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아 넌 무엇이 되고 싶으냐
조물주가 온갖 새와 짐승과 벌레를 모아 놓고 말했습니다.
“사람이 되고 싶으면 앞으로 나오너라.”
아무도 나가지 않았습니다. 이상하게 생각한 조물주가 까치를 바라보았습니다.
“까치, 너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으냐?”
“싫습니다.”
“이유는?”
“사람이 되면 걸어 다녀야 하기 때문이에요.”
“그럼 너는 무엇이 되고 싶으냐?”
“호랑이가 되고 싶어요.”
“그 이유는?”
“동물 중에 가장 무서운 것이 호랑이기 때문이지요.”
“알았다.”
이번에는 바퀴벌레에게 물었습니다.
“너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으냐?”
“사람은 싫어요. 법을 만들어서 서로 얽어매고 잡혀가고 그 꼴은 못 봅니다. 저는 안 할래요.”
“그걸 어디서 보았느냐?”
“제가 사는 집 주인은 직업이 없어요. 그래서 밤마다 남의 집에 남아도는 물건을 가져오는데 그걸 도둑질이라고 경찰이 잡아가는 것을 보았어요. 경찰도 없고 도둑도 없는 우리가 얼마나 좋아요.”
“너는 더 큰 도둑이라는 걸 모르느냐?”
“제가 무엇을 했다고 도둑이라 하십니까?”
“넌 도둑이 사는 집에서 집세도 안 내고 숨어들어 도둑 살림을 차리고 처자식들을 데리고 사람들이 해놓은 음식을 훔쳐 먹고 살지 않느냐? 너야말로 경찰이 잡아가야 할 존재니라.”
“헤헤헤 다행히 사람들은 우리를 잡아갈 법을 만들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법에만 안 걸리면 통과입니다요.”
“못된 놈.”
조물주는 나비한테 물었습니다.
“너는 사람이 되고 싶겠지?”
나비도 고개를 저었습니다.
“사람은 싫어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은 이유는?”
“사람 노릇은 너무 힘들어요. 아이 때는 학교를 가고 과외를 하고 공부로 실력 싸움을 하고 어른이 되면 군인 가고 전쟁을 하고 자식 걱정에 먹고 살 걱정을 하는 사람이 싫어요. 날마다 춤만 추고 사는 우리가 얼마나 행복한데요.”
“음, 그럼 땅속에만 숨어 다니는 두더지는 사람이 되고 싶겠지.”
“왜 하필이면 저보고 사람이 되라 하십니까?”
“땅속에만 숨어 살자니 자존심이 많이 상하지 않느냐?
“자존심이란 사람한테나 해당되는 것이지 우리들한테 자존심이 왜 필요합니까. 자존심을 따지고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불쌍합니까? 그래서 사람 되는 것이 싫습니다.”
“내가 공연한 것을 물었구나.”
조물주가 소를 보고 물었습니다.
“너는 사람이 되어 너희를 혹사하는 사람들에게 복수가 하고 싶겠지?”
황소가 껄껄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모르시는 말씀입니다. 우리야 사람이 하자는 대로 하면 주인은 우리의 종이 되어 하루에 세 번 먹을 것을 차려주는데 왜 하필이면 사람이 됩니까.”
“노동하기 힘들지 않느냐?”
“그걸 물으시면 어떡하십니까? 우리들한테 조물주님께서 특혜로 주신 것이 무엇입니까?”
“음, 힘이지.”
“바로 그 힘은 우리가 꼭 써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안 쓰면 우리는 비대증에 걸려 제 명대로 못 삽니다. 고맙게도 사람들이 우리에게 힘 쓸거리를 만들어 주어 얼마나 다행입니까. 사람들은 우리를 종으로 알고 부리지만 우리는 사람을 하인으로 알고 사람이 하자는 대로 놀아줄 뿐입니다.”
“허허허 사람이 너희를 못 당하고 있구나. 그런데 사람들은 너희를 실컷 부려먹고 마지막에는 잡아먹는데 그것도 억울하지 않으냐?”
“그건 더 좋은 일입니다. 사람들은 죽으면 장사를 지내고 산소를 만들고 벌초를 하고 제사를 지내고 얼마나 복잡합니까. 그러나 우리는 늙어 죽을 때가 되면 사람들이 즐겁게 먹어주고 우리 장사는 사람들이 치러줍니다.”
“억지 같지만 그럴 듯한 변명이로구나.”
조물주는 개에게 물었습니다.
“너는 사람과 가장 가까이 살지만 사람들이 저희끼리 말할 때 개만도 못하다고 하는 말을 들으면 어떠하냐? 그 소리를 들으면 당장 사람이 되고 싶지 않으냐?”
“컹컹컹.”
“그게 무슨 소리냐?”
“웃는 소리입니다요.”
“웃다니?”
“우리 개들끼리 개를 무시할 때 뭐라고 하는지 아십니까?”
“너희끼리?”
“예. 개 중에 못된 개를 우리는 사람만도 못한 놈이라고 합니다요.”
“그게 무슨 소리냐?”
“우리는 의리를 중요시합니다. 그런데 어쩌다 도둑질을 하는 녀석이 생기면 그럴 때 사람 같은 놈 하고 비웃습니다.”
“어째서 그런 말이 나오느냐?”
“살아 있는 동물 중에 도둑이 가장 많은 동물이 사람 아닙니까?”
“그래도 사람은 의리가 있느니라.”
“의리로 말하면 사람이 우리만 합니까? 우리 개들은 주인 모시기를 하나님 모시듯 합니다. 주인이 집을 비우면 집을 지키고 도둑이 들면 왕왕 짖으며 물어뜯어 내쫓고 주인과 동행할 때는 주인의 보호자가 되어 드립니다. 그런데 가끔 주인한테 불만이 있어서 주인을 물어뜯는 개가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사람만도 못한 놈이라고 왕따를 시킵니다.”
“듣자듣자 하니 못 하는 소리가 없구나.”
“그래서 사람은 되고 싶지 않다는 것 아닙니까?”
조물주가 호랑이게 물었습니다.
“너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으냐?”
“어흥 어어흥흥.”
“그게 무슨 소리인고?”
“영어로 노우 노우 하는 소리입니다.”
“네가 영어도 아느냐?”
“우리야 동물들이 내는 소리를 다 알아 듣지 않습니까.”
“그랬던가.”
“너도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는 것이냐?”
“물론입니다. 동물 중에 만물의 영장이라고 사람들은 자기들을 추켜세우지만 만물의 영장은 따로 있지 않을까 합니다요.”
“오만하도다.”
“사람들은 옛날에 우리들을 영물이라고 했습니다. 영물이 뭡니까? 조물주님 다음으로 카리스마가 있다는 말 아닌갑쇼?”
“건방진 것 같으니. 네가 영어를 알면 얼마나 안다고 아무데서나 영어를 지껄이느냐?”
“사람을 저희와 비교하시니 존심이 좀 상했습니다요.”
“네가 사람이 되고 싶지 않은 이유가 또 있느냐?”
“이유가 한두 가지겠습니까. 저는 산 속에서 어슬렁거리고 산책이나 하다가 배고프면 아무 것이든 잡아먹고 졸리면 아무데서나 누워 잡니다. 저한테는 집도 필요 없고 먹을 것도 걱정이 없습니다. 그런데 사람들 좀 보시지요.”
“사람이 어때서?”
“사람은 집이 없어 거지가 되고 먹을 것이 없어 거지가 되고 입을 것이 없어 거지가 됩니다. 거지한테는 거지가 친구일 뿐 거지 아닌 사람들은 거지를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습니다. 거지는 도둑이 되고 도둑은 살인범이 되고 살인범은 죄수가 되고 죄수는 감옥에 갇혀 죽어야 하고…….”
“그런 것까지 아느냐?”
“그뿐 아닙니다. 날개도 없는 사람들은 빨리 갈 욕심에 날틀을 만들어 하늘을 질러가고, 지느러미도 없으면서 물속을 다니겠다고 배를 만들고, 길을 빠르고 편하게 다니겠다고 차를 만들어 타고 다니고 얼마나 복잡합니까. 사람은 복잡하고 힘겹게 살다가 욕심을 못 채우고 사라집니다. 세상에 무서울 것 하나 없는 영물로 사는 저에게 사람이 되라고 하시다니 지상의 왕 영물을 너무 무시하셨습니다.”
조물주는 어떤 동물이 사람이 꼭 되고 싶을까 생각하다가 가장 천하게 살고 지저분한 돼지에게 물었습니다.
“너만은 사람이 되고 싶겠지? 그 지저분한 우리 속에서 엉덩이에 오물을 덕지덕지 붙이고 사는 것이 얼마나 괴롭겠느냐. 네가 사람이 된다면 양복을 빼입고 넥타이를 매고 머리 기름을 자르르 바르고 자가용을 타고……”
“꽥! 꽤꽥꽥!”
“시끄럽다. 그게 무슨 소리냐?”
“가장 불쾌할 때 내는 소리 아닙니까?”
“불쾌하다니! 내가 너한테 못 할 말을 했느냐?”
“사람이 되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사람이 어때서?”
“우리는 사람들이 가장 선망하는 그 왕입니다.”
“허허 왕이라 했느냐?”
“이 세상에서 가장 편하게 먹고 놀다 가는 동물은 우리 돼지밖에 없습니다.”
“무슨 소리냐?”
“보십시오. 개도 밤낮으로 경비를 서야 하고, 소는 온 종일 주인을 위해 일을 해야 하고, 호랑이가 만물의 영장이라고 큰소리치지만 사람이 무서워 산에서 나오지 못하고, 바퀴벌레는 약을 치면 온 족속이 몰살을 당하고, 새도 강한 새한테 잡아먹히는 것이 두려워 눈치를 살피며 먹이를 찾아 거지처럼 돌아다녀야 하고, 나비도 꽃을 찾아 날개가 아프도록 날갯짓을 해야 하고 안 그렇습니까?”
“너는?”
“우리 돼지들이야 자고 싶으면 자고 먹을 때 되면 우리가 거느린 사람들이 먹을 것 가져오고 무엇이 부족합니까. 게다가 우리는 사람처럼 목욕을 하고 화장을 하고 예의 법도를 만들어 지킬 필요도 없습니다. 왜 화장이 필요하고 목욕이 필요합니까. 먹고 싸고 뒹굴고 그게 진자 행복한 여유 아닙니까. 우리를 사람들이 얼마나 부러우면 복돼지라고 합니까. 귀여운 아기를 복개 복호랑이 복늑대 복나비 복소 복두더지 복여우라고 하는 것 보셨습니까? 오직 우리를 복돼지라고 하는 것만 보아도 우리가 얼마나 귀하고 행복한 존재인데 무엇이 아쉬워 사람이 되겠습니까?”
조물주는 끝내 사람이 되겠다는 동물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동물 중에 사람이 가장 불쌍한 동물이 아닌가 생각하고 사람을 찾아가 무엇이 되고 싶은지 물어보기로 했습니다.
“사람아, 넌 무엇이 되고 싶으냐?”
(2008. 8. 27 오후 5시 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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