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방/동화

투명구두 1-114

웃는곰 2008. 5. 3. 19:33
 

투명 구두


아무도 안 사가는 구두


학교에서 돌아온 은우가 갑자기 엄마를 졸랐습니다.

“엄마, 구두 사주세요.”

“아직 운동화도 신을 만한데 무슨 구두냐?”

“운동화를 신은 사람은 저 하나뿐이에요.”

“아직 신을 만하니 그냥 더 신어.”

“그래도 신고 싶은 걸요. 저기 마트에 있는 구두 코너에 아주 좋은 구두가 있어요.”

“이 다음에 더 크거든 그것보다 더 좋은 구두 사 줄게. 그렇게 좋은 구두를 지금 어떻게 사니?”

“그 구두는 아무도 안 사가는 것 같아요. 벌써 3년 동안이나 문 앞에 있는 걸요.”

“그래도 안 돼. 다음에 사줄게. 넌 착한 아이잖아?”

“착한 아이라고 구두도 안 신고 싶은가……”

“네 마음 나도 알아, 그렇지만 그 비싼 구두를 어떻게 사니? 엄마 생각도 해 주어야지.”

“알았어요 엄마. 나중에 돈 벌면 사주세요.”

“그래, 고맙다. 엄마가 돈 벌면 꼭 사줄게.”

은우는 크게 웃으면서 손을 내밀었습니다.

“엄마, 이담에 꼭 사주기로 약속!”


은우는 엄마와 손가락을 걸고 손도장을 찍고 복사도 했습니다. 엄마 손바닥이 많이 거칠거칠한 것을 느꼈습니다. 엄마는 손바닥을 마주 문지르면서 아들이 귀여워서 밝게 웃었습니다. 은우는 팔을 쫙 벌려 높이 들고 말했습니다.

“엄마, 내가 얼른 커서 도와드릴게요.”

“그래 빨리 크거라.”


은우는 엄마와 헤어져 마트로 나갔습니다. 그리고 속으로 말했습니다.

‘이담에 엄마가 구두 사주신다고 하면 나는 저 구두를 살 거야.’

은우가 좋아하는 구두는 삼 년 전부터 같은 자리에 있었으나 아무도 사가지 않았습니다. 주인도 가게문을 닫을 때 그 구두는 그대로 두고 닫았습니다. 그래서 그 구두는 밖에 똑같은 모양으로 놓여 있었습니다. 그 구두는 유리처럼 속이 들여다보이는 투명구두입니다.

‘저 구두는 얼마나 비쌀까?’

은우는 그 구두가 많이 비쌀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얼마나 비싼가 한번 물어볼까?’

궁금증이 난 은우는 가게 안을 들여다보았습니다. 주인 아저씨는 수그린 채 은우가 들어오는 것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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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 저 구두 얼마예요?”

“어떤 것 말이냐?”

“저 밖에 있는 구두요.”

“밖에 무슨 구두가 있다는 거야?”

“저거 말예요.”

주인은 밖을 내다보다가 화를 냈습니다.

“꼬마 녀석이 어른을 놀려? 거기 뭐가 있어?”

“저기 있잖아요.”

“너하고 말장난할 새 없다. 빨리 가지 못해?”

“아저씨는!~”

주인 아저씨는 다시 일을 시작했습니다.

“아저씨, 저것 한번만 만져보면 안 될까요?”

“아따, 그 녀석 참 귀찮게 구네. 거기 뭐가 있다는 게야? 있거든 너 가져!”

“정말요?”

“정말이고 덴마크고 너 가져!”

“거저요?”

“녀석아, 아무것도 안 주고 돈 받는 사람 보았냐? 거저 가져라. 살다가 별 녀석 다 보겠네.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뭘 달라는 게야? 가지고 가.”

“알았어요, 아저씨.”

은우는 운동화를 벗고 투명구두를 신어 보았습니다.

“야, 딱 맞는다, 야호!”

주인 아저씨가 갑자기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야, 이 녀석아, 어디 숨었니?”

“여기 있어요.”

“여기가 어디야? 신발을 벗어놓고 숨으면 내가 가만 둘 줄 아느냐? 두고 보자.”

주인 아저씨는 은우가 벗어놓은 운동화를 들고 안으로 들어가 문을 잠갔습니다.

“네가 까불면 언제까지 까불어. 신발 찾으러 오기만 해 봐라. 그때는 혼을 내 줄 테다.”

은우는 주인 아저씨가 참 이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다시 가게 안으로 들어가려 했지만 주인 아저씨는 문을 열어주지 않았습니다. 

‘엄마가 남의 것을 함부로 손대면 안 된다고 했는데.’

그러나 주인이 운동화를 내주지 않기 때문에 은우는 구두를 신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은우는 마루에서 신발을 벗어들고 방으로 들어왔습니다.

“엄마, 저 구두 생겼어요.”

“구두라니? 무슨 구두야?”

“저기 이마트 아저씨가 주셨어요.”

“그 구두쇠가 거저 줄 리가 없는데 혹시 너 남의 물건에 손 댄 건 아니지?”


6/24  ** 3  안 보이는 구두


“아녜요.”

“어디 보자”

“보세요.”

“보라면서? 어디 있어?”

“이거예요.”

“이게 뭐야?”

“구두잖아요.”

“네가 구두 타령을 하더니 정신이 이상해졌나 보구나. 헛것을 보고……”

“헛것이 아니에요. 아주 유리보다 맑은 투명구두예요. 잘 보세요.”

“세상에 투명구두가 있다는 말은 너한테 처음 들어본다. 정신 차려 인석아.”

“엄마, 내가 한번 신어 볼까?”

“신기는 뭘 신어? 얘가 왜 이래?”

은우는 구두를 신었습니다.

“자, 보세요, 멋지지요?”

“은우야, 왜 그렇게 까부니? 어디 숨었어?”

“저 안 숨었어요.”

엄마는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방안을 두리번거렸습니다.

“어디 숨었니 은우!”

“여기 있잖아요. 엄마 앞에.”

은우가 엄마 손을 잡았습니다.

“어마마! 이게 뭐야?”

엄마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손을 뿌리쳤습니다. 엄마가 너무 놀라는 바람에 은우는 구두를 벗었습니다.

“아이고 깜짝이야. 너 어디 숨었다가 나타난 거냐? 엄마를 놀리면 못 써.”

“안 그럴 게요.”

은우는 구두를 책상 서랍에 곱게 넣어두고 엄마가 차려놓은 저녁을 먹었습니다. 그리고 공부를 하면서 생각했습니다.

‘이상하다? 왜 구두를 신으면 남들이 알아보지 못하지? 마트 아저씨도 그랬고 엄마도 그랬어……’

다음 날은 개교 기념일이라 학교가 쉬는 날입니다. 그래서 학교를 가지 않았습니다. 은우는 일찍이 구두를 신고 가장 친한 정우를 찾아갔습니다.

“정우야, 놀자!”

“알았어. 기다려, 나간다.”

정우는 바로 나왔습니다. 그리고 두리번거렸습니다.

“은우야! 어디 있니?”

“여기!”


7/1 **4

“여기가 어디야?”

은우는 집 모퉁이로 가서 신발을 벗고 정우 앞으로 나왔습니다.

“짜아식! 놀랐잖아? 거기 숨어 있으면서……”

정우는 은우의 어깨를 툭 쳤습니다.

“바로 내 앞에서 대답한 것 같은데 언제 거기로 갔니?”

“날아갔지.”

은우는 정우와 해가 질 때까지 놀다가 헤어졌습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면서 중얼거렸습니다.

“이상한 일이야. 내가 구두만 신으면 남들이 못 보거든?”

이때 누군가가 뒤에서 말했습니다.

“알았지? 은우.”

“네?”

돌아보았지만 아무도 없었습니다.

“누구세요?”

“나다, 잘 지내보자.”

“네?”

“네가 구두를 신으면 남들이 몰라본다는 것 알았지?”

“아저씨는 누구세요?”

“나, 나는 키다리 양 아저씨다.”

“양 아저씨요?”

“그래.”

이때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나도 있다.”

“네?”

“난 난짱 아저씨.”

“난짱 아저씨요?”

“음, 너를 도우려고 왔다. 알았지? 답답할 때 나를 불러라. 그러면 언제든지 도와줄게.”

“난짱 아저씨가요?”

“그래, 항상 네 편이 되어 줄 게다. 믿어도 좋아.”

이때 양 아저씨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미련한 사람은 입이 넓고 지혜로운 사람은 귀가 넓다.”

“네?”

“행복은 돈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만드는 것이다. 명심하거라.

“그게 무슨 말이에요?”

“그 말만 기억하면 된다.”

난짱 아저씨가 가로막았습니다.

“그런 말은 들을 것도 없다. 네가 이해하기 어려운 말은 들을 필요가 없어, 내 말만 들으면 된다. 알았지?”

“아저씨들이 싫어요.”

은우는 갑자기 무서운 생각이 들어 집을 향해 달렸습니다. 뒤에는 아무도 따라오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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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아침 마트 구두 코너 아저씨가 찾아왔습니다.

“이 댁 아이가 어제 신발을 두고 갔습니다. 그래서 가져왔습니다.”

엄마는 고마워서 어쩔 줄을 모르고 신발을 받았습니다.

“고맙습니다. 그 애가 장난이 너무 심했나 봅니다. 용서해 주세요.”

“얌전한 녀석이 어제는 장난을 다 치더군요. 귀여워서 한번 받아 주었지요.”

은우는 아저씨가 투명구두를 찾으러 온 줄 알고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그러나 아저씨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돌아갔습니다. 

은우는 학교 갈 때 구두를 책상 밑에 숨겨두고 운동화를 신고 갔습니다. 공부를 하는 동안 구두 생각에 선생님 말씀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공부를 마친 은우는 한걸음에 집으로 달려갔습니다.

책상 아래 숨겨둔 구두는 그대로 있었습니다.

‘이걸 신으면 정말 아무도 보지 못하는 것일까?’

은우는 궁금증이 나서 다시 한번 신어보았습니다. 그리고 밖에서 일하시는 엄마 곁으로 가 빙글빙글 돌아보았습니다. 그러나 엄마는 전혀 눈치를 채지 못했습니다.

‘정우한테 또 가볼까?’


은우는 정우네 집으로 갔습니다. 정우는 마당에서 작은 상자를 들어다 툇마루에 올려 쌓고 있었습니다. 장난이 하고 싶은 은우는 정우가 상자를 마루 위에 놓고 돌아설 때 도로 집어다 제 자리에 놓았습니다.

처음에는 모르고 있던 정우가 자꾸 그런 일이 있자 이상하다고 생각한 듯 은우번거리며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이상하다, 왜 이렇지?”

은우는 마당에서 상자 둘을 들어다 마루에 올려놓았습니다. 정우는 은우가 상자를 들고 다녀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내가 잡기만 하면 물건도 안 보이는 것이 틀림없어.’

은우가 이렇게 생각하며 마루에다 상자를 올려놓았습니다. 마루에 상자가 더 늘어난 것을 본 정우는 머리를 갸웃거리며 중얼거렸습니다.

“이상하다. 왜 많아졌지? 내가 왜 이래?”

정우는 주먹으로 제 머리를 쿡쿡 쥐어박으면서 중얼거렸습니다.

“바보, 바보, 난 바보야.”

은우는 웃음이 났지만 꾹 참고 담 모퉁이로 돌아가 운동화를 바꾸어 신었습니다.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정우에게 갔습니다.

“정우야, 뭘 해?”

“어, 은우, 어서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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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하는 중이야? 도와줄까?”

“좋아.”

“빨리 하고 놀러 가자.”

“좋아.”

은우와 정우는 일을 마치고 자주 가는 마을회관 앞 공원으로 나갔습니다. 은우가 먼저 제안했습니다.

“우리 숨바꼭질할까?”

“좋아.”

“네가 먼저 숨을래?”

“좋아.”

“나 이렇게 눈감고 있을 게 넌 숨어.”

“좋아.”

정우가 달아나는 동안 은우는 구두를 신었습니다. 그리고 정우가 숨는 곳을 따라가 보았습니다. 정우는 경로당 뒤 좁은 굴뚝 사이에 숨었습니다. 쭈그리고 숨은 모습을 들여다보고 있는 줄도 모르는 정우는 몸을 꽁꽁 오므리고 눈까지 감았습니다.

은우는 다시 제 자리로 돌아가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이제부터 찾는다아!”

소리를 지르고 난 다음 정우가 숨은 반대편으로 가서 찾는 척했습니다.

“어디 숨었니?”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은우는 더 멀리 가면서 외쳤습니다.

“어디 숨었니이?”

정우는 은우가 반대편으로 가자 좋아서 히히거리며 얼굴을 내밀고 메롱메롱 놀렸습니다. 그리고 작은 소리로 지껄였습니다.

“이 바보야, 여기 있다. 아마 너는 내가 여기 숨은 것도 모를 거다. 찾아 봐라, 용용.”

은우는 돌아서서 천천히 정우가 숨은 곳으로 다가갔습니다. 그것도 모르는 정우는 머리를 아래로 처박고 꼭꼭 숨었습니다. 궁둥이를 한번 때려주고 싶은 것을 참고 집 모퉁이로 가서 운동화를 바꾸어 신었습니다. 그리고 가까이 가면서 소리쳤습니다.

“어디 숨었니? 정우 나와라.”

그리고 궁둥이를 든 채 머리를 감싸고 숨은 정우를 딱 때렸습니다.

“찾았다. 나와!”

정우는 엉금엉금 기어 나왔습니다.

“어떻게 알았니? 못 찾을 줄 알았는데.”

“내가 누구냐? 형사 콜롬보다, 이히히히.”

“이제 네가 숨을 차례다. 자, 이렇게 눈감고 있을게. 열 셀 동안 숨기다 알았지? 하나, 둘 셋, 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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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우는 구두로 갈아 신었습니다. 그리고 정우 곁에 그대로 서 있었습니다. 정우는 그것도 모르고 은우를 찾으려고 이리저리 돌아다녔습니다. 그 뒤를 은우는 따라 다니며 빙글빙글 웃었습니다.

“어디 숨었니? 은우야!”

은우는 경로당 뒤로 가서 소리쳤습니다.

“여기 있지이.”

정우는 소리나는 쪽으로 달려갔습니다.

“어디야?”

정우는 은우 옆을 지나 앵두나무 뒤로 가면서 두리번거렸습니다. 그러나 그 뒤를 따라가고 있는 은우를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어디 숨었니?”

정우는 공중 화장실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화장실문을 하나하나 열었습니다. 마지막 문을 활짝 열면서 소리쳤습니다.

“꼼짝마라. 은우 나와라!”

이때 안에서 아주머니가 벌떡 일어서면서 외쳤습니다.

“누구야! 이 나뿐 녀석!”

깜짝 놀란 정우는 다람쥐보다 빠르게 달아났습니다. 아주머니가 나오려고 문을 밀었습니다. 은우는 문을 막고 열지 못하게 밀었습니다. 그 사이에 정우는 멀리 달아났습니다.

화장실 안에 갇힌 아주머니가 성난 소리로 외쳤습니다.

“너, 이 문 놓지 못해? 내가 나가면 가만두지 않을 거야!”

아주머니가 문을 힘껏 밀었습니다. 은우는 힘에 밀려 손을 놓고 말았습니다. 아주머니는 활짝 열리는 문짝을 잡고 넘어질 뻔하다가 일어서면서 화난 소리로,

“이 놈이 어디로 갔어, 엉?”

하고 두리번거렸습니다. 그러나 바로 곁에 서 있는 은우는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아주머니는 정우가 달아난 쪽으로 뛰듯이 잽싸게 걸었습니다. 그 뒤를 따라도 아주머니는 알아채지 못했습니다.

‘정말 사람들이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 틀림없어. 그러나 믿을 수 없는 일이야.’

은우는 남들이 정말 알아보지 못하는 것을 더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마을 회관 옆에는 언제나 여자 애들이 모여 노는 곳이 있습니다. 여자아이들은 은우가 가까이 가는 것을 알아채지 못하고 재잘거렸습니다.

은우가 가장 좋아하는 채린이를 두고 한 아이가 말했습니다.

“내일 개구리를 잡아다 채린이 책상 속에 넣어놓자. 그러면 그 얄미운 게 깜짝 놀라 ‘어마’ 하고 소리칠 거야. 그러면 선생님한테 야단맞겠지?”


개구리 소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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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얄미운 계집애가 선생님한테 야단맞는 꼴을 보면 얼마나 고소할까? 호호호.”

“내일 비닐 봉지에 개구리를 잡아 가지고 와, 알았지? 나도 잡아올 테니까.”

공부는 못하면서 놀기 좋아하는 까불이 유나가 좋아서 어쩔 줄 모르고 헤헤거렸습니다. 곁에서 그 소리를 듣고 있어도 아이들은 은우가 곁에 있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다음날 유나와 진영이 개구리를 비닐봉지에 담아 가지고 왔습니다. 그리고 채린이 화장실 다니러 간  사이에 개구리를 채린이 책상 서랍 속에 넣고 저희들도 화장실로 나갔습니다.

그 사이에 은우는 투명구두로 갈아 신고 채린이 책상 속에 넣어둔 개구리를 유나와 진영 서랍 속에다 하나씩 넣었습니다.

화장실 앞에서 유나가 채린을 보자 코방귀를 뀌면서 비웃었습니다.

“흥! 공부 잘한다고 까불면 너도 골탕먹을 때가 있을 거야. 하나님은 공평하다는 거 알지? 선생님이 너만 좋아하는 거 눈꼴셔서 못 봐. 흥, 잘해 보라지.”

진영이도 한마디했습니다.

“선생님이 너만 좋아한다는 거 누가 모를 줄 알고, 하지만 하나님은 공평하시다!”


두 아이는 채린을 막고 서서 시간을 끌며 들어가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선생님이 오실 때까지 막고 있다가 선생님이 막 들어오실 때쯤 들어가서 책상 서랍을 열면 개구리가 후닥닥 튀어나오고 채린은 놀라 “어마!” 하고 나가떨어질 것이다. 그 꼴을 보고 선생님은 무어라고 하실까? 그래도 채린이 채린이 하실까?’

반을 주름잡는 팔랑개비 악마들은 똑같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선생님이 누가 그랬느냐고 호통을 쳐도 자기들은 채린이와 함께 있었으니까 모른다고 하면 그만입니다. 그러면 누군가 애꿎은 애들이 벌을 서고 그 애와 채린이는 사이가 나빠질 것입니다.

‘생각만 해도 신나는 일이야, 호호호.’

유나와 진영은 좋아서 생글거리며 채린을 앞세우고 교실로 들어갔습니다. 계획대로 선생님이 막 교단에 오르시었고 반장 채린이 경례를 마쳤습니다.

선생님께서 둘러보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오늘은 하늘도 맑고 참 좋은 날이에요. 그렇지요? 먼저 숙제 검사부터 하겠어요. 모두 해 왔지요?”

“네.”

“숙제장을 펴서 책상 위에 올려놓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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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방을 뒤지는 아이, 책상 서랍을 여는 아이, 어수선한 가운데 책상 서랍을 열던 유나와 지영이 똑같이 비명을 질렀습니다.

“어마아!”

“엄마야!”

유나가 책상 서랍을 여는 순간 서랍에 들었던 개구리가 펄떡 튀어나오며 앞에 앉은 진영의 등에다 오줌을 찍 갈기고 유나 가슴을 박차더니 저만큼 뛰어 달아났습니다. 그리고 유나의 서랍에서도 주먹만한 개구리가 후닥닥 튀어나와 교실 바닥을 껑충껑충 뛰었습니다.

순식간에 교실 안은 아이들이 내지르는 소리로 엉망이 되었습니다. 와글와글 시끄러운 가운데 선생님이 놀란 눈을 뜨고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소리쳤습니다.

“뭐야?”

아이들의 눈과 손가락이 모두 유나에게 꽂혔습니다. 유나는 어쩔 줄 모르고 방방 뛰고 진영이는 윗도리를 벗어 들고,

“몰라, 몰라. 어떡해.”

울상이 되어 휴지로 옷을 닦았습니다. 선생님은 화난 눈으로 두 악동을 노려보았습니다.

“김유나 서진영 일어서!”

아이들 아우성 소리에 개구리는 놀라 튀어나온 눈을 더 내밀고 갈팡질팡 튀었습니다.

남자아이들 바지 가랑이 사이를 지나 여자아이들 치마 속으로 튀었습니다. 갈수록 아이들의 놀란 소리는 더 요란해졌습니다.

개구리 두 마리는 양쪽 구석에서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목숨을 걸고 달아나고 남자아이들은 잡으려고 교실 바닥을 헤맸습니다.

한참만에 개구리는 아이들 손에 잡히고 한바탕 소란이 끝났습니다. 선생님이 두 악동을 향해 화난 소리로 말했습니다.

“김유나, 서진영, 이리 나와!”

두 악당이 허리를 꼬면서 앞으로 나갔습니다. 

“공부 끝날 때까지 무릎꿇고 이것 들고 있어.”

선생님은 유나에게는 자업(自業)이라고 쓴 판과 진영에게는 자득(自得)이라고 쓴 판자대기를 주었습니다. 선생님은 아이들이 벌을 설 때마다 이렇게 사자숙어를 써다 놓고  그것을 들고 있게 합니다. 그리고 그 말을 반 전체가 외우도록 공동의 벌을 주십니다.

유나와 진영은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는 소리로 씨부렁거리며 나란히 무릎을 꿇고 팔을 올렸습니다. 그래도 부끄러웠던지 진영은 얼굴이 빨갛게 물들어 있었습니다.

은우는 속으로 히히히 웃으며 중얼거렸습니다.

“남 골려주려다 걸렸지. 쌤통. 메롱.”

은우는 채린을 훔쳐보면서 또 중얼거렸습니다.

“채린아, 믿어, 내가 지켜줄게.”

키다리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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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우가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육교 계단을 오르고 있을 때 누군가가 곁에 바짝 따라 오고 있었습니다. 얼굴이 하얗고 훌쩍한 키의 아저씨였습니다.

지나가는 사람인 줄 알고 옆으로 비켜섰습니다. 그 사람도 발을 멈추고 서서 은우를 내려다보았습니다.

“아저씨는 누구세요?”

“나? 아저씨.”

“왜 안 가세요?”

“네가 안 가니까.”

“앞에 가세요.”

“난 너를 따라가는 중이야. 앞장서라.”

“싫어요.”

“그럼 나도 안 간다.”

“아저씨는 누구시냐구요?”

“키다리 아저씨.”

“난 아저씨를 몰라요.”

“나는 너를 아는데!”

은우는 계단을 올랐습니다. 키다리도 따라 올라왔습니다.

“아저씨는 어디로 가실 거예요?”

“너 가는 데로 간다.”

“왜 따라다니시지요?”

“갈 데가 없으니까.”

은우는 집으로 가는 골목길을 바람처럼 달렸습니다. 아저씨가 못 따라오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모퉁이 몇 개를 꼬불꼬불 돈 뒤에 돌아보니 아저씨는 따라오지 않았습니다.

숨을 헐떡거리다가 마음을 놓고 중얼거렸습니다.

“헉헉 아휴, 힘들어, 키다리 아저씨가 못 따라오는군. 흥!”

그리고 대문으로 들어섰습니다.

“앗!”

키다리 아저씨가 먼저 와서 빙긋이 웃고 서 있었습니다.

“이제 오냐?”

“네? 우리 집까지 오시면 어떡해요?”

“너하고 살 거야.”

“싫어요. 아빠한테 이를 거예요.”

“소용없어. 너는 나를 볼 수 있지만 남들은 나를 볼 수 없거든.”

“아저씨 여기서 빨리 나가세요.”

“안 나간다. 네가 같이 간다면 나가지. 나는 너를 돕기 위해 온 거야, 무엇이든지 네가 하고 싶은 거 있으면 말해. 내가 도와줄게. 알았지?”

“싫어요.”

“그러지 말고 책가방 두고 나와라. 가 볼 데가 있다.”


7/19**11

키다리 아저씨는 성큼성큼 밖으로 나갔습니다.

“빨리 따라와.”

은우는 가지 말아야지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아저씨가 먼저 어디론가 가자 궁금해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저씨 어디 가세요?”

“와 봐.”

“싫어요.”

“나 채린이네 집에 간다. 그래도 안 갈래?”

“싫어요.”

말로는 고개를 저었지만 마음은 아저씨를 따라갔습니다.

“싫으면 오지 않아도 된다. 알았지?”

은우는 급히 따라 나섰습니다.

“아저씨이!”

키다리 아저씨는 돌아다보지도 않고 저만큼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같이 가요 아저씨.”

아저씨는 고개를 돌리고 힐끗 하얀 이를 드러내고 웃어 보이셨습니다.

“진작 그럴 것이지. 흐흐흐 빨리 오너라.”

은우는 채린이네 집이 어딘지 모릅니다. 호기심이 나서 키다리 아저씨보다 더 가고 싶고 조급해졌습니다.

“채린이네집을 아세요?”

“암, 알지.”

“어딘데요?”

“따라와 보면 알아.”

키다리 아저씨는 어깨를 멋지게 흔들면서 골목길을 이리저리 돌아 언덕 위에 있는 허름한 집 앞에 섰습니다.

“여기가 채린이네 집이야. 잘 봐 둬.”

“아저씨는 어떻게 아세요?”

“나는 네가 좋아하는 것은 다 좋아하니까. 너 채린이를 가장 좋아하지 않니?”

“아니에요.”

“알았어, 네가 속을 감추어도 소용없어. 나는 못 속이니까.”

은우는 호기심이 생겨 뚫어진 담 구멍으로 안을 들여다보았습니다.

“그럴 것 없어. 네가 숨어 본다고 누가 모를 줄 아니? 염려 마, 넌 투명 구두를 신고 있어서 아무도 볼 수 없어. 마음놓고 안으로 들어가서 보자.”

아저씨는 빠끔히 열린 문으로 들어갔습니다.

“빨리 들어와.”

은우는 얼굴이 빨개진 채 들어갔습니다. 집안에는 아무도 없는 듯 조용했습니다.

항상 명랑하고 예쁘게 웃는 채린이네 집이 이렇게 언덕 위에 있는 초라한 작은 집이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습니다.


9/2**12

“아저씨는 여기를 어떻게 아셨어요?”

“나는 너희 반 아이들 집을 다 알고 있거든. 나를 따라오면 유나, 진영이네 집도 또 은경이네 집도 다 돌아보게 될 거다.”

“아저씨는 누구세요?”

“나? 키다리.”

아저씨는 아주 순하게 빛나는 눈으로 은우를 바라보며 한쪽 눈을 찡긋해 보였습니다.

“저기 채린이가 온다.”

은우는 채린을 보자 얼떨결에 집 보퉁이로 돌아가 숨었습니다. 그러나 키다리 아저씨는 빙긋이 웃으면서 채린이가 지나가도록 슬쩍 비켜섰습니다.

채린은 무언가 무겁게 보이는 보따리 하나를 들고 있었습니다.

키다리 아저씨는 손으로 은우에게 자기 곁으로 오라고 까딱까딱했습니다. 은우는 겁먹은 눈으로 채린을 힐끔거리면서 마당으로 나왔습니다.

그러나 채린은 알지 못하는 듯 보따리를 내려놓더니 밖으로 달려나갔습니다.

잠시 후 채린은 할머니를 모시고 큰 보따리를 들고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마루에다 보따리를 풀어놓았습니다. 은우는 궁금하여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았습니다.

“무얼까?”

호기심 어린 눈으로 지켜보는 은우 앞에 보따리 속에서는 장난감 강아지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습니다. 채린이 그것을 한곳으로 모으면서 말했습니다.

“할머니는 좀 쉬셔요.”

“바쁜데 쉬기는. 하나라도 더 해야지.”

할머니는 굽은 등을 더 깊이 수그리고 앉았습니다. 장난감 강아지들은 몸통과 머리가 떨어져 있었고 코와 눈이 없었습니다. 할머니는 머리를 몸통에다 끼우고 채린은 머리에 코와 눈을 박았습니다. 잠깐 사이에 귀여운 장난감 강아지 한 마리가 탄생하여 저만큼 물러앉아 귀여운 얼굴로 채린이와 할머니를 바라봅니다. 

“할머니, 강아지가 참 예쁘지요?”

채린이는 강아지보다 더 예쁜 눈으로 할머니를 바라보다가 입을 귀엽게 다물었습니다. 할머니는 피로하신 듯 간단히 대꾸했습니다.

“예쁘다.”

“이 두 보따리를 다 만들면 얼마나 생겨요?”

“한 마리에 오십 원씩 준다니 오천 원은 되겠지?”

“한 달 동안 하면 얼마예요?”

“십 오만 원.”

“아유 좋아라. 그렇게 많이 받아요?”

“날마다 이 짓을 해 보아라. 비싼 것이 아니란다.”


9/2 **13

잠시 후에 대문이 열리더니 채린의 동생들이 들어오고 뒤따라 다리를 저는 아저씨가 들어왔습니다. 잠깐 사이에 집안이 소란스러워졌습니다.

아이들은 작은방으로 들어가고 다리를 저는 아저씨는 안방으로 들어갔습니다. 할머니와 채린은 묵묵히 강아지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키다리 아저씨가 은우의 귀를 잡아당기며 손짓을 했습니다.

“가자.”

소리는 나지 않았지만 입 모양이 가자는 말을 하고 있었습니다. 채린이 공부도 못하고 인형 만드는 것을 본 은우는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키다리 아저씨는 길로 나서자 하얀 이를 드러내고 웃어 보이면서 바이바이 손짓을 했습니다.

“다음에 보자.”

“네? 또요?”

“암. ”

“아저씨는 어디로 가시는데요?”

“우리집.”

“아저씨는 집이 어디예요?”

“차차 알게 될 게다, 안녕.”

간단히 대답하고 아저씨는 바람처럼 사라졌습니다.

며칠 뒤의 일입니다. 유나와 진영이 운동장 구석 벤치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은우는 그 애들이 틀림없이 채린이 골탕먹일 궁리를 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투명구두를 신고 그들 곁으로 갔습니다. 유나가 말했습니다.

“개구리가 어떻게 된 거야. 그것들이 왜 우리 책상 서랍에 들어와 있느냐구?”

“누가 아냐? 누군가가 그렇게 한 건 틀림없어.”

“누굴까?”

“은경이가 그러지 않았을까?”

“글쎄? 그럴 것 같진 않아. 이번에는 어떻게 고걸 골탕 먹이지?”

“내일 그 애가 화장실 가거든 숙제 노트를 슬쩍 하자.”

“어떻게?”

“걔가 나가거든 네가 나가서 빨리 오지 못하게 하는 거야.”

“알았어. 그 다음은 네가 한다 이거지? 호호호. 고 얄미운 것이 선생님한테 벌서는 것을 보아야지.”

은우는 그 애들 곁을 떠나 집으로 오면서 중얼거렸습니다.

“두고 봐라. 누가 골탕먹을지……”

다음날 첫 시간이 끝나고 쉬는 시간 채린이 화장실로 나갔습니다. 그것을 기다리던 유나가 따라 나갔습니다.

유나와 눈짓을 주고받은 서진영이 채린의 책상을 뒤졌습니다.


9/9**14

가방 속에는 수학 숙제를 해놓은 노트가 있었습니다. 진영이 다른 아이들 못 보게 노트를 감추어 들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이때 은우는 투명구두로 갈아 신고 그 아이 뒤를 따랐습니다.

진영은 숙제 노트를 옆 반 앞에 놓인 휴지통 속에다 얼른 집어넣고 화장실 쪽으로 가면서 헤헤거렸습니다.

“요걸 몰랐지? 호호호.”

그러나 버려진 노트를 금방 집어다 채린의 가방에 넣으면서 은우가 더 신이 나서 중얼거렸습니다.

“요걸 몰랐지? 흐흐흐.”

그리고 은우는 유나와 진영의 가방에서 숙제 노트를 꺼내어 옆 반 휴지통에 넣고 채린과 유나와 진영이 이야기하는 곳으로 갔습니다. 은우가 곁에 온 것도 모르고 유나가 재잘거렸습니다.

“채린이는 수학 잘한다고 선생님한테 날마다 칭찬 들으니 좋겠다.”

진영이도 얄밉게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난 언제나 채린이처럼 수학을 잘하여 선생님한테 칭찬 좀 들어보나?”

“얘들은. 너희들도 잘하면서 뭘.”

“아무리 잘하면 너만큼 하겠니? 흠!”

두 아이는 계획대로 될 것을 생각하며 헤헤거렸습니다.

공부가 시작되자 선생님이 둘러보며 말했습니다.

“수학 숙제 해 왔지요?”

“네.네.”

“숙제 노트를 책상에 올려놓아요.”

아이들은 가방에서 숙제 노트를 내놓았습니다. 채린도 숙제해 온 것을 내놓았습니다. 그러나 유나와 진영은 얼굴이 새빨개져 가지고 가방을 이리저리 뒤지다가 가방을 몽땅 쏟아 엎어놓고 숙제 노트를 찾았습니다.

유나가 진영을 바라보았습니다. 서로 말은 못하고 눈빛으로 물었습니다.

“어떻게 된 거야? 엉! 엉?”

선생님이 말했습니다.

“숙제 안 해 온 사람 일어서!”

선생님은 숙제 해 오지 않는 사람을 가장 싫어했습니다.

“김유나, 서진영 숙제 안 해 왔지?”

두 아이는 똑같이 한 목소리를 말했습니다.

“아녜요. 해왔어요. 해왔어요.”

“해 왔으면 내놔 봐!”

두 아이는 열이 나서 빨개진 얼굴을 씰룩거리며 가방을 들었다 놓았다 부산을 떨었습니다. 선생님이 빽 소리를 질렀습니다.

“숙제도 안 해 오고 거짓말까지 해?”


9/16**15

“해 왔어요 선생님.”

“해 온 숙제가 어디 가? 노트에 발이라도 달렸다는 거냐?”

“……”

“앞으로 나와! 숙제도 안 하고 거짓말을 해?”

두 아이는 허리를 배배 꼬면서 앞으로 나갔습니다. 선생님이 사자 숙어가 씌어 있는 글자판을 내밀었습니다.

“무릎 꿇고 이 판 들어!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아는 사람?”

유나가 든 판에는 사필귀정 중 사필(事必)이, 진영이 든 판에는 귀정(歸正)이라고 씌어 있었습니다.

“이 말뜻을 아는 사람?”

아무도 대답을 하지 못했습니다. 선생님이 반장을 가리켰습니다.

“손채린 말해봐.”

“모든 일은 반드시 옳은 쪽으로 돌아간다는 뜻입니다.”

“맞았다. 세상일은 반드시 정의로운 사람, 바른 사람이 하는 쪽으로 돌아간다는 말이다. 나쁜 사람이 잘 되는 것같이 보이지만 마지막엔 옳은 사람이 승리하고 성공한다는 뜻도 된다. 알았지? 김유나, 네 판에는 무슨 자가 씌어 있지?”

유나는 기어 들어가는 소리로 “사필” 하고 대답했습니다.

“서진영, 네 판에 있는 글자는?”

“귀정입니다.”

“모두들 외워. 한달 뒤에 사자숙어 시험을 볼 테니까.”

 한 시간 동안 숙어 글자판을 들고 벌을 선 유나는 골이 잔뜩 나서 진영에게 대들었습니다.

“서진영, 너 내 친구 맞아? 어떻게 된 거야? 채린이 것은 가만 두고 내 노트를 가져다 숨겨? 너 그러기야?”

“아니야, 난 채린이 것을 숨겼단 말야.”

“그런데 채린이는 숙제 노트를 내놓고 내 것은 어디를 갔어? 너 숙제 안 해 오고 나까지 끌고 들어가도 되는 거야?”

진영은 억울하다는 얼굴로 말했습니다.

“어머머, 얘 좀 봐. 내 숙제 노트도 없어졌단 말야.”

“거짓말 마. 너나 벌서면 되지 왜 나까지 벌을 서야 하냐 말야!”

유나는 토라져 눈을 흘기며 학교 문을 나섰습니다. 유나보다 더 화가 난 것은 진영이었습니다. 그러나 무슨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진영은 옆 반 휴지통으로 갔습니다. 휴지통을 열고 들여다보다가 놀라 소리쳤습니다.

“어마! 내 숙제 노트!”

휴지통에서는 유나의 것도 나왔습니다. 진영은 그것들을 집어들고 유나 뒤를 따라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버려진 노트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나 유나는 진영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너하고는 아무 말도 하기 싫어. 밥맛이야. 흠!”

유나는 노트를 확 잡아채 들고 돌아보지도 않았습니다.


31  9/23**16

오후에 미술시간이 있는 날입니다. 유나가 진영이한테 하는 말을 채린이 들었습니다.

“진영아, 나 크레파스를 안 가져왔어. 어떡하지?”

“그걸 내가 어떻게 아니? 왜 안 가져왔어?”

“깜빡했지 뭐야.”

“돌대가리는 할 수 없어.”

“뭐라고?”

“지금 와서 어떻게 할 거야? 벌서면 되지 뭐.”

채린은 못 들은 척하고 앞으로 나가 교단 위에 서서 손바닥으로 교탁을 딱딱 치며 말했습니다. 

“잘 들어라. 오늘 누가 나를 좀 도와주어야겠다.”

아이들이 모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반장 채린을 바라보았습니다.

“나 오늘 미술 도구를 안 가져왔거든. 누구 나를 위해 크레파스를 줄 사람?”

진영이 말했습니다.

“그게 말이라고 하는 거냐? 안 가져 왔으면 당연히 벌을 받아야지 누구를 잡으려고 남의 크레파스를 달라는 거냐?”

유나는 채린의 말을 듣고 신이 났습니다. 저 벌서는 것보다 반장이 벌서게 된다는 것이 더 기뻐서였습니다.

“흥, 너도 별수 없구나. 나하고 나란히 숙어 판을 들고 벌을 서게 된 꼴이라니. 너하고 벌서는 것도 재미있겠는걸?”

채린이 아이들을 둘러보며 다시 말했습니다.

“이 반장 체면을 위해 크레파스를 내놓을 사람!”

아무도 대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진영이 얄밉게 입을 샐쭉거리며 맞받았습니다.

“흥, 반장도 별수 없는 걸. 벌서는 건 무서운가 보지?”

채린이 방긋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벌서는 거 좋아하는 사람! 손들어 볼래?”

진영이 또 한 마디 했습니다.

“웃기고 있네. 그것도 말이라고 하니?”

“나도 무서워서 그런다. 누구 나 구해 줄 사람!”

이때 은우가 손을 번쩍 들었습니다.

“여기 있다, 나!”

아이들 눈길이 은우에게 쏠렸습니다. 그리고 똑같이 소리쳤습니다.

“정은우가? 우, 우……”

채린이 받아 말했습니다.

“정은우, 고맙다. 또 내놓을 사람!”

아무도 대답을 하지 않고 저 애가 왜 그러지 하는 눈으로 서로 바라보았습니다.

“은우가 나를 도왔으니 나도 은우를 도와야 하지 않겠니?”

이때 진영이 또 불만스럽게 말했습니다.

“은우가 네 대신 벌서면 되지 뭘 도와준다는 거야?”


9/30**17

“우리 이렇게 하자.”

채린은 앞에 앉은 아이의 크레파스 박스의 뚜껑을 빌렸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여기 빈 통이 있다. 너희 가운데 그림을 그릴 때 잘 쓰지 않는 크레파스를 하나씩만 내주기 바란다. 그리고 그리다가 그 색깔이 모자라면 은우가 준 것 가운데서 그 색 크레파스를 빌려줄게. 알았지?”

채린이 빈 곽을 들고 한 줄씩 지나가며 거두었습니다. 한 사람이 하나씩 내놓은 것이 한 통을 채우고도 남았습니다.

“고맙다. 나는 너희들의 협동심이 이렇게 대단할 줄은 몰랐어. 미리 말해 두고 싶은 것이 있다. 나말고 크레파스 안 가져온 사람 있으면 손 들어 봐.”

진영이 불만스럽게 말했습니다.

“안 가져온 사람은 당연히 벌을 서야지 이게 뭐야?”

“벌을 서게 만드는 것이 문제가 아니야. 친구를 돕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이 말이야, 그렇지 않니?”

아이들이 모두 활짝 웃으며 ‘반장 최고’ 하고 손뼉을 쳤습니다. 채린이 선생님 흉내를 내면서 말했습니다.

“준비해 온 크레파스를 자기 책상 위에 올려놓아라. 반장이 1차로 숙제 검사를 실시한다.”

아이들은 모두 크레파스를 책상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그러나 진영과 유나만은 내놓지 않았습니다.

*34

채린이 돌아가며 검사를 하다가 진영에게 말했습니다.

“오늘은 네가 벌서는 날이구나.”

“왜 내가 벌을 서니?”

“안 해 왔잖아.”

진영이 뾰로통해서 크레파스를 쏙 내놓고 말했습니다.

“눈 있으면 봐라.”

“응, 가져왔군, 유나는?”

“안 가져 왔어. 왜? 네 거라도 줄래?”

“주지.”

유나는 비웃는 얼굴로 말했습니다.

“정말 준다는 거야?”

“정말. 주면 받을래?”

“줘봐라!”

채린이 은우가 준 자기 것을 건네주었습니다.

“좋아, 내가 못 받을 줄 알고?”

유나는 빼앗듯이 톡 가로채어 제 가방에다 넣었습니다.

“고맙다. 그럼 됐어. 나는 너희들이 내놓은 크레파스를 갖기로 하고 은우 숙제는 내가 해결해 준다. 모두 내가 열을 셀 때까지 눈감고 있기. 알았지? 시작!”

아이들이 눈을 감자 채린이 제 가방에 있는 크레파스를 꺼내어 은우에게 준 다음 ‘열! 눈 떠!’ 하고 말했습니다. 은우는 채린이 준 크레파스를 받고 깜짝 놀랐습니다.

*35

채린은 그렇게 하여 크레파스를 안 가져온 유나를 도와주었습니다. 유나는 그 동안 채린을 미워하고 시기한 것을 뉘우치고 앞으로는 채린과 친하게 지내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채린은 공부를 끝내자마자 집을 향해 달렸습니다. 그 뒤를 은우가 따랐습니다.

“채린아, 같이 가자.”

채린이 돌아보았습니다.

“왜 따라오니?”

“오늘 고마워서.”

“그러면 됐어. 돌아가.”

“넌 어디를 그렇게 급히 가는데?”

“남이야.”

“좋아, 나도 남이야니까.”

“너 웃긴다?”

“빨리 가자.”

“어디를?”

“어디든지. 너 가는 데로.”

“따라오면 후회할 텐데!”

채린은 크고 음침한 건물 앞을 지났습니다.

“여기가 어디냐? 이 건물은 무시무시하게 생겼는데?”

“갱 하우스래.”

“갱 하우스? 그게 뭔데?”

*36

“그건 아무도 몰라.”

채린은 그 건물을 지나 작은 건물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여기가 어디냐?”

“보면 몰라?”

“공장이잖아?”

“맞아. 강아지 공장이야.”

채린이 들어서자 공장 주인이 웃으면서 맞았습니다.

“깜쁜이 왔구나. 어서 오너라.”

주인은 커다란 자루를 하나 내주었습니다. 채린은 그것을 책가방 위에 얹고 짊어졌습니다. 그리고 주인을 향해 고개를 까딱해 보이고 공장을 나섰습니다.

“이게 뭐냐?”

“강아지 부속품.”

“강아지? 내가 메고 갈게. 이리 내.”

“무거운데 네가 멜 수 있을까?”

은우는 가방을 채린에게 맡기고 자루를 짊어졌습니다.

“이렇게 무거운 걸 너 혼자 가지고 갈 생각이었니?”

“날마다 학교 끝나면 가지고 가는걸.”

“그래? 이걸로 뭘 하는 건데?”

“강아지 조립, 우리는 이것을 해주고 돈 번다.”

“많이?”

은우는 이미 다 아는 것을 모르는 척하고 물었습니다.

*37

“응, 많이 벌어.”

“그래?”

은우는 채린이 아무렇지도 않게 서슴없이 대답하는 것이 놀라웠습니다. 다른 애들 같으면 부끄러워하고 감추고 싶어하는 것들을 조금도 숨김없이 말하는 채린이 어른스러워 보였습니다.

“다 왔다. 여기가 우리 집이야. 들어와.”

“아니야. 그냥 갈래.”

“그래? 그럼 잘 가고 다음에 또 와.”

“알았어. 날마다 와도 좋아?”

“맘대로.”

은우는 아까부터 갱 하우스라는 집이 어떤 집일까 호기심이 생겨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채린의 집을 나서자마자 그 건물 쪽으로 달려갔습니다. 건물에는 커다란 문이 있고 옆에 작은 쪽문이 하나 있었습니다.

컴컴한 건물 구석으로 가서 투명 구두를 바꾸어 신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컴컴하고 넓고 긴 복도 안쪽에 사무실이 있고 사무실 앞에는 이상한 모자를 쓰고 허리에 방망이를 찬 경비원이 있었습니다.

은우가 가까이 다가가도 그 사람은 은우를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은우는 방안을 들여다보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38

방에는 큰 테이블이 있고 그 위에는 돈이 수북히 쌓여 있었습니다. 그리고 가운데 자리에는 턱이 없고 입이 납작한 민턱에 엉겨붙은 넓은 이마의 넓적한 괴물 같은 사람이 앉아 있고 둘레에는 여덟 명의 고릴라은 사나이들이 서서 눈을 번쩍거리고 있었습니다.

은우는 겁이 나서 가까이 갈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은우의 등장을 모르고 있어서 그들 곁으로 다가가 두목의 말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두목이 물었습니다.

“이 돈 얼마냐?”

“현금 이천, 수표 삼천 합하여 오천만 원입니다.”

“누가 벌었냐?”

눈이 칼집처럼 가늘고 교활하게 생긴 뱀 같은 사내가 눈빛을 반짝거리며 대답했습니다.

“은행에서 꼰대가 돈을 찾아 가지고 나오기에 짐을 들어드렸습지요.”

“잘했어. 너는?”

두목 바로 옆에 있는 사내가 금반지를 내놓았습니다.

“길가는 늙은이 재워 놓고 짐 좀 덜어주었습니다.”

“좋아, 넌?”

이번에는 그 곁에 선 사내가 대답했습니다.

“저는 백화점에서 상품권을 좀 빌려왔습니다.”

“잘했어. 그래, 얼마치냐?”

*39

“오백만 원어치입니다.”

“한참 쓰겠군. 그 다음 너는?”

그 다음 사내는 수표 뭉치를 내놓았습니다.

“종이입니다.”

“그건 내일 아침 일찍이 바꿔라. 알았나? 다음 너는?”

그 다음 사내는 고개를 푹 숙이고 말을 못했습니다.

“오늘도 꽝이냐?”

두목은 눈을 부릅떴습니다. 그리고 바로 곁에 있는 험상궂게 생긴 사나이에게 지시했습니다.

“저 자식은 안 되겠어. 앞으로 5일간 독방.”

그 사람은 당장에 끌려나가 독방에 갇혔습니다. 그를 가둔 두목은 책상 위에 쌓여 있는 돈을 보자기에 싸서 책상 밑으로 밀어 넣은 다음 일어섰습니다.

“자, 파티에 간다. 전원 출동.”

두목이 앞에 가고 나머지가 한 줄로 따라 나갔습니다. 맨 마지막 나가는 사내가 경비에게 말했습니다.

“잘 지켜, 알았나?”

“넷!”

은우는 방안을 여기저기 둘러보고 뒤쪽으로 난 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안에는 몇 개의 독방이 있고 방에는 지금 잡아넣은 사람 외에도 몇이 더 갇혀 있었습니다. 그리고 유리 진열장이 있는 방을 들여다보다가 또 놀랐습니다.

*40

진열장 안에는 금시계, 금반지, 보석 등 비싼 보물이 가득했습니다. 그것을 보자 가슴이 떨려서 더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은우는 돌아서서 밖으로 나왔습니다.

사무실로 나오자 책상 밑에 밀어 넣은 돈 보따리가 보였습니다. 어떤 할아버지 돈을 낚아채 왔다고 한 그 돈입니다.

‘그냥 갈 수 없어. 저 돈을 주인에게 찾아주어야 해.’

은우는 돈 보따리를 집어들었습니다. 생각보다 무거웠습니다. 그것을 어깨에 메고 꾸벅꾸벅 조는 경비원 앞을 태연하게 지나 밖으로 나왔습니다.

‘어떻게 해야 주인을 찾아줄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돈 주인을 찾을 길이 없다고 생각하는데 마침 좋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파출소로 가자. 경찰 아저씨한테 맡기면 잃어버린 할아버지를 찾아 돌려줄 수 있을 거야.’

은우는 파출소로 달려갔습니다. 파출소 가까이 이르렀을 때 구두를 바꾸어 신었습니다. 파출소에는 소장님과 순경 아저씨만 있었습니다. 은우를 본 소장님이 물었습니다.

“넌 누구냐?”

“네, 저기 사는 정은우예요.”

“꼬마가 무슨 일로 온 거냐?”

“네, 이 보따리 받으세요.”

“이게 뭐냐?”

*41

경찰 아저씨는 풀어 보고 눈을 휘둥그렇게 떴습니다.

“아아니, 이게 뭐냐? 돈, 돈이 아니냐.”

“네 돈이에요.”

“이렇게 큰돈이 어디서 난 거냐?”

“길에서 주웠습니다.”

“길에서? 길 어디냐?”

“저기 큰 건물 앞 길바닥에 버려져 있어서 열어보니 돈이었어요.”

“누가 잃어버렸을까?”

“분실한 사람이 신고해 오면 돌려드리세요.”

“알았다. 고 작은 것이 기특도 하구나. 주인이 나타나면 알려주마. 너의 집은 어디냐? 이름은 정은우라고 했지?”

“네, 꼭 주인을 찾아주세요.”

“알았다. 꼭 찾아 주마.”

은우는 경찰 아저씨들을 믿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문을 나서는데 안에서 소리가 들렸습니다.

“누구 돈인 줄 알고 주인을 찾아주냐? 갱 하우스 앞에서 주은 거라면…… 놈들이 혹시?”

소장이 말하자

“그럴 수도 있지요, 그렇다면 우리가 적당히 해도 괜찮지 않을까요.”

“그럴까?” 두 사람은 크게 소리내어 웃었습니다.

*42

은우는 이 말을 듣고 그냥 갈 수가 없었습니다. 구두를 바꾸어 신었습니다. 그리고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두 사람은 말을 주고받았습니다.

“이 큰돈을 맡기고 그냥 가다니. 바보 같은 녀석.”

“덕분에 우리가 한몫 잡는 거 아닙니까?”

“함부로 말하지 마. 일단은 맡아 가지고 기다려 보는 거야. 우리가 퇴근할 때까지 신고가 없으면 생각해 보자구.”

“그 녀석이 또 올까요?”

“오면 뭘 해. 무슨 증거 있어. 어른 같으면 확인서라도 받고 갔을 것이지만 꼬마가 뭘 알아.”

“녀석이 주인을 찾아 주었느냐고 물으면 그렇다고 대답하면 그만이겠지요, 안 그렇습니까?”

“그 바보 녀석, 언제 네가 돈 맡겼느냐고 호통치면 달아나고 말 걸, 무슨 걱정인가.”

은우는 놀랐습니다. 주인을 찾아줄 것으로 믿었는데 실망했습니다. 순경이 돈을 세어 보더니 말했습니다.

“수표와 합쳐 오천만 원입니다.”

“묶어서 내 책상 아래 넣어 둬. 잠깐 순찰하고 올 테니 잘 지키도록, 알았지?”

“알았습니다. 다녀오십시오.”

순경은 좋아서 싱글벙글 웃으며 콧노래까지 불렀습니다. 바로 그때 느닷없이 파출소 문짝이 꽝 하고 젖혀졌습니다.

*43

문짝이 부서지는 소리를 내며 우악스럽게 열리고 한 사람이 미친 듯이 뛰어들었습니다. 그 뒤를 또 다른 사람이 뛰어들며 주먹을 휘둘렀습니다. 파출소는 갑자기 난장판이 되고 싱글거리던 순경은 놀라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물러서며 소리쳤습니다.

“당신들 뭐야? 조용히 못해?”

“야, 넌 뭐야?”

뒤에 따라 들어온 사람이 눈을 부릅뜨고 경찰에게 소리쳤습니다. 경찰은 어이가 없어 바라보다가 말했습니다.

“이게 무슨 짓이오, 당신들 뭐요?”

먼저 뛰어든 사람이 맞서 소리쳤습니다.

“이 도둑놈을 당장 잡아넣으라고.”

“내가 도둑놈이라고? 에이! 날강도 같은!”

“이봐요, 그만 조용히 못해요!”

경찰이 뭐라던 두 사람은 치고 받고 멱살을 잡고 싸웠습니다. 경찰이 당황해 하고 있을 때 또 다른 사람들이 멱살을 잡고 치고 받으며 몰려들어 왔습니다.

“경찰! 이런 법이 어디 있소? 내 말 좀 들어 보시오.”

“순경 아저씨, 내 말 좀 들어보시오.”

경찰은 화난 소리를 지르며 눈을 부릅떴습니다.

“당신들은 또 뭡니까?”


*44

지금 막 들어온 사람들은 앞에 두 사람이 싸우는 것을 보고 멈칫 물러서서 구경꾼이 되었습니다. 두 사람은 발길질 주먹질을 하다가 엉겨붙어 뒹굴었습니다.

맨 먼저 들어온 사람은 박씨이고 뒤따라 들어온 사람은 서씨였습니다. 싸우며 주고받는 말을 들어보니 서씨라는 사람이 더 나쁜 사람이었습니다.

서씨는 힘이 세고 거칠어서 박씨를 깔고 앉아 주먹으로 쥐어박고 힘이 모자라는 박씨는 깔린 채 얻어맞았습니다.

은우는 벽에 걸려있는 경찰봉을 잡고 다가가 서씨가 주먹을 내리치는 순간 경찰봉을 주먹 앞에다 대었습니다. 힘껏 내리치던 서씨의 주먹이 경찰봉을 때리고 딱 소리를 내는 것과 동시에 펄쩍 뛰며 “아아, 아야!” 하고 부르짖었습니다.

주먹을 싸안은 서씨는 몸을 일으키며 발로 박씨를 힘껏 걷어찼습니다. 바로 그때 방망이로 발끝을 막았습니다.

“아아아, 아얏!”

서씨는 방망이를 걷어찬 발을 감싸안고 뒹굴었습니다.

“어떤 놈이야? 엉? 당신이야?”

서씨는 구경하는 사람들을 향해 버럭 소리쳤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이때 은우는 책상 밑에서 돈 보따리를 들고 나왔습니다. 그렇지만 아무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바로 그때 나갔던 파출소장이 돌아왔습니다.

*45

경찰도 은우를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은우는 파출소를 나와 바로 앞 느티나무 아래 벤치로 갔습니다.

‘어떻게 해야 주인을 찾아줄 수 있을까?’

이렇게 궁리하고 있을 때 파출소 안에서 소장님의  목소리가 흘러나왔습니다.

“누구야? 이 책상 밑에 있는 보따리에 손 댄 사람이 누구냐고?”

“보따리라니요?”

“주인을 찾아달라고 맡긴 분실물을 받아 놓았는데 누가 만졌느냐 말이오. 가진 사람 순순히 말할 때 내놓으시오.”

“그 책상 아래 개가 있는지 황금덩어리가 있는지 그걸 누가 안단 말이오?”

“그 물건 찾기 전까지는 한 사람도 나갈 수 없소.”

파출소 안 사람들이 갑자기 술렁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나다.”

“네?”

“난짱.”

“난짱 아저씨요?”

“그래, 기억하겠지?”

“어디 계셔요?”

“바로 네 곁에.”

*46

“그런데 왜 안 보이세요?”

“난 아무에게도 보여줄 수 없는 고귀한 몸이다.”

“키다리 아저씨는요?”

“키다리는 내가 싫어하는 존재다. 키다리 얘기는 하지 마라. 기분 나쁘니까. 언젠가 내가 말했지? 네가 어려운 일을 당하면 도와주겠다고.”

“네, 기억나요, 아저씨. 고마워요.”

“너 들고 있는 돈 때문에 고민하고 있는 거 아니냐?”

“네, 주인을 찾아주려고 하는데 방법이 없어요.”

“바보녀석. 그게 무슨 걱정이냐?”

“아저씨, 방법이 있어요?”

“간단하지.”

“어떻게요?”

“그 주인은 찾을 수 없어. 너 가져. 집에 가지고 가서 엄마 드려라. 엄마가 얼마나 좋아하시겠니?”

“안 돼요.”

“안 된다고? 그래서 너는 바보라는 거야. 너의 엄마가 그 돈을 벌자면 늙어죽을 때까지 일을 해도 못 벌어.”

“그래도 안 돼요.”

“그 돈이면 너의 집도 큰 것으로 바꿀 수 있고 식구들이 고생 안 하고 잘 살 수 있어, 그래도 싫으냐?”


47

“싫어요, 우리 엄마는 땀으로 번 돈이 아니면 돈이 아니라고 하셨어요. 그리고 불의로 챙긴 돈은 불행도 챙기는 것이라고 하셨어요.”

“그건 엄마가 어머니로서 교육상 해 둔 말일 뿐이야. 엄마들은 다 그런 거야. 도둑들도 자기는 도둑질을 하면서 자식  보고는 도둑질하지 말라고 하거든. 엄마도 그 돈을 보시면 아주 좋아하실 거다.”

“그래도 안 돼요.”

“바보 녀석, 넌 아무리 봐도 미련해. 너 그 돈이 얼마나 큰돈인지 알기나 하냐?”

“몰라요.”

“큰 이층 양옥집 두 채 값이다. 너의 집 같은 건 열 채를 사고도 남는 돈이야. 너 이층집에 살고 싶다고 하지 않았니?”

“……”

“왜 말이 없어? 생각이 좀 달라졌니? 그 돈을 어떻게 주인에게 찾아주겠다는 거냐. 경찰서에 맡겨도 주인을 확실히 찾아 준다는 보장도 없지 않으냐?”

“……”

“바보녀석, 이제 정신이 드나 보지? 그건 네 몫이야. 괜히 주인 찾아준다고 하다가 엉뚱한 사람 좋은 일 시키지 말아라. 억울하게 돈만 빼앗긴단 말이다. 알겠니?”

은우는 난장 아저씨의 말이 맞는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48

“그래도 안 돼요. 어떻게든 경찰 아저씨한테 맡기면 찾아주실 거예요.”

“경찰 아저씨라고? 넌 당하고도 모르겠니? 그래도 믿어?”

“다른 방법으로 경찰아저씨가 찾아주게 할 거예요.”

“바보 녀석, 내 말 안 들으면 후회한다. 너같이 미련한 녀석은 처음 본다.”

은우는 일어섰습니다. 그리고 골목길을 부지런히 걸었습니다. 난짱이 따라오면서 속삭였습니다.

“내 말 잘 들어. 주인은 바로 너야, 네 손에 들려 있는 건 바로 네가 주인이라는 증거야.”

“저는 아저씨 생각과 달라요.”

은우는 채린네 집 문 앞에다 보따리를 내려놓았습니다. 난짱이 짜증스럽게 말했습니다.

“너 무슨 짓 하는 거야? 거기다 놓고 어쩌자는 거야? 당장 집지 못해? 그 돈이 네 손을 떠나면 어떻게 되는지 알아?”

“저보다 영리하고 착한 사람이 맡으면 주인을 찾을 수 있을 거예요”

“너 정말로 다른 사람이 가져가게 힐 작정이냐?”

“네.”

“아이고 속 터져, 너 같은 바보는 도와 줄 필요가 없어. 미련한 바보녀석! 난 간다.”

난짱은 화를 버럭 내면서 어디론가 사라졌습니다.

*49

밖에 나갔던 채린이 집안으로 들어서다가 이상한 보따리가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게 뭘까?’

채린은 한쪽 귀퉁이를 비집고 속을 들여다보고 깜짝 놀라 보따리를 둔 채 방으로 뛰어 들었습니다.

“할머니, 저 문 앞에 보따리 누가 갖다 놓았나요?”

“보따리라니? 그게 무슨 말이냐?”

“돈이 들어 있었어요.”

“돈 보따리란 말이냐?”

“네.”

“이상도 하다. 누가 돈 보따리를 이런 데다 두고 간단 말이냐?”

할머니와 채린이 나와서 보따리를 풀어 보았습니다. 두 사람은 놀라 입을 벌리고 물러섰습니다. 평생에 이렇게 큰돈은 처음 보았기 때문입니다.

“할머니 어떻게 할까요?”

“오늘은 늦었으니 내일 파출소로 가서 신고하자. 이렇게 큰돈을 잃어버린 사람은 얼마나 애가 타겠느냐.”

“네. 내일 그렇게 해요 할머니.”

두 사람은 돈을 들고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은우는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밤새도록 생각했습니다.

‘채린이 경찰 아저씨한테 맡기면 주인을 찾을 수 있을까?’

*50

다음날 아침 채린은 돈 보따리를 들고 할머니와 함께 파출소를 향해 가고 있었습니다. 은우는 아침 일찍이 투명구두를 신고 나와 채린의 뒤를 따랐습니다.

마침 갱 하우스 앞을 지날 때입니다. 험상궂게 생긴 남자가 눈을 부라리며 달려들어 돈 보따리를 낚아챘습니다. 채린이 깜짝 놀라 보따리를 잡고 넘어졌습니다. 할머니가 큰소리로 외쳤습니다.

“강도야 강도!”

이때 건물 안에서 건장한 사내가 나와 내다보다가 달려들어 채린의 손목을 잡아끌고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할머니는 놀라 또 소리쳤습니다.

“사람 살려요!”

그러나 도와 주는 사람은 없고 먼저 보따리를 낚아채던 남자가 할머니까지 잡아끌고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은우는 그들 뒤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험상궂게 생긴 사내가 이빨을 드러내고 히히거렸습니다.

“강도라고? 이 할망구가 망령이 들었나, 남의 돈을 훔쳐 가지고 돌아다니면서 우리를 도둑이라고? 이히히히.”

다른 사내가 마주보며 한마디했습니다.

“누가 아니래, 돈 보따리가 이렇게 쉽게 돌아오다니 이게 꿈은 아니렷다?”

할머니와 채린은 더 깊이 끌려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51

할머니와 채린은 돈 보따리를 빼앗긴 채 두목이 있는 방으로 끌려 들어갔습니다.

눈이 칼집처럼 찢어지고 아래턱이 없는 괴물 같은 두목이 깊은 의자를 뒤로 비스듬히 젖히고 발은 책상 위에 얹은 채 물었습니다.

“저것들은 뭐냐?”

“네, 지난번에 잃어버린 돈 보따리를 들고 도망가는 것을 잡아왔습니다.”

“뭐야? 그 돈 보따리를 들고 도망친 것들이라고?”

“예, 그렇습니다.”

“돈은 이리 가져오고 저것들은 가둬.”

할머니와 채린은 갇히고 말았습니다. 불쌍하게 갇힌 할머니와 채린은 겁에 질려 떨고 있었습니다.

‘내가 돈을 갖다 놓지 않았더라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채린아 미안하다, 할머니 죄송합니다.’

아무 묘안이 없는 은우는 채린이 갇혀 있는 문 앞에 서서 마음을 조이고 있었습니다. 이때 난짱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이히히히히, 꼴 좋다 이 바보 녀석. 너 하루 종일 그렇게 들여다보고만 있을 작정이냐?”

“난짱 아저씨!”

“난짱이다. 도와줄까?”

*52

“도와주세요.”

“그래서 너보고 그 돈은 너 가지라고 하지 않았니? 이 바보 멍청아.”

“……”

“뭘 가르쳐주면 제대로 따라야지, 그 돈을 내 말대로 네가 가졌더라면 너 좋고 저 할머니도 고생을 하지 않았을 게 아니냐? 안 그러냐? 바보 멍청이, 너 이제 내 말을 따르겠니?”

“네.”

“당장 신고 있는 투명구두를 저 잔디밭에 가서 벗어. 그리고 사람들이 너를 알아보고 달려오거든 두목한테 사실대로 말해. 돈은 네가 길에서 주워 저 할머니 집 문 앞에다 놓은 거라고. 저 할머니는 죄가 없으니 풀어달라고 사정해 봐.”

“……”

“너 내 말 듣고 있는 거냐?”

“네.”

“저 잔디밭으로 가서 구두를 벗고 내려와. 구두는 내가 잘 지켜 줄 테니까.”

은우는 난짱이 하라는 대로 잔디밭으로 가서 구두를 벗었습니다. 아무도 없던 잔디밭에 은우가 돌연 나타난 것을 본 경비원이 달려오며 소리쳤습니다.

“누구냐? 꼼짝 마라!”

그 사람은 은우를 잡아채고 긴 복도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53

얼마 후 은우는 두목 앞에 무릎을 꿇렸습니다. 두목이 그 무섭게 생긴 얼굴로 은우를 노려보았습니다.

“꼬마녀석이 여기가 어딘 줄 알고 감히 들어와?”

입과 코가 턱도 없는 아래 위층으로 붙은 목구멍에서 아주 징그러운 소리가 나왔습니다.

“너 여기가 어딘지 아냐?”

“아저씨, 저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러나 저 안에 잡혀온 할머니 사정이 억울해서 들어왔습니다.”

“저 할망구 비밀을 안단 말이냐?”

“네, 저 할머니는 억울해요. 돈 보따리는 제가 주워 할머니 집 문 앞에 놓았습니다.”

“네가?”

“네.”

“넌 어디서 났느냐?”

“파출소 앞에서 주웠습니다.”

“파출소?”

두목은 부하를 불러 무슨 말인가를 주고받더니 낄낄거리고 웃다가 명령을 내렸습니다.

“이 꼬마 놈을 칠뜩이 방에다 가둬. 우리 비밀을 아는 놈은 애 어른 가릴 것 없이 없애 버려야 해.”

은우는 건장한 사내의 손에 목덜미를 잡힌 채 안으로 끌려 들어갔습니다.

*54

은우는 칠뜩이라고 불리는 사람이 갇힌 좁은 방으로 끌려 들어갔습니다. 칠뜩이 이름으로 느끼기에는 바보 같고 무섭게 생긴 것 같은데 가까이 보니 전혀 달랐습니다.

“아저씨 안녕하세요?”

“……”

“아저씨, 저는 무서워요.” 

“……”

칠뜩이 아저씨는 한쪽 벽만 바라볼 뿐 말이 없었습니다. 웃지도 않고 눈길도 주지 않았습니다.

“아저씨 여기 앉아도 괜찮아요?”

“……”

은우는 좀 떨어져서 조심스럽게 벽을 타고 쭈그리고 앉았습니다. 아저씨는 과묵한 모습 그대로 벽만 바라보았습니다. 은우는 입을 열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

그러나 무슨 말인가 하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위엄 있는 아저씨의 눈빛에 주눅이 든 것입니다.

“아저씨, 답답하시지요?”

“……”

역시 아저씨는 말이 없었습니다. 무거운 침묵 속에 하루가 가고 밤이 왔습니다. 은우가 앉은 채 꾸뻑 졸고 있을 때 아저씨의 낮고 부드러운 음성이 들렸습니다.

*55

“그렇게 졸리우냐?”

은우는 깜짝 놀라 고개를 들고 대답했습니다.

“아, 아닙니다, 아저씨.”

“많이 졸린 것 같다. 편히 눕거라.”

음성만 들어도 마음이 편했는데 친절히 말하는 얼굴이 아버지처럼 따듯했습니다.

“아저씨도 주무셔야지요.”

“너나 자거라. 난 잠이 오지 않는다.”

“아저씨는 왜 갇히셨어요?”

“알 것 없다. 말해도 못 알아들어.”

졸려서 눈이 감기더니 갑자기 정신이 들고 잠이 달아났습니다.

“아저씨……”

“……”

아저씨는 대답 대신 눈길을 돌려 바라보았습니다.

“여기는 아주 무서운 곳이지요? 그렇지요?”

아저씨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아저씨는 왜 여기 계신가요?”

“네가 알아서 뭘 하게?”

“그냥요.”

아저씨는 작은 소리로 말했습니다.

“조용히 해라. 네가 하는 소리 밖에서 다 듣고 있다.”

*56

은우는 갑자기 두렵고 가슴이 쿵하고 내려앉았습니다. 그래서 목을 움츠리고 속삭이듯 말했습니다.

“아저씨는 좋은 분이시지요?”

“넌 어쩌다가 들어왔느냐?”

“저쪽 독방에 저의 반 아이와 그 애 할머니가 갇혀 있어요. 문 앞에서 주은 돈을 경찰에 맡기러 가다가 이 건물 앞에서 여기 사람들한테 잡혀 왔어요.”

“좋은 일을 하려다가 피해를 입게 되었구나…….”

“네?”

“여기는 들어오면 살아 나가기 힘든 곳이다. 그 할머니보다도 네가 더 걱정이다.”

“아저씨는 왜 갇히셨어요?”

“너같이 어린 아이는 알아듣지 못한다.”

“그래도 궁금해요.”

“나는 사업을 하다가 부도를 당하게 되었다. 바로 그 때 돈을 대 주겠다는 사람이 나타났다. 그 사람의 도움으로 부도는 막았는데 부도보다 더 무서운 덫에 걸리고 말았다. 이곳 사람들이 나를 속였다. 나는 잡혀와 두목이 요구하는 대로 하게 되었다. 도둑질을 요구하지만 나는 해 보지 않은 짓이라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갇힌 뒤 꼼짝 못하고 있다.”

“……”

“너는 거지 차림을 하고 도둑질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57

“도둑질을요?”

“저쪽 네 친구도 그렇게 될 거다.”

“할머니는요?”

“할머니는 막일을 시키든지 아니면……”

“경찰은 이런 곳을 왜 가만 두고 있나요?”

“이 갱 하우스 단원들은 아주 큰 조직을 가지고 있어서 경찰도 함부로 손을 못 댄다. 아주 무서운 조직이다.”

“그렇게요?”

“말로 할 수 없을 만큼 무서운 악당들이다. 그만 자자. 더 이야기하다가 감시원이 들으면 너도나도 편치 못하다.”

은우는 자려고 눈을 감아 보았지만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다행인 것은 오늘부터 여름방학이기 때문에 학교에 갈 걱정은 안 해도 됩니다.

아저씨는 어느새 잠이 들어 코를 골고 있었습니다. 은우는 집 걱정, 채린이네 집 걱정을 하느라고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여기 이렇게 잡혀 있는 것도 모르고 식구들은 집 나가서 안 오는 사람을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아침이 밝아올 무렵 은우는 깜빡 잠이 들었습니다. 문을 여는 소리와 함께 고릴라같이 험상궂은 사람이 문을 열며 땅이 울리는 낮고 굵은 소리로 호령했습니다.

“나와!”

*58

아저씨와 은우는 어딘지 모를 방으로 들어가 아침 식사를 했습니다. 큰 건물에 담이 높이 쳐져 있어서 날아가지 않으면 달아날 수 없는 감옥 같은 곳이었습니다.

식사가 끝나자 고릴라 같은 사람이 명령했습니다.

“천사장은 개다리를 따라 고문실로 가고 꼬마는 저 잔디밭의 잡초를 뽑아라. 알겠나?”

“……”

천사장이라고 불린 아저씨는 순순히 밖으로 나갔습니다. 고릴라는 은우를 데리고 잔디밭으로 가 여기저기 어지럽게 돋은 잡초를 가리켰습니다.

“저 잡초를 하나도 빼놓지 말고 다 뽑아라. 알겠느냐?”

“네.”

은우는 잔디밭을 바라보다 가슴이 쿵 내려앉았습니다. 투명구두가 풀밭에 나란히 놓인 채 은우를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잡초 제거 실시!”

뚱보 고릴라는 나무 밑에 놓인 벤치로 갔습니다. 그 사이에 은우는 달려가 투명구두를 신었습니다. 고릴라는 벤치에 가서 이쪽을 향해 돌아앉았습니다. 순간 은우가 갑자기 사라진 것을 알았습니다.

“야! 꼬마! 어디 숨었냐? 빨리 안 나오면 죽어! ”

그러나 은우는 채린이 갇힌 방을 향했습니다.

*59

채린과 할머니는 쭈그리고 앉아 아침을 먹고 있었습니다.

‘채린아 미안하다. 이렇게 될 줄은 몰랐어.’

은우는 속으로 사과하며 여기저기 다른 곳을 둘러보았습니다. 몇 개의 건물이 잔디밭을 중심으로 서 있고 건물마다 입구에는 경비원이 있었습니다. 한쪽 구석방에서 이상한 소리가 났습니다. 가까이 가 문틈으로 들여다보았습니다.

한 사람이 머리를 늘어뜨린 채 나무기둥에 묶여 있고 옆에서 두 사람이 때리고 까집고 비틀고 조이고 꺾고 벗기고 꼬챙이로 쑤시며 같은 말을 되풀이했습니다.

“네가 그랬지? 아니야?”

“아니……”

“그래도 아니라고? 네가 아니면 그렇게 할 사람이 없어. 똑바로 대, 거짓말하면 죽어. 오늘 솔직히  불지 않으면 처치하라는 캡틴 명이 떨어졌어.”

“하지만……”

“돈 보따리가 왜 밖으로 나가 할망구가 들고 다니느냐 말야? 네가 빼돌렸지?”

그 사람은 고개를 저었습니다.

“거짓말! 그 할망구하고 한 패지?”

“난 모르는 소리야.”

한 사람이 주먹질을 하면서 물었습니다.

“그 할망구를 데리고 와도 아니라고 할래?”

*60

“난……”

그 사람은 입에서 피를 흘리며 기어들어 가는 소리로 말했습니다

“아, 아니 야아……”

“야! 너 가서 할망구 데리고 와.”

한 사람이 문을 열어 놓은 채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 사이 은우는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거기는 넓은 테이블이 하나 있었고 그 위에 육모방망이, 세모쇳장, 갈고리, 긴 칼, 큰칼, 작은칼, 공기총, 가스총, 작은 곤봉, 큰 곤봉, 도깨비방망이, 전기톱, 전기다리미, 전기충천기 등이 즐비했습니다. 

그것들은 갱 하우스에 피해를 입힌 사람을 고문하는 도구들인 것 같았습니다. 은우는 그 가운데서 도깨비방망이를 집어 들었습니다. 그 방망이는 한쪽이 밋밋하고 반대쪽에는 못이 삐죽삐죽 솟아 있는 쇠방망이였습니다.

잠시 후 나갔던 사람이 채린과 할머니를 끌고 들어왔습니다. 할머니와 채린은 겁에 질려 얼굴이 새파랬습니다. 그 사람이 들어서면서 외쳤습니다.

“배신자! 그래도 이 할망구를 모른다고 할래?”

그 사람의 눈동자는 뿌연 안개를 씌운 듯 우유 빛으로 멍하니 할머니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잠시 뒤 고개를 저었습니다.

*61

“이 할망구가 다 불었어. 그래도 거짓말을 할래?”

“아니, 아니이 야……”

그 사람은 고개를 저으며 할머니를 바라보았습니다. 험상궂은 사내가 할머니와 그 사람을 번갈아 보면서 물었습니다.

“살아서 나가려면 똑바로 말해! 할망구! 저놈하고 안다고 했지?”

“……”

할머니는 대답을 못하고 겁에 질려 벌벌 떨기만 했습니다. 이때 채린이 당돌하게 나섰습니다.

“몰라요, 저 아저씨는 우리와 아무 상관없어요.”

이때 곁에 섰던 사내가 눈을 부릅뜨고 주먹을 번쩍 들었습니다.

“쪼그만 게 뭘 안다고 어른들 틈에 끼여들어! 엉?”

그의 주먹이 번쩍 날아 채린의 하얀 얼굴을 내리쳤습니다. 그 순간 주먹을 향해 못이 삐죽삐죽한 은우의 도깨비방망이가 가로막았습니다.

“아! 아얏! 어떤 놈이야?” 

깜짝 놀란 채린이 물러서고 주먹에서 피가 줄줄 흐르는 사나이는 더 화가 나서 채린을 힘껏 걷어찼습니다. 그 순간 방망이로 그의 다리를 막았습니다. 채린은 아무렇지도 않은데 그 사내는 펄쩍펄쩍 뛰면서 소리쳤습니다.

“아야야! 나 죽는다! 아야아야 얏.”

*62

그 사내는 주저앉더니 정강이를 감싸안고 뒹굴었습니다. 도깨비방망이를 정강이로 찼기 때문입니다. 함께 있던 사내가 놀라 눈알을 굴리며 물었습니다.

“이게 뭐야? 엉? 어떻게 된 거냐고?”

“몰라, 아이구, 나 죽는다. 아이구우.”

이때 밖에서 급하게 외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집합! 전원 회의장으로 집합.”

두 사람은 채린과 할머니를 가둔 채 회의장으로 달려갔습니다. 은우는 그 뒤를 따랐습니다.  

회의장에는 사십 명도 넘는 건장한 사나이들이 군대처럼 두 줄로 서 있었습니다. 두목이 보기 흉한 턱을 달싹거리며 간단히 한 마디 했습니다.

“오늘 거창한 사업이 생겼다. 내용은 현장에 가 보면 안다. 하우스에는 경비원과 개다리와 말뼈다귀만 남는다. 두 사람은 하던 일을 마치도록, 알았나?”

“넷!”

우렁찬 소리로 대답을 한 뒤 전원이 차를 타고 우르르 몰려 나갔습니다. 남은 사람은 채린이 있는 고문실로 가면서 속닥거렸습니다.

“말뼈다귀, 너 오늘 운 텄다. 그래 가지고 출동했더라면 어쩔 뻔했냐?”

“개다리, 너마저 갔더라면 큰일 날 뻔했지, 으흐흐흐.”

*63

악당들이 자리를 비운 사이 천사장이 물었습니다.

“할머니는 어쩌다가 들어오셨습니까?”

“돈 보따리가 화지요, 누가 가져다 놓았는지 어제 우리 집 대문 앞에 돈 보따리가 놓여 있었어요.”

채린이 할머니 말을 대신했습니다.

“할머니와 저는 아침에 경찰에 신고하러 가지고 가는 길이었어요. 그런데 이 건물 앞을 지나다가 저 사람들한테 잡혀 왔어요.”

“그렇게 되었구나. 여기는 악당 소굴이라 한번 들어오면 도망도 칠 수 없는 곳이다. 할머니와 네가 걱정이다.”

“아저씨는 왜 고생을 하세요?”

“넌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나는 저 악당들한테 사기를 당하고 억울하게 갇혔다. 그런데 어제는 내가 돈 보따리를 훔쳐 밖으로 내보냈다는 누명을 씌우고 오늘 고문을 하는 중인데 네가 할머니와 돈 보따리를 들고 지나가다가 잡히는 바람에 내가 너의 할머니와 짜고 돈을 빼냈다며 괴롭히는 중이다. 그렇지 않아도 저 놈들은 나를 죽이려고 구실을 찾는 중이었다.”

할머니는 안타까운 마음에 주먹을 불끈 쥐고 입을 열었습니다.

“저런 저주받을 인간들, 저것들을 어째야 좋아!”

“저 자들의 손에 걸려들면 별 도리가 없습니다.”

*64

“경찰은 무엇들을 하지요? 저런 악당들을 잡아가지 않고.”

“경찰도 저 악당들한테는 함부로 손을 대지 못합니다.”

“경찰이 못 막으면 누가 막지요?”

“이 건물 안에는 악마의 방이라는 지옥이 있습니다. 경찰이든 누구든 잡혀 들어오면 그 방으로 보냅니다. 그것을 알기 때문에 아무도 손을 대지 못한답니다.”

“지옥 갈 인간들이 지옥을 만들어 놓고 있다고요?”

“그렇습니다. 어쩌면 저도 오늘이나 내일 그리 들어가게 될지도 모릅니다. 이 안의 비밀을 지키기 위하여 여기 들어온 사람은 무조건 처치하는데 악마의 방으로 들어가면 누구도 살지 못합니다.”

“어떻게 해놓았기에요?”

“지하실로 삼중 철문을 설치해 공기도 통하지 않습니다. 누구든 들어가면 사람 썩는 냄새에 질식하여 그 속에서 말 한마디 못하고 죽습니다. 그 안에는 수백의 시체가 엉겨 썩어가고 있습니다.”

“아이 무서워!”

채린이 할머니를 잡아당기며 몸을 움츠렸습니다. 천사장은 잠시 후 말을 이었습니다.

“참 무서운 놈들이지요. 저희들끼리도 의리가 없습니다. 조금만 수상하면 거기다 집어넣고 문을 닫아 버립니다.”

이때 악당들의 발소리가 가까이 들려왔습니다.

*65

개다리와 말뼈다귀가 채린이 있는 곳으로 가고 있을 때 은우는 두목의 방으로 향했습니다.

무슨 급한 일인지 두목은 방문을 열어 놓은 채 나갔고 문 앞에는 눈두덩이 불룩하고 미련스럽게 생긴 경비원이 풀어진 모습으로 앉아 있었습니다.

은우는 두목의 밀실로 들어가 숨겨둔 돈 보따리를 찾아 둘러메고 후문 통로를 지나 보물 보관실로 갔습니다.

유리 진열장에는 전에 보았던 그대로 금목걸이, 금귀고리, 금반지, 금시계, 금팔찌가 가득했습니다. 은우는 빙긋이 웃어 보이고 채린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습니다.

개다리와 말뼈다귀는 돌아오자마자 천사장을 괴롭히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을 지켜보는 채린과 할머니는 겁에 질려 부들부들 떨고 있었습니다.

개다리가 입술을 씰룩거리며 지껄였습니다.

“천사장, 오늘 어쩌면 지옥행일 거야. 그래도 넌 복이 많은 놈이야, 혼자 가지 않고 할망구와 어린 종까지 데리고 가게 되었으니 말야, 으으흐흐흐흐.”

웃음소리가 채 끝나기도 전에 아까부터 채린을 노려보던 말뼈다귀가 몸을 날리며 소리쳤습니다.

“저 할망구는 악마의 방으로 보내기 전에 내가 먼저 박살을 내고 말 거다. 야앗!”

말뼈다귀는 미친 듯이 날뛰며 주먹을 휘둘렀습니다.

66

 그 순간 은우의 도깨비방망이가 말뼈다귀의 이마를 막았습니다. 

“아앗! 아이구 나 죽는다아. 아이구우!”

“누구야? 누가 쳤어? 천가냐?”

천사장은 놀라 뒹구는 말뼈다귀를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개다리가 세 사람을 날카롭게 쏘아보며 소리쳤습니다.

“누구냐? 할망구가?”

이와 동시에 개다리 주먹이 할머니 앞으로 날아들었습니다. 그러나 한 순간도 놓치지 않는 은우의 도깨비방망이는 날아드는 주먹을 막았습니다.

“아아! 아얏!”

개다리는 도깨비방망이의 못에 찍혀 주먹을 두 다리 사이에 끼고 웅크린 채 뒹굴었습니다. 할머니가 갑자기 기가 살아 외쳤습니다.

“천벌을 받을 놈들! 네놈들은 천벌을 받아도 싸다. 죽어도 싸지.”

이 말에 충격을 받은 말뼈다귀가 일어서려다가 쿵하고 쓰러졌습니다. 그 순간 화가 치민 개다리가 후닥닥 일어나며 채린을 힘껏 걷어찼습니다.

“예잇!”

채린이 놀라 소리쳤습니다.

“엄마!”

*67

그 순간 은우의 방망이가 날았습니다.

“아이구 나 죽는다, 아이구우우우.”  

순식간에 살기 등등하던 두 악당이 다리를 끌어안고 뒹굴었습니다.

이때 천사장이 벌떡 일어서면서 외쳤습니다.

“할머니, 저 애를 데리고 빨리 나가십시오. 이 두 놈은 내가 때려죽이고 나도 죽겠습니다.”

채린이 겁먹은 얼굴로 할머니를 잡아끌었습니다.

“할머니, 나가요.”

개다리가 눈을 부릅뜨고 외쳤습니다.

“나가? 누구 맘대로 나가? 거기 못 서!”

말뼈다귀도 할머니를 향해 소리쳤습니다.

“할망구, 한 발짝만 떼어 봐라. 내가……”

그러는 순간 은우의 도깨비방망이가 말뼈다귀의 정강이를 내리쳤습니다.

“아아이구. 아이구우우 나 죽는다아아.”

천사장이 문을 열고 나가면서 소리쳤습니다.

“할머니, 빨리 달아나세요. 나는 몽둥이를 찾아다가 이 놈들을 때려죽이겠습니다.”

“할머니, 나가요!”

채린이 겁에 질려 할머니의 치마를 잡아끌었습니다.


68

할머니는 천사장을 두고 나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천사장을 향해 말했습니다.

“사장님두 함께 나갑시다아.”

그러나 천사장은 듣지 않았습니다.

“아닙니다. 할머니나 나가십시오. 급합니다.”

이때 개다리가 얼굴을 일그러뜨린 채 외쳤습니다.

“가긴 어딜 가? 죽고 싶어?”

“네 놈들을 가만 둘 줄 알고? 기다려라 이놈들.”

천사장은 밖으로 나가 몽둥이를 찾고 채린은 할머니의 손을 잡고 문 쪽으로 달렸습니다. 채린이 큰 대문에 붙은 쪽문 빗장을 열려고 손잡이를 잡는 순간, 갑자기 귀청을 찢는 경고음이 울려 퍼졌습니다.

- 외엥에엥! 외엥에엥!

삐이 삐이 삐삐!

외엥에엥! 외에엥에에엥……

경고음이 갱 하우스 구석구석을 뒤흔드는 순간 여기저기서 경비원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은우는 급히 채린이 열려다 놓친 문고리를 잡아챘습니다. 문이 활짝 열렸습니다. 겁에 질린 할머니와 채린이 허둥지둥 문을 나가려는 순간 호랑이같이 달려나온 악당이 할머니 치맛자락을 확 잡아 낚아챘습니다.

할머니는 “어마마!” 하고 털썩 주저앉았습니다.

*69

할머니를 붙잡은 사람이 주먹을 높이 들어 내리치는 순간 은우의 도깨비방망이가 맞받아 쳤습니다.

“아아이구우! 아이구 아이구우우우우.”

호랑이같이 날뛰던 사내는 주먹을 끌어안고 고꾸라져 원숭이처럼 뒹굴었습니다. 이때 다른 사람이 채린의 머리채를 낚아채려고 손을 내밀었습니다. 그러나 눈 깜짝할 사이에 은우의 도깨비방망이가 먼저 그의 정강이를 내리쳤습니다.

“아이구, 아이구우우! 나 죽는다.”

그 사람도 그대로 고꾸라져 죽는소리를 쳤습니다. 그때 채린이 할머니를 부축이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건물 안에서 몰려나온 경비원이 쪽문을 나가려는 순간 은우의 도깨비방망이가 뒤통수를 내리쳤습니다. 그가 엎어지자 뒤따르던 사람이 넘어진 사람의 등을 밟고 머리를 내밀었습니다. 은우의 도깨비방망이가 날자 그 사람도 푹 고꾸라졌습니다.

“어이쿠우, 어이쿠우우우.”

이때 몽둥이로 개다리와 말뼈다귀를 죽도록 두들겨 주고 난 천사장이 흥분한 얼굴로 달려왔습니다. 그는 쓰러져 있는 악당을 보자 몽둥이질을 했습니다. 다른 경비원들은 천사장의 기세에 꺾여 감히 덤비지 못하고 물러났습니다.

은우가 메고 있던 돈 보따리를 밖으로 던지며 어른처럼 목소리를 바꾸고 외쳤습니다.

“이 보따리를 할머니께 전하고 그 집에 머무시오!”

*70

재빠르게 문을 나선 천사장은 보따리를 둘러메고 할머니가 사라진 방향으로 달려갔습니다. 한바탕 소동을 치른 악당들은 넋이 빠졌습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무엇에 홀린 게 아냐?”

“몰라. 몰라.”

“빨리 문 닫고 들어가자.”

누군가의 소리에 십여 명의 경비원이 다친 사람을 부축하고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은우는 잔디밭 끝에 있는 큰 나무 그늘 밑으로 가 벌렁 누웠습니다.

맑은 하늘에는 구름 두 조각이 친구처럼 한가하게 흘러가고 갱 하우스 안은 우물 속처럼 조용했습니다.

“나다.”

갑자기 귀에 익은 소리가 들렸습니다.

“네? 키다리 아저씨?”

“알겠냐?”

“안녕하세요?”

“음, 고생이 많지? 넌 아주 용감했어.”

“아저씨가 어떻게 아시나요?”

키다리 아저씨는 가까이 다가앉으며 빙긋이 웃었습니다.

“네가 가진 방망이가 어떤 것인지 알기는 하냐?”


*71

“이 도깨비방망이 말인가요?”

“도깨비를 본 적이 있느냐?”

“없어요.”

“도깨비도 못 보고 도깨비방망이라고?”

“아저씨는 도깨비를 보셨나요?”

“나도 보지 못했다. 사람이 마음에서 도깨비를 버리지 못하면 도깨비는 언제나 존재한다. 네가 가진 방망이가 얼마나 신기한 것인지 아느냐?”

“몰라요.”

“그건 쇠방망이가 맞지?”

“네.”

“쇳덩어리치고는 가볍지?”

“그런 것 같아요.”

“그건 쇠면서 가볍고 삐죽삐죽 돋은 가시는 물체에 부딪치면 탄력이 생겨 살짝만 쳐도 강한 힘이 나온단다.”

은우는 그제야 방망이가 대단한 힘을 내고 있었다고 생각했습니다. 키다리 아저씨는 이야기를 계속했습니다.

“앞으로 너는 아주 재미있는 구경을 하게 될 거다. 이 갱 하우스의 두목이 부하들을 마음대로 휘두를 수 있었던 것도 그 방망이 때문이었다. 그러나 너한테 빼앗겼으니 두목도 이빨 빠진 호랑이지 이히히히.”

키다리 아저씨의 웃음소리는 아주 이상했습니다.

*72

“아저씨는 왜 그렇게 웃으세요?”

“왜~! 웃음소리가 기분 나쁘냐?”

“이상해요.”

“네가 싫다면 난 떠나야지.”

“가지 마세요.”

“남자는 기댈 데가 있으면 의지가 약해진다. 넌 앞으로 네 힘으로 정의를 지켜야 해. 정의는 욕심을 버린 사람의 편이라는 걸 잊지 마라.”

“아저씨, 어려워서 모르겠어요.”

“더 이상 묻지 마라, 간다.”

나무 그늘 밑으로 한 줄기 시원한 바람이 불어가고 악당들이 득실거리는 잔디밭은 평화스런 햇빛이 가득히 내리고 있었습니다.

키다리 아저씨가 바람처럼 사라지자 은우는 갑자기 혼자 있다는 허전한 마음을 가눌 수가 없었습니다.

이때 문 쪽에서 차 소리가 시끄럽게 들려왔습니다. 그리고 악당들이 줄줄이 들어왔습니다.

두목이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가 회의실로 돌아와 맨 윗자리에 앉았습니다. 악당들은 먼저 들어와 둥그런 테이블에 둘러앉아 두목을 기다렸습니다.

“개다리, 이상 없었나?”

두목이 날카로운 눈으로 개다리를 쏘아보았습니다.

73

“이상 없었느냐고 물었다!”

개다리는 주저하다가 우물우물 대답했습니다.

“네에 네, 이상 없습니다.”

“그래? 말뼈다귀는?” 

“이상 없습니다.”

대답은 이렇게 하면서 두 사람은 아픈 주먹과 다리를 쓰다듬었습니다. 두목이 두 사람을 번갈아 보며 지시했습니다.

“개다리는 돈 보따리를 가져오고 말뼈다귀는 도깨비방망이를 가져와.”

“옛! 옛!”

두 사람은 발딱 일어나 개다리는 두목의 방으로 가고 말뼈다귀는 고문실로 갔습니다. 잠시 무거운 침묵이 흘렀습니다. 시간이 한참을 지나도 두 사람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두목이 소리쳤습니다.

“어떻게 된 거야?”

이때 말뼈다귀가 힘이 쏙 빠진  모습으로 돌아왔습니다. 바로 그 뒤를 개다리도 축 처진 모습으로 따랐습니다. 두목이 소리쳤습니다.

“왜 빈손인가? 개다리 돈 보따리 어쨌나?”

“그 그것이……”

두목은 눈길을 말뼈다귀에게 돌렸습니다.

“말뼈다귀, 넌 왜 맨손이냐?”

*74

말뼈다귀가 기어 들어가는 소리로 대답했습니다.

“그 그것이 사라졌……”

“뭐야? 도깨비방망이가 사라졌다고?”

“네, 네.”

“남아 있던 놈들 모두 집합시켜! 당장!”

이 한 마디는 바로 구내 방송으로 전달되고 경비원 전원이 모였습니다. 두목은 눈을 부릅뜨고 소리쳤습니다.

“누구냐? 도깨비방망이를 빼돌린 놈이 누구야? 지금 솔직히 고백하면 용서한다. 그러나 안 나오면 전원 죽을 줄 알라.”

두목은 개다리를 향해 물었습니다.

“개다리, 돈 보따릴 못 보았단 말이냐?”

“네.”

“우리 조직 안에 배신자가 있다. 특히 오늘 경비원 가운데 있어!”

두목이 독사 같은 눈으로 쓸어보자 모두가 소름이 끼치는 듯 몸을 움츠렸습니다. 두목은 부두목과 간부를 향해 지시했습니다.

“개다리는 물론, 말뼈다귀와 경비원을 모두 잡아들엿!”

잠깐 사이에 갱 하우스에 남아 있던 사람들이 모두 고문실에 갇혔습니다. 두목은 돈을 훔친 사람과 도깨비방망이를 훔친 사람이 나올 때까지 고통을 주라고 지시하고 자기 밀실로 돌아갔습니다.

75

부두목이 몽둥이를 들고 경비원들을 때리려고 할 때 한 사람이 고개를 들고 말했습니다.

“돈 보따리인지 뭔지는 몰라도 우리 가운데 누군가가 문 밖으로 집어던지며 천사장에게 가지고 달아나라고 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확실하냐?”

“그렇습니다.”

“그 천가 놈은 왜 안 보이는 거냐?”

“달아났습니다. 돈 보따리를 들고.”

“달아나? 이 놈들아, 너희는 도대체 뭘 하고 있었던 거야?”

“잡으러 가다가 문에 부딪쳐 넘어졌습니다. 그때 누군가가 내 뒤에서 천사장을 돕고 있었습니다.”

“뭐야? 이 안에 배신자가 있다고?”

부두목은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어쩔 줄을 모르다가 몽둥이를 마구 휘둘러댔습니다.

“나와! 나오라구! 어떤 놈이야? 안 나오면 전원 지옥행이다. 알겠나?”

몽둥이에 맞은 사람들은 피를 흘리며 여기저기 쓰러져 뒹굴었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부두목은 날뛰며 몽둥이질을 했습니다.

“천가놈을 잡아와! 말뼈다귀, 넌 뭘 했어? 개다리는 뭘 하고? 당장 안 잡아오면 가만두지 않는다.”

*76

부두목은 다른 간부에게 고문실을 맡기고 두목이 있는 방으로 갔습니다.

“형님, 큰일났습니다. 천가 놈도 달아났습니다.”

“뭐야? 천가놈이?”

“그렇습니다.”

“이런 병신 같은 놈들, 뭣들 하고 자빠졌다가 천가놈까지 놓쳐?”

“우리 가운데 배신자가 있습니다. 누군가가 천가 놈을 내보내면서 돈 보따리까지 던져 주었답니다.”

“그게 누구야? 누구냐구? 당장에 이놈들을!”

화가 치민 두목은 얼굴을 문어대가리처럼 배배 꼬아 돌리며 고문실로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호통을 쳤습니다.

“천가놈과 통한 자가 누구야? 말뼈다귀냐?”

“아닙니다.”

“개다리냐?”

“아닙니다.”

“그럼 누구란 말야? 모두 죽을래?”

개다리가 고개를 푹 숙이고 말했습니다.

“큰형님, 저희도 이해가 안 갑니다. 천가 놈도 없어졌지만 할망구와 계집애와……”

“뭐야? 그런 것들까지 달아나?”

“……”

*77

두목은 몽둥이를 집어들더니 개다리를 두들겨 팼습니다. 잔뜩 겁먹은 말뼈다귀는 머리를 숙인 채 벌벌 떨고 있었습니다. 두목이 그에게 명령했습니다.

“너 이 몽둥이로 개다리를 죽여!”

그러나 말뼈다귀는 감히 몽둥이를 받아들지 못했습니다. 두목은 어물어물하는 말뼈다귀를 때리면서 소리쳤습니다.

“이렇게 때리란 말야 알았어?” 

“어이쿠!”

갑자기 몽둥이에 맞은 그는 정신이 번쩍 들어 몽둥이를 잡고 개다리를 쳤습니다.

“죽도록 때려. 알았지?”

두목은 명령을 하고 밖으로 나가려다 멈칫하더니 돌아와 다짐하듯 말했습니다.

“내가 돌아왔을 때 개다리가 살아 있으면 네가 대신 죽을 각오를 하도록, 알겠나?”

두목은 급히 자기 집무실로 갔습니다. 말뼈다귀가 몽둥이를 집어던지면서 말했습니다.

“개다리 너 죽고 싶으냐?”

“죽여라. 내가 살아 있으면 넌 죽는다.”

“죽고 싶다고? 미련한 놈.”

개다리가 입을 다물자 말뼈다귀가 방법을 말했습니다.

“이렇게 하자. 너도 살고 나도 살자면 이 길밖에 없다.”

*78

“무슨 방법?”

“한가지 방법밖에 없다.”

얼굴이 퉁퉁 부은 개다리가 아픈 곳을 문지르면서 대답을 기다렸습니다. 말뼈다귀는 작은 소리로 말했습니다.

“우리가 죽을 것이라면 저 민턱을 치고 죽자.”

“두목을?”

“그래, 어차피 두목은 도깨비방망이를 잃었고 우리가 힘을 합하면 그것 하나쯤은 해치울 수 있다.”

“……”

“이 안에 있는 부하들도 우리가 힘을 합치자고 하면 동조할 것이다.”

“그렇게 한다면 가능하겠지.”

“일어나 준비하자. 민턱이 곧 올지 모르니까.”

그는 다른 경비원들을 향해 말했습니다.

“이대로 있으면 우린 모두 죽는다. 우리 힘을 합쳐 두목을 처치하자. 할 사람 손들어!”

모두가 손을 높이 들었습니다.

“좋다. 이제 우리는 하나다. 두목이 들어올 때 전원이 동시에 총공격을 하는 거다.”

이와 동시에 모두가 몽둥이 꼬챙이 망치를 들고 두목이 오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두목은 밤이 깊도록 쉽게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79

이 시간 두목은 부두목과 탈출 계획을 짜고 있었습니다. 두목이 말했습니다.

“이제 끝장난 것 같다.”

“형님, 왜 그런 소리를 하십니까?”

“어쩔 수 없어. 개다리에게 도깨비방망이를 맡긴 것이 실수였어. 놈이 빼돌린 게 틀림없어. 만약 그 놈이 빼돌렸다면 우리 하우스는 그 놈의 손아귀에 잡히게 된다.”

“그게 사실입니까?”

“그래, 말뼈다귀에게 그놈을 때려죽이라고 명하고 왔다.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몰라. 오늘 우리는 돈을 몽땅 싸 가지고 내일 새벽 4시 떠나는 거다. 금과 다이아몬드도 모두 차에 실어라. 4시 정각 출발이다.”

여기까지 들은 은우는 그곳을 떠나 갱 하우스 밖으로 나와 채린의 집으로 달렸습니다. 그리고 종이쪽지에다 이렇게 적었습니다.

[천사장, 오늘 밤 파출소로 가 범죄집단을 고발하시오. 꼭 내 말대로 하시오. 돈 보따리를 던져주고 도와준 사람.]

은우는 종이를 채린의 방문 앞에 돌로 눌러놓고 방망이로 마루를 땅 소리가 나게 쳤습니다. 소리에 놀란 할머니가 문을 활짝 열어제치면서 소리쳤습니다.

“누구야?”

다행히 천사장이 은우의 말대로 방안에 있었습니다.

 *80.

할머니는 마루에 펼쳐 있는 종이 쪽지를 들고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것을 확인한 은우는 자기 집을 향해 달렸습니다. 그리고 도착하자마자 운동화를 바꾸어 신고 투명구두와 방망이를 책상 속 깊이 숨기고 식구들이 모인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은우에게 말도 없이 나가 어디를 갔다 왔느냐고 꾸짖었습니다. 은우는 아무 소리 없이 부모님의 꾸지람을 듣고 자는 척하다가 일어나 밖으로 나왔습니다.

평범한 소년이 된 은우는 파출소로 갔습니다. 파출소에는 바랐던 대로 천사장이 와 있었습니다.

‘다행이다. 천사장이 안 오면 큰 일을 당할지도 모른다.’

밤중에 어린 소년이 찾아온 것을 보고 어른들의 눈길이 은우에게 몰렸습니다.

“밤중에 네가 무슨 일이냐?”

전에 만난 경찰관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은우는 한편 구석의자에 가서 앉았습니다. 천사장이 물었습니다.

“꼬마야, 너 길을 잃은 게냐?”

“아니에요, 아저씨. 저는 심부름을 왔어요.”

경찰관이 눈길을 돌리고 물었습니다.

“급한 일이냐?”

“조금은요……”

“이 아저씨 이야기 좀 먼저 듣고 네 이야기를 들어야겠다.”

*81

경찰관이 천사장을 향해 말했습니다.

“사장님, 용단을 잘 내셨습니다. 지금까지 갱 하우스를 고발하는 피해자가 없어서 경찰이 손을 제대로 쓸 수가 없었습니다. 이렇게 피해 상황을 소상하게 밝히심으로 우리는 손을 쓰게 되겠습니다.”

천사장은 고발장에 도장을 찍고 물러앉았습니다. 경찰이 은우를 불렀습니다.

“꼬마야 이리 와 봐. 무슨 심부름이냐?”

은우는 천사장을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저 아저씨가 듣지 못하게 해 주세요.”

“알았다.”

경찰은 천사장에게 잠시 나가 달라고 한 후 말했습니다.

“말해 보아라.”

“어떤 아저씨가 꼭 전하라고 하셨어요. 오늘 밤 네 시에 갱 하우스 두목이 도망칠 것이라고 했습니다. 네 시가 되기 전에 경찰 아저씨들이 문 앞에 차를 대고 기다렸다가 그들을 잡으라고 했습니다. 오늘 그들을 놓치면 다시는 잡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경찰은 관심을 가지고 은우의 말이 귀를 기울였습니다.

“알았다. 그 아저씨는 어디 계시냐?”

“몰라요. 그렇게 말하고 가 버렸어요.”

경찰은 긴장하여 밖에 있는 천사장을 불렀습니다. 

*82

“사장님, 들어와 보십시오.”

천사장이 들어서면서 물었습니다.

“무슨 일이 있습니까?”

“지금 이 아이가 하는 말과 천사장님이 오늘 용단을 내게 된 것과는 어딘가 일치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아이는 누굽니까?”

경찰관이 은우를 향해 물었습니다.

“넌 어디 사는 누구냐?”

“저는 갈산동에 살고 갈산초등학교 6학년입니다.”

“그러냐? 키가 중학생보다도 크구나. 너도 여기에다 오늘 정보 제공자로 서명을 해야겠다.”

은우는 경찰관이 내미는 신고서에 손도장을 찍었습니다.

경찰관은 바로 함께 근무하는 경찰과 의견을 나눈 다음 파출소장에게 연락을 했습니다. 잠시 후에 소장님이 들어서다 은우를 보고 말했습니다.

“아니, 넌……?”

“아저씨, 안녕하세요?”

“네가 또 웬일이냐?”

다른 경찰관이 끼여들었습니다.

“소장님, 이 애를 아십니까?”

“음, 그 그……”

소장은 잃어버린 돈 보따리를 생각하고 말을 못했습니다.

*83

“아저씨 그건……”

“그래 알았다. 네가 그 일로 온 것이냐?”

다른 경찰관이 말을 막았습니다.

“소장님, 오늘 이 두 사람이 굉장한 정보를 제공했습니다.”

“정보?”

“네, 천사장님과 소장님 인사 나누시지요.”

소장과 천사장이 인사를 나눈 뒤 경찰관이 작성한 문서를 소장 앞에 내놓았습니다. 소장은 그것을 들여다보고 나서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음, 기다리던 날이 오고야 말았군.”

혼자 중얼거리던 소장이 천사장에게 인사를 했습니다.

“천사장님 감사합니다. 우리 관할 내에 그 갱 하우스라는 것이 있어서 골치였는데 지금까지 피해자들이 고발을 해 오지 않아서 함부로 손을 대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고발해 주시고 또 꼬마 영웅까지 협력해 주셨으니 감사합니다.”

소장은 바로 경찰서에 연락하여 비상 대책을 세웠습니다. 3시 정각 수십 명의 경찰과 자동차가 갱 하우스 정문 양쪽 길에 늘어섰습니다. 파출소장이 은우를 불렀습니다.

“너 정은우라고 했지?”

“네.”

“고맙다. 기다렸다가 네 말대로 두목이 달아나면 그들을 잡아들일 것이다. 기다려 보거라. 그리고……”

* 84

이때 갑자기 자동차 소리가 소란해지면서 비상 사이렌 소리가 울렸습니다.

- 외앵 외앵 외앵 삐이삐 삐이삐

- 외앵 외앵 외앵 삐이삐 삐이삐

자동차 소리와 비상 경고 사이렌 소리가 어디론가 멀어져 가고 있었습니다. 파출소에 남아 있던 경찰관은 답답하여 못 견디겠다는 듯 오토바이를 몰고 소리나는 방향을 향해 달려갔습니다.

천사장은 먼저 경찰을 따라가고 사무실에는 소장과 은우만 남았습니다. 소장이 입을 열었습니다.

“은우야, 하고 싶은 말이 있지?”

“네, 있어요.”

“그 돈은 말이다. 그 돈은……”

“주인을 찾아 드렸나요?”

“그게 말이다. 어찌 된 일인지 그 날 밤에 없어져서 지금도 찾고 있는 중이다.”

“누가 가져갔나요?”

“알 수가 없다. 아무도 모른다고 하고 물증도 없었다.”

“아저씨들이 갖지 않았다면 어디선가 나오겠지요. 더 찾아보시지요.”

“그래야겠지?”

소장은 마음이 놓인다는 듯 부드럽게 대답했습니다.

*85

은우는 속으로 말했습니다.

‘아저씨들이 욕심을 내지 않았더라면 잃어버리지 않았을 거예요. 그 돈 보따리 때문에 애매한 채린이와 할머니가 고생을 하셨는데……’

“아저씨, 그 돈을 찾으시면 어떻게 하실 건가요?”

“너하고 약속한 대로 주인을 찾아 주어야지.”

“주인을 못 찾으면요?”

“그러면 찾아준 사람이 가져야지. 가만 있자, 그걸 찾으면 너를 주어야 하는가 보다, 하하하.”

“아저씨가 잃어버린 것을 또 다른 사람이 주워서 가져온다면 저는 상관이 없는 거 아닌가요?”

“글쎄다.”

벽에 걸린 시계가 다섯 시를 알렸습니다. 어느새 동녘이 밝아오고 이때 급히 달려오는 자동차 소리가 가까워오고 있었습니다.

“오나 보다.”

소장이 밖을 내다보았습니다. 오토바이를 탄 경찰관이 먼저 들어왔습니다.

“어떻게 되었나?”

“잡았습니다.”

“다행이군.”

이때 경찰 차가 줄을 지어 파출소 앞으로 몰려왔습니다.

*86.

차에서 내린 천사장이 맨 앞에 서고 그 뒤를 수갑에 채인 두목과 부두목이 따랐습니다. 소장은 두목과 천사장을 마주 앉히고 고발장 내용을 읽으며 사실 확인을 했습니다.

두목은 눈을 부릅뜨고 천사장에게 큰 소리를 쳤습니다.

“야, 이 천가놈, 네가 감히 우리를 고발해?”

천사장은 침착하게 말했습니다.

“네 죄가 다 드러나게 되었다. 조용히 모든 것을 고백하는 것이 좋을 거다.”

“죄라고? 네가 이렇게 배신할 줄은 몰랐다.”

“그건 내가 할 말이다.”

두 사람은 한참 동안 말싸움을 했습니다. 경찰관이 정리하는 말을 했습니다.

“이제 그만하면 됐으니 조용하시오. 일단 갱 하우스를 접수해야겠으니 앞장서시오. 갱 하우스에 가서 봅시다.”

천사장은 당당히 앞장서고 두목과 부두목은 수갑을 찬 채 끌리듯 갱 하우스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천사장이 경찰관에게 설명했습니다.

“이 안에는 억울하게 잡혀와 죽은 사람도 많지만 아직도 갇혀 있는 사람이 많습니다. 먼저 고문실로 가보시지요.”

고문실에는 밤새도록 눈에 불을 켜고 몽둥이와 쇠갈고리 가죽끈을 틀어 쥔 개다리와 부하들이 두목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87

천사장이 고문실 문을 열며 두목에게 소리쳤습니다.

“들어가 이 악마야, 여기 가둔 사람들을 먼저 풀어 줘.”

천사장이 두목을 확 밀어 넣었습니다. 두목은 수갑 찬 손을 옷 속으로 감춘 채 위세 당당하게 소리쳤습니다.

“개다리 말뼈다귀 비상이다. 긴급 출동하라!”

“뭐? 비상?”

개다리가 묻자 두목은 큰소리로 명령했습니다.

“천가 놈이 우리를 배신했다. 총 공격하라!”

개다리가 눈을 부릅뜨고 외쳤습니다.

“뭐? 누가 배신을 해?”

“천가다, 천가를 죽여라!”

개다리가 두목을 향해 주먹을 날렸습니다.

“미친 놈, 허튼 수작 말아라.”

그리고 둘러선 사람들을 향해 외쳤습니다.

“이놈을 죽여라! 죽이자!”

잔뜩 벼르고 있던 말뼈다귀와 부하들이 와르르 몰려들어 두목에게 몽둥이질을 했습니다. 두목은 수갑을 찬 채 나뒹굴며 “어이쿠 어이쿠 나 죽는다 나 죽어……” 비명을 질렀습니다. 돌변한 상황에 놀란 경찰이 막아섰습니다.

“그만 하시오. 억울한 사정이 있으면 경찰서로 가서 밝히시오. 이제 모든 건 우리가 처리하겠습니다.”

두목은 질질 끌려 밖으로 나왔습니다.

*88

경찰은 갱 하우스 안에 갇혀 있는 사람들을 다 풀어주었습니다. 그리고 두목과 부두목은 감옥으로 보냈고 천사장과 은우도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이렇게 하여 악당의 소굴은 문을 닫고 동네에는 평화가 왔습니다.

방학이 끝나고 등교하는 첫 날입니다. 담임선생님께서 매우 기분 좋은 얼굴로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방학 동안 즐겁게 보냈지요?”

“네, 네, 넨.”

“이번 방학에 착한 일을 한 사람 손들어 봐요.”

진영이가 가장 먼저 손을 번쩍 들었습니다.

“진영이 말해 볼까?”

“저는 방학 동안 집안 청소를 깨끗이 했어요.”

“잘했어요, 또 다른 사람?”

유나와 은경이 차례로 집안일 도운 것을 자랑했습니다.

“모두들 방학을 잘 모냈어요. 특히 우리 반에는 아주 자랑스런 친구가 있어요.”

아이들은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서로 바라보다가 한 목소리로 물었습니다.

“누구예요? 선생님!!”

“누굴까 알아 맞혀 보아요.”

선생님은 환하게 웃으시면서 아이들을 둘러보셨습니다.

*89

은우는 채린을 바라보았습니다. 채린이도 은우를 바라보다가 눈길이 마주쳐 피식 웃고 고개를 숙였습니다. 채린은 은우가 그 아이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은우는 반대로 치린이가 자랑스런 아이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선생님이 은우와 채린을 번갈아 보면서 말씀하셨습니다.

“정은우 앞으로!”

은우는 얼굴이 빨개진 채 앞으로 나갔습니다. 아이들의 눈길이 은우에게 쏠렸습니다. 선생님은 다시 채린을 바라보셨습니다.

“손채린도 앞으로!”

아이들의 입에서 한꺼번에 탄성이 나왔습니다.

“와아! 은우와 채린이가?”

선생님이 은우와 채린을 나란히 세워놓고 말했습니다.

“이 두 사람은 우리 반의 자랑이자 우리 학교의 자랑이다. 이번 방학 동안에 이 두 사람은 아주 훌륭한 일을 하여 경찰서장님의 추천으로 시장님의 자랑스런 청소년 표창을 받게 되었다.”

아이들이 놀라운 듯 모두 선생님의 말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선생님이 두 아이를 향해 물었습니다.

“너희들이 왜 자랑스런 청소년 상을  받게 되었는지 알지?”

채린이 대답했습니다.

“아무 것도 한 게 없었는데요.”

*90

선생님이 은우에게 물었습니다.

“너도 아무 것도 안 했니?”

“네.”

“이 두 사람은 자기가 한 일이 잘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있는 점이 모범생다운 점이에요.”

선생님은 아이들을 둘러본 다음 은우에게 물었습니다.

“은우와 채린이는 자기들이 한 일이 어떤 것인지 모르는 모양이에요. 선생님이 말해 줄게요. 은우는 얼마 전에 길에서 돈 보따리를 주워서 파출소에 가져다 주었지요?”

“네.”

은우는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습니다.

“채린이는 며칠 전에 주인 없는 돈 보따리를 주워 경찰에 신고하려다가 못된 사람들을 만나 큰 고생을 하고 풀려났지요?”

“네, 그랬어요.”

“그리고 천사장이라는 분이 찾아준 돈을 다시 경찰에 신고했지요?”

“네.”

은우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 돈을 경찰에 신고했으리라고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이 이어서 말했습니다.

“두 사람은 큰돈을 주워 경찰에 신고한 것이 밝혀져 착한 어린이로 상을 받게 된 거예요.”

*91

그 다음 날 조회 시간에 구청장님이 은우와 채린에게 시장님을 대신하여 상장과 부상을 수여했습니다.

전교 어린이가 보는 앞에 은우와 채린은 나란히 서서 상을 받고 기념사진도 찍고 다음 날 어린이 신문에는 선행을 칭찬하는 기사가 크게 실렸습니다.

그리고 기사 가운데는 시장님이 부상으로 두 학생에게 대학을 마칠 때까지 장학금을 지급한다는 장학증서가 주어졌다고 덧붙였습니다. 

은우는 채린이 갱 하우스에 갇혀 있을 때 겁먹은 얼굴로 지내던 모습을 떠올리면서 무사히 풀려나게 된 것을 고맙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채린은 은우가 무엇을 어떻게 도와 주었는지를 모릅니다.

짓궂은 혁우가 두 사람이 신문에 나란히 찍힌 것을 보면서 큰소리로 놀렸습니다.

“우와! 이 사진 은우와 채린이 결혼식 하는 거 아니야?”

이 소리에 다른 아이들도 덩달아 놀렸습니다.

“맞다아! 신랑 색시다!”

그러나 채린은 태연히 아이들을 노려보는데 은우는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고 부끄러워 얼굴이 빨개졌습니다.

은우는 채린을 처음 보는 순간 가슴이 뛸 만큼 말할 수 없는 호감을 느꼈습니다. 갸름하고 하얀 피부에 반짝이는 눈이 언제 보아도 샛별같이 예뻤기 때문입니다.

92

체육시간이었습니다. 선생님께서 짝맞추기 게임을 했습니다. 아이들을 한 줄로 빙글빙글 돌게 하다가 다섯 사람 하면, 다섯이 모이고 세 사람 하면, 셋이 모이는 게임입니다.

선생님이 “여섯 사람!” 하셨습니다.

은우는 채린이와 만나기를 바랐지만 거리가 너무 떨어져 있어서 다른 아이들과 짝을 맞추었습니다.

선생님은 다시 돌게 하고 “세 사람!”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도 역시 채린이 너무 멀리 있어서 은우의 바람대로 만날 수가 없었습니다.

남자아이들은 모두 채린이와 짝이 되고 싶어서 채린이 옆으로 와르르 몰렸다가 밀려나 외톨이가 되기도 했습니다.

모이기 게임을 하는 동안 은우는 채린을 못 만나고 보기 싫은 진영이만 두 번씩이나 만났습니다. “네 사람!” 했을 때도 만나고 “세 사람!” 했을 때도 만났습니다.

진영이는 멀리 떨어져 있어도 달려와 다른 아이들을 밀치고 은우한테 달라붙었습니다. 은우는 채린이 그렇게 달려왔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채린은 은우에게 관심이 없는 듯했습니다. 선생님이 마지막으로 외쳤습니다.

“두 사람!”   

은우는 저쪽 끝에 있는 채린에게 달려가 짝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눈 깜짝할 사이에 은우는 반에서 가장 싫어하는 유나 짝이 되었고 채린은 주영이 짝이 되었습니다.

93

주영이 채린을 와락 끌어안고 좋아서 외쳤습니다.

“손채린은 내 짝이다!”

다른 남자아이들이 자기 짝은 보지도 않고 채린이 쪽만 바라보았습니다. 은우도 무엇인가 큰 것을 빼앗긴 듯 허전한 마음이 되어 채린을 바라보았습니다.

선생님이 두 팔을 앞으로 쭉 펴시면서,

“모두 자기 짝 손을 잡고 나란히!”

하셨습니다. 아이들은 자기 짝 손을 잡고 달려와 선생님 앞에 둘씩 한 줄로 길게 섰습니다.

“교실로 가면서 노래 부른다. 󰡐�가슴마다 파란 꿈󰡑� 하나 둘 셋 넷!”


하늘에는 해님이 금빛으로 벙글벙글

산봉우리 멀리멀리 구름 둥실 떠가면

우리 모두 손잡고 넓은 들판 달리자

가슴마다 파란 꿈이 우쑥우쑥 자란다


이 󰡐�가슴마다 파란꿈󰡑�은 선생님이 작사 작곡한 노래입니다.

동요 작가이신 선생님은 해마다 새 반을 맡으시면 손수 작사 한 노래를 아이들에게 곡을 붙여 가르칩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선생님을 특히 좋아합니다. 이 노래는 6학년 졸업반 아이들이 큰 꿈을 가지고 세상을 향해 나가라는 뜻으로 지은 것입니다.

주영이는 채린의 손을 잡고 큰소리로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러나 은우는 유나에게 잡힌 채 입만 벙긋거렸습니다.

이렇게 하여 짝이 된 주영이는 채린이를 언제나 자기 짝이라고 불렀습니다.

“내 짝 손채린! 손채린!”

은우는 그렇게 부르는 소리가 싫었습니다. 채린은 그 애가 그렇게 불러도 태연합니다. 어쩌면 주영이가 부잣집 아이라 그런지도 모릅니다. 주영이는 반에서 가장 부잣집 아이입니다. 아버지가 큰 공장을 하고 있어서 학교에 올 때도 자가용을 타고 옵니다. 그래서인지 선생님들도 주영이를 다른 아이들보다 감싸주는 편입니다.

그러나 교실에 들어가면 채린이 짝은 경철이입니다. 경철이는 채린이가 자기 짝이 된 것을 아주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공부를 못하는 그 애는 마음씨 착하고 공부 잘하는 반장 옆에 앉아 있기 때문에 여러 가지로 도움을 받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경철이 자리에 주영이가 슬그머니 와서 바꾸어 앉았습니다.

95

채린이 주영에게 차갑게 말했습니다.

“박주영, 너 제자리로 가지 못해?”

주영이 능청스럽게 웃으며 대꾸했습니다.

“야, 그러지 마, 넌 내 짝이잖아, 내 짜악!”

“내 짝이라고? 넌 지금도 체육시간인 줄 알아?”

“나 이 자리 샀다.”

“자리를 사? 누구한테?”

“경철이한테.”

채린이 화난 얼굴로 경철이를 쏘아보았습니다.

“박경철! 이리 와.”

경철이 주영의 자리에 앉은 채 바라보았습니다.

“싫어, 난 여기 앉을래.”

“너 이 자리 얼마 받고 팔았어?”

“돈으로 산 거 아냐.”

“그럼?”

“이거.”

경철이 내민 것은 만년필이었습니다.

“돌려주고 이리 와 앉아.”

“싫어. 그냥 여기 앉을래.”

주영이 끼여들었습니다.

“거 봐, 경철이도 오기 싫어하잖아.”


96

채린이 은우 옆에 앉은 미나를 불렀습니다.

“유미나, 너 이리 와 내 자리에 앉아. 자리 바꾸자.”

주영이가 부잣집 아이라 좋아하던 미나는 얼씨구나 하고 발딱 일어섰습니다.

“그래, 바꾸자.”

미나가 가방을 들고 채린의 자리로 갔습니다. 그리고 채린은 미나 자리인 은우 옆에 가서 앉았습니다. 은우는 채린이 곁에 와서 얼마나 좋은지 만세를 부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똑바로 앉아 있었습니다.

선생님이 들어오셨습니다. 채린이 자리가 바뀐 것을 보시고 물었습니다.

“손채린, 왜 자리를 바꾸었지?”

“박주영이가 저 앉았던 자리가 좋다고 바꾸어 앉자고 해서 미나와 제가 자리를 바꾸었습니다.”

“그래? 알았다. 앞으로는 선생님이 바꾸라고 하지 않으면 꼭 자기 자리를 지켜야 한다. 알았지?”

“네.”

채린과 은우가 나란히 상을 받은 것만도 마땅치 않게 생각하고 있는 진영이 심술 부릴 궁리를 하고 있다가 주영의 마음을 짐작하고 쉬는 시간에 주영이를 밖으로 불러냈습니다.

“주영아, 우리 이렇게 하자.”

“뭘?”

97

“채린이하고 은우 골탕 먹이는 게 어때?”

“정말?”

“그래, 저것들 눈꼴셔서 못 보겠어.”

“너도?”

“그래, 너도 그렇지 않니?”

“당근이지, 너 무슨 방법이 있니?”

“연구해 봐야지. 너도 연구해 봐. 오늘 학교 끝나고 저기서 만나자.”

“어디?”

“우리 동네 어린이 놀이터 쌍그네에서.”

주영과 약속을 하고 난 다음 진영이 유나에게 속삭였습니다.

“채린이 골탕 먹일 계획을 세웠어, 학교 끝나고 놀이터로 나와”

그러나 유나는 은우나 채린을 대하는 마음이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진영이의 계획을 은우에게 알려주기로 하고 쪽지에 글을 써서 전했습니다.

은우는 그것을 알고 집에 가서 투명구두를 신고 나왔습니다.

학교가 끝나고 집으로 갔던 주영이 먼저 나와 진영이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 곁에 은우가 서 있었지만 주영은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잠시 후 진영이 나왔습니다.

98

“진영아 빨리 와.”

“알았다. 벌써 왔니?”

“응, 좋은 생각이 났어.”

“뭔데?”

주영이 신이 난 듯 말했습니다.

“내일 아침 우리가 가장 먼저 학교에 가는 거야, 그리고 아무도 없을 때 교실 뒤에 있는 다리 부러진 의자를 바꾸어 채린이와 은우 자리에 바꾸어 놓는 거야. 알았지?”

“그래? 그것도 좋은 방법일 것 같다.”

주영이와 진영은 서로 밀어주면서 그네를 타고 놀다가 헤어졌습니다.

다음 날입니다. 은우는 투명구두를 신고 주영이보다 먼저 나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진영과 주영이 다른 날보다 일찍이 나왔습니다.

주영이가 은우 자리의 의자를 뒤로 옮기고 뒤에 밀어 놓은 다리 부러진 의자 두 개를 집어다 놓았습니다. 진영이 부서진 의자를 잘 맞추어 놓으며 말했습니다.

“감쪽같지?” 

주영이 감탄하듯 대답했습니다.

“그래, 아주 감쪽같다. 이히히히, 이따가 채린이와 은우가 멋도 모르고 털썩 앉다가 쿵쿵! 야 신난다. 머리끼리 박치기를!”

99

“아이 재미있어, 생각만 해도 신나는 걸, 호호호호.”

진영이 웃는 소리를 듣던 주영이 서둘러 말했습니다.

“나가자, 다른 애들이 오면 눈치 챌지도 몰라. 교문 밖에 나갔다가 다른 아이들과 함께 오는 거야. 그래야 아무도 우리 눈치를 못 채거든.”

“맞아. 역시 주영이는 머리가 좋다니까.”

두 아이가 서둘러 교실 문을 닫고 운동장을 가로질러 교문 밖으로 나갔습니다.

이때 은우가 주영이 자리의 의자와 자기 자리의 부서진 의자를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리고 채린의 자리에 있던 것은 진영의 의자와 바꾸어 감쪽같이 맞추어 놓았습니다.

그리고 운동장 밖으로 나가 문방구 뒤에서 신발을 바꾸어 신고 다른 아이들 틈에 끼여 학교로 갔습니다.

조회를 마치고 아이들이 한꺼번에 교실로 우르르 몰려 들어오고 선생님도 아이들을 따라 들어왔습니다. 반장 채린이 󰡐�차렷 경례󰡑� 하고, 다른 아이들은 구령에 맞추어 단정히 서서 인사를 한 다음 자리에 앉았습니다. 이때 진영이와 주영이 똑같이 부서진 의자가 내려앉는 바람에 󰡐�꽈당! 쿵!󰡑�하고 땅바닥에 뒹굴었습니다. 

깜짝 놀란 선생님이 눈을 똥그랗게 뜨고 아이들을 바라보셨습니다.

“누구냐? 장난 친 사람 나와!”

100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어저께 가장 늦게 나간 사람이 누구야?”

땅바닥에 넘어졌던 주영이 일어서서 자리에 앉아 아이들을 둘러보았습니다. 진영이는 이상하다는 얼굴로 이리저리 바라보았지만 아무도 말이 없었습니다.

“어제 청소 당번 다 나와.”

청소 당번 아이들이 나왔습니다.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사자숙어 가운데 두 자씩 씌어 있는 글자판을 들고 서 있게 하고 말했습니다.

“오늘은 단체 벌로 이 글씨를 다 외우고 써야 집에 간다. 못쓰면 쓸 때까지 남아서 공부하고 간다. 알았나?”

“네. 네.”

선생님은 칠판에다 대기만성(大器晩成), 인자무적(仁者無敵), 외유내강(外柔內剛)이라고 쓰고 외우게 했습니다.

학교 공부가 다 끝날 때까지 못 다 외우고 남은 사람은 경철이와 주영이, 그리고 진영이였습니다. 선생님은 세 사람을 꾸짖으시고 나서 말했습니다.

“너희들은 교실 청소를 깨끗이 하고 간다. 알았나?”

다음 날 아침입니다. 진영이 유나를 불러 놓고 말했습니다.

“혹시 장난 친 거 너 아냐?”

“내가 뭘?”

“너 내가 말한 거 알지?”

101

“무슨 말?”

“채린이 골탕 먹일 거라고 한 말.”

“그게 나하고 무슨 상관이야?”

진영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중얼거렸습니다.

“이상한 일이야. 전에도 그랬거든. 개구리, 숙젯장……”

“그러니까 마음을 바로 써야 하는 거야.”

“뭐라고?”

“언제든지 채린이 골탕을 먹이려다가 네가 먼저 당했잖아?”

“그게 이상하다는 거야. 난 몰라 골치 아픈 건 생각하기 싫어.”

진영이 유나에게 불만을 하려다가 오히려 공격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서 은우는 싱글벙글 혼자 웃었습니다.

󰡐�쌤통이다. 내가 한 것도 모르고 꽈당 쿵! 히히히.󰡑�

이때 뒤에서 나직이 속삭이듯 귀에 익은 음성이 들렸습니다.

“나다.”

“네? 키다리 아저씨?”

“음, 키다리 아저씨다.”

“안녕하세요?”

“집에 가냐?”

102

“네.”

“오늘 나하고 어디 좀 갈래?”

“어디요?”

“바로 옆 동네다.”

“네.”

“내가 가는 동안 이야기 하나 해 줄까?”

“재미있는 이야기인가요?”

“인석아, 재미없어도 잘 들으면 재미있는 거야.”

아저씨는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아주 큰 부자가 죽게 되었다. 세상에서 돈으로 안 되는 일이 없다고 생각하고 교만하게 살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죽음 앞에서는 어쩔 수가 없었다. 그 사람은 죽게 되자 찾지 않던 하나님을 찾아갔다.

“하나님, 조금만 더 살게 해 주십시오. 부탁입니다.”

하나님이 대답하셨다.

“하루만 더 살게 해 주랴?”

“하루는 너무 짧습니다. 며칠만 더 주십시오.”

“안 된다. 그럼 지금 죽어야겠다.”

“하나님, 그러시면 하루만이라도 더 살게 해 주십시오.”

“넌 무엇으로 나한테 보답하겠느냐?”

“무엇이든 말씀만 하십시오.”

103

“네 재산이 얼마나 되느냐?”

“예금한 돈만 500억 원이 넘습니다.”

“그 돈의 반을 다오.”

“네? 반씩이나요?”

“반은 너의 하루를 위해 주는 거다. 그거 다 쓰고 가거라. 못 다 쓰면 내일 이때쯤 너를 데려갈 거고 다 쓰면 일년 뒤에 오마.”

“정말입니까?”

하나님은 입을 다무셨다. 부자는 생각에 잠겼다.

󰡐�어떻게 번 돈인데 그걸 반이나 아무것도 도와 준 것 없는 하나님한테 준단 말인가. 악독한 하나님…….󰡑�

부자는 남은 하루를 어떻게 쓸 것이며 돈은 어떻게 써야 하루에 다 쓸 수 있는가를 궁리했다. 자지도 말고 쉬지도 말고 써야 한다고 생각하고 쓰는 방법을 생각했지만 하루에 쓰기에는 너무 큰돈이었다.

󰡐�이백 오십 억 원을 하루에 다 쓰자면 부동산을 사는 것이 적당하다. 집을 사면 5억 원짜리 50채를 사야 한다. 그러나 50채는 어디로 가서 어떻게 사고 내가 죽은 뒤엔 누구 것이 될까? 식사는 평생 가보지 못한 고급 식당으로 가서 나라에서 가장 비싼 술과 음식을 먹고 밥값을 10배씩 주고 먹는다 치자, 네 끼니 먹는 데는 얼마나 들까?……󰡑�


104

아무리 비싼 집에서 먹어도 10억을 쓸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어디다 써야 하루에 다 쓸 수 있단 말인가? 부자는 일년이라도 더 살고 싶었다.

‘다 쓰기만 하면 1년을 더 살게 해 주시겠다고 했는데 하나님을 믿어도 될까? 하나님마저 못 믿으면 누굴 믿지? 사람은 평생 겪어 보아도 믿을 사람이 없더라는 것을 알았지만 하나님과는 첫 거래인데, 믿어도 되겠지. 그러나 어떻게 돈을 다 쓸 수 있을까?󰡑�

부자는 고민 끝에 이 세상에서 가장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가를 찾아보았다. 친한 친구를 만나 보았지만 친구도 믿을 사람이 아니었다.

하늘을 올려다보다가 십자가를 발견했다. 하나님과 한 약속이니 교회로 가서 목사님께 물어 보기로 했다.

“목사님 의논할 일이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목사님은 부자의 이야기를 다 듣고 이렇게 말했다.

“그렇게 큰돈을 하루 사이에 쓸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무슨 묘안이 없을까요?”

“한 가지 있기는 한데……”

“있습니까?”

“있기는 한데 어렵습니다.”

“1년만 더 살 수 있다면 무슨 짓은 못 하겠습니까?”


105

“그러시면 모두를 교회에 헌금하십시오. 제가 헌금으로 받았다는 영수증을 해 드리겠습니다.”

“헌금을 하라고요? 반은 하나님께 드리기로 했는데 반은 교회에 바치면 모두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 아닙니까? 그건 좀……”

“그럼 할 수 없지요. 사람은 원래 빈손으로 왔다가 하나님께 빌려 쓰고 살다가 돌려드리고 가는 것이니까요. 내일 가셔도 두고 가시는 것이고 일년 뒤에 가셔도 당신 것은 없습니다.”

“목사님도 하나님도 너무 한 것 아닙니까?”

“그럼 하루만 마음껏 사십시오. 하나님의 약속은 사람의 약속과 다릅니다.”

“잠깐만요. 헌금 영수증을 받으면 하나님이 인정해 주실까요?”

“물론입니다.”

“내일 다시 오겠습니다.”

다음날 돈을 다 쓰지 못한 부자는 시커먼 흙덩이로 돌아갔다.”

키다리아저씨 이야기는 여기서 끝났습니다.

“재미 있느냐?”

“무서워요.”

“누가?”

106

“하나님이 무서워요.”

“하나님을 가장 무서워하는 게 누군지 알고 하는 소리냐?”

“죄인이지요.”

“그래, 죄인도 무서워하지만 더 무서워하는 것은 귀신들이다.”

“귀신이라고요? 귀신이 어디 있어요?”

“넌 귀신을 보지 못한 모양이로구나?”

“네.”

“귀신 구경 한번 해 볼래?”

“무서워요.”

“무서울 것 없어. 너 투명 구두 가지고 있지?”

“네.”

“그걸 신고 따라 오너라. 그러면 귀신도 너를 못 알아본다.”

그래도 은우는 겁이 났습니다. 정말 귀신을 만나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싫어요.”

“괜찮아 내가 있잖아.”

은우는 키다리 아저씨를 따라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겁쟁이로구나. 그럼 구두나 바꾸어 신거라.”

은우는 투명구두를 신었습니다. 아저씨는 뚜벅뚜벅 걸어가면서 돌아보지도 않고 말했습니다.


107

“너 저기 저 집이 누구네 집인지 알겠니?”

가만히 보니 그 집은 고모네 집이었습니다.

“우리 고모네 집이에요.”

“맞다.”

“아저씨도 우리 고모님 집을 아시나요?”

“암.”

참 이상한 일입니다. 어떻게 고모님 댁을 알고 있을까요?

“다 왔다. 문 앞에 좀 있다가 들어가자.”

고모님 댁에서는 고소한 기름 냄새가 솔솔 새어 나왔습니다. 가만히 들어보니 고모님, 외사촌들, 외숙모 목소리가 들려오고 무슨 일인지 바쁘게들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키다리 아저씨가 물었습니다.

“다 아는 사람들 목소리 아니냐?”

“네.”

“냄새가 좋지?”

“네.”

“조금만 기다리면 손님들이 오실 거다.”

잠시 후에 저쪽 골목에서 웅성웅성하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리고 바로 두 사람이 앞에 오고 뒤를 따라 여러 사람이 몰려오고 있었습니다. 맨 앞에 오는 사람은 고모부였습니다.

“생일 한번 얻어먹기가 이렇게 어렵네. 일년 동안 얼마나 기다렸는지 견디기 힘들었어.”

108

옆 사람이 말했습니다.

“자네는 일년에 한번이라도 얻어먹지만 나는 이렇게 거지가 되어 친구 생일에 얹혀 다니기 십 년일세.”

“들어가 봄세.”

두 사람이 대문 안으로 들어가자 따라오던 사람들이 모두 몰려 들어갔습니다.

키다리 아저씨가 말했습니다.

“우리도 들어가자.”

고모님은 안방에 계시고 넓은 마루에는 제사상이 차려져 있었습니다.

고모부는 가족들은 둘러보지도 않고 함께 온 사람들과 어울려 몸에서 썩는 냄새가 진동하는 손으로 차려놓은 음식을 주물럭거리며 냄새를 맡았습니다. 썩은 살이 너덜너덜하고 시커먼 손으로 음식을 이리저리 뒤적이며 주무르다 놓으면 다른 사람이 또 주무르며 냄새를 맡았습니다. 온 집안이 썩는 냄새로 가득했습니다.

고종 사촌 형님들이 지방을 붙이고 향불을 피우자 냄새가 줄었습니다. 절을 꾸벅거리고 하지만 아무도 절에는 관심이 없고 고모부도 아귀가 되어 음식만 주물렀습니다. 실컷 주무르고 나서 한 마디씩 했습니다.

“작년만 못해. 해가 갈수록 차려 놓는 음식이 줄어들어.”

“이렇게 얻어먹는 것도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아.”

109

“날이 갈수록 제사 지내는 집이 줄어든다니까.”

“그러니 우리가 이렇게 패거리가 되어 몰려다니지 않나?”

“나도 살았을 때 하나님을 믿었더라면 이 꼴은 아니었을 텐데.”

“그 말은 해서 뭘 해? 다 소용없는 푸념이지.”

“내 친구 중에 거지처럼 살던 광철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거지같이 살면서도 하나님을 믿었거든, 그리고 나보고 함께 믿자는 거야. 내가 그랬지 너나 잘 믿고 천당 가라. 나는 하나님 같은 건 안 믿어도 너보다 잘 산다고 큰소리를 쳤지. 그런데 죽고 보니 그 친구는 정말로 천당으로 가더라 이 말이야.”

“나는 지옥에 가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라고 생각하네. 지옥에 간 사람들이 당하는 고통을 다 알지 않나? 배고픈 고통은 고통도 아니지. 난 너무 잘못 살다가 세상을 떠났어.”

“우리는 내년이나 되어야 이 집에 한번 더 오는 거지? 어디 갈만한 집이 있나?”

“없어. 하나 있기는 한데 그 집은 가고 싶지 않아.”

“왜?”

“이것들은 음식을 차려놓고 제사는 안 지내고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거야. 한번 갔다가 문 앞에서 천사들한테 잡혀 갈 뻔했지.”

“가세.”

110

고모부는 식구들한테 인사도 없이 일어섰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우르르 몰려나갔습니다. 그리고 맨 마지막 나가는  사람이 󰡐�차린 것이 시원찮아서 너나 더 데려가야겠다󰡑� 하고 문 앞에 서 있는 개를 끌고 갔습니다.

그것도 모르고 온 가족이 둘러앉아 제사 음식을 나누어 먹는데 그냥 바라볼 수가 없었습니다. 귀신들이 더러운 손으로 주물러 놓은 음식은 개 죽만도 못한 것이었습니다.

은우는 소리를 질렀습니다.

“고모님, 그 음식 잡숫지 말아요. 아주 더러워요.”

그러나 아무도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키다리 아저씨가

“인석아, 네 소리는 나밖에 못 듣는다. 조용히 하고 가자.”

“어디로 가요?”

“넌 너희 집으로 가고 난 내 갈 길로 간다. 너 교회에 다니니?”

“아니요.”

“알았다. 난 간다.”

키다리 아저씨는 골목길로 사라졌습니다. 이상한 구경을 하고 나오니 꿈을 꾼 것 같았습니다.

“아저씨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은우는 저희 동네로 가기 위오른쪽 골목을 지났습니다. 이때 작지만 다정한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111

“나다.”

“누구세요?”

돌아보았지만 아무도 안 보였습니다.

“어어, 이상하다?”

“이상할 것 없어. 나 난짱이다.”

“네?”

“난 키다리하고 네가 하는 소리를 다 들었다.”

“어디 계시지요?”

“네 옆에 있지. 나는 너처럼 아무도 알아보지 못한단다.”

“아저씨도 투명구두를 신으셨나요?”

“암.”

“아저씨는 집이 어딘가요?”

“집이 없어.”

“투명구두는 어디서 났어요?”

“너처럼 얻었지. 그러나 나는 구두를 벗어도 사람들이 몰라보는 게 너와 다르다. 그런데 구두를 벗으면 귀신들이 나를 알아보기 때문에 신고 다니지.”

“오늘은 왜 오셨어요?”

“너하고 갈 데가 있어서.”

“암말말고 따라오기나 해.”

“싫어요.”

“너 교회에 안 다닌다고 했지?”

112

“네.”

“잘했어. 난 교회 다니는 사람 딱 질색이야. 넌 그 점이 내 맘에 들어.”

은우는 마음에 없는 거짓말을 했습니다.

“앞으로 나갈 건데요.”

“바보짓 하지마. 키다리가 교회에 가라고 하던?”

“아니오.”

“교회라는 곳은 갈 필요가 없어. 교회보다는 내가 더 좋은 곳을 보여 줄게. 오늘 아주 좋은 선물 많이 얻게 해줄게.”

“뭔데요?”

“따라와. 내가 가자는 대로 가면 돼.”

은우는 난짱을 따라 굉장한 보석 창고로 들어갔습니다.

“너 이거 다 가져.”

거기에는 갱 하우스에서 보았던 것보다 훨씬 많은 금은보석이 번쩍거리고 있었습니다.

“너 이거 다 가지고 가도 아무도 몰라.”


113

“싫어요. 그건 도둑질이에요.”

“이 많은 데서 몇 개 갖는 것은 괜찮아. 주인도 몰라.”

“그래도 싫어요.”

“바보 같은 녀석. 저 다이아몬드 하나만 가지고 가 봐라. 너의 엄마 가져다 드리면 얼마나 좋아할지 알기나 아냐?”

“그래도 싫어요,”

“채린이 좋아하지? 그럼 저쪽에 있는 작은 반지 하나 집어. 그걸 그 애한테 주면 얼마나 좋아하겠니?”

“안 돼요. 싫어요.”

“바보 녀석, 쥐어주는 떡도 못 먹는 바보, 두고 봐라. 며칠 있으면 채린이 생일인데 그 날 주영이가 선물을 주고 채린이는 그것을 받고 아주 좋아할 건데. 그래도 싫으냐?”

채린이를 생각하니 정말 예쁜 것 하나 가져다주고 싶었습니다. 난짱이 속을 들여다보고 말했습니다.

“거 봐라, 채린이한테 하나 주고 싶지? 망설일 것 없어. 가져. 어물어물하다가는 채린이 마음을 주영이한테 빼앗긴다.”

은우는 저쪽에서 유난히 반짝거리는 다이아몬드가 박힌 가느다란 반지를 바라보면서 마음이 흔들렸습니다. 난짱이 다그쳤습니다.

“시간 없어, 빨리 하나 집든지 둘이든지 네 맘대로 집어.”


114

 “싫어요. 난 갈 거예요.”

“어디를 가?”

“집에 가야 해요.”

난짱은 화난 소리로 말했습니다.

“바보 같은 녀석, 넌 아무것도 도와줄 필요가 없어. 내가 너를 얼마나 좋아하면 이런 데까지 데리고 왔겠니? 답답해서 너하고 더는 못 있겠다. 가자.”

은우는 길로 나왔습니다. 돌아보니 큰 백화점 안에서 돌아다니다가 나온 것입니다. 난짱은 아직도 화가 난 모양입니다.

“바보 같은 녀석, 내가 하라는 대로만 하면 당장에 부자가 될 텐데. 그것도 모르고……. 다시 들어갈래? 그 많은 것을 가방에 가득히 담아 가지고 나와 봐라. 당장에 너의 엄마는 장사를 안 하고도 부자로 살 텐데. 아이 속 터져!”

“우리 엄마는요, 땀 값으로 버는 돈이 아니면 갖지 말라고 하셨어요.”

“그건 다 부모가 하는 말이야. 어떤 부모가 자식한테 도둑질을 가르치겠니? 앞으로는 내가 하라는 대로만 해 그러면 당장에 부자가 될 테니, 알았냐? 이 바보야, 난 간다.”

“난짱 하저씨!”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난짱 아저씨는 화가 나서 어디론가 가 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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