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호랑이 /풀꽃동인에 입
종이호랑이
1. 새 학기
새 학기가 되어 반편성이 있었습니다.
5학년 3반에는 아주 무지무지하게 덩치가 큰 코끼리 같은 아이가 들어왔습니다. 그 아이가 들어와 넓적한 얼굴을 이리저리 돌리며 아이들을 바라보자 참새처럼 짹짹거리던 아이들이 목을 쏙 들이밀고 입을 꼭 다물었습니다.
아! 저 이름 높은 악당!
우리 반에 오지 말기를 빌었는데 왜 하필이면 우리 반?
그 코끼리는 동쪽 구석 끝자리에 가서 앉았습니다. 서쪽 구석 끝자리에는 장다리 빼빼 누리가 앉아 있었습니다.
누리는 키만 장다리같이 클 뿐 마음은 아주 착하고 약한 아이입니다. 한 반의 꼬마 짤막이가 와서 특툭 쳐도 웃기만 할 뿐 아무 저항을 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새로 온 코끼리 이름은 아예 모릅니다. 다른 반에서부터 코끼리라고 불러왔기 때문에 그냥 코끼리로 통합니다. 코끼리가 반을 둘러보다가 가장 키가 크고 멀끔하게 생긴 누리를 보자 싸움이라도 할 듯 바라보았습니다. 코끼리가 큰소리로 누구를 불렀습니다.
“야, 쫄라!”
목소리도 어른처럼 굵었습니다. 아이들이 누구를 부르는지 몰라 움츠린 목을 쏘옥 내밀고 바라보았습니다.
“야, 쫄라!”
바로 옆에 앉은 아이가 겁먹은 소리로 대답했습니다.
“나 말이야?”
“그래, 너 말고 누가 있어. 저기 꺽다리 이름 뭐냐?”
“저 애?”
“그래.”
“한누리라고 해.”
“알았다. 쫄팽이!”
이번에는 다른 아이를 보고 하는 말입니다.
“나?”
“그래, 넌 내가 하는 말 잘 들어.”
“무슨 말인데?”
“저 꺽다리하고 너하고 자리 바꿔.”
쫄팽이로 불린 아이가 겁먹은 얼굴로 한누리한테 갔습니다.
“누리야, 너 내 자리로 가 봐. 쟤가 불러.”
착하고 마음 약한 누리는 기다란 다리를 황새처럼 폈다 접었다 낮게 걸어 가방을 들고 코끼리 옆 자리로 갔습니다. 코끼리가 덩치는 커도 눈은 아주 작습니다. 코 위에 쏙들어간 눈을 비집듯이 길에 뜨고 누리를 불렀습니다.
“야, 네 이름 뭐야?”
“한누리.”
“너 그 필통 이리 내 봐.”
“왜?”
“내라면 내. 말이 많아 이게 씨.”
누리는 어제 엄마가 백화점에서 가장 좋다고 자랑하시며 사다주신 필통을 내밀었습니다. 코끼리는 필통을 낚아채듯 제 손아귀에 넣고 뚜껑을 활짝 열었습니다. 그리고 피시식 웃었습니다.
“좋은데?”
2. 엄마 속인 거짓말
코끼리는 제 가방에서 필통을 꺼내어 책상 위에 쏟아 놓고 누리 필통도 엎어서 쏟았습니다. 그리고 제 필통을 내밀면서 말했습니다.
“이 필통 너 가져. 알았지?”
“내 필통은?”
“내가 갖는다.”
“안 돼, 그건 우리 엄마가 어저께 다사주신 새 거야.”
“이 짜샤, 그걸 누가 몰라?”
코끼리는 누리 필통에다 제 연필과 지우개와 칼 등을 줄맞추어 넣으며 명령했습니다.
“빨리 네 것도 담아, 자샤!”
누리는 묵묵히 필통을 바꾸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집에 와서 책가방을 내려놓고 세수를 하러 간 사이에 엄마가 가방 속에 있는 낯선 필통을 보고 물었습니다.
“아들, 누리! 웬 낯선 필통이지?”
누리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러나 엄마한테 다 말하기가 겁이 났습니다.
“그건 엄마…….”
“그게 무슨 소리냐?”
“내가 잘못해서 옆자리 아이 것을 바꾸어 가지고 왔어. 엄마 미안해.”
“새것을 사주었는데 그랬어? 내일 바꾸어라.”
“네, 엄마.”
다음 날입니다. 누리는 코끼리한테 필통을 바꾸자고 하려는데 코끼리가 다른 아이 이름을 크게 불렀습니다.
“야, 쫄갱이!”
아이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바라보았습니다. 코끼리는 가운데 자리에 앉은 김경식이를 가리켰습니다.
“너 이리 오고, 꺽다리 저리 가.”
한누리는 쫄갱이라고 불린 김경식이가 가방을 들고 오자 할 수 없이 그 애 자리로 가서 앉았습니다. 코끼리가 경식이한테 명령하듯 말했습니다.
“너 갈 때 신발 나하고 바꿔, 알았지?”
“왜?”
“이 짜샤!”
코끼리가 곰발바닥 같은 큰 손을 번쩍 들고 때릴 기세입니다. 경식은 목을 움츠리고 대답했습니다.
“알았어.”
그렇게 하여 그 날은 경식이가 신고 다니는 팡팡 운동화를 코끼리가 바꾸어 신고 갔습니다.
누리가 집에 오자 엄마가 물었습니다.
“누리, 필통 바꾸어 왔니?”
“……”
“왜 말이 없어?”
“엄마, 너무 좋은 필통은 싫어요.”
“왜?”
“나하고 바꾸어 가지고 간 아이가 잃어버렸대요.”
“뭐야?”
“너무 예쁘고 좋은 것이라 누가 훔쳐갔대요.”
“저런! 내가 학교에 가서 찾아볼까?”
“안 돼요. 내가 찾아보았고 선생님도 찾아보셨는데 못 찾았어요.”
“아이, 아까워라. 그게 얼마짜리인데.”
“그 대신 이런 것이라도 있으니 다행이에요.”
누리는 코끼리 필통을 내보이며 거짓말을 했습니다. 엄마는 아까워하면서도 더 말하지 않고 넘어갔습니다.
다음 날입니다. 코끼리가 쫄팽이를 불렀습니다.
“쫄팽이 이리 와.”
그렇게 말하고 바로 옆자리에 앉은 경식이를 향해 말했습니다.
“너 쫄팽이 자리로 가. 자리 바꿔!”
쫄팽이가 코끼리 옆으로 가 앉았습니다. 코끼리가 작은 소리로 말했습니다.
“이제부터 너는 내 쫄개야. 알았지?”
“…….”
“어떤 애가 좋은 것을 가지고 있는지 알아오고 또…….”
“또?”
“누가 돈을 가장 많이 가지고 다니는지도 알아 봐.”
3. 못된 코끼리
코끼리가 종이를 내밀면서 말했습니다.
“이 종이에다 누가 비싸고 좋은 거 가지고 있는지 적어라. 그리고 나한테 넘겨.”
“어떻게 하려고?”
“짜샤 묻지 마. 물으면 이거야!”
코끼리는 주먹을 번쩍 들어 금방 내리칠 것처럼 가느다란 눈을 부릅떴습니다.
“알았어.”
쫄개가 된 동수는 찍소리도 못하고 종이에다 이렇게 적었습니다.
<김일수 새로 산 크레온.>
코끼리는 빙긋 웃으며 제 가방에서 헌 크레온 통을 내밀며 말했습니다.
“좋아, 가서 이것하고 일수 크리온 바꿔 와.”
“어떻게?”
“짜샤, 하라면 해.”
쫄개 동수가 헌 크레온 통을 들고 김일수 옆으로 갔습니다.
“야, 이것 갖고 네 트레온 새론 사 온 거 이리 줘.”
김일수가 크리온을 가방에 깊이 넣으며 말했습니다.
“안 돼.”
“안 내놓으면 너 죽어. 저 코끼리가 보고 있잖아.”
김일수가 코끼리를 바라보았습니다. 코끼리가 커다란 주먹을 들고 손짓을 했습니다. 겁먹은 김일수는 헌 크리온 통을 받아 들고 새것을 넘겨주었습니다. 그것을 가지고 간 동수에게 빼앗듯 넘겨받은 코끼리는 좋아서 웃었습니다. 반 아이들은 전부터 코끼리가 얼마나 사납고 무섭다는 말을 들어온 터라 아무도 그 아이 명령을 거부하지 못했습니다. 그 날 오후 쫄개 동수한테 코끼리가 또 명령을 내렸습니다.
“누가 돈을 많이 가지고 다니냐? 여기다 써 봐.”
코끼리가 내민 종이에다 반에서 가장 부잣집 아들로 알려진 우주영 이름을 적었습니다.
“알았어. 학교 끝나고 나 좀 보자고 해.”
쫄개 동수는 우주영한테 학교 끝나고 남으라고 전했습니다. 우주영은 영문도 모르고 남았습니다. 코끼리는 동수도 나가 있으라고 하고 우주영이하고 마주앉아 말했습니다.
“야, 배고프다. 나 빵 사먹게 돈 좀 도도.”
“도도가 뭐야?”
“짜샤, 우리말도 못 알아들어. 너 주머니에 있는 거 다 내놓아 봐.”
“왜?”
“너 돈을 얼마나 가지고 다니는지 조사 좀 해 보려고 그런다.”
“네가 뭔데?”
“뭐라고? 이게, 이게!”
코끼리는 커다란 주먹을 블끈 쥐고 당장에 쥐어박을 듯이 대들었습니다.
“…….”
“짜샤, 내가 보자면 보여주면 되는 것도 몰라?”
“왜?”
“얼마나 가지도 다니는지 보려고 그런다. 당장 내놔 봐!”
우주영은 주머니에서 돈을 내놓으면서 말했습니다.
“다 이것뿐이다. 어쩔래?”
코끼리는 돈을 세어보고 빙그레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어린놈이 돈을 너무 많이 가지고 다니면 안 된다는 거 알이 몰리? 자, 이렇게 한다.”
코끼리는 돈을 나누어 반을 돌려주며 덧붙였습니다.
“이건 내가 보관한다. 알았지?”
“네가 왜?”
“자꾸 이럴 거야? 내가 가지고 있다가 네가 달라고 하면 줄 거야.”
“정말?”
“나를 그렇게 못 믿어? 네가 안 믿어 준다면 좋아, 나도 내 맘대로 할 테니까.”
우주영은 힘없이 대답했습니다.
“알았어.”
다음 날 담임선생님께서 아이들에게 이렇게 주의를 주었습니다.
“너희들은 안 그렇겠지만 어떤 반에서는 왕따 사건이 있단다. 너희들은 누구도 왕따를 시키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알았나?”
4. 뿅뿅 운동화
“네, 네, 네, 네.”
아이들은 모두 똑같이 대답했지만 곁눈질로 코끼리를 훔쳐보았습니다. 코끼리가 손가락을 입에다 위아래로 세워 댔습니다. 그것은 아무 말도 하지 말라는 신호입니다. 공부가 끝나고 선생님이 교실에서 나간 다음 쫄개가 코끼리한테 말했습니다.
“한누리가 오늘 아주 멋진 운동화를 신고 왔다.”
“그래? 가서 오라고 해.”
쫄개가 누리한테 갔습니다.
“코끼리가 오래.”
“왜?”
“몰라.”
“못 간다고 해.”
쫄개가 곧바로 코끼리한데 그대로 일러바쳤습니다.
“못 온대.”
코끼리가 뒤룩거리며 한누리 앞으로 갔습니다.
“야, 너 뿅뿅운동화 신었다면서?”
코끼리는 한누리 발을 내려다보았습니다.
“야, 한번 벗어 봐.”
“왜?”
“내가 한번 신어 보자.”
“못해!”
“그래? 너 내 말 안 들었지. 두고 보자.”
코끼리가 다른 아이들을 둘러보며 말했습니다.
“너희들 알았지? 앞으로 누리하고 말하는 사람은 가만두지 않는다.”
쫄개가 다짐하듯 물었습니다.
“네 말은 누리를 왕따시킨다는 말?”
“왕따는 아니야. 그렇지만 알아서 해.”
그날부터 누리는 왕따가 된 것입니다. 아무도 말도 안 걸고 무엇을 물어도 대답하지 않고 코끼리 눈치만 살폈습니다. 학교가 끝나서도 누리하고 말하든지 함께 가는 것을 코끼리가 지켜보았습니다.
왕따가 된 누리는 외로운 아이가 되었지만 조금도 다른 눈치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이 어떻게 하든 태연하게 지냈습니다.
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입니다. 반에서 가장 작은 황짤막이가 장난감 권총을 가지고 왔습니다. 그것을 본 쫄개가 코끼리한테 일러바쳤습니다. 코끼리가 당장에 짤막이를 불렀습니다.
“야, 황짤!”
짤막이가 겁먹은 얼굴로 갔습니다. 코끼리가 가느다란 눈을 요리조리 핼끔거리고 놀리듯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짜샤, 너 권총 가지고 있다면서? 어디서 났어?”
“우리 삼촌이 사다 준 거야.”
“이리 내놔 봐.”
“왜?”
“이 쬐그만게 말이 많아. 내놓으라면 내놓지.”
“안 돼!”
“너 정말?”
코끼리가 커다란 주먹을 번쩍 들었습니다. 짤막이가 납작 엎드리며 말했습니다.
“그래도 안 돼!”
코끼리가 진짜 때리려고 하는 순간 한누리가 날아오듯 다가들며 코끼리 팔을 잡아챘습니다. 코끼리가 화가 나서 소리쳤습니다.
“너 이 손 못 놔?”
“못 놓는다.”
“못 놓는다고? 너 죽어 볼래?”
“너 자꾸 이러기야?”
“어어, 이 꺽다리가 죽고 싶은가? 셋 셀 동안 팔 놓지 않으면!”
코끼리가 눈을 반짝거리며 하나, 둘, 세엣! 하고 벌떡 일어섰습니다.
그 순간 아이들은 모두 겁먹은 얼굴로 걱정스럽게 바라보았습니다.
“누리야, 미안하다고 해.”
“누리야, 위험해!”
그러나 누리는 코끼리 팔을 비틀어 내리며 말했습니다.
“좋다, 너한테 한번 맞아보지. 자, 때려라.”
그 순간 코끼리가 커다란 몸을 휘익 날려 누리를 밀어붙였습니다.
5. 놀라운 도전
누리가 잽싸게 물러섰습니다. 코끼리는 제 힘에 밀려 저만큼 갔다가 홱 돌아서며 누리를 향해 발을 번쩍 올려 찼습니다. 누리가 맞고 넘어지는가 했더니 쿵하는 소리와 함께 코끼리가 벌러덩 나뒹굴었습니다.
“너 죽었어!”
코끼리가 벌떡 일어서면서 가느다란 눈을 부릅뜨고 다시 누리를 향해 발을 올려 찼습니다. 순간 누리가 다리를 쭉 뻗어 앞에 올라온 코끼리 다리를 밑에서 위로 쳐올렸습니다.
“꽈당!”
코끼리가 또 벌러덩 자빠져 화난 얼굴로 소리쳤습니다.
“누리 너, 정말 까불 거야? 오늘 너 죽었어.”
코끼리는 재빠르게 일어서서 주먹을 불끈 쥐고 누리를 향해 휘둘렀습니다. 그러나 누리는 가볍게 코끼리 팔을 낚아채어 옆으로 비틀었습니다.
아이들은 모두 겁먹은 얼굴로 말했습니다.
“누리야 조심해! 조심!”
“누리야, 이제 미안하다고 해.”
“누리야, 너 제정신이야? 감히 코끼리한테 대들다니!”
팔이 꺾인 코끼리가 뚱뚱한 몸을 휘익 돌리며 누리를 머리로 박았습니다. 그 순간 누리가 물러서면서 코끼리 따귀를 세게 갈겼습니다. 코끼리는 따귀를 손으로 만지며 화난 얼굴로 다시 발길질을 했습니다.
누리가 높이 들린 코끼리 다리를 한 손으로 잡아 올리자 코끼리는 또 쿵하고 등을 땅에다 박고 벌렁 젖혀졌습니다. 한 다리를 옆으로 꺾어 쥔 누리가 말했습니다.
“너 또 까불래?”
“뭐라고? 네가 감히 나한테 덤볐어!”
누리가 코끼리 다리를 놓아주었습니다. 코끼리는 일어서서 한 다리를 절면서도 지지 않으려고 주먹을 날렸습니다. 그러나 누리는 그 아이 주먹을 피하면서 이단 옆차기로 코끼리 엉덩이를 퍽 소리가 나게 찼습니다. 그만 코끼리는 또 넘어져 엎어진 채 일어서지 못하고 소리만 질렀습니다.
“누리! 이 꺽다리, 오늘 넌 죽었어!”
아이들이 모두 놀라서 한 마디씩 했습니다.
“누리가 웬 일이냐? 누리가 코끼리를 넘어뜨렸잖아! 누리야 조심해!”
“코끼리가 누리를 못 이기는 거 아냐?”
“누리, 누리 힘내라.”
누리가 코끼리 등을 타고 말했습니다.
“잘못 했다고 해! 그러면 봐 줄게.”
“못해! 네까짓 거한테 항복하라고?”
“항복해!”
“너, 놓지 못해?”
“항복하면 놓아 주지.”
코끼리는 얼굴이 새빨개지고 숨이 막혀 헉헉거렸습니다.
아이들이 코끼리한데 말했습니다.
“야, 잘못했다고 해!”
“항복해! 넌 졌어!”
그래도 자존심이 상한 코끼리가 항복하지 않았습니다.
“못해, 항복하라고 한 놈 가만 안 둔다.”
누리가 등을 꾹 누르며 말했습니다.
“항복해, 놔 줄게.”
6. 종이호랑이
“…….”
코끼리는 말을 못했습니다. 그리고 손바닥으로 땅을 탕탕탕 세 번 쳤습니다. 항복한다는 표시입니다. 누리가 풀어주고 일어섰습니다. 코끼리는 느릿느릿 일어나 누리를 바라보았습니다. 눈에는 싸울 때와 같은 눈빛이 없고 풀어진 채 비틀거리며 제 자리로 돌아갔습니다. 아이들은 모두 자기 자리로 가서 코끼리가 어떻게 할까 눈치만 살폈습니다. 누리가 자신 있는 모습으로 코끼리한데 명령했습니다.
“너 잘 들어. 지금까지 아이들한테 빼앗은 것들 다 돌려줘!”
코끼리는 갑자기 어린애가 되기라도 한 듯 순하게 대답했습니다.
“알았어. 네 크레파스도 가져가.”
“그건 너 가져!”
“싫어, 가져가.”
“너 앞으로는 아이들 괴롭히지 마.”
“알았어.”
이렇게 하여 오학년 3반의 왕초 코끼리가 조용해지자 반에는 평화가 가득했습니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쫄개가 누리한테 물었습니다.
“한누리, 이제는 네가 우리 반 왕주먹이지?”
“까불지 마, 난 우리 반 왕따야.”
“아니야, 넌 왕초야. 네가 왕이라고, 아무도 너한테 덤비지 못할 걸!”
“말이 많다.”
“앞으로는 네가 하라는 대로 내가 할 테니 명령만 내려.”
“알았다. 내 명령이 있을 때까지 입 꽉 다물어 알았지?”
“알았어. 기다릴게.”
그 다음 날 학교에 갔을 때 아이들은 코끼리를 왕따시키고 누리한테 아부하기 시작했습니다. 반의 왕은 확실히 누리로 바뀐 것입니다. 그리고 코끼리는 이빨 빠진 종이호랑이가 되어 구석 자리에 앉아 책상만 들여다보았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그 아이한테 말을 걸지 않았고 위로도 하지 않았습니다. 모두가 바라보는 눈이 쌤통이라고 고소해 하는 빛이었습니다. 황소 소리같이 큰 목소리로 이 아이 저 아이 부르던 소리도 어느새 일주일이나 지났지만 다시는 들리지 않았습니다.
선생님은 갑자기 조용해진 코끼리가 이상스러워 반장을 교무실로 불렀습니다.
“요새 무슨 일이 있었니?”
“아니요.”
“그런데 왜 코끼리가 조용하지?”
“아무것도 아니에요. 이제는 한누리가 왕이에요.”
“한누리가 왕이라니?”
“코끼리가 아이들한테 심하게 굴기 때문에 한누리가 손을 좀 보아 주었어요.”
“둘이 싸웠단 말이야?”
“싸운 건 아니고요. 한누리는 코끼리를 한 번도 때리지 않았어요.”
“그럼? 맞기만 했단 말이냐?”
“맞지도 않았어요.”
“그게 무슨 소리야?”
“공격은 코끼리가 하고 누리는 피하기만 하였는데 코끼리가 제 힘을 못 이겨서 나가자빠진 거지요.”
“네가 하는 말을 통 못 알아듣겠다.”
“선생님은 거기까지만 알고 계셔요.”
아이들이 누리한테는 살살거리고 아양을 떨지만 코끼리한테는 얼굴도 돌리지 않았습니다. 그것을 알고 있는 누리가 하루는 코끼리를 불렀습니다.
“야!”
6. 아름다운 우정
코끼리가 겁먹은 얼굴로 바라보았습니다.
“왜?”
“잠깐 나가자.”
“왜? 너 또……?”
누리가 앞장서서 나가자 코끼리는 마지못해 따라 나섰습니다. 아이들이 놀랍다는 듯 둘이 나가는 것을 지켜보았습니다. 운동장 구석 긴 의자에 누리가 먼저 앉았습니다. 코끼리도 그 곁에 앉았습니다. 누리가 다정하게 말을 건넸습니다.
“미안했다.”
“…….”
“너는 하루에 밥을 얼마나 먹냐?”
“그건 왜?”
“이것저것 많이 먹지?”
코끼리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엄마가 주시는 대로 다 먹어. 우리 엄마는 내가 잘 먹는다고 꿀돼지라고 하시면서 좋아해.”
“넌 뚱뚱하기만 하고 힘을 못 쓴다는 것도 엄마가 아시니?”
“엄마는 내가 아이들을 쥐고 흔드는 호랑이로 아셔. 사실 난 뚱뚱하기만 하지 너 같은 아이하고는……. 넌 어떻게 내가 때려도 맞지 않았니?”
“넌 내가 누군지 알아?”
“한누리.”
“그것 말고.”
“나보다 강한 애.”
“너도 나처럼 강하게 되고 싶지?”
“응, 그런데 넌 어떻게 해서 그렇게 강하니?”
“난 태권도를 해.”
“태권도? 몇 단인데?”
“2단.”
코끼리가 깜짝 놀라 물었습니다.
“2단? 그러면서도 왜 내가 아이들한테 못되게 굴 때 가만히 있었니? 처음부터 네가 태권도 2단이라고 말했으면 좋았을 텐데. 난 너 같으면 자랑했겠다. 그런데 넌 자랑을 안 했잖아?”
“태권도는 유단자가 되면 자기 자랑을 하면 안 되는 거야. 그리고 함부로 주먹을 휘둘러도 안 돼. 유단자는 일종의 무기를 가진 것과 같은 것이라 힘자랑을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고 사범님한테 배웠거든.”
“신사적이네?”
“신사적이지. 그래서 나는 네가 하라는 대로 하였지만 네가 지나치다 싶어서 손을 조금 쓴 거야. 미안하다.”
코끼리는 부러워서 눈을 껌벅이며 말했습니다.
“나도 너같이 되고 싶어.”
“그래? 내가 하라는 대로 할래?”
“좋아.”
“이제부터 태권도를 시작하는 거야. 그리고 먹는 것을 줄이고.”
“태권도는 할 수 있지만 먹는 것은 줄일 수 없을 것 같은데…….”
“알았어. 갑자기 줄이면 해로우니까 차츰차츰 줄이면서 운동을 해.”
“한누리 고맙다. 난 네가 나오라고 해서 때리려고 그러는 줄 알았어.”
“내가 언제 널 때렸냐? 네가 나를 때렸지. 나는 피했을 뿐이야.”
“그게 정당바위라는 거냐?”
“똑똑한 소리를 하는구나. 이제 네가 내 말을 듣기로 했으니 태권도는 내가 가르쳐 줄게.”
“고마워, 난 네가 하라는 대로 할 거야. 아이들한테도…….”
교실로 들어왔을 때 아이들은 실망한 눈으로 말했습니다.
“야, 그게 뭐야. 한바탕 했어야지.”
“한누리도 별 것 아니네. 그냥 시시하게 돌아오고.”
“한누리도 코끼리는 못 당할 거야.”
아이들이 제각각 한 마디씩 했지만 누리와 코끼리는 웃기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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