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삼남매
1. 엄마는 천사
엄마는 오랫동안 병석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앓았습니다. 술에 취한 아빠는 오늘도 들어와 엄마 방은 들여다보지도 않고 소리쳤습니다.
“느이 에미 아직도 살아 있냐?”
아버지가 술에 취해 들어오시면 날마다 하는 같은 소리입니다. 엄마 귀에는 왜 빨리 안 죽고 살아 있느냐는 말로 들립니다.
그렇게 소리치고 돌개바람처럼 휑하니 나가시는 아버지는 똑같은 소리를 남겼습니다.
“죽을래면 빨리 죽으라고 해!”
아빠가 그러고 나가면 아이들은 겁을 먹고 엄마 곁으로 모여듭니다. 그러나 엄마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마른 나무대기같이 바짝 마른 손으로 아이들 머리와 얼굴 볼과 손을 쓰다듬어 주며 사랑이 가득한 눈으로 말했습니다.
“괜찮아. 아빠가 속상해서 하시는 소리야.”
그리고 세 살 박이 막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가느다란 소리로 말했어요.
“옥아, 나가서 놀다 와.”
이제 겨우 말을 배우기 시작한 옥이가 귀여운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엄마, 죽지 마! 죽지 마, 응?”
어린 것이 무엇을 알기라도 한 듯 이렇게 말하는 것을 바라보는 엄마 눈에는 눈물이 글썽거렸습니다.
“알았어. 네가 놀고 있으면 엄마는 너를 따라다니며 웃을 거야.”
“알았어, 엄마. 강아지하고 놀다 올게.”
옥이 궁둥이를 귀엽게 흔들며 나갔습니다. 엄마는 그 작고 어린 것의 등짝을 바라보며 말끝을 흐렸습니다.
“저 어린 것을 두고……”
맏딸 금별이 엄마 마음을 읽고 있었습니다.
“엄마, 죽으면 안 돼.”
“금아, 미안하다. 엄마 짐을 네가 지게 해서…….”
엄마는 곁에서 눈을 껌벅거리고 있는 여섯 살짜리 둘째 은별이 손을 잡고 말했어요.
“은아, 누나 말 잘 듣고 옥이 잘 봐줘야 해.”
삼남매는 열한 살짜리 금별이와 여섯 살짜리 은별이, 그리고 막내 세 살짜리 옥별입니다. 엄마는 세 아이를 한꺼번에 부를 때는 별아 하고 부르고 한 사람씩 부를 때는 금아 은아 옥아 하고 부르십니다.
엄마는 비단실같이 가느다란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금아, 아기별 노래 불러 줄래?”
“노래 듣고 싶어?”
“음…….”
엄마는 눈을 감고 귀를 열었습니다. 금이 노래를 불렀습니다.
서산 너머 해님이 숨바꼭질할 때면
수풀 속의 새집에는 촛불 하나 켜 있죠
아니, 아니 아니죠 그건 촛불 아니죠
저녁 먹고 놀러 나온 아기별님이지요.
금별이 노래를 부르고 엄마를 보았습니다. 엄마는 눈을 감은 채 노래를 듣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엄마 얼굴은 아기별님처럼 평안해 보이고 꼭 감은 눈과 이마가 예뻤습니다.
철없는 은이가 엄마를 들여다보며 말했습니다.
“누나 노래 잘 부른다. 그지? 엄마.”
엄마는 가만히 자고 있었습니다.
“엄마가 자나 봐.”
은별이 말에 금별이도 엄마가 자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강아지와 놀던 옥별이 들어오면서 엄마를 불렀습니다.
“엄마, 나 강아지하고 놀다 왔어.”
금별이가 손가락을 세워 입을 가리고 말했습니다.
“쉿! 엄마 주무셔, 조용히 해.”
삼남매는 엄마가 깰까봐 조심조심 그 옆으로 나란히 누웠습니다.
2. 별이 된 엄마
아침이 밝았습니다. 금별이 엄마를 보았습니다. 엄마는 아직도 깊은 잠에 빠졌습니다. 부스럭 소리를 들은 은별이 일어나 화장실을 다녀왔습니다.
언니들 소리에 옥별이도 깨어 눈을 비비며 엄마한테 다가가 바짝 말라 납작한 젖을 만졌습니다.
“엄마, 자아?”
언니 금별이 가만히 말했습니다.
“옥아, 엄마 주무시게 조용히 해.”
“알았어, 언니.”
금별이 부엌으로 나가 아침을 차렸습니다. 그러는 동안 은별이, 옥별이는 세수를 했습니다. 엄마는 밥을 못 먹은 지가 오래입니다. 그래서 금별이는 엄마 죽을 언제나 따로 쑤어 상을 차렸습니다.
상을 차린 금별이 조심스럽게 엄마를 불렀습니다.
“엄마, 그만 일어나세요. 아침 차렸어요.”
엄마는 깊은 잠이 드신 듯 숨도 쉬지 않고 주무셨습니다. 둘째 은별이 누나보다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엄마, 밥 먹어. 빨리 일어나.”
그러나 엄마는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주무셨습니다. 이상한 생각이 든 금별이 다가가 흔들어 깨웠습니다.
“엄마. 그만 일어나세요.”
엄마는 눈을 뜨지 않았습니다. 막내가 달려들어 엄마를 깨웠습니다.
“엄마, 밥 먹어. 나 배고파.”
엄마는 똑바로 누운 채 가만히 듣고만 있었습니다. 금별이 불안한 생각이 들어 더 큰 소리로 엄마를 깨웠습니다.
“엄마, 일어나세요!”
그래도 엄마는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막내 옥별이 엄마 얼굴에 볼을 비비며 깨웠습니다.
“엄마, 그만 자아!”
금별이 엄마 얼굴을 만져보았습니다. 엄마 얼굴이 돌처럼 차갑고 이상했습니다.
“엄마. 엄마! 왜 이래?”
둘째 은별이 엄마 팔을 당기며 소리쳤습니다.
“엄마, 일어나 봐.”
엄마 팔은 나무때기처럼 뻣뻣하고 차가웠습니다. 순간 은별이 와아 하고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엄마, 일어나, 일어나. 엄마 죽은 거야?”
엄마는 다른 사람이 되어 있고 팔다리가 굳어 나무처럼 뻣뻣했습니다. 죽은 것이라고 생각한 금별이 엄마 가슴에 얼굴을 묻고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동생들도 엄마가 죽은 것을 알고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삼남매 울음소리가 옆집까지 들렸습니다. 옆집 할머니가 무슨 일인가 하여 찾아오셨습니다.
“왜들 그러느냐?”
금별이 엄마 가슴에 얼굴을 묻고 소리쳤습니다.
“엄마, 일어나, 일어나!”
이웃 할머니가 엄마 곁으로 다가가 손과 머리를 만져보다가 고개를 떨어뜨렸습니다.
“불쌍한 사람, 그렇게 갔구먼……”
할머니는 눈물을 훔치며 아이들을 돌아보았습니다.
“엄마는 못 일어나신다. 불쌍한 것들만 남겨 놓고 먼저 가다니 몹쓸 사람……”
철부지 막내가 물었습니다.
“할머니, 우리 엄마 죽었어?”
할머니는 어린것을 들여다보며 입을 떼지 못했습니다.
금별이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말했습니다.
“할머니, 우리 엄마 병원 가면 살 수 있어요?”
할머니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안 된다. 늦었어.”
은별이 더듬더듬 물었습니다.
“할,머,니, 엄마를 어떻게 하면 살려요?”
할머니는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저었습니다.
“엄마는 이제 멀리 갔다.”
“어디로요?”
할머니는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별나라로 갔어.”
막내가 물었습니다.
“할머니, 별나라 갔다 언제 와?”
3. 개밥바라기
할머니는 머뭇거리다 대답했습니다.
“열 밤 자고 오신다.”
순진한 막내 옥별이 손가락 열 개를 펴 보이며 물었습니다.
“이렇게 열 밤?”
할머니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습니다.
이미 세상을 떠나 얼굴만 남은 엄마 가슴으로 막내 옥별이 파고들며 불렀습니다.
“엄마, 일어나, 일어나!”
대답 없는 엄마 곁에서 절규하는 삼남매의 울음소리가 온 동네에 퍼지고 놀란 마을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이웃집할머니가 아이들 친척에게 연락해 주었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눈물을 글썽이며 애석한 마음을 한 마디씩 털어놓았습니다.
“천사처럼 착하게 살았으니 좋은 데로 갔을 거야.”
“남편 잘못 만나 제 명에 못 갔어. 어이고 인생 억울해.”
“아이들 아버지는 어디 가서 집안에 초상이 나도 얼굴을 안 비친담!”
아이들만 남은 집을 외면할 수 없는 이웃들은 장례를 어떻게 치를지 의논을 했습니다. 소식을 들은 별이 작은아버지와 외삼촌이 달려왔습니다.
그러나 술에 취해 나간 가장 염장섭은 어디서 무얼 하다가 왔는지 그 다음날 들어왔습니다.
별이 작은아버지가 원망스런 소리로 말했습니다.
“형님, 어디서 이제 오십니까?”
“그건 네가 알아서 뭘 해?”
“형수님이 아이들만 남겨놓고 가셨습니다.”
“잘 갔지. 더 살아 봐야 저도 고생, 나도 고생일 뿐이야.”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십니까?”
“모르는 소리 말아.”
그렇게 말한 별이 아버지 염장섭은 술을 또 마시고 집을 나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별이 아버지는 언제나 아이들한테 무서운 존재로만 보일 뿐 아버지라고 할 수 없는 주정꾼입니다.
한 번도 집안 문제를 걱정해 본 일이 없었고 술주정이 심해서 아내는 속을 끓이다가 소갈이 병이 나서 죽고 만 것입니다. 그런 염장섭은 아내가 죽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남들이 장례를 다 치른 후에야 저녁나절 들어왔습니다.
술이 취해 벌건 얼굴로 들어온 아버지를 보고 삼남매는 아무도 입을 열지 못했습니다. 무슨 말이든 하면 핀잔만 주고 윽박질러서 아이들이 주눅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방 한구석으로 몰려들어 겁먹은 눈으로 아버지를 바라보자 염장섭은 벼락같은 소리를 질렀습니다.
“이것들아, 다 나가 죽어!”
별이 삼남매는 겁먹은 얼굴로 밖으로 나와 사랑채 마루에 나란히 앉았습니다. 서쪽 하늘에 개밥바라기가 눈물에 젖은 채 아이들을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철부지 옥별이 언니 팔을 흔들었습니다.
“엄마 열 밤 자고 오지?”
금별이 묵묵히 서쪽 하늘에 빛나는 별만 바라볼 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습니다. 둘째 은별이 대신 대답했습니다.
“엄마 안 와!”
“할머니가 열 밤 자고 오신댔어.”
“거짓말이야.”
“아니야, 할머니는 거짓말 안 해.”
금별이 철없이 엄마를 기다리는 동생을 가슴에 안고 울먹이며 말했습니다.
“엄마는 별이 되셨어.”
옥별이 그제야 할머니 생각이 나서 말했습니다.
“맞아, 할머니가 그러셨는데 엄마는 별이 되었다고 했어.”
은별이 고개를 가로저었습니다.
“엄마는 별이 아니야.”
금별이 개밥바라기를 손가락으로 가리켰습니다.
“저기, 저 별이 엄마별이야.”
막내 옥별이 언니한테 다짐하듯 물었습니다.
“엄마 열 밤 자고 올 거지?”
금별이 가느다란 소리로 대답했습니다.
“엄마가 보고 싶을 땐 저 별을 보고 있으면 보여.”
“정말?”
금별이 일어서며 말했습니다.
“들어가 자자.”
막내가 따라 일어서며 서쪽 하늘 밝은 별을 향해 손짓을 했습니다.
“엄마, 안녕!”
별이 삼남매가 안으로 들어갔을 때 아버지 코고는 소리가 온 집안을 흔들어대고 있었습니다. 삼남매는 가만가만 고양이 걸음으로 들어가 건넌방에 자리를 폈습니다.
금별이 동생들을 양옆에 누이고 생각에 잠겼습니다.
‘엄마, 난 어떡해? 어떡해야 하는지 말해줘요. 꿈에라도 오셔서 말해 주세요. 말해 주세요. 말을……’
아무 생각도 더 나지 않아 같은 말을 하고 또 하다가 잠이 들었습니다.
4. 엄마 목소리
금별이 잠결에 엄마 꿈을 잠깐 꾸었습니다. 엄마가 건강한 얼굴로 옥수수를 바구니 가득 담아 들고 대문으로 들어오시며 웃으셨습니다. 하얗고 고른 치아가 옥수수 알보다 예뻤습니다.
‘엄마, 이제 다 나으셨어요?’ 하고 묻자 엄마는 말없이 돌아서서 나갔습니다.
‘엄마!’ 하고 부르며 금별이 눈을 뜨고 둘러보았습니다. 안방에서 들리던 아버지 코고는 소리도 잠잠했습니다. 갑자기 엄마가 더 보고 싶었습니다. 잠을 깨면 아파서 끙끙 앓던 엄마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엄마가 계실 땐 밖에 나갔다 들어와 엄마 앓는 소리가 들리면 싫었는데 지금은 엄마 앓는 목소리가 그리워졌습니다. 앓고라도 살아서 곁에 있는 엄마가 그렇게 좋았던 것입니다.
‘엄마, 앓으시는 목소리라도 듣고 싶어요. 천사 같은 엄마, 엄마는 바보였어요. 아빠가 그렇게 괴롭혀도 웃기만 하시며 우리 곁을 지키시던 엄마. 엄마가 난 어떻게 해야 해요?’
금별은 동생들을 훌륭하게 키워야 한다고 생각하며 밤잠을 설치고 뜬눈으로 보내다가 새벽에 일어나 밥을 짓고 상을 차렸습니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한 달이 지났습니다.
철부지 옥별은 손가락 열 개를 다 세고 또 세어도 엄마가 오시지 않자 날마다 하루 종일 대문 앞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금별이 학교를 가도 엄마를 기다리는 막내는 대문 앞에서 하루 종일 기다리고 오빠 은별이가 놀러 가자고 끌어도 엄마가 올 거라고 자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대문 앞에 쪼그리고 앉아 별꽃 같은 입술이 터지고 마르도록 엄마를 부르며 골목길을 바라보는 얼굴에는 안타까운 슬픔이 다닥다닥 묻어 있었습니다.
옥별이 마음을 안 이웃 사람들도 그 어린것이 기다리는 모습이 안쓰러워 그 앞을 못 지나고 길을 돌아다녔습니다.
어느 날 아침 딸이 차린 아침을 먹으면서 아버지가 명령하듯 말했습니다.
“금별이, 오늘은 학교 가지 말고 동생들하고 집안 청소 깨끗이 해라. 알았냐?”
금별이는 학교 빠지는 것이 싫었지만 아빠가 무서워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습니다.
“왜 대답이 없어?”
“제가 반장인데 학교 빠지면……”
“뭐야? 반장이면 반장이지, 네 애비 말이 말 같잖다는 거냐?”
아버지는 주먹을 들었다 내렸습니다. 머리를 숙인 금별이 눈물을 똑 떨어뜨렸습니다.
“……”
“오늘 집안 청소 깨끗하게 해놓고 작은아버지가 오시면 따라가, 알았냐?”
아버지는 금별이 상 치우는 것을 돌아보고 나갔습니다.
금별이 눈물을 흘리며 책가방을 건넌방으로 들이밀자 은별이 말했습니다.
“누나, 내가 청소할 게 학교 가아.”
“네가 무슨 청소를 해? 내가 할 거야. 너희들은 심부름이나 해.”
이렇게 하여 집안을 말끔히 쓸고 닦아놓았습니다. 낮에 작은아버지가 오셨습니다. 막내가 대문 앞을 안 떠나려고 발버둥을 쳤지만 달래어 데리고 작은집으로 갔습니다.
작은엄마가 아이들을 보고 놀라 작은아버지한테 물었습니다.
“웬 일이에요?”
“형님이 사정이 있다면서 한 달 동안만 우리 집에서 조카들을 보아 달라는구려.”
“무슨 사정이 있대요?”
“나도 몰라. 아주 중요한 일이 있다는군.”
“우리 식구 살기도 좁은 집에 세 아이가 다 한꺼번에 오면 어떡해요?”
“좁은 대로 한 달만 참읍시다.”
별이 삼남매는 작은아버지가 정하여주신 골방에 들었습니다. 골방 창밖에는 강이 흘러가고 들판 멀리 나지막한 산이 보였습니다.
저녁이면 그 나직한 산 위에 개밥바라기가 높이 떠서 환한 웃음을 지으며 아이들이 있는 창문으로 내려다보았습니다.
금별은 학교까지 거리가 멀어서 아침 일찍 일어나야 했습니다. 동생들이 자는 것을 보고 아침도 굶은 채 학교에 갔습니다.
날마다 금별이 학교에서 돌아올 시간이 되면 은별이와 옥별이 강둑에 나와서 언니를 기다렸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입니다.
5. 불러보고 싶은 엄마
강둑을 타고 먼 마을에서 어떤 사람이 머리에는 무엇을 이고 한 손에는 보따리를 들고 이쪽으로 오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본 막내 옥별이 엄마 생각이 나서 말했습니다.
“언니, 저기 엄마 온다아.”
은별이 말을 가로막았습니다.
“엄마 아니야.”
“엄마야. 저것 봐.”
별이 삼남매가 바라보는 동안 아주머니가 가까이 왔습니다. 옥별이 다가온 아줌마 얼굴을 확인하고 실망하여 말했습니다.
“엄마가 아니네……. 아니야…….”
금별이 아주머니를 바라보고 말했습니다.
“아주머니, 무거우시지요?”
아주머니는 이고 있는 것을 내려놓으려고 멈춰 서며 말했습니다.
“나 좀 도와줄래?”
“네, 아줌마.”
금별이 머리에 이고 있는 것을 두 팔로 받들어 내렸습니다. 무엇이 들었는지 무거웠습니다.
“고맙다. 고개 빠지는 줄 알았는데……”
아주머니는 아이들을 둘러보며 물었습니다.
“너희들은 한 형제냐?”
“네.”
“모두가 누굴 닮았는지 예쁘구나. 어디 살지?”
막내 옥별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대답했습니다.
“우리들은 저기 살아요.”
“그렇구나.”
아주머니는 잠시 후 무거운 것을 머리에 이셨습니다. 그리고 한손으로는 보따리를 들었습니다. 금별이 보따리를 잡으며 말했습니다.
“아주머니, 이 보따리는 제가 들어드릴게요.”
“무거운데.”
“괜찮아요.”
금별이 책가방을 은별이한테 맡기고 보따리를 받아 머리에 이었습니다. 그 모양을 본 옥별이 깔깔거렸습니다.
“언니도 엄마 같다! 호호호.”
두 아이가 재잘거리고 따르는 동안 아주머니가 동네를 들어서며 말했습니다.
“고맙다. 네가 아니었으면 여기까지 오지도 못할 뻔했다. 너희들 집은 어디냐?”
은별이 대답했습니다.
“저기 큰 대문집이에요.”
“그러냐? 그런데 이게 어찌 된 일이야……”
아주머니는 말끝을 흐리며 아이들이 조르르 대문 안으로 들어가는 뒤를 따라 들어왔습니다. 금별이 물었습니다.
“아줌마는 어디로 가시나요?”
“내가 묻고 싶은 말이다. 너희들은 내가 찾는 집도 알고 있었던 것이냐?”
“몰랐는데요.”
“여기가 너희들 집이라면서?”
“……”
이때 작은엄마가 나와 반겼습니다.
“엄마!”
작은엄마는 아주머니가 이고 있는 보따리를 받아 내리며 마치 아이들처럼 엄마, 엄마 하면서 좋아했습니다.
막내 옥별이 중얼거렸습니다.
“나도 엄마, 엄마 하고 엄마 부르고 싶다.”
아주머니는 금별이 이고 있는 보따리를 내려주며 딸한테 물었습니다.
“어떻게 된 거냐? 이 아이들이 여기가 자기네 집이라고 하던데?”
“그렇게 됐어요.”
작은엄마는 이렇게 대답하고 친정어머니를 모시고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방에서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눈 다음 작은엄마와 아주머니가 나왔습니다. 아주머니가 아이들을 돌아보며 귀엽다는 듯이 말했습니다.
“귀여운 것들이 고생이 많구나. 고맙다 큰애, 네가 도와주지 않았으면 난 돌아갈까 생각했단다. 아무것도 아닌 것이 무겁기만 했어.”
작은엄마가 쟁반에다 떡과 과일을 그득히 담아 주며 말했습니다.
“금별이 수고 많았다. 할머니가 많이 고마워하시는구나. 할머니가 가져오신 거야. 너희 방에 가서 먹어라.”
삼남매는 골방으로 들어갔습니다. 금별이 세 등분으로 나누어 놓고 말했습니다.
“똑같이 나누었다. 알았지?”
옥별이가 먼저 자기 몫을 가져가고 이어 은별이 가져갔습니다. 금별이 남은 것을 정성스럽게 싸서 앉은뱅이 책상한쪽 위에 놓았습니다.
은별이 고개를 갸웃하고 물었습니다.
“누나는 왜 안 먹고 거기다 놔?”
“난 배가 고프지 않아. 다음에 먹을 거야.”
옥별이 작고 예쁜 입을 오물거리며 말했습니다.
“언니, 이 떡 아주 맛있어. 언니도 먹어 봐.”
“알았어. 물 떠 올게.”
금별이 물을 떠다 동생들을 먹였습니다. 아주머니가 가져다 준 선물로 은별이와 옥별이는 배가 불렀습니다.
다음 날 아침입니다. 옥별이 일어나 책상 위에 있는 언니 몫을 보고 말했습니다.
“언니, 떡 먹어. 아주 맛있어.”
금별이 그 마음을 알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맛있었어? 또 먹을래?”
“응.”
6. 꽃뱀
그렇게 한 달이 지났을 때 작은아버지가 은별이만 데리고 집으로 가고 금별이와 옥별이는 외갓집으로 보냈습니다.
은별이 누나와 떨어지지 않겠다고 떼를 썼지만 어쩔 수 없이 울면서 아버지가 기다리는 집으로 왔습니다. 작은아버지가 은별이를 데리고 들어서자 아버지와 낯모르는 아줌마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작은아버지가 낯선 아줌마와 인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은별이 어깨를 밀면서 말했습니다.
“은별이 왔어요, 형님.”
“그 동안 고마워,”
아버지 염장섭은 전에 없이 부드러운 눈빛으로 아들을 맞았습니다. 그리고 낯선 아줌마한테 인사를 시켰습니다.
“은별아, 인사 드려라. 새 엄마다.”
은별이 놀라 아버지 얼굴을 올려다보았습니다.
“이 녀석이 놀라긴. 인사드려, 새 엄마야.”
코스모스처럼 야리야리하고 고운 아줌마가 웃으며 다가왔습니다.
“귀엽게도 생겼네. 네가 은별이냐?”
“…….”
은별이 우물쭈물 망설였습니다. 아줌마가 상냥하게 말했습니다.
“남자 애가 부끄럼을 잘 타나 봐.”
아줌마 목소리는 새소리처럼 맑고 얼굴은 꽃처럼 예뻤습니다. 아버지는 싱글벙글 웃는 얼굴로 은별이 손을 잡고 방으로 들었습니다. 예쁜 아줌마도 따라 들어왔습니다.
“은별아, 새 엄마한테 큰절로 인사드려라.”
은별이 주저하자 아버지가 손을 당겨 인사를 시켰습니다. 은별이 억지로 절을 하자 아줌마가 웃으며 말했습니다.
“은별이 아빠를 닮서 아주 미남이에요.”
아버지 염장섭은 싱글벙글 아줌마를 사랑이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았습니다. 지금까지 아빠가 엄마를 그렇게 바라보며 웃는 얼굴을 보지 못한 은별은 말로 하기 힘든 억울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빠는 밉다. 미워, 저 아줌마가 엄마라고? 우리 엄마는 별이 되셨어.’
그날부터 은별은 날마다 싱글벙글하는 아버지와 아버지를 즐겁게 해 주려고 치장하고 아양 떠는 아줌마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아줌마는 쭉 뻗은 큰 키에 허리가 잘록하고 쌍꺼풀눈에는 웃음이 실바람처럼 얹혀 샐샐거리며 아버지가 웃게 해 주었습니다. 동화책 속의 공주처럼 예쁜 코와 빨간 입술이 막 피어난 장미꽃도 그렇게 예쁘지는 않을 것입니다.
날마다 발끝에 잘잘 끌리고 하늘하늘한 분홍색 잠옷을 입고 눈썹을 까맣게 그리고 손톱도 빨갛게 그리고 발톱도 엄지는 빨강, 다음은 까망, 가운데 발가락은 초록 그 다음 발가락은 노랑, 새끼발톱은 분홍색을 칠했습니다.
은별은 옛날 엄마가 화장하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날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한 벌뿐인 후줄근한 차림으로 들로 나가 밭을 매고 돌아올 때는 파를 뜯기도 하고 콩 다발을 들고 와 저녁을 짓고 밤이면 떨어진 옷을 기워주었습니다.
그런 엄마였지만 아버지 술주정을 받으며 괴롭게 살다 갔습니다. 새엄마라는 아줌마를 보면 자기들 곁을 떠난 불쌍한 엄마생각이 더 나고 보고 싶었습니다.
새 엄마는 아침부터 종일 화장을 하고 저녁때가 되면 백합꽃 향내가 나는 향수를 뿌렸습니다. 그리고 택시가 와서 빵빵하면 영화배우처럼 아버지한테 손짓을 하고 생글생글 웃으며 나갔습니다.
아버지는 저녁마다 밤이 깊도록 새엄마가 오기를 기다리고 은별은 날마다 졸음을 못 참고 잤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보면 엄마는 늦잠을 자고 아버지도 그 곁에서 새엄마가 일어날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엄마가 살아 계실 때는 그런 아버지가 아니었습니다. 엄마가 조금만 늦게 일어나도 큰소리로 집안을 뒤집어엎던 기억이 또렷한 은별은 변한 아버지가 싫었습니다.
은별은 아버지가 새엄마 옆에 누워 있는 것을 보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옆집 강아지가 졸랑거리며 따라왔습니다. 강아지를 안고 경로당으로 가서 돌계단에 앉아 강아지와 놀았습니다.
강아지 머리를 쓰다듬고 있는데 방안에서 어른들 이야기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요새 장섭이가 새장가 들었다면서?”
“그렇다던데 어떻게 된 거야?”
“누가 아나. 어디서 왔는지 모르지만 며칠 전부터 여우같이 쏙 빠진 여자가 들락거리더군.”
“꽃뱀 아냐?”
“꽃뱀이라니?”
“그렇게 예쁜 여자가 미쳤다고 그 건달한테 시집을 오겠어? 자네, 그 여자 보기나 했나?”
“보았지. 세상천지에 그렇게 예쁜 여자가 어디 숨었다가 왔는지 몰라. 양귀비도 보면 울고 갈걸.”
“그렇게 예뻐?”
“금별이 엄마도 예뻤지만 더 예뻐.”
“그럼 대단한 미인 아닌가.”
“미인이라니까. 한번 가 봐. 자네도 홀딱 반할 걸.”
“장섭이가 날마다 싱글벙글하는 이유가 따로 있었군.”
“죽은 금별이 엄마만 불쌍하지. 그런 날건달 만나 죽도록 일만 하고 구박받다 갔으니 내가 생각해도 그 인생이 불쌍해.”
“그렇게 예쁜 여자가 무얼 보고 따라왔을까?”
“아 그야……”
이때 동네 아줌마가 들어와 어른들이 입을 다물었습니다.
7. 몰인정한 아이
작은아버지가 삼남매를 데리고 외가댁에 왔다가 은별이만 데리고 떠나던 날 옥별이 울면서 매달렸습니다.
“오빠, 가지 마, 가면 싫어. 싫어.”
은별이도 누나와 동생을 떠나지 않겠다고 몸부림쳤습니다. 그러나 외삼촌이 안고 안으로 들어가 삼남매는 우는 소리를 주고받으며 헤어졌습니다.
안 가겠다고 버티는 은별이 소리가 멀어지다가 안 들렸습니다. 금별과 옥별은 중학생인 외사촌 언니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외사촌 언니는 갑자기 자기 혼자 있는 방에 두 동생이 들어오자 불만스러워했습니다.
“아빠, 난 혼자 있고 싶어. 얘들 싫어!”
외삼촌이 달랬습니다.
“고모가 세상을 떠나셔서 우리 집으로 온 거다. 한 달만 같이 지내면 된다. 네 동생들이야, 잘 돌봐 주어라.”
“고모가 죽어서 우리 집으로 왔다고? 고모가 안 계시면 우리하고 쟤네들하고 무슨 상관이야. 고모도 없는 애들을 우리가 왜 데리고 있어야 하는데?”
“그래도 얘들은 너의 동생이야. 한 달만 있으면 갈 거다.”
금별이과 옥별은 싫어하는 언니 방에 함께 살게 되었습니다. 중학교 2학년인 언니는 아주 까다롭고 새침때기였습니다.
“너 금별이라고 했지?”
“응, 언니.”
“몇 학년이냐?”
“오학년.”
“공부를 잘한다면서?”
“……”
“난 공부벌레라면 질색이야. 넌 공부벌레 아니지?”
“……”
외사촌 언니 미자는 쌀쌀맞은 소리로 말했습니다.
“나하고 있는 동안 공부하는 꼴 보기 싫으니까 공부는 집에서 하지 마. 알았지?”
“알았어. 언니.”
“오늘부터 저녁 먹으면 나가서 내가 들어오라고 할 때까지 들어오지 마, 알았지?”
“응.”
외가에 온 첫날부터 금별은 저녁마다 동생 옥별을 업고 산 뒷동산에 올라가 언니가 부를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뒷동산에 올라서 보면 넓은 들이 보이고 들판 끝으로 기차가 지나갔습니다.
등에 업힌 옥별은 아무것도 모르고 좋아했습니다.
“언니가 업어주어서 좋다.”
“좋아?”
“응, 따듯해.”
등에 업힌 동생이 따뜻하다는 말을 들으니 여름이 어느새 지나간 것을 알았습니다.
“벌써 가을인가 봐.”
“언니, 나 무겁지?”
“아니, 빨리 언니가 업지 못하게 커라. 언제나 네가 혼자 다닐까.”
“혼자 다니기 싫어. 언니 따라 다닐 거야.”
“그래……, 알았어.”
옥별이 한 팔을 들어 서쪽을 가리켰습니다.
“언니, 엄마별이 나를 바라보고 있어.”
“그렇구나.”
“엄마가 별이 되어 나를 따라 다니는 거 맞지?”
“응.”
“우리 집에 있을 때도 나를 보더니 작은아버지 집에 있을 때도 창문으로 나를 내려다보았어. 지금도 따라와서 나를 보고 있는 거야. 엄마는 언제 와?”
금별은 엄마가 보고 싶어도 동생 앞에서는 그런 말을 못합니다. 어쩌면 엄마가 정말 별이 되어 옥이를 바라보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옥별이 하늘을 보며 언젠가 엄마가 어렸을 적 이야기를 들려주신 생각이 났습니다.
“내가 어렸을 때는 집 뒤 언덕 위에 올라가 별들하고 놀았다. 하늘을 바라보면 별들이 모두 내 머리에 우르르 쏟아질 것만 같이 아름다웠지. 그 아름다운 별꽃들은 가슴에 꿈을 안겨주었어……. 어려서 보던 별은 꿈을 주었는데 어른이 되고는 별들이 꿈을 버리고 떠난 것 같다.”
금별은 엄마 생각을 하면서 옥이 모르게 눈물을 흘렸습니다. 집으로 내려왔을 때 미자 언니 방에는 불이 꺼져 있었습니다.
‘언니가 부를 때까지 기다리라고 해놓고……’
금별은 옥이를 내려놓고 방문을 살짝 열었습니다. 미자 언니는 자고 있었습니다. 방으로 들어가 동생을 조심스럽게 한쪽에 뉘어 놓고 그 곁에 팔베개를 하고 누웠습니다.
다음 날 아침 학교를 가려고 책가방을 찾으니 가방이 없어졌습니다.
‘이상하다 내가 여기다 놓고 나갔었는데?’
8. 유치한 악동
옥별은 책가방을 찾지 못하고 맨손으로 학교에 갔습니다. 학교는 작은아버지네 집보다 가까워서 일찍 가지 않아서 좋았습니다.
책가방을 들지 않고 오는 것을 본 한 반의 지황자가 빈정거렸습니다.
“임금별! 이제 반장이라고 책가방도 안 가지고 다니냐?”
“……”
“임금별, 너 내 말 안 들려?”
“들려.”
“그런데 말 같지 않다, 이거지?”
“……”
“네가 선생이라도 되냐? 학생이 가방도 안 가지고.”
금별은 잃어버린 책가방 때문에 속이 많이 상해 있는데 황자가 시비조로 말을 건네자 정색을 하고 말했습니다.
“너나 잘 해!”
“뭐라고? 내가 어땠는데?”
“……”
금별이 속으로 말했습니다.
‘시험 볼 때마다 빵점만 받는 것이 무슨 말이 많은 거야? 제 공부나 잘하지.’
황자가 턱을 바싹 들이대고 침을 튀기며 말했습니다.
“내가 어땠는데? 말해 봐!”
“……”
금별이 대답이 없자 엉뚱한 트집을 잡고 덤볐습니다.
“임금별, 넌 옷도 없니?”
“그게 무슨 말이냐?”
“너 봄에 입던 옷을 여름에도 입고 여름이 지나도 그 옷이 그 옷이잖아?”
금별은 여름이 지나고 가을인데도 엄마가 만들어주신 옷을 지금까지 입고 있는 것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엄마가 밤새워 만들어주신 옷이었습니다.
동생들 역시 엄마가 만들어 주신 옷을 지금까지 입고 있는 것입니다. 별이 삼남매가 무슨 옷을 얼마 동안 입고 있든지 관심을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엄마 손길이 닿은 옷을 생각하면 벗어놓고 싶지 않았습니다.
지황자가 하는 말을 들으면 기분이 많이 상하고 자존심이 상했지만 엄마의 마지막 손길이 닿은 옷을 생각하니 옷이 고맙기만 했습니다.
그것도 모르는 황자는 또 속을 뒤집어 놓았습니다.
“야, 너 내 말 안 들리는 거야? 옷이 없느냐고?”
“있다.”
“있으면 바꾸어 입어야지 몸에서 냄새나는 옷을 철이 바뀌어도 안 바꿔 입으면 옆 사람 생각도 해주어야 하는 것 아니야?”
황자는 공부도 못하는 것이 이 사람 저 사람 말꼬리를 잡고 시비하다가 싸움질을 하는 아이입니다. 그런 아이인 것을 알기 때문에 금별은 말상대를 피했습니다.
황자는 상대가 응수하지 않자 더 큰 소리로 떠들어댔습니다.
“얘들아, 금별이한테 냄새나지 않니? 봄부터 입은 옷이야, 얘들아.”
이때 금별이 동네에 사는 권태수가 말을 막았습니다.
“야, 지황자, 너나 잘해! 너한테는 무슨 냄새가 나는지 알기나 해?”
황자가 황소만큼 큰 눈을 부라리며 덤벼들었습니다.
“네가 뭔데 남의 말에 끼어드는 거냐? 네가 금별이 남편이라도 되는 거야?”
“뭐라고 이, 이게!”
태수가 주먹을 쥐고 달려들었습니다.
“말이면 아무 말이나 해도 되는 줄 알아? 너나 잘해!”
지황자는 태수를 이길 힘이 없는 것을 알고 핵 돌아서며 한 마디 던지고 달아났습니다.
“둘이 잘해 봐라! 얼레껄래리 올레껄래리!”
아무 말이나 함부로 하는 황자는 반 아이들은 물론 선생님까지도 좋아하지 않는 아이입니다. 공부시간에는 졸기나 하고 어디서 났는지 향수를 바르고 다니지만 아무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태수가 중얼거렸습니다.
“되게 못 생겨 가지고 꼴에 향수는 왜 발라.”
금별이 고마워서 말했습니다.
“태수야, 고맙다.”
“고맙긴, 너 요새는 작은아버지 집에서 외가로 갔다면서?”
“그걸 어떻게 알았니?”
“동네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들었어. 그리고……”
“그리고?”
“아냐. 나중에 말하지 않아도 알아.”
금별은 태수가 한 말이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그냥 교실로 들어갔습니다. 선생님이 오시자 황자가 큰소리로 말했습니다.
“선생님, 학교 올 때 책가방 안 가지고 와도 괜찮아요?”
선생님이 물었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냐?”
“그런 게 있어요.”
“그런 게라니?”
“어떤 애는 책가방도 안 가지고 학교에 다녀요.”
선생님이 아이들을 보고 말했습니다.
“책가방 안 가지고 온 사람 손 들어봐.”
금별이 손을 들었습니다. 선생님이 놀랍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했습니다.
“염금별, 공부 끝나고 교무실로 와.”
황자는 황소같이 커다란 눈알을 데굴데굴 굴리며 금별을 향해 이죽거렸습니다.
“쌤통이다 쌤통!”
그러나 금별은 그 아이에게는 아무 관심도 두지 않고 공부시간에 선생님 말씀만 열심히 들었습니다. 그리고 학교가 끝난 다음 교무실로 갔습니다. 선생님이 물었습니다.
“어떻게 된 거냐?”
“책가방을 잃어버렸어요.”
“그래?”
금별은 그 동안 엄마가 돌아가시고 작은아버지 댁에 있다가 외삼촌댁으로 와서 외사촌 언니 방으로 들어오기까지의 사정을 다 말씀드렸습니다.
“그랬구나. 그런 일이 있는 줄도 모르고 있었으니 미안하다. 책가방을 못 찾으면 어떡할래?”
“저는 책가방이 없어도 괜찮아요. 공부 시간에 열심히 하면 된다고 생각해요.”
“그건 그렇지만……”
“선생님, 저는 원래 가방을 가지고만 다녔지 가방 때문에 공부한 것은 아니었어요. 제가 생각하는 것 하나만 말씀드려도 괜찮아요?”
“말해 봐라.”
“학생은 모두가 빈 항아리와 같다고 생각해요.”
“어째서?”
“그 빈 항아리에다 선생님이 지식이라는 향수를 담아주시는 거와 같으니까요.”
“그래서?”
“항아리에는 금이 간 항아리가 있고 성한 항아리가 있는 것처럼 온전한 항아리에는 담는 대로 다 보관하지만 금이 가고 깨진 항아리는 향수를 담아도 다 새는 것처럼…….”
“음, 네 말뜻을 알아듣겠다. 아주 재미있는 생각을 했구나. 선생님들이 빈 항아리 같은 너희들에게 좋은 향수를 채워주어야 할 의무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하는구나.”
“저는 전에도 집에서 공부를 못했어요. 앞으로도 그럴 거예요.”
“그러면서도 너는 반에서 1등만 하지 않았느냐?”
선생님은 금별이가 봄에 입은 옷을 여름 동안 입고 있고 그것을 가을이 되도록 입고 있는 이유도 알았습니다.
제자의 처지를 안 선생님은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생각했습니다.
9. 막내가 이상해
학교가 끝나고 집에 오자 동생이 대문 앞에 오도카니 앉아 새까만 얼굴로 언니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언니!”
“종일 여기 있었니?”
“응. 그런데 언니.”
옥별이 다리를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여기가 여기가…….”
금별이 다리를 들여다보았습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옥별이 몸을 떨고 있었습니다. 이마를 만져보았습니다. 열이 펄펄 끓었습니다.
“언니, 나 추워,”
금별이 동생을 가슴에 품었습니다. 동생은 더욱 떨면서 한쪽 다리를 쓰지 못하는 듯 다리를 길게 뻗고 일어서지를 못했습니다.
“왜 이래? 옥별아.”
마음이 급해진 금별이 외삼촌을 불렀습니다. 외삼촌이 들여다보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습니다.
“열이 나고 떠는 걸 보니 하루거리(말라리아) 같구나. 방에 들어가 뉘어라.”
그날은 옥별이 저녁도 먹지 못하고 앓았습니다. 금별이도 함께 굶었습니다. 그리고 하룻밤이 지나도 옥별이 다리 한쪽을 쓰지 못했습니다.
금별은 학교를 가도 동생 생각에 공부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동생이 빨리 나아야 할 텐데 하는 걱정으로 온 정신이 그리 쏠렸기 때문입니다.
옥별이 앓아누운 다음에는 외숙모가 돌보았지만 점점 심해지고 낫지를 않았습니다. 외삼촌도 걱정이 되어 의사를 모셔다 고쳐 보려 하였지만 의사도 고치지 못하고 실망스런 말만 했습니다.
“소아마비입니다. 큰 병원으로 가십시오. 소아마비는 고치기가 쉽지 않습니다.”
어린 옥별은 아무것도 모르고 빨리 낫기만 기다리는데 금별의 가슴은 쇠를 삼킨 것처럼 무겁고 아팠습니다. 학교에서 돌아와 동생을 위로하는데 장독대를 손질하던 외숙모가 금별이를 불렀습니다.
“금별아, 왜 가방을 여기다 넣었니?”
“가방이라고요?”
“그래, 네 가방 같은데, 그것이 왜 이 항아리 안이 들어 있느냐고?”
외숙모가 가방을 꺼냈습니다. 금별은 그 가방이 왜 항아리 안에 들어가 있는지 짐작이 갔습니다. 미자가 공부하는 것 보기 싫다고 거기다 숨긴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하면서 대답했습니다.
“제가 깜박했어요.”
“깜박할 게 따로 있지. 너 학교는 어떻게 다닌 거야?”
“그냥 다녔어요.”
“그냥이라니?”
이때 학교에서 돌아온 미자가 들어와 가방을 들고 있는 금별을 보자 홱 돌아서서 자기 방으로 갔습니다. 금별이 얼른 언니 뒤를 따라 가며 외숙모 물음에 대답을 피했습니다. 언니 방으로 가자 미자가 싸늘한 눈으로 물었습니다.
“엄마한테 뭐라고 했니?”
“아무 말씀도 안 드렸어.”
“정말? 그 가방을 왜 네가 가지고 있는데?”
“외숙모가……”
“알았어. 아무 말도 하지 마.”
“응.”
외삼촌네 집으로 온 지도 한 달이 되었습니다. 미자가 아버지한테 말했습니다.
“쟤네들 한 달만 있으면 간다고 했지요?”
“그래.”
“한 달 하고도 이틀이나 지났는데 아직도 같이 있어야 해요?”
“알았다. 그렇지 않아도 옥별이 때문에 그 애 아버지한테 데리고 가야겠다.”
그 다음 날 외삼촌이 옥별이를 업고 길을 떠났습니다. 옥별이는 한 다리를 쓰지 못하고 고통스러워하며 절름거렸습니다.
해가 지고 땅거미가 질 무렵 금별이와 옥별이 두 달 만에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날마다 외롭게 지내던 은별이 좋아서 어쩔 줄을 몰라 소리쳐 불렀습니다.
“누나야, 옥별아!”
금별이 아버지께 인사를 했습니다.
“안녕하셨어요?”
아버지는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하고 외삼촌에게 원망스럽다는 듯 말했습니다.
“좀 더 데리고 있지 벌써 왔나?”
“사정이 있어서 데리고 왔습니다.”
외삼촌이 등에 업힌 옥별이를 내려놓았습니다. 옥별이 제대로 서지 못하고 한 다리를 뻗은 채 털썩 주저앉았습니다. 그것을 본 아버지 염장섭이 얼굴을 일그러뜨렸습니다.
“저 계집애가 왜 저런 거야?”
“소아마비랍니다.”
“소아마비? 그럼 다리병신이란 말인가?”
“매형, 어린것이 듣는데……”
“계집애가 병신이 되면 어떻게 되는 거야?”
곁에서 어른들이 하는 말을 듣던 은별이 달려들어 옥별이를 끌어안았습니다.
“옥별아, 많이 아파?”
옥별이 햇볕에 새까맣게 그을린 얼굴에 보일 듯 말 듯한 미소로 대답했습니다.
“오빠, 많이 보고 싶었어.”
“나도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몰라.”
아버지 염장섭이 외삼촌을 데리고 나갔습니다.
금별이 동생을 안고 어루만지며 말했습니다.
“혼자 많이 외로웠지?”
“응, 누나. 난 누나가 많이 보고 싶었어.”
“나도 많이 보고 싶었다. 아픈 데는 없지?”
“없어, 그런데 누나……”
“왜?”
“아빠가 새엄마 데려왔다.”
“새엄마가 뭐야?”
“아주 예쁜 아줌마야.”
“아줌마? 지금 어디 계시냐?”
“몰라, 택시 타고 나갔어.”
“어디로?”
“밤마다 택시 타고 나갔다가 밤에 돌아와.”
“그게 무슨 말이야.”
“지금 아빠는 외삼촌하고 술집에 가셨을 거야. 엄마가 밤에 나가면 아빠는 술집으로 가셔.”
“너는?”
“난 날마다 자고 아침에 일어나면 새엄마하고 아빠가 나란히 누워 계셔.”
“아침은?”
“아침은 굶어.”
“아빠도?”
“새엄마가 일어날 때까지 기다리셔.”
금별은 집안에 큰 변화가 생겼다는 느낌을 받는 순간 불안한 생각이 가슴을 꽉 메웠습니다.
‘새엄마가 뭐야? 새엄마가……’
은별이 누나 손을 끌었습니다.
“누나 건넌방에 가서 자자. 나는 날마다 혼자 잤어. 오늘은 누나하고 자서 좋다.”
“왜 건넌방에서 자니?”
“새엄마가 안방에는 못 들어오게 하고 건넌방에서 자라고 해서 거기서 잤어.”
외삼촌 등에 업혀 온 옥별이 지친 얼굴로 말했습니다.
“언니, 나 졸려.”
“알았다. 가서 자자.”
동생들을 데리고 건넌방으로 들어간 금별이 자리를 펴고 있을 때 아버지가 들어왔습니다. 술이 취한 아버지는 아이들을 나란히 앉혀 놓고 말했습니다.
“내가 새엄마를 모셔왔다. 알았냐?”
“……”
“새엄마한테 잘해, 말 잘 듣고. 알았지?”
아무것도 모르는 옥별이 대답했습니다.
“네, 아빠.”
아버지가 금별을 쏘아보았습니다.
“금별이, 넌 왜 대답이 없어?”
금별이 한참 동안 대답하지 않다가 입을 열었습니다.
“새엄마가 뭐……”
“새엄마가 왔다고 했다. 새엄마한테 잘해!”
아버지는 술이 취한 채 안방으로 들어가 코를 곯기 시작했습니다. 금별이 은별과 옥별을 슬픈 눈으로 번갈아 보다가 물었습니다.
“은별아, 새엄마가 잘해 주시었니?”
“응, 내가 아빠 닮아서 아주 잘생겼다고 하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고 어떤 날은 붕어빵도 사다 주셨어.”
“그랬구나.”
옥별이 티 없이 맑은 눈으로 물었습니다.
“붕어빵 맛있었어?”
이렇게 말하고 언니를 바라보고 물었습니다.
“언니 우리 아빠가 잘 생긴 거야?”
금별이 되물었습니다.
“왜?”
“난 무섭기만 한데, 잘 생긴 사람은……”
“아빠는 잘생기신 거야. 은별이처럼.”
이렇게 대답하자 옥별이 제 생각을 말했습니다.
“그렇지만 오빠가 더 잘생겼어.”
“알았다, 그만 자자.”
다음 날 아침이 밝았습니다. 안방에서 새엄마 목소리가 크게 들렸습니다.
10. 비밀
“뭐라고요? 아들만 있다더니 딸이 둘씩이나 더 있다고요? 나를 이렇게 속여도 되는 거예요?”
“속이려고 한 것은 아니었고……”
“속이려고 한 것이 아니면 뭐예요?”
“조용히 해. 아이들 깨면 다 들어.”
“들으라면 들으라지. 어차피 다 알게 될 걸 무엇이 무서워 쉬쉬해요.”
“허허, 이 사람 왜 이럴까.”
“난 당신 말만 믿고 따라왔는데 그럴 수가 있어요?”
“그러니까 내가 당신한테 그만한 것은 해 준 것 아닌가.”
“그래도 난 억울해요.”
“당신도 억울할 거 없어. 나도 알 건 다 알고 있었으니까.”
“뭘 안다는 거예요?”
“당신도 숨겨둔 딸이 있던데?”
“뭐라고? 당신 내 뒷조사까지 했단 말예요?”
“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우연히 알게 되었지.”
“우연이라니 무슨 말이죠?”
“세상은 넓고도 좁다는 걸 알아야 해.”
“좋아요. 당신이 알았다니 나도 다 말하겠어요.”
“말할 것 없어.”
새엄마가 화난 소리로 말했습니다.
“당신이 숨긴 아이들을 다 데리고 들어왔으니 나도 숨겼던 아이 데리고 오겠어요.”
“마음대로 해.”
“당신한테 속은 게 분해요. 배신자.”
“……”
잠시 후 아이들 방문이 열리고 아버지가 들어와 말했습니다.
“다들 일어나거라.”
아이들은 자는 척하다가 눈을 비비며 일어나 앉았습니다.
“새엄마한테 인사드려야지.”
아이들을 데리고 안방으로 들어가려 하자 새엄마가 방문을 잠그고 말했습니다.
“오늘은 인사고 뭐고 싫어요. 생각해 보겠어요.”
“알았소. 좋을 대로 하구려.”
아버지는 아이들을 건넌방으로 되돌려 보내고 횅하니 밖으로 나갔습니다. 금별이 아침을 차려 동생들을 먹이고 새엄마 상도 보아놓고 학교로 갔습니다.
선생님이 오늘은 첫 시간부터 시험지를 나누어 주시면서 말했습니다.
“오늘 시험은 교장 선생님께서 생신을 맞아 특별히 우리 학년 전체에서 점수가 가장 좋은 학생에게 선물을 하기로 하여 치르는 시험이다. 좋은 성적으로 선물 받기 바란다. 알았나?”
아이들이 한 목소리로 대답하고 시험지를 받았습니다. 시험지를 받아든 금별은 속으로 웃었습니다. 백점이 자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지황자는 시험지를 받아들고 오만상을 찡그렸습니다.
한 시간 동안 교실 안은 잠자는 누에처럼 조용했습니다. 다들 답을 쓰느라고 끙끙거리는데 지황자만은 황소 눈 같은 눈알을 굴리면서 입술로 연필만 빨아댔습니다.
시간이 되자 선생님이 시험지를 받아 들고 나가셨습니다. 아이들이 서로 자기 답을 말하면서 웃기도 하고 가슴을 치기도하면서 점수를 맞추느라고 소란을 피웠습니다.
태수가 금별이한테 물었습니다.
“넌 백점이겠지?”
“몰라.”
“난 90점이야.”
“잘했네!”
“아무리 잘해도 난 너를 못 당해.”
“그러지 마.”
“교장 선생님이 무슨 선물을 주실까?”
“글쎄?”
“지금까지 이런 시험은 치른 적이 없었지?”
“그랬어. 교장 선생님께서 생신 기념으로 하신다니 재미있고 의미 있는 일이 아닐까?”
“이번 시험에 일등은 너일 테니까.”
“아니야.”
황자가 귀를 기울이고 있다가 눈을 번득이며 다가왔습니다.
“너네들 연애하니?”
태수가 화난 얼굴로 황자를 노려보았습니다.
“개 눈에는 똥만 보인다면서?”
“내가 개 눈이라고?”
“너는 무엇이나 제대로 보는 걸 못 봤어. 누가 말하면 다 연애하는 것이냐?”
“너하고 금별이하고 말하는 걸 보면……”
이때 금별이 말을 막았습니다.
“두 사람 그만 해. 그러다 싸우겠다.”
금별은 황자가 하는 말이나 행동이 마음에 안 들어서 가까이 있는 것조차 싫었습니다. 태수가 자리를 떠남으로 황자도 좋아하는 말싸움을 못하고 제 자리로 돌아가고 종례시간이 되었습니다.
선생님이 시험지를 들고 점수를 발표했습니다.
“김인수 90점, 권태수 95점, 이민자 70점, 지황자 30점, 그리고……”
아이들 눈이 동그래졌습니다. 아직도 반장인 금별이 점수를 안 불렀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이 웃으시면서 물었습니다.
“우리 반에 100점이 있을까?”
아이들이 모두 금별이를 바라보았습니다.
“염금별이요!”
지황자가 심통 난 소리로 말했습니다.
“금별이가 뭔데 100점이라는 거야?”
선생님이 100점짜리 시험지를 들어 보이며 큰소리로 발표했습니다.
“1등 염금별, 100점!”
아이들이 박수를 치며 축하의 눈길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황자만은 고개를 꼬고 앉아 오만상을 찌푸렸습니다.
선생님이 반 아이들을 둘러보며 말씀을 마쳤습니다.
“우리 반에서 1등이 나와서 자랑스럽다. 그리고 다른 반보다 우리 반의 평균 점수가 높아서 선생님은 기쁘다. 모두 잘해 주어서 고맙다.”
종례를 마친 후 담임선생님은 금별을 데리고 교장실로 갔습니다. 교장 선생님이 환하게 웃으시면서 말했습니다.
“축하한다. 네가 100점을 받았다고?”
“……”
“내가 생일을 맞아 기쁜 마음을 어떡할까 하다가 너희들에게 시험을 치르게 하여 상을 주기로 했다. 받거라.”
교장선생님이 봉투를 내밀었습니다. 금별이 공손히 받아들자 교장 선생님이 기뻐하는 얼굴로 말했습니다.
“대단한 것은 아니다. 그 안에 예쁜 옷을 살 수 있는 상품권이 들어 있다. 네 마음에 드는 옷을 사 입거라.”
금별은 가슴이 뛸 만큼 기뻤습니다. 자기 옷보다 동생들에게 바꾸어 입힐 옷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11. 쫓겨난 동생
금별이 집으로 돌아오자 옥별이 대문 앞에 쪼그리고 앉아 졸고 있었습니다.
“옥별아.”
언니가 부르는 소리에 깜빡 잠에서 깬 옥별이 반가워했습니다.
“언니!”
“왜 나와 있니?”
“……”
“왜 나와 있느냐고?”
“새엄마가 들어오지 말래.”
“왜?”
“몰라.”
이때 아버지가 부르는 소리가 났습니다.
“금별이 왔냐?”
“네.”
금별이 안으로 들어서자 아버지가 손짓을 했습니다.
“들어와 새엄마한테 인사 올려라.”
어제만 해도 싱글벙글 웃으며 새로 들인 아내가 예뻐서 어쩔 줄 모르던 염장섭이 하루 새에 웃음 잃은 얼굴로 말했습니다.
“여보, 금별이 왔어. 이제 인사 받아야지.”
금별이 한쪽 다리를 저는 동생을 부축이고 안방으로 들어갔습니다. 새엄마는 거울 앞에 앉아 화장을 하고 있다가 힐끔 돌아보고 말했습니다.
“알았다. 인사는 새삼스럽게 할 것 없고, 날 엄마라고 불러라.”
이 한 마디를 하고 눈썹을 붙이고 눈가를 새까맣게 칠하고 입술에 루주를 새빨갛게 발랐습니다. 머리를 치켜 올리고 처녀처럼 새빨간 원피스를 입더니 향수를 뿌렸습니다.
막 나갈 준비를 마치자 밖에서 택시가 빵빵 불렀습니다.
“알았어요오!”
아주 간드러진 소리를 지르면서 일어서서 아버지한테 말했습니다.
“다른 이야기는 낼 해요. 나 오늘도 늦을 거예요.”
그렇게 무뚝뚝하고 무섭던 아버지가 이빨 빠진 호랑이처럼 순하게 대답했습니다.
“알았어. 조심해.”
그리고 금별이한테 말했습니다.
“새엄마 보고 잘 다녀오시라고 인사드려야지.”
금별이 억지로 고개를 숙이고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새엄마는 택시를 타고 골목길을 빠져나가 큰 길로 달려가고 아버지는 멀뚱히 서서 택시가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옛날 엄마한테는 그리도 모질게 굴던 아버지 모습은 온데 간 데 없고 바보처럼 된 모습이 측은해 보였습니다.
다음날입니다. 교실에 아이들 몇이 황자를 둘러서서 귀를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황자가 수다스럽게 떠드는 소리가 떨어져 앉은 금별이한테도 들렸습니다.
“나 우리 엄마한테 간다.”
한 아이가 물었습니다.
“너 지금까지 엄마하고 살지 않았니?”
“외갓집에서 살았어.”
“왜?”
“우리 엄마가 나를 낳았을 때 우리 아빠가 집을 나가서 들어오지 않으셨대. 그래서 나는 우리 아빠 얼굴도 못 보고 컸는데 엄마가 아빠를 찾으셨다는 거야.”
“좋겠다. 아빠를 찾아서.”
“좋아. 우리 엄마가 그러시는데 아빠는 땅도 많고 돈도 많은 부자시란다.”
“언제 가니?”
“내일 엄마가 차 가지고 데리러 온댔어.”
금별은 황자가 하는 소리를 들으며 엄마 생각을 했습니다.
‘엄마, 보고 싶어……. 황자는 엄마가 불러서 엄마를 따라 간다는데 우리는 따라갈 엄마가 없잖아. 엄마가 살아서 부르신다면 다 버리고 따라 갈 텐데. 새엄마는 아무리 엄마라고 부르려 해도 엄마 소리가 안 나와요. 새엄마 앞에서 아빠는 이빨 빠진 호랑이 같고요. 새엄마 앞에서 아빠가 큰소리를 치고 옛날 엄마한테 하듯 했으면 좋겠어요.’
이때 태수가 다가왔습니다.
“황자가 좋은 일이 있단다. 들었니?”
“응, 들었어.”
“황자는 좋겠다, 그지?”
“좋겠지……”
“황자가 거칠고 못되게 군 것도 환경이 그래서 그랬던 것 같지?”
“그런지도 모르지.”
“황자 말로는 그 애 아버지가 아주 부자라는데 얼마나 좋을까?”
“넌 부자가 그렇게 좋으냐?”
“좋지. 너는 괜찮게 살기 때문에 가난이 얼마나 무서운지 모를 걸?”
“우리도 부자는 아니잖아? 그저 남한테 빌리지 않고 살 정도지 뭐. 지금 우리가 이만큼 사는 것도 엄마 덕이었어. 아버지 식으로 살았다면 거지가 되었을 거야.”
“동네 사람들도 다 돌아가신 너의 엄마가 훌륭한 분이었다고 칭찬하는 소리를 들었어.”
“우리 엄마가 처음에 시집올 때는 논 한 마지기도 없는 집이었는데 엄마가 남자보다도 더 열심히 일하여 논도 사고 지금 집도 지었다고 했어.”
“그런 어머니가 너희들만 남겨놓고 너무 일찍 가셨어.”
“아버지 때문이야. 아버지는 일도 안 하고 술집으로만 돌아다니시다가 돌아오면 술주정을 하여 엄마 가슴에 못을 박아 엄마는 화병이 나서 돌아가신 거야.”
태수가 측은한 얼굴로 말했습니다.
“그런 엄마가 돌아가시자마자 너의 아버지가 새엄마를 들였다고 동네 사람들이 수군거렸어. 나도 너의 아버지가 너무 심하다고 생각해. 사람들 말로는 그 새엄마라는 사람한테 빠져서 너의 엄마를 박대하고 괴롭혔다는 말도 들었어.”
태수의 말에 갑자기 지난 일이 떠올랐습니다. 금별은 엄마 생각을 하면 가슴 아프고 눈물이 납니다.
언젠가 엄마가 들에서 해가 질 때까지 일을 하고 무거운 콩 다발을 이고 들어오시던 날이었습니다. 술에 취한 아버지가 왜 이렇게 늦게 들어오느냐고 화를 내며 밀쳐서 마당 구석에 콩 다발을 이신 채 처박혀 일어나지 못하신 일이 있습니다.
그 날 어린 금별이 달려들어 손을 잡아 일으켜드릴 때 엄마는 눈물을 감추려고 고개를 돌리시었습니다. 그런 엄마를 아버지는 또 달려들어 발로 차고 나가 죽으라고 고함치던 기억이 가슴을 도려내는 아픔으로 가슴을 저몄습니다.
“우리 엄마는 천사였어. 그런 아빠를 한 번도 원망하지 않고 우리들을 위해 참고 눈물을 감추고 사셨지. 그런 엄마였는데 돌아가시자마자 새엄마를 모셨다고 좋아하시는 것을 보면……”
금별은 엄마 생각을 하면 눈물이 나와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몸을 아끼지 않고 일하여 땅을 사고 소를 사저 기르고 어미 소가 송아지를 낳으면 종일 기뻐하시던 엄마셨어. 엄마의 땀으로 일군 우리 집인데 엄마는 아버지 그늘에서 한 번도 몸 편히 쉬어 보지도 못하고, 입던 옷이 낡아 너덜거릴 때까지 입고, 제대로 먹어보지도 못한 채 사시다가 가셨어. 너무 억울해, 엄마는 너무 억울해. 그런데 아버지는 새엄마 앞에서 죄라도 지은 사람처럼 절절매시고…….”
태수가 안타까워하는 소리로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네가 더 잘 해야 할 거야. 새엄마한테도 동생들한테도 그리고 아버지한테도.”
12. 미운 오리새끼
금별이 아침을 하려고 일찍 일어났습니다. 동생들은 아직도 깊은 잠에 빠져 있었습니다.
문을 열고 나가려는데 안방에서 엄마가 애교 띤 음성으로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여보옹, 당신이 말했지잉? 나도 외가에 맡긴 딸 데려와도 좋다고 잉?”
아버지 대답은 간단했습니다.
“알았어.”
“그래서 말인데엥……”
“말해.”
“그 애한테는 내가 거짓말을 했어용.”
“거짓말이라니?”
“당신이 친아버지라고.”
“왜 그런 거짓말을?”
“당신 아이들이 나한테 엄마라고 하기를 꺼리는 걸 보면 몰라요? 그래서 잃어버렸던 친아버지를 찾았다고 했어요. 그러니 그 애는 당신을 친아버지로 알고 잘 따를 거예요.”
“글쎄……”
“당신이 눈치 못하게 하세요. 당신 아이들도요.”
“알았어.”
“오늘 오후에 데리고 올 거예요.”
“알았어.”
아버지는 탐탁지 않아하는 목소리였습니다. 그러나 새엄마는 좋아서 오금을 박았습니다.
“그 애 오거든 반갑게 맞아 주세요옹.”
그 날 오후 금별이 청소당번이라 학교에서 늦게 돌아왔습니다. 집 대문 앞에 은별이와 옥별이 나와 있었습니다.
“왜들 나와 있니?”
은별이 대답했습니다.
“누나, 새엄마가 누나를 데리고 왔어.”
“누나?”
금별이 문안으로 들어서자 마당 가운데 뜻밖에도 황자가 서서 황소 눈을 뜨고 보다가 물었습니다.
“임금별! 네가 어떻게 우리 집엘 오니?”
“뭐라고? 여기가 너희 집이라고?”
“그래, 우리 집이야. 넌 왜 왔어?”
금별은 기가 차서 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내가 묻고 싶은 말이야. 네가 왜 우리 집에 와 있지?”
“여기가 너희 집이라고?”
“그래 우리 집이다.”
황자가 안방으로 후닥닥 뛰어 들어가며 소리쳤습니다.
“엄마아! 엄마아!”
방에서 엄마가 사랑이 가득한 소리로 대답했습니다.
“왜 그러니이? 우리 황자아!”
“엄마, 이럴 수가 있어요?”
“왜애?”
“저 애가 우리 집을 자기 집이라고 우기네요.”
방에서 외출할 준비를 하느라고 화장을 하던 새엄마가 얼굴을 내밀었습니다. 그리고 싸늘한 눈으로 말했습니다.
“누가 무슨 소리를 했어?”
“저 애가 들어와서 나 보고 왜 자기 집에 왔느냐는 거예요!”
문 앞에 딱 버티고 선 금별을 발견하고 새엄마가 꼬리를 내린 고양이처럼 말을 바꾸었습니다.
“금별이 왔구나. 얘는 황자야. 새로 생긴 네 동생이야.”
황자가 발끈해서 말했습니다.
“엄마! 내가 왜 쟤 동생이야?”
새엄마가 금별이 나이를 물었습니다.
“넌 몇 살이지?”
“열두 살이에요.”
“동갑이구나. 생일은?”
“삼월 십오 일이에요.”
“황자는 유월이니까 금별이 언니가 맞다.”
황자가 또 화난 소리를 질렀습니다.
“싫어! 쟤가 왜 언니냐고? 그까짓 석 달 차이에 무슨 언니야?”
“그래도 언니는 언니야.”
새엄마는 금별을 향해 말했습니다.
“황자는 네 동생이야. 황자가 하는 말 마음에 두지 말고 동생처럼 사랑해 주어라, 알았지?”
금별이 대답을 하지 않자 새엄마는 은별이와 옥별이를 향해 말했습니다.
“은별이한테는 누나가 생겼고 옥별이한테는 언니가 생긴 거야. 알았지?”
두 아이도 대답을 하지 않고 황자를 힐끔 보고 금별을 바라본 채 입을 열지 않았습니다. 새엄마가 좀 커진 소리로 말했습니다.
“왜 말이 없어?”
금별이 동생들을 대신해 말했습니다.
“차츰……”
“차츰? 언제까지 차츰이니?”
무심결에 옥별이 말했습니다.
“아줌마……”
새엄마가 화난 소리로 말했습니다.
“아줌마? 아줌마라고 했니?”
은별이 대들듯 말했습니다.
“아줌마가 맞잖아요? 우리 엄마는 죽었어요.”
“너까지? 요것들이 짰나?”
황소 눈 황자가 덤비는 소리로 말했습니다.
“좋아, 엄마라고 안 하면 나도 네 따위들 동생 안 해. 이 병신들아.”
그렇지 않아도 성하지 못한 옥별이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픈 금별이 화가 불끈 솟았습니다.
13. 싫다 싫어
“지황자! 너 무슨 말을 그렇게 하니?”
“병신 보고 병신이라고 했는데 뭐?”
가만히 있던 은별이 황자한테 와락 달려들었습니다.
“네가 뭔데 내 동생한테……”
황자가 달려드는 은별을 옆으로 홱 밀어 넘어뜨리며 소리쳤습니다.
“이 쬐그만 게 까불어!”
새엄마가 꽥 소리쳤습니다.
“그만들 못해?”
금별이 주먹을 불끈 쥐고 황자를 노려보았습니다. 황자가 멈칫 물러났습니다. 두 아이를 번갈아 보면서 새엄마가 물었습니다.
“금별이, 넌 황자가 지황자라는 걸 어떻게 알고 있지?”
금별이 대답했습니다.
“황자하고 한 반이에요.”
“뭐야? 둘이 한 반이라고?”
황자가 방안으로 들어가면서 말했습니다.
“엄마! 난 쟤들하고 안 놀아!”
은별이 일어나 손을 탁탁 털면서 말했습니다.
“나도 너하고 안 놀아.”
이때 아버지 염장섭이 술에 취한 벌건 얼굴로 들어왔습니다. 새엄마가 금세 얼굴을 바꾸어 샐샐 웃으면서 아버지한테 말했습니다.
“여보, 귀여운 당신 딸이 왔어요.”
그러면서 방으로 들어간 황자를 불렀습니다.
“황자야, 뭐하니? 빨리 나와 아빠께 인사드려야지.”
황자가 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달려 나오며 소리쳤습니다.
“아빠아!”
아버지 염장섭은 덤덤히 품에 안기는 아이 등을 어루만졌습니다. 황자가 아버지를 올려다보며 물었습니다.
“아빠, 나 보고 싶었어?”
“……”
“난 아빠 많이 보고 싶었어. 아빠, 아빠!”
금별이 삼남매는 어이가 없어서 그 모양을 멍하니 바라보고 입을 열지 못했습니다. 새엄마가 말했습니다.
“황자야 들어가 아빠한테 큰절로 인사드려야지. 들어가자.”
아버지는 새엄마에 끌려 안방으로 들어갔습니다. 그 뒤를 마치 아기라도 된 듯 황자가 애교를 떨며 따랐습니다.
아버지가 금별이를 바라보고 말했습니다.
“너희들도 들어와야지 응…….”
이때 황자가 말을 막았습니다.
“아빠 싫어요. 쟤들하고 말하기 싫어요. 난 아빠하고만 말할래요.”
“무슨 일들이 있었니?”
염장섭이 묻는 말에 새엄마가 대신 말했습니다.
“아녜요. 아이들이라 처음 보기 때문에 낯설어서 그래요.”
그리고 금별이한테 말했습니다.
“너희는 건넌방에 들어가 놀아라.”
황자가 안방 문을 쾅하고 소리가 나도록 닫았습니다. 안방으로 따라 들어갈까 하다가 속이 상한 금별이 동생들을 데리고 건넌방으로 들어갔습니다. 은별이 골난 얼굴로 물었습니다.
“누나, 왜 쟤가 누나야?”
옥별이도 뿌루퉁한 얼굴로 물었습니다.
“난 싫어, 왜 모르는 애가 우리 언니야?”
금별은 황자가 아버지의 친딸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동생들한테는 말할 수 없었습니다. 은별이 또 다그쳤습니다.
“누나. 저 애하고 같이 살아야 하는 거야?”
금별은 낮에 황자가 아이들 앞에서 하던 소리가 생각났습니다. 자기를 낳아준 아버지를 찾아가게 되었다는 말과 찾게 된 아버지는 아주 부자라고 한 말이 떠올라 어이없는 웃음을 지었습니다.
‘부자? 아버지가 부자라고? 우리가 부자라면 진짜 부자들이 들으면 웃을 거야. 자기 딸도 아니면서 친딸이라고 속여야 하는 아버지는 바보……’
안방에서는 새엄마와 황자가 깔깔거리고 웃고 떠드는 소리만 날 뿐 아버지 목소리는 나지 않았습니다. 황자가 애교를 부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아빠아 나 안 보고 싶었어? 난 아빠가 이 만큼 이렇게 보고 싶었어. 아빠 사랑해요.”
새엄마가 하는 소리.
“그렇게 보고 싶었니? 난 그런 줄도 모르고 있었네. 아빠한테 뽀뽀해 드려라.”
“아빠아, 뽀뽀!”
아버지 염상섭은 건넌방의 딸들을 생각했습니다. 지금까지 한 번도 귀엽다고 안아 준 적이 없는 자기 아이들인데 그 애들은 버려두고 근본도 모르는 애를 자기 딸이라고 하자니 기가 막혔습니다.
새 아내의 얼굴에 반하여 무슨 요구든지 들어주다 엄마와는 전혀 딴판으로 못 생기고 정도 가지 않는 애를 딸이라고 하자니 어이가 없었습니다.
황자가 아무리 애교를 떨어도 예쁘기는커녕 점점 더 징그러울 뿐이었습니다. 그 아이와 별이 삼남매를 비교하면 꽃과 돌을 보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러나 친딸로 거짓말하기로 한 약속이 있어서 무표정하게 아이의 하는 짓을 받아주었습니다.
새로 들인 아내를 보면 화가 났다가도 풀리고 밤이고 낮이고 바라만 보아도 속에서 기쁨이 꿀물처럼 솟구치는데 그 속에서 어떻게 이런 추물이 나왔는지 상상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 속도 모르고 황자는 아빠 아빠하며 애교를 떨어댔습니다.
14. 혹에 붙은 혹
그렇게 하여 한 집에 살게 된 황자는 엄마 아빠 사이에서 자겠다고 고집을 부리고 안방에서만 잤습니다.
잠자리에서는 아빠, 아빠하면서 목을 끌어안고 온갖 재롱을 다 부렸지만 염장섭은 날이 갈수록 아이가 싫어지고 밤마다 화만 났습니다.
얼마나 예뻐하고 사랑하여 맞아들인 새 아내인가. 그런 아내가 달고 온 딸이기에 밀쳐버릴 수도 없었습니다. 황자는 속도 모르고 어린애 짓을 해가며 달라붙었습니다. 그럴 때는 더 싫고 자기 딸 삼형제 생각이 더 났습니다.
황자 엄마가 남편의 눈치를 채고 말했습니다.
“여보, 밤마다 불편하시지요?”
“……”
“우리 이렇게 하면 어떨까요?”
“어떻게?”
“우리 친정어머니를 모셔다가 황자하고 한방에 자게 하면 우리도 좋지 않겠어요?”
“……”
이제 군더더기 식구까지 하나 더 생기게 되나 생각한 염장섭은 대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여보옹, 당신 나 사랑해애?”
이 말에는 간장이 녹는 염장섭입니다.
“무슨 말을 그렇게 하나?”
“나 사랑한다는 말 거짓말이었어엉?”
“……”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내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사랑하고 내가 원하는 건 다 들어준다고 했잖아앙?”
“알았어.”
아무리 마음에 안 드는 조건이 있어도 어여쁜 아내의 청은 거절할 수가 없는 염장섭입니다.
“오늘 엄마 모시고 와도 좋지잉?”
“알았어.”
말뚝같은 대답을 한 염장섭은 마뜩치 않아 속이 뒤틀려 밖으로 나왔습니다. 옥별이 길가에서 절름절름 걸어오고 있었습니다. 마음으로는 저 불쌍한 것 하고 안아주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입에서는 다른 말이 나왔습니다.
“몸도 성치 않은 게 어딜 그렇게 돌아다녀? 빨리 집에 가 있어.”
“싫어.”
“왜?”
“엄마가 집에 있지 말래.”
“은별이는 어디 갔냐?”
“오빠도 황자가 싫다고 멀리 갔어. 오빠도 나도 언니가 올 때까지 기다릴 거야.”
옥별이 티 없이 맑은 얼굴로 바라보는 눈에서 죽은 아내의 순수하고 착한 마음씨를 읽었습니다. 죽을 때까지 한 번도 아양을 모르고 사랑이라는 말을 모르고 살던 사람이었습니다. 말로 아무것도 해 준 것 없고 손으로도 무엇 하나 준 것이 없어도 불평을 모르고 살다 간 아내가 가슴 바닥에서 뜨거운 감사와 그리움으로 올라왔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불러도 소용없는 딴 세상의 아이들 엄마입니다.
아내한테는 쇠뭉치처럼 무뚝뚝하기만 했던 염장섭이 이런 감정을 갖는 것이 부끄럽기도 했습니다.
염장섭은 아이를 그대로 둔 채 자리를 떴습니다.
그 날 저녁나절입니다.
새엄마가 친정어머니를 모시고 왔습니다. 황자가 외할머니를 보자 좋아서 소리치며 달려가 품에 안겼습니다.
“외할머니!”
“오냐, 귀여운 황자 잘 있었니?”
“외할머니, 많이 보고 싶었어. 이제 우리하고 같이 살러 왔어?”
“그래, 너하고 엄마하고 같이 살러 왔다. 아빠는 어디 가고 너희들뿐이냐?”
할머니는 머리가 하늘로 불쑥 솟고 키가 크고 눈이 황자보다 더 컸습니다. 목소리도 장맛비에 흘러가는 냇물소리처럼 왈가닥거렸습니다.
새엄마가 한쪽에 몰려 서 있는 금별이 삼남매에게 인사를 시켰습니다.
“외할머님이다. 인사드려라.”
옥별이 언니를 보고 작은 소리로 물었습니다.
“우리 외할머니 아닌데 인사해?”
“응, 어른이니까.”
그리고 먼저 금별이 고개를 까닥했습니다. 동생 둘도 언니를 따라 고개를 숙여 인사했습니다.
황자 외할머니는 아이들 인사는 받는 둥 마는 둥 하고 집안과 지붕을 올려다보며 말했습니다.
“네 말대로 부자는 부지인가 보다. 집이 넓고 좋구나. 나도 네 덕에 이렇게 넓은 집에서 한번 살아보게 되었구나.”
할머니는 아주 만족한 웃음을 웃었습니다. 금별이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이런 집이 넓고 좋다면 저 할머니는 얼마나 좁은 집에서 살았다는 거야?’
그 날 아버지와 할머니가 인사를 하고 의논한 결과 할머니와 황자는 건넌방에서 지내고 별이 삼남매는 사랑방에서 살기로 했습니다.
사랑방은 손질을 하지 않아서 천장 구석에는 거미줄이 사방 둘러가며 쳐 있고 방바닥은 한쪽이 허물어져 퀴퀴한 냄새가 올라왔습니다. 게다가 전등불도 없어서 캄캄했습니다.
밤이 되자 안방과 건넌방은 전등불이 켜 있어서 환한데 사랑방은 캄캄하여 지옥 같았습니다. 삼남매는 방에 있기가 답답하여 마루로 나와 나란히 앉았습니다.
옥별이 개밥바라기를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언니, 저기 엄마별 떴다. 엄마가 보고 있어.”
은별이 어둠 속에서 고개를 저었습니다.
“그건 엄마가 아니야.”
“엄마야.”
“아니야, 별이야.”
금별이 가만히 말했습니다.
“저 별은 엄마가 보고 싶은 사람한테는 엄마가 되어 주고 마음이 슬픈 사람한테는 눈물이 되는 거야. 엄마가 그리운 사람이 저 별을 보고 있으면 엄마 웃는 얼굴이 보이고 마음이 슬픈 사람이 보면 눈물을 닦아주러 온단다.”
은별이 또 고개를 저었습니다.
“아무리 엄마 생각하면서 바라보아도 엄마는 보이지 않아. 엄마는 별이 아니야.”
옥별이 고개를 저었습니다.
“아니야. 엄마는 내가 보고 싶다고 밤마다 나와 보라고 했어. 언니는 모르지? 난 저녁마다 저 별이 들려주는 엄마 이야기를 들었어.”
“그랬니? 엄마가 뭐라고 하셨어?”
“남들이 다리 하나가 짧다고 해도 울지 마라. 다리 한 짝이 더 길어진 거야. 알았지? 명랑하고 씩씩하게 자라야 한다. 네가 울면 엄마는 슬퍼져 그러셨어.”
금별은 옥별이 불구인 스스로를 위로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마음으로 별을 보고 말했습니다.
‘엄마. 옥별이 걱정은 하지 마세요. 제가 있잖아요. 옥별이 얼마나 예뻐요. 옥별이는 누구보다 예쁘고 건강해요.’
15. 새 옷 사던 날
금별이는 엄마가 병으로 자리에 누운 후로는 줄곧 밥을 하고 상을 차렸기 때문에 부엌일이든 무슨 일이든 잘 했습니다.
새엄마가 오던 다음 날부터 금별은 아버지뿐 아니라 새엄마 밥상까지 차려야 했습니다. 그러나 새엄마는 왕비나 되는 것처럼 몸치장이나 하고 부엌일은 금별이만 시켰습니다.
게다가 황자와 황자 외할머니까지 금별이가 밥상을 차려 달라고 끼니마다 기다렸습니다.
가을이 깊어지자 많이 추었습니다. 금별이 방바닥 꺼진 곳을 고치고 손에 물을 너무 묻혀 어린 살갗이 거칠어졌습니다. 황자는 엄마와 외할머니 곁에서 응석만 부리고 어린애 짓만 하다가 아버지가 들어오면 더 여우 짓을 합니다.
하루는 아버지가 들어오자 금별이를 손가락질하며 주절거렸습니다.
“아빠, 금별이 손 좀 봐. 아이 지저분해!”
아버지 염장섭이 딸 금별의 손을 보고 말했습니다.
“밥하고 빨래하고 일하느라 손이 많이 거칠어졌구나.”
염장섭이 재롱을 부리며 달라붙는 황자를 밀어내며 말했습니다.
“너도 언니를 도와주어라. 언니 혼자 밥하고 반찬 만드는데 넌 안 보이니?”
황자가 어린아이 소리로 대답했습니다.
“아빠아, 난 아무 것도 못해. 한 번도 안 해 본걸.”
이때 황자 외할머니가 말했습니다.
“내가 거들어 줄 테니 넌 하지 마라. 아무 것도 안 해 본 공주한테 그런 일을 시키면 쓰나.”
염장섭은 덤으로 들어온 두 혹이 거슬려 은근히 부아가 나는 것을 참고 밖으로 나가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가게에서 핸드크림을 사다 사랑방에 놓았습니다.
말로는 금별이 일을 돕겠다고 한 황자 외할머니도 말뿐이고 들어앉아 금별이만 부려먹었습니다. 심지어는 밤중에 물을 떠오라는 심부름까지 시키는 걸 본 염장섭은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러나 잔소리가 심하다 할까 싶어 아무 말도 안 하는데 황자가 얄미운 소리를 지껄였습니다.
“아빠 미워, 금별이한테는 핸드크림 사다주고 난 뭐야?”
“……”
“나도 사줘 아빠.”
“네가 뭘 한다고 그런 것까지 사주냐?”
이 말을 외할머니가 듣고 구시렁거렸습니다.
“그래도 제 자식이라고……”
염장섭은 못 들은 체하고 자리를 피했습니다. 황자 외할머니는 대왕대비라도 된 듯 앉아서 먹고 가끔 밖으로 나가 동네 노인들과 시시덕거리다 돌아왔습니다.
가을이 깊어지자 찬바람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금별이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고이 간직하고 있던 교장 선생님이 주신 상품권을 가지고 시장으로 갔습니다.
옷가게에서 그 상품권으로는 옥별이 옷과 금별이 옷밖에 살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동생들 옷만 사주기로 하고 옷을 골랐습니다.
‘옥별이는 이 옷이 좋겠네.’ 하고 빨간 세타를 사고 은별이 것으로는 두툼한 솜이 든 잠바를 샀습니다. 동생들에게 입혀 줄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벅찼습니다.
옷 보따리를 들고 달려오는 금별이 발걸음은 바람에 나는 솜처럼 가벼웠습니다.
날씨가 더 추워지더니 금별이 돌아오는 길에는 어느새 눈이 펄펄 내렸습니다. 잠깐 사이에 내린 눈이 세상을 하얀 나라로 만들었습니다. 그 눈길을 신나게 달려오는 금별은 마치 천사라도 되어 나는 것만 같았습니다.
‘옥별이가 이 빨간 세타를 입으면 천사처럼 예쁠 거야, 얼마나 좋아할까! 은별이도 이 잠바를 보면 신나서 좋아하겠지. 올 겨울은 따듯하게 보내게 되었어. 교장 선생님 고맙습니다.’
집에 돌아온 옥별은 동생들에게 옷을 입혀주었습니다. 옥별이도 은별이도 일 년 내내 같은 옷만 입고 계절 바뀌는 것도 모르고 살다가 예쁜 옷을 보자 좋아서 어쩔 줄을 몰라 입이 벙실벙실 벌어져 다물 줄을 몰랐습니다.
옥별이 빨간 세타를 입고 좋아서 밖으로 나갔습니다. 은별이도 따라 나오며 옷 자랑을 했습니다. 그것을 본 새엄마가 금별이를 안방으로 불러들였습니다.
“너 무슨 돈으로 애들 옷을 사 준 거야?”
“학교에서 교장선생님이 주신 거예요.”
“교장 선생님이 왜 그런 것까지 사주었니?”
“……”
“너 거짓말 하는 거지? 교장 선생님이 할 짓이 없어서 너 같은 애 옷을 사라고 돈을 주었단 말이냐?”
“네.”
이때 황자가 들어왔습니다. 새엄마는 황자한테 물었습니다.
“황자야, 이 애한테 교장선생님이 옷 사 입으라고 돈을 주었다는데 너도 아니?”
황자는 고개를 가로 저었습니다.
“몰라. 그런 일 없었어.”
새엄마는 눈에 불을 켰습니다.
“너 그래도 거짓말 할 거니?”
“정말이에요. 황자가 모르고 있어요.”
황자가 눈을 부릅뜨고 말했습니다.
“내가 왜 모르니? 그런 일이 없었으니까 그렇지.”
새엄마가 화를 더 냈습니다.
“그리고 네 동생이 둘 뿐이냐? 황자도 네 동생이야. 그런데 제 동생이라고 저 애들 옷만 쏙 빼서 사왔단 말이지?”
“그건……”
“듣기 싫어. 어린 것이 벌써부터 거짓말을 해?”
16. 발가숭이로 눈 속에
곁에서 듣고 있던 황자 외할머니가 한 마디 했습니다.
“어린 것이 싹이 노랐다. 그 몇 푼이나 된다고 황자 것은 빼놓고 제 동생들 옷만 샀다냐? 저런 애는 애시당초 버릇을 고쳐 놓아야지 가만 두면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른다.”
금별은 울고 싶도록 가슴이 답답했습니다. 은별이, 옥별이도 밖에서 다 듣고 있었습니다. 새엄마가 사납게 말했습니다.
“알았어. 너 같은 애는 그냥 둘 수 없어. 너 옷 다 벗어! 그리고 나가서 저 마당 한가운데 서!”
금별은 너무 속이 상했습니다. 진짜 엄마라면 그럴 수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
말을 못하고 주저하는 금별을 향해 더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옷 벗고 밖에 나가 서 있으라는 말 안 들려?”
금별이 간절한 마음으로 빌었습니다.
“아줌마, 용서해 주세요.”
“뭐야? 날 보고 아줌마라고? 내가 네 아줌마냐?”
새엄마는 달려들어 금별이를 발가벗겼습니다. 그리고 밖으로 내쫓았습니다.
“마당 가운데 가 서서 반성해!”
마당에는 눈이 수북이 쌓여 발등까지 덮였고 아직도 눈이 풀풀 내리고 있었습니다. 옥별이 주저하자 새엄마가 나가서 옥별을 끌어다 마당 가운데 세웠습니다.
눈이 내려 어리고 하얀 등에 쌓였습니다. 어린 동생들이 언니를 바라보고 울면서 입었던 예쁜 옷을 벗어 놓고 언니 곁으로 가서 섰습니다.
삼남매가 눈 내리는 마당 가운데 섰는데 황자는 고소하다는 듯 마루에서 뒷짐을 지고 서서 내려다보았습니다. 황자 외할머니도 건넌방으로 들어가 방문을 빠꼼히 열고 내다보았습니다.
아이들이 발발 떨고 있는데 새엄마는 옥별이와 은별이 벗어놓은 새 옷을 잡아 찢었습니다.
“이것들이 정신이 들어야 해. 감히 나를 보고 아줌마라고? 좋아, 내가 왜 너희 엄마냐? 다 나가 뒤져라.”
옷 찢는 것을 본 금별이 참지 못하고 달려들어 찢어 던진 옷을 집어 들자 황자 엄마가 금별이 따귀를 때렸습니다.
“이것이 감히 무슨 짓이야?”
금별이 떨리는 소리로 말했습니다.
“왜 이러시는 건데요?”
“뭣이 어때?”
“내 상품권 가지고 내 맘대로 사는데 무슨 권리고 이러시는 건데요?”
“권리?”
황자 엄마는 어이가 없다는 듯 말을 못하고 섰습니다. 그 사이에 금별이 동생들 옷과 찢어 던진 옷을 다 끌어안고 사랑방으로 들어갔습니다. 동생들도 따라 들어갔습니다.
방은 불을 때지 않아 냉방입니다. 삼남매가 이불 하나를 깔고 덮고 옹크리고 모여 앉았습니다. 얼었던 몸이 녹고 따듯한 체온으로 이불 속이 따듯해졌습니다.
옥별이 언니 마음을 알고 위로하고 싶어졌습니다.
“언니, 이렇게 모여 있으니 재미있다아.”
은별이 퉁명스럽게 말했습니다.
“이게 무슨 재미냐?”
옥별이 밝은 소리로 웃으며 대꾸했습니다.
“서로 살을 대로 있으니까 따듯하잖아. 호호호.”
“우습기도 하겠다.”
은별이 이렇게 말하고 입을 다물었습니다. 잠깐 침묵이 흐르고 방안은 캄캄했습니다. 금별은 화나고 억울한 마음이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동생들한테 그런 마음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 엉뚱한 제안을 했습니다.
“은별아, 넌 커서 무엇이 되고 싶으냐?”
“경찰관.”
“옥별이는?”
“간호사.”
“다들 훌륭한 생각을 하고 있구나. 옥별이가 간호사가 되면 무엇을 하고 싶어?”
“엄마 같은 사람들이 죽지 않게 할 거야. 죽는 건 슬퍼.”
이때 밖에서 돌아온 아버지가 안방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서 아버지가 금별이를 불렀습니다.
“금별이 들어와라.”
금별이 옷을 입고 안방으로 갔습니다. 황자 엄마는 오늘 나가지도 않고 화가 나서 아버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금별이 안방으로 들어서자 아버지가 큰소리로 물었습니다.
“너 새엄마 보고 아줌마라고 했다는 말이 정말이냐?”
“……”
“왜 말이 없어?”
황자 엄마가 입을 열었습니다.
“난 그래도 저를 딸이라고 그 동안 얼마나 보살폈는데 그럴 수가 있어요? 나를 아줌마라고 하다니 아이 분해!”
아버지가 더 큰 소리를 쳤습니다.
“너 또 그럴 거야?”
“……”
“왜 대답이 없어!”
아버지는 넓적한 손으로 금별이 따귀를 때렸습니다. 금별이 휘청하다 바로 섰습니다.
“이래도 말 안 할래? 당장 엄마라고 해! 그리고 빌어!”
금별은 마음 문이 더 닫혔습니다. 아버지까지도 사정을 알아보지 않고 황자 엄마 말만 믿고 때리는 것이 억울했습니다. 순간적으로 달아나겠다고 생각하며 방에서 튀어나와 대문 밖으로 달아났습니다.
어둠 속에서 온 대지가 하얀 눈옷을 입고 회색빛으로 엎드려 있고 서쪽 하늘엔 오랑이눈썹달이 졸고 있었습니다.
17. 꿈은 무너지는가
다음 날 아침입니다. 아버지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금별이 아직도 자냐?”
아버지 목소리는 어제 밤의 화난 목소리가 아니었습니다. 금별이 밖으로 나가자 평온한 얼굴로 말했습니다.
“아침밥 지어야지.”
금별은 아무 말도 않고 부엌으로 들어갔습니다. 안방에서도 건넌방에서도 아무 기척이 없었습니다. 다 아직도 자는 듯했습니다.
아버지가 곁으로 와서 나직이 말했습니다.
“어제 많이 아팠지?”
아버지의 이 말에 금별은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무뚝뚝한 아버지지만 딸의 마음을 알고 있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금별은 아침을 지어 차려놓고 학교로 갔습니다. 눈이 하얗게 내린 학교 운동장에 금별이 가장 먼저 발자국을 내며 걸어 교실로 갔습니다. 그 뒤를 이어 선생님이 들어오시어 물었습니다.
“염금별, 교장 선생님이 주신 상품권을 쓸 때가 되었다. 날씨가 많이 추어졌어. 그것으로 겨울옷을 하나 사 입어야지?”
“네.”
“이제 졸업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넌 진학을 어떻게 할 생각이냐?”
“……”
“우리 시에서 가장 좋은 학교로 진학해야지. 너라면 그 학교에 갈 수 있을 거야.”
“선생님……”
“왜?”
“진학 문제는 아버지한테 여쭈어 보고 결정해야 할 것 같아요.”
선생님은 교무실로 가시고 아이들이 하나 둘 등교하여 교실이 왁자지껄했습니다. 아이들은 서로 자기가 가고 싶은 중학교 이야기에 정신이 없었습니다. 이 때 이주발이 큰소리로 말했습니다.
“다들 조용! 어쩌면 우리 반에서 중학교에 가지 못할 사람이 있을 것 같다.”
다른 아이들이 한 목소리로 물었습니다.
“그게 누구냐?”
“나하고 지황자.”
“왜? 왜?”
“나나 지황자는 꼴등에서 일이 등을 다투는 사이가 아니냐 하하하.”
황자가 얼굴이 빨개진 채 그 아이를 노리고 보았습니다. 그러나 이주발은 태연히 다음 말을 했습니다.
“지황자 빵점, 나 이주발 빵점 하하하하.”
지황자는 부끄러워서 말을 못했습니다.
종례시간에 선생님께서 또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 반에서는 두 사람이 진학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아 교실 안은 물속처럼 조용했습니다. 선생님이 두 사람이 진학할 수 없는 이유를 말했습니다.
“우리 학교에서 평균 점수를 낼 수 없는 두 사람은 중학교 지원서를 안 써주기로 했다. 두 사람에게는 미안하다.”
그 날 오후 집으로 돌아온 황자가 엄마한테 말했습니다.
“엄마, 난 중학교 안 갈 거야.”
“왜 그러니? 요새 중학교도 못 다닌 사람이 어디 있어?”
“난 학교 가지 싫어.”
“왜 가기 싫다는 거야?”
“공부하기가 죽기보다 싫어!”
“그래도 참고 해야 해.”
“엄마, 내가 중학교 안 가도 금별이는 중학교에 가게 할 거야?”
“그야 너도 그 애도 가야지.”
“엄마라고 부르지도 않는 애를 중학교에 보낸다고?”
“나도 싫지만 금별이 중학교 가게 두면 난 죽어버릴 거야.”
“무슨 일이 있니?”
18. 스승의 길
“묻지 마.”
황자는 대답을 하지 않고 밖으로 나가벼렸습니다. 황자가 골이 나서 식식거리고 나가는 것을 밖에서 본 아버지가 들어왔습니다.
“황자가 골이 나서 나간 것 같은데 무슨 일이 있소?”
엄마가 대답했습니다.
“공부하기 싫다고 중학교를 안 가겠다는 거예요. 어떡하지요?”
“어떻게든지 중학교는 가게 해야지.”
“저는 중학교 안 가겠다면서 금별이는 중학교에 보낼 거냐고 하니 어쩌지요?”
“공부야 본인들이 알아서 하는 거 아닌가.”
“금별이가 중학교에 가고 저는 안 가게 되면 죽어버린다고 으름장을 놓고 나갔어요.”
“아직 어려서 그런 것이니 잘 달래 봅시다.”
“당신이 학교에 가서 선생님을 만나 상담을 하세요.”
“그래야겠군,”
이튿날 담임선생님을 만나 상담한 아버지는 풀이 죽어서 돌아왔습니다. 엄마가 궁금하여 물었습니다.
“무슨 말씀이 있었나요?”
“안 되겠어.”
“왜요?”
“그 성적으로는 중학교에서 받아주지 않을 것이라는군.”
“몇 점이나 되는데요?”
“평균이 삼십 점. 그 애 말고 다른 애도 같은 점수라 중학교 지원서를 써줄 수 없다는구려.”
“저건 돌대가리, 공부는 어떻게 했기에 그 점수야. 그럼 금별이는 어떻게 하시겠어요?”
“사정이 있어서 당분간 진학을 미루어야 하겠다고 했지.”
“잘 하셨어요. 계집애들 공부는 더 시켜서 뭐해요.”
“일단 두고 봅시다.”
황자 때문에 금별이도 중학교 진학을 포기하겠다고 하자 선생님은 여러 말로 금별에게 진학을 해야 한다고 하고 학부형인 염장섭을 찾아가 사정도 했지만 끝내 진학을 포기하게 되었습니다.
선생님은 왜 금별이 진학을 포기해야 하는지 몰랐습니다. 졸업식 때는 금별이 최우수상인 도지사상을 받는 영광을 차지했습니다. 그러나 황자가 졸업식도 못 오게 하여 아무도 졸업식에 참석지 않았습니다.
가장 우수한 학생이 진학을 못하게 된 것을 안타깝게 생각한 선생님이 졸업식이 지난 뒤에 금별이 가정방문을 했습니다.
성생님은 황자가 한집에 사는 것을 보고 놀라시기도 했지만 그 애 때문에 금별이 진학을 포기했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선생님은 학교로 돌아와 교장 선생님과 의견을 나누었습니다.
“공부를 잘하고 하는 행동이 다른 아이들과 다른 인재입니다. 그 애가 공부를 중단하게 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무슨 방법이 없겠습니까?”
교장선생님은 담임선생님을 사랑이 가득한 눈으로 보시며 입을 열었습니다.
“역시 박선생님은 훌륭한 교육자이십니다. 내가 수십 년간 교장을 해 보았지만 선생님 같으신 분은 보지 못했습니다. 지난 번 내 생일날 하신 일만 보아도 그랬습니다. 내 생일날 생일 선물로 내가 아이들에게 성적 좋은 아이에게 옷 선물을 하게 한 것만도 대단한 의미가 있는 선물이었습니다. 내가 좋은 옷을 선물 받은 것보다 그 날 그 학생에게 상품권을 준 것이 여간 기쁘지 않았어요. 나도 그 날 배워서 금년 생일에도 내가 진짜로 상을 주지 않았습니까. 모든 교육자가 박선생 같아야 좋은 세상이 되는 것인데 요 근래 교육자들이 제자들의 존경을 못 받는 것도 학생 탓으로만 돌려도 안 됩니다. 박선생님은 나의 선생님이 되시기도 했습니다.”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십니까? 부끄럽습니다. 그래서 더 어려운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무슨 말씀인가요?”
19. 멋진 어른님들
담임선생님은 이런 제안을 했습니다.
“우리 교무실의 사환이 곧 이사를 가면 자리가 비게 되지 않습니까?”
“그렇지요.”
“금별이를 사환으로 쓰시면 어떻겠습니까?”
“아직 어리지 않습니까?”
“그 애는 나이에 비해 모진 일도 잘 합니다. 그 애를 사환으로 채용하면 제가 통신교재를 사주어 중학교 과정을 일 년 내에 마치게 하겠습니다.”
“그게 가능할까요?”
“그 애는 일 년 내내 가방도 없이 다니던 아이입니다. 공부시간에 배운 것을 다 기억하는 컴퓨터 같은 아이입니다. 그 애라면 가능합니다.”
“그렇게 신뢰했다가 제대로 안 되면 어쩌시려고요?”
“저는 그 애를 잘 압니다. 그 애라면 가능합니다. 그래서 제가 간절히 추천하는 것입니다.”
“박선생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니 나는 선생님을 믿어 보지요.”
“감사합니다.”
다음 날 담임 박선생님이 금별 아버지를 만났습니다.
“금별이를 진학시키지 못하신 대신 그 애를 저한테 맡겨주십시오.”
“어떻게 말입니까?”
“우리 학교에서 사환을 뽑습니다. 금별이를 사환으로 보내주시면 틈틈이 공부도 하여 중학교에서 못한 공부를 하게 해 드리겠습니다.”
“그렇게 해주신다면 고맙지요.”
이렇게 하여 중학교를 가지 못한 금별이 사환으로 일하면서 선생님이 준비해 주신 통신교재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아침 일찍 나가서 교무실과 교자아실 청소를 다 마치고 선생님들이 학과 교실로 가면 그 시간에 통신교재를 펴놓고 공부를 했습니다.
선생님들이 모두 금별일 사랑해 주며 모르는 것이 있으면 설명해 주고 점심시간마다 여러 선생님들이 점심도 싸다 주시고 과일 과자를 주어 아주 즐겁게 공부를 했습니다.
독학을 시작한 후 4개월 만에 중학교 1학년 과정을 마치고 8개월째는 중학교 2학년 과정을 완전히 마쳤습니다. 그리고 연말에는 3학년 과정을 마치고 우수한 학생으로 수상을 하는 성적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금별이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를 집에서는 아무도 몰랐습니다. 날마다 새벽에 밥하여 상 차려 놓고 맨 몸으로 나가면 저녁에 돌아와 집안일을 하는 것을 보고 황자처엄 별 볼일 없이 나이만 먹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다음 해에 금별은 고등학교 과정을 시작했습니다. 박선생님의 부탁으로 선생님들은 옥별이 어떤 성적을 내었는지 또 고등학교 과정을 시작했다는 것도 소문을 내지 않았습니다.
하루는 6학년 3반을 맡은 윤선생이 박선생이게 말했습니다.
“입이 근지러워 견딜 수가 없어. 말이 하고 싶은데 어쩐다지?”
“그게 무슨 말인가?”
“옥별이가 얼마나 대단한가? 1년 만에 중학교를 마치고 고등학생이 되었는데 이 기쁜 소식을 터놓지 못하고 있자니 가슴이 터질 것만 같단 말이야.”
“그래도 그 아이를 위해 참아 줌세.”
“교장 선생님은 자네를 단단히 신임하는 눈치야.”
“아니야, 교장선생님께서 나한테 그렇게 하라고 시키신 걸세. 우리가 존경할 어른님은 교장선생님이야.”
“그런가? 우리 교장선생님도 엉뚱한 데가 있어. 언젠가는 자기 생일 선물로 우수한 학생에게 상품권을 준 일도 있지 않았나?”
“그렇지. 교장선생님은 그 후 해마다 어느 학년이든 정하여 그 학년에서 가장 우수한 학생에게 선물을 하셨지.”
“맞아, 우리 교장선생님은 참 훌륭한 분이야.”
“그러니 참고 있다가 금별이가 고등학교를 마치고 대학에 진학하게 되거든 그 때 나팔을 불게.”
“알았네.”
그리고 다음 날입니다. 교장선생님이 박선생을 교장실로 불렀습니다.
“박선생, 이것 받게.”
“이게 뭡니까?”
“박선생을 믿은 내가 잘했다고 나한테 내가 주는 선물일세.”
“무슨 말씀인지 이해가 안 갑니다. 교장선생님.”
“그 아이가 1년만에 중학교 과정을 마쳤고 고등학생이 되었으니 옷 한 벌 사주어야 하지 않겠나? 내가 주었다고 말고 전에 거짓말 한 거 있지? 박선생이 사고 내가 주었다고 한 거짓말 이제 진짜로 갚고 싶어.”
“감사합니다.”
박선생은 너무 좋아서 입을 다물지 못하고 교장실에서 나왔습니다. 그리고 금별에게 말했습니다.
“교장선생님께서 너한테 선물을 보내셨다. 고등학생이 되었으니 옷도 고등학생이 좋아하는 것으로 사 입으라고 하셨다.”
금별은 상품권을 받아들고 감사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의류가게에서 근무용 제복을 맞추어 낮에는 입고 출퇴근 때는 벗어서 교무실에 걸어놓았습니다. 만일 새 옷을 사 입었다가는 집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기 때문이었습니다.
겨울 동안 내린 눈이 녹지 않아 길이 많이 미끄러웠습니다. 방학이라 금별이 출근을 하지 않고 집에서 동생들과 놀고 있었습니다.
같은 반에서 공부하던 인숙이가 이제 곧 2학년이 된다며 좋아했습니다.
“금별아 방학 끝나면 우리들은 2학년이 된다. 넌 학교 안 가서 어떡하니?”
“괜찮아.”
“너 황자 때문에 진학 못한 거라면서?”
“아니야, 난 황자 때문에 더 잘 되었는걸.”
“그까짓 사환이나 하면서 뭐가 잘된 거니?”
“너 공부는 열심히 하고 있니?”
“응, 학교도 가고 미팅도하고 바쁘지. 공부할 새가 없어”
금별은 인숙이가 부럽지 않았습니다.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저는 이미 중학교를 마쳤기 때문입니다.
황자는 하는 일 없이 동네 아이들과 싸움질이나 하고 못되게 굴며 미움을 사고 있었습니다. 인숙이와 태수가 금별이네 마루에 앉아 학교에서 노는 이야기를 하는 동안 황자는 질투가 나서 뿌루퉁해 있었습니다.
얼음길을 저쪽에서 옥별이 절름절름 위험스럽게 걸어오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본 황자가 마당 가운데로 가더니 옥별이 걷는 흉내를 내면서 시시덕거렸습니다.
“저기 우리집 병신 온다. 이것 좀 봐. 이렇게, 이렇게 콩심으며 오고 있어 호호호.”
아이들 눈이 다 옥별이한테 갔습니다. 그것을 본 황자가 들으라는 듯 떠들어댔습니다.
“병신이 집에 살면 식구들이 다 병신 같은 거 아니? 우리 집은 쟤 때문에 병신집이야. 찔뚝찔뚝!”
그러면서 또 저도 한 다리를 꺾고 어깨를 기울이고 절면서 옥별이 흉내를 냈습니다. 그것을 보다 못한 인숙이 말했습니다.
“야, 그러면 못 써.”
황자가 눈을 치뜨고 대답했습니다.
“왜 안 되니? 병신 보고 병신이라고 하는데 뭐뭐?”
곁에서 화난 얼굴로 황자를 바라보던 은별이 갑자기 와락 달려들었습니다.
“뭐라고 했어? 내 동생 보고 병신이라고?”
황자가 은별의 목을 잡았습니다. 순간 은별이 몸을 돌리면서 황자 팔목을 꽉 물어뜯었습니다.
20. 내가 왜 네 아빠냐?
황자가 죽는 소리를 질렀습니다.
“아야야야야 아야!”
물린 자리에서 피가 났습니다. 은별은 황자를 떠밀어 물리치고 달아났습니다. 황자는 피나는 팔뚝을 잡고 집안으로 들어가며 소리쳤습니다.
“엄마! 엄마아아아!”
놀란 황자 외할머니가 나오고 엄마까지 나왔습니다.
“왜 그러니, 왜 그래?”
“은별이가 물었어어 엉엉응응!”
“은별이가 왜 물어?”
“몰라, 몰라.”
“그 놈이 어디 있니?”
외할머니가 급히 달려 나갔습니다. 뒤를 이어 엄마도 눈에 불을 켜고 달려 나가 은별이를 찾았습니다. 그러나 은별은 어디로 가서 숨었는지 보이지 않았습니다.
모였던 동네 아이들도 모두 돌아가고 금별이만 남았습니다. 황자 외할머니가 다그쳐 꾸짖었습니다.
“어떻게 된 거냐? 네가 옆에 있으면서 동생이 저렇게 망난이 짓을 해도 가만히 보고만 있었니? 못된 것.”
“아니에요. 그게 아니라……”
“듣기 싫다, 못된 것!”
금별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들어보지도 않고 할머니는 안으로 들어가며 황자만 불러댔습니다.
“황자야, 우리 공주 황자 얼마나 아파?”
엄마는 물린 자리에 약을 발라주고 황자는 자지러지는 소리를 내며 지껄였습니다.
“은별이 잡아 죽여! 은별이 죽여!”
이때 술에 절어 지는 해처럼 벌건 얼굴을 한 아버지 염장섭이 들어오면 한 소리했습니다.
“이게 무슨 소리야? 은별이를 죽이라니?”
황자 외할머니가 다급히 대답했습니다.
“은별이란 놈이 황자를 물어뜯었지 뭔가.”
“그 놈이 왜 그랬소?”
황자 엄마가 대답했습니다.
“몰라요, 여기 보세요.”
“많이 다쳤군. 은별이 이 녀석 어디 간 거야?”
“달아났어요.”
아버지는 금별이를 불러댔습니다.
“가서 은별이 잡아와! 빨리!”
황자가 눈물까지 흘리며 어리광을 부렸습니다.
“아빠아 나 여기 피났어. 아파아. 은별이가 물었어어.”
“은별이가 왜 물었니?”
“내가아 옥별이 걸을 때마나 쩔뚝쩔뚝 걸어서……”
“그래서?”
“동네 애들 보는 앞에서 옥별이 걷는 흉내를 냈어어. 이렇게 이렇게. 그랬더니 은별이가 와락 달려들어 나를 물었어엉 아빠 나 많이 아파아.”
“……”
“아빠아, 그래서 내가 그랬지. 병신 보고 병신이라는데 뭐……”
그 순간 아버지 염장섭이 눈을 부라리며 소리쳤습니다.
“뭐야? 병신이라고?”
염장섭의 넓적한 손바닥이 황자 낯짝을 철썩하고 갈겼습니다. 어리광을 부리던 황자가 발랑 자빠지며 죽는 소리를 질렀습니다.
“아야아아!”
“이것이 보자보자 하니 못하는 소리가 없어!”
아버지의 손이 다시 번쩍 들렸습니다. 그 순간 황자 외할머니가 달려들어 손을 잡고 늘어졌습니다.
“때리려거든 나를 때리게.”
이때 황자가 엉겨붙는 소리로 불렀습니다.
“아빠아 아빠아!”
화가 난 염장섭은 벼락같이 소리를 질렀습니다.
“아빠 소리 하지 마! 내가 왜 네 아빠냐?”
곁에서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보던 황자 엄마가 소리쳤습니다.
“여보! 여보!”
“다 듣기 싫어. 다들 나가던지 말든지……”
염장섭이 횅하니 나가고 집안은 온통 어둠이 내렸습니다. 그날 밤 아버지는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황자를 가운데 두고 모녀가 앉아 무슨 이야기인지 밤이 깊도록 하였습니다.
한편 금별도 은별이 걱정이 되어 가 볼만한 곳을 다 돌아보았습니다. 그러나 어디로 갔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은별이 집을 나가고
또 1년 만에 고졸 검정고시 통과
황자를 데리고 집을 나간 새엄마
새엄마 찾아 집을 나간 아버지
동네 사람들 말로 안 아버지 재산 명의이전
땅주인이 나타나 땅을 빼앗아간다
겨울 추운 날 옥별이 발병
고치려고 헤매는 금별
눈이 많이 내리던 겨울, 눈을 감는 옥별과
동생 잃고 땅도 없는 옥별 동생을 데리고 서울로
서울서 대학을 다니고
고등고시 합격하여 여검사가 된다
살인미수범을 잡고 보니 아버지
아버지는 새엄마의 기둥서방을 찾아내어 속은 것을 알고 정부를 살해하려고 / 고발하여 새엄마를 감옥으로 보냈다
이 사건을 맡은 옥별이 초라해진 새엄마와
불쌍한 아버지를 만난다
초등학교 선생님을 찾아가 보니 선생님은 원래 장로였다
선생님을 통해 하나님을 모르던 금별이 성경을 읽게 되고 사랑의 위대함을 알고
새엄마와 아버지를 위해 용서를 빈다
황자가 초라한 애 엄마가 되어 불쌍한 모습으로 앞에 무릎을 꿇는다.
모든 것을 용서하고 하나님 앞에 감사드린다.
집으로 돌아온 금별은 상표를 들고 가게로 가서 동생들에게 맞는 옷을 사들고 돌아왔습니다.
막내 옥별이 새 옷을 보고 좋아서 입고 일어서려다 털썩 주저앉았습니다.
11.
금별 은별 옥별이 삼남매 이야기.
금별 : 심지가 굳고 강한 여자 아이
은별 : 활달한 개구쟁이 남자 아이
옥별 : 몸도 맘도 연약한 여자 아이
아빠는 부자로 자란 술주정뱅이
엄마는 성실하고 예쁜 여자였으니 먼저 감
굉장히 예쁜 독살스런 새엄마 등장
가봉녀 황자의 심술과 금별이의 사랑
1. 엄마의 죽음 /
2. 금별이 학교에 가면/왕따 / 발길질
3. 은별이의 사고 치기
4. 새엄마출현/가혹한 생활/방황하는 아빠
엄마라고 불러 아줌마라고 불러
착한 친구도 있고
몰래 돕는 선생님
5. 막내 동생의 죽음/병나고 약도 못 먹고 천대받다가 초등학교 갈 나이에 떠나며-엄마 가신 하늘의 별이 될래. 그리고 날마다 언니 오빠 바라볼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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