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방/수필

시골영감 상경기

웃는곰 2008. 5. 4. 16:55
 

시골영감 상경기

시골 키다리 영감과 땅딸보 영감이 죽기 전에 서울 구경이나 한번 하자고 상경했다.

종로 한복판을 걷다 보니 깜찍하게 예쁜 아가씨가 걸어가는데 가만히 보니 다 떨어져 너덜거리는 청바지를 입고 가는기라.

키다리 영감이 땅보 영감에게 말했다.

"여보게 저것 좀 보게, 얼마나 살기 힘들면 바지가 뚫어지도록 입었을까? 인물이 아깝네."

"글세 말여. 바지를 꿰맬 실도 없는 모양이여. 가서 좀 도와줌세."

땅보 영감이 아가씨 곁으로 갔다.

"여봐, 낭자, 옷 좀 꿰매 입고 다니지. 속살이 다 보이는 데도, 부끄럽지도 않은가? 정히 어려우면 내가 새 옷으로 하나 사 주지."

아가씨 눈을 샐쭉 뜨고 톡 쏘아붙였다.

"흥! 별꼴이야!"

아가씨가 저쪽으로 달아나자 키다리영감이 못마땅한 얼굴로 한 마디 했다.

"고얀 것 같으니라고, 버르장머리 없이 어른한테 별꼴이라고?"

"싸가지 없는 것 같으니라구 누가 저렇게 키웠을까?"

두 노인은 기가 차서 말을 못했다.


그런데 바로 앞에서 젊은 녀석이 담배를 빡빡 빨고 있었다. 두 영감이 눈을 부릅뜨고 '당장에 담배 못 꺼' 하고 녀석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녀석은 태연했다. 키다리영감이 다가갔다.

"이봐라. 어른도 안 보이나?"

"어른이 어디 있는데요?"

"허허! 이 싸가지 없는 자를 보았나. 어디서 배운 말버릇인고?"

"늙으면 곱게 늙지 담배 값 보태준 것 있나. 무슨 잔소리야!"

"뭣이 어때? 이 녀석이 아래위도 모르는군."

"엇다 대고 욕이야 이 늙은 것들이."

"뭐야? 이놈이."

땅보와 키다리영감이 홧김에 달려들어 주먹을 휘둘렀다. 그러나 젊은이는 잽싸게 피하여 달아나고 영감 둘이 맞부딪쳐 땅보가 키다리 영감 배를 들이받고 키다리영감은 팔만 허공에 휘젓고 말았다.


"서울 젊은것들 다 버렸군. 큰일이야."

키다리영감이 허탈한 눈길로 땅보영감을 내려다보았다.

"말해 무엇해. 서울에는 땅에다 굴을 파고 철마가 다닌다니 그것이나 구경하고 돌아가세."

두 영감은 지하도로 들어갔다. 키다리 영감은 머리가 닿을까 봐 허리를 숙이고 들어갔다.

"아니! 웬 구멍이 이렇게 큰가? 천장이 손에 닿지 않네 그려."

키다리영감이 말하자 땅보 영감이 급하게 말했다.

"저것 좀 보게. 저쪽 캄캄한 굴속에서 철마가 호랑이처럼 눈에 불을 켜고 달려오네 그려."

"그렇군, 어서 타세."

영감은 사람들이 빽빽이 들어선 전철 안으로 들어갔다.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리다 보니 한쪽 구석에 빈자리가 있었다.

"여보게 땅보 저기 빈자리가 있네. 감세."

키다리영감이 그리로 가서 자리에 앉았다. 똑똑한 땅보 영감이 급히 키다리영감을 잡아끌어 일으키며 귀에다 대고 말했다.

"앉지 말라고."

"왜?"

"시골 잔칫집에 사람이 아무리 많이 모여도 뒷간에는 들어가지 않잖는가?"

"그렇지."

"여기가 바로 뒷간이야. 저 버르장머리 없는 젊은것들이 저렇게 서서도 여기 앉지 않는 것을 보면 그만한 까닭이 있는 게여."

"그렇겠군. 앉으면 안 되겠어."

이렇게 속삭이고 있는데 한 젊은이가 다가와 말했다.

"어르신들 거기 앉으세요."

"뭐라고? 우리 보고 뒷간에 앉아 가라고? 예끼 이 놈, 네나 앉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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