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풀꽃 나는 아주 작은 풀꽃이에요. 내 얼굴은 밤하늘 아득히 가물가물한 별처럼 작고 내 가느다란 꽃대는 잠자는 아기 숨소리보다 가늘어요. 그래서 이 세상에는 나를 아는 사람이 없어요. 그래도 나는 봄부터 가을까지 방실방실 날마다 웃는답니다. 내 웃는 얼굴이 보고 싶다고 나를 찾아오는 친구들은 하루 종일 끊이지 않아요.
다리가 짧고 더듬이가 아주 작은 개미와 날개를 팔락거리며 풀 속을 날아다니는 이름 모를 날벌레가 찾아와서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갑니다.
그런데 내 머리 위에는 아주 커다란 꽃들이 화장을 진하게 하고 바람에 어깨를 으쓱거리며 몸매를 자랑합니다. 아주 높이는 하늘에 얼굴을 맞대고 해보다 더 큰 얼굴로 벙글거리며 구름을 휘휘 젓는 해바라기 멋쟁이가 있고요, 그 아래는 다이어트에 성공했다고 빨간 입술로 자랑하는 코스모스가 한들 간들 몸매를 뽐내고, 코스모스 옆에는 들국화가 진한 향기를 날리며 벌들을 모아 잔치를 벌입니다. 들국화 아래는 호박덩굴이 엉금엉금 기어 오며 노란 입을 쫙 벌리고 향기를 날립니다.
그런데 얄밉게도 호박덩굴이 내 머리 위로 다가와 넓적한 잎사귀로 하늘을 가렸습니다. 나는 답답하여 견딜 수가 없어서 큰 소리로 “아줌마, 저리 좀 비켜주세요.” 하고 외쳤습니다. 그러나 호박덩굴은 들은 체도 않고 가느다란 더듬이 줄기 팔을 벌려 해바라기 허리를 감고 머리를 하늘로 들었습니다.
화가 난 해바라기가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물러나지 못해? 어디를 오르려는 거야?” 그러나 호박덩굴은 들은 체도 않고 해바라기 허리에 매달려 벙긋거리고 웃기만 했습니다. 나는 놀러 온 개미들에게 말했습니다.
“개미야, 저 호박 잎사귀가 가려서 나는 하늘을 볼 수가 없어. 나는 해를 보아야 웃을 수 있는데 어쩌면 면 좋지?” “걱정 마, 우리가 호박잎을 밀어내 줄게.” 개미들은 우르르 몰려 호박덩굴로 올라가 잎사귀를 물어뜯고 밀었습니다. 그러나 호박잎은 꿈쩍도 않고 말했습니다.
“요것들이 왜 이래? 간지럽다 간지러워.” 이때 국화가 웃으며 비웃었습니다. “호호호 꽃도 꽃 같잖으니까 개미들이 그러잖아.” “뭐라고?”
“너 사람들이 하는 말도 못 들었니? 호박꽃도 꽃이냐고 하는 말 말야.” “너 까불면 가만 안 둔다.” “가만 안 두면 어쩔 건데?” “두고 보자, 내가 너를 친친 감아서 숨을 못 쉬게 할 거야.”
이때 해바라기가 해보다 더 커다란 얼굴을 돌려 내려다보면서 말했습니다. “국화 말이 맞아. 사람들이 호박꽃도 꽃이냐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고나 있냐?” “너희들 정말 나를 놀릴 거야? 내가 꽃이 아니면 뭐냐?” “꽃은 꽃이지. 호박꽃이라 문제지. 사람들 보고 물어봐라. 네가 누구냐고. 못 난아.”
호박꽃은 화가 잔뜩 났습니다. 그래서 잎사귀를 휘휘 저으며 말했습니다. “내가 어디가 어째서 그러는 거야. 사람들은 내 자존심을 이렇게 다 짓밟아 놓고 미안하지도 않은가.” 이때 내가 말했습니다.
“호박꽃 아줌마 너무 속상해 하지 마세요.” 호박꽃이 나를 신기하다는 듯이 내려다보면서 물었습니다. “넌 누구냐?” “저는요, 별꽃이에요.”
“뭐라고? 너도 꽃이라고? 호호호호. 누가 널 꽃이라고 부르니? 겨우 떨어진 안개꽃 이파리 하나만도 못한 게 꽃이라고? 게다가 별꽃이라고? 누가 그러던? 웃기네.” 해바라기가 웃음소리를 크게 내며 대답했습니다. “허허허허 내가 지어준 이름이다.”
“네가 지어준 이름이라고?” “그렇다, 내가 지어 주었다. 저 녀석은 낮에 고개를 숙이고 아래를 한참 내려다보아야 가물가물 보이는 작은 꽃이지. 얼굴은 작지만 마음씨가 고와서 개미들의 친구가 되어주고 날벌레의 말동무가 되어주는 귀여운 꽃이야. 한 번도 남들에게 싫은 소리도 안 하고 건방지게 자기 자랑도 할 줄 몰라, 그러나 봄부터 가을까지 저 그늘 속 어두운 곳에서 보잘것없는 벌레들의 등불이 되고 친구가 되어 웃고 사는 모습이 밤에 나타났다가 아침에 숨는 별 같아서 별꽃이라고 지었다.”
이때 코스모스가 허리를 가볍게 저으며 말했습니다. “맞아,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작은풀꽃이 별꽃일 거야.” 별꽃은 배시시 웃으며 말했습니다. “아가씨 고마워요.”
국화도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별꽃같이 마음이 고운 꽃은 세상에 없을 거야.” 별꽃이 국화를 올려다보며 말했습니다. “국화 선생님 고맙습니다.”
이때 곁에서 조용히 듣고만 있던 제비꽃이 끼어들었습니다. “맞아요. 별꽃은 천사꽃이라고 불러도 좋은 거예요. 나보다 훨씬 작고 약해 보이지만 별꽃은 땅에 습기를 막아주며 우리 꽃들이 잘 자랄 수 있도록 봄부터 가을가지 열심히 일을 합니다.”
“제비꽃 언니 고맙습니다.” 이때 호박꽃이 심통스런 소리로 말했습니다. “야, 별꽃인지 병꽃인지 물어보자, 너 어째서 나보고는 말끝마다 아줌마라고 부르는 거야? 난 아직 시집도 안 간 처녀라 말야.”
“아줌마 미안해요.” “또 아줌마야?” 해바라기가 말했습니다. “아줌마라고 부르는 것만도 고마운 줄 알아라. 사람들이 하는 말 못 들었냐? 너 그러면 할미꽃이라고 부른다.”
이때 할미꽃이 하얀 머리를 휘저으며 말했습니다. “무슨 소리를 그렇게 섭섭하게 하시나요? 호박꽃을 할미꽃이라고 부르신다고요? 이건 우리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말씀입니다. 취소하세요.” “아, 그렇군요. 죄송합니다. 취소하겠습니다.”
호박꽃이 신이 났습니다. “호호호 거봐라. 함부로 말하면 안 된다는 거 알았지?” “넌 어차피 꽃소리는 듣기 어려워, 에라 쥐똥나무라고나 해라.”
이때입니다. “뭐요? 쥐똥나무라니, 그렇지 않아도 저 호박이 여름 내내 등을 타고 기어올라 괴롭혔는데 호박꽃을 쥐똥나무라고요? 이건 쥐똥나무를 모욕하는 말입니다. 당장 말씀 취소하십시오.”
“아, 그렇습니까? 죄송합니다. 취소하겠습니다. 꽃도 꽃 같지 않은 호박꽃이 문제입니다.” 호박덩굴은 약이 올라 부지런히 줄기를 뻗어 이리저리 꽃들을 괴롭히기 시작했습니다. 한 줄기는 해바라기를 감고 한 줄기는 국화를 감은 다음 코스모스를 향해 감아올리기 시작했습니다.
별꽃이 개미들에게 말했습니다. “이러다가는 다른 꽃들이 다 죽고 말겠어. 어떡하면 좋을까?” 나무를 올랐다 내렸다 하던 개미가 내려와 말했습니다. “별꽃님 큰일 났어요. 높은 나무 위에 올라가 보았는데 큰 비구름이 몰려오고 있어요. 조심하세요.”
“그래? 고맙다. 그럼 한 가지 부탁을 할까?” “말씀하세요.” “큰비가 오기 전에 너희들이 저 해바라기와 국화에 감고 있는 호박 줄기손을 입으로 끊어 줄래? 그러면 비바람에 호박 덩굴이 매달리지 못하고 바람에 풀려 잔디밭으로 떨어질 거야. 그러면 꽃들이 모두 좋아하지 않겠어?”
“좋아요, 그럼 그렇게 하지요.” 개미들은 부지런히 호박 줄기손을 물어뜯었습니다. 줄기손을 잃은 덩굴은 고개를 떨구고 흔들거렸습니다. 이때 비바람이 몰아쳐 호박덩굴을 굴려 잔디밭으로 떨어뜨렸습니다.
괴롬을 당하던 꽃들이 모두 소리 내어 해가 지고 별이 뜰 때까지 별꽃 만세를 불렀습니다. “별꽃 만세! 작은풀꽃 만세!” 하늘 여기저기서 등불을 밝히고 나타난 별들이 그 소리에 놀라 내려다보다가 모두 좋아서 작은 풀꽃위로 우르르 쏟아져 내렸습니다.
* 부탁 : 호박덩굴손 이름이 무언지 생각이 안 나요. 바른 말을 알려 주시업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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