아 왔습니다.”
어흥이는 등에 얹힌 멧돼지를 쿵 하고 내려놓았습니다.
14. 참된 의리
그날 저녁 마을 사람들이 산돼지 요리를 놓고 즐겁게 잔치를 벌였습니다. 사람들은 모처럼 먹어보는 산돼지 요리에 정신이 없어서 어흥이가 어디 있는지도 잊고 있었습니다.
한참 후에 이장이 말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어흥이 덕에 좋은 고기를 실컷 먹었으니 어흥이한테 고맙다고 해야 할 것 아닙니까?”
“암, 그렇고말고. 어흥이가 아니면 산돼지를 가까이서 보기나 하나. 그놈들이 무서워서 들에도 제대로 못 나가는 우리 아닌가.”
사람들이 어흥이를 찾았지만 어흥이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어흥이는 대장 개네 집에 가 있었습니다. 대장 개 주인할아버지는 굉장한 고집쟁이라 동네에서도 옹고집으로 유명합니다.
대장 개가 옹고집 할아버지를 모시고 동네잔치에 가자고 졸랐습니다.
“할아버지 동네 사람이 다 모였습니다. 여기 있는 어흥이가 산돼지를 잡아왔어요. 같이 가세요.”
“이놈아, 안 간다면 안 가. 사람이 잡아온 것도 아니고 너희 같은 것들이 잡아온 것을 먹어?”
할아버지는 고집을 부리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잡아오나 사람이 잡아오나 다 같지 않아요?”
“어째서 같으냐? 사람이란 자존심으로 사람대우를 받는 거야. 난 어떤 일이 있어도 너희 같이 천한 동물의 덕은 보지 않는다.”
어흥이와 대장 개는 할아버지 고집을 못 꺾고 할머니 댁으로 돌아았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모두 돌아가고 개들만 남아서 사람들이 먹다 버린 뼈다귀를 뜯고 있었습니다.
어흥이와 대장 개가 나타나자 덩치는 크면서 겁이 많은 검둥이가 말했습니다.
“이게 뭡니까? 산돼지는 우리가 잡아 왔는데 맛있는 살코기는 사람들이 다 먹고 겨우 이런 것이나 빨고 있으니 억울하지 않습니까.”
대장 개가 점잖게 대답했습니다.
“그것도 감사하거라. 어흥이가 아니었으면 그런 것이라도 빨아볼 수 있었겠느냐? 우리 개 팔자는 다 그런 거야. 어흥아, 안 그러냐?”
“형님, 저 애들이 고기를 먹을 수 있도록 해 주어야겠습니다.”
“어떻게?”
“내일은 더 큰 산돼지를 잡아다 할머니를 드리고 우리들도 고기를 먹게 해 달라고 하지요.”
옆에서 듣고 있던 어미 개가 한 마디 했습니다.
“나도 이제 늙어서 이빨이 없으니 뼈다귀를 뜯을 수가 없다. 사람들처럼 살코기가 먹고 싶구나.”
어흥이는 그제야 어미 개가 이빨이 없어서 딱딱한 것은 못 먹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엄마, 걱정하지 마, 내가 먹을 것을 구해다 꼭꼭 씹어서 엄마 입에 넣어 줄게. 그러면 얼마든지 먹을 수 있어.”
“네 말은 고맙지만 할머니한테 미안해서 안 된다. 할머니도 이가 없어서 딱딱한 음식은 우물우물하신다.”
“알았어요. 할머니도 제가 고기를 부드럽게 씹어서 드릴게요. 이제부터는 그런 걱정 하지 마세요.”
다음 날 어흥이는 대장 개와 부하 개들을 데리고 산으로 갔습니다. 어흥이가 나타난 뒤로 산에 동물들은 멀리 달아나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대장 개가 말했습니다.
“어흥이 위력이 대단하다. 우리 동네 근처에 그렇게 많던 짐승들이 다 달아난 거야. 이제 산돼지 구경도 하기 힘들게 되었다.”
“걱정 마세요. 하루에 한 마리씩은 얼마든지 잡을 수 있어요.”
“그럴 수 있을까?”
“형님, 저 애들을 데리고 산 너머로 가서 큰소리로 짖어대세요. 그러면 우리가 그쪽에 있는 줄 알고 산짐승들이 이쪽으로 넘어올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되겠군, 해보지.”
그렇게 하여 어훙이는 몇 년을 두고 날마다 산돼지를 잡아다 할머니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할머니와 어미에게는 고기를 씹어서 먹여드렸습니다.
처음에 어미 개는 잘 받아먹었지만 할머니는 싫어했습니다. 그러나 날마다 바치는 어흥이 정성이 고마워 할머니도 한두 번 맛을 보다가 길이 들어 어흥이가 해주는 고기를 맛있게 먹었습니다.
할머니는 어흫이 정성에 건강하게 백 살까지 사시다가 돌아가셨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할머니를 동네 뒷산에 모시었는데 어미 개가 할머니 묘를 떠나지 않고 날마다 지켰습니다. 그리고 어흥이가 씹어 주는 고기도 먹지 않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를 사랑하여 주시던 할머니가 추운 땅속에서 아무것도 못 잡수시는데 내가 어찌 맛있는 음식을 먹겠니. 나도 이제 살만큼 살았다. 네가 정성으로 해주는 음식을 먹고 이렇게 오래 산 거야. 내 나이도 오십이 넘었으니 때가 되면 죽는 거다. 굶다가 할머니 옆에서 죽을 거다. 나는 죽어서 할머니 옆에 묻히고 싶다.”
마을 사람들은 어미 개의 하는 짓을 보고 감탄했습니다.
“저게 사람보다 낫다. 할머니 자식들은 어디 사는지 모르지만 낳아준 어머니가 돌아가시었는데 하나도 오지 않는데 개가 자식 노릇을 하는구나. 주인을 모시는 저 정성에 불효막심했던 내가 부끄럽다.”
어흥이도 어미 개가 아무것도 먹지 않으므로 같이 굶었습니다. 어미 개는 가죽과 뼈만 남은 채 일어서지도 못하다가 죽고 말았습니다. 어흥이도 오래도록 굶어서 바싹 말았습니다. 제대로 힘도 쓰지 못하면서 할머니 옆에 땅을 파고 어미 개를 묻어주고 저도 그 곁에서 굶고 있었습니다.
대장 개와 동네 개들은 어흥이 주변을 돌면서 먹을 것을 물어다 주었지만 어흥이는 머리를 저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입니다. 대장 개가 침울한 얼굴로 말했습니다.
“어흥아, 이런 말을 해도 좋은지 어떤지 모르겠다.”
15. 나를 주고 흙으로 만난 사랑
“무슨 말입니까 형님.”
“위풍당당하던 모습은 다 어디 가고 이 꼴인가. 우리가 가져다 주는 음식을 먹으면 말해 주겠어.”
“굶어 죽기로 작정했는데 무슨 말을 듣고 싶어서 그것을 먹겠습니까?”
“그러지 말고 많이 먹고 힘을 내어 옛날 어흥이로 돌아가 주면 안 될까. 그리고 우리를 끌고 산으로 들로 다녔으면 좋겠어.”
“아닙니다. 그런 말은 하지 말고 하려던 말이나 해 주세요.”
“이거 참 말하기 어려운 일인데…… 안 들은 것으로 하고 듣게나.”
“그러지요.”
“우리집 옹고집 알지?”
“위엄 있는 그 할아버지요?”
“그래, 옹고집께서 병이 나셨는데 어제 의원하고 나누는 이야기를 내가 엿들었지…….”
“무슨 이야기였나요?”
“그게 말야. 그게 말하기 어렵다는 거야.”
“안 들은 것으로 하고 듣기로 했지 않습니까?”
“그랬지만……”
“염려 말고 하세요.”
“옹고집 할아버지 병을 고치자면 호랑이 꼬리에 인삼을 달여 먹어야 한다는……”
“호랑이고리요?”
“그렇다니까.”
“그 옹고집 할아버지가 내 꼬리를 잡수실까요? 짐승을 천대하셨던 어른이신데요.”
“사람이든 짐승이든 한번 태어나면 죽기를 싫어하니까……”
“나는 사람들한테 많은 사랑을 받았고 형님 형제들의 사랑도 많이 받고 살았습니다. 이제 엄마를 따라 죽기로 했습니다. 그 할아버지께서 그 약을 잡숫고 나을 수만 있다면 꼬리를 드려도 아까울 것이 없지요. 사람들은 나를 호랑이라고 하지만 나는 호랑이보다는 엄마 아들 어흥이 개입니다.”
“고맙네. 정말 그렇게 할 수 있겠나?”
“그렇게 하시지요.”
다음 날 어흥이는 꼬리를 자르자 쇠약한 몸이라 바로 죽고 말았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어흥이를 어미 개 옆에 묻어 주었습니다.
옹고집 할아버지는 죽을병에서 다시 건강해졌습니다. 그러나 자기가 어흥이 꼬리를 먹고 나은 것은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손자가 하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할아버지 호랑이 꼬리 맛있어?”
“그게 무슨 말이냐?”
“엄마가 말하지 말라고 했는데.”
“그러냐? 나한테만 비밀로 말해 볼래?”
“정말 비밀이야. 약속!”
손자는 할아버지와 새끼손가락을 걸고 엄지로 도장도 찍고 손바닥으로 복사까지 한 다음 말했습니다.
“우리 동네에 개 노릇하던 호랑이가 있었지?.”
“그래 있었지.”
“그 어흥이라는 호랑이가 꼬리를 할아버지한테 드리고 죽었대. 몰랐지? 아무한테도 말하면 안 돼.”
“알았다.”
할아버지는 조용히 들로 나갔습니다. 그리고 할머니와 어미 개가 묻혀 있는 곳으로 갔습니다. 거기 새로 만든 어흥이의 묘를 보고 눈물을 흘리며 그 앞에 앉았습니다.
“짐승이라고 내가 너를 너무 무시했구나. 네 속이 그렇게 깊은 줄을 알았더라면 너 살았을 때 잘해 주고 친구로 삼았어야 했다. 넌 사람보다 낫고 나보다 낫다. 이 은혜를 어찌 갚을 수 있겠느냐? 다 늙은 것이 조금 더 살자고 너를 먼저 보냈구나.”
할아버지는 손자와 약속을 지키기 위하여 모르는 체하고 조용히 돌아와 비석 공장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석수장이한테 말했습니다.
“부탁이 있어 왔소. 아무도 모르게 비밀로 하고 비석 하나 잘 만들어 저 언덕 위에 있는 동네 할머니와 그 집 개와 개 노릇을 하던 호랑이가 묻힌 무덤에 세워주시오.”
“비문은 어떻게 새길까요?”
“<의호충견지총(의리 있는 호랑이와 충성스런개의 무덤)>이라고만 새겨 아무도 모르는 밤에 세워 주시오.”
며칠 후 할머니와 어미 개와 어흥이가 묻힌 무덤 앞에 잘 만든 비석 하나가 서 있었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누가 세웠는지 모르므로 신기해하면서 비문만 가슴에 새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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