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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오만한 나팔꽃

웃는곰 2013. 3. 28. 10:00

오만한 나팔꽃

1. 하품하는 떡잎

겨울 동안 쿨쿨 자던 콩알이 봄볕에 잠에서 깼어.

“아아 잘 잤다. 이제 일어나야지.”

콩이 두 팔을 쫙 벌리고 기지개를 켜며 하품을 했어. 하늘에는 해가 벙글벙글 웃고 새들은 고운 노래를 나뭇가지마다 걸어놓고 춤을 추고 구름이 흘러가는 산과 들에는 초록빛이 깔리고 있었어.

콩은 부드러운 흙을 비집고 귀여운 떡잎을 내밀고 목을 길게 빼 올렸어.

“야아! 세상은 참 아름답구나. 저 파란 하늘 저 예쁜 새들.”

바로 이때 곁에서 실낱간이 가느다란 소리가 들려왔어.

“아아, 잘 잤다. 아름다운 꿈이었어. 아, 나는 행복해.”

콩 떡잎이 돌아다보았어.

 

 

“넌 누구냐?”

아주 가느다란 목에 껍데기를 모자처럼 쓴 새싹이 대답했어.

“난 나팔꽃. 넌 누구야?”

“난 콩이다.”

“콩이라고? 반갑다. 우리 친구하자.”

“쬐그만 게 나하고 친구하자고?”

“그래, 친구.”

콩은 줄기를 돋아 올리며 거만스럽게 나팔꽃 새순을 내려다보았어.

“감히 네가 내 친구를 하겠다고?”

나팔꽃도 줄기를 쭉 뽑아 올리며 말했어.

“하기 싫으면 그만 두던지.”

“요게 감히!”

 

 

얼마 안 있다가 콩은 줄기를 높이 올리며 많은 잎사귀를 달았어. 그런데 나팔꽃은 줄기를 세우지 못하고 땅바닥을 기면서 말했어.

“아이고 힘들다. 난 언제나 일어서 보나.”

“히히히 그런 네가 감히 내 친구가 되겠다고?”

나팔꽃은 고개를 들고 올려다보았어.

“야아! 넌 좋겠다. 네 잎사귀들이 구름에 닿았어.”

“조금만 있어 보아라.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높이 커서 세상을 내려다볼 테니까.”

“내가 너처럼 높이 올라가면 얼마나 좋을까.”

나팔꽃은 부러워하면서 부지런히 기어가 콩대 줄기를 잡았어.

“잡았다. 넌 허리가 아주 굵고 튼튼하구나.”

 

 

“간지러워 이 땅꼬마야. 어디를 잡는 거야? 너 같은 땅꼬마가 감히 나보다 높이 오를 꿈을 꾸다니 가소롭다. 후후후.”

“좋아, 나한테도 꿈이 있으니까. 할 수 없어, 난 너를 타고 세상에서 가장 높이 올라가 세상을 내려다볼 거야.”

“뭐야? 나를 타고 올라가겠다고?”

“그러지 마, 네 허리를 잡고 있으니까 아주 기분이 좋아.”

콩 나무도 나팔꽃이 안아주는 것이 좋았어. 날마다 간질이며 오르내리는 개미들이 귀찮았는데 그것들이 나팔꽃 줄기를 타고 다니기 때문이었어.

“콩 나무야, 네 냄새가 좋다.”

콩 나무도 나팔꽃 잎사귀 냄새가 좋았어. 나팔꽃이 다시 물었어.

“우리 이제는 친구지?”

콩 줄기는 고개를 저었어.

“친구라고?”

 

 

이때 나팔꽃 줄기가 콩 줄기 잎을 타고 올라가며 여기저기 덩굴손으로 뱅뱅 감기 시작했어. 콩이 말했어.

“너 자꾸만 나를 감아댈 거야?”

“어쩔 수 없어, 이렇게 하지 않으면 나는 위로 오를 수가 없어.”

“안 돼, 그만 감아.”

콩은 허리를 휘두르며 뿌리쳤어. 그러나 나팔꽃은 쉬지 않고 잎사귀와 줄기를 뱅뱅 감고 위로 올랐어.

“야! 이 나쁜 나팔꽃, 너 자꾸 이럴 거야?”



2. 나는 왕이다!

나팔꽃은 오만하게 가슴을 펴고 말했어.

“어쩔 수 없다니까. 난 네가 아니면 하늘 위로 올라갈 수가 없어. 그 대신 개미들이 너를 괴롭히지 않고 나를 타고 오르고 내리잖아?”

“그건 그렇지만, 네가 내 숨통을 조이고 있단 말야.”

“참아 봐. 넌 내 친구잖아.”

여름이 지나도록 콩 줄기는 더 이상 자라지 않았어. 그 대신 꽃이 피고 열매를 맺었어.

나팔꽃은 콩 줄기 끝까지 올라가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곳에 올랐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저보다 높은 곳에는 아무도 없다고 믿고 소리쳤어.

“야아호! 세상은 다 내 아래 있다. 나는 세상의 왕이다아!”

콩은 열매를 가꾸느라고 지쳐 있었어. 그 사이에 나팔꽃이 제 줄기를 타고 가장 높이 올라가는 것도 모르고 있었지. 그런데 나팔꽃이 가장 높은 가지 끝에 올라서서 두 팔을 벌리고 큰 소리로 나팔을 불지 않겠어?

“빵빠빠아아아아.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높다아. 내가 왕이다아!”

 

 

그런데 아주 높은 구름에 머리를 걸치고 있는 나무가 내려다보고 웃지 않겠어!

“허허허, 저 녀석 좀 보게. 겨우 콩대 위에 올라서 큰소릴 치네. 그만 웃겨라 이 녀석아 허허허.”

‘세상에서 가장 높이 오른 줄 알았는데 이게 뭐야. 나보다 더 높은 나무가 있잖아!’

나팔꽃은 실망하여 나무를 향해 소리쳤어.

“넌 누구냐?”

나무가 내려다보고 잎사귀를 한들거렸어.

“허허허 감히 내가 누군지를 모르다니, 넌 누구냐?”

“나는 나팔꽃이다. 나팔꽃!”

“나는 뽕나무니라.”

나팔꽃은 갑자기 호들갑을 떨며 웃었어.

“뽕이라고? 하하하하.”

“이런 건방진 녀석을 보았나. 네가 감히 내 앞에서  웃음소리를 내?”

“넌 사람들이 뽕 하면 웃는 것도 모르는구나.”

“허허 저것이 감히!”

“뽕, 할아버지 뽕뽕.”

 

 

“뭐야?”

“할아버지가 궁둥이를 들썩이면 뒤에서 나는 소리 뽕!”

“나는 그런 뽕이 아니다.”

“아무리 그래도 뽕뽕! 그게 방귀소리가 아니고 뭐냐?”

“너 정말 까불래?”

나팔꽃은 목을 길게 빼고 뽕나무 가지를 잡으려고 했어. 그러나 덩굴손이 닿지 않아 줄기를 곧게 세웠어. 이때 마침 바람이 휘익 불어왔지.

뽕나무는 바람이 불어 올 때 허리를 깊이 숙이고 가지를 휘저었어.

바로 그 때 나팔꽃은 뽕나무 잎사귀 하나를 잡고 숙였던 허리를 쭉 폈어.

“야! 성공이다. 성공.”

그리고 나팔꽃은 뽕나무 가지를 잡고 매달렸어. 뽕나무가 소리쳤어.

“저리 가지 못해?”

그러나 나팔꽃은 들은 체도 않고 위로 오르기 시작했어. 뽕나무가 몸부림을 치며 나팔꽃을 밀어냈지만 나팔꽃 덩굴손아귀 힘이 얼마나 센지 떨쳐버릴 수가 없었어.



3.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

“방귀 뽕, 이러지 마. 네가 아무리 그래 봐도 어림도 없어.”

“방귀 뽕이라고?”

“네가 뽕이 아니고 뭐냐?”

“뽕나무아저씨라고 해라.”

“넌 어차피 뽕이야. 저 아래 콩을 봐라. 너도 콩이라고 불러줄까?”

콩이 올려다보며 말했어.

“나팔꽃, 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나를 타고 올라간 주제에.”

뽕나무가 말했어.

“가느다란 모가지에 웬 꽃은 그리 큰 것을 달았느냐?”

“이게 나팔이라는 거다. 나팔 소리 한번 들어 볼래?”

콩이 올려다보며 한 마디 했어.

“방귀 뀌는 소리나 내는 것 아니냐?”

 

 

뽕나무가 눈을 흘기며 콩 줄기를 내려다보았어.

“바보 같은 소리 말아. 심심한데 들어나 보자.”

나팔꽃이 아름다운 소리로 반달을 불렀어.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에

계수나무 한 나무 토끼 한 마리……>

뽕나무는 박자를 맞추며 긴 가지로 지휘를 했어. 그리고 좋아서 말했어.

“하나 더 불러라.”

“고맙다, 그럼……”

<뻐꾹 뻐꾹 깊은 산속에서

뚝딱뚝딱 나무 찍는 소리

찍는 소리 흉내 내어 울고

우는 소리 흉내 내어 뚝딱.>

이때 어디서 듣고 왔는지 뻐꾸기가 나팔꽃을 향해 말했어.

“너 노래는 잘하는데 모르는 게 있어. 우리들이 왜 우냐? 우리는 울 줄을 몰라. 너처럼 노래를 부르고 친구와 사랑하는 짝을 찾아 부르는 소리야. 그것을 운다고 하다니!”

나팔꽃이 고개를 끄덕였어.

 

 

“미안하다 나는 사람들이 부르는 소리만 흉내 내어 불렀는데 네 말이 맞는 것 같다.”

“것 같다라는 말 너무 많이 잘못 쓰고 있어. 내 말이 맞다고 하면 될 것을 맞는 것 같다고 하는 말은 너나 사람이나 별 차이가 없다는 소리잖아.”

뽕나무도 고개를 끄덕였어.

“요새 아이들 사탕을 입에 물고 먹을 때 엄마가 맛있니? 하면 맛있는 것 같아. 하고 말하는 것을 많이 보는데 그게 무슨 말이냐. 달고 맛있어요, 해야 맞지 않겠니. 나팔꽃 한 곡 더 불러 보아라.”

“그래, 다른 노래 부를게 들어봐.”

“뜸북뜸북 뜸북 새 논에서 울고

뻐국뻐꾹 뻐국새 산에서 운다

우리 오빠 말 타고 서울 가시며

비단 구두 사가지고 오신다더니.”

뻐꾸기가 또 불만스럽게 소리쳤어.

 

 

“또 내가 운다고? 도대체 사람들은 왜 그러는지 몰라. 언제 우리가 우는 걸 보았다는 거야.”

이때 뜸부기가 갑자기 나타나 나팔꽃에게 명령했어.

“나팔꽃! 너 노래 부르지 마, 우리들이 언제 논에서 울었냐? 우리는 논에서 짝 찾기 놀이를 하고 있는 건데 그게 우는 소리라고?”

나팔꽃이 미안해하면서 대답했어.

“미안해 뜸북아. 난 사람들이 부르는 소리만 듣고 배웠는데 그것도 실수였구나. 도대체 사람들한테 우리가 배울 것이 뭐야?”



4 자존심보다 높은 것은 없다

뽕나무와 콩 나무가 똑같이 대답했어.

“사람들한테 배울 건 하나도 없다.”

뜸부기가 말했어.

“사람들은 정말 무서워, 말로는 동물들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잡히면 잡아먹거든.”

뻐꾸기도 한 마디 했어.

“사람을 조심해야 해. 새들이 알을 낳으면 뺏어가기도 하고 잡아먹고……”

이때 콩도 가만히 있지 않았어.

 

 

“너희들만 그런 줄 아니. 우리들도 사람이 무섭기는 마찬가지야. 우리가 열심히 열매를 맺어 놓으면 사람들이 다 따다가 구워 먹고 삶아 먹고 겨우 씨만 몇 개 남긴다니까.”

나팔꽃은 입을 딱 벌리고 말을 못했어. 이때 뽕나무가 말했어.

“사람 무서운 이야기는 그만 하자. 나팔꽃 넌 왜 그러고 있어. 노래나 하나 더 해 봐.”

나팔꽃은 입을 크게 벌리고 노래를 시작했어.

<아빠하고 나하고 만든 꽃밭에 채송화도 봉숭아도 한창입니다. 아빠가 매어 놓은 새끼줄 따라 나팔꽃도 아름답게 피었습니다.>

뽕나무가 말했어.

“뽕나무 노래는 없냐?”

“있지롱. 들어볼래?”

“뽕따러 가세 뽕따러 가 임도 보고 뽕도 따고…”

“그렇구나, 사람들이 우리를 사랑하여 노래를 만들었다니 기분 좋다 하하하.”

이때 콩이 물었어.

“나팔꽃! 콩 노래는 없냐?”

나팔꽃은 한참 망설였어.

 

 

“콩 한 알도 두 쪽으로 나누어 먹으라는 말은 있는데 ……”

콩은 실망하여 고개를 뚝 떨어뜨렸어.

어느새 여름이 가고 가을이 되었어. 뽕잎도 아래는 사람들이 다 따가고 숭냉이 끝에 노란 잎만 하나 남겼어.

나팔꽃은 가장 높은 곳에서 이 세상에는 정말 저만 남았다고 큰소리를 치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어. 그런데 갑자기 아주 높은 데서 웃음소리가 들려오지 않겠어.

 

“하하하하 이 녀석 많이도 자랐다. 더 올라와 보거라.”

“나보다 더 높은 데서 소리를 내다니! 넌 누구냐?”

“이 녀석 많이 자랐구나.”

“뭐야? 넌 누군데 감히 나한테 그런 소리를 하는 거냐?”

“올려다 보거라. 나는 소나무다.”

소나무가 머리를 높은 구름에 얹고 서서 지나가는 바람에 빗질을 하며 가느다랗게 바이올린을 켜고 있었어.

“나보다 높은 곳에 소나무가 있었다고?”

“암, 잘 보거라.”

나팔꽃은 그제야 많은 것을 깨달았어.

땅바닥을 기어오를 땐 조금 높은 콩 줄기가 높이 보였고 콩 줄기를 타고 넘었을 때는 뽕나무가 위에 있었고 더 높은 것은 안 보이다가 뽕나무 위에 올라 보니 소나무가 있고.

나팔꽃은 소나무를 잡을 수 없을 만큼 줄기도 가늘고 힘도 빠졌어. 꽃도 이제 노래를 못하고 입을 다물고.

소나무가 파란 손을 내밀었어.

“나팔꽃, 이리 오너라. 내가 더 높고 넓은 세상을 보여주마.”

나팔꽃은 힘이 빠진 소리로 공손히 말했어.

“소나무님, 나는 세상에서 무엇이든지 기어오를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소나무님을 보고 더 이상 오를 수 없다는 걸 알았어요. 하나만 물어 볼게요. 소나무님보다도 더 높은 나무가 있나요?”

“있다.”

 

 

“그건 무슨 나무인가요?”

“너무 많아서 말로 다 할 수도 없단다.”

“세상에서 가장 높은 나무 위에는 무엇이 있나요?”

“별들과 달이 있다.”

“그 위에는요?”

“나도 모른다. 그 위에는 하나님이 계시겠지.”

“하나님 위에는요?”

“그 위에는 네가 있다.”

“네?”

“너도 모르는 네가 있단 말이다.”

“그게 뭔데요?”

“자존심.”

“자존심이라고요?”

“세상 어느 것도 자존심보다 높은 것은 없느니라.”**

 

출처 : 한국크리스천문학가협회
글쓴이 : 웃는곰 * 심혁창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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