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
“엄마 한 달 동안 있다가 오면 저 딸기와 방울토마토는 어떻게 되는 거야?”
“물 안 주면 다 말라 죽는 거지 뭐.”
“그럼 어떡해?”
“그러니까 사지 말자고 했잖아?”
소희는 책가방만한 스틸로플 상자에 아기들처럼 옹기종기 담겨 있는 어린 딸기순과 지팡이나무 방울토마토 허브 순에 물을 듬뿍 주면서 말했습니다.
“너희들 죽으면 안 돼 알았지? 한 달 있다가 빨리 올게 그때까지 안녕!”
소희는 몇 번씩 돌아보며 아파트 옥상 계단을 내려왔습니다. 넓은 옥상에 고아들처럼 남은 딸기와 토마토가 실바람에 한들거리며 손짓을 했습니다.
“너도 안녕!”
소희는 할머니 집에서 한 달 동안 아주 재미있게 놀았습니다. 너무 재미있게 지내느라고 옥상에 두고 온 딸기와 토마토 생각은 가맣게 잊었습니다.
“소희야 이제 집에 가자.”
엄마가 짐을 싸면서 말했습니다. 소희는 할머니와 더 지내고 싶었지만 엄마를 따라 서울로 가는 고속버스를 탔습니다.
차창 밖으로 파란 들판이 지나갑니다. 먼 산은 버스를 구름처럼 따라오고 가까운 산들은 바쁘게 뒤로 밀려가며 얼굴을 감추었습니다.
소희가 엄마에게 물었습니다.
“엄마, 걔들은 다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누구 말이냐?”
“딸기 토마토.”
“다 말라 죽었을 텐데 뭘 생각하니?”
“정말 죽었을까? 불쌍해서 어떡해?”
“불쌍하긴. 주인 잘못 만나서 그렇게 된 거지.”
“주인? 내가 주인이야?”
“네가 주인이 아니면 누가 주인이니?”
“그렇구나, 걔들은 내가 사오는 게 아니었어.”
엄마는 묵묵히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습니다.
“엄마, 걔들이 정말 다 죽었을까?”
“한 달 동안 물 한 모금 안 주었는데 무슨 수로 사니?”
엄마는 무심하게 대답했습니다.
“엄마, 정말 다 말라죽었을까?”
“잊어버려.”
소희는 서울에 도착할 때까지 그 생각만 했습니다.
‘주인이 책임을 지지 않아서 그것들은 다 말라죽었을 거야. 내가 안 사왔으면 다른 집에서 꽃도 피고 열매도 맺었을 텐데…… 물을 주고 가꾸어 주었다면 지금쯤 많이 자랐겠지?’
집에 도착하자마자 소희는 옥상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한 달 전에 놓아 둔 자리를 보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다들 어디로 가고?’
먼저 사다 놓은 스틸로플 상자에는 바싹 말라 죽은 지팡이나무만 달랑 서 있고 그 곁에는 크고 작은 화분에 토마토가 훌쩍 자란 채 꽃과 열매를 달고 있고 딸기는 가지를 길게 늘이고 파란 잎 사이에 하얀 꽃을 달고 있었습니다. 허브들도 예쁜 화분에 담겨 작은 손을 내밀고 인사했습니다.
“소희야 안녕?”
소희는 너무 기뻐서 엄마한테 달려갔습니다.
“엄마 걔들이 다 살아 있어요.”
“살아 있어? 거짓말 하면 못 써.”
“아니에요. 가 보세요.”
엄마도 올라가 돌아보고 기뻐했습니다.
“정말 다 살아 있구나. 누가 이렇게 화분갈이까지 하고 물을 주었을까? 고맙기도 하지.”
“누가 이렇게 해 놓았을까요?”
“글쎄다. 누군지 참 고맙기도 하구나. 이것들이 주인을 잘 만난 거야.”
“주인이요?”
“그래, 이제 너는 주인이 아니야. 얘들을 살려준 분이 주인인 거야. 그분이 아니었으면 저 지팡이나무처럼 다 말라죽었을 테니까.”
“엄마 말씀이 맞아요. 저는 주인이 아니에요.”
그렇게 이야기를 나눈 뒤에도 소희는 누가 그렇게 돌보아 주었을까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아침에 유치원에 갈 때는 옥상에 올라가 그것들을 돌아보았습니다. 어느 틈에 누군가가 물을 듬뿍 주어 파란 잎들이 싱싱하게 아침햇살에 반짝이며 무럭무럭 자랐습니다.
며칠 뒤에 딸기에는 굵은 딸기가 빨갛게 익어 매달려 있고 토마토 줄기에는 방울토마토가 다닥다닥 붙어 빨갛게 익었습니다. 날마다 토마토와 딸기가 예쁘게 익어 가는데 아무도 따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딸기와 토마토 줄기 옆에 하얀 종이가 놓여 있었습니다.
[주인님 딸기가 다 익었어요. 이제 따 잡수셔도 됩니다. 그리고 토마토도 이제 따도 됩니다.]
소희는 놀라 엄마한테 달려갔습니다.
“엄마 옥상에 가 보세요. 편지가 왔어요.”
“편지? 무슨 펀지가 옥상으로 오니?”
엄마는 옥상으로 올라가 편지를 읽었습니다. 그리고 기뻐하는 얼굴로 돌아와 그것보다 더 큰 종이에다 이렇게 써서 토마토 화분 옆에 달아놓았습니다.
[주인은 화분갈이를 해주고 길러주신 생명의 은인이 주인이십니다. 저희는 열매를 따먹을 권리가 없습니다. 주인님이 따 잡수세요. 저희는 보는 것만으로도 날마다 기쁩니다. 감사합니다.]
엄마는 아주 기뻐하며 옥상에서 내려왔습니다. 소희도 너무 기뻐서 노래를 부르며 내려왔습니다.
누군지 몰라도 마음씨 고운 분이 우리 곁에 있다는 것만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날마다 보는 분들 가운데 그 분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 아파트 사람들이 다 고마운 사람들로 보였습니다.
(2008년 5월 23일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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