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과 낱
시장길을 지나다가 할머니가 고구마 파는 좌판을 보게 되었다.
고구마 다섯 개를 작은 바구니에 담아 놓고 거기다 밤고구마 한 바구니에 2천 원이라고 써 놓았다.
계산해 보니 하나에 4백 원 꼴이다. 그래서 좀 비싼데? 하고 생각하다가 밤이라는 말에 짓궂은 생각이 들어서 할머니에게 물었다.
“할머니 밤고구마 말고 낮 고구마는 없나요?”
했더니 할머니 빙긋이 웃으며 대답.
“왜 없어요. 있지요. 그런데 좀 비싸서 댁은 사지 못하실 것 같우.”
“비싸다고요?”
“댁이 비싸도 사시겠다면 드리지요.”
낮고구마가 있다니 얼마나 재미있는 일인가. 나는 신기한 것을 보게 되는가 보다 하고 약속해 드렸다.
“그런 고구마가 정말 있다면 비싸도 사지요.”
“그건 하나에 5천원인데 그래도 사시겠수?”
“보여주세요.”
“선금을 받아야 하는데 돈 먼저 주시겠수?”
나는 오천 원을 내밀었다. 할머니는 돈을 주머니 깊숙이 넣고 나서 바라보았다.
“난 확실히 약속하고 돈도 받았수.”
“네. 맞습니다.”
할머니는 다섯 개가 든 바구니에서 가장 큰 것으로 고구마 하나를 골라 내밀었다.
“옛수 한 바구니에는 2천원이지만 낱개로는 5천원이우. 이 고구마 낱고구마 맞지요?”
“낱고구마요? 말은 맞는 말인데 그게 아니잖습니까?”
“그럼 물려드릴까요?”
“고맙습니다. 그렇게 해주신다면.”
“좋아요. 위약금으로 천원만 더 주시면 물려드리지요.”
“위약금이라고요?”
“자꾸 말씀하시면 영업방해가 되시는 것도 아시우?”
이 할머니가 길바닥에서 장사를 하면서도 이렇게 놀라운 지혜를 보여주시다니!
“할머니, 유대인은 아니시지요?”
“유대인이 따로 있수? 유대 상법을 알면 되는 거 아니것수?”
“할머니가 그런 것도 아신다고요?”
할머니는 길옆에 있는 커다란 양옥을 가리켰다.
“이 집이 우리 집인데 나는 유대인에 관한 책이라면 무엇이든 사다가 서재에다 쌓아놓고 읽는다우. 이 고구마 는 내가 농사지어다 여기서 팔아 돈이 되면 서점에 가서 새로 나온 유대인 책을 살 것이라우.”
“할머니 존경합니다.”
“고맙수, 댁도 나만큼 짓궂은 데가 있는 것 같수. 낮고구마 찾는 사람을 만나니 반가워서 나도 해 본 거라우. 여기 있으니 돈 도로 가져가시우.”
“아닙니다. 약속은 어떤 것이든 약속입니다. 저는 유대인에 관한 책을 만드는 사람이라 약속은 바로 인격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 먹으나 다섯 개 먹으나 다 먹고 나면 허탈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낱고구마 하나를 가방에 넣고 오면서 고구마 10개를 산 것보다 뿌듯한 기분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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