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방/시

꽃들아 사랑해

웃는곰 2008. 5. 3. 20:59
 

꽃들아 사랑해

봄이 날개를 펴고 따듯한 입김으로 대지를 녹일 때 화분 하나에서는 살이 포동한 파란 떡잎이 손을 내밀었고 또 한 화분에서는 빨간 새싹이 동그랗게 오므린 손을 호호 불며 쏘옥 내밀더니 봄이 포근히 개나리 꽃잎을 퍼다가 뿌릴 때 파란 손은 난초로 이름표를 달았고 빨간 새순은 함박꽃 이름표를 달았다. 얼굴이 다른 난과 함박꽃은 아침저녁 이슬로 목욕하며 난초는 굵고 탐스런 꽃대를 세워 높이 고개를 들고 두 팔을 쫙 벌려 브이 자로 꽃봉오리로 빅토리, 함박꽃도 파란 잎으로 겹겹이 치마를 두르더니 줄기 높이 깃대 세우고 동그란 봉오리 깃봉을 달았다. 봄은 날마다 입김으로 꽃봉오리를 호호 불어 파랗게 여민 껍데기를 벗기더니 곱게 접은 빨간 속잎을 풀어 벙그려 놓았다. 함박꽃은 빨간 입술을 벌리고 노란 꽃술을 내밀고 나비를 부르는 동안  브이자 난도 나팔을 불며 빨간 입을 벌리고 노란 술을 저으며 봄노래를 시작했다. 꽃들은 내가 출근하며 들여다보는 아침마다 활짝 입 벌려 뽀뽀를 하잔다. 가만히 입술을 꽃잎에 맞추고 쌉싸롬한 향기에 코를 문지르면 간지럽다고 호호 웃는 꽃들의 재잘거림. 닷새 동안 화려한 얼굴로 마음껏 노래하고 나비를 부르더니 어느새 싱그런 꽃잎에 그늘이 드렸다. 아직 봄이 많이 남았는데 벌써 자려고? 가만히 묻는 말에 수줍은 꽃들은 젊음 잃은 얼굴로 꽃잎을 늘어뜨린다. 안 돼, 더 활짝 피고 더 아름답게 놀아야 해, 퇴근하여 보자. 해질 녘 돌아왔을 때 꽃들은 화장기 잃은 노인 같은 얼굴에 슬픈 눈으로 나를 향해 손을 젓는다. 안녕! 안녕! 꽃들의 화려한 잔치는 너무 짧았다. 너무너무 짧아짧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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